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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토픽] 2014 ‘리드머’ 국외 힙합 앨범 베스트 20
    rhythmer | 2014-12-31 | 2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리드머 필진이 1차 후보작 선정부터 최종 순위 선정까지 총 두 번의 투표를 선정한 ‘2014 국외 힙합 앨범 베스트 20’을 공개합니다. 2014년 국외 힙합 씬 역시 메이저와 인디에서 고르게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온 해가 아니었나 싶네요. 특히, 마지막 4분기에는 클래식급 앨범이 연이어 쏟아져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습니다. 아무쪼록 저희의 리스트가 한해를 정리하는 좋은 가이드가 되길 바랍니다.

     


    2013 12 1일부터 2014 11 30일까지 발매된 앨범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아무리 신곡만으로 구성되어 있더라도믹스테입(Mixtape)’은 제외하였습니다. , CD, 혹은 디지털로 정식 유통된 경우에는 후보군에 포함하였습니다.

     

    ※무료 공개지만, 정규 앨범, EP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앨범들은 후보군에 포함하였습니다.

     

    1차 투표에서 꽤 높은 점수를 얻었던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의 앨범 [You're Dead!]는 일렉트로닉, 재즈, 힙합 등이 고른 비율로 뒤섞인 퓨전 음악이라고 판단하여 후보군에서 제외하였습니다.



     

     


    20. Blueprint - Respect The Architect

     

    Released: 2014-04-22

    Label: Weightless

     

    언더그라운드에서 잔뼈가 굵은 콜럼버스 출신의 스토리텔러, 블루프린트(Blueprint) [Respect The Architect]에서 표명하고자 한 바는 분명하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으로서 가치를 재고시키는 것. 그리고 타이틀을 비롯한 직접적인 표현들을 통해 의도를 온전히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전반적으로 소울, 펑크(Funk) 음악들을 기반으로 보컬 샘플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한 프로덕션은 견고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곳곳에서 가슴 벅찬 향수를 자아낸다. 이전에 보여준 모습에 비해 한층 차분해진 무드와 거기에 맞춰 읊조리는 듯한 랩핑은 그것이 본래 그의 모습이었던 것처럼 더욱 유려해졌다. 작법은 물론, 가사와 여러 부분에서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에 대해 갖고 있는 존경심과 자신 역시 그곳에 근간을 두고 있음이 자랑스럽다는 걸 분명히 드러냈고, 탁월한 음악을 통해 그 가치를 증명했다.


     

    19. Homeboy Sandman – Hallways

     

    Released: 2014-09-02

    Label: Stones Throw Records

     

    홈보이 샌드맨(Homeboy Sandman)의 스타일을 규정짓는 많은 요소들 중에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현실을 꿰뚫는 주제의식과 창의적인 라이밍이다. 전직 영어 선생이기도 했던 그는 뛰어난 표현력과 다양한 은유를 동원하여 창의적인 운율의 라임을 주조하고 생생한 이미지를 구현해내는데, 이렇듯 탁월한 솜씨는 곡의 흥미진진한 전개에 힘을 보탠다. 또 이를 통해 일상의 이야기를 가볍고 익살스럽게 풀어내는 것은 물론,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꼬집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다. 더불어 탄력적인 리듬감과 생동감 넘치는 플로우가 빚어내는 감각적인 래핑은 어떠한 비트와도 잘 어우러지며 매번 뚜렷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기성 힙합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가지각색의 음악적 재료들을 적극 수용한 비트 위에서 랩핑을 위한 공간적 여유를 영리하게 확보하고 그 안에서 풍부한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재능은 꽤 매력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유의 감수성과 날카로운 통찰력은 이번 앨범에도 고스란히 연장되어 있다. 집단의 전제와 틀을 거부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길을 걷고자 하는 홈보이 샌드맨의 음악적 지조와 방향성이 만들어낸 탁월한 앨범이다.



     

    18. Mick Jenkins – The Water[s]

     

    Released: 2014-08-12

    Label: Cinematic Music Group

     

    스타일의 과용 탓에 이제 식상함이 먼저 앞설만도 한 클라우드 랩(Cloud Rap)이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몽환적이고 차가운 사운드와 초현실적 가사로 대표되는 클라우드 랩의 과부하 상태 속에서도 시카고 출신의 랩퍼 믹 젠킨스(Mick Jenkins)와 그의 앨범은 빛을 발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The Water[s]]는 무료로 공개된 믹스테입이다. 그러나 전부 창작곡으로 구성되어 정식으로 판매 또한 되고 있는, '정규 앨범 같은 믹스테입'이다. 그만큼 완성도가 탁월하다. 전반적으로 타이틀처럼 침잠되고 꿈결 같은 무드가 지배적인 가운데, 본작을 여느 클라우드 랩 앨범보다 높게 위치시키는 결정적 요소는 믹 젠킨스의 랩퍼로서 재능이다. 적당한 바리톤의 음색으로 빠르기와 강약을 조절해가며 여유롭게 비트를 타는 랩핑이 실로 매력적. 특히, 그는 상당히 수준 높고 감각적인 은유를 구사하는데, 그런 와중에도 청자가 곡의 주제를 가능한 한 쉽게 이해하게 하기 위하여 가사적 미학을 해하지 않는 선에서 수준을 조절하는 능력이 발군이다. 인상적인 첫 공식 결과물을 통해 정규작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끌어올리는 데에도 성공했다.



