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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토픽] 2016 국외 랩/힙합 앨범 베스트 20
    rhythmer | 2016-12-21 | 26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리드머 필진이 1차 후보작 선정부터 최종 순위 선정까지 총 두 번의 투표와 회의를 통해 선정한 ‘2016 국외 랩/힙합 앨범 베스트 20’을 공개합니다. 아무쪼록 저희의 리스트가 한해를 정리하는 좋은 가이드가 되길 바랍니다.

     

    2015 12 1일부터 2016 11 30일까지 발매된 앨범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20. Noname – Telefone

     

    Released: 2016-07-31

    Label: -

     

    시카고는 최근 들어 슈퍼스타가 될 만한 신인들을 다수 배출하고 있다. 이번 해에도 역시 걸출한 힙합, 알앤비 신예들이 두각을 나타냈는데, 노네임(Noname)은 그들 중 가장 큰 놀라움을 선사한 아티스트다. 그녀의 믹스테입 [Telefone]은 동료인 챈스 더 랩퍼(Chance The Rapper)나 자밀라 우즈(Jamila Woods)의 최근 작품들이 지향하는 방향성과 궤를 같이한다. 환경적인 장벽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는 메시지와 옛 추억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묘사법, 독창적인 주제선별과 간간이 느껴지는 가스펠 바이브가 대표적 예다. 이제는 친숙한 동시에 여전히 매력적인 요소지만, 이것이 본작의 가장 큰 강점은 아니다. 앨범의 하이라이트이자 최근 발표된 작품들과 차별을 보이는 지점은 바로 가사다. 시를 쓴 경력과 주체적인 작법을 통해 형성된 노네임의 가사는 여느 랩퍼들의 것과 비교했을 때 질적인 우위를 떠나 스타일 적으로 봤을 때도 차원이 다른 서술의 힘을 지닌다. 시적인 표현을 연속으로 나열하며 쌓아 올린 벌스들은 그녀가 내뱉는 문장, 혹은 작게는 단어에 따라 트랙을 지탱하는 내러티브의 분위기가 뒤바뀔 만큼 흡입력 있다. 그렇기에 한 트랙 안에 묶일 수 없을 듯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음에도 높은 몰입도와 긴장감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정규작에서 더욱 확장된 세계관과 가다듬어진 발성, 그리고 향상된 딜리버리 능력을 선보인다면 그 작품은 틀림없이 명반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19. Mick Jenkins - The Healing Component

     

    Released: 2016-09-23

    Label: Cinematic

     

    지난 몇 년간 클라우드 랩 시장의 과포화 상황에서도 시카고의 신예 랩퍼 믹 젠킨스(Mick Jenkins)의 결과물들은 특별했다. 2014년 믹스테잎 [Water[s]]와 이듬해 발매한 EP [Wave[s]]로 정규작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끌어올린 그는 드디어 1 [The Healing Component]를 공개하며 시험대에 올랐다. 저음의 매력적인 보이스와 물 흐르듯 유려하게 진행되는 가사, 앨범 전체를 덮고 있는 몽환적인 분위기 등, 그의 음악을 이루는 기본적인 구성요소는 달라지지 않았다. 젠킨스는 앨범을 통해 사랑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여러 은유적 장치들을 통해 펼쳐놓는다. 이에 따라 인간을 향한 신의 사랑부터, 연인간의 로맨틱한 관계까지 폭넓은 범위의 사랑이 메인 테마가 된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 사랑이 퍼지길 바라고(“Spread Love”), 달콤하고 약간은 발랄한 분위기에서 연인관계를 노래하며(“Communicate”), 때로는 감정에 대한 원초적인 부분까지 사유를 확장한다. 또한, 15트랙의 긴 러닝타임에 풍성함을 더하기 위해 객원 보컬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한 점 역시 눈에 띈다. 앨범의 중반부 이후로 거의 매 트랙마다 게스트를 배치하고, 본인이 직접 노래를 선보이기도 한다. 전작들과 같이 한 가지 중심주제를 잡고 이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길어진 호흡만큼 다소 응집력이 떨어진 감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The Healing Component]는 그의 첫 정규 앨범으로서 합격점을 받기에 충분하다.


     

    18. Denzel Curry – imperial

     

    Released: 2016-03-09

    Label: C9/Loma Vista

     

