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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토픽] 팔로알토의 Travelin' Man EP.3 - 발자국
    rhythmer | 2012-02-01 | 14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2003년 [People & Places Vol.1] 컴필레이션 앨범에 정식으로 나의 이름을 건 트랙이 수록되고 난 후, 인디 레이블 신의의지에 소속되어 2004년에 대망의 데뷔 EP [발자국]을 발표하게 된다. 이 앨범은 당시 그동안 작업해왔던 트랙들 중에 마음에 드는 것들을 추려서 수록한 작품으로 정식 데뷔 전까지 나의 ‘음악적 발자국’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로 만든 것이었다. 고3 막바지, 스무 살 대학 신입생시절, 이후 뉴욕에서의 1년,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고시원생활을 하며 만들었던 음악들이 바로 [발자국]에 담겨 있다. 그래서 앨범으로서 일관성이 뚜렷한 음반은 아니었다. 단지 그시절 나의 감성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앨범을 다시 듣고 있는 중인데, 세월의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진다. 지금 나의 팬들은 자주 예전의 랩과 지금의 랩 스타일의 차이점에 대해서 질문하곤 하는데, 보완하고 발전하려는 욕심 때문이다. 그냥 자연스러운 거다. 나의 대답은 항상 똑같다.

    [발자국]은 신의의지 대표 랩혼(Raphorn)형의 집에서 모두 녹음되었다. 신림동에서 성북동까지 그 먼 길을 항상 버스를 타고 녹음하러 갔던 기억이 난다. 앨범 커버 디자인을 해준 JNJ 크루(JNJ CREW), “It Ain't No Eazy Pt.2” 프로모 비디오를 제작해준 감독 가람이형 외에 참여 아티스트들이 지금은 베테랑이 되어있는걸 보면, 참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느낀다. 당시 사진들과 함께 수록곡 한 곡 한 곡씩을 나열하며 작업 에피소드를 풀어나가 보겠다.



    EP 녹음 당시: 왼쪽부터 콰이엇, 성문, 엘큐, 팔로알토

    01. Young Poets (feat. 성문, The Quiett)

    뉴욕에서 초창기 생활 때 난 친구도 없고, 어디 놀러 갈 곳도 없었기에 집에서 메신저로 한국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집에서 비트를 만들고 랩 가사를 쓰는 게 전부였다. 당시에 콰이엇(The Quiett)이 한창 비트를 많이 만들 때였고 그는 내게 자신이 만든 비트나 녹음된 랩을 메신저를 통해 들려주곤 했다. 이 곡의 제목은 그가 보내준 비트 중 'young poor black poet.mp3'라는 파일명에서 영감을 받아 짓게 되었다. 그때 콰이엇은 성문이라는 친구와 더스트 투 더스트(Dust II Dust)라는 팀으로서 인터넷에 곡을 올리거나, 공연을 했는데, 난 그 팀의 음악을 좋아했다. 그러던 차에 그가 보내준 수많은 비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비트를 골라 성문, 콰이엇과 함께 곡을 완성하자고 했다. 그리하여 완성된 곡.

    02. It Ain't No Eazy Pt.2

    2002년 당시 크리티컬 피(Critickal P)라는 비트메이커는 매우 실력있고 많은 랩퍼들이 함께 작업하고 싶은 존재였다. 나를 포함한 당시 아직 알려지지 않은 랩퍼들은 항상 그의 비트를 원했고, 심지어 활동하고 있던 유명한 랩퍼들도 그와 교류하길 원했다. 운 좋게도 크리티컬 피는 나의 랩을 좋아했고 내게 많은 비트를 제공해 주었다. [People & Places Vol.1]에 크리티컬 피의 비트 “It Ain't No Eazy Pt.1”을 수록하였고 Pt.1을 만들 때부터 나는 ‘It Ain't No Eazy’라는 제목의 시리즈로 계속 트랙을 발표해야겠다고 계획했다. 그리하여 뉴욕에서 받은 크리티컬 피의 비트에 Pt.2 작업에 들어갔다. 1절은 뉴욕에서 썼고, 2절은 서울에 돌아와 양재동 고시원 생활 때 썼으며, 3절과 나머지 부분들은 신림동 원룸에서 지낼 적 완성시켰다. 특히, 이 곡은 신의의지의 대표 랩혼형을 통해 알게 된 가람이라는 형과 1절부분만 프로모 비디오 형식으로 만들어 배포했었는데, 이를 시작으로 드렁큰 타이거의 “편의점”과 디제이 소울스케잎(DJ Soulscape feat.넋업샨, 각나그네)의 “꿈의여정”의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하게 되었었다.

