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드머
스크랩
  • [리드머 토픽] 옛 거물 랩퍼의 귀환, 엇갈린 결과
    rhythmer | 2016-09-19 | 17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 양지훈

     


    뮤지션의 활동 이력을 논할 때 중심이 되는 기준은 언제나 정규(Full-Length) 앨범이다. 최근 노장 3인조 트리오 데 라 소울(De La Soul)이 무려 12년 만에 정규 앨범을 발표하여 화제를 모았다. 앨범의 완성도를 떠나서, 스튜디오 앨범을 통해 경력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기에 올드팬의 입장에서 무척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래서 이참에 데 라 소울을 포함하여 한때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힙합계의 옛 거물들이 5년 이상의 긴 공백을 깨고 만들었던 정규 앨범에 대해 논해보려 한다. (순서는 아티스트 이름순)


     

    De La Soul

     

    [The Grind Date] (2004)

    [And the Anonymous Nobody...] (2016)

     

    여덟 번째 정규 앨범이 나오기까지 무려 12년이 필요했지만, 그렇다고 데 라 소울이 휴업을 선언했던 적은 없었고, 음악에 대한 열정을 상실한 적도 없었다. 이는 12년 사이에 행한 정규 앨범 이외의 흔적만 찾아봐도 짐작이 가능하다. 이 트리오는 다수의 믹스테입을 통해 여전히 재치있는 입담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보여줬고, 라이브 무대에도 꾸준히 등장했다.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제작비를 마련해 제작한 새 앨범 [And the Anonymous Nobody...]는 반가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앨범이었다. 얼터너티브 힙합의 기수라는 이미지는 계속해서 유효하지만, 마치 채워야 할 한 구석이 비어 있어 심심하다는 느낌이 있어서인지 12년 전의 수작 [The Grind Date]에 비해 몰입도가 떨어진다. 노장들의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앨범이었지만, 동시에 결점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컴백 앨범이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DMX

     

    [Year of the Dog... Again] (2006)

    [Undisputed] (2012)

     

    2000년대 초까지 러프 라이더스(Ruff Ryders) 진영을 대표하는 슈퍼스타였고, 걸걸한 목소리와 역동적인 퍼포먼스로 남성미를 상징하기도 했던 DMX였지만, 추락하는 속도가 너무나 빨랐다. [...And Then There Was X]로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이후부터 꾸준하게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는데, 발매하는 앨범마다 첫 주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던 영광스러운 흔적은 2006 [Year of the Dog... Again] 2위를 기록하면서부터 깨졌고, 차트 성적과는 별개로 앨범의 완성도 또한 시원치 않았다. 여전히 스위즈 비츠(Swizz Beatz)와 댐 그리즈(Dame Grease) 등이 지원사격을 해줬지만, 스캇 스토치(Scott Storch)의 프로듀싱이 빛을 발하는 "Lord Give Me a Sign" 외에는 기억할만한 곡이 그리 많지 않은 앨범이었다.

     

    [Year of the Dog... Again] 이후, 새 정규 앨범이 탄생하기까지는 6년의 세월이 지나야 했다. 크리스천으로 알려진 그이기에, 공백 기간 동안 가스펠(Gospel) 앨범을 제작할 계획도 세운 바 있고, 몇몇 매체는 그가 종교에 귀의한다는 이유로 사실상 랩계에서 은퇴했다는 보도까지 했다. 그러나 종교적인 이유는 핑계에 가까울 뿐, 새 앨범의 등장이 늦어진 원인은 그의 망나니 같은 사생활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거의 매년마다 마약 소지 관련 혐의로 체포되곤 했고, 복잡한 사생활로 인하여 현재까지 무려 15명의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다.

     

    음악으로 승부해야 하는 것이 뮤지션의 숙명이 아니겠는가. DMX는 혼란의 나날들을 뒤로한 채 일곱 번째 앨범 [Undisputed]로 다시 출사표를 던졌지만, MGK와 함께한 "I Don't Dance" 정도가 그나마 이목을 끌었을 뿐, 전성기가 한참 지난 문제아의 새 앨범은 큰 관심을 얻을 수 없었다. 불량하고 문란한 사생활로 인해 자멸하는 전형적인 케이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특한 목소리와 플로우로 희소가치를 지녔던 그의 몰락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저 씁쓸하다.


     

    EPMD

     

    [Out of Business] (1999)

    [We Mean Business] (2008)

     

    이미 '93년에 해체했다가 다시 뭉친 경력이 있었던 그들이었지만, '99년에는 '폐업(Out of Business)'이라는 앨범 타이틀 때문인지 재결합하는 일이 아예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각자 솔로 활동에 전념하던 EPMD2006년에 2MC 체제의 복귀를 알렸고, 2008년엔 새 앨범을 공개했다.

     

    앨범의 타이틀은 [We Mean Business]였으며, 발매하는 앨범마다 'Business'라는 타이틀을 꼭 넣었던 원칙도 고수했다. 에릭 서먼(Erick Sermon) PMD가 트랙마다 단독 프로듀서로 나서며 지분을 나눠 갖던 방식도 예전과 동일했고, 나인스 원더(9th Wonder)를 프로듀서로 기용하는 실험을 강행하기도 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새로운 모습으로 복귀하기보다는 EPMD의 오리지널리티를 고수하며 여전히 펑키 힙합이 그들의 지향점임을 천명했다. 앨범의 흥행 여부를 떠나서, 뚜렷한 방향성과 의도를 확인할 수 있고, 기량이 현저하게 저하되지도 않았음을 보여주었다는 점 때문에 많은 올드팬이 만족을 표했다.


