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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토픽] Straight Outta Compton: 가장 악명높았던 갱스터 랩의 전설
    rhythmer | 2015-09-17 | 1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글: 강일권

     


    1980
    년대 힙합 씬은 랩(Rap)‘Black CNN’이라 공표한 뉴욕 출신의 그룹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와 그들의 음악을 통해 더욱 널리 퍼지던 블랙 파워(Black Power: 백인들의 인종차별에 맞서 흑인 스스로 독자적인 힘을 지녀야 한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전개한 사회·정치적 운동, 혹은 슬로건)’가 주도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랩/힙합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LA에서 동부 랩퍼들의 깊이 있는 가사와는 전혀 다른 날 것의 매력을 담아 완성한 리얼리티 랩을 표방하며 반향을 불러일으킨 그룹이 N.W.A. [Straight Outta Compton]은 바로 그들의 일대기를 그린다.

     

    사실 N.W.A의 전기영화가 만들어지는 건 시간문제였을 거로 생각한다. 미 대중음악 역사에 확실한 발자취를 남긴 건 물론, 그들만큼 타임라인 자체가 한 편의 영화나 다름없는 팀도 드물기 때문이다. 워낙 우여곡절과 이야깃거리가 많다 보니 세세한 지점까지 제대로 다루려면 미드 한 시즌 분량은 족히 필요할 정도다. 이에 연출을 맡은 F. 게리 그레이(F. Gary Gray) 감독은 가장 무난한 선택지를 택했다. 실화의 큰 흐름, , 그룹의 커리어를 고스란히 따라가는 데 집중한 것이다. 그 탓에 몇몇 결정적인 사건의 묘사는 약해지거나 거세됐지만(: 드레와 이지-이 사이의 비프, N.W.A의 음악에 대한 블랙 커뮤니티의 보이콧 등등), 그 덕에 그룹에 관해 잘 모르는 범대중까지도 아우르는 작품이 완성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가 아주 끝내준다.



     


    최초 연출자 후보로 거론된 건 F. 게리 그레이를 포함 존 싱글턴(John Singleton), 크레이그 브르워(Craig Brewer), 피터 버그(Peter Berg) 등이었다고 한다. 넷 중 이 계열의 영화와 가장 거리가 먼 피터 버그를 제외하더라도 게리 그레이와 존 싱글턴이야 블랙 무비 쪽에선 정평 난 이들이고, 크레이그 브르워 역시 2005년 화제의 힙합 영화 [Hustle & Flow]를 만든 바 있으니 꽤 쟁쟁한 후보군이었던 셈이다. 그중 게리 그레이가 적임자로 선택된 데에는 [Friday], [Set It Off]부터 [The Italian Job]에 이르는 넓은 연출 스펙트럼과 양쪽에서 일군 성공이 바탕이었을 걸로 예상하는데, 결과물이 말해주듯이 이는 매우 성공적이었다(존 싱글턴 버전이 만들어졌다면 어땠을지 궁금하긴 하다).

     

    그는 범죄로 점철된 흑인들의 동네, 일명 '후드(Hood)'를 그려낼 줄 아는 동시에 블록버스터 풍의 스케일 큰 연출도 가능하다. 특히, '90년대 만든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증명됐듯이 힙합을 극 속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작업에도 일가견이 있다. [Straight Outta Compton]엔 그러한 게리 그레이 감독의 연출력이 집대성되었다. 초반 이지-이의 주변부, 멤버들이 규합하는 과정, 경찰들과 마찰하는 순간 등에선 '후드 영화(Hood film)' 특유의 분위기를 물씬 내다가도 공연이나 파티 시퀀스 등에선 장면 전환과 구도, 모든 면에서 스케일 큰 상업 영화 노선을 따른다. 그리고 이러한 연출이 적절하게 어우러지며, 보는 이를 밀고 당기니 2시간 반에 이르는 긴 러닝 타임은 금세 지나간다.  [Iron Man] 1,2, [Black Swan] 등에 참여한 촬영 감독 매튜 리바티크(Matthew Libatique)의 촬영도 인상적으로, 필요할 때마다 등장하는 유려한 핸드헬드 촬영은 극의 현장감을 최상으로 끌어올렸다.