    플로리다 출신의 덴젤 커리(Denzel Curry) [Imperial]을 통해 클라우드 랩과 트랩 사이의 황금비율을 찾아냈다. 몽롱한 바이브를 가미한 신스와 공간감을 살린 백업 코러스, 그리고 강한 질감을 표현한 808드럼은 앨범에 수록된 열 곡에서 많은 부분 유효하게 작용한다. 특히, 프로덕션적으로 통일감을 이루고 있는 트랙들은 타이트하면서도 맹렬히 불을 내뿜는 커리의 랩과 만나 엄청난 스케일의 폭발을 일으킨다. 본작을 통해 커리는 거리에서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 경험을 통해 무자비하고 굳세게 자란 본인을 묘사한다. 큰 목소리만큼이나 그가 내세우는 의견과 어조, 또 화법 역시 매우 강하다. 타협이란 단어와는 담을 쌓은 느낌으로 자기주장이 강하고, 너무나도 확신에 차 있는 그의 태도가 랩 퍼포먼스를 통해서도 확연히 느껴진다. 오프닝 트랙인 “ULT”“Gook”은 본작의 대표적인 뱅어 트랙으로 일정하게 빠른 속도와 매우 높은 음량으로 발현된 랩이 중심을 잡고 있다. 그럼에도 음절을 뭉개는 일 없이 정확한 딜리버리를 이어나가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이처럼 [Imperial]은 처음부터 끝까지 강한 템포와 화력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런 까닭에 다소 평면적인 구성과 단조로움이 발목을 잡을 여지가 있지만, 이런 형태의 정직하고 우직한 작품은 언제나 반갑다.


     

    17. Oddisee - The Odd Tape

     

    Released: 2016-05-13

    Label: Mello Music Group

     

    유력 인디 힙합 레이블 멜로 뮤직 그룹(Mello Music Group)의 간판 프로듀서 겸 랩퍼 오디씨(Oddisee)가 이번에는 랩을 완전히 배제시킨 채, 프로듀서로서 역량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앨범을 만들었다. 보컬 샘플링을 제외하면, 인간의 목소리가 존재하지 않지만, 사운드의 운용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기에 추상적이지도, 무겁지도 않다. [The Odd Tape]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레이드-(laid-back, 느긋하고 편안한 분위기)이라는 단어로 함축 가능하다. 주인공 오디씨의 형상은 멀리 한 채, 그가 들고 있는 머그 컵을 클로즈업한 앨범 커버부터 이를 잘 반영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앨범이 오디씨의 제작 의도였고, 내용물은 철저하게 그의 의도에 부합한다. 붐뱁(Boom-Bap) 기반 사운드를 즐겨 듣는 이부터 재즈(Jazz)와 소울(Soul)의 향을 담은 힙합 앨범의 애호가들까지, 다양한 청자를 포용할 수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랩을 배제하고 오직 비트만으로 승부하겠다는 오디씨의 '근거 있는 자신감'이 앨범 전반에 걸쳐 느껴지며, 작년에 이어 올해 역시 베스트란에 이름을 아로새겼다.


     

    16. Royce Da 5 9 – Layers

     

    Released: 2016-04-15

    Label: Bad Half Entertainment

     

    로이스 다 파이브 나인(Royce Da 5’9’’)를 소개할 때 흔히 '랩퍼들의 랩퍼(Rapper's rapper)'라는 말을 사용하고는 한다. 감탄을 자아내는 독보적인 랩 실력 덕분이다. 그는 동료 에미넴(Eminem)과의 합작에서도 단 한번도 뒤쳐지는 법이 없었고, 괴물 랩퍼들의 집단이라 불리는 슬로터하우스(Slaughterhouse) 안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이런 뛰어난 랩 실력을 가진 랩퍼이기에 오랜 시간 꾸준히 준수한 앨범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힙합 역사에 남을 걸작을 남기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을 남겼었다. 그러던 중 2014년 명장 프리모와 협업한 [Prhyme]이 호평받으며 이러한 기대는 다시금 커졌고, 올해 발표한 [Layers]는 로이스의 위상에 걸맞은 걸작 앨범을 향한 발판으로 불러도 될 만큼 성공적이다. 본작의 주 무기는 역시나 로이스의 랩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일단 랩에서부터 압도하고 들어간다. 그리고 앨범의 많은 부분을 담당한 미스터 포터(Mr. Porter), 디제이 칼릴(DJ Khalil), 심볼릭 원(S1) 등이 제공한 프로덕션은 로이스 앞에서 철저하게, 그리고 평등하게 해부 되고 쪼개진다. 로이스는 체계적인 라임 설계 능력을 이용해 템포 조절을 하다가 어느 순간 빠르고 쉼 없이 라인을 꽂아나가는데, 이는 랩에 쫀득함을 부여하며 비트와 부딪혔을 때 큰 시너지를 일으킨다. 로이스의 랩은 이제 그 대단함이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이며, 준수한 프로덕션은 이를 잘 지원한다. 이미 랩퍼로서 베테랑과 노장 사이에 있는 긴 경력의 그이지만, [Layers]를 통해 다음 앨범인 [Book of Ryan]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졌다.


