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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토픽] 찬란했던 LaFace의 영광과 몰락 1부 '영광의 순간들'
    rhythmer | 2014-05-16 | 9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1990
    년대에 가장 성공한 알앤비 레이블을 꼽으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라페이스(LaFace)를 꼽을 것이다. 라페이스는 1989, 밴드 더 딜(The Deele) 소속의 두 사람 엘에이 리드(Antonio “L.A.” Reid)와 베이비페이스(Kenneth “Babyface” Edmonds)가 아리스타(Arista)로부터 지원을 받아 애틀랜타(Atlanta) 기반의 레이블을 만든 것에서 시작한다. 짧은 시간 내에 엄청나게 성장한 라페이스는 애틀랜타의 모타운(Motown)으로 불리며, '90년대 흑인음악을 하려는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 꿈의 레이블로 거듭나게 된다.

     

    수 년이 안 되는 시간에 라페이스가 최강의 흑인음악 레이블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엘에이 리드가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을 보는 눈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TLC, 어셔(Usher), 아웃캐스트(OutKast), 토니 브랙스턴(Toni Braxton), 핑크(Pink), 구디 몹(Goodie Mob)에 이르는 리스트가 이를 증명한다. 엘에이 리드를 중심으로 베이비페이스와 프로덕션 팀 오거나이즈드 노이즈(Organized Noize)의 도움으로 이들 모두 정상급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다.

     

    사진: L.A Reid(좌), Babyface(우)

    하지만 21세기의 도래와 함께 라페이스의 역사는 거짓말 같이 끝이 난다. 2000년에 엘에이 리드와 베이비페이스가 라페이스를 아리스타의 부모 회사인 BMG에 매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2004 BMG의 일부로써 라페이스라는 이름은 다시 부활했지만, 독립된 레이블로서 라페이스는 90년대와 함께 끝이 난 셈이었다. 레이블이 매각된 특별한 계기는 없지만, 라페이스는 짧은 10여 년 간 유난히 많은 악재를 맞이하기도 했다. 이 글은 바로 거짓말 같았던 라페이스의 영광과 몰락의 역사다


    LaFace, 영광의 순간들

     




    Damian Dame - Damian Dame

     

    데미안(Damian)과 데 데임(Deah Dame)으로 이루어진 알앤비 듀오 데미안 데임(Damian Dame)은 라페이스와 사인한 첫 아티스트였다. 각자 음악활동을 하며 앨범까지 냈던 두 아티스트는 서로의 음악에 이끌려 의기투합했고, 라페이스를 통해 듀오를 시작했다.

     

    1991년에 발매된 이들의 첫 앨범 [Damian Dame]은 엘에이 리드와 베이비페이스의 지원사격을 바탕으로 대박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다. 라페이스의 설립자들이 당대의 흥행 보증수표였던 프로듀서들이었던 만큼 탄탄한 뉴 잭 스윙(New Jack Swing)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가장 특징적인 건 데미안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서정적이고 플라토닉한 사랑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가사이다. 자극적이지 않으며, 부드러운 이들의 음악은 폭넓은 청취층을 확보해 빌보드 알앤비 싱글 차트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TLC - Ooooooohhh... On the TLC Tip, CrazySexyCool

     

    데미안 데임이 라페이스의 첫 아티스트였다면, TLC는 라페이스의 첫 '대박' 아티스트였다. 엘에이 리드와 그의 아내 페블즈(Perri “Pebbles” Reid) 앞에서 오디션을 보고 통과한 두 멤버 티-보즈(T-Boz)와 레프트 아이(Left Eye), 그리고 데미안 데임의 백댄서였던 칠리(Chilli)가 가세하면서 팀이 구성됐다. TLC는 페블즈의 관리 아래 1992, 데뷔 앨범 [Ooooooohhh... On the TLC Tip]으로 데뷔한다. 애틀랜타의 어린 소녀들에 불과했던 TLC는 앨범이 약 4백만 장 이상 팔려나가면서 겨우 1년 여 만에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TLC가 당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기존의 걸 그룹과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엔 보그(En Vogue)같이 당대 여성 그룹들이 관능과 여성성으로 대중에게 어필했다면, TLC는 거리의 음악을 들려주는 당돌한 소녀들의 이미지로 어필했다. 보기 드문 캐릭터를 갖춘 TLC는 무엇보다 대중적인 면은 물론, 음악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걸 그룹으로서 이미지를 구축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첫 싱글 “Ain’t 2 Proud 2 Beg”에선 튀는 힙합 패션에 콘돔을 몸에 두르고, 놀이동산에서 쓸 법한 얼굴 크기보다 큰 안경을 끼고 나와 건전하고 당당한 성생활을 노래했고, "What About Your Friends”에선 친구 관계의 진정성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권했다. 레프트 아이의 랩과 가사는 변화무쌍하며 장난기가 넘쳤고, -보즈 특유의 가라앉은 음색의 보컬은 다양한 스타일에서 빛이 났으며, 칠리의 아름다운 미모와 더불어 전형적인 알앤비 보컬은 티-보즈와 좋은 궁합을 선보였다. 특히, 이 앨범의 음악적 성공엔 대부분 곡을 작곡한 댈러스 오스틴(Dallas Austin)의 도움이 컸다.

