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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토픽] 힙합 역사상 가장 거대한 몰락 2부
    rhythmer | 2011-05-20 | 6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30년이 넘는 힙합 음악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별이 솟아오르고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투팍(2pac)과 비기(The notorious B.I.G.) 등과 같이 정상의 자리에서 사라진 이들도 있고, 제이-지(Jay-Z)처럼 오랜 기간을 다양한 형태로 집권한 인물들도 있다. 하지만, 많은 슈퍼스타들이 최정상의 자리에서 갑작스레 평범한 랩 스타로 전락하기도 했다. 아래는 ‘거대한 몰락의 순간’에 대한 두 번째 기록이다.

    MC Hammer



    역사상 최초의 다이아몬드 획득 엠씨. 이것이 엠씨 해머의 찬란한 과거이자 그의 전리품이다. 그는 천만 장이 넘는 앨범을 팔아 치우고 그 이전의 랩 역사에 없었던 월드 와이드 랩 슈퍼스타의 지위에 올랐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다. 그는 위대한 성공 이후 도취와 자만으로 인한 몰락을 겪었고 결국은 어마어마한 재산을 탕진하고 파산 선고까지 받게 되는 거대한 몰락을 겪었다. 사실 그의 몰락을 어느 시점으로 보느냐는 관점에 따라 다르지만, 무려 다이아몬드 레코드를 기록한 [Please Hammer, Don’t Hurt’Em] 직후에 나온 [Too Legit Too Quit]을 해머 몰락의 시작으로 보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이 앨범은 전작의 너무나도 엄청난 성공에 가렸을 뿐 무려 4백만 장을 팔아 치웠고 싱글컷된 곡들 역시 선전했다. 진정한 몰락은 [Too Legit Too Quit] 이후, 3년간의 공백기부터 시작된다. 해머는 그간 벌어들인 어마어마한 돈으로 사치스런 생활을 하는 한편, 자신의 레이블을 만들고도 방만한 운영으로 재산을 탕진한다. 파산의 정석 테크를 밟아가던 해머는 94년, 3년 만의 복귀작 [The Funky Headhunter]를 발매하는데, 이 앨범은 당시 유행이던 하드코어/갱스터 랩 사운드와 해머 특유의 팝 사운드의 절묘한 조화를 시도…하다가 위대한 실패를 이룩한 앨범이었다. 사운드와 랩 모두 시대착오적 방황을 거듭한 이 앨범 이후, 엠씨 해머의 앨범은 랩 뮤직 사상 최초의 다이아몬드 인증 앨범을 소유한 뮤지션답지 않은 졸작들이 이어졌다. 결국, 해머는 파산신청을 하고 이미 몰락 직전의 데스로우 레이블과 사인하기에 이르렀다.

    Canibus



    캐니버스(Canibus)의 경우는 앞서 열거한 슈퍼스타들의 몰락과는 조금 다른 경우다. 캐니버스는 데뷔 초기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라임 폭격기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라킴(Rakim)과 쿨 쥐 랩(Kool G Rap), 나스(Nas)와 빅 퍼니셔(Big Punisher) 등의 계보를 이을 실력자로 주목받았고, 그 출중한 실력으로 푸지스(Fugees)의 와이클레프(Wyclef Jean)에게 러브콜을 받았다. 그의 커리어 중 가장 빛나는 부분은 아마도 엘엘 쿨 제이(LL Cool J)와의 역사적인 배틀일 것이다. 엘엘의 이름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그야말로 그의 마음을 찢어버렸을 “2nd Round K.O”는 실력파 배틀 엠씨라는 캐니버스의 캐릭터를 확실히 정립했다. 하지만, 상황은 이상하게 돌아갔다. 하드코어 힙합 마니아들은 그의 데뷔 앨범 [Can-I-Bus]에서 와이클레프의 너무 개인적 취향이 진한 프로덕션이 불만이었고 그것은 캐니버스도 마찬가지였다. 앨범은 골드 레코드를 기록했지만, 캐니버스는 데뷔 앨범 발매 직후 와이클레프와 결별했고, 두 번째 앨범 [2000 B.C.]를 발매했지만, 상업적으로 참패했다. 이후, 인디 씬으로 옮겨 발매한 [C! True Hollywood Stories]는 그가 예전에 이룩했던 약간의 성공은 물론, 과거의 명성마저 무너뜨렸다. 이후 기나긴 커리어를 이어왔고 그동안 수준급의 앨범이 있었지만, 팬들은 그의 앨범에 더 이상 예전만큼의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가 저주했던 데뷔 앨범이 그가 발표한 가장 훌륭한 앨범이었다는 점이다. 발매 당시에는 오리지널리티에서 큰 비판을 받았던 이 앨범은 시간이 흐른 뒤 영국의 저명한 흑인음악 매거진에서 선정한 100대 클래식 앨범의 상위권에 선정되기도 했다.