     

    15. Saba - Bucket List Project

     

    Released: 2016-10-27

    Label: Saba Pivot, LLC

     

    시카고의 젊은 랩퍼 사바(Saba)는 매우 감각적인 신예다. 2년 전 믹스테잎 [ComfortZone]을 통해 좋은 반응을 얻었던 그는 올해만 해도 챈스 더 랩퍼(Chance The Rapper), 자밀라 우즈(Jamila Woods), 노네임(Noname)과 협업하며 석장의 주목작에서 활약했다. 순조롭게 커리어를 구축해가고 있는 그의 좋은 흐름은 정규작 [Bucket List Project]에서 역시 이어진다. 첫 트랙 “In Loving Memory”부터 벌스 전체를 각운으로 구성하며 놀라운 퍼포먼스를 선보인 사바는 이후 각 트랙의 구성에 맞춰 넓은 영역의 랩 디자인을 과시한다. 더불어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거나, 그의 활동 무대인 시카고 서부를 조명하고, 꿈을 가진 이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긍정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그의 가사에 맞춰, 프로덕션적으로도 따스하고 레이드-(Laid-Back)한 곡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특히, 전체적인 소스의 질감이나 소울풀한 코러스로 연출된 가스펠 바이브에선 같은 시카고의 아티스트인 챈스 더 랩퍼나 노네임과 음악적 교집합 역시 눈에 띈다. 견고한 랩핑과 가사, 그리고 또렷한 음악적 색채와 남다른 구성력 등, [Bucket List Project]는 사바가 가진 무기들을 응집시켜 만들어낸 인상적인 결과물이다.


     

    14. Czarface - A Fistful of Peril

     

    Released: 2016-11-04

    Label: Silver Age

     

    우탱 클랜(Wu-Tang Clan)의 인스펙타 덱(Inspectah Deck)이 세븐엘 앤 에소테릭(7L & Esoteric) 듀오와 의기투합하여 출범한 차르페이스(Czarface)는 어느덧 세 번째 앨범을 만들며 단기적인 프로젝트가 아님을 증명했다. [A Fistful of Peril]은 석장의 앨범 중 가장 짧은 36분의 러닝타임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알맹이는 매우 알차다. 의도적으로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프로듀서 세븐엘과 스페이다포(Spada4)는 이번에도 완숙하게 붐뱁(Boom-Bap) 스타일의 비트로 승부한다. 그런가 하면, 슈퍼히어로 코믹 북을 레퍼런스로 삼은 에소테릭(Esoteric)의 독특한 랩은 여전히 신선하다. 무엇보다 인스펙타 덱과 에소테릭의 랩 조합은 첫 앨범에서 증명했듯이 이번 앨범에서도 찰떡 궁합을 이루며 1+1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한때 불타는 창작열의 대명사였던 에소테릭이 솔로 앨범의 제작을 중단하고 랩에만 전념하며 차르페이스 프로젝트를 1순위 행보로 삼은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본작을 들어보면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13. Apathy - Handshakes with Snakes

     

    Released: 2016-06-10

    Label: Dirty Version

     

    성실함의 대명사 애퍼씨(Apathy)는 이제 '코네티컷(Connecticut) 랩의 자존심'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위치에 등극해 있다. 20년 가까이 갈고 닦은 견고한 랩 실력을 바탕으로 달인의 위치에 올랐지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커리어를 대표할 정상급 정규 앨범이 없었다는 점이다. 특히, 전작 [Connecticut Casual]과 여러 믹스테입을 거치며, 셀프 프로듀싱의 한계에 다다른 인상이 역력했다. 다수의 프로듀서를 기용한 [Honkey Kong]이 성공으로 귀결됐던 건 이를 방증하는 예였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에도 애퍼씨는 다섯 번째 앨범 [Handshakes with Snakes]에서 다시 셀프 프로듀싱의 뚝심을 발휘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르다. 이번 앨범은 최초 믹스테입으로 구상했으나 정규 앨범으로 선회한 경우다. 라이밍, 랩 스피드, 다수의 인용구를 근간으로 하는 순간순간의 센스, 현란한 플로우, 적당히 굵은 하이톤의 목소리 등등, 늘 그랬듯이 애퍼씨의 랩은 공격적인 랩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이상향에 가깝다. 다수의 게스트를 동원하면서도 항상 일정 수준 이상 본인의 지분을 유지하는 노련함이 묻어 있고, 붐뱁(Boom-Bap) 힙합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영화의 구절을 샘플링한 후렴구, 피아노 루프를 잘 활용한 비트 등을 통해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며 한층 나은 프로듀서로서 애퍼씨도 얼마든지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좀처럼 기량이 떨어지지 않는 애퍼씨의 현란한 랩, 그리고 이전보다 한층 발전한 프로듀싱이 충분히 듣는 즐거움을 보장하는 앨범이다.


     

    12. T.I. - Us Or Else

     

    Released: 2016-09-30

    Label: Grand Hustle, Roc Nation

     

