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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토픽] 2016 국내 랩/힙합 앨범 베스트 10
    rhythmer | 2017-01-06 | 27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리드머 필진이 1차 후보작 선정부터 최종 순위 선정까지 총 두 번의 투표와 회의를 통해 선정한 ‘2016 국내 랩/힙합 앨범 베스트 10’을 공개합니다. 아무쪼록 저희의 리스트가 한해를 정리하는 좋은 가이드가 되길 바랍니다.

     

    2015 12 1일부터 2016 11 30일까지 발매된 앨범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10. 나플라 - New Blood

     

    Released: 2016-07-16

    Label: 메킷레인

     

    작년, 갑작스레 LA 교포 랩퍼들에게 관심이 집중된 시기가 있었다. 나플라(Nafla)는 그 대표적인 랩퍼다. 당시 뮤직비디오와 함께 공개된 “Wu”에서 그는 ‘90년대 우탱클랜(Wu-tang Clan)의 무드를 그럴듯하게 재현함과 동시에 독특하고 미려한 랩핑을 선보여 관심을 모았다. 그의 믹스테잎 [This & That]이 최대한 다양한 비트 위에서 여러 스타일을 시험해보는 실험장이었다면, 나플라가 이번에 발매한 첫 EP [New Blood]는 어느 정도 굳힌 스타일을 소개하는 듯한 맥락의 작품이다. 앨범은 레이드-(Laid-Back)한 분위기의 첫 트랙을 제외하곤 시종일관 긴장감 있는 무드의 트랩 리듬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차지게 쪼개진 비트 위에 나플라와 객원 랩퍼들의 퍼포먼스가 쉴 틈 없이 꽉 채워진 게 앨범의 기본적인 골자이다. 무엇보다 특유의 박자감과 삼키는듯한 발음을 장착한 채 차진 그루브를 자아내는 나플라의 랩은 단연 가장 중요한 감상 포인트. 불과 몇 년 전과 달리 이제 한국힙합 씬에도 뱉는 기술 면에서 완숙한 경지에 다다른 랩퍼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그중에서도 낙차가 큰 플로우를 깔끔하게 구사하는 나플라의 랩핑은 손꼽을만하다. 그만큼 랩 퍼포먼스 자체가 주는 쾌감이 상당한 작품이다 


     

    9. 블레이저스 - Jam Cook

     

    Released: 2015-12-14

    Label: VMC

     

    2009, 빅딜 레코드(Big Deal Record) 시절 결성한 마일드 비츠(Mild Beats)와 딥플로우(Deepflow)의 프로젝트, 블레이저스(Blazers) 6년 만에 발매한 새 앨범이다. 참으로 감회가 새로운 조합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이번 결과물은 상당히 독특한 방법으로 만들어졌는데,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즉흥 연주에 가까운 작업방식을 행한 끝에 나온 5주간의 결과물은 미처 다 다듬어지지 않은듯한 날것의 기운을 매력적으로 담아냈다. 다섯 곡이란 단출한 구성에 트랙마다 각자 다른 방향으로 인상적인 감흥을 품고 있으며, 한 곡 한 곡의 완성도가 탄탄하다. 오히려 그 덕에 앨범의 가장 큰 무기인 즉흥감이 식기 전 적당한 타이밍에 마무리된 느낌이다. [Jam Cook]은 메인 컨셉트인 즉흥미를 살리면서도 작업 방식상 자칫 발목을 잡힐 수 있는 허술함과 떨어져 절묘한 지점에서 마감되었고, 동시에 또렷한 색채를 가진 두 베테랑의 공통분모가 인상적으로 어우러졌다. 일견 무모해 보일 수 있는 시도가 조악하거나 중구난방의 싱글 모음이 아닌 밀도 있는 결과물로 귀결된 건 역시 두 베테랑의 프로덕션과 퍼포먼스 능력이 담보된 덕분이다.


