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뷰] 2012 흑인음악 내한공연 멘붕 회고록: 에미넴의 홈런, 그리고 쓰리아우-트!
- rhythmer | 2013-01-07 | 1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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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지구멸망은 일어나지 않았고, 2012년은 얄밉게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 버렸다. 생각해보면, 지난 여름만 해도 록 음악 애호가들은 '지구가 정말 멸망하긴 하나 봐?'라는 농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녔는데, 그 이유는 바로 현재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밴드의 꼭대기에 올라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라디오헤드(Radiohead)가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역사적인 내한공연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라디오헤드의 무대는 물론 황홀했다. 그리고 우주의 균형을 맞추려는 듯, 힙합 애호가들에게도 동급의 사건이 일어났으니 역시나 현재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랩퍼의 꼭대기... 그래, 다 알다시피 바로 그 에미넴(Eminem)이 내한공연을 펼친 것이다. '예매넴'이란 원망 섞인 애칭이 붙을 정도로 2만 장의 표는 순식간에 동났으며, 힙합 역사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닥터 드레(Dr. Dre)까지 가세한 무대는 마땅한 표현이 쉽게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다. 결국, 지갑은 한결 가벼워졌지만, 라디오헤드와 에미넴의 무대 모두 내 인생의 명장면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자,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렇게 2012년은 아름답게 기억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에미넴의 여운 속에서 허우적대며 일상에 적응 못 하던 흑인음악 팬들을 2012년 하반기에 걸쳐 서서히 '멘탈붕괴'시킨 세 번의 내한공연 해프닝이 있었으니… 이제는 말해볼까 한다.
Dr. Dre: 형님은 ‘연기’를 좋아해, 스모크 말고 딜레이…
사진: 닥터 드레 공연 취소 안내 문자
에미넴 내한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닥터 드레의 깜짝 등장이었다. 에미넴과 함께 내한해 그의 등장을 많이들 예상하긴 했지만, 위대한 힙합 싱글인 "Still D.R.E."와 "Forgot About Dre"의 완벽한 라이브는 한국의 힙합 팬들이 살아가면서 경험하리라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닥터 드레, 스눕 독(Snoop Dogg), 더 게임(The Game), 독 파운드(Tha Dogg Pound)가 한꺼번에 10월 일산과 부산에서 공연을 연다는, 힙합 팬들을 흥분시키는 루머가 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연기획사 측에서 ‘리드머’에 직접 소식을 알려왔으며, 실제로 닥터 드레 측과 콘서트 계약이 있었음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라인업 중 가장 큰 티켓파워를 지닌 스눕 독의 불참과 이상할 정도로 느슨하게 진행된 프로모션으로 티켓판매는 매우 저조했다. 결국, 10월 공연을 앞두고 9월에 급작스레 11월로 공연이 연기되더니, 다시 1월로 연기되었지만, 환불이 진행되며 사실상 취소되었다. 비록, 닥터 드레의 소속사인 ‘애프터매스(Aftermath)’의 공식 채널을 통해 대형 신예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와 함께 1월에 공연할 것이란 선언이 있었지만, 여전히 소식은 없다. 켄드릭 라마가 예상보다 크게 성공해 한국 공연이 미뤄지는 것으로 굳게 믿고 싶다.
