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2011 ‘리드머’ 국외 힙합 앨범 베스트 20
- rhythmer | 2012-01-03 | 26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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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머 필진과 운영진이 선정한 ‘2011 국외 힙합 앨범 베스트 20’을 공개합니다. 1차 후보작 선정부터 최종 순위 선정까지 총 세 번의 투표와 회의를 거쳤습니다. 더불어 올해부터는 세부적인 부문을 나눠 시상하는 ‘리드머 어워드’는 좀 더 공신력 있는 어워드로 거듭나기 위해 국내 부문만 진행할 예정이며, 국외 부문은 이번처럼 베스트 앨범을 뽑고 순위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오니 참고바라겠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가이드가 되길 바라며….*참고사항
무료 공개 앨범, 그리고 아무리 신곡만으로 구성되어 있더라도 ‘믹스테잎’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나온 앨범은 제외하였습니다.
20. Talib Kweli [Gutter Rainbows]
피처링: Sean Price, Nigel Hall, Nigel Hall, Outasight, Blaq Toven, Jean Grae, Chace Infinite
프로덕션: 88-Keys, M-Phazes, Shuko, Marco Polo, S1, Khrysis, 6th Sense, Ski Beatz, E. Jones, Nick Speed, Blaq Toven, Oh No, Maurice Brown, Drum Dreamers, Patrick "Ty’neg" Mathore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살아있는 전설로 군림했던 탈립 콸리(Talib Kweli)의 솔로 앨범 중에서는 최고를 다툴만한 앨범이다. 과거 자신이 내놓았던 클래식 앨범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단단하고 현란한 라임과 변함없이 냉철하지만, 한층 더 깊은 통찰력으로 세상을 직시하는 그의 태도는 답습과 모방을 거듭하는 다수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에게 좋은 모범이 될 만하다. 한층 성숙한 비트 셀렉션으로 좋은 비트를 골라내고 그들과 호흡하면서 진정한 협력을 이루어냈다는 점도 훌륭하다. 이 앨범이야말로 콸리 커리어 ‘제3막의 시작’이라 할 만 하다. 비록, ‘탈립 콸리’라는 이름이 주는 압도적인 느낌은 세월에 색이 바랬을지 몰라도 그의 날 선 실력은 여전히 씬에 넘치는 가짜들을 두 동강 내버리고도 남을 정도다.
19. Random Axe [Random Axe]
피처링: Fat Ray, Roc Marciano, Melanie Rutherford, Danny Brown, Fatt Father, Rock, Trick-Trick
프로덕션: Black Milk
디트로이트의 잘 나가는 프로듀서 블랙 밀크(Black Milk)가 2년 전부터 야심차게 계획했던 프로젝트가 이제야 빛을 보게 되었다. 블랙 밀크와 길티 심슨(Guilty Simpson), 그리고 션 프라이스(Sean Price)가 힘을 합쳐 만든 랜덤 액스(Random Axe)가 그것인데, 블랙 밀크의 뛰어난 세션 운용뿐만 아니라, 두 랩퍼의 나긋나긋한 랩이 쏠쏠한 재미를 가져온다. 작금의 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스피디하고 날카로운 랩이 아니라, 차분한 랩과 미니멀한 비트로도 얼마든지 멋진 힙합 음악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야말로 본 작은 초절기교의 랩과 화려한 색채의 사운드에서 벗어나 차분하게 워드플레이를 만끽하고 싶을 때 제격인 음반으로 기억될 것이며, 블랙 밀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잘 나가는 디트로이트 프로듀서’라는 포지션에서 계속 순항하게 될 것이다.
18. DJ Quik [The Book of David]
피처링: Jon B., BlaKKazz K.K., Gift Reynolds, Bizzy Bone, Bun B, Suga Free, Ty$, Ice Cube, Kurupt, Dwele, Garry Shider
프로덕션: DJ Quik
디제이 퀵(DJ Quik)이 솔로 앨범으로써는 무려 여섯 해 만에 발표한 본 작에서 들려준 음악은 그가 90년대에 추구했던 올드 스쿨 기반의 곡들과는 달랐다. 그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사운드와 작법을 점진적으로 수용해왔는데, [The Book Of David]에서도 그 변화가 이어진다. 퀵은 808 드럼머신을 이용하는 등 과거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새로운 악기의 활용과 트렌드에 발 맞추어 가려는 시도도 멈추지 않았다. 특유의 훵키함을 조금 누른 대신 앞으로 그가 걸어갈 길을 보여주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물론, 이것이 모든 팬이 응원하는 길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퀵은 훌륭한 감각을 바탕으로 적당히 변화하고 적당히 지켜내는 중도의 미덕을 보여주었다.