     

    8. 팔로알토 - Victories

     

    Released: 2016-10-27

    Label: 하이라이트 레코즈

     

    2013 [Chief Life]로 커리어에 정점을 찍고, 이듬해 EP [Cheers]를 발표한 팔로알토(Paloalto)는 이후 음악 외적인 사건들로 힙합 씬 안에서 꾸준히 입방아에 올랐다. 이에 대해 공개곡과 매체를 통해 입을 열기 전까지 그는 불필요해 보이는 적잖은 구설수에 휩싸여야 했는데, 그로부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발표된 EP [Victories]에는 팔로알토가 그간 느꼈던 갈등과 소회, 그리고 성취감이 담겨있다. [Victories]는 담은 주제나 스타일 면에서 전작 [Cheers]와 비슷한 흐름을 이어간다. 팔로알토가 그동안 쌓아 올린 여러 성취에 대한 자축으로 내용의 뼈대를 만들고, 이를 편안한 분위기 아래 풀어내는 식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Chief Life] [Cheers]가 한 명의 음악가인 동시에 레이블의 수장으로서 거둔 성과에 초점을 맞췄다면, [Victories]는 이보다 개인적인 영역에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팔로알토는 앨범을 통해 이전보다 나아진 환경과 물질적 부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여타 랩퍼들과는 사뭇 다른 감흥을 자아낸다는 점이다. 청자가 막연한 동경이나 부러움을 갖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한 요소들을 통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만드는 장치로 사용하는데 집중한다. 그동안 쌓아올린 내공과 이야기의 힘을 바탕으로 완성한 본작은 팔로알토가 여전히 한국힙합 씬의 대표적인 플레이어 중 한 명임을 체감하게 한다.


     

    7. 버벌진트 - GO HARD Part 1 : 양가치

     

    Released: 2015-12-19

    Label: 브랜뉴뮤직

     

    /힙합을 중심으로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추구하는 버벌진트(Verbal Jint) 'Go Hard'라는 타이틀의 앨범을 발표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이후로 많은 힙합 팬은 큰 기대를 품어왔다. 한동안 차트에서 성공한 랩-(Rap Song)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곡들로 논쟁을 부추긴 그가 가사적으로나 프로덕션적으로 좀 더 장르 색채가 짙은 앨범을 발표하여 [무명] [누명] 때의 성취를 보여주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분명한 건, [Go Hard]가 최근 선보인 일련의 작업물과는 다른 음악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귀를 잡아끄는 보컬 후렴이 아닌 타이트한 그의 랩이 곡 대부분을 가득 채우고 있고, 어둡고 무거운 무드에 리듬부가 더 귀에 선명히 박히는 비트들이 자리하고 있다. 가사도 마찬가지다. 뚜렷한 컨셉트 안에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독특한 표현과 접근을 찾아볼 수 있다. 모든 랩퍼의 단골 주제인 자기과시도 그의 손을 거치면 그 색이 달라진다. 그의 커리어 안에서 읽을 수 있는 맥락을 제거하고 앨범만을 바라보자면, 긍정적인 지점을 많이 찾아낼 수 있다. 무엇보다 그의 내러티브와 최근 트렌드를 이끄는 래퍼들로부터 받은 영향을 흡수한 랩핑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기술적으로 완연한 랩을 가득 채워 랩이 전달하는 쾌감이 상당했던 믹스테입 시리즈에서와 같은 느낌을 이번 앨범 안에서도 만끽할 수 있다.


     

    6. 제리케이 - 감정노동

     

    Released: 2016-03-15

    Label: 데이즈얼라이브

     

    미국의 트렌디한 블랙뮤직을 놀라운 속도로 흡수하고 재현해내는 이들이 많아지고, 그러한 움직임 안에서 음악의 형식미는 크게 발전해왔다. 그럼에도 근래의 많은 랩 음악 사이에서 가장 크게 갈증을 느끼게 되었던 부분은 좋은 가사였다. 그 기준은 의미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절묘하고 기가 막힌 표현일 수도 있다. 물론, 두 가지 모두일 수도 있다. 그리고 제리케이는 그 갈증을 어느 정도 풀어줄 수 있는 뮤지션이다. 특히, 좋은 의미에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정도로 고집스러운 이야기꾼이다. 이번 새 앨범에서도 그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직설적인 화법으로 드러내고, 적나라하게 기록해냈다. 다만, 이 음반의 평가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지점은 메시지들의 구체적인 내용이 아니라, 그러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큰 방향성이란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프로덕션, 특히, 험버트(Humbert)의 비트는 탁월하다. 긴장감이나 완급 조절과 변주를 통해 절묘하게 곡을 끌고 나가는 리듬 구성은 앨범의 일정한 무드 조성에도 한몫을 하고, 한층 더 세련된 외양을 입혀 지금의 이슈를 다루는 가사와 훌륭한 짝을 이룬다. [감정노동]은 올바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나 그런 행위 자체를 촌스럽다고 바라보는 시대에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작품이다. 앨범을 통해서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우리의 오늘이고, 제리케이가 일관되게 걸어온 길은 우리가 함께 보는 이 드라마의 감동을 증폭시킨다.