사진: 레이블 Aftermath의 내한공연 관련 공식 트윗
맥스웰(Maxwell): 포기하지 말고 왔으면 좋았을 텐데…
사진: 40만원 예매와 취소 문자 - 맥스웰, 20만원 예매와 취소 문자 - 메이시 그레이
닥터 드레 공연의 취소로 허탈해진 흑인음악 팬들을 다시금 환호하게 한 일이 닥터 드레 공연취소와 거의 동시에 찾아왔으니, 그것은 바로 네오 소울(Neo Soul)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맥스웰(Maxwell)의 갑작스러운 내한소식이었다. 미국에서도 단독 공연을 잘 하지 않기로 유명한 그이기에 흑인음악 장르 애호가에게는 그야말로 ‘깜놀’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일까, 닥터 드레 내한공연의 미숙한 진행에 연신 불만을 표출했던 이들은 혹시나 하고 공연 기획사의 이름부터 확인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다행히 꽤 탄탄한 공연기획사, 멋들어진 포스터와 광고물까지! 우리는 에미넴 이후, 가장 떨리는 티켓 오픈일을 맞이했고, 티켓이 오픈되자마자 광클릭으로 앞자리를 선점했다. “성공했나요?”, “네. 저는 다행히 맨 앞줄!”, “저도 성공!”, “저도!”, “감격! 저도 성공!”… SNS로 서로의 예매 성공을 훈훈하게 축하하는데… 위로는 없고 축하만 있는 불편한 진실. 그렇다. 20만원이나 하는 초고가의 티켓을 지를 열혈팬은 꽤 남아있었지만, 그는 팝 팬들을 끌어 모으는 어셔(Usher)나 비욘세(Beyonce)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안타깝게도 저조한 티켓판매 탓에 공연을 한 달 앞두고 취소라는 극약 처방을 받아야 했다. 흑인음악 팬들은 겨우 추스른 ‘멘탈’이 다시 붕괴하는 현상을 겪었다. 맥스웰은 트위터를 통해 “한국, 난 포기하지 않아!!! (Korea… I’m not giving UP!!!)”라고 공연취소의 아쉬움을 직접 표했지만... 나의 문자 메시지함엔 환불안내문자가 들어올 뿐, 변하는 건 없었다.
사진: 내한공연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맥스웰의 트윗
메이시 그레이(Macy Gray): 누님, 공연 잡힌 건 알고 계셨죠?
사진: 메이시 그레이 공연 하루 전에 온 취소 안내 문자
시간을 다시 돌려, 맥스웰의 내한 소식으로 흑인음악 팬들이 들떠 있을 때, 한 번 더 회심의 미소를 짓게 한 소식이 있었으니 바로 개성 넘치는 알앤비/소울 뮤지션 메이시 그레이(Macy Gray)의 첫 내한 소식이었다. 맥스웰처럼 흑인음악 팬에게는 깜짝 선물과 같은 느낌이었고, 2011년에 성공적으로 열렸던 메리 제이 블라이즈(Mary J. Blige)의 내한공연이 은근히 떠오르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규모는 조금 작더라도 훈훈한 공연을 상상하게 했다.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소극적인 프로모션과 국내 인기 스타의 공연에만 집중하는 듯한 공연기획사의 태도는 자연스레 예매상황을 확인하는 것조차 안타깝게 만드는 저조한 티켓판매로 이어졌다. 무슨 이유에선지 12월 12일 공연 예정이었지만, 12월이 되도 아무런 공지가 없어, ‘어쨌든 공연은 하는구나!’ 하고 마지막 희망의 끈을 쥐고 있던 흑인음악 팬들은 12월 초, 공연을 겨우 일주일 앞두고 취소 및 환불 안내전화를 받으며 헛웃음을 지어야 했다. 심지어 공연 취소 문자는 공연 하루 전날 밤 10시가 넘어 도착했다.
이게 문제다.
