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uestionlove: ‘Parental Advisory’는 ‘19금’과 격이 다르다!
- rhythmer | 2012-04-27 | 3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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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일권
힙합과 록 음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Parental Advisory (이하 ‘PA’)’라는 마크는 국내의 많은 힙합 팬에게 힙합을 대표하는 표식과도 같습니다. ‘미성년자가 듣는다면, 부모의 동의가 필요함’ 정도의 의미가 있는 이 마크가 찍혀 있어야만 진짜 힙합 음반을 산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랩의 흐름을 끊어놓아 짜증을 유발하는 클린 버전(Clean Ver.)과 욕, 비속어가 여과 없이 나오는 더티 버전(Dirty Ver. aka Original Ver.)을 구분하여 비싼 돈을 날리지 않게 해주는 고마운 상징이며, 그 디자인 자체가 때깔 나는 ‘힙합 앨범 커버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이번 시간엔 이 ‘PA’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전 이 마크와 관련한 추억이 하나 있어요.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을 보내던 97년 12월이었습니다. 지금은 불명예 속에 사라진 압구정의 모 레코드 샵에서 투팍(2Pac)의 따끈따끈한 새 앨범 [R U Still Down?]을 구입했습니다. 흥분된 가슴을 안고 압구정에서 집(안산)까지 먼 여정 끝에 플레이를 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욕과 비속어가 다 잘려서 나오는 클린 버전이더군요. 투팍의 옹골지고 강력한 발음의 ‘fuck’이 거세된 랩이라니…. 이건 아니죠…. 아니 그것도 그렇지만, 이 앨범은 아시다시피 2CD에요. 거금 32,000원이 날아가는 순간이었죠. 믿을 수 없었습니다. 분명히 음반 뒤에 ‘Printed In USA’를 확인했었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싱글이 아닌 앨범까지 클린 버전을 찍어내는지 몰랐던 거죠.
결국, 제 불찰을 탓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PA’ 마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껴야 했고요. 이후부터 전 음반을 살 때 ‘PA’에 더욱 강한 집착(?)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약 1년 반 정도 뒤에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너티 바이 네이쳐(Naughty By Nature)의 네 번째 앨범이었던 [19 Naughty Nine: Nature's Fury]는 ‘PA’가 찍혀있지 않았음에도 욕설이 거침없이 나오는 거였어요. 너티 바이 네이쳐는 워낙 욕을 잘 사용하지 않는 팀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구입시 ‘PA’ 마크에 신경을 쓰지 않았거든요. 갑자기 예전 투팍의 앨범과 관련한 일화가 오버랩되면서 제작사 측에서 실수로 마크를 안 찍었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애초부터 ‘PA’ 마크에 대해 전 잘못 알고 있었던 겁니다. ‘Parental Advisory’는 반드시 부착해야만 하는 게 아니었던 거죠.
대다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PA’는 등급 표시도, 레이블이 의무적으로 표기해야 하는 마크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미성년자 청취불가’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들어선 안 된다!’라는 ‘불가’와 규제의 의미가 아닌 ‘동의’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니까요. 미국에서는 국내와 달리 실질적으로 나라가 대중음악의 수위를 규제하는 법이 없어요. 단지 TV와 라디오 방송국이 각각 기준을 세워놓고 방송에 적합한가 아닌가를 판가름할 뿐이죠. 그러므로 음반에 욕, 비속어, 과격한 내용의 콘텐츠가 있다 해도 이 마크를 부착하느냐 마느냐는 레이블의 자유입니다. ‘PA’ 마크를 만든 곳은 ‘미국 레코드 산업 협회(RIAA)’에요. 우리에겐 음반 판매량을 집계하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곳이고요(국내 포털 사이트에서 ‘RIAA’를 검색해보면, 자세한 내용이 나오니 여기선 생략하겠습니다).
중요한 건 RIAA가 우리나라의 여가부(여성가족부) 심의위원회처럼 창작을 규제하는 단체가 아니라는 거죠. 오히려, 정부의 음악산업과 관련한 정책이나 규제를 감시하는 게 이들의 일 중 하납니다. RIAA는 단지 과격한 콘텐츠가 담긴 음악이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각 레이블에게 이 마크가 찍힌 스티커를 부착해 줄 것을 권유할 뿐입니다. 흥미로운 건 레이블 대부분이 자체적으로 클린 버전과 더티 버전을 나누고, ‘PA’ 마크를 커버에 넣고 있다는 거예요. 음반 프레싱 비용을 고려해야 하는 인디 레이블은 클린 버전을 내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역시 ‘PA’는 표기하고 있습니다.
나라와 단체는 대중음악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주고, 창작자 측은 나름의 방식을 통해 스스로 조율하는 모습… 무조건적인 규제로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을 기반으로 음악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을 앞세워 정부가 직접 무식하게 등급 매기기를 일삼는 국내와는 다른, 참 아름다운 광경 아닌가요?그동안 국내에서는 ‘PA’를 ‘미국판 19금’이라 표현하곤 했는데, 그러므로 이는 아주 잘못된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PA’ 마크에 대한 모독이에요. 무서울 정도로 꽉 막힌 사고방식 아래 강제로 매겨지는 ‘19금’과는 그 격이 다르다는 사실, 이번 기회를 통해 많은 분이 알게 되셨으면 좋겠네요.
미국의 'PA'와 우리나라의 '19금' 마크 디자인의 질적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사진들*PA 마크와 관련한 이모저모
-최초에는 ‘Parental Advisory’가 빠진 ‘Explicit Lyrics’로만 표기되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그 시작은 1985년이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학부모로 구성된 민간음악검열단체인 ‘Parents Music Resource Center (PMRC)’의 꾸준한 압박이 주된 요인이었죠. 단, 지금처럼 앨범 커버가 아닌 포장비닐에 스티커로 부착되었습니다.
-‘Explicit Lyrics’ 마크를 달고 나온 첫 번째 힙합 앨범은 갱스터 랩의 전설 아이스-티(Ice-T)의 87년 작 [Rhyme Pays]였습니다.
-1990년에 들어서 오늘날 디자인의 ‘Parental Advisory: Explicit Lyrics’ 마크가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Explicit Lyrics’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Explicit Content’로 교체되었고요.
-검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기본 틀과 달리 폰트는 약간씩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국내 에로영화 비디오 테잎의 ‘연소자 이용불가’를 연상하게 하는 빨간색 마크와는 디자인부터 차원이 다른 ‘PA’ 마크는 티셔츠 디자인으로도 사용되어 인기를 끈 바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아이폰 케이스에도 사용되었습니다.
*힙합/알앤비 음악과 관련하여 평소 궁금하거나 모호하게 생각했던 점들이 있다면, 리드머 트위터(@mediarhythmer), 혹은 강일권 편집장의 트위터(@soulgang78)로 질문해주세요~ 퀘스쳔러브(?uestionlove)에서 가능한 궁금증을 해결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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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온다 (2012-05-09 09:26:10, 61.42.150.***)
- 으헝헝 일권형 날 가져요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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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 (2012-05-05 11:40:40, 112.154.175.**)
- 정말 좋은 글.. 역시 리드머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게 아닌거같아요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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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sslit (2012-04-28 01:26:42, 118.33.55.**)
- 아하 이게 그거였군요
이제 없으면 어색한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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