     

    TLC의 성공적인 데뷔는 2[CrazySexyCool]의 놀라운 음악적 성과와 엄청난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졌다. 더욱 농익은 힙합 소울과 미디엄 템포 알앤비 성향의 음악으로 채운 이 앨범은 베이비페이스, 오거나이즈드 노이즈, 댈러스 오스틴 등등, 라페이스의 황금 프로덕션 진과 멤버들의 음악적 욕심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산물이었다. 파자마를 입고 바람 피우는 남자 친구에 맞서 맞바람을 피우겠다 선언하는 “Creep”, 폴 맥카트니(Paul McCartney)의 곡에서 영감을 받아 환상을 함부로 좇지 말라 당부하는 “Waterfalls”TLC를 대표하는 곡이 되었다. [CrazySexyCool]은 무려 1천백만장 이상이 판매되면서 걸 그룹으로선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으며, 라페이스와 TLC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 놓았다.

     

     

    Toni Braxton – Toni Braxton, Secrets

     

    1990년대 최고의 여성 알앤비 보컬 중 한 명이었던 토니 브랙스턴(Toni Braxton) 또한 라페이스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토니 브랙스턴을 포함한 5명의 자매들은 오페라 가수였던 그녀의 어머니 밑에서 어릴 적부터 함께 노래를 불러왔다. 1990년에 5자매는 더 브랙스턴스(The Braxtons)라는 이름으로 아리스타와 계약하게 되는데, 첫 싱글 “Good Life”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베이비페이스와 엘에이 리드의 귀를 사로잡았다. 이들은 토니 브랙스턴을 따로 불러 영화 [Boomerang]의 사운드트랙 앨범에 들어갈 “Love Shoulda Brought You Home” 곡의 데모를 녹음 시킨 후, 성공을 확신해 그녀를 라페이스에 들어오게 했다. 1993년 발매된 데뷔 앨범 [Toni Braxton]에서 그녀 특유의 허스키한 보컬은 다양한 음색과 풍부한 감정표현을 보여주며 많은 이를 사로잡았고, 그 결과 브랙스턴은 이 앨범으로 그래미에서 '올해의 신인'을 포함한 3개 부분의 수상을 기록했다.

     

    그러나 토니 브랙스턴은 이 성공에 만족하지 않았다. 1집을 샀던 사람들이 2집을 듣고 비슷한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힌 그녀는 3년의 시간 이후에 [Secrets]를 들고 온다. 전작에 비해 중·고음역대를 훨씬 활발히 사용해 전반적으로 더 밝고, 더 로맨틱하며, 더 풍부한 감정 표현을 담아냈고, 이는 전작을 넘는 성공으로 이어졌다. 그래미 2관왕, 8백만 장 이상 판매량 달성과 함께, 두 번째 싱글 “Un-Break My Heart”는 빌보드 핫 100(Hot 100) 차트에서 11주간 1위를 고수하며, 20여개 국가에서 싱글 차트 10위권 이내에 드는 성과를 올렸다.

     

     

    OutKast – Southernplayalisticadillacmuzik, ATLiens

     

    엘에이 리드는 힙합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이 없었지만, 정말 운이 좋게도 애틀랜타 힙합이 시작하게 된 곳 또한 라페이스였다. 그리고 그 중심엔 아웃캐스트(OutKast)가 있었다. 오거나이즈드 노이즈의 추천으로 라페이스에 입단한 아웃캐스트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첫 싱글 “Player’s Ball”로 말끔하게 해결해버렸다. 이 트랙을 만들 당시 오거나이즈드 노이즈는 닥터 드레(Dr. Dre)의 쥐-펑크(G-Funk)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아 샘플링과 디제잉보단 진짜 악기와 808 드럼을 사용해 애틀랜타만의 분위기를 구현하고자 했고, 이것이 아웃캐스트의 랩과 맞물려 고유의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아웃캐스트와 오거나이즈드 노이즈는 여세를 몰아 1년 만에 1 [Southernplayalisticadillacmuzik]을 발표했고, 이 앨범은 메인스트림 힙합 씬에 애틀랜타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 격의 작품이 되었다.

