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특별기획] 한국 힙합의 발자취 4부
- rhythmer | 2009-10-27 | 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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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과도기(1996~2000) : 힙합 문화 주체들의 결속과 교포 래퍼들의 등장
① PC 통신을 통한 힙합 문화 주체들의 결속
이렇게 다소 기형적인 모습으로 시작된 한국 힙합음악의 역사는 바야흐로 컴퓨터 통신이 꽃을 피우던 시기인 1996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이 당시 한국 힙합의 흐름은 대중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왜곡된 힙합 문화에 대응하여 몸소 힙합문화에 대한 실천을 행하기 위해 뭉친 컴퓨터 통신의 흑인음악 동호회와 미국 본토 힙합을 표방하고 나섰던 교포 출신의 뮤지션들로 양분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당시 대표적인 PC 통신 업체들이었던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등을 통해 움직이기 시작했던 흑인음악 동호회원들은 자발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미국 본토의 음악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기 시작했고, 나아가서는 컴퓨터 작곡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직접 곡을 창작하며 자신들만의 공연을 펼치기도 했는데, 이것은 ‘미국 힙합 음악의 모태가 되었던 거리의 개념이 국내에서는 온라인상에서 형성’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거칠고 배고픈 역사를 가진 거리의 음악이 국내에서는 테크놀로지의 산물을 통해 소개가 되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개개인의 취미로부터 시작된 PC 통신 동호회들의 힙합음악에 대한 관심과 실천은 힙합문화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는 클럽 공연문화와 한국 힙합음악이 질적인 발전을 이루는데 있어 시발점이 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물론 당시만 하더라도 이들의 창작 활동은 정식 체계를 갖춘 것이 아니었고 말 그대로 친목 개념이 강했기 때문에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발휘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힙합을 이끌고 있는 실력파 뮤지션들의 대부분이 통신 동호회 출신이라는 점은 이 당시가 실력 있는 래퍼들의 잠복기였음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 통신 동호회 출신 뮤지션들의 활약에 대해서는 한국힙합의 현재를 논하는 부분에서 자세하게 다루기로 하겠다.
② 교포 출신 래퍼들의 등장, 그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
PC 통신 동호회를 통해 문화적 주체들이 결속하던 이 시기와 비슷한 때에 국내 가요계에는 교포 출신 래퍼들의 상륙이 시작된다. 90년대 후반에 등장한 업타운(Uptown)과 드렁큰 타이거 등은 자신들이 힙합의 본고장인 미국 출신이라는 것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이른바 정통 힙합을 외쳐댔으며, 대중 매체들도 이들의 미국 출신 이력을 부각시키며 정통 힙합 열풍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기존의 음악보다는 미국 본토의 감성에 가까웠던 음악과 더불어 이들이 능수능란하게 뱉어내던 영어 랩은 미국의 힙합 음악에 노출되지 못했던 일반 대중들의 감탄을 자아냈으며, 이들은 서서히 한국에서 정말 제대로 된 힙합 음악을 하는 뮤지션으로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교포 출신 가수들의 모습에 열광하던 일반 대중과 달리 오래전부터 미국의 힙합 음악을 들어왔던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 대단치가 않았다.
이유인즉, 이들의 음악은 분명 댄스음악과 힙합 음악의 경계가 모호했던 기존의 가요와 차별화되긴 했지만, 이미 미국 힙합을 접하고 있던 이들에겐 굳이 영어 랩을 듣기 위해 국내 뮤지션의 앨범을 사야 할 이유가 없었으며 단지 그 느낌만을 흉내 내는데 그쳤던 비트 또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힙합 팬들에게는 별 메리트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더구나 무단 샘플링을 이용한 곡이 다수 숨어 있었던 이들의 음반은 교포 출신 뮤지션들에 대한 국내 힙합 마니아들의 회의적인 시각을 더욱 더 깊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치부들은 “듣기에 좋으면 됐지”라는 비틀어진 가치관을 가진 일부 대중과 매체 등에 의해 가려졌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앞장 서야 할 전국의 힙합 마니아들은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 안주하며 대중가요에 대한 관심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결국 정통 힙합을 표방했던 래퍼들이 정작 힙합 팬들에게는 외면 받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한국 힙합의 역사는 계속해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흘러만 갔다. 그래도 이들이 랩을 음악에 양념을 쳐주는 정도로만 여겨오던 일반 대중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듯하다. 가타부타하더라도 어쨌든 교포 출신 뮤지션들 덕에 힙합이라는 것이 단순히 음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하나의 문화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대중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한편,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이 후원하던 듀오 지누션은 업타운이나 드렁큰 타이거와 마찬가지로 멤버 모두가 외국 생활을 했고 영어에도 능하지만, 이들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영어를 가능한 배제하고 한국어로 된 랩을 선보였던 이들은 자신들이 해외파임을 내세우는 대신 ‘힙합의 대중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활동을 전개했는데, 비교적 힙합 본연의 스타일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데뷔곡 “가솔린”에 이어졌던 “말해줘”는 지누션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뚜렷이 보여주는 곡이었다. 