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뷰] 강집장의 듣다 죽자: 8월 블랙 뮤직 단평
- rhythmer | 2014-08-26 | 9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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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국내 장르 씬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국외 힙합/알앤비 앨범을 소개하는 건 꾸준히 해야겠는데, 매월 쏟아지는 양과 속도를 쫓아가기엔 벅차서 단평 코너를 시작해봅니다. 정식 리뷰와 별개로 매주 주목할만한 국외 신보 몇 장을 골라서 감상 위주로 캐주얼하게 소개하려 해요. 앨범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음악평은 정식 리뷰에서 계속됩니다. 부디 유익한 가이드가 되길 바라며... 우리 모두 듣다 죽어요~~"
'듣다 죽자'에서 다루는, 그리고 다룰 앨범의 일반적인 기준은 이렇습니다. 메인스트림이든 인디든 힙합 팬들에게 잘 알려졌거나 주목받는 뮤지션의 앨범이라면, 좋든 좋지 않든 다룰 예정이며,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인지도가 부족한 뮤지션의 앨범은 추천할만한 완성도일 때에 한해서 다루려고 합니다. 이를 참고하시면, 더욱 유익한 가이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이번 달에 다룰만한 주요 앨범인 Dilated Peoples와 Wiz Khalifa의 새 앨범은 곧 정식 리뷰로 올라갈 예정이라 제외하였습니다.
Planet Asia & TzariZM - Via Satellite 2014-07-29데뷔 약 16년차에 이르는 베테랑 플래닛 아시아(Planet Asia)가 잘 쓰고 잘 뱉는 엠씨라는 건 이미 익히 알려진 바다. 비단 탁월한 실력뿐만 아니라 엄청난 창작욕까지 있는지라 그동안 솔로와 합작을 가리지 않고 참 많은 작품을 발표해왔는데, 그런 그가 커리어를 대표할만한 앨범을 한 장도 보유하고 있지 못 하다는 건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이는 대부분 인상적이지 못했던 프로덕션 탓.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그 짝을 제대로 만났다. 플래닛 아시아에게 (드디어) 흠잡을 데 없는 앨범을 안긴 주인공은 올랜도 출신의 무명 프로듀서 티자리즘(TzariZM)이다. 결과적으로 그 역시 플래닛 아시아와 합작을 통해 조금이나마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니 이 정도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경우라 할만하겠다. MPC로 무장한 티자리즘의 비트는 기본적으로 샘플링에 기반을 둔 붐 뱁 사운드지만, 유명한 샘플 원곡의 아우라나 옛 선배들의 답습에 안일하게 기대는 이들의 결과물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특히, 보컬 샘플을 자르고 운용하는 면에서 발군인데, 이 방면의 또 다른 실력자 아폴로 브라운(Apollo Brown)과는 또 다른 감흥을 선사한다. 몽환적인 무드, 범우주적 무드, 펑키한 무드, 소울풀한 무드 등등, 통일감 있는 사운드 안에서 다양한 무드를 조성하는 솜씨도 탁월하다. 이 위에서 플래닛 아시아가 수준급의 은유와 직설을 오가며 꽉 조이는 랩을 얹음으로써 본작은 (커버 아트워크의 허탈함과 달리) '90년대 이스트코스트 힙합의 전형적인 감흥을 간직했으면서도 전혀 식상하지 않은 앨범이 되었다.