17. Apathy [Honkey Kong]
피처링: Vinnie Paz, Slaine, Ill Bill, Celph Titled, Xzibit, Blacastan, Action Bronson, Mad Lion, General Steele, Esoteric, Crypt the Warchild, Motive, Planetary, Reef the Lost Cauze, Scoop DeVille
프로덕션: Apathy, DJ Premier, Vanderslice, Evidence, StuBangas, DJ Muggs, Statik Selektah, Smoke the World, DJ Wayne Ski, Teddy Roxpin, Da Beatminerz, MoSS
보스턴 커넥티컷의 자존심 애퍼씨(Apathy)가 이번에는 스케일의 확장이라는 실험을 감행했다. 기존 앨범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자신의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화려한 잔칫상을 마련했는데, 이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물론, 'Raw Hip Hop'이라는 기존의 컨셉트에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은 아니었다. 주인공 애퍼씨는 동서를 막론하고 초청한 프로듀서들 사이에서도 자신이 앨범의 중심에 있음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며, 엑지빗(Xzibit), 에소테릭(Esoteric) 등 어떤 랩퍼들과 공동 작업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90년대 힙합의 정수에 준하지는 않더라도 방향성만큼은 뚜렷하며, 거대한 스케일의 위엄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16. Tech N9ne [Welcome To Strangeland]
피처링: Krizz Kaliko, Ces Cru, Jay Rock, Kutt Calhoun, Brotha Lynch Hung, Prozak, ¡Mayday!, 816 Boyz, Stevie Stone, Young Bleed, Courtney Kuhnz, Jay Da 3rd
프로덕션: Seven, Jomeezius The Genius, David Sanders II, Plex Luthor, Beats 4 Days LLC
커리어 20주년을 맞이한 테크 나인(Tech N9ne)은 현재 인디 힙합 씬에서 가장 많은 돈과 명예를 쓸어모으고 있는 랩퍼다. 그의 열세 번째 앨범이자 네 번째 ‘콜라보스’ 시리즈인(‘콜라보’ 시리즈는 그의 레이블인 ‘Strageland’ 뮤지션들만으로 피처링 진을 구성한다) 본 작은 그가 어떻게 그토록 수많은 매체와 힙합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는지를 여실히 체감할 수 있게 하는 앨범이다. 복잡한 구조로 짠 라임과 기괴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정확한 발음의 속사포 랩핑과 차근차근 비트를 밟아가는 랩핑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의 랩 기술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며, 그 뒤를 받치는 어둡고 음산한 비트 역시 굉장히 매력적이다.
15. Bad Meets Evil [Hell 'The Sequel']
피처링: Mike Epps, Bruno Mars, Slaughterhouse
프로덕션: Eminem, Mr. Porter, Havoc, Magnedo7, Supa Dups, Jason "JG" Gilbert, Sid Roams, Bangladesh, Sonti "branNu" Brown, The Smeezingtons, Battle Roy, Tony "56" Jackson, DJ Khalil
이 앨범은 사실 다채로운 약점과 극도로 대단한 장점이 있는 앨범이다. 사운드의 완성도는 이 리스트의 다른 앨범들과 비교해봤을 때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기는 어렵고, 전체를 아우르는 컨셉트나 거창한 메시지 따위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이 앨범이 리스트에 오른 이유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감히 말하건대 기교의 측면에서만 2011년을 떠올려보면, '랩 앨범'으로서 이 앨범보다 더 우수한 작품은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잘했지만, 지금에 이르러 최고조에 이른 로이스(Royce Da 5’9)의 그야말로 굉장한 라임들은 이미 전설적인 커리어를 구축해놓은 괴물 에미넴(Eminem)의 밀도있는 랩과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본 작에서 두 전설적인 랩퍼가 쏟아내는 라임들은 랩 지망생들에게 ‘저렇게 되고 싶다.’라는 희망보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좌절을 안겨줄 만한 경지에 있다.