    Ja Rule



    언젠가 리드머에 게시되었던 ‘힙합 역사상 최고의 트렌드’에서 리믹스 열풍에 대해 언급했던 적이 있다. 누가 뭐라 해도 2000년대 초반 리믹스 시대의 주인공은 자 룰(Ja Rule)이었다. 그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3년간 자신의 곡과 피처링 참여 곡을 합쳐 7곡의 탑 텐 싱글을 배출했고, 2001년에만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이름을 세 번이나 올렸다. 그 3년간 발매한 두 장의 정규 앨범은 세계적으로 1,000만 장, 미국 내에서만 6백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자 룰은 DMX의 바이터(Biter)라는 논란을 자신의 성공으로 잠재웠고 점점 하락세이던 DMX의 자리를 대신해 차지했다. 문제는 그 끝없는 자존심이었다. DMX와의 배틀은 물론이며, 그를 디스한 피프티 센트(50 Cent)에게 칼을 휘둘렀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의 인기가 최고의 위치였기 때문에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피프티 센트가 셰이디(Shady)/애프터매스(Aftermath) 레이블과 계약하자 에미넴(Eminem)과 닥터 드레(Dr. Dre)를 적으로 돌린 것이다. 또 다른 실수도 저질렀다. 투팍(2Pac)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자 룰은 그를 투팍과 동격화하는 발언을 자주했는데 당시는 투팍에 대한 팬들의 그리움과 뮤지션들의 바이팅이 극에 달했던 시절이었다. 정상의 자리에 올랐지만, 몇 가지의 사소한, 혹은 중대한 실수로 말미암아 자 룰은 좀 더 길게 유지할 수 있었던 최고의 위치에서 너무 일찍 내려오고 말았다.

    Snoop Dogg



    스눕 독은 팝 음악 역사상 가장 폭발적인 속도로 인기를 얻은 뮤지션을 한데 모아 순위를 꼽더라도 열 손가락 안에 들만 한 인물이다. 92년 닥터 드레의 [The Chronic]이 발매되었을 때 많은 팬은 그 앨범을 닥터 드레 감독에 주연 배우는 스눕 도기 독으로 여겼다. 그것은 이듬해 곧바로 증명되었다. [Doggystyle]은 그야말로 당시 음악계를 평정했다. 93년에는 일종의 컬트적 문화현상을 일으키며 동부 힙합의 부활을 선포한 우-탱 클랜(Wu-Tang Clan)의 데뷔 앨범이 발매되었고, 많은 팝 슈퍼스타들의 앨범이 발매되었다. 그러나 가장 큰 화제를 몰고 다닌 것은 스눕 독이었다. 그는 빌보드 차트 사상 최초로 데뷔 앨범을 1위로 데뷔시킨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다. 싱글들은 탑 텐을 들락거렸고 그의 독특한 캐릭터와 닥터 드레의 비트를 배경으로 한 스눕 독의 문법은 갱스터 랩의 아이콘이 되었다. 하지만, 그 역시 너무 일찍 많은 일이 벌어졌다. 살인죄와 관련된 탓에 법정을 들락거리는 사건은 힙합 부흥의 초기였던 당시에는 너무 큰 스캔들이었다. 더 큰 사건은 따로 있다. 닥터 드레가 데스 로우(Death Row) 레이블을 떠난 것이다. 두 번째 앨범인 [Tha Doggfather]를 책임진 독 파운드(Dogg Pound)의 대즈 딜린져(Daz Dillinger)는 탁월한 감각을 뽐내며 다채로운 게스트의 소리를 조화롭게 모아냈지만, 상업적 감각에서 드레의 대안이 되지 못했다. 결국, 이 앨범은 이렇다 할만한 히트곡 하나 내지 못한 채 전작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판매량을 기록했고, 이때다 싶었던 스눕 독 역시 데스로우 탈출에 성공했지만, 문제는 데스로우 탈출 이후에 선택한 레이블이 마스터 피(Master P)의 노 리밋(No Limit) 레코드였다는 점이다. 과거 레이블 메이트였던 시절의 우정과 당시 정점에 올랐던 노 리밋의 성공에 의지한 것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스눕은 조금 더 고민했어야 했다. 정점에 올랐다는 말은 미래의 추락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이후, 그는 기나긴 방황의 시간을 거쳐 [The Last Meal]에서 다시금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그간의 기행이 스눕 독이라는 브랜드의 특징임을 대중에게 세뇌시킨 후에야 다시금 정상의 위치에 오른다. 물론, 예전과 같은 천상천하 무아독존의 위치는 아니었지만….