     

    17. Isaiah Rashad – Cilvia Demo

     

    Released: 2014-01-28

    Label: Top Dawg Entertainment

     

    혜성 같은 등장. 탑 독(Top Dawg Entertainment 이하: TDE)의 히든카드 이사이야 라샤드(Isiaiah Rashad)는 레이블 선배인 스쿨보이 큐(Schoolboy Q)나 앱 소울(Ab-Soul)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이사이야는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과대포장 없이 묘사하는데, 어두웠던 과거와 그로 인해 받아들인 철학적/종교적인 인생관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냉소적이고 삐뚤어진 그의 성향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그는 아버지와 갈등, 마약을 거래하던 날들과 자살에 대한 심경, 인종차별, 그리고 웨스트코스트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TDE의 유일한 남부 출신 챠타누가(Chattanooga) 태생 멤버로서 남부 힙합에 대한 오마주 등을 그려내는데, 각 트랙마다 내뱉는 감정을 달리하며, 청자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이런 형식의 딜리버리는 페이소스를 극대화함과 동시에 그가 얼마나 곡의 이해력이 뛰어난지를 증명하기도 한다. 더불어 몽환적이면서 어두운 비트들은 그의 우울한 정서와 삐뚤어진 공격성을 효과적으로 받쳐준다. 결과적으로 이사이야의 [Section.80]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데뷔작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16. Apollo Brown & Ras Kass – Blasphemy

     

    Released: 2014-10-27

    Label: Mello Music Group

     

    스타일을 가리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비트를 타는 랩 실력과 가공할 리리시즘(Lyricism)으로 무장한 베테랑 랩퍼 래스 캐스(Ras Kass)와 샘플링과 루핑의 미학에 근거한 '90년대 붐뱁 힙합의 명맥을 있고 있는 프로듀서 아폴로 브라운(Apollo Brown)이 뭉친 이 앨범은 신성 모독적인 주제를 내세운다. 본작에서 이들이 설파하고자 하는 것의 핵심은 종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다. 래스 캐스는 특정 종교만을 표적으로 삼지 않고, 주요 종교를 다 아우르면서 높은 식견을 바탕으로 교리 안에 내재된 모순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물론,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역사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개인, 혹은 범국가적 폭력 문제까지 파고들어 낱낱이 까발리고 비판한다. 그리고 묵직하게 떨어지는 드럼과 샘플링을 통해 조성하는 진중한 무드가 만나 탄생한 아폴로 브라운표 붐뱁 사운드가 뒤를 받치며 앨범을 더욱 극적으로 이끈다. 올해 가장 민감한 주제를 건드린 힙합 앨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본작을 통해 래스 캐스는 털끝만큼도 녹슬지 않은 랩 실력으로 이 판에서 여전히 살아남고 있는 이유를, 아폴로 브라운은 확실히 믿고 듣는 이름이 된 프로듀서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눈부시게 증명했다. 



     

    15. Planet Asia & Tzarizm - Via Satellite

     

    Released: 2014-07-29

    Label: Doxside Music Group

     

    데뷔 약 16년차에 이르는 베테랑 플래닛 아시아(Planet Asia)는 잘 쓰고 잘 뱉는 엠씨이지만, 커리어를 대표할만한 앨범을 한 장도 보유하고 있지 못 했다. 이는 대부분 인상적이지 못했던 프로덕션 탓인데,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그 짝을 제대로 만났다. 플래닛 아시아에게 (드디어) 흠잡을 데 없는 앨범을 안긴 주인공은 올랜도 출신의 무명 프로듀서 티자리즘(TzariZM)이다. 결과적으로 그 역시 플래닛 아시아와 합작을 통해 조금이나마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니 이 정도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경우라 할만하겠다. MPC로 무장한 티자리즘의 비트는 기본적으로 샘플링에 기반을 둔 붐 뱁 사운드지만, 유명한 샘플 원곡의 아우라나 옛 선배들의 답습에 안일하게 기대는 이들의 결과물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특히, 보컬 샘플을 자르고 운용하는 면에서 발군인데, 이 방면의 또 다른 실력자 아폴로 브라운(Apollo Brown)과는 또 다른 감흥을 선사한다. 몽환적인 무드, 범우주적 무드, 펑키한 무드, 소울풀한 무드 등등, 통일감 있는 사운드 안에서 다양한 무드를 조성하는 솜씨도 탁월하다. 이 위에서 플래닛 아시아가 수준급의 은유와 직설을 오가며 꽉 조이는 랩을 얹음으로써 본작은 (커버 아트워크의 허탈함과 달리) '90년대 이스트코스트 힙합의 전형적인 감흥을 간직했으면서도 전혀 식상하지 않은 앨범이 되었다.