계속된 흑인음악 아티스트 내한공연취소의 표면적인 이유는 내부 사정이었지만, 그 사정은 사실 예매사이트를 통해 공개적으로 드러나 있다. 바로 저조한 티켓판매율이다. 원인은 몇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밖에서 안으로 추려보자. 우선, 부동산 시장의 침체와 극심한 내수경기 위축으로 얼어붙은 소비심리의 영향으로 고가의 내한 공연은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흑인음악 애호가 중 많은 수는 흑인음악의 영향권 안에 있는 록 뮤지션 레니 크라비츠 (Lenny Kravitz)와 에미넴(Eminem)의 공연에 없는 돈을 쪼개놨기에, 연이어 내한 공연에 출석하기엔 한계에 부딪혔을 것이다. 라디오헤드를 비롯해 타 장르 대형 스타의 내한도 유독 많아서 내한공연 자체를 즐기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의 지갑 사정이었을 것이다. 그럼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 보자. 아이러니하게도 앞에 언급한 공연들의 화려한 성공은 취소된 공연들의 기획에 큰 힘을 실어주었을 것이다. 취소된 공연 대부분이 상대적으로 영세한 공연 기획사에 의해 급조된 듯 진행되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에미넴 공연의 폭발력과 겉으로는 매우 적극적인 흑인음악 장르 팬들의 반응은 착시현상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만난 한 공연 기획자는 에미넴 공연을 보고 한국 흑인음악 장르 팬의 수에 놀랐다고 기대감을 표했는데, 그 앞에서 흑인음악 아티스트의 내한공연 티켓을 구매할 장르 애호가는 아주 많이 잡아야 5천에서 6천명 정도이며, 에미넴 공연은 그 사람들이 전부 간 경우로 보면 될 것이라는 흥을 깨는 의견을 밝혔던 것이 생각난다.
공연 취소의 큰 원인이 된 적극적이지 못한 프로모션 역시 일단 불러오면 어느 정도는 팔린다는 생각 때문에 공연 계약에 드는 비용과 프로모션 비용의 적절한 비율 배분의 실패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다 나름의 힘겨움이 있었겠지만, 어쨌든 모든 시장 상황을 판단하고 치밀하게 준비해 공연을 성사시키는 것이 공연기획사의 목적이며, 많은 이들이 이를 믿고 큰돈을 맡겼지만, 돌아온 것은 이자 한 푼 없는 환불이었다. 이런 연이은 흑인음악 아티스트의 내한공연 취소 해프닝이 행여나 앞으로의 힙합/알앤비 내한공연 위축으로 이어져 충분히 가능한 공연마저 가로막지는 않을까 걱정되는데, 급기야 2013년 1월 예정된 50센트(50Cent)의 공연마저 취소되며 2013년은 원-아웃으로 시작했으니 그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다. 차라리 이런 상황이면, 대놓고 아티스트와 협의한 다음, 소셜커머스를 통해 ‘00명 이상 예매하면 내한공연 성사’ 조건을 거는 것도 방법일 듯하다. 이게 농담이 아니란 현실이 좀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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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기비기비기 (2013-01-20 02:01:39, 112.164.63.***)
- 에미넴이라도 본걸로 만족해야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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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rasax (2013-01-12 23:02:34, 218.237.6.**)
- 어지간히 안 팔리기는 하나봐요 흑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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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지훈 (2013-01-08 12:28:12, 58.87.63.***)
- 메이시 그레이 공연은 굉장히 다이나믹하게 취소됐군요. 예매한 사람들을 거의 바보로 만드는 수준이랄까...
저는 이 글에서 언급한 (캔슬된) 공연은 모두 예매를 하지 않아서 자세한 내막을 모른 채 주변 사람들의 반응만 계속 살폈는데, 예매한 입장이었다면 실망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2013년, 삼진아웃이 일어나지 않기를 빌어봅니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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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직쿤 (2013-01-07 20:08:21, 36.39.234.***)
- 아 멘탈붕괴 사진 ㅋㅋㅋㅋㅋㅋ 명수는 12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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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하지않아 (2013-01-07 19:25:22, 211.36.138.*)
- 전 두번의 홈런조차 못보고 쓰리아웃만 당했어요..하..소고기나 사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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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기 (2013-01-07 19:08:05, 1.236.53.***)
- 진짜 웃긴게 그냥 공연한다고 얘기하고 그 다음 예매 던져놓고 "볼래??"
이러고 손놓고 예매만 받다가 예매율 저조하니까 "ㅈㅅ 여러 악재가 겹쳐 취소함"
이 짓만 몇번을 해대는지 무슨 대중들 놓고 낚시질 하는 강태공도 아니고
공연기획자 라고 있는 사람들이 확신이 없으면 애초에 한다고 말이라도 하지 말던가
완전 무책임하고 이런 경우없는 행위가 또 다시 반복되지 않기만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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