    03. Unspoken Language

    나는 원래 어릴 때부터 작곡가, 프로듀서의 꿈을 꾸고 있었고 랩보다는 곡을 만드는 것에 흥미가 더 많았다. 근데, 내가 만든 곡에 랩이나 노래를 불러줄 사람이 없었기에 내가 직접 랩을 하다가 결국 랩퍼가 된 것이다. 그만큼 이 당시 랩뿐만 아니라 비트메이킹도 꾸준히 했었다. 하지만 비트는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이 많이 없다. 이 곡은 당시 발표된 몇 안 되는 나의 비트 중 하나이다. EP의 유일한 인스트루멘탈(Instrumental) 트랙이며, 그때 인터넷 사이트인가 잡지에선가 소울스케잎형이 내 앨범을 잘 들었다며 이 비트가 인상깊었다고 한 걸 보고 매우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팔로알토 대학생 시절

    04. 비오는 날 (feat. Elcue)

    지금은 거의 인간적으로나, 음악적으로 교류가 없지만, 이때는 많은 시간을 엘큐(Elcue)와 함께했다. 그래서 함께 작업한 곡들도 많았는데, “비오는 날”이 그 중 하나이다. 이 곡에서 내 랩은 뉴욕을 가기 전, 대학신입생시절에 녹음한 것이다. 지금은 211로 알려져 있는 내 친구와 함께 우리 집에서 국내,외 인스트루멘탈에 가사를 쓰고 녹음하는 것이 놀이였던 시절에 나온 벌스(verse)이다.  원래는 크루시픽스 크릭(Krucifix Kricc)의 “Feed Sombody's Soul”에 썼던 가사인데 마음에 들어서 정식 트랙으로 완성하고 싶었던 찰나 엘큐가 나의 벌스를 마음에 들어 했었고, 그래서 곡 작업을 같이 해보기로 한 뒤에 브릭스(Briks)에게 비트를 받아 완성하게 되었다. 이 곡은 내가 뉴욕에 가기 전에 완성이 돼있었으나 이후, 뉴욕에 가게 되면서 알이에스티(R-est)와 엘큐가 이 곡으로 공연을 하러 다녔고, 내가 한국에 돌아오게 되면서 EP에 수록하게 된 나름 사연 많은 곡이다.

    05. 술주정

    요즘 활동이 다소 뜸한 프로듀서 제이락킹(Jayrockin')과 함께 작업한 곡이다. 또한, 양재동 고시원 생활 때 한창 찌들고, 피폐한 상태에서 완성된 가사이다. 지금 와서 들어보면 어린 놈이 뭔가 다 안다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 같아 되게 귀엽게 느껴지는 곡이기도 하다. 제약받고, 구속받던 10대 생활에 익숙해있던 소년이 갑작스러운 20대의 자유에 부적응하는 모습을 담은 곡으로, 분명한 건 당시 나의 감정 그대로를 담았다는 점이다.