     

    14. Young Fathers – Dead

     

    Released: 2014-02-04

    Label: Anticon

     

    스코틀랜드 출신의 그룹 영 파더스(Young Fathers)는 스스로 사이키델릭 힙합 (무려) '보이 밴드(psychedelic hip hop boy band)'라 정의하고 있지만, 이것이 일반적으로 분류하는 (음악성을 진지하게 논하는 것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먼) '보이 밴드'와 같은 의미가 아닐 거라는 건, 극단적인 실험의 선두주자였던 레이블 안티콘(Anticon) 소속이라는 점과 앨범 속 음악들이 대변한다. 힙합, 인더스트리얼, , EDM, 펑크(Funk), 아프리카 전통 음악 등의 요소가 사이키델릭한 사운드 속에서 한데 어우러지고, 시종일관 차갑고 불길하며, 몽환적이고 혼란스러운 무드를 자아낸다. 랩에서도 마약, 섹스, 클럽, 자기과시 등의 주제 대신 사회와 시스템 속에서 느끼는 분노와 의혹, 인간관계와 내면에 집중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그저 젊은 세대의 그럴듯하면서도 치기 어린 시선이 아니라 상당히 수준 있는 은유와 주제 의식을 표현한다는 점은 이들의 가치를 더욱 높게 한다. 확실히 우리는 이제 두 개의 장르명으로도 정의할 수 없을 '얼터너티브 음악의 보편화' 시대에 살고 있다. 오히려 장르의 전통적인 성질을 고이 간직한 음악이 실험적이고 신선하게 받아들여진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요즘이다. 여기에는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어쨌든 견고한 완성도를 바탕으로 장르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작업물을 접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영 파더스의 [Dead]는 그 근거가 되기에 충분하며, 오늘날 힙합 음악(혹은 EDM)의 범주가 어디까지 넓혀졌는가를 목격하고 체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좋은 예가 될만하다.

     



    13. YG – My Krazy Life

     

    Released: 2014-03-18

    Label: Def Jam

     

    서부 특유의 갱스터리즘(Gangsterism: 갱과 관련한 일련의 행위들)으로 무장한 컴튼(Compton) 출신의 와이쥐(YG)가 발표한 이 데뷔작은 서던 힙합의 새로운 간판이 된 래칫 뮤직(Ratchet Music) '90년대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쥐펑크(g-Funk)가 인상적으로 결합한 앨범이다. 근래 등장한 웨스트코스트 랩퍼들의 앨범에서 당대의 스타일이 녹아 든 지점을 종종 접할 순 있지만, 이번처럼 웨스트코스트 사운드가 전면에 나선 건 처음이라는 점에서 더욱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것은 앨범의 주인공인 와이쥐와 메인 프로듀서로 활약한 디제이 머스타드(DJ Mustard)의 협업이 만들어낸 성과다. 비단 프로덕션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구성 면에서도 웨스트코스트 갱스터 랩 앨범의 맛을 잘 살리고자 한 노력이 역력하다. 동네 깡패와 어울리다가 남편처럼 감옥에 가게 될 지도 모를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외침으로 시작해서 와이쥐가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을 표하는 마지막 곡에 이르는 동안 갱 집단 블러즈(Bloods)에 들어가게 된 계기부터 컴튼을 배경으로 여과되지 않은 생생한 거리의 일화가 한바탕 펼쳐진다. 옛 갱스터 랩 걸작들을 회상하게끔 하는 스킷(Skit)의 적절한 배치도 효과적이었다. 올해 웨스트코스트 갱스터 랩의 메인스트림 침공이 참으로 매섭게 진행되었음을 대변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12. Damani Nkosi – Thoughtful King

     

    Released: 2014-06-03

    Label: Damani Music

     

    지난 2006, 수파플라이(Soopafly), 배드 럭(Bad Lucc)과 함께 덥 유니언(Dubb Union aka Western Union)이란 그룹의 멤버로 등장했을 때만 해도 대마니(Damani)의 존재감은 미비했다. 그러나 대마니 코지(Damani Nkosi)라는 이름을 내걸고 음악적인 방향성까지 완전히 바꾸고 발표한 이 첫 솔로 앨범에서 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감을 과시한다. 기존의 웨스트코스트 바운스에서 벗어나 소울풀하고 재지한 프로덕션을 꾸리고, 그동안 봉인되었던 리리시스트(Lyricist)로서 면모를 자유롭게 내비치는데, 그의 진심 어리고 사색적인 가사와 부드럽게 치고 나가는 랩핑이 어우러지며 연출하는 감흥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좋은 랩 앨범 속 곡들이 대개 그렇듯이 아티스트 개인의 이야기임에도 그것이 (꼭 음악인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대변하는 것으로 자연스레 확장될 때 희열이나 여운이 더한 법인데, 본작의 음악이 그러하다. 이러한 그의 성공적인 변신에 걸출한 뮤지션들도 힘을 보탰다. '90년대부터 활약해온 관록의 프로듀서 워린 캠벨(Warryn Campbell)이 많은 곡에 참여하여 좋은 멜로디를 다수 주조했고, 젊은 거장이라 할만한 로버트 글래스퍼(Robert Glasper)가 여유 넘치는 연주로, 뮤지끄 소울차일드(Musiq Soulchild)가 소울풀한 보컬을 통해 음악의 질감과 완성도가 더욱 탄탄해지는 데 일조했다. 올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등장한 걸작 중 하나라 할만하다.