     

    1집 이후 자신들의 음악에 확신을 가지게 된 아웃캐스트는, 플레이야의 기믹, , '매일 밤 파티를 즐기는 잘 나가는 남부 남자' 캐릭터를 버리고 복잡하고 미래적이며 펑키한 음악을 추구하기로 한다. 그 일환으로 오거나이즈드 노이즈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음악을 만들기로 했는데, 처음 샘플러와 신시사이저를 사서 만든 곡이 바로 “Elevators (Me & You)”였다. 음악 제작에 있어서까지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이들은 결국 라페이스 소속이지만, 그들만의 음악을 하기 시작했으며, 2 [ATLiens]는 음악적으로나, 가사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모두 전작을 뛰어넘는 앨범이 되었다.

     

     

    Usher – Usher, My Way

     

    13살에 TV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 서치(Star Search)'의 남자 보컬로 출연했었던 어셔(Usher)는 그 자리에서 엘에이 리드의 눈에 들어 라페이스에 들어오게 된다. 디디(Diddy aka Puff Daddy)가 그의 멘토로서 어린 나이에 '나쁜 남자'가 되는 법을 알려줬고, 페이스 에반스(Faith Evans), 처키 톰슨(Chucky Thompson), 알 비 슈어(Al B. Sure!) 등의 화려한 프로듀서 진 또한 선사했다. 이런 디디의 지원 사격 속에 나온 데뷔 앨범 [Usher]는 알앤비 차트 25위에 오르는 데 그쳤지만, 어셔의 이름을 알리는 데에는 충분한 기회였다.

     

    그 후 코카콜라 광고나 몇 개의 영화 음악에 참여하는 등, 소소한 활동을 이어가던 중, 개인적인 친분을 쌓은 저메인 듀프리(Jermaine Dupri)의 도움을 받아, 고등학교 졸업 후 2 [My Way]를 발매한다. 당대 미다스의 손들이었던 베이비페이스, 저메인 듀프리, 테디 라일리(Teddy Riley)가 프로듀싱한 앨범이 어찌 성공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빌보드 알앤비 앨범 차트의 꼭대기에 3주간 머물렀으며, 특히 첫 싱글 “You Make Me Wanna…” 11주간 빌보드 알앤비 싱글 차트 1위를 했고, 이는 역사상 2번째 기록이다. 이 싱글로 1998년 플래티넘을 2번 달성했고, 빌보드에서 선정한 올해의 팝 가수가 되었으며, 소울트레인 어워드에서 남자 알앤비 싱글 부문을 차지했다. 이어진 두 장의 싱글 “Nice & Slow” “My Way”도 플래티넘을 따내는 성공을 기록하면서 디디, 메리 제이 블라이즈(Mary J. Blige), 재닛 잭슨(Janet Jackson)과 월드 투어를 다니는 명실 상부한 팝 스타가 되었다.

     

     

    Goodie Mob – Soul Food, Still Standing

    TLC “Waterfalls”를 만든 후 엘에이 리드에게 완전한 신뢰를 얻었던 오거나이즈드 노이즈는 처음에 자신들이 아웃캐스트를 라페이스에 추천했듯이, 던전 패밀리(Dungeon Family) 식구인 구디 몹(Goodie Mob)을 밀어 붙이기 시작한다. 엘에이 리드 역시 오거나이즈드 노이즈에 대한 신뢰와 구디 몹이 아웃캐스트의 [Southernplayalisticadillacmuzik]에 피처링한 두 곡 “Call of da Wild” “Git Up, Git Out”만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그들을 영입하기로 결정한다. 오거나이즈드 노이즈는 구디 몹이 계약을 완료할 때까지 돈과 계약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전폭적으로 구디 몹의 입장에서 지지해 주었다.