14. Phonte [Charity Starts At Home]
피처링: Jeanne Jolly, Sy Smith, Elzhi, Median, Carlitta Durand, Pharoahe Monch, Evidence, Big K.R.I.T., Eric Roberson
프로덕션: Swiff D, 9th Wonder, Khrysis, Zo!, Phonte, E. Jones, Stro Elliot, S1, 10
한때 많은 팬을 거느렸던 그룹 리틀 브라더(Little Brother) 인기의 약 7할은 프로듀서 나인스 원더(9th Wonder)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른 멤버 폰테(Phonte)와 랩퍼 빅 푸(Rapper Big Pooh)의 존재는 그 뒤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 솔로 앨범을 기점으로 폰테는 수많은 힙합팬의 가슴 속에 자신의 이름을 다시금 아로새길 것이다. 포근하고 소울풀한 비트가 한가득 펼쳐지는 가운데 폰테는 작정한 듯 촘촘하게 짠 멀티플 라이밍을 통해 남자들만의 이야기, 힙합과 연인에 대한 사랑, 자아성찰에 대한 이야기 사이를 여유롭게 오가며 랩퍼로서 역량을 제대로 드러냈다. 마약이나 섹스, 그리고 블링블링과 자기과시 없이도 얼마든지 힙합다운(?) 음악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작품이다.
13. Jay Z & Kanye West [Watch The Throne]
피처링: Frank Ocean, Beyoncé, Otis Redding, Mr Hudson
프로덕션: 88-Keys, Jeff Bhasker, Mike Dean, Hit-Boy, Don Jazzy, Sham "Sak Pase" Joseph, Anthony Kilhoffer, Ken Lewis, The Neptunes, Q-Tip, Lex Luger, RZA, Swizz Beatz, S1, Kanye West
상업적, 비평적으로 더는 올라설 수 없는 위치에 오른 제이-지(Jay-Z)와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합작앨범 [Watch the Throne]은 힙합 역사상 가장 거대한 이벤트 앨범이다. 하지만 과욕보다는 여유가 느껴지는, 생각보다 담백한 앨범으로 완성되었다. 서로를 향한 배려심에 감상포인트를 맞춘다면 더 흥미로운 앨범이기도 하다. 칸예 웨스트는 걸작으로 평가 받는 전작 [MBDTF]의 웅장함을 가로지르는 날카로운 비트가 만드는 기이한 분위기를 여전히 유지하면서, 작가적 욕심을 버리고 ‘Blueprint’ 시리즈에서 보여준 세련되고 소울풀한 미덕을 끌어와 제이-지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제이-지 역시 랩 파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동료에게 랩 실력을 맘껏 발휘하도록 많은 곡에서 뒤로 물러서 있는 느낌이 강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폼은 잡고 있지만, 심각하진 않은 본 작의 음악은 거대한 힙합산업과 거장으로 인정받는 힙합아티스트가 공존하는 미국힙합을 가장 힙합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잘 만든 엔터테인먼트이다.
12. Drake [Take Care]
피처링: The Weeknd, Rihanna, Birdman, Nicki Minaj, Rick Ross, Lil Wayne, André 3000
프로덕션: Boi-1da, Chase N. Cashe, Aubrey "Drake" Graham, Illangelo, Jamie xx, Just Blaze, Doc MCKinney, Noah "40" Shebib, Supa Dups, T-Minus, The Weeknd
이래저래 ‘힙합음악의 기준’적인 면에서 논란이 되긴 했지만, 어쨌든 드레이크(Drake)의 음악 세계에는 기존의 잣대로 쉽게 폄하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위트 넘치는 작사실력은 물론, 랩과 보컬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재능의 조합으로 데뷔하자마자 엄청난 성공을 거머쥔 그는 이 두 번째 앨범에서 우울한 정서가 가득 담긴 마이너 풍의 프로덕션을 더욱 견고하게 구축하며, 자신의 주무기로 내세웠다. 힙합이 조금 우위를 점하고는 있지만, 장르의 경계마저 완전히 허물어졌고, 이렇게 그가 선보인 멜랑꼴리 힙합 사운드는 최근 메인스트림 힙합음악 계의 트렌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새로운 스타일의 힙합이 주도하는 가운데, 전통적인 작법의 힙합 트랙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균형을 잡는 지점도 매우 인상적이다. 그에게 돌을 던지기에는 그 재능과 음악이 너무 매력적이다.