    힙합 슈퍼스타 티아이(T.I.)가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본작엔 현재 미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6곡을 수록한 이번 EP에서 티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백인 경찰들의 과잉대응으로 흑인들이 억울하게 죽어 나가는 야만적인 인종차별 현장을 고발하고, 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한편, 블랙 커뮤니티 내에서 자행되는 흑인들 사이의 폭력을 꼬집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특히, 앨범을 통해 티아이가 내비치는 태도는 예상보다 급진적인데, 이를 적당히 중화하여 영리하게 전달하는 방식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의 가사는 전체적으로 맬컴 엑스(Malcolm X)를 비롯한 휴이 뉴튼(Huey P. Newton), 에이치. 랩 브라운(H. Rap Brown) 같은 급진적인 운동가들의 것에 더 가까운 뉘앙스를 풍긴다. 탄탄한 프로덕션과 티아이의 랩 퍼포먼스는 앨범의 무거운 주제를 더욱 가치 있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다. 티아이의 매우 정치적인 앨범 [Us Or Else]는 한동안 잊힌 듯 보였지만, 실은 꾸준히 꿈틀거리던 랩/힙합의 저항과 비판 정신이 전면에 부각한 작품이다. 적어도 그들에겐 의무감으로 다가왔을 냉혹한 현실에 대한 비판을 티아이는 급진적이나 영리한 메시지, 탁월한 랩과 탄탄한 비트, 그리고 냉철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가사를 통해 효과적이고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11. Common - Black America Again

     

    Released: 2016-11-04

    Label: ARTium, Def Jam

     

    커먼(Common)은 다양한 팬층을 거느리는 대표적인 랩퍼 중 하나다. 종합적인 랩 기량으로만 봤을 때 그는 처음부터 의심할 수 없는 경지에 있었으며, 오랜 시간 씬에 머무르면서도 꾸준히 수준 높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가 구축한 이미지나 캐릭터 또한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없는 편에 속한다. 또한, 데뷔 이래 심한 말썽을 일으키거나 큰 구설에 오른 적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살짝 모범생 같은 느낌이지만, 멋을 낼 줄 알고, 컨셔스 랩을 뱉어내면서도 힙한 바이브를 어필할 줄 안다. 커먼의 열한 번째 정규 앨범 [Black America Again]에서도 이 같은 장점과 면모가 드러난다. 매우 정치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앨범 타이틀처럼, 본작은 그의 개인적인 사상과 종교적 신념, 그리고 정치적인 스탠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커먼은 적합한 단어선별과 뚜렷한 서사적 구조를 통해 플로우를 만들어 나가며 잔잔하면서도 단단한 감흥을 만들어낸다. 전작인 [The Dreamer/The Believer] [Nobodys Smiling]의 총괄을 맡은 노 아이디(No I.D.) 대신 로버트 글래스퍼(Robert Glasper)를 기용한 선택은 본작에 재지함과 네오 소울 성격이 짙게 배는 계기가 됐다. 소수의 샘플 사용을 뺀 나머지 프로듀싱 작업은 대부분 언플러그드 사운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이를 통해 더욱 진득한 사운드를 구현해냈다. [Black America Again]은 최근 발매된 비슷한 유형의 정치적인 앨범들과 비교했을 때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현시점에서, 다수의 예상을 뒤엎은 대선의 결과가 실망스럽거나 두려운 사람들에게 오히려 가장 위안이 되고 용기를 북돋는 작품일 수도 있다.



     

    10. Young Thug - Jeffery

     

    Released: 2016-08-26

    Label: 300, Atlantic

     

    영 떡(Young Thug)은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그 역시 처음엔 트랩(Trap Music)과 랩-싱잉의 시류에 편승한 여러 신인 중 하나였지만, 곧 눈에 띄는 실력을 통해 전혀 다른 위치로 올라섰다. 그의 새 믹스테입 [Jeffery]2000년대 들어 가장 충격적인 힙합 앨범 커버라 해도 과언이 아닐 아트워크와 그의 아이돌 이름으로 짜인 트랙리스트부터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그러나 막상 들어보면, 특별한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니며, 호기심을 잔뜩 자아냈던 곡의 제목 역시 내용과 전혀 상관없다. 가사적인 감흥이라면, 몇 군데에 박아놓은 펀치라인이 다이다. 그러나 여기에 영 떡의 랩-싱잉이 입혀지는 순간, 내용적인 아쉬움 따윈 느낄 겨를이 없어진다. 그만큼 본작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은 그의 압도적인 보컬 퍼포먼스다. 이미 변화무쌍했던 보컬 스타일은 이번에 더욱 자유롭고 탄력 있어졌고, 곡 안에서도 수시로 변하는 스타일의 흐름은 감탄을 자아낸다. 프로덕션의 진행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자유분방하게 뱉다가도 금세 여느 랩-싱잉 아티스트들의 것처럼 리듬 파트와 신스에 어우러지는 멜로디 라인을 만들어 포개는가 하면, 심지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떼를 쓰는 아이마냥 신경질적으로 뱉을 때도 있다. 무엇보다 랩과 노래와 토스팅(Toasting)의 경계에 걸쳐있던 보컬이 이젠 그 경계마저 벗어나 주술의 영역에 진입한 느낌이며, 이것이 시종일관 굉장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영 떡의 커리어에선 이미 [Barter 6] 때부터 정규 앨범과 믹스테입의 경계가 무너진 거나 다름없다.