     



    11. Step Brothers - Lord Steppington

     

    Released: 2014-01-21

    Label: Rhymesayers

     

    랩퍼이자 프로듀서인 두 친구 알케미스트(Alchemist)와 에비던스(Evidence)가 함께한 이번 앨범도 '믿고 듣는 ALC표 비트'의 산물이다. 한 곡을 제외한 모든 곡이 알케미스트의 프로듀스로 이루어졌으며, 앨범 전반에 걸쳐 특별히 빠른 BPM 없이 루프에 승부수를 걸었다. '90년대의 랩을 이용한 턴테이블 리릭, 영화 속 대사 등 다양한 소스를 활용하되, 모든 컴포넌트를 단숨에 버무리기보다는 초반부나 코러스에 따로 배치시키는 작법을 철저하게 고수했다. 화려한 맛은 없지만, 입체감을 주는 드럼 루프로 앨범을 이끌어 가는데, 바로 이것이 알케미스트의 강점이다. 알케미스트의 최근 행보를 바라보면, 이렇게 단기간에 콜라보레이션 앨범을 여러 장 발매하면서도 좀처럼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특히, [Lord Steppington]은 최근 발매한 ALC 콜라보레이션 시리즈 중 가장 깔끔한 작품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잘 만들었다. 너무 많은 소스를 소진한 탓에 언젠가 삐걱거릴 시기가 올 것이라는 일부 평론가의 우려는 기우였을 뿐, 아직 그런 시기가 오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공간감 넘치는 비트가 가득한 이번 앨범은 그동안 발표한 많은 앨범 중에서도 무척 빼어난 축에 속한다. [Lord Steppington]은 알케미스트뿐만 아니라 에비던스의 디스코그래피에서도 좋은 음반으로 남을 것이 확실하다.

     



    10. Dilated Peoples - Directors of Photography

     

    Released: 2014-08-12

    Label: Rhymesayers

     

    그룹의 멤버인 디제이 바부(DJ Babu)는 본작의 발매 직전 가졌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하던 클래식을 보여줘야 하지만, 진보적인 것들 또한 시도할 필요가 있어.” 이 한 마디에는 다일레이티드 피플스의 커리어 전체를 관통하는 음악적 신념과 방향성이 명확하게 담겨 있다. 그리고 이는 이번 앨범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샘플링의 질감을 한껏 살리고 투박한 비트를 내세워 소울풀함과 야성미를 물씬 풍기는 다일레이티드 피플스의 기존 작법과 스타일은 이번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이전보다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를 전면에 내세운 게 눈에 띈다. 더불어 보다 다채로워진 곡의 전개와 예리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가사까지 더해지며 앨범의 에너지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뿌리가 되는 고전 힙합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으면서도 바람직한 확장과 변형에도 소홀하지 않는 그들의 적극적인 자세는 그것만으로도 큰 의의를 지닌다. ‘최첨단 전통주의를 지향한다는 그들의 뼈 있는 말처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즉, 시대를 초월한 음악을 추구하는 다일레이티드 피플스의 대쪽 같은 신념은 그들의 타고난 음악적 재능과 만나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었으며, 그 효과는 이번 앨범에서도 여실히 발휘되었다. 본작을 끝으로 당분간 그들의 새 앨범을 만나볼 수 없을 듯하여 아쉬울 따름이다.

     



    9. Cormega - Mega Philosophy

     

    Released: 2014-07-22

    Label: Slimstyle Records

    남자들의 뜨거운 우정과 거리에서 쌓은 지식을 멋들어지게 설파하던 베테랑 코메가(Cormega)는 비록, 인기는 떨어졌을지언정 랩 실력이 제자리를 떠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는 이번 여섯 번째 앨범에서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명장 라지 프로페서(Large Professor)에게 전곡을 일임한 본작에서 일단 코메가는 여전히 기똥찬 랩을 선보인다. 그를 한 물 간 랩퍼라며 폄훼하는 이들에게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실력으로 증명하듯 전성기 못지 않은 아름답고 살벌한 플로우가 앨범 전반을 수놓는다. 특히, "Rap Basquiat" 1 17초부터 1 30초 구간에 휘몰아치는 랩의 폭풍을 보라. 전율이 일 정도다. 무엇보다 코메가는 이번 앨범에서 마약과 돈에 관한 얘기들로만 점철된 랩 음악을 하는 랩퍼들, 그런 음악을 만들도록 강요하고 유도하는 음악 산업계와 관계자들, 그리고 그런 음악들만 틀어대는 방송 시스템을 냉철한 시각과 고감도 라이밍으로 비판하며, 베테랑으로서 일침을 가한다. 여기에 라지 프로페서 특유의 라이브 인스트루멘탈 질감을 살린 프로덕션이 가세하여 참으로 묵직하고 진중한 무드를 조성하는 데 그 맛 또한 일품이다. 두 베테랑의 관록이 빚은 탁월한 '힙합 철학서'라 할만하다.