     

    Mobb Deep

     

    [Blood Money] (2006)

    [The Infamous Mobb Deep] (2014)

     

    결론부터 말하자면, 맙 딥(Mobb Deep)은 온갖 부침을 겪다가 재기에 성공한 감동의 아이콘이다. 2006년의 [Blood Money]는 당시 정상을 질주하던 지-유닛(G-Unit)의 힘을 빌어 만든 앨범이었다는 꼬리표를 뗄 수 없었고, 이듬해부터 해복(Havoc)과 프로디지(Prodigy)는 각자의 솔로 활동에 전념했다. 이 시기에 프로디지가 장기간 복역하게 된 것이 가장 큰 타격이었다. 프로디지의 출옥 이전에 공개한 맙 딥의 EP [Black Cocaine]은 정말 별 볼 일 없는 앨범이었고, 프로디지의 새 솔로 앨범 [H.N.I.C. 3]는 비참하기 짝이 없는 졸작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재기의 칼날을 갈며 솔로 활동과 듀오 활동을 병행했다. 해복은 2013년 황량한 사운드로 이끌어간 앨범 [13]으로 가능성을 보여줬고, 프로디지는 오랜 세월 함께한 동반자 알케미스트(The Alchemist)의 지원아래 [Albert Einstein]으로 생존을 알렸다. 이듬해인 2014, 마침내 공개한 여덟 번째 정규 앨범 [The Infamous Mobb Deep]에서 그들은 확실하게 부활했다. 해복의 총 지휘 아래 일마인드(Illmind)를 비롯한 몇몇 후배 프로듀서가 활약하며 옛 시절의 향수와 새로운 감각의 공존을 유도하는 한편, 한동안 힘이 없었던 프로디지의 랩에도 다시금 카리스마가 첨가되어 부활의 쐐기를 박았다. 내리막길을 걷던 뮤지션이 오랜만에 만든 앨범을 통해 부활을 알릴 때 느낄 수 있는 쾌감이 이 앨범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Rakim

     

    [The Master] (1999)

    [The Seventh Seal] (2009)

     

    한때 다양한 수식어로 추앙받았던 라킴(Rakim)은 오랜만에 공개한 새 앨범이 솔로 커리어를 더욱 초라하게 만든 사례에 속한다. 가뜩이나 솔로 커리어가 에릭 비 앤 라킴(Eric B. & Rakim) 시절보다 현저하게 떨어지는 마당에, 10년 만에 나온 새 앨범 [The Seventh Seal]은 평범하다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앨범이었으니 제대로 마이너스 역할을 한 셈이다.

     

    '97년의 [The 18th Letter]가 잘 만든 앨범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힙합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으로 손꼽히는 에릭 비 앤 라킴 초기 시절의 앨범에 비하면 떨어진다는 평을 할 수밖에 없다. '99년의 솔로 2 [The Master] 역시 큰 힘을 갖고 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라킴의 새 앨범을 원하는 이가 많았던 이유는 여전히 그의 정교한 라임 메이킹과 유려한 플로우를 듣고 느끼고 싶은 열망이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닥터 드레(Dr. Dre)가 이끄는 애프터매스(Aftermath)와 계약하고 제작하던 앨범 [Oh, My God]은 게스트 선정의 번복 등 갖가지 진통을 겪은 끝에 발매가 완전히 무산되었고, 라킴은 애프터매스를 떠났다. 이러는 사이 라킴의 새 앨범을 갈망하던 대중의 시선은 서서히 사라졌고, 그가 새 앨범의 제작을 착수하기 시작한 건 한참이 지난 2007년이었다.

     

    대중의 관심과 인지도의 추락에 발맞추어, 새 앨범 [The Seventh Seal]의 완성도 또한 바닥까지 추락했다. 제이크 원(Jake One), 노츠(Nottz), 닉 위즈(Nick Wiz) 등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14트랙의 이 앨범은 허약한 프로덕션과 보컬리스트의 코러스에 의존하는 성향이 끝없는 의문만을 남겼다. 10년의 공백을 메울만한 좋은 앨범은 찾아볼 수 없었고, 이제 그의 네 번째 솔로 앨범에 대하여 큰 기대를 갖고 있는 이는 정말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Scarface

     

    [Emeritus] (2008)

    [Deeply Rooted] (2015)

     

    아마도 스카페이스(Scarface)는 이 글에서 소개하는 랩퍼들의 복귀 사례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될 듯하다. 2008년의 [Emeritus]가 열한 번째 정규 앨범이었는데, '명예 퇴직'이라는 타이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당시 그는 랩 게임에 흥미를 잃고 차분하게 은퇴를 준비하는 상태였다. --(Rap-a-lot) 레코드를 대표하는 인물이었고, 동시에 '남부 힙합의 거장'이기도 했던 그의 커리어는 [Emeritus]를 통해 비교적 조용하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2년 후, 스카페이스는 그의 인디 레이블인 페이스맙 뮤직(Facemob Music)을 통해 새로운 믹스테입 [Dopeman Music]을 발매하며 아직도 하고 싶은 무언가가 남아 있음을 알렸다. 그리고 2015, 동 레이블을 통해 공개한 열두 번째 정규 앨범 [Deeply Rooted]는 그의 감각이 아직은 무뎌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수작이었다. 피아노 루프가 전반적인 분위기를 지배하는 이 앨범은 나스(Nas), 릭 로스(Rick Ross) 등이 참여한 "Do What I Do"를 비롯해, 존 레전드(John Legend), 씨로 그린(CeeLo Green) 등의 지원을 받은 곡들이 화제를 모았다. 사회를 바라보는 냉철한 시선을 보여주면서도 때로는 하드 뱅잉으로 돌변하는 이 베테랑의 컴백은 노장의 멋진 귀환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우수한 사례가 될 것이다.

    17

    스크랩하기

    • Share this article
    • Twitter Facebook
    • Comments
    « PREV LIST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