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뷰] 힙합과 아프리카가 마블의 음악에 미칠 영향은?
- rhythmer | 2017-08-23 | 12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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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정용 풋볼리스트 기자(Contributor)지난 7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만화 및 서브 컬처 관련 축제 ‘코믹콘(Comic Con)’이 열렸다. 마블과 DC 영화의 캐릭터들과 만화가들이 주인공인 행사엔 흥미로운 인물이 껴있었다. 락 네이션 소속의 힙합 아티스트이자 프로듀서 루드비히 괴란손(Ludwig Göransson)이다. 7월 20일, 괴란손은 힙합 프로듀서가 아니라 영화 음악 감독으로서 ‘슈퍼 히어로의 음악적 분석’ 간담회의 패널을 맡았다. 슈퍼 히어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음악 감독 4명이 모여 자신의 작업에 대해 청중들과 이야기하는 자리였다(*편집자 주: 괴란손에 관한 참고 글: http://bit.ly/2rC8KQi).
괴란손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뛰어난 흑인 영화 음악 감독이기도 하다. 스웨덴 태생이지만, 가장 촉망 받는 흑인 감독인 라이언 쿠글러(Ryan Coogler), 배우 마이클 비. 조던 