11. Thurz [L.A. Riots]
피처링: Strong Arm Steady, BJ The Chicago Kid, Kobe, Black Thought, Jazzy, Cheryl Johnson
프로덕션: Aaron Harris, Ro Blvd, DJ Khalil, THX
이 독특한 앨범은 가볍지 않은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가 돋보이는 가운데 다채로운 하이브리드 힙합 사운드를 품고 있다. 특히, 가사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N.W.A와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중간 즈음에 있는 듯한 태도는 대단히 매력적이다. 그는 선배들의 강력함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N.W.A보다는 지적인 고찰에 가깝게, 퍼블릭 에너미의 선동적인 어조에서는 약간의 거리를 둔 채 로스앤젤레스 폭동이라는 사건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려는 과감한 시도를 선보였다. 재능있는 듀오 U-N-I의 반쪽이었던 그는 본 작을 통해 베이 에어리어(Bay Area) 힙합의 전성기 이후, 약간은 침체된 느낌이었던 서부의 대안적 힙합 세력을 이끌만한 재목으로 부상했다.
10. Torae [For The Record]
피처링: Wes, Pav Bundy, MeLa Machinko
프로덕션: Khrysis, Marco Polo, !llmind, 9th Wonder, Pete Rock, Large Professor, Diamond D, E. Jones, Eric G, DJ Premier, Nottz, Fatin
토래(Torae)가 누군지 몰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 피트 락(Pete Rock) 등 이 앨범의 전설적인 프로덕션 진을 알고 있다면 본 작을 지나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90년대 ‘골든 에라(Golden Era)’ 힙합의 멋을 제대로 아는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앨범 타이틀은 토래의 개인적인 음악적 이상향을 대변한다. 골든에라 힙합의 팬이자 계승자임을 자처하는 그가 생각하는 좋은 힙합 레코드를 만들기 위한 방법과 노력은 앨범의 안과 밖에 녹아 있다. ‘랩퍼가 되고자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앨범의 큰 주제는 자전적인 성격이 강하며, 골든 에라 힙합의 구현을 위해 그가 불러모은 프로듀서들은 그가 생각하는 레코드를 위해 꼭 필요한 이들이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레코드를 직접 만들었으며,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장르 팬들을 만족시켰다.
9. Lil B [I'm Gay (I’m Happy)]
피처링: 없음
프로덕션: BigBoyTraks, Clams Casino, Talen Ted, Caleb Mak, Rick Flame, Keyboard Kid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킬만한 타이틀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음악 스타일로 반전을 안긴 릴 비(Lil B)의 이 앨범은 ‘무료공개’와 탄탄한 완성도로 그의 실력을 의심하는 이들은 물론, 노이즈 마케팅에 대한 일부의 곱지 않은 시선마저 잠재웠다. 붐 뱁 리듬과 샘플링에 근거한 전통적인 작법으로 주조한 소울풀한 비트들, 개인사를 비롯하여 종교, 소셜네트워킹 등의 민감한 문제를 진지하면서도 여유롭게 다룬 랩핑이 앨범을 가득 메우고 있다. 특히, 옛 소울 음악은 물론, 얼터너티브 록, 슈게이징, 일본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에 이르는 방대한 샘플링 영역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야말로 릴 비는 올해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반전 영화를 선사한 셈이다.
8. Saigon [The Greatest Story Never Told]
피처링: Fatman Scoop, Q-Tip, Jay-Z, Swizz Beatz, Faith Evans, Lee Fields & The Expressions, Marsha Ambrosius, Raheem DeVaughn, Devin the Dude, Layzie Bone, Bun B
프로덕션: Just Blaze, Adam Blackstone, Buckwild, D. Allen, DJ Corbett, Lamar Edwards, James Poyser, Red Spyda, SC, Spanky, Kanye West
2001년에 활동을 시작했으니, 10년 만에 발표된, 데뷔앨범이라는 말이 어색한 사이공(Saigon)의 첫 스튜디오 앨범 [The Greatest Story Never Told]는 타이틀과 커버에 지금까지 그가 겪었을 우여곡절과 자신감을 노골적으로 함께 담고 있다. 지나간 세월 때문에 ‘과연, 그가 가진 능력을 앨범에 잘 녹여낼 수 있을까?’란 우려는 플레이하는 순간 잊힐 정도로 본작은 처음부터 끝까지 랩과 프로덕션이 견고하게 짜여 있다. 메인 프로듀서인 저스트 블레이즈(Just Blaze)가 만들어내는 앨범 전체를 감싸는 웅장한 기운은, 사이공의 드라마틱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절실한 기운이 잘 녹아있는 랩과 찰떡궁합을 이룬다. 많은 결과물이 있었음에도 비로소 이제야 그가 준비한 진짜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새삼 마감된 정규앨범이 아티스트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끔 하는 작품이다.