    06. Candy Girl (Show Me Ya Luv)

    나는 항상 세련되고 진부하지 않은, 위트있는 표현력이 넘치는 랩 사랑노래를 만들고 싶어했다. 당시 콰이엇이 “Short Story”라는 곡으로 어떤 랩 경연대회에서 1등 수상을 했었는데, 그 곡의 비트가 너무 맘에 들어서 그 비트를 받아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완성해놓고 보니 만족스러웠고, 꼭 그 비트에 랩을 녹음하고 싶었지만, 그때 콰이엇은 그 곡을 남다르게 생각하던 곡이었기에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마음에 드는 비트가 나오지 않으면 곡을 완성시키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고 주위의 여러 비트메이커에게 곡을 의뢰했으나 마음에 드는 곡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엘큐가 마음에 드는 비트를 선사해주었고 곡 제목을 “Candy Girl”로 하자고 제안하였다. 나는 그 비트의 느낌과 곡 제목이 참 잘 맞아서 승낙하였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엘큐의 컴퓨터 하드가 날라가면서 또 다시 비트를 찾아나서야 했고 결국엔 브릭스의 비트 위에 곡을 완성하게 되었다. 이 곡의 앞부분은 어설픈 비트박스와 함께 시작되는데, 랩혼형의 집에서 녹음할 때 애를 먹는 바람에 시간이 꽤 오래 걸렸던 기억이 난다.


    EP 녹음 중인 팔로알토

    07. Sometimes

    이 곡은 토와 테이(Towa Tei)의 [Sound Museum]의 수록곡인 "Luv Connection"을 샘플링하여 비트를 만들고,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삶을 가사로 적어서 뉴욕에 가기 전 자주 공연했던 곡이다. 후에 크리티컬 피가 매우 펑키한 비트를 들려주었고 “Sometimes”의 랩을 이 비트에 녹음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는데, 나 역시 동감했다. 당시 이 곡을 공연할 때면 매우 신났고 이 곡을 통해 내가 무대 위에서 노하우나 자신감을 많이 기를 수 있었던 것 같다.

    08. Memoriez (feat. The Quiett)

    이 곡 역시 내가 같은 원곡으로 비트를 만들어서 공연을 하고 다녔었는데, 크리티컬 피가 원곡으로 자기가 다시 만들어보겠다고 하면서 내 것보다 더 좋은 퀄리티의 비트를 완성해서 주었다. 그래서 크리티컬 피의 비트로 앨범에 수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원래는 다른 랩퍼를 피처링시킬 생각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콰이엇이 가사를 쓰고 가녹음을 해서 내게 들려줬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크리티컬 피의 제안이었던 것 같은데 이미 난 콰이엇의 음악이나 랩을 좋아했기에 함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곡의 시작부분에 나오는 대사는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한 장면에서 따온 대사로, 그 영화를 보며 뭔가 남 얘기 같지 않았고 “Memoriez”의 주제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넣게 되었다.

    09. Hidden Track

    “Memoriez”가 끝나고 1분후쯤에 나오는 히든 트랙인 이 곡은 앨범 작업을 하면서 영향을 준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트랙인데, 비트는 내가 만들었으며, 앨범 커버에 ‘special thanks to’를 넣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것이었기에 나는 좀 다른 방식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은 마음에 만들게 된 트랙이다.





    -EP.4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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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히 워럽 (2012-02-08 17:57:57, 211.208.89.***)
      2. 새롭네요 발자국 앨범 나올때가 제 고등학교때인데 이 앨범 명반이라고 생각해요

        그때 살까말까 하다가 못산 앨범이네요 ㅠㅠ
      1. JAMES (2012-02-04 09:26:26, 211.243.238.***)
      2. 잘보고 있습니다. 팔로알토 전야제 앨범도 잘들었습니다.

        발자국에서 비오는날을 많이 들었었는데.. 글 재밌네요~
      1. 박정현 (2012-02-02 22:48:40, 125.142.22.***)
      2. 저 시절부터 함께 해온 저도 굉장히 감흥에 젖네요 ...
        고3때 mp3에 꼭 넣어 듣던 발자국...
      1. 이홍태 (2012-02-02 22:06:21, 117.55.153.***)
      2. 진짜 오랜만에 올라왔네요 이런 글 좋아해서 잘 읽었어요 ㅎ
      1. 힙초보 (2012-02-02 21:37:52, 220.79.54.***)
      2. 저 앨범 나올 시절 참 풋풋했었는데... 오랜만에 기억나네요 ㅋ
      1. Fukka (2012-02-02 19:02:59, 110.70.15.***)
      2. 아 참 잘 읽었습니다. 멋진 뮤지션의 추억을 나눈다는 건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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