     



    8. Black Milk – If There’s A Hell Below

     

    Released: 2014-11-04

    Label: Computer Ugly

     

    점점 빠른 속도로 급변하는 유행을 수용해 자신도 흐름에 편승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고유한 스타일을 고수해나갈 것인가? 많은 창작자들이 맞닥뜨렸거나, 혹은 계속 고민하고 있는 난제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블랙 밀크(Black Milk)는 굉장히 영민한 뮤지션이다. 트렌드를 적당한 선에서 수용해나가는 동시에 기존의 색깔, 즉 디트로이트 힙합의 색을 지키며 고유한 방향성 또한 점차 발전시켜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작은 위 난제에 그가 당당히 던지는 상당히 모범적인 답안이다. 특유의 공간감이 돋보이는 드럼 위에 감각적으로 얹은 신스와 다양한 사운드 소스의 활용은 이제 블랙 밀크의 고유한 스타일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겠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그가 제이 딜라(J Dilla)의 적자로서 정체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꾸준히 자신만의 색깔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탐구의 성과는 이번 앨범에서도 확연히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그는 실력 있는 랩퍼이기도 한데, 읊조리는듯한 랩핑은 속도감이 붙어도 그 유려함이 흐트러지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전개되고, 안정적인 톤과 더불어 성찰적인 가사는 듣는 맛을 한껏 끌어올린다. 왕성한 창작욕을 가진 이 재능 있는 뮤지션은 그동안 충분히 완숙한 역량을 보여주었고, 이는 꾸준한 완성도의 결과물이 증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고 있는 그이기에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자신의 음악을 발전시켜나갈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더욱 흥미롭다.

     



    7. Vince Staples – Hell Can Wait

     

    Released: 2014-11-10

    Label: Def Jam

     

    호평받은 믹스테입 [Shyne Coldchain] 시리즈와 [Stolen Youth], 그리고 오드 퓨쳐(Odd Future)와 인상적인 협연으로 큰 기대를 모은 신예 랩퍼 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의 첫 공식 EP [Hell Can Wait]는 그를 향한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켜준 작품이다. 갱스터 랩의 배경으로 익숙한 캘리포니아 롱비치 (Long Beach, California) 출신답게 그는 고유한 시선으로 많은 부분 청자를 섬뜩하게 만드는 표현을 사용해 자신이 바라보는 주변을 그려낸다. 1993년생의 이 어린 랩퍼는 위험한 동네를 그려내며 갱스터 랩 판타지를 적극 사용하면서도 자신의 유약한 면과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능력에도 탁월하다. 앨범의 감상을 마치면 끝내주는 랩 앨범을 들었다는 감흥과 함께 쉽게 다른 음악으로 넘길 수 없는 찜찜한 여운이 생기는 이유는 온전히 빈스 스테이플스가 써낸 가사의 힘이다. 그를 적극 지원하고 있는 노아이디(No I.D)의 참여는 물론, 드레이크(Drake)와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프로듀서 해글러 타이란트(Hagler Tylant)의 프로덕션 역시 빈스 스테이플스 랩과 시너지가 탁월하다. 24분의 짧은 러닝타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견고하게 짜인 트랙들은 버릴 것 없는 구성미를 보여준다. 21살의 청년이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던져진 삶과 그 주변을 수준 높은 가사와 프로덕션, 랩 퍼포먼스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나스(Nas) [Illmatic]이 자연스레 연상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6. ScHoolboy Q – Oxymoron

     

    Released: 2014-02-25

    Label: Interscope Records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이후, 블랙 히피(Black Hippy)에 대한 주변의 기대치가 몇 배는 상승한 상황에서 첫 번째로 총대를 멘 스쿨보이 큐(ScHoolboy Q)의 이 메이저 데뷔작은 '90년대 갱스터 랩에서 백인 경찰관에 대한 분노를 걷어낸 게 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용적인 면에서 지극히 전통적인 갱스터 랩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 스쿨보이 큐의 언어는 은유적이기보다 직설에 가깝고, 그만큼 상황과 현장의 묘사는 세부적인 편이다. 무엇보다 그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크립 갱의 일원이 되기까지 일화와 된 이후의 이력을 풀어놓으면서 클럽용 힙합에 가려 이젠 구전동화쯤으로 치부되어오던 살벌한 거리의 이야기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각인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본작의 이야기들은 스쿨보이 큐 특유의 다채롭고 타이트한 플로우를 타고 더욱 강한 생명력을 얻는다. 적어도 90년대 갱스터 랩을 듣고 자란 세대에게라면, 특별할 게 없을 컨텐츠임에도 진부함이 아니라 반가움으로 다가오는 건 스쿨보이 큐의 탁월한 랩 실력과 현장 묘사 덕분이다. 본작은 그야말로 근래 (언더그라운드에서조차) 듣기 어려운 제대로 된 'Gangsta Shit(*필자 주: 갱들의 생활과 연관된 특정한 것들-, , , 돈 등등-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은어)'이 잘 정제되어 담긴 갱스터 랩 앨범이다. 그리고 이러한 음악적 성취가 (켄드릭 라마가 그랬듯이) 스쿨보이 큐의 재능에서 비롯한다는 점이 중요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블랙 히피 동료나 저 옛날 한 가닥 하던 선배들과는 또 다른 방향에서 효과적으로 갱스터 랩 판타지를 이어나간다.