     

    5. 빈지노 - 12

     

    Released: 2016-05-31

    Label: 일리네어 레코즈

     

    지난 5년간 한국 힙합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을 꼽는다면, 빈지노(Beenzino)일 것이다. 그 대상의 범위를 넓혀도 상위에 오르기 충분하다. 무엇보다 그의 행보를 치켜세울 수 있는 건 뻔한 타협점이 보이지 않는 앨범과 싱글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빈지노의 놀라운 인기의 시작이 오직 음악적 완성도 덕분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장르 팬은 물론, 대중까지 그 열기에 오랜 기간 붙잡아두는 강한 힘은 당연히 빈지노의 음악으로부터 비롯한다. 본작에서 세상에 한 발만 걸친 듯 유쾌하게 여유를 펼치는 동시에 진중한 시선을 견지하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강력하다. 초반 “Time Travel”, “토요일의 끝에서그리고 마지막 트랙 “We Are Going To”는 이러한 강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트랙이다. 특히, 과거의 자신을 만난다는 뻔한 테마를 가지고 평이한 구성이나 교조적 자세를 피하면서 세세한 상황묘사와 뛰어난 감정전달로 보편적 감흥을 끌어내는 “Time Travel”은 새 시대의 청춘찬가로 부를만하다. 더해서 자신의 예술적 한계점을 도발적 내러티브를 통해 부정하는 트랙들 역시 빈지노만의 매력이 가득 담겨 있다. 비록, 2013년에 발표했지만, 위대한 예술가를 끌어 와 자신과 동일시하는 “Dali, Van, Picasso”는 여전히 강렬하게 하이라이트를 차지하는 명곡이고, 능글맞은 자기과시 형식으로 결국은 예술가로서 한계가 없다는 자존감을 멋지게 펼치는 “Flexin” 역시 신선하다. 빈지노의 타이트한 랩 퍼포먼스와 함께 음악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돋보인 앨범이다.


     

    4. 넉살 – 작은 것들의 신

     

    Released: 2016-02-04

    Label: VMC

     

    애니마토(Animato)와 함께했던 퓨쳐 헤븐(Future Heaven)으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비스메이저(VMC) 입단을 기점으로 넉살의 존재감은 급부상했다. 특히, 코드 쿤스트(Code Kunst)와 합작 트랙에서 돋보였던 사유와 딥플로우(Deepflow) [양화]에 수록된작두에서 선보인 인상적인 퍼포먼스는 그 기대치를 더욱 높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치솟은 기대 아래 그의 첫 솔로 정규작 [작은 것들의 신]이 발매되었다. 넉살은 여러 중구난방의 것들을 작품 안에 욱여 넣으면서도, 화자인 자신을 중심에 잘 배치하여 트랙 간에 꽤 긴밀한 이음새를 만들어낸다. 수록된 곡들은 그를 중심으로 구성되지만, 스스로 설정한 역할에 따라 그 배경이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든다. 인트로를 겸하며 태도와 다짐을 선포하는팔지 않아를 비롯해 각자 자리에서 자기 몫을 해내고 있는 모든 이들을 따뜻하게 격려하는밥값”, 그리고 앨범의 마지막에 이르러 작품의 당위를 밝히는작은 것들의 신모두 자연스레 넉살이라는 랩퍼의 시간과 함께 흐르는 서사로 기능하는데 성공했다. 씬의 기대주로 불리며, 이제서야 첫 솔로 정규작을 발표했지만, 넉살이 퓨쳐 헤븐으로 처음 씬에 등장한 지는 제법 많은 시간이 지났다. 또한, 앨범이 발매되기 전 이미 그의 뛰어난 퍼포먼스와 가사를 밀도있게 풀어내는 능력은 증명되어 있었다. 자연스레 이번 작품에서 그가 시험대에 오른 부분은 과연 홀로 앨범을 끌어갈만한 역량이 어느 정도인가였다. 그리고 넉살은 [작은 것들의 신]을 통해 솔로 아티스트로서 존재감을 확실하게 아로새겼다.


