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10년의 세월을 아우른 결정적 앨범 2장 'The Blueprint' & 'Songs in a Minor'
- rhythmer | 2011-11-11 | 2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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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다. 21세기의 새로운 10년을 열었던 것은 희망이 아니라 전 세계를 충격에 휩싸이게 한 테러가 가져다 준 슬픔과 공포였다. 잠들지 않는 도시, 세계의 수도로 불리는 뉴욕의 평온했던 9월11일 아침, 뉴욕의 상징물 중 하나였던 세계무역센터가 무고한 시민들을 태운 여객기와 충돌해 붕괴되던 장면은 나에게, 그리고 실시간으로 그것을 지켜봤던 모든 이에게 잊을 수 없는 시대의 비극이었을 것이다. 10년이 지난 2011년, 그 사이에 9/11테러를 둘러 싼 미국의 추악한 이면 역시 드러났지만, 테러의 핵심인물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이 미 특수부대의 총에 맞아 사망하고, 오바마 미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를 발표했다. 사람의 주기인 10년은 참 오묘하게도 또 하나의 시대를 감싼다.어떤 시대를 회상하더라도, 그 시대와 함께 했던 음악은 언제나 따라 온다. 음악은 그렇게 멈추지 않고 사람을 현실에서 살짝 벗어나 살게 하는 어떤 것이란 생각도 든다. 2001년과 뉴욕, 그 슬픔의 시간과 장소에도 음악은 계속됐다. 그리고 그 속에서 10년의 세월을 가뿐히 견뎌 내고 앞으로도 두고두고 기억될 두 장의 앨범이 뉴욕에서 나고 자란 아티스트에 의해 발표됐었다. 2001년의 신인 알리샤 키스(Alicia Keys)의 데뷔 앨범 [Songs in a Minor]와 자신을 둘러 싼 작지만 깊은 의심들을 앨범 한 장으로 완전히 날려버리며 한 차원 다른 아티스트로 거듭 난 제이-지(Jay-Z)의 [The Blueprint]가 그것이다(공교롭게 ‘The Blueprint‘의 발매일은 9월11일이었다.). 이 앨범들을 발판으로 둘은 승승장구하였으며, 2009년엔 자신들의 도시 찬가 "Empire State of Mind"를 함께 만들어내기까지 했으니, 10년이 넘는 나이 차에도 둘은 10년간의 전성기를 함께 누린 아티스트로 기억될 것이다.
Alicia Keys - Songs in a Minor
이제 와서 괜히 하는 생각일수도 있지만, 알리샤 키스를 데뷔시키고자 했던 거대 음반사의 기획자들은 그녀를 과연 어떻게 성공시켜야 할지 골머리가 꽤나 아팠을 것이다. 7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하고, 클래식 음악으로 기본기를 탄탄히 한 후, 꾸준한 음악공부를 통해 14살에 이미 작곡한 곡을 직접 연주하고 노래했던 알리샤 키스는 내로라하는 신인들이 모여 있는 업계에서도 단연 보석과 같은 존재였다. 게다가 그녀는 어린데다, ‘아름다운’ 외모까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무작정 데뷔시키기엔 뛰어난 면들이 되려 모호함이 되어 골치가 아팠을 것이 분명하다. 비슷한 연배에 힙합 – 팝 댄스가 적절히 교배된 알앤비로 이미 크게 성공한 모니카(Monica)나 브랜디(Brandy)처럼 데뷔시키기엔 셀프 프로듀싱이 가능한 뮤지션으로서 성향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가자니 까딱했다간 그녀의 음악적 능력에 더해 나이와 외모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는커녕, 큰 성공과는 거리가 먼,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조숙한 음악인 하나를 선보여 소규모의 장사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을 것이다. 데뷔 시점이 점점 늦어지거나, 많은 이들이 그녀를 보고 좋게 말해 “지금껏 보지 못한 신선한, 놀라운.." 같은 감탄사를 뱉은 것도 그녀의 이런 전형적이지 않은 모습 때문이었다.결국, 이런 걱정은 그녀의 데뷔작 [Songs in a Minor]가 전세계적으로 천만 장 이상 팔리는 엄청난 성공으로 모두 날아갔다. 대중은 90년대를 지나오며 10대, 혹은 20대 초반의 여성 알앤비 팝스타에 열광했지만, 그럴수록 당연히 그 반대 지점의 진중한 음악인 역시 찾으며 균형을 찾았다. 알리샤 키스는 이 두 욕구의 절묘한 균형점이었다. 댄서들과 춤을 추며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이 아닌, 자신의 키보드를 들고 다니는 이 이상한 19살 소녀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Songs in a Minor]는 높은 기대를 뛰어 넘는 물건이었다. 그녀가 쌓아온 음악적 내공의 어느 것도 상업앨범을 만들어 내기 위해 자제되거나 버려지지 않고, 하나로 융합되어 있었다. 알리샤 키스의 대표 코드라 할 수 있는 피아노는 앨범을 가로지르면서 클래식과 재즈의 자양분을 뿌리며 앨범을 온전히 그녀의 것으로 만든다. "Piano & I"를 앨범의 첫 곡으로 배치한 것에서도 그녀의 작가적 욕심을 느낄 수 있다. - "Piano & I"는 사실 수록곡 중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졌으며, 알리샤 키스는 드디어 잡은 기회를 통해 자신의 전부를 담은 앨범을 세상에 내놓기 전 극도의 불안감과 비장미를 함께 고스란히 담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녀의 나이에 걸맞지 않은 성숙함이 담긴 살짝 거친 질감의 소울풀한 보컬은 앨범의 두 번째 강점이다. 사람을 잡아 끌고 진한 감정을 밀어 넣으며 감동을 주는 보이스는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것이 아닌, 그녀가 이미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음악을 빈틈없이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앨범의 대형 히트 싱글 "Fallin’"은 19살의 결과물이라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발군이다. 아마 나를 포함해 10년 전 그 곡을 들으며 멍하니 감탄의 자세를 취한 이가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피아노와 현악, 소울풀한 보컬, 그리고 힙합 바이브까지 하나로 녹아 든 시대의 싱글이라 할 만하다. 그녀는 이미 스스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곡을 데뷔앨범에 실었다.