PartyNextDoor - PartyNextDoor Two 2014-07-29
캐나다 태생의 알앤비 싱어송라이터 파티넥스트도어(PartyNextDoor)의 이 정규 데뷔작은 'PBR&B'와 '드레이크(Drake)'라는 두 개의 키워드가 음악적 색깔을 대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레이크가 설립한 레이블 'OVO Sound' 소속이라는 걸 차치하더라도, 파티넥스트도어의 음악은 알앤비와 노래에 대한 드레이크의 (못다 이룬) 욕망이 고스란히 녹아 든 페르소나와도 같다. 한 곡("Sex on the Beach")을 제외하곤 모두 파티넥스트도어가 프로듀싱까지 책임졌는데, 음악은 한결같이 침잠되고 멜랑콜리하며,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린다. 여기에 팔세토, 혹은 선 얇은 보컬을 위주로 하는 기존 PBR&B 계열의 보컬리스트들과는 달리 다소 관조적인 보컬이 얹혀 파티넥스트도어만의 무드가 완성된다. 사실 PBR&B는 그 획기적이고 개성 있는 사운드 덕에 순식간에 주류 장르로 떠오를 수 있었지만, 그만큼 스타일의 한계 또한 확실한 탓에 금방 식상해질 우려가 다분했고, 이제 그 우려가 점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본작은 잘 짜인 멜로디 라인과 구성을 통해 PBR&B 열풍을 타고 등장하여 무드에만 천착하던 많은 아류들과 효과적으로 차별화한다.
Chuck D - The Black In Man 2014-08-01
(진정한) 힙합 1세대로서 음악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뚜렷이 남긴 척 디(Chuck D)가 무려 18년 만에 발표한 두 번째 솔로 앨범이다. 사실 첫 감상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무게 있게 꽂히는 기타 리프와 둔중하게 내려와 박히는 척 디의 랩이 어우러진 "Spread The Words"가 기세 좋게 문을 열어젖히지만, 이후부터 곡의 감흥은 내리막이었다. 90년대 붐 뱁(Boom Bap) 사운드와 록 요소를 적절히 껴안은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전성기적 사운드가 밋밋하게 혼재되어 있는 데다가 척 디의 랩핑 또한, 첫 곡에서만큼 카리스마를 분출하지 못한 듯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묘한 건 들을수록 앨범의 매력이 느껴진다는 점. 특히, 척 디의 랩은 세월의 흐름 탓에 무뎌지긴 했으나 여전히 잔존하는 사회적 병폐에 날 선 시선을 들이댄 가사와 만나 곱씹어 들을수록 무게를 더한다. 피처링한 후배 랩퍼들에게 기술적인 부분에선 자리를 내줄지 몰라도, 앨범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이유다. 물론, 첫 감상에서 느낀 실망이 만회되었다고 해서 [The Black In Man]이 탁월한 작품이라고는 평하기 어렵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창작욕과 문제의식을 잃지 않은 노장이 이 정도의 완성도와 메시지를 담아 발표한 정규 앨범에 너무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질적, 양적, 업적 면에서 서슴없이 엄지를 치켜세울 수 있는 척 디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Amp Live - Headphone Concerto 2014-08-05
베이에어리어(Bay Area) 힙합 듀오 자이언 아이(Zion I)의 프로덕션을 담당해온 반쪽, 앰프 라이브(Amp Live)는 언제나 실험을 거듭해왔다. 그것이 안드레 3000(Andre 3000)이나 칸예 웨스트(Kanye West)만큼 사정없이 뒤통수를 내리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오늘날 얼터너티브 힙합을 논할 때 앰프 라이브도 한 자리를 차지하기엔 충분하다. 그는 새 솔로 앨범 [Headphone Concerto]에서도 범상치 않은 타이틀만큼이나 인상적인 음악을 들려준다. 힙합에 기반을 두고 알앤비와 EDM을 혼합시키는 작업은 더 이상 신선한 시도가 아니지만, 앰프 라이브는 여기에 서로 다른 음향체 간의 경합을 통한 조화가 특징인 '협주곡'의 형식을 도입하여 차별화를 꾀했다. 앰프 라이브의 음악적 핵심인 힙합과 일렉트로 합이 현악과 대립하는 지점이 대표적. 퓨전 음악 그룹 더티 첼로(Dirty Cello)가 참여한 "Flight", 레게 밴드 레벨레션(Rebelution)의 보컬 에릭 래치매니(Eric Rachmany)가 조력한 "Signs", 우아한 멜로디가 감싸는 "Remembrance" 등이 그 좋은 예다. 랩퍼들과 작업을 단지 게스트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닌, 꼭 필요한 몇 곡으로 제한하고, 장르 외 뮤지션들을 초빙하여 협연한 것도 주효했다. 앨범의 얼굴 마담 역할을 하는 "Penny Nickel Dime"에서 감지되는 '레트로 소울 + 일렉트로닉 음악'의 다소 뻔한 스타일이 아쉽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시도와 절충이 잘 이루어지며 인상 깊은 순간을 여러 번 연출한다.