7. Tyler, The Creator [Goblin]
피처링: Frank Ocean, Left Brain, Hodgy Beats, Jasper Dolphin, Taco, Mike G, Domo Genesis
프로덕션: Tyler, The Creator, Left Brain
타일러가 이끄는 문화집단 ‘OFWGKTA (Odd Future Wolf Gang Kill Them All)’는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어 너무 잘 표현할 수 있는, 나아가 쉽고 빠르게 전파시킬 수 있는 온라인 네트워킹 세대가 만들어 낸 산물이다. 주류를 향한 혐오와 조롱의 정서를 거부감이 들 정도로 기이하게 표현하는 객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주류문화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를 열광시켰다. 리더 타일러(Tyler)는 갑작스러운 유명세를 겪으며 가진 혼란과 불안, 자기혐오를 [Goblin]에서 쏟아낸다. 유명세를 부른 기이함과 공포를 유지하면서 자신은 아직 여린 10대임을 강조하며 애처로움을 끌어내는 순간 역시 대단하다. 타일러의 일그러진 망상과 그 때문에 만들어진 괴물이 드러나는 [Goblin]을 즐긴 후,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묘한 죄책감에 가깝다.
6. Snoop Dogg [Doggumentary]
피처링: Bootsy Collins, Mr. Porter, Uncle Chucc, Young Jeezy, E-40, Traci Nelson, Devin the Dude, Kobe, R. Kelly, T-Pain, Goldie Loc, Marty James, Pilot, Wiz Khalifa, Too $hort, Kokane, Daz Dillinger, Gorillaz, Willie Nelson, Kanye West, John Legend, LaToya Williams
프로덕션: Jake One, Battlecat, DJ Khalil, Lex Luger, Kanye West, Fredwreck, the Cataracs, Scoop DeVille, Gorillaz, Mr. Porter, Warryn Campbell, David Banner, Meech Wells, Scott Storch, Willie Nelson
스눕 독(Snoop Dogg)의 최고작은 논쟁의 여지 없이 그의 데뷔작 [Doggystyle](1993)이지만, 가장 '스눕 독' 표 앨범 같지 않은 앨범이기도 했다. CD를 꽉 채우는 러닝타임에 현재 자신의 위치를 부정하지 않고 활용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요소를 끌어와 갱스터 래퍼와 엔터테이너의 모습을 모두 담아냈던 그의 앨범들은 같은 이유로 호평과 비아냥을 동시에 듣기도 했다. 그리고 전작의 비평적, 상업적 실패 후, 팬들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Doggumentary]에서 그는 드디어 '스눕 독' 표 앨범의 최고치를 끌어냈다. 오늘날 그가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매력을 담은 트랙들을 견고하게 배치했으며, 무려 21트랙을 꽉 채웠음에도 앨범 단위의 감상을 이끌어내는 완급조절의 과감함은 대단했다. 단연 이 게임의 베테랑다운 앨범이자, 올해 가장 평가절하된 앨범이기도 하다.
5. Kendrick Lamar [Section 80]
피처링: Colin Munroe, GLC, Schoolboy Q, Ashtro Bot, BJ the Chicago Kid, Ab-Soul
프로덕션: THC, Sounwave, Tommy Black, Tae Beast, Willie B, Wyldfyer, Dave Free, Iman Omari, Terrace Martin, J. Cole
올해 가장 의외의 수확이자 숨겨진 걸작이다. 완벽에 가까운 프로덕션은 플레이하는 내내 청자의 머릿속에서 스킵 버튼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마력을 가졌다. 레이드백(Laid-Back)한 비트 위를 변칙적으로 흘러다니는 켄드릭의 라임들은 사운드의 묘한 긴장감과 몽환적인 느낌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대단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투팍(2pac)의 가사를 모스 뎁(Mos Def)처럼 표현하고 큐-팁(Q-Tip)처럼 뱉어낸다. 올 한해 웨스트코스트에서 특별한 신예들의 대단한 앨범이 많이 발매되었고 저마다 다양한 스타일을 뽐냈는데,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이 앨범이 그 가운데 단연 최고였다.