앞서 말했던 힙합 바이브는 앨범의 세 번째 강점이다. 뉴욕이라는 현대적인 도시 공간은 앨범 전반에 깔려 있는 ‘노골적이지 않기에 더욱 세련된’ 힙합 바이브를 통해 그려진다. 뉴욕의 거리를 떠돌며 영감을 받아 즉흥적인 멜로디를 떠올리고, 집에 돌아와 피아노로 그것을 연주하며 곡 작업을 했다는 것이나, 'The City streets are my home, the city made this album / 이 도시의 거리들은 내 집이야, 도시가 이 앨범을 만들었어.'라고 스스로 회고할 정도인 알리샤 키스의 지역애가 적절한 힙합 바이브를 통해 앨범에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알리샤 키스는 스튜디오에서 언제나 민감하고, 불안할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완전히 자신에 충실하고자 노력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전세계에서 가장 상업적인 음악산업 시스템 안에서 데뷔작을 준비한 그녀는 상업적인 목적에 의해 자신이 훼손당하는 것을 막아냈으며, [Songs in a Minor]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걸작으로 남게 되었다.
Jay-Z – The Blueprint
[The Blueprint] 이전의 제이-지는 뭐랄까, 억울하다면 억울한 아티스트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적절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90년대 초•중반에 걸쳐 시대의 아이콘이 될 초대형 신인들의 등장은 그 어느 시대보다 인상적이었다. 영원한 힙합 장르 클래식으로 남을 [Illmatic](1994)의 나스(Nas), 당대 최강의 프로덕션과 혀를 내두르게 하는 랩으로 무장한 [Ready To Die](1994)의 노토리어스 비아이쥐(The Notorious B.I.G), 그리고 갱스터 판타지의 가장 쿨한 진화형이었던 [Doggystyle](1993)로 빌보드 역사상 처음으로 데뷔앨범을 정상에 올린 스눕 도기 독(Snoop Doggy Dogg)이 그들이다. 제이-지의 [Reasonable Doubt](1996)은 힙합 역사상 가장 뛰어난 데뷔앨범 중 하나로 앞서 말한 앨범들 옆에 자리시켜도 무방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제이-지의 랩 실력이나 감각 역시 당시나 지금이나 딱히 흠잡을 구석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제이-지의 등장은 이상하게 살짝 밋밋했다. 데뷔작 못지 않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In My Lifetime: Vol.1](1997)을 연이어 성공시켰지만, 분위기는 비슷했다. 그래서일까, 제이-지는 누구보다 영민한 전략가 기질을 갖게 되었고, 점점 그 성공의 범위는 커져만 갔다. 하지만 장르 팬은 언제나 전략가보다는 순수한 락스타를 원했고 상업적인 성공이 커질수록 영민해 보이는 제이-지를 향한 비아냥의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제이-지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성공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 싼 삐딱한 시선, 그리고 작지만 깊은 의심들을 거세시켜버릴 작품이었다. 이미 몇 장의 끝내주는 앨범을 가지고 있는 그의 목적은 단순히 완성도 있는 앨범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분위기 전환이었다. 전략가인 제이-지는 [The Blueprint] 직전 레이블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준비되었다가 솔로앨범 모양새로 발표된 [The Dynasty: Roc La Familia](2000)에서 이를 차근히 준비해나갔다. 저스트 블레이즈(Just Blaze)를 전면에 내세우고 칸예 웨스트(Kanye West)에게 큰 기회를 주며 몸을 풀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흡족해 한 제이-지는 자신의 커리어를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올려놓을 ‘청사진(The Blueprint)’에 이 신예들을 과감히 배치시켰다. 앨범 프로덕션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지만, 앨범의 분위기는 완전히 이 둘이 이끌어간다. 이는 저스트 블레이즈와 칸예 웨스트가 프로듀싱한 곡들과 아닌 곡들을 분리해보면 쉽게 설명된다. 다른 곡들도 이 클래식 앨범을 완성시키는 뛰어난 곡들이지만, [The Blueprint]를 규정하는 모든 곡은 이 둘의 손 끝에서 탄생했다.