     

    9. Kendrick Lamar - Untitled Unmastered.

     

    Released: 2016-03-04

    Label: TDE, Aftermath

     

    올해 2월에 열린58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아티스트는 단연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였다. 전 세계 평단과 팬이 엄지를 치켜세웠던 정규 2 [To Pimp a Butterfly]가 유력했던올해의 앨범을 수상하지 못해 자의와 상관없이 논란의 중심에 서야 했고, 그가 선보인 압도적인 무대는 많은 이를 흥분하게 했다. 그리고 이날의 공연은 그의 새 앨범, 바로 본작을 탄생시켰다. 켄드릭은 그래미 무대에서 그동안 발표한 적 없는 곡인 “Untitled 3”로 퍼포먼스를 마무리했는데, 이후, 공연에 감동받은 많은 팬들은 “Untitled 3”의 공개를 원했다. 이어진 요청에 결국, ‘Untitled’ 1, 2, 3는 물론,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는 다른 시리즈까지 더해 앨범을 완성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본작은 미발표 곡 모음집이다. 놀라운 건 그럼에도 앨범으로써 완성도가 끝내준다는 사실이다. 앨범은 [To Pimp a Butterfly] 작업 당시 만들어진 곡들로 구성되었는데(각 곡의 제목에 표기된 날짜가 작업한 시기다.), 그렇기에 큰 틀에선 [TPAB]의 음악적 기조를 잇는다. 차이라면, 프로덕션 면에서 전작보다 힙합이 뒤로 빠지고, 훵크, 사이키델릭 소울, 비밥 재즈 등이 훨씬 자유분방하게 어우러지는 가운데, 밴드 라이브의 질감이 도드라지며, 켄드릭 라마의 랩 역시 전면에 나서기보단 무드와 프로덕션에 동화되어 적절한 비중으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한편으론 소규모 라이브 카페에서 벌인 잼 세션 실황을 담은 듯한 느낌도 난다. 특히, 한 곡 한 곡의 흡입력도 상당하지만, 라마의 전작들처럼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쭉 이어 들었을 때 제대로 된 진가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인종차별 문제를 비롯하여 답답하고 침울한 사회상을 담은 가사가 깊은 여운과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것도 여전하다. 이렇듯 미발표 곡들만으로도 굉장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경지에 이른 켄드릭 라마를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는가.


     

    8. Kanye West - the Life of Pablo

     

    Released: 2016-02-14

    Label: GOOD Music, Def Jam, Roc-A-Fella

     

    3년 전 [Yeezus]를 발표하면서 구축한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전지전능한 이미지가 많은 부분 걷혔다. [The Life of Pablo]를 통해 칸예의 의식에 자리 잡은 여러 가지 두려움이 처음으로 감지되었고, 이는 본작을 이루는 주요 테마다.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마시라. 그는 여전히 자의식 넘치고 오만하다. 그리고 그런 성향들은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수많은 비극적 아이디어를 아름다운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데에 밑거름이 되었다. 단지 그 방법이 사뭇 거칠고 위태롭기 때문에, 그의 과거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확신이 모자란 장면들을 여러 차례 맞이할 수 있다. 이런 면모는 특히 가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과거에 크고 작은 설전을 벌였던 인물들을 도마 위에 올리는 모습이나, 실소를 자아내는 불쾌한 성적인 라인을 비롯해 원인불명의 샤우팅 등에서 칸예가 어떤 식으로 본인을 방어하고 항변하는지 드러난다. 프로덕션적으로는 정돈되지 않은 전자음과 소울 샘플을 덕지덕지 붙여 트랙 내에서 조화를 찾아내려 했다. 그 방법은 [Yeezus]와 비슷하지만, 그때의 깔끔함 대신 거친 질감을 부각했다. 트랙 개개인의 개성이 강해 유기적인 견고함은 떨어지지만, 차가운 기운의 전자음과 소울풀한 샘플의 조화에서 오묘한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다양한 개성의 게스트들이 참여했음에도 지휘자로서 그들을 완벽히 통제해나간 칸예의 능력도 새삼 눈부시다. 칸예는 앨범 도입부터 구원을 바라며 손을 내밀고 있고, “Ultralight Beam”은 우리가 여지없이 그 손을 잡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최고의 오프닝 트랙이다.


     

    7. Isaiah Rashad - The Sun’s Tirade

     

    Released: 2016-09-02

    Label: Top Dawg Entertainment

     