The Underachievers - Cellar Door: Terminus Ut Exordium 2014-08-12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의 레이블 소속이자 프로 에라(Pro Era), 플랫부시 좀비스(Flatbush Zombies)와 함께 비스트 코스트(Beast Coast)의 일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더 언더러치버스(The Underachievers)에 대한 기대감은 수직 상승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재능 있는 듀오는 이번 데뷔 앨범을 통해 그 기대감을 어느 정도 충족시킨다. 믹스테입을 통해서도 드러낸 바 있는 이들의 사이키델릭(psychedelic) 힙합 노선은 본작을 통해서도 이어지는데, 잘게 쪼개지거나 약간의 변칙된 패턴이 가미된 드럼을 바탕으로, 때론 신스 사운드를 압축하는 연출을 가미하며, 몽환적이거나 그윽한 무드를 형성하는 게 주된 특징이다. 특히, 다소 완만한 흐름의 초·중반부를 지나 "Ethereal"부터 마지막 곡 "Amorphous"까지 이어지는 후반부가 백미. 멜로디, 무드, 사운드 연출 모든 면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기는 지점이다. 멤버 에이케이(AK)와 잇사 골드(Issa Gold)의 리리시즘(Lyricism)도 이들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중요한 요소다. 탄탄한 라이밍을 바탕으로 브래거도치오(braggadocio/*필자 주: 자기 과시, 특히, 일종의 ‘허풍’을 가미한 과시)에서 벗어나 사유하는 20대 랩퍼로서 면모를 보이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개성이 덜한 음색이나 플로우의 약점을 효과적으로 상쇄한다. 올해 발표된 인상적인 데뷔작 중 한 장이라 할만하다.
Twista – Dark Horse 2014-08-12
트위스타(Twista)의 속사포 랩핑은 언제 들어도 경이로울 정도지만, 너무 확실한 개성 탓에 감흥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뎌질 수밖에 없는 한계 또한 자명하다. 결국, 이를 상쇄해 줄 수 있는 건 좋은 프로덕션일 텐데, 그것이 고스란히 증명된 경우가 바로 칸예 웨스트(Kanye West)가 막강 지원 사격을 가했던 [Kamikaze]였다. 그러나 이후, 트위스타의 앨범은 구성적으로나 음악적으로 내리막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Kamikaze]로 부활한 2004년 이래 그 랩핑처럼 쉼 없이 달려온 커리어를 멈추고 숨 고르기에 들어갔던 그가 절치부심하여 발표한 이번 새 앨범도 아쉽지만, 전세를 역전시키기엔 어려울 듯하다. 본작의 프로덕션은 트위스타에게 기대, 혹은 예상할 수 있는 스타일이 망라되어 있다. 빠르게 달리는 랩을 하기에 최적이라 할 수 있는 일명 '3박자' 비트는 물론, 트랩(Trap)과 알앤비 스타일의 비트 등이 그것이다. 그 위에서 완급 조절을 해가며 불 뿜는 트위스타의 랩핑은 흠잡을 곳 없다. 다만, 싱글을 비롯하여 진한 인상을 남기는 트랙이 없고,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구간마저 없다 보니 이번 앨범 역시 전작들의 단점을 답습한 셈이 됐다. 물론, 전반적인 완성도 면에서 좀 더 나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트위스타에겐 "Slow Jamz"와 "Overnight Celebrity"의 그늘이 잔뜩 드리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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