적당히 멜로디가 가미되어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비트에 빠르게 이어지는 랩, 그리고 대중스타 엄정화의 보컬까지 그야말로 대중성을 위한 삼박자를 고루 갖췄던 이 곡을 통해 지누션은 새로운 국내의 힙합스타로 주목받게 되었지만 애석하게도 지누션 역시 힙합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지 못 한 것이 사실이다. 역시나 이들의 랩에서도 라임에 대한 고심은 찾아 볼 수 없었으며, 이후로 계속된 상업성에 가까운 대중성의 추구로 점점 이들은 힙합 팬들의 뇌리 속에서 힙합 뮤지션으로서의 존재감을 상실해가고 있다. 일반 대중에게는 한국 힙합의 발전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뮤지션으로 뽑히고 있지만, 정작 힙합 팬들에게는 그렇게 인식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율배반의 명제는 지누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③ 라임에 대한 인식과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의 등장
이러한 교포 출신과 해외파들의 눈부신 활동 사이로 당시 한국 힙합의 역사를 논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 앨범 네 장이 발표됐다. 김진표의 [열외]와 갱톨릭의 [A.R.I.C], 조PD의 [In Stardom], 그리고 컴필레이션 앨범이었던 [1999 대한민국]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김진표의 [열외]는 라임을 지닌 랩으로만 구성된 최초의 공식적인 앨범이라 일컬어진다. 1995년에 이미 벗헤드와 D2라는 그룹이 오로지 랩으로만 구성된 앨범을 발표했었으나 라임의 부재 때문에 그 의미가 퇴색된 상태였던지라 본격적으로 라임에 대한 인식이 엿보인 최초의 앨범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를 갖는다. 비록 김진표의 라임은 명사를 이용한 각운 맞추기가 대부분이었던 1차원적 라임이긴 했지만, 당시 오버그라운드는 물론이고 PC 통신 동호회를 기반으로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많은 힙합 뮤지션과 리스너조차도 라임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열외]는 신선한 충격이 되기에 충분했다.
김진표의 앨범 이후, 오버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도 점차 라임을 갖춘 랩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99년 등장한 조PD는 여기에 직설적인 욕설을 얹으며 한국 힙합 씬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그는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진 래퍼들이 대부분이었던 가요계의 관행 속에서 PC 통신을 통한 데뷔라는 독특한 이력을 보여주었는데, 조PD의 앨범은 이전까지의 그 어떤 앨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원색적 사회비판과 욕설로 화제를 모으며 랩 가사의 저항성을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리는 한편, 힙합이라는 하위문화 자체를 이슈화시켰다. 하지만 사회 현상에 대한 심도 있는 비판이 부족했고 당위성을 상실한 의미 없는 욕설의 남발은 한때 ‘의식 있는 래퍼라면 가사에 욕을 담아야 한다’는 왜곡된 유행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는 가뜩이나 힙합음악을 10대들 만의 반항적인 음악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던 기성세대들로부터 질 낮은 음악이라는 타이틀을 하나 더 부과 받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김진표와 조PD 앨범의 중간에는 갱톨릭의 데뷔작 [A.R.I.C]가 존재한다. 천편일률적인 가요계와 아이돌만을 양성해내는 매스미디어를 강하게 비판한 “변기 속 세상”이라는 곡으로 마니아들의 주목을 받았던 이들의 앨범은 거대 기획사의 입김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한 앨범이라는 것과 인디레이블에서 발표한 국내 최초의 랩 앨범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인 라임의 부재 때문에 현재 이들의 앨범이 한국 힙합 역사에서 점하는 위치는 별로 부각되지 않는 상태다. 한편, 조PD의 앨범이 여과 필터를 거치지 않은 가사들로 주목을 받았다면, 같은 시기에 나온 [1999 대한민국]은 오버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 간의 화합의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PC 통신 천리안의 기획 하에 나왔던 이 앨범에는 이미 인기를 얻고 있던 업타운과 드렁큰 타이거를 비롯하여 많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참여했는데, 현재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리쌍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허니 패밀리(Honey Family)와 다이나믹 듀오(Dynamic Duo)의 전신인 씨비매스(CB Mass) 등이 이 앨범을 통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특히, [2001 대한민국]의 천리안 버전 앨범에 수록됐던 셔니슬로우(Sean2Slow)의 “Moment Of Truth”는 국내 최정상급 래퍼 셔니슬로우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며 마니아들에게 사랑받는 곡이 되었다. 안정된 비트 위로 몰아치는 셔니슬로우의 랩은 가사와 스킬 두 측면 모두 완벽한 최고의 것으로 평가받았으며 대중음악 속에서 표류하던 힙합 본연의 외침을 들려줬다. 다만, 가사의 3분의 1이 영어로 채워졌다는 점은 역시 아쉬운 점이다.
여하튼, 2000년대에까지 이어지는 이 컴필레이션 시리즈는 앨범 판매고면에서 계속되는 성공을 거두었으며 무명이었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을 지상으로 올려주는 계단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었고 이 시기에 나왔던,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 낸 몇 안 되는 힙합 앨범으로서 위치하게 되었다.
5부에서 계속
기사작성 / RHYTHMER.NET 강일권, 김봉현, 염정봉, 예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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