    아이재야 라샤드(Isaiah Rashad)는 탑 독 엔터테인먼트(Top Dawg Entertainment/이하: TDE)에 소속되어 있는 랩퍼지만, 그 주력 멤버들과는 여러모로 궤를 달리해왔다. 레이블의 근거지인 캘리포니아 주의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도시 출신도 아니고 갱단과도 거리가 있는 그가 2014년에 선보인 데뷔 EP [Cilvia Demo] TDE에서는 보기 드문폭력을 주 컨텐츠로 삼지 않은앨범인 동시에 진득한 서던(Southern) 바이브를 자랑했었다. 정규 1 [The Sun’s Tirade][Cilvia Demo]의 뼈대를 그대로 가져와 한층 더 진득해진 프로덕션으로 외벽에 살을 붙이고, 깊은 영역에 자리 잡은 그의 심층을 따라 안쪽으로 탐험해나가는 구성을 보여준다. 아이재야의 이야기는 여전히 어둡고 자기성찰적이다. 하지만 음악적인 성공으로 이룬 재정적인 여유에 감사하는 모습과 긍정적인 태도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은 트랙들은 아이재야에게 변화가 있음을 나타낸다. 그가 택한 서술법 역시 눈에 띈다. [Cilvia Demo]처럼 어두운 기억의 한 부분을 선명하게 그리며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표현해내기보단 메타포를 통한 간접적인 어프로치와 포괄적인 단어를 지향하는 모습에서 정신적인 싸움을 이어가는 아이재야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앨범의 프로덕션 또한 전작보다 한층 밀도 있게 구성되었다. 레이드-(Laid-Back) 되어 감성적이고 재지하면서도 그루비한 바이브를 자랑하는 대다수의 트랙은 여유 있게 정박에 떨어뜨리면서 공간을 열어두는 랩을 하는 편인 아이재야와 좋은 궁합을 보였다. 무엇보다 [The Sun’s Tirade]가 내포한 가장 큰 즐거움은 아이재야가 과거의 방황을 끝냈을 때 어떠한 마음가짐과 의도로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는지 즉각적으로 전달된다는 점에 있다. 첫 트랙부터 그러하며, 그의 첫 앨범을 들었다면, 더욱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본작은 제자리로 돌아온 아이재야가 초심을 잃기는커녕 묵묵히 전진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6. Schoolboy Q - Blank Face LP

     

    Released: 2016-07-08

    Label: TDE, Interscope

     

    슈퍼스타가 된 이후 평탄하게 살고 있는 스쿨보이 큐(ScHoolboy Q)가 과연 전작들만큼 어둡고 현실적인 컨텐츠의 앨범을 구현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Blank Face LP]는 그 우려를 깔끔히 지울만큼 만족스럽다. 본작에서 스쿨보이 큐는 현재의 모습과 과거 갱단 멤버의 모습 사이를 자유로이 오가는데, 전작과는 달리 직선적인 형태의 구조 없이 느릿하게 전개를 가져갔음에도 풍부한 프로덕션과 높은 수준의 랩 퍼포먼스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 양면성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한다. 트랙의 배치도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스쿨보이 큐는 다양한 모습을 뒤죽박죽 뿌려놓았는데, 탁월한 내러티브 덕에 트랙 간의 괴리감이 최소화되어 감흥이 저해되지 않았다. 본작의 프로덕션이 인상적인 부분은 다양한 악기의 사용 덕에 폭 넓어지고 깊어졌다는 점이다. 물론, 여전히 둔탁하고 펀치력 있는 비트들이 무겁고 먹먹한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펑키하고 재지한 샘플들과 사이키델릭한 바이브를 더하는 기타, 심지어 예쁘기까지 한 선율의 그랜드 피아노 루프 등이 앨범에 다채로운 색채를 더한다. 전작에 비해서 폭발력은 떨어질지 모르겠으나, 프로덕션의 세심함이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으며, 유기적인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이전에 간혹 노출되었던 구성에서의 불안정함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다소 평이한 몇몇 트랙을 덜어냈다면 더욱 강렬했겠지만, 현재의 완성도 만으로도 [Blank Face LP]는 훌륭하고, 스쿨보이 큐 최고의 역작이라 할만하다.


     

    5. Danny Brown - Atrocity Exhibition

     

    Released: 2016-09-27

    Label: Warp

     

    약물 체험을 소재로 한 앨범은 많이 보았지만 이만큼 선명하게 그려낸 작품은 손에 꼽기 어렵다. 높은 완성도의 가사와 프로덕션을 자랑하는 [XXX]보다 강렬하다. 대니 브라운(Danny Brown)은 본작을 통해 끝없이 하향하는 자신의 삶을 풀어낸다. 첫 트랙부터 중독으로 인한 고통이 가중된 나머지 이제는 즐기는 단계까지 왔음을 시인한다. 그러므로 곳곳에서 묘사된 브라운의 자학적인 모습과 이율배반적인 태도 그리고 문란함을 넘어 더럽기까지 한 성적인 농담들이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가 선보이는 워드플레이와 본질을 정확히 통찰하는 냉담한 블랙유머 역시 빛을 발한다. 앵앵거리는 듯한 발성법과 하이톤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브라운의 랩은 귀에 친절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분명 피로감에 노출되기 쉬우면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다. 그러나 작품의 성격상 이보다 알맞은 목소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전체적인 판에 완벽히 부합한다. 브라운은 본인의 랩을 전기톱인 양 거침없이 다루고 있으며, 불균형하면서도 난잡하게 우거진 사운드 수풀 사이로 거침없이 전진한다. 브라운이 선별한 트랙들은 기본적으로 어두우면서 로우(raw)한 질감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작법이나 악기의 운영을 달리하며 실험성이 부각되었다. 하나의 작품으로 모았을 때 분명 중구난방 형태의 난장판으로 끝날 여지도 있는 조건이었지만, 기획력을 통해 무질서함을 일관성으로 포장해냈다. 본인의 고통과 광기, 울부짖음을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의도로 시작된 [Atrocity Exhibition] 브라운의 목표대로 괴기스러우면서 마력적인 걸작이 되었다.