    5. Dam-Funk & Snoopzilla – 7 Days of Funk

     

    Released: 2014-12-10

    Label: Stones Throw Records

     

    이 앨범의 감흥을 100% 온전히 느끼기 위해선 'P-Funk' 'G-Funk'라는 장르의 감상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댐 펑크(Dam Funk)와 스눕 독(Snoop Dogg aka Snoopzilla) 모두 펑크의 혈통을 잇는 적자인데다가 본작의 음악적 뿌리이자 정체성 역시 해당 장르이기 때문이다. 앨범 제목부터 뮤지션 이름까지 온통 '펑크'로 색칠된 이 앨범은 그만큼 '펑크'로 시작해서 '펑크'로 끝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펑크(P-Funk)와 쥐-펑크(G-Funk)의 특징이 아주 이상적인 비율로 섞여있다. 랩퍼 스눕을 위해 댐 펑크는 기존 작업물들보다 드럼을 강조했는데, [The Chronic] [Doggystyle]로 이어지는 닥터 드레 특유의 펑키하고 둔탁한 리듬 파트가 향수를 자극함과 동시에 생생한 질감의 80년대 피-펑크 사운드 소스들과 어우러지며, -펑크와 쥐-펑크의 경계에 걸쳐있는 절묘한 감흥을 선사한다. 여기에 [Tha Doggfather] 시절로 되돌아간 듯 나긋나긋하면서도 타이트한 스눕의 랩핑과 감초 같은 보컬이 얹히니 이건 스눕의 앨범이나 댐 펑크의 앨범,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던 신선하고 펑키한 결과물이 탄생했다. 게다가 [Doggystyle] 20주년을 맞이하여 프로젝트가 감행된 것과 독 파운드(Tha Dogg Pound)의 참여는 또 얼마나 엔터테인먼트적이면서도 감격스러운가?! 이들의 CD 겉 비닐에는 'a New G-Funk Era'라고 써있는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다. 이것은 그야말로 본작을 정의하는 간단하면서도 핵심적인 문구다. 여기에 조금 더 부연하자면, [7 Days of Funk] '-펑크를 향한 두 펑크 덕후의 멋들어진 헌정이자 21세기가 낳은 쥐-펑크 클래식'이다.   

     



    4. Freddie Gibbs & Madlib – Piñata

     

    Released: 2014-03-18

    Label: Madlib Invazion

     

    최근 몇 년 사이 급속도로 인지도를 넓힌 선수 프레디 깁스(Freddie Gibbs)와 스톤 스로우(Stones Throw)의 간판 프로듀서 매드립(Madlib)이 합작한 본작은 2011년부터 이어진 [Thuggin']-[Shame]-[Deeper] EP 3부작을 포함하는 LP이다. 모든 곡에 매드립의 손길이 닿은 만큼,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곡들도 기존 싱글의 스타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 매드립의 장기인 밀도 있는 샘플링과 빈티지 사운드의 운용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점철되어 있다는 것이다. 매드립이 자주 해온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xploitation/*편집자 주: 1970년 전후에 나타났던 흑인 영웅이 등장하는, 흑인 관객들을 위한 영화를 일컫는다.) 영화 음원의 활용도 수시로 이루어졌다.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사운드를 의도적으로 만드는 데에 있어 '장인'으로 통하는 매드립의 센스는 조금도 녹슬지 않았으며, 직접적인 만남을 자주 갖지 못한 채 작업이 이루어졌음에도, 프레디 깁스와 조화에는 문제가 없다. 어떤 스타일의 비트에서도 맛깔스러운 랩을 해내던 깁스에게 처음으로 의구심을 갖게 했던 [ESGN]과 달리, 이번에는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시종일관 활약을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프레디 깁스가 제 몸에 맞는 옷을 다시 찾아 입은 듯한 모습이다. 이미 앨범 발매 전 많은 수록곡이 공개되었던 만큼, 마니아들은 기대치에 충족하는 앨범이 탄생할 거라고 확신했을 터인데, 깁스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랩퍼에겐 저마다 어울리는 비트메이커가 있기 마련이라는 점을 되새기게 해주는 사례로 남을 것이 확실한, 거친 남자 냄새와 아스라한 낭만이 동시에 담긴 작품이다.