     

    아웃캐스트의 연장선에 있는 음악을 추구할 법도 했지만, 4명의 멤버 씨-(Cee-Lo), -(T-Mo), 쿠조(Khujo), 빅 깁(Big Gipp)은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적 성향이 뚜렷했다. 아웃캐스트가 남부 흑인의 삶을 한 발짝 떨어진 관찰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했다면, 구디 몹은 남부 흑인의 삶 그 자체인 음악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리고 이러한 의도를 담아 만든 영혼을 울리는 음악은 데뷔 앨범 [Soul Food]로 그 결실이 맺어졌다. 가장 특징적인 곡은 역시 “Dirty South”, 이 곡을 통해 남부 힙합 앞에는 'Dirty'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다. '남부의 잘나가는 남자'를 표방하던 아웃캐스트와 달리 구디 몹은 애틀랜타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흑인으로서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나갔고, 골드(Gold/50만 장 이상 판매)를 기록한 [Soul Food]는 남부 힙합이 가야 할 또 다른 길을 제시해 주었다. 이후, 구디 몹은 [Still Standing]에서 흑인의 삶을 더욱 어둡고 무겁게 풀어내는 음악을 선사했고, 이 역시 차트 성적이 썩 좋진 않았지만, 그들이 진실성 있는 남부 힙합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Tony Rich – Words

     

    토니 리치(Tony Rich) 또한 당대 유명 프로듀서 중 하나였던, 보이즈 투 멘(Boyz II Men) [II] TLC [CrazySexyCool]에 참여한 팀 & (Tim & Bob)의 추천으로 라페이스에 입단했다. 프로듀서로서 실력이 출중해 토니 브랙스턴, 보이즈 투 멘, TLC 등에게 곡을 만들어 주었고, 1995년에는 자신의 싱글 “Nobody Knows”로 빌보드 전체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데뷔 앨범 [Words]에서는 프로듀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블루스나 록의 야성적인 면모를 끌어들인 알앤비를 선보였는데, 상당한 호평을 받으면서 디엔젤로(D’Angelo)를 위협할 신인으로 주목 받기도 했다. 거의 일년 내내 빌보드 차트에 머물렀던 [Words]는 플래티넘을 달성하며 1997'올해의 알앤비 앨범'으로 그래미 상(Grammy Awards)를 거머쥔다.

     

     

    Az Yet – Az Yet

     

    애즈 옛(Az Yet)은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디온 앨런(Dion Allen)과 션 리베라(Shawn Rivera)가 결성한 듀오에서 시작했다. 필라델피아 호텔 로비에서 노래하던 케니 테리(Kenny Terry)를 만나 즉흥적으로 하모니를 맞추는 운명적인 경험을 한 후 그를 영입했고, 몇 명의 멤버를 더 영입하여 그룹이 되었다. 애즈 옛이 라페이스와 계약한 건 당시 베이비페이스가 이들의 데모 테입을 들은 덕이었다. 추가로 들어온 멤버들은 얼마 안 되어 빠져 나가고, 대신 대릴 앤서니(Darryl Anthony)와 보이즈 투 멘의 초기 멤버였던 마크 넬슨(Marc Nelson)을 데려 오게 된다. 베이비페이스는 하모니가 정말 아름다웠던 이들의 음악에 사로잡혔고, 자신의 공연에 같이 데리고 다니며 출연시키는 등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이들이 계약 직후 내놓은 싱글 “Last Night”은 영화 [The Nutty Professor]에 삽입되어 빌보드 알앤비 차트 1위를 달성하는 등, 높은 인기를 끌었고, 이듬해 내놓은 데뷔 앨범 [Az Yet]에선 가스펠, 힙합, 알앤비가 혼합된 음악 위에서 아름다운 화음을 들려줬다. 이 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곡이 시카고(Chicago)의 곡을 커버한 “Hard To Say I’m Sorry”, 전체 빌보드 차트 8위를 기록하며, 1998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고의 알앤비 그룹 퍼포먼스 후보에도 오르게 된다.

     

     

    Donell Jones – My Heart, Where I Wanna Be

    다재다능하지만 그에 비해 가장 저평가된 알앤비 아티스트 중 하나인 도넬 존스(Donell Jones) 또한 라페이스에서 커리어가 시작되었다. 시카고(Chicago)의 남부에서 자랐던 도넬 존스는 뮤지션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12살 때부터 곡을 쓰기 시작했다. 20살에 친구들과 결성한 포르셰 킹(Porshe King)이라는 그룹으로 음악을 홍보하기 위해 '블랙 라디오 익스클루시브(Black Radio Exclusive, BRE) 컨퍼런스'에 참가했는데, 쇼케이스에 아무도 오질 않아 거리에 나가서 노래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거리를 지나면서 그들의 노래를 좋게 들었던 사람 중엔 헤비 디 앤 더 보이즈(Heavy D & the Boyz)의 멤버이자 당시 모타운의 A&R이었던 에디 에프(Eddie F)가 있었다. 그리고 에디 에프는 모타운에서 도넬 존스를 따로 떼내어 라페이스 레코드에 입단시켜준다.