     

    4. Chance the Rapper - Coloring Book

     

    Released: 2016-05-12

    Label: Independent

     

    독립 노선을 고집하며 계속해서 무료로 결과물을 공개하는 신념과 따뜻하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가사, 이를 받쳐주는 유쾌한 톤의 랩-싱잉 퍼포먼스는 챈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의 정체성을 대변해주는 요소들이다. 그리고 [Acid Rap] 이후 3년 만에 또다시 무료로 공개한 세 번째 믹스테입 [Coloring Book] 역시 그가 지향하는 바를 확실하게 나타내며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챈스는 본작을 통해 인디펜던트 아티스트의 자부심을 이야기하는 한편(“No Problem”, “Mixtape”), 총과 마약으로 점철된 거리의 사람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견지하며(“Summer Friends”, “D.R.A.M. Sings Special”), 결국엔 이겨 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Angels”, “Blessings(Reprise)”)를 전한다. 그리고 이 사이에 성경이나 동화에서 빌려온 독특한 비유들을 사용하여 이야기의 전형성을 탈피하며 쾌감을 안긴다. 무엇보다 종교적 색채를 대놓고 드러낸가스펠 랩 앨범이라는 그림을 제목처럼 다양한 색깔을 덧칠하여 완성한 뛰어난 음악들로 채움으로써 종교를 떠나 즐기기에 충분한 앨범이 되었다. 밴드 더 소셜 익스페리먼트가 대부분을 책임진 가운데, 브라스트랙스(Brasstracks), 카이트라나다(Kaytranada), 리도(Rido) 등이 참여한 프로덕션은 [Acid Rap] [Surf]를 절충한 그림이다. 힙합을 기본으로 가스펠, 트랩, 하우스, 애시드 재즈 등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면서 [Surf]에서처럼 도니 트럼펫의 혼 연주를 필두로 하는 밴드 사운드가 앨범 전반에 깔려있다. 이는 이 앨범이 지향하는 가스펠이라는 테마에도 잘 부합하며, 과장된 톤으로 변칙적인 플로우를 만들어내는 챈스 더 래퍼의 퍼포먼스를 잘 뒷받침해주었다. 믹스테입이지만, ‘정규 앨범 못지않은과 같은 수식어는 필요 없을 듯하다.


     

    3. Pusha T - King Push- Darkest Before Dawn: the Prelude

     

    Released: 2015-12-18

    Label: GOOD Music, Def Jam

     

    듀오 클립스(Clipse) 출신인 푸샤 티(Pusha T)의 솔로 2집이며, 본래 2집의 타이틀로 알려진 (그리고 이제는 3집의 타이틀이 될) [King Push]의 전주곡, 혹은 예고편 성격을 띤다. 크리스천 랩(Christian rap)으로 선회한 노 맬리스(No Malice)와 달리 푸샤는 여전히 고차원적이고 절묘한 비유를 통해 마약상으로서의 자부심과 랩 게임의 거물이 된 입장에서의 일갈을 멈추지 않는다. 특유의 날카롭고 공격적인 랩 스타일은 그가 짜놓은 이야기 구조와 맞물려가며 웅장함을 넘어 아름다움까지 만들어낸다. 퍼프 대디(Puff Daddy), 팀발랜드(Timbaland), 큐팁(Q-Tip)을 비롯해 칸예 웨스트(Kanye West)까지 확인할 수 있는 참여 프로듀서들은 푸샤의 놀라운 랩에 걸맞은 프로덕션으로 확실한 지원 사격을 가했다. 특히, 차진 스네어와 웅장한 베이스가 돋보이는 "Intro”를 비롯하여 퍼지(Pudgee) “Think Big”에서 샘플링한 비기(The Notorious B.I.G.)의 피처링 벌스 두 마디를 후렴으로 변형시킨 감각이 인상적인 “Untouchable”, 그리고 미니멀한 혼(Horn) 루프와 후렴구에 터지는 베이스 리프가 일품인 “Crutches, Crosses, Caskets”으로 이어지는 초반부의 흡입력은 실로 대단하다. 펀치력 넘치는 랩과 수준 높은 프로덕션, 그리고 스토리 라인을 확립하는 직선적인 기승전결 구도는 푸샤가 다음 앨범에서 표현하려는 왕좌에 앉은 자신을 아주 강력하고 잔혹하게 그려내는 데에 성공한다. 전초전을 표방하고 나온 앨범이 이 정도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2. YG - Still Brazy

     

    Released: 2016-06-17

    Label: 400, CTE, Def Jam

     