     



    3. Run The Jewels – Run The Jewels 2

     

    Released: 2014-10-27

    Label: Mass Appeal Records

     

    힙합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킨 듀오, 킬러 마이크(Killer Mike)와 엘-(El-P)는 그 충격과 여운이 완전히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1년 만에 두 번째 정규 앨범을 완성했다. 일단 이들은 RTJ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이피엠디(EPMD)를 모티프로 했다는 말에서 보여주듯이 두 남자는 '무겁지 않은 힙합' RTJ의 컨셉트임을 공언해 왔다. 이로써 둘은 음악적으로 각자의 솔로 앨범에서 보여준 모습과 차별화를 둔다. -피는 솔로 앨범에서 자주 보여줬던 염세주의자의 느낌을 가급적 배제하려 했고, 킬러 마이크도 정치적 이야기나 사회의 문제점을 날 선 느낌으로 비판하던 모습에서 탈피해 다른 이야기에 더 치중하는 편이다. 워드플레이가 난무하고, 욕설을 귀가 닳도록 들려주는데, 누군가 말한 '허풍선이 랩'이라는 수식어가 이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80 ~ '90년대 힙합을 상징하는 아이콘인 EPMD를 모티브로 삼았다고 해서 RTJ 100퍼센트 붐-(Boom-Bap) 힙합을 표방하는 것은 아니다. -피는 이 프로젝트에서 자신이 가진 프로듀서로서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 괴력을 발휘한다. 데피니티브 젹스(Definitive Jux) 레이블 초기 시절, -피의 주된 무기였던 폭발하는 파열음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앱스트랙 힙합(Abstract Hiphop)으로 언더그라운드의 최전선에 섰던 시절처럼 난해하지도 않다. 트랩 뮤직(Trap Music)이 힙합계를 강타하는 와중에 이렇게 색다른 방식으로 그루브를 제공하는 RTJ의 행보가 그저 대단하게 느껴 질 따름이다. 계속해서 무료 디지털 음원을 공개하는 이들의 자세도 놀랍지만, 그 내용물의 질이 더욱 놀랍다. 특히, 재미있는 힙합을 하겠다는 이들의 기획 의도가 두 앨범에 걸쳐 청자에게 정확하게 전달되고 있다. 더 이상 무슨 칭찬이 필요하랴. 2014년 힙합 앨범 중 가장 참신한 그루브를 가진 앨범을 논한다면 이 앨범을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한다.



     

    2. Logic – Under Pressure

     

    Released: 2014-10-21

    Label: Def Jam

     

    믹스테입을 통해 기대치를 한껏 끌어올렸던 신예, 로직(Logic)이 발표한 이 정규 데뷔작은 지난 2013년을 뒤흔들었던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명작 [Good Kid, m.A.A.d City]를 연상하게 한다. 실제 그가 직접적인 영향을 밝혔듯이 일부 곡에선 같은 샘플을 사용하거나 비슷한 무드를 조성하기까지 했으며, 앨범의 주제와 내러티브 면에서도 많은 부분 흡사하다. 중요한 건, 이것이 단순한 카피캣의 수준이 아니라 굉장한 완성도로 귀결되었다는 점이다. 마약, 혹은 범죄가 원인이 된 결손가정에서 자라 일명 '거리의 삶'을 체험하다가 랩으로 성공한다는 통속적인 이야기가 로직의 경탄할만한 플로우와 가사, 그리고 준수한 프로덕션까지 삼박자가 기가 막히게 어우러지며, 기존의 뻔한 '밑바닥 인생 탈출기'와는 전혀 다른 수준에 올라섰다. 치밀하게 짜인 라임 안에서 높은 수준의 은유와 배설의 쾌감을 부르는 욕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았으면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리리시즘(Lyricism)이 완성되고, 빈틈없이 전개되는 플로우가 그 탁월함에 방점을 찍는다. 더불어 (그가 실제로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청자가 서사를 최대한 잘 따라가며 이해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풀어서 얘기하는 와중에도 가사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 역시 훌륭한 부분이다. 더불어 그 속에서 전개되는 개인의 이야기가 슬럼가의 젊은이들이 처한 환경과 여전히 미국이 직면한 여러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는 것으로 확장된다는 점에서 더욱 짜릿하다. 그야말로 검증된 실력을 지닌 신예가 부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만들어낸 압도적인 데뷔작이다.

     



    1. Big K.R.I.T. – Cadillactica

     

    Released: 2014-11-10

    Label: Def Jam

     

    ※다음해 지구가 멸망이라도 하려는지 짧은 시기에 클래식급 앨범이 대거 쏟아진 2014년 힙합 씬에서 대망의 1위는 빅 크릿(Big K.R.I.T.)의 두 번째 앨범이 차지했다.