4. Pac Div [The Div]
피처링: No I.D., Like, Blended Babies, Cook Classics, Dahi, Micky Park, Swiff D
프로덕션: Asher Roth, TiRon, Casey Veggies, Skeme, Bleu Collar
팩 디브(Pac Div)의 데뷔 앨범은 2011년 가장 신선한 힙합 앨범으로 선정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미 무대에서 실력이 검증된 세 명의 재주꾼이 펼치는 그들만의 세계는 매력이 넘친다. 물 흐르듯 유연한 랩으로 여자, 음악 산업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팩 디브와 노 아이디(No I.D.)를 위시한 프로듀서들의 조합은 매 곡마다 빛을 발한다. 올드 스쿨 힙합부터 최신 트렌드가 황금비율로 혼재된 유니크한 스타일의 비트는 정적이 흐르다가도 때로는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전환하는 변화무쌍함을 자랑한다. 슬럼 빌리지(Slum Village) 이후, 모처럼만에 넘치는 끼를 가진 힙합 3인조가 등장했다.
3. Common [The Dreamer/The Believer]
피처링: Maya Angelou, Nas, John Legend, Lonnie "Pops" Lynn
프로덕션: No I.D.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가 좋아했던 힙합을 하고 있지 않더라.’라는 반성(?)에서 출발한 커먼(Common)의 본 작은 그가 그동안 발표해온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 앨범 커리어를 이어감과 동시에 그야말로 멋진 힙합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노 아이디(No I.D.)와 의기투합하여 완성한 [The Dreamer/The Believer]는 지난 2005년 칸예 웨스트(Kanye West)와 콤비 플레이로 소울풀한 힙합 사운드를 선보였던 [Be]와 형식적인 측면에서 비슷하지만, 그보다 좀 더 로우(Raw)하고 마초적이다. 둔탁하고 생동감 넘치게 울려 퍼지는 드럼,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와 E.L.O를 아우르는 샘플링으로 완성된 소울풀하고 중독적인 루핑, 커먼 센스 시절을 연상하게 할만큼 그 어느 때보다 열정을 쏟아 부어 내뱉는 랩핑. 이런 앨범을 들고 나와서 작금의 힙합 씬에 불만을 터트리는데 누가 감히 뭐라 할 수 있겠는가?!
2. Evidence [Cats & Dogs]
피처링: Aloe Blacc, Raekwon, Ras Kass, Roc Marciano, Prodigy, Slug, Aesop Rock, Rakaa, Lil Fame, Termanology, Krondon
프로덕션: The Alchemist, Twiz the Beat Pro, Rahki, Daniel "Danny Keyz" Tannenbaum, Evidence, Khrysis, DJ Premier, Charli Brown, Sid Roams
에비던스(Evidence)의 이 앨범은 그간 언더그라운드에서 쏟아져 나온 비슷비슷한 작품들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 앨범이야말로 90년대 힙합에 베이스를 두고도 그 시대와 현재 주류와는 다른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그런 작품이다. 어느 시대에 나왔더라도 훌륭하다는 소리를 들을만하다. 좋은 랩과 좋은 비트는 좋은 앨범이 탄생하는데 당연하게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이 앨범은 정확하게 그런 기대에 부합한다. 에비던스 특유의 출중한 안정성은 본 작의 수록곡 곳곳에서 기어코 폭발한 역동성과 완벽하게 결합한다. 프로덕션과 랩 퍼포먼스, 게스트와의 화학작용과 전체적인 구성 등등… 어느 한 부분도 부족함이 없다. 이 자존심 강한 랩퍼의 붐 뱁 힙합은 지나간 과거에 빚을 지고 있지도 않고, 다만 찬란한 역사에 뿌리내린 채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냈다.
1. The Roots [Undun]
피처링: Big K.R.I.T., Dice Raw, Phonte, Greg Porn, Truck North, Bilal, Just Blaze
프로덕션: Ahmir "Questlove" Thompson, Ray Angry, Rick Friedrich, D.D. Jackson, Khari Mateen, Richard Nichols, James Poyser, Brent "Ritz" Reynolds, Sean C & LV, Sufjan Stevens
루츠(The Roots)의 이 앨범은 그들의 길고 찬란했던 역사에서 어떤 이정표가 될 것이다. 디스코그라피에서 가장 톤 다운된 이 앨범으로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커리어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대단히 독특한 컨셉트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메시지를 담아낸 블랙 쏘웃(Black Thought)은 탁월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으며, 이전에 시도했던 다양한 실험들이 적재적소에서 안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사운드는 그들의 역사를 집대성하는 동시에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는 또 다른 실험의 장이 되었다. 그 덕분에 앞으로 루츠의 차후 행보에 대한 그 어떤 예상도 불명확하게 만들었다. 이것이야말로 [Undun]을 통해 루츠가 보여준 것 중에서 가장 탁월한 성취이며, 이 앨범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만드는 이유다. 결성한 지 20년이 지난 그룹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본 경험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여담으로 이 앨범을 1위로 뽑는 건 많은 이가 예상했을 결과라 극적 반전을 고민해보기도 했지만, 도저히 그 아우라를 거스를 수가 없었다.
