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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키스 에이프와 씨엘의 ‘난 저들과 달라요’가 불편한 진짜 이유
    rhythmer | 2015-09-10 | 66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 남성훈

     


    이제껏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여겨지던 미국의 랩/힙합 시장에 진출한 두 명의 한국 랩퍼가 화제다. 오지 마코(OG Maco) "U Guessed It"을 레퍼런스 삼아 제작한 비디오 "It G Ma"의 성공적인 온라인 이슈 몰이를 통해 차세대 트랩스타로 주목받은 키스 에이프(Keith Ape)와 유명 케이팝(K-Pop) 그룹인 2ne1의 멤버로 이미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은 씨엘(CL)이 그들이다. 키스 에이프는 원곡자인 오지 마코에게 수익을 약속하며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잡음을 깔끔하게 없애고, 유명 랩퍼들의 지원을 받은 "It G Ma" 리믹스 트랙을 앞세워 미국 시장에 정식 진입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씨엘 역시 오지 마코의 피처링이 가미된 "Dr.Pepper"라는 트랙과 비디오로 다수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미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연착륙 중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뮤지션 모두 본격적인 미국 행보를 시작하자마자 북미 매체와 인터뷰에서 뱉은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이 두 개의 인터뷰 논란이 결국 서로 닮아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먼저 키스 에이프가 유튜브에서 성공과 이를 통해 미국에 진출한 소회를 밝힌 컴플렉스(Complex)지와 인터뷰에서 문제가 된 부분을 확인해보자. 페이지의 내용에 따르면, 그는 먼저 한국어로 한국에 코홀트(Cohort) 빼고 하고 싶은 크루 없었어요.”라고 말한 후, "Because you know Korean rap, it sucks. Bad(왜냐하면, 한국의 랩, 그거 엿 같아. 구려)"라며, 마치 트랩 가사 스타일 같은 영어답변을 덧붙였다고 한다. 논란이 된 부분은 영어로 덧붙인 문장이다. 한국의 유명 힙합 레이블에서 수년간 활동했던 이가 미국 잡지에 한국 힙합을 싸잡아 비하했으니, 읽는 이에 따라서는 꽤 불편할 만하다. 그런데 잠깐, 불편한 심기를 제쳐놓고 본다면, 과연 이 발언 자체가 논란이 될만한 것일까? 본인을 제외한 모두를 낮추면서 자신을 과시하려는 건 국적 불문하고 랩퍼의 평범한 자세인데 말이다.

     

    더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역시나 논란에 휩싸인 씨엘의 페이퍼(Paper)지와 인터뷰도 확인해보자. 조금 길지만, 일단 한번 읽어볼 만해서 논란이 된 답변 전부를 가져와 봤다.

     

    많은 아시아 여자들은 평범해지길 원해요. 그게 안전하기 때문이죠. 내 많은 팬들도 그런 여자들이지만, 그녀들은 대담해지길 원할 거예요. 하지만 그녀들이 바라보고 따라 할,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해 줄 사람이 없었어요. 나는 아시아에서 그런 일을 충분히 했고, 많은 여자아이들을 바꿨다고 느껴요. 그게 폰케이스일지라도 말이죠. 그녀들은 시도하니까요. 아시아의 여자들은 매우 순종적이고 수줍어하고 소심하고 조용해요. 하지만 바뀌고 있어요. 그리고 나는 그들이 더 강해지길 원해요. 그리고 그렇게 변화하는 것이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특별해지는 게 럭셔리에요. 그리고 우리(아시안)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이상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씨엘 또한, 키스 에이프와 마찬가지로 본인이 속한 그룹에서 자신을 확연히 차별화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을 검증된 롤모델로 내세우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자기과시 성향의 평범한 답변일까? 그런데 스케일이 남다르다. 무려 아시아 여자 전체를 그 대상으로 잡고 있다. 이 답변이 상당히 뜨악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수억 명이 넘는 사람들을 하나의 카테고리에 넣어버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시안-여성을 향한 잘못된 편견을 아시아의 슈퍼스타가 직접 설명하며 부추기고 있는 장면은 충분히 불편한 장면이다.

     

    재미난 점은 키스 에이프와 씨엘의 인터뷰 속 발언 자체가 만든 불편함이 너무나 뭉뚱그려져 있고 치밀하지 못하다 보니 그저 치기 어린 발언 정도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들의 발언에서 정작 가장 불편함이 느껴지고 우려되는 점의 핵심은 답변을 하며, 무의식 중에 짜놓고야 마는 문화 사대주의적 틀이다.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국의 랩/힙합을 싸잡아 비하하고, ‘아시아 여성이라는 거대 카레고리에 편견을 주입하면서도 그 발언의 목적이 어쨌든 내가 워낙 특출나게 뛰어난 사람이다.”가 아닌, “나는 내 출신지의 사람들과 달리 당신들과 같은 수준이에요.”로 귀결된 것이다.

     

    인터뷰에서 미국 활동의 시작을 꿈 같았어요.”라고 말하면서 코홀트 크루 전부를 미국으로 데려오는 것이 꿈이라고 밝힌 키스 에이프는 그토록 겸손한 해외진출의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한국의 랩을 싹 무시하고, 씨엘은 남성이 아시안 여성을 대할 때 직접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편견을 말하면서 자신은 아시안 여성과 다름을 강조한다. 그리고 다름의 목적지는 당연히 (그녀가 생각하고 있을) 서양 여성이다. 힙합 아티스트의 불편하거나 부적절한 발언 자체는 비판적 논의를 일으킬 수 있고, 가끔은 아티스트 고유의 멋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발언이 일차원적인 문화 사대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성격이라면 민망해지기 마련이다. 그것도 드디어 미국 힙합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랩퍼들의 입에서 나란히 나온다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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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mments
      1. 김세중 (2015-09-27 15:45:40, 1.233.54.***)
      2. 동양 병신 서양 만세식의 무조건적인 사대주의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냥 본인이 생각하는 그대로, 말한거같아요. 그게 맞든 틀리든을 떠나서
      1. 랩퍼엔 (2015-09-15 11:27:54, 211.56.190.***)
      2. 문화적 사대주의 = NO SWAG
      1. miNs (2015-09-13 12:38:51, 220.116.38.*)
      2. 풉 대체 CL이 보여준 게 뭐가 있가니..
      1. 이재호 (2015-09-12 13:22:37, 220.76.133.**)
      2. 일단 CL은 랩을 못함
      1. 탁수호 (2015-09-10 22:15:39, 183.104.23.**)
      2.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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