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나쁜 놈, 악한 놈과 다시 만나다. Bad Meets Evil
- rhythmer | 2011-06-20 | 14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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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넴(Eminem)에게 2010년은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한 해였을 것이다. 닥터 드레(Dr. Dre)가 프로덕션의 대부분을 주도했던 이전 앨범들과는 달리 현재 힙합 씬을 주름잡는 여러 게스트와 프로듀서들을 불러모은 앨범 [Recovery]는 지난해 북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고, 싱글의 연이은 히트는 에미넴에게 제2의 전성기를 열어주었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성공을 거머쥐었던 슈퍼스타들이 최근 부진하거나 몰락한 것에 비교해보면, 지난해 에미넴이 거둔 거대한 성공은 그의 커리어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게 한다. 약 5년간의 침묵 끝에 내놓은 [Relapse] 앨범 이후로 에미넴은 엄청난 창작욕을 불태우고 있으며, 이는 그를 지지하는 팬들에게 흐뭇한 미소를 짓게 했다.
한편, 로이스 다 파이브 나인(Royce Da 5’9) 역시 최근 그의 커리어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출중한 실력은 예전부터 인정받았다. 하지만, 겹친 불운과 몇 가지 실수 때문에 랩 스타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던 디트로이트 출신의 이 위대한 엠씨는 2002년 데뷔 이후, 계속 그저 그런 커리어를 이어오다가 2007년 잠깐의 투옥과 출소를 거쳐 전설적인 프로듀서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와 함께 [The Bar Exam] 이라는 믹스테잎을 발매하며 경력에 새로운 발판을 마련한다. 일찍이 소스 매거진으로부터 ‘완벽한 엠씨(Complete MC)’라는 극찬을 얻었지만, 그 대단한 랩을 받쳐줄 비트를 고르지 못했던 로이스에게 믹스테잎은 완벽한 무대였다. 그야말로 위대한 랩을 쏟아놓은 이 믹스테잎으로 추락의 위기에 있던 커리어를 살려낸 로이스는 이후, 크루킷 아이(Crooked I), 조 버든(Joe Budden), 조엘 오티즈(Joell Ortiz) 등 다른 괴물 엠씨들과 의기투합해 랩 슈퍼그룹 슬로터하우스(Slaughterhouse)를 결성했다. 언더그라운드를 주름잡는 대단한 엠씨들의 숨 막히는 랩은 라디오 프렌들리 싱글들에 지쳐 있던 하드코어 힙합 마니아들을 열광시키며, 2009년 힙합 씬에 대단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제야 그의 걸출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2010년 여름 즈음, 힙합 팬들은 그야말로 가슴이 뛰는 소식을 접한다. 에미넴이 자신의 레이블인 셰이디 레코드(Shady Record)의 부활을 선언하고 새로운 뮤지션들과 계약했다는 소식이었다. 하나는 최근 떠오르는 신예인 백인 엠씨 옐라울프(Yellawolf)였고 다른 하나는 이미 힙합 씬의 대단한 주목을 받고 있던 그룹 슬로터하우스였다. 이미 에미넴과 로이스 다 파이브나인이 디트로이트 출신으로 예전부터 친분을 이어왔던 점을 기억하는 팬들은 끊임없이 계약에 대한 루머와 계약과 관련된 잡음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질질 끌었던 계약이 마무리되고 결국 언더그라운드의 괴물들이 메이저 레이블로 진출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곧 새로운 셰이디 멤버들의 콜라보 곡들이 공개되자 팬들은 열광했다. 언제나 전설이 될 사건을 소식으로 접하는 것과 실제로 목격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 법이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려온 꿈의 프로젝트 : Bad Meets Evil
그런데 에미넴과 로이스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최근 잦아진 만남 속에서 위대한 두 명의 엠씨는 그들의 파란만장했던 역사 속에서 과거의 파편을 끄집어내기로 했다. 오래된 힙합 팬이라면 배드 미츠 이블(Bad Meets Evil)이라는 이 프로젝트의 이름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에미넴이 2000년대 초반 그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기 전부터 동향의 친구였던 그들은 서로 실력에 리스펙(Respect)을 표해왔다. 에미넴의 메이저 데뷔 앨범이었던 [The Slim Shady LP]에 수록된 “Bad Meets Evil”이 바로 그들의 슈퍼 프로젝트의 씨앗이었다. 그들은 제이-지(Jay-Z)의 걸작 [The Blueprint]에 수록된 명곡 “Renegade”의 원곡을 작업했으며(에미넴의 랩은 그대로 둔 채 로이스의 목소리만 제이-지의 랩으로 교체되어 수록되었다.), 2000년 개봉했던 영화 [무서운 영화 Scary Movie]의 사운드트랙에 아예 배드 미츠 이블이라는 그룹 이름으로 “Scary Movie”라는 곡을 수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프로젝트가 실현되지 못했다.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에미넴은 2000년 발매한 두 번째 앨범 [The Marshall Mathers LP]로 당시 팝 음악계 최고의 슈퍼스타로 급부상한 반면, 로이스는 닥터 드레의 앨범 [2001]의 수록곡의 가사를 대필해준 것을 밝히는 바람에 닥터 드레의 눈 밖에 나버렸던 것이다. 이후, 두 실력자의 커리어는 극명하게 갈라졌다. 인디 씬을 전전하며 몇 개의 명곡을 내놓았지만, 앨범의 성과는 미지근했던 로이스에 비해 에미넴은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그러던 중 로이스는 에미넴의 그룹인 D-12의 멤버들과 불화를 겪으며 그들을 디스했고, 이 배틀은 결국, 에미넴과 불화로까지 이어지며 배드 미츠 이블 프로젝트 성사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도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은 사람을 성숙하게 하고 마음을 뒤흔드는 사건은 끊어졌던 관계를 이어주기도 한다. 에미넴을 수년간 절망 속에 침묵하게 했던 프루프(Proof)의 죽음은 두 명의 화해를 불러온 계기가 되었다. D-12의 멤버이자 에미넴과 로이스의 친구였던 프루프의 사망 이후, 그들은 다시금 그 관계를 회복하고 슬로터하우스의 계약과 맞물려 함께 작업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잊혔던 그들의 프로젝트를 부활시켰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만들어낸 드라마틱한 결실이다.
