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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R.E.S.P.E.C.T, 리스펙트, 그 오묘한 감정에 관하여
    rhythmer | 2017-06-19 | 12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 강일권

     


    현실에서 디스(Diss)와 리스펙트(Respect)는 양극단에 있는 단어지만, 힙합계에선 가장 상징적인 단어의 카테고리 안에 함께 있다. 특히, 이 둘은 랩 제다이들이 즐비한 씬에서 때때로 포스의 균형을 맞추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디스전이 과열되면, 리스펙트의 중요성이 대두하고, 반대로 맹목적이거나 과도한 리스펙트를 요구하면 디스전이 발발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 행위의 동기가 개인적이고, 대상이 확실하여 의미가 뚜렷이 다가오는 디스와 달리 리스펙트는 어딘가 분명하지 않고 어렴풋하다. 또한, 오늘날 디스가 엔터테인먼트라면, 리스펙트는 캠페인과도 같다.  

     

    그렇다 보니 힙합 팬들 사이에서 주기적으로 리스펙트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를테면, ‘과연 그 랩퍼를 리스펙트할만한 가치가 있는가?!’내지는 ‘1세대라면 무조건 리스펙트해야 하는가?!’ 같은 논쟁들. 이 같은 논란에서 두 개의 화두는 언제나 이인삼각처럼 묶여있으며, 주로 전자에서 불이 붙어 후자로 옮겨가곤 한다. 그리고 여기에 명확한 정답은 있을 수 없다. 다만, 좀 더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선 리스펙트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사실부터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존경존중이란 뜻 전부를 포함한다는 것 말이다.


     



    두 단어의 의미는 같은 듯 다르다
    . 둘 다 받들어 귀중히 대한다는 뜻이지만, 존경이 특정인의 인격, 행위, 업적 따위에서 비롯한 것이라면, 존중은 나 이외 다른 사람의 가치와 고유성을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한다. 일반적으로 도덕적인 차원에서의 의미 부여가 강한 존중이 존경보다는 수동적이며, 광범위한 뜻으로 쓰인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버벌진트가 “R.E.S.P.E.C.T.”란 곡에서 말한 리스펙트(‘I got my R.E.S.P.E.C.T / 각자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 Grinding하는 모두에게 경례 / 상관이 없어, 후배, 선배. You got respect from me’)존중의 의미에 가깝다. 그리고 힙합 씬에서도 두 의미는 수시로 혼용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최초의 랩 히트곡을 낸 슈거힐 갱(Sugarhill Gang)의 행위와 업적은 존중하지만, 랩 실력과 가사적인 미학의 부족을 근거로 그룹은 존경하지 않을 수 있다. N.W.A가 남긴 음악적인 유산과 업적은 존중해도 폭력적이며, 여성 비하적인 갱스터 랩을 했기 때문에 존경하지 않을 순 있다. , 힙합 선구자들을 존중하지만, 그들 모두를 존경하지 않을 수도, 힙합 선구자들이라고 해서 존중하진 않지만, 그들 중 일부만큼은 존경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리스펙트란 감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로 작년에 한바탕 논란을 불러일으킨 릴 야티
    (Lil Yachty)투팍(2Pac)과 비기(The Notorious B.I.G.)의 노래 중 5곡도 언급하지 못하겠다.”라는 발언 역시 그들을 (초창기 아티스트로서) 존중할지언정 (개인적으로) 존경하진 않는다.’ 정도로 해석하면 무작정 디스리스펙트라고만 비난할 순 없는 것이다. 진정한 존경심이란 강요를 통해 발현하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야티의 발언을 비판하는 측의 주장 또한 충분히 수긍할만하다. 그들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했을 때 야티가 투팍과 비기로 대표되는 힙합 선구자들에게 존중마저 보이지 않았다고 여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리스펙트란 참으로 오묘한 감정이지만, 그럼에도 존경이든 존중이든, 리스펙트를 받을만한 아티스트의 조건은 암묵적으로나마 정해져 있다. 음악사적으로 큰 획을 그었거나 커리어에서 명반을 보유했을 때, 명성에 걸맞은 행보를 보일 때, 실력이 매우 출중할 때 등등, 때론 한 가지 이유로, 때론 복합적인 이유로 리스펙트하고 리스펙트받는다. 중요한 건 전부 음악적인 부분에 기반을 두었으며, 그것이 단지 상업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결국, 해당 아티스트에 대한 기록이 주요한 근거로 작용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힙합 씬에는 사람들이 근거로 삼아 떠들만한 기록이 매우 부족하다
    . 또한, 한국힙합 베테랑 대부분의 커리어를 봤을 때, 미국의 힙합 베테랑들과 달리 이전과 현재 사이의 괴리가 큰 게 사실이다. 그나마 손꼽을만한 베테랑 아티스트들 역시 방향성 및 음악성의 격차가 큰 편이고 말이다. 그렇기에 힙합 팬들이 벌이는 논란 속에서 리스펙트의 의미가 어지럽게 뒤섞이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맥락상 '존중'과 '존경'의 구분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이에 따라 해당 아티스트에 대한 리스펙트를 논하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미국힙합 씬의 베테랑이라고 해서 이견의 여지 없이 리스펙트받는다는 얘긴 아니다. 장르 팬 모두에게 리스펙받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며, 설령 그런 아티스트가 있다 해도 그것이 끝까지 이어지게 될는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반대로 현재는 리스펙트받지 못하지만, 앞으로의 커리어에 따라 후대엔 리스펙트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리스펙트의 유효기간은 매우 가변적이며, 적어도 존경의 의미로써까지 리스펙트받는 아티스트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그래서 더욱 의미 있고, 값진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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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mments
      1. 로터스 (2017-06-20 13:07:01, 1.226.29.**)
      2. NWA가 강한 표현으로 인종차별을 비판했지만 반대로 개인적 행동들은 사회구성원으로써 해가 되는 일도 많이 한 것 같아서 저도 켄드릭 라마가 막 리스팩트해도 좀 걸러서 보게 되는 점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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