     

    이 앨범은 굉장함의 단계를 지나 위대함의 영역으로 접근하는 빅 크릿을 담고 있다. 꾸준한 수작을 믹스테잎으로 계속 생산했던 경력 때문에 소포모어 징크스에 대한 걱정은 애당초 없었지만, 이처럼 대단할 것이라는 예상도 힘들었다. 우선 전작보다 좀 더 입체적으로 설계된 메시지의 구조가 대단히 인상적이다. '캐딜락티카'라는 가상의 행성을 배경으로 추상적이고 모호하면서도 매력적인 컨셉트를 세우고, 빅 크릿을 둘러싼 다양한 상황을 바탕으로 그의 분노와 고통, 열정과 그를 통해 극복해나가는 과정의 풍부한 이야기를 때로는 직접적으로 토해내고, 한편으론 은유적인 메시지로 전하기도 한다. 사실 이 캐딜락티카라는 배경은 앨범의 전체 구성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도구로 작용한다. 그는 현실 속의 상황에 대한 울분을 직접적인 어조로 토해내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조금 모호하게 에둘러 자신의 욕망을 변호하거나 정당화한다. 전지적 창조자이기도 하고, 시대의 희생자이기도 하며, 응당 자신의 것이어야 할 무엇(더 큰 명성, , 존경)을 갖지 못해 분노하는 허슬러인 동시에 그 앞의 고난들을 하나하나 극복해가는 전사이기도 하다. 약간은 빈티지한 질감과 전작처럼 전통적인 서던 랩 비트의 구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적절하게 배합해 탄생한 빅 크릿의 음악은, 트랙의 배치와 구성까지 세밀하게 디자인되어 다채로운 사운드가 앨범이라는 하나의 덩어리로도, 각 트랙 고유의 매력도 모두 온전히 간직하게 되었다. 매해 쏟아지는 다양한 수작 가운데서도 이만한 완성도를 지닌 프로덕션의 앨범은 극히 드물게 나타난다. 대부분의 앨범은 강력한 킬링 트랙이나 비슷한 템포의 트랙을 묶어서 챕터 별로 배치하며 그 사소한 결함을 가리는 데 노력하지만, 이 앨범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완벽하기를 원한다. 미시시피 출신의 이 괴물은 꾸준히 걸작을 쏟아내는 중이다.



    : 강일권, 남성훈, 양지훈, 이진석, 지준규, 예동현, 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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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dafi (2015-01-15 16:09:24, 121.88.125.**)
      2. J.Cole 은 앨범이 12월에 나와서 리스트에 못올랐나보군요.
        잘읽었습니다.
      1. 유재윤 (2015-01-08 15:52:26, 211.226.243.***)
      2. 밑에 계신 분은 그럼 4번 트랙까지 밖에 안듣고 그런 말씀 하시는건가여?ㅎㅎ
      1. 나미에 (2015-01-06 21:23:49, 124.54.41.***)
      2. 감사합니다. ㅎㅎ
      1. 꼰대왕리드머 (2015-01-03 02:48:32, 58.234.66.***)
      2. 솔직히 빅크릿 이번앨범 진짜 좆구리고 지루해서 못듣겠슴..
        언더그라운드는 그나마 좀 괜찮았는뎅 이번껀 애가 무슨놈의 천재병에
        걸렸는지 사운드도 괴랄하고 졸라게 병신같이 지루하고 하품 나오는게
        4번 트랙 이상을 못넘김..
        빅크릿 이넘은 지가 무슨 칸예인줄로 단단히 착각하고있슴
        암턴.. 리드머는 예나 지금이나 중2병 걸려서 뭔가 있는척 가오 잇빠이 잡는
        꼰대틱한 앨범들의 후장을 맛있게 잘 빨아주는구나.. 에잉 촌시려~ ㅋ
      1. Bruce Mighdy (2015-01-02 18:29:53, 58.123.207.**)
      2. HiphopDX에서 선정한 25선과 겹치는 음반들이 많이 보이네요~ 여하튼 겹친 작품들도 퀄리티가 높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죠~ 잘 봤습니다!^^
      1. Fukka (2015-01-02 15:31:59, 110.70.53.***)
      2. 잘봤습니다~ 1위부터 5위까지는 뭐가 1위 먹어도 상관없는 좋은 앨범들! 그나저나 빈스 스테플스 앨범 기대보다 좋아서 놀랐어요
      1. pusha (2015-01-02 00:53:30, 123.214.63.***)
      2. 빅크릿 앨범이 1위라는건 솔직히 많이 오버임~
        리드머 요즘 은근히 컬트 취향으로 나가는듯..
      1. 0r트모스 (2015-01-01 20:30:18, 125.180.213.***)
      2. common 이 빠진게 아쉽네요 ㅎㅎ
        많이 들어보진 앨범이 많으니 차차 들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 blanq (2015-01-01 11:30:05, 114.206.197.***)
      2. prhyme이랑 j cole빠진게 좀아쉽긴하지만 다 좋게들은앨범들이네요
        알앤비 20선도 선정해주실란지... 기대하고있겟습니다ㅎㅎ
      1. Drizzy (2015-01-01 00:37:54, 211.176.67.***)
      2. http://genius.com/Rap-genius-top-20-rap-albums-of-2014-lyrics
        Rap
        Genius 올해의 랩 앨범 Top 20 랑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도 쏠쏠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역시나 커먼은 없군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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