    Nas



    나스의 커리어에서 몰락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찌 보면 부당하다. 그는 슈퍼스타의 위치에 오를 뻔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대신에 거리의 화신으로 10년이 넘는 시간을 힙합의 아이콘으로 군림했다. 10년간 발매한 6장의 솔로 앨범이 모두 플래티넘을 기록했고 10년 차가 넘어 발매한 두 장의 솔로 앨범은 빌보드 차트 1위로 데뷔했다. 나스는 상업적인 성과로 왕좌의 위치에 오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보다 늦게 게임에 뛰어들어서 훨씬 거대한 성공을 거둔 이들이 몰락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았고, 그들이 인디 씬에서 재기를 노리는 동안 나스는 여전히 주류 랩 게임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99년의 나스는 확실히 몰락 직전이었다. 여러 번의 우여곡절을 겪고 발매한 [I Am…] 앨범은 당시만 해도 확실히 비기와 투팍이 사라진 랩 게임의 왕자를 나스에게 넘겨줄 것 같았다. 첫 주에만 50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단숨에 앨범 차트를 점령한 이 앨범은 제법 탄탄한 하드코어 앨범이었지만, 나스라는 브랜드 네임이 팬들에게 작용하는 어마어마한 기대치에는 한참 부족했다. 결국, 이 앨범은 2백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지만, 문제는 이후다. [It Was Written]이 팝 샘플링의 극치를 들려준 하드코어 랩 앨범이었다면, 본격적으로 팝-랩으로 뛰어든 [Nastradamus]는 나스를 단숨에 과거의 스타로 만들 뻔했다. 변변한 싱글히트를 기록하지도 못했으며, 급조된 앨범의 전체적인 짜임새 역시 불만족스러워서 앨범은 전작이 달성했던 판매량을 절반으로 줄여놓았다. 더 큰 문제는 약간의 쉼표이자 커머셜 커리어의 도약점이 될 뻔 했던 전작들의 성과를 이 앨범이 고스란히 날려버렸다는 점이다. 골든 에이지에 데뷔한 뮤지션 대부분이 시대의 흐름에 무너져간 당시까지 최상위의 커리어를 유지했던 유일한 힙합 영웅의 이미지는 [Nastradamus]로 인해 몰락과 타협의 이미지로 한순간에 변모했다. 그리고 이어진 컴필레이션 앨범의 히트곡 “Ooochie Wally”는 그 이미지에 쐐기를 박았다. 이후, 그가 놓친 뉴욕의 왕좌를 차지해버린 제이지(Jay-Z)와의 전설적인 배틀을 통해 건재한 실력을 과시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스의 커리어가 어찌 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1부 보기: http://board.rhythmer.net/src/magazine/feature/view.php?n=5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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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umple (2011-06-09 01:02:14, 118.217.235.***)
      2. 나스는 몰락은 아닌데... 한순간의 실수라고나 할까요.... ㅎ
      1. Truble Makerz (2011-05-26 19:36:41, 211.221.175.**)
      2. 나스는 뉴욕을, 도기는 West Cost 를 지키는 성님 역할을 하고 있는 자리까지
        왔다고 생각하는데, 몰락은 극단적인 표현인듯.
      1. HooN (2011-05-26 09:44:26, 116.121.58.**)
      2. 저도 나스랑 스눕독 몰락은 좀 아닌거 같아요. 인기가 조금 떨어졌다고 몰락한건 아니죠.
        현재도 힙합씬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크다고 생각합니다.
      1. djyd (2011-05-22 16:03:54, 118.42.94.**)
      2. 데쓰로 탈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 Lafayette (2011-05-22 11:55:01, 121.166.98.**)
      2. 1 데뷔 시절에 제대로 클래식을 한장씩 발매한 MC들인데..

        2000년대 중반 이후 ~ 최근 커리어가 더 근사하다는건 어떤 점에서 말씀하시는건가요?
      1. mp01 (2011-05-21 17:26:28, 175.113.134.***)
      2. 스눕독이나 나스를 몰락이라고 표현하는건 좀 웃긴듯...