     


    여기에 방점을 찍는 건 배우들의 능숙한 연기와 N.W.A의 강렬한 명곡들이다. 특히, 닥터 드레(Dr. Dre) 역을 맡은 코리 호킨스(Corey Hawkins)와 이지-(Eazy-E) 역을 맡은 제이슨 밋첼(Jason Mitchell), 그리고 제리 헬러(Jerry Heller) 역을 맡은 폴 지아마티Paul Giamatti)의 연기가 돋보이는 가운데, 아이스 큐브 역을 맡은 오셔 잭슨 주니어(O'Shea Jackson Jr.)는 새삼 유전자의 힘을 깨닫게 해준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실제와 얼마나 가까울까? 다큐멘터리가 아닌, 어디까지나 극영화인 이상,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해서 그것을 꼭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데 집중할 필욘 없다. 그럼에도 이번처럼 실존하는 인물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전기영화라면, 자연스레 실제 사건과 비교가 뒤따르기 마련이고, N.W.A의 커리어를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겐 이것이 어느 정도 감흥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겉으로 드러난 적이 없어 명확하게 알 수 없는 부분들, 이를테면, 닥터 드레가 데쓰로우(Death Row)를 탈퇴하며 슈그 나잇(Suge Knight)과 나눈 대화 및 당시 상황이라든지 이지-이와 드레가 나눈 마지막 통화 내용 등은 각색이 많이 들어갔을 확률이 높지만, 전반적으로 실제 있었던 일들을 꽤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는 편이다. 특히, 전혀 랩을 할 생각이 없었던 이지-이가 녹음을 하게 되는 과정과 이지-이가 제리 헬러를 찾아가 슈그 나잇에게 복수하고픈 심경을 토로하는 부분, 그리고 문제의 곡 “Fuck Tha Police”를 부르다가 공권력의 제지를 받는 장면 등은 그동안 인터뷰 증언이나 문서 기록을 통해 알려진 내용을 고스란히 옮겼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룹의 원년 멤버인 닥터 드레와 아이스 큐브가 직접 제작에 관여한다는 점에서 우려되었던 미화도 문제가 될만한 수준은 아니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민감한 사실을 건너뛰거나 미화한 지점들이 더러 보이긴 한다. 대표적으로 드레와 이지-이 사이의 갈등을 다루는 부분이 그렇다. 작품 속에서 그 과정이 다소 애틋하고 훈훈하게 그려진 것과 달리 이들이 벌인 비프(Beef)의 실상은 밑바닥 수준이었다. 서로 외모 비하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은 물론, 각자가 운영하는 레이블에 소속된 뮤지션들이 물리적 충돌을 빚는 등, 매우 과격하고 지리멸렬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이는 충분히 고려하고 넘어갈 수 있는 지점이다. 게다가 맘만 먹으면 더욱 극적으로 그릴 수 있었음에도 오히려 축소된 부분도 있다. N.W.A가 공권력으로부터 협박받고 맞서는 과정이 대표적인 예로 실제보다 담백하게 그려졌다.


     



    , 몇몇 부분에서 잘못된 번역은 옥에 티다. 무엇보다 영화의 분위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그룹명 N.W.A의 의미와 “Fuck Tha Police”를 각각 까칠한 흑형들조까라 경찰로 번역한 건 치명적이다. 감흥을 깎아 먹기 때문이다. N.W.A의 원래 풀이인 ‘Niggaz Wit Attitudes’는 백인들이 흑인을 경멸하는 호칭인 검둥이(Nigga)’를 스스로 내세우는 동시에 의식있고 공격적인 태도(attitude)를 결합함으로써 우린 너희가 무시하는 검둥이지만, 사고할 줄 알고 행동할 줄 알아. 그러니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는 강경한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그저 까칠하다와 한국에서 사용하는 흑인의 애칭 흑형으로 치환되면서 전혀 다른 의미가 되어버렸다.

