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필름 블랙스⑬ Belly '힙합 뮤직비디오 거물이 만든 졸작'
- rhythmer | 2012-01-31 | 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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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얘기를 하기에 앞서 [벨리, Belly](1998)를 연출한 '하이프 윌리암스'(Hype Williams/본명Harold "Hype" Williams, 1970生)에 대해 잠시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유명한 뮤직비디오 감독이다. 그래서 어쩌면 자연스럽게 장편 영화 연출을 염두에 뒀는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뮤직비디오(특히, 블록버스터급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고, 그의 역량이나 실력은 미국에서 최고라 말할 수 있다. 1998년에 제작하고 우리나라에서도 1999년에 개봉한 영화 [벨리]는 세기말의 막연한 두려움과 앞으로 다가올 새시대(New Millennium)의 희망을 동시에 제시하는 영화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그가 꾸준히 만들어 냈던 한편의 뮤직비디오처럼 아름다운 영화는 아니다. 물론, 뮤직비디오처럼 멋지게 연출된 장면이 나오기는 한다. 바로 오프닝 시퀀스에서 토미(DMX)와 신시어(Nas) 패거리가 클럽에 들어와 돈을 강탈해서 도망가는 모습까지 묘사한 이 짧은 장면이 [벨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장 '죽여주는' 장면이 되었다. 이 장면 이후 하이프 윌리암스의 연출은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다. 단지 '뮤직비디오스러운' 영상과 편집이나 조명만으로는 잘 마감된 장편 영화를 완성할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고나 할까. 물론, 개별적으로 소품이나 의상 등 미술 부분에선 그의 장점이 확연하게 드러나기는 하지만 말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주인공 토미의 내레이션이 들린다. 그는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뉴욕 거리에서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삶에 대해서 말한다. 범죄, 마약, 섹스, 돈... 영화는 그 흑인 남성(들)의 거리의 불안함을 보여준다. 토미가 내뱉는 이 대사에 영화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장면은 모두 과거 시점이다. 그리고 그들이 범죄를 모의하고 행동하는 시기는 1999년, 바로 세기말이다. 쉽게 말해 영화는 그들의 과거를 우리가 목격하게 하는 방식을 취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둘의 내레이션이 번갈아 영화에 등장한다. [벨리]의 두 주인공 토미와 신시어는 둘도 없는 친구고, 함께 범죄를 저지르며 생계를 유지해 나간다. 토미는 뉴스에서 새로운 헤로인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약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궁리를 한다. 원래 그들은 남의 돈을 훔치는 일로 돈을 모았지만, 새로운 사업으로 더 큰 돈을 만지고 싶어 한다. 그래서 패거리는 마약 유통 사업을 하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그런 다음 토미는 자메이카로 날아가 '마약왕' 레녹스를 만난다. 그는 마약으로 거물이 된 인물이다. 그에게 자신을 파트너로 써달라고 제안한다. 그렇게 해서 토미는 신시어와 함께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한다. 토미와 신시어 패거리는 오마하(미국의 도시)에서 본격적인 마약 사업을 시작한다. 그들은 승승장구하면서 앞으로 나간다. 하지만 범죄의 일이 그렇듯 빛(돈)이 있다면, 어둠(질투)이 있는 법이다. 그들을 시기한 다른 패거리의 밀고로 마약 사업은 차질을 빗게 되고, 토미는 도망자 신세가 된다. 그나마 패거리들 중에 경찰의 감시망에서 자유로운 인물이 바로 신시어다. 토미는 그를 찾아와 자신의 소중한 물건들을 맡기고 도망자 신세가 되어서도 돈이 될 만한 일을 하기 위해 움직이지만, 쉽지가 않다. 영화는 이렇게 토미와 신시어의 앞날을 향해 달려간다.
[벨리]를 이끌어 가는 건 이야기나 주제가 아니다. 바로 '인물'이 중심에 있다. 영화의 전체를 이끌어 가는 토미와 신시어는 친구지만,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다. 모든 일에 적극적인 토미는 왕이 되려는 욕망에 가득 찬 남자다. 허세가 있고 배짱이 두둑하다. 한편, 신시어는 범죄의 세계에 발을 담고 있지만, 언제나 가족이 우선이다. 신시어가 일하는 방식이 토미에 비하여 소극적인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매사에 깊이 생각하는 그의 인생관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경솔하지 않고 앞뒤를 볼 줄 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그가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벨리]는 이 매력적인 두 캐릭터를 영화의 중심에 두고도 전체적인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다. 핵심이 되는 두 인물과 이야기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결국, 영화는 어떤 것도 낚아 채지 못했다. 감정 이입이 되지 않는 것도 바로 이야기 구조의 허술함 때문이다. 짧은 러닝타임(1시간20분)에 많은 인물을 등장시켜서 이야기를 중구난방으로 만들어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이프 윌리암스가 두 사람의 모습에 치중하는 드라마 구조를 보여주려 마음먹고 둘의 갈등을 위해 사건을 만들고 밀도있게 연출했다면 [벨리]는 어설프지 않고 제대로 된 하이스트 무비(heist, 강탈영화)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영화는 우리에게 어떤 것도 제시하지 못한다. 사건의 매듭은 너무나 어이없이 풀리고, 영화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주인공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장편 영화는 4~6분에(혹은 그 이상) 담을 수 있는 '음악'을 극대화하는 이미지의 편집이 아니다. 물론, 영화에서도 (적어도 나는) 이미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미지들을 한편의 이야기로 보여주지 못했다면, 그것은 결코 좋은 영화라 할 수 없다. 하이프 윌리암스의 연출 능력은 대단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 그가 가진 힘이라는 말이다. [벨리]는 범죄 영화로 시작해 뚜렷한 동기도 없는 단순한 드라마 엔딩으로 성급하게 마무리를 짓는다.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흥미를 줄 수 있는 작품일지 몰라도, ‘힙합스타’를 주연으로 내세워 보여주려 했던 그의 야심에 비해 영화는 어떤 매력도 발산하지 못했다.
P.S
[벨리]에 볼거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이프 윌리아암스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살려서 영화의 여러 이미지(장면)에 다양한 힙합과 알앤비 음악들을 사용하며 섹시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힙합 스타인 나스(Nas), 디엠엑스(DMX), 메쏘드 맨(Method Man), AZ, 티-보즈 (T-Boz of TLC)의 연기도 볼 수 있기 때문에 힙합팬들에겐 매우 흥미로운 영화라 생각한다. 아, 그리고 그나마 다행인 점은 힙합 음악인들의 연기가 안정적이라는 것.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O.S.T는 영화보다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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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wer (2012-01-31 21:51:08, 203.90.53.**)
- 힙합영화는 8마일밖에 몰랐는데 한번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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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직쿤 (2012-01-31 17:27:23, 1.177.50.**)
- OST 꼭 구해서 들어보겠습니다.
영화는 잘 모르겠... ㅋㅋㅋ
추천하기 힘든 졸작을 소개하니까 오히려 되게 참신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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