        둘다 데뷔 시절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 최근의 커리어가 훨씬 근사해보임
      1. unknownn (2011-05-21 14:17:44, 112.154.228.**)
      2. 캐니버스 앨범을 꾸준히 챙겨 듣지만, 비트초이스 능력이 거의 안드로급이라... 그냥 와이클레프랑 붙어있지.

        개인적으로 킬라 프리스트도 비슷한 유형.

        자 룰은 새 앨범 사상최고라고 큰 소리치고 있으니 일단 기대걸어보고요.
      1. 김태완 (2011-05-20 23:08:47, 220.79.48.***)
      2. 역시 엠씨해머... 스눕독은 참 앨범이 1집이후로 참 아쉽네요
      1. 삼성동 (2011-05-20 21:37:55, 211.108.46.***)
      2.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몰락이라면.. 스눕독 ㅠ_ㅠ
        위치는 견고한데 판매량은 왜 이리 안습인지...
      1. 아토피 (2011-05-20 19:34:37, 43.244.41.***)
      2. 잘 읽었습니다!!

        스눕독은 정상에서 군림하지 않게 된 대신 컬트 아이콘으로 자리잡았죠... 전 지금의 스눕이 훨씬 좋습니다 ㅎㅎㅎ 한국 영화 화산고 영어 더빙에 스눕독이 참여한 걸 보고 ㅎㄷㄷ

        지금 죽어라 듣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중에서도 몇년뒤에 이런 기획 기사가 나오면 이름을 올리는 사람이 있겠죠?? 다들 영리하게 커리어들 쌓아가길...
      1. 이재원 (2011-05-20 19:22:26, 59.27.106.***)
      2. 역시 1부를 보면서 2부에서 나올것이라 예감햇던 랩퍼들이 많이나왔군요.. 아 스눕독! 정말 도기스타일 듣고 와 대박비트!에 진짜 랩을 이렇게 유연하게 할수있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요. 그뒤에 얼범에서 비트도 1집에 비해 너무너무 아쉬웠고 비트에 랩이 이상하게 안 어울린다 해야하나. 그런것을 느꼈었는뎅 ㅎㅎ;; 다시 재기하고 지금의 스타일도 괜찮지만 역시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그런 넘사벽같은 면은 많이 깍인듯 싶네요. 이점에서 스눕의 팬으로써 많이 아쉽네요. 역시 스눕은 드레와 함께 할때가 가장 빛났었던것 같습니다. 다시한번 뭉쳐서 클래식한 웨스트코스트 스타일 앨범하나 터트려 주셨으면 싶네요 ㅜㅜ

        그리고 나스는 nastradamus 이앨범 때문에;; 아 정말 뉴욕왕자를 차지할수있는 나스였는데.. 아쉽네요. 예전에 리드머에서 나스얘기가 나왔을때 많은 분들이 나스가 퇴물이다 어쩌다 하고 네티즌들끼리 논란이 있었던걸로 기억나는데...제이지가 예전에 나스 와의 디스에서 상업적인 성공으로 한번 깐적이있었는데, 위글에서처럼 나스가 상업적인 성공에서 제이지에는 뒤쳐지더라도 꽤 좋은 앨범이 많았고 가사와 랩의 라임에서는 당연히 legend라 부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새앨범에서는 이러한 드립 잠재워 주셨으면 합니다. ㅎㅎ

        생각해보면 정말 에미넴과 제이지, 칸예웨스트 등의 뮤지션들 외에는 많은 랩퍼들이 오랜 커리어동안 몰락까지는 아니더라고 하락은 겪었던 듯 싶습니다.

        3부까지 이야기가 나온다면 조심스럽게 라킴 예상해봅니다. 가사와 라임에서 전설이었던 그가 오랜기다림동안 낸 최근앨범 The Seventh Seal은 정말 많이 별로였었던 듯 싶습니다. 드레와의 작업이 깨지고 나서 오랫동안 작업한 앨범이 아니라서 그런가 개인적으로 프로듀싱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1. 우동수 (2011-05-20 18:54:33, 211.45.56.*)
      2. 정말 재밌게 잘 봤습니다.
        MASTER P의 몰락도 갑자기 떠오르네요
      1. sleepy (2011-05-20 18:24:41, 125.177.39.**)
      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캐니버스는 언제봐도 참 안타까워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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