     

    라페이스에 들어간 후 얼마 간은 작곡가로서 실력을 발휘해 어셔의 “Think of You”, 702 “Get It Together”, 제이드(Jade) “If the Lovin’ Ain’t Good”, 실크(Silk) “Hooked On You” 등의 작곡에 참여했다. 앨범을 대표하는 싱글 수준의 곡들을 뽑아내는 재능을 인정 받아 늦게나마 1996년에 데뷔 앨범 [My Hearts]을 내놓았지만, 결과는 별로 좋지 못했다.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곡을 스티비 원더 식으로 완벽하게 커버한 “Knocks Me Off My Feet”이 그나마 익숙함에 편승해 빌보드 차트 49위를 했을 뿐이다. 그러나 실패에 굴하지 않고 3년 뒤인 1999년에 [Where I Wanna Be]를 발매했고, 이 앨범은 음악적으로는 물론,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앨범이 되었다. 언제나 아이즐리 브라더스(The Isley Brothers)나 테디 펜더그래스(Teddy Pendergrass)를 그리워하던 도넬 존스는 이 앨범에서 80년대 콰이엇 스톰(Quiet storm)을 섹시하고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레프트 아이가 랩을 보탠 “U Know What’s Up”은 빌보드 알앤비 차트 1위에 오른 후 전 세계를 강타한 히트 싱글이 되었고, 이 앨범을 통해 AMA(American Music Award)에서 '올해의 신인 소울/알앤비 가수'로 뽑히는 영예를 안게 된다.

     

     

    Shanice - Shanice

    모타운 소속으로 전세계를 강타한 싱글 “I Love Your Smile”을 냈던 섀니스(Shanice)는 이미 라페이스에 들어오기 전부터 유명인사였다. 밝고 명랑하지만, 힘있는 보컬은 톡톡 튀는 팝-알앤비 곡에 딱 맞게 어울렸고, 미니 리퍼튼(Minnie Riperton)을 방불케 하는 5옥타브 이상의 음역대와 뛰어난 기교는 그녀의 모든 곡을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런 섀니스는 모타운과 불화가 있은 직후, 줄곧 동경해오던 베이비페이스와 작업을 꿈꾸며 1998년 라페이스와 계약한다. 이듬해 나온 4 [Shanice]는 베이비페이스와 섀니스가 작업한 앨범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이슈가 되었다. 그 증거로 첫 싱글 “When I Close My Eyes”는 일주일 사이에 빌보드 차트를 75계단(91위에서 16)이나 뛰어오르면서 당시 있던 종전의 상승폭 기록을 갱신해버렸다. 어떤 곡이든지 소화할 수 있는 탁월한 보컬리스트였기에 섀니스는 작곡가들에게 상상력을 맘껏 발휘하며 곡을 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뮤지션으로도 유명하다.

     

     

    YoungBloodZ – Against da Grain

     

    던전 패밀리의 K.P.가 스카우트해온 영블러즈(YoungBloodZ)는 션 피(Sean P)와 제이-(J-Bo)로 이루어진 남부 힙합 듀오이다. 라페이스의 역사 끝자락인 1999년에 첫 앨범 [Against da Grain]을 발매했는데, 전형적인 사우스 힙합의 공간감 있는 비트 위에 꽤 복잡한 라임을 얹은 이들의 앨범은 빌보드 알앤비/힙합 앨범 차트에서 20위 안에 들었다. 특히, 듀오의 첫 싱글 “U-Way (How We Do It)”이 랩 싱글 차트 3위까지 오르면서 데뷔하자마자 남부의 유명 아티스트 대열에 합류했었다

    -2'LaFace, 몰락의 순간들'에서 계속

     

     

    글: 오규진, 감수 및 편집: 강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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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지훈 (2014-05-25 20:30:40, 1.241.243.***)
      2. 1부, 2부 모두 재밌게 봤습니다. 근래에 읽었던 음악 관련 기사 중 가장 몰입도가 강한 글이었어요. ㅎㅎ 몰랐던 사실 많이 알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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