그들이 하고 싶었던 힙합, 팬들이 원하던 힙합
그들의 앨범 [Hell : The Sequel]이 미국 현지에 6월 13일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 대해 자세한 평가를 내리기 전에 먼저 이 앨범의 가치를 평가해보자면 간단하게 '발매된 것만으로도 감사한 앨범'이라는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사실 이 프로젝트가 구상되었던 10여 년 전만 해도 이 앨범은 대단한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에미넴의 [The Marshal Mathers LP] 앨범이 메가톤급 히트를 기록하며 거의 실현 가능성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었다. 슈퍼 프로젝트의 대부분이 정식 계획으로 구체화하지 못했던 과거에 비추어 봤을 때 이 앨범이 발매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에미넴의 커리어가 궤도에 올랐기 때문이고, 이 둘의 10년 만의 콜라보가 대단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그들 스스로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 만족스러운 점은 그들이 정말 되는대로 녹음하고 그것을 그대로 앨범에 담아냈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이다. 몇 안 되는 슈퍼 프로젝트 앨범 가운데 많은 앨범이 그들의 네임벨류를 합산해 도출된 부담감 때문에 트랜드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다가 앨범의 완성도마저 저하시킨 사례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팬들이 그들에게 기대하던 바를 담아낸 이 앨범은 매우 인상적이다.
최근 힙합 씬에서는 거물 간의 결합과 콜라보레이션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힘 있는 뮤지션의 레이블로 이합집산하는 것은 예전부터 종종 있었으나 대단한 실력자들이 힘을 합쳐 앨범을 발매하고 적극적으로 프로모션을 하거나, 앞으로 진행하려는 케이스가 상당한 게 현실이다. 물론, 이 흐름에서 힙합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점치거나, 한계에 부딪힌 힙합 트렌드 파워의 대안 따위의 말을 억지로 끄집어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대중은 이미 힙합 음악을 저물어가는 트렌드로 느끼기 시작했으며, 힙합의 코어 팬들은 최근의 힙합이 너무 변질됐다고 떠나가는 형국이다. 그런 와중에 에미넴과 같은 슈퍼스타와 로이스 다 파이브나인같은 실력자가 이런 진지한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긴 점은 구태여 거대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다른 뮤지션과 팬들에게 어떤 작은 영감을 던져줄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자, 진짜 대단한 랩이 어떤 것인지 들어볼 준비는 되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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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rome (2011-06-22 10:25:10, 222.108.177.**)
- 앨범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상당합니다 ㅎㅎ 특히 랩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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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동영 (2011-06-21 00:38:16, 117.55.144.**)
- 최근들어서 앨범째로 해석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일이 적었는데 간만에 달아오르게 해주는 앨범이었습니다. 당분간은 다른 외힙이 필요 없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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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beratorz (2011-06-20 22:21:53, 112.159.27.**)
- 재미나게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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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icky (2011-06-20 18:10:21, 125.132.154.***)
- 이앨범 정말 좋았습니다. 에미넴의 파격적인 가사는 물론이고 로이스의 정점을 찍는랩과 완벽한 라이밍은 청자들을 만족시키기 충분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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