기사작성 / RHYTHM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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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sslit (2012-02-20 23:56:47, 118.33.55.**)
- 라디오액티브가 없다는게 너무 슬프다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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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Player (2012-01-30 19:16:37, 61.74.25.***)
- 에미넴 되게 실망한 앨범인데 올라와있네요. 다시 들어봐야하남..
1위 커먼인가 루츠 인가 봤더니 루츠군요 ...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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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리 (2012-01-12 10:23:24, 121.129.10.***)
- 개인적으로 watch the throne 는 너무 일찍 보였고
undun은 역시 1위 ㅋㅋㅋㅋ lasers 가 없어서 아쉽...
그냥 개인적임~~~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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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fayette (2012-01-05 12:46:00, 110.13.50.***)
- 제가 즐겨들었던
Doggy, Kendrick, Common의 앨범이 상위권에 있으니 기분이 좋네요.
더 위에 있는 Evidence와 The Roots 앨범도 게으르게 미루지 말고 들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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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h! nuts (2012-01-04 15:49:24, 164.124.106.***)
- 좋은 가이드네요. 찾아보지 못했던 음악도 찾아듣게 만드네요.
이 글이 좋은 글이고 절대적진리를 독자로하여금 설득하려는것도 아닌데
그렇게 받아들이는 분도 계신듯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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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uble Makerz (2012-01-04 15:43:02, 175.196.243.**)
- 리드머의 리뷰를 읽으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올라올 것 같은 앨범 몇개는 올라왔군요. 개인적으로 cats & dogs 는 좋아하는 앨범이지만 이렇게 높히 평가받을 줄은 몰랐네요. 팩 디브가 4위에 온 것도 반전이지만
개인적으로 릴 비의 앨범은 찬성할 수가 없네요.
(위즈 칼리파가 올라오길 빌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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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kka (2012-01-04 12:09:15, 211.246.71.***)
- 인디씬에서 좋은 앨범 많이 나왔다는거 동감합니다. 솔직히 루페는 전앨범들보다 음악적으로 떨어졌고 제이콜도 믹스테잎과 스크릿앨범보다 특별히 뛰어나지 못했죠. 옐라울프 앨범은 전체적으로 매우 허술했고. 릴웨인은
들어갈만 하다고 생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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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terre (2012-01-04 12:08:56, 211.44.30.***)
- 'lasers'는 꿋꿋하게 좋게 들었는데 없어서 아쉽고..
'the greatest story never told'는 굉장히 좋게 들었지만 언급이 별로 없던 것 같았는데
의외로 높은 순위로 책정하셨네요.
'cats & dogs'가 이렇게까지 높게 평가 받다니 조용히 다시 들어봐야겠네요.
primo 때문에 다른 부분을 너무 간과하며 들었나..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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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동 (2012-01-04 10:08:36, 115.90.130.**)
- 지난해보다 확실히 메인스트림 앨범들이 완성도에 부족함이 있는 작품들이 좀 많았지 않나 싶습니다. 카터4와 루페의 앨범은 저도 좋아하지만 올해 인디씬에서 워낙 좋은 앨범들이 많아서 투표에서 밀린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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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2m (2012-01-04 04:09:56, 125.129.140.***)
- Lil Wayne 'Tha Carter IV'
Lupe Fiasco 'Lasers'
J. Cole 'Cole World: Sideline Story'
Yelawolf 'radioactive'
.....
'너무' 메인스트림 앨범은 일부로 제외하신듯한 느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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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ernel (2012-01-04 03:54:36, 119.149.48.***)
- welcome to strangeland가 all 6s and 7s보다 낫나요ㅜㅜ 후자는 텤나인치고는 나름 스토리텔링이나 짜임새가 잇는 앨범이라 굉장히 좋아햇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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