    2000년대 주류 힙합을 대변하는 장르 중 하나인 래칫(Ratchet)의 선구자, 디제이 머스타드(DJ Mustard)는 장르의 음악적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할 무렵,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냈다.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끌어온 음악은 다름 아닌 웨스트코스트 힙합, 그중에서도 지펑크(G-Funk)였으며, 그 실험을 함께 감행하여 성공으로 이끈 게 바로 랩퍼 와이쥐(YG)였다. 그리고 와이쥐는 이번 두 번째 앨범에서 보다 본격적으로 래칫과 쥐펑크의 결합을 시도했다. , 예상보다 훨씬 깊숙이 지펑크를 흡수했고, 기대보다 더욱 탄탄하게 마감되었다. 전작에서 절반의 실험이었던 두 장르의 결합이 이번엔 앨범의 중심부로 옮겨온 셈이다. 몇몇 곡에선 지펑크의 지분이 훨씬 크기까지 하다. 이처럼 와이쥐가 본작을 통해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적자임을 강력하게 호소하려는 의도는 테레스 마틴(Terrace Martin)에게 맡긴 첫 싱글 "Twist My Fingaz"에서부터 드러난다. 와이쥐의 랩핑과 가사도 전작보다 인상적이다. 여전히 플로우가 림보에 빠지는 구간이 간혹 보이고, 후렴구의 중독성은 약하나 전형적인 래칫 프로덕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디자인한 와이쥐의 랩은 전체적인 앨범의 감흥을 떨어트렸던 이전과 달리 매우 만족스럽다. 와이쥐는 이번 앨범을 통해 확실하게 한 발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현대 클럽에 최적화된 트렌디한 프로덕션과 전통적인 갱스터 랩의 탁월한 조화, 래칫과 쥐펑크를 절묘하게 배합한 성공적인 실험이 가치를 더한다. 데뷔작 [My Krazy Life]가 래칫의 진화로 가는 길목이었다면, [Still Brazy]는 그 진화의 산물이다.


     

    1. A Tribe Called Quest - We Got It From Here... Thank You 4 Your Service

     

    Released: 2016-11-10

    Label: Epic, SME

     

    재즈 랩(Jazz Rap)의 부흥을 이끌고, 지적인 랩의 시대를 열었던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의 새 앨범을 듣게 되리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앨범은 발표됐고, 끝내주는 완성도로 더욱 큰 감동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전반을 감싼 시의적인 주제들은 올드 팬들의 오랜 지지와 기다림을 위해 준비한 마지막 이벤트 차원의 수준에서 몇 발은 더 나아갔음을 보여준다. 근 몇 년 사이 미국 사회에선 다시금 심각한 인종차별 문제가 민낯을 드러냈다. 백인 경찰들의 과잉진압에 의해 죄 없는 흑인들이 억울하게 사망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고, 현재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는 유세 기간 내내 유색인종 비하 및 차별 발언을 쏟아냈다. ATCQ는 앨범에서 이 지점을 정조준한다. ‘보수가 아니라 진보로 가야 할 시간(it’s time to go left and not right)’이라는 노골적인 메시지와 함께 현 미국 사회의 치부인 인종차별 문제를 은유적으로 비꼰 첫 곡 “The Space Program”부터 그룹과 작품의 정치적인 스탠스는 명확히 드러난다. ATCQ의 메시지가 더욱 힘을 얻고 가슴 속을 파고들 수 있는 건 프로덕션 또한 탁월하기 때문이다. 알리 샤히드 무하마드(Ali Shaheed Muhammad)가 한 발 뒤로 물러나고, 큐팁(Q-Tip)이 주도한 프로덕션은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트렌드 어디에도 기대지 않은 채 자유분방하게 구성되어 얼터너티브 힙합의 진수를 선사한다. 더불어 초기 스타일을 그대로 구현하기보다 현대의 감각으로 차용하여 완성한 곡들이 주는 감흥 역시 대단하다. 힙합의 황금기를 수놓았던 전설,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는 그룹 역사상 가장 정치적이며 과거와 현재가 기가 막히게 융합된 앨범을 통해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제이콜(J. Cole), 빅 크릿(Big K.R.I.T.) 등등, 현 세대의 지적인 랩퍼들과 힙합 팬에게 묵직한 화답을 건넸다. 참으로 반가운 부활임과 동시에 아름다운 마무리가 아닐 수 없다. 이전까지 마지막 앨범이었던 [The Love Movement]가 준수했으나 백조의 노래로선 아쉬움이 컸기에 본작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이렇게 클래식과 함께 등장했던 그들이 클래식과 함께 퇴장했다. 오랜 투병 끝에 앨범 작업 중 사망한 멤버 파이프 독(Phife Dawg)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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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재호 (2016-12-23 21:55:34, 220.76.206.**)
      2. Rapsody, Like (of Pac DiV), A$AP Mob, Skyzoo & Apollo, Traviscott, Ka, Rae Sremmurd, Blu & Nottz, Mistah F.A.B, Big Sean & Jhene Aiko,Flatbush Zombies, 2 Chainz & Lil Wayne,Chris Crack & Vic Spencer 도 충분히 20위 안에 들어 갈만한데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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