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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뷰] '맘바 아웃' Kobe Bryant의 힙합 커리어 파헤지기
    rhythmer | 2016-04-16 | 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지난 13일 열렸던 NBA LA 레이커스의 정규 리그 마지막 경기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오랜 기간 정상급 인기를 누리던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Kobe Bryant)가 은퇴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1996년 레이커스에서 데뷔한 이래 코비는 21년 동안 5개의 챔피언 반지와 2개의 파이널 MVP, 그리고 1개의 정규 시즌 MVP를 받는 등, 리그 최고 인기 팀 레이커스의 심장이자, NBA를 상징하는 최고의 농구선수였다. 그의 인기를 반영하듯이 이날 경기의 가장 싼 좌석조차 한화 70만 원을 훌쩍 넘겼음에도 경기장은 코비를 사랑하는 LA팬들로 가득찼다.

     

    특히, 코트 사이드에는 레이커스 골수 팬으로 유명한 영화배우 잭 니콜슨(Jack Nicholson)을 비롯하여 칸예 웨스트(Kanye West), 제이 지(Jay Z), 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 같은 여러 유명인이 코비를 보기 위해 자리했다. 수만 명의 성원에 보답이라도 하듯 코비는 시즌 최고의 경기를 보여줬고, 15점 차로 지고 있던 게임을 뒤집는 코비의 트레이드 마크인 점프슛이 성공되었을 땐 관중들의 함성이 절정에 달했다.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가 정규리그 우승을 하며 73승이라는 역대 신기록을 세웠지만, 이날의 주인공은 단연 코비였다. 그만큼 코비는 위대한 농구선수이며, NBA 역사상 손꼽히는 스타이자 농구 외에 다른 것을 모르는 농구 덕후다. 그런 그의 커리어에서 농구 말고 그나마 중요한 것이 있다면, 아마 힙합일 것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코비는 힙합 아티스트로 외도를 시도한 적이 있다. 코비 뿐만 아니라 이미 히트 싱글은 물론, 여러 장의 앨범까지 보유한 샤킬 오닐(Shaquille O’Neal)과 최근 믹스테입(Mixtape)을 낸 데미언 릴라드(Damien Lillard)를 비롯하여 많은 NBA 스타 플레이어들이 랩퍼 욕심을 드러내 왔다. 코비는 그중에서도 샤킬 오닐 못지않게 힙합에 대한 애정과 욕심을 보인 인물이었다.  

     

    코비의 힙합 커리어는 그가 리그 정상급 스타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1998년에 시작되었다. 뉴저지의 레코드사 대표인 스티브 스타우트(Steve Stoute)는 떠오르는 스포츠 스타인 코비를 윌 스미스(Will Smith)처럼 만들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미체이조(CHEIZAW)’라는 랩 그룹에 소속되어 있던 코비는 곧 자신의 그룹 멤버들과 함께 소니 엔터테인먼트(Sony Entertainment)와 계약하게 된다. ‘Grantland’ 2013년 칼럼에 따르면, 코비는 연습이 없는 날이면 녹음실에서 나스(Nas)나 당시 어린 나이의 피프티 센트(50 Cent) 등과 작업에 몰두했다고 한다.




     

     

    이 즈음에 코비는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No, No, No"에 랩을 입혀 내놓는가 하면, 샤킬 오닐의 앨범에 (비밀리에) 참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힙합 계에선 신인이나 다름없는 코비는 ‘97년 브라이언 맥나잇(Brian Mcknight)의 곡 "Hold Me"에 피처링하고 뮤직비디오에까지 출연했다. 다만, 그 결과가 그리 인상적이진 못했다. 코비는 이 곡에서 멋진 중저음의 목소리로 랩을 했으나 타이트함은 부족했고, 특히, 뮤직비디오에선 헐벗은 파티 피플 속에서 검정 양복을 입고 나와 꽉 맨 타이만큼이나 어색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랩 커리어에 대한 코비의 열정은 전혀 식을 줄 몰랐다.




     

     

    그는 대망의 2000 1월을 맞아 곧 나올 앨범에 앞서 한 장의 싱글을 발표한다. 코비의 이름을 딴 싱글 “K.O.B.E”에는 슈퍼모델 타이라 뱅크스(Tyra Banks)가 참여해 화제가 되었는데, 이 노래의 흥행을 위해 NBA 올스타 전에서 라이브로 공연을 하는 등, 홍보에 노력하는 모습이었지만, 성적은 그리 신통치 않았다. 샤킬 오닐이 부족한 음악성에도 르자(RZA), 맙 딥(Mobb Deep), 메쏘드 맨(Method Man), 더 노토리어스 비아이쥐(The Notorious B.I.G.) 등등, 기라성 같은 아티스트들과 작업하며 커리어를 쌓아나간 것에 반해, 코비와 타이라 뱅크스의 만남은 그저 당시 인기있던 두 흑인 스타의 프로젝트성 이벤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싱글에는 “K.O.B.E” 외에도 비기의 “Who Shot Ya”에 쓰였던 데이비드 포터(David Porter)“I'm Afraid the Masquerade Is Over”를 샘플링한 “Thug Poet”이 수록되었는데, 무려 나스와 피프티 센트, 그리고 코비의 크루 멤버인 브로디 로이(Broady Roy)가 참여했음에도 주목받지 못한 채 묻혀버렸다. 그리고 이 같은 싱글의 실패는 코비에게 더욱 뼈아픈 결과를 안겼다. 소니가 코비의 예정된 앨범 계획을 엎어버린 것이다. 소니와 계약이 만료된 후에도 코비는 음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독립 레이블헤즈 하이 엔터테인먼트(Heads High Entertainment)’를 세우지만, 이 역시 1년도 못 가서 정리되고 만다. 그리고 코비의 랩퍼로서 커리어는 여기서 막을 내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코비는 타이틀 곡에 자신의 이름을 사용한 릴 웨인(Lil Wayne)을 비롯하여 많은 랩퍼들의 가사에 소재 거리를 주었지만, 이제 그 자신은 힙합 음악을 하는 것에 더 이상 관심 없어 보인다. 그러나 코비는 은퇴 뒤에 인생에서 농구가 차지했던 자릴 채워줄 것을 찾는다고 말했고, 그것이 무엇이 될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비록, 부족한 리리시즘(Lyricism)과 특징 없는 플로우 탓에 힙합 커리어는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연습벌레인 그의 열정과 시도가 체육관이 아닌 녹음실을 향한다면, 언젠가 코비의 역작을 듣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이젠 NBA의 전설이 된 코비의 은퇴를 기념하고, 선수로서 세운 놀라운 업적에 경의를 표하며….




    ※모든 사진 출처: Kobe Bryant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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