     

    3. 던말릭 X 키마 - Tribeast

     

    Released: 2016-04-19

    Label: 데이즈얼라이브

     

    2015년 프로듀서 마일드 비츠(Mild Beats)와 합작 앨범 [탯줄]을 만들었던 랩퍼 던말릭(Don Malik)이 프로듀서 키마(Kima)와 다시 한번 ‘1 MC 1 프로듀서체제로 발표한 작품이다. '멀리서 지켜보는 야생 섞이지 않아 흙에서 태어난 하나의 개념 그 틀 어디에도 맞지 않는 내 몸'이라고 선언했던 [탯줄]의 마지막 트랙첫 울음을 자연스레 이어받아 확장하는 연작이다. [탯줄]을 전부 할애해 빚어낸 캐릭터는 [Tribeast]에 그대로 등장하여 그가 세상을 바라볼 때 느끼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풀어낸다. 특히, 하나의 큰 주제 아래 단 한 명의 프로듀서와 함께하는 방식 자체가 던말릭의 랩을 즐기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건 본작을 감상하는 데 핵심적이고 흥미로운 지점이다. 특히, 던말릭은 몇 개의 직언으로 끝낼 수 있는 찰나의 감정을 아주 장황하게 풀어내는데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는 곡마다 은유 가득한 시적 표현을 끊임없이 뱉어내며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주제를 정신없을 정도로 늘려놓는다. 하지만 주제가 모호해지기보다 오히려 강렬한 인상으로 힘을 더해가는 과정은 여러 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상투적인 표현을 철저하게 배제해 낯선 기운을 불어넣어 관심을 유도하고는, 마치 힘 조절이 안 된 듯 아슬아슬하게 플로우를 이어가다 굉장히 여유롭게 벌스를 빠져나오며 듣는 이의 집중을 요구하는 능력은 전작에서 보여준 것 이상이다. 앨범 전체에 걸쳐 세련된 질감으로 주조한 루핑에 지루하지 않은 사운드 소스 운용을 더한 키마의 프로덕션은 던말릭 특유의 작법과 퍼포먼스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앨범을 통해 던말릭은 한국 힙합 시장의 기형적 구조 및 구성원에 대한 환멸을 보내며 그것과는 섞이지 않겠다는 자기 선언을 담았다. 메시지 자체도 범상치 않지만, 무엇보다 이 앨범의 가치는 한국 힙합에서 보기 드물게 인상적인 가사 작법과 이를 성공적으로 구현하여 충분한 감흥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2. 저스디스 - 2 Many Homes 4 1 Kids

     

    Released: 2016-06-14

    Label: -

     

    몇 장의 믹스테입으로 이름을 알린 이래, 불한당의 [A Tribe Called Next] 프로젝트 참여와 인상적인 피처링 등으로 입지를 넓히는 중이었던 저스디스(Justhis)의 첫 정규작이다. 그리고 이 앨범은 그간의 결과물에 따른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는다. 또한, 근래 발표된 한국힙합 앨범 중 가장 흥미로운 전개를 보여주기도 한다. 구성 자체는 특별할 게 없는 편이다. 하지만 [2 Many Homes 4 1 Kid]는 도입부의 “Motherfucker”부터 앨범의 마지막 순간까지 놀라운 수준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여기엔 저스디스의 장기인 차진 랩 퍼포먼스가 크게 한몫 한다. 긴장감을 유지하는 속도감 위에 잘 짜인 라임, 그리고 순간적인 집중을 끌어내는 의도적인 목소리 톤의 이탈이 적절히 더해진 랩 스킬은 단연 치켜세울만하다. 더불어 뛰어난 전달력은 이 모든 요소들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프로덕션 대부분을 책임진 디프라이(Deepfry)와 시너지는 이 같은 장점을 더욱 강화했다. 보통 따스한 질감으로 마감한 샘플링 소스를 촘촘히 배치해 흥을 돋우는 디프라이의 비트는 저스디스와 협연에서 좀 더 과감한 변주를 더한 부분이 눈에 띈다. 그 어느 때보다 감각적이고 탄탄하며, 둘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몰입감은 다채로우나 결코 편하지 않은 표현과 서사구조에도 불구하고 앨범을 단숨에 흡수하게끔 한다. 그리고 이는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다. 저스디스는 비틀리고 꼬인 심리상태와 이를 인식한 이후, 여러 단계를 거치는 모습을 표현하는 데 앨범 전체를 할애하기 때문이다. 랩과 프로덕션의 완성미로 적극적 접근을 유도하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단계로 감상을 끌어가려는 시도가 엿보이고,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다. 과도한 욕설이 섞인 불안한 심리상태를 단계별로 그려낸 랩은 뛰어난 연출력과 퍼포먼스 덕에 공포감이나 이물감, 또는 비루함이나 애잔함 같은 다양한 감정을 전달하기도 하고, 때론 헛웃음이 나오는 괴상한 농담처럼 들리기도 한다. 전형적인 틀 안의 이해나 공감과는 완전히 거리를 둔 한 재능 있는 랩퍼의 이야기가 담긴 [2 Many Homes 4 1 Kids]는 그래서 많은 이에게 불편할 것이고, 같은 이유로 굉장히 매력적일 것이다.