    “Fuck Tha Police”
    는 좀 더 심각하다. ‘조까라 경찰이 아닌, ‘경찰을 박살내버리자가 옳다. “Fuck Tha Police”는 흑인 커뮤니티 선동을 우려한 공권력이 N.W.A를 견제하고 억압하는 계기를 제공한 곡이다. 단순히 경찰을 향해 욕설을 날리는 수준이 아니라 직접 물리적 폭력을 가해서 조져버리자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고, 이것이 당대 울분에 휩싸인 젊은 흑인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경찰과 FBI 등이 심각하게 대응했던 것이다. 문장 자체가 오역이기도 하지만, 극의 흐름상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곡의 제목이 지닌 의미가 잘못 전해졌다는 사실이 아쉽다. 만약 2차 매체가 나온다면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다시 강조하건대 [Straight Outta Compton]은 아주 재미있고 흥분되는 작품이다. N.W.A의 랩처럼 거침없고 공격적인 흥행 행진이 말해주듯이 상업적인 성과까지 엄청나다. [8 Mile], [Brown Sugar], [Hustle & Flow], [Notorious] 등의 작품이 주도했던 2000년대 힙합 영화의 열기가 이번 [Straight Outta Compton]에서 절정에 달한 듯하다. 보다 많은 이가 그 절정을 맛보고, 이것이 N.W.A가 남긴 동명의 명반 [Straight Outta Compton]의 카리스마에 취하는 경험으로까지 이어지길 바라본다.


     

     

    이모저모

     

    1. 영화에서는 N.W.A가 억압받는 흑인 사회 전체를 대변하며 지지를 얻은 부분만 묘사됐지만, 당시 많은 힙합 라디오 DJ를 위시한 흑인 커뮤니티 일각에선 그룹의 선동적인 가사가 오히려 흑인 사회에 대한 편견을 가중하고 더더욱 억압하는 법안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을 걱정하여 보이콧을 전개하기도 했다.

     

    2. 다소 비중이 약해 아쉬웠던 MC (MC Ren)은 실제론 N.W.A 내에서 가장 많은 가사를 쓴 인물이며, 솔로 커리어도 성공적이었다.

     

    3. 극중에선 일부 영상과 상징만 살짝 비춘 채 넘어가지만, 아이스 큐브가 그룹을 탈퇴하고 솔로 앨범을 녹음하러 간 곳은 다름 아닌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진영이었다. 평소 척 디(Chuck D)의 의식있는 가사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아이스 큐브가 직접 퍼블릭 에너미의 프로덕션 팀인 밤 스쿼드(The Bomb Squad)에게 프로듀싱을 맡아줄 것을 제안했고, 그렇게 큐브의 커리어에서 가장 정치적인 앨범이자 첫 번째 솔로작 [AmeriKKKa's Most Wanted]가 탄생했다.

     

    4. 잠깐 등장했음에도 큰 인상을 남긴 투팍(2Pac)은 드레가 데쓰로우를 탈퇴하자 그를 배신자로 규정하고 무려 3(“To Live & Die In L.A”, “Toss It Up”, “Watch ya Mouth (Unreleased)”)에 걸쳐 디스했다. 결국, 투팍은 드레와 화해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망한 것.

     

    5. 후반부에 스눕 독(Snoop Dogg)을 소개시켜주는 인물이 바로 드레의 이복 동생이자 베테랑 뮤지션 워렌 쥐(Warren G).

     

    6. 극중 사고를 당해 후두부 손상을 입은 랩퍼 디오씨(The D.O.C)는 당시 웨스트코스트에서 알아주는 최고의 리리시스트(Lyricist)였다. 이지-이가 제작을 맡고 닥터 드레가 총프로듀싱한 그의 1989년 데뷔작 [No One Can Do It Better]는 역사상 중요한 힙합 앨범을 논할 때 항상 거론되는 클래식이다.

     

    7. 초반부 클럽에서 드레가 불만을 토로하는 복장은 이지-이가 닥터 드레 디스 앨범인 [It's On (Dr. Dre) 187um Killa]의 커버 아트워크에서 조롱하고자 사용한 이미지 속 복장과 유사하다.

     

    8. [Straight Outta Compton]은 미국 개봉 3주 만에 한화 약 1,600억 원 이상을 벌어들이며, 음악 전기 영화 중 역대 최고 수익 1위에 등극했다. 참고로 이전까지 1위였던 작품은 쟈니 캐쉬(Johnny Cash)의 전기 영화 [Walk the Line(국내 개봉명: 앙코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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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mments
      1. 양지훈 (2015-09-25 20:08:31, 1.241.197.**)
      2.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 다시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1. 신숭털 (2015-09-18 01:01:01, 121.130.227.**)
      2. 정말 훌륭했습니다. 한번 더 보고 싶네요.
      1. 랩퍼엔 (2015-09-17 13:09:23, 211.56.190.***)
      2. 우오오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증폭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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