전반부, 칸예가 두 곡을 달리고, 저스트 블레이즈에게 바통을 넘기는 “Takeover”, “Izzo(H.O.V.A)”, “Girls, Girls, Girls”, 그리고 중반부 다시 칸예가 "Heart of the City (Ain't No Love)", "Never Change" 두 곡으로 분위기를 띄우자 저스트 블레이즈가 "Song Cry"로 분위기를 진정시키는, 두 번에 걸친 ‘강-강-약’ 콤비플레이는 당시나 지금이나 언제 들어도 황홀하다. 고전 소울과 알앤비 고유의 품격을 버리지 않고, 힙합 특유의 비트감을 더해 재가공한 둘의 샘플링 작법은 제이-지를 향한 삐딱한 시선들을 단숨에 감탄으로 바꿀 정도로 그의 랩을 품격 있게 보이게 했다. 제이-지의 랩은 어떠한가? 단 며칠 만에 녹음을 끝냈다는 일화가 놀라울 만큼 그의 랩은 어느 때보다 담백하고 여유가 느껴진다. 그럼에도 전혀 누그러지지 않은 랩 스킬은 그가 했던 비슷한 내용의 랩을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으로 들리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제이지가 원하고 원했던 성공적인 분위기의 반전, 그 이상이었다. 데뷔 때와는 다르게 드디어 평단과 대중 양 쪽 모두에게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은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힙합스타의 뛰어난 앨범을 즐기는 수준이 아닌, 힙합게임 안에서 뉴욕의 왕을 맞이하는 일종의 경외심에 가까웠고, 그 판타지는 [The Blueprint] 앨범 안에서 빈틈없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제이-지는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전히 감탄을 자아내고, 새로운 여운을 선사하는 앨범이 10년전 작품이란 것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만감이 교차한다. 앨범이 견뎌낸 10년의 세월을 기념하는 것은 왠지 모르게 그 10년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아련하게 떠오르게 하니 말이다. 10주년 기념판 앨범을 쥐고 지난 시간을 떠올리고, 20주년 기념판을 상상하며 훗날을 기약하는 것은 어쩜 장르 팬들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글: 남성훈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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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wic (2011-11-15 20:27:15, 175.193.213.***)
- 01학번인 저는 딱 1학년 때였네요. ㅎㅎ
필자님 말씀 그대로, 정말 fallin 한 방에 충격받고, 후에 찾아본 앨범도 뭐 하나 버릴 곡 없는 바이브의 향연이었죠. 이 앨범만 300번은 들은 거 같아요.
당시 '먹통힙합'이라고 흔히 부르던 raw한 뉴욕 힙합에 매진하던 저로선 제이지보단 나스 편이었고, 블루프린트도 처음에는 너무 말랑했어요. 근데 듣다 보니 클래식이 되더군요. 제이지의 넘버원 팬을 자처하게 됐을 정도로. 이후 한 2~3년은 너도나도 이 블루프린트 문법을 따라 앨범들, 싱글들을 뽑아낼 정도로 파급효과가 거대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 벌써 10년이라니...이런......이러다 금방 20년된다 이제...
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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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조킴 (2011-11-13 11:09:54, 211.246.68.***)
- 3년만 지나면 일매릭20주년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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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yako (2011-11-12 12:17:49, 121.163.80.**)
- 9.11..저때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언급하신 두 앨범은 지금 들어도 지금의 왠만한 신보들보다 뛰어난거같아요
기획기사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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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직쿤 (2011-11-11 22:06:50, 1.177.57.**)
- songs in a minor는 오히려
2002년에 열심히 들었던 앨범이라서 저에게 더 의미있는 앨범입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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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명인간 (2011-11-11 21:25:04, 61.43.180.***)
- 저당시 엘리샤 키스의 모습은 지금의 아델을 떠올리게 하네요.
글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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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버섯전성시대 (2011-11-11 18:59:58, 122.46.96.***)
- 글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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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콩 (2011-11-11 08:34:14, 211.207.135.***)
- 전 아직 힙돌이라서 잘 모르지만,
저도 2008년 말 처음에 블루프린트를 CD로 플레이했을때
샘플링이 주는 느낌이 참 좋더군요
알아보니 블루프린트 이후로 그러한 샘플링 작법과 느낌이 힙합계에 유행이였다고
하고요
그치만 최근에 mp3로 플레이해보면 없지 않아 지루한 면이 있어요
무튼 블루프린트에서의 호바의 랩은 아주 능글능글하니 여유만점이였던거 같아요
특히 takeover에서의 랩은 그냥 live로 뱉었을만한 랩인거 같아요
기획기사 잘봤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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