     

    1. 화지 - Zissou

     

    Released: 2016-02-02

    Label: 인플래닛

     

    랩퍼 화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부분 가장 먼저 언급하는 부분은 가사에 대한 것들이다. 놀라운 결과물이었던 전작 [EAT]의 중심에는 그의 가사가 있었다.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냉철하게 시대상을 꿰뚫는 그의 작법은 적당한 은유와 암시로 더욱 독창적이고 복잡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이는 [Zissou]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복잡하게 꼬아놓은 가사의 구조는 사실 은유와 암시를 걷어내고 그대로 보면, 상당히 직관적인 동시에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라이밍을 위해 억지로, 또는 지적 허영의 과시를 위해 사용된 불필요한 단어나 구절이 거의 없다. 간혹 등장하더라도 냉소적으로 비꼬는 용도로 사용되거나 다른 생생한 표현과 함께 어우러져 묘하게 해롱대는 독특한 캐릭터 메이킹에 일조한다. 특히, 대부분 일상적 표현을 사용하여 편하게 이야기하듯 라임을 이어가는 화지의 랩이 표현 이상의 풍부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치밀하게 설계된 플로우 디자인 때문이다. 여기에 영혼의 파트너 영 소울(Young Soul)의 감각적인 샘플링과 그루브 연출이 빛을 발한 비트가 어우러져 감흥이 극대화되었다. 정규 데뷔작 [EAT] '화지는 어떤 놈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Zissou] '화지는 왜 이런 놈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만큼 모든 곡이 여러 주제 사이사이를 교차하며, 결국 화지라는 인물을 이해하도록 정교하게 꾸며져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핵심은 아니다. 화지의 이야기에 비친헬조선이라 불리는 이 시대를 사는 청춘이 겪는 세상이야말로 진정한 본작의 골자다. 모든 가사에서 숱하게 깔아놓은 깊이 있는 디테일은 화지라는 캐릭터를 차별화하는 도구로 작용하는 동시에 그가 살고 바라보는 세상을 그리는 강력한 복선으로 기능한다. 세상 속 청춘을 그린 주제 자체가 그다지 새롭지 않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가 앨범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견고하게 만들어 낸 도발적인 세계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 그리고 음악적 구조의 세밀함은 경이로운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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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zling (2017-03-23 10:55:33, 203.241.183.*)
      2. 과제 잡지에 사용해도될까요 겁나 좋아서!! 영리적목적 ㄴㄴ이구요
      1. 백상엽 (2017-02-05 21:49:47, 122.44.111.**)
      2. 좋은 평 감사합니다. 작업 과정에서의 디테일을 알 수 있어서 깊이 있는 감상에 도움이 많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1. The Neptunes (2017-01-15 22:03:48, 114.204.202.***)
      2. free from seoul 정말 최고였는데 아쉽네요

        화지 정말 대단합니다
      1. yangsuk90 (2017-01-10 11:40:23, 1.229.244.***)
      2. 화지 랩핑이나 가사를 보면
        참 진솔하고 타잇하면서 굵직한 목소리가
        어떤 면에서는 스윙스와 또 흡사하네요 ㅋㅋ
        또 스윙스가 좋아하는 jadakiss와도 떠오르고요
      1. 이재호 (2017-01-09 10:14:46, 61.32.22.***)
      2. 국외는 워낙 음악 스펙트럼과 다양성이 넘쳐나기에 수준과 평점이 다를 수 있으나, 국내는 그보다 한정적이기에 의견이 많이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화지는 이견 없이 1위.
      1. detox (2017-01-07 23:32:40, 1.237.58.***)
      2. 힙합 엘이 국게에서 기생하는 힙찔이 저능아 들에게 화지 앨범 들려주니까 지루하고
        구리다고 함 ㅋㅋㅋ 엘이같은 쓰래기 삼류 힙합 커뮤가 하루빨리 사라져야 될텐데..
      1. 0r트모스 (2017-01-07 10:54:32, 211.36.137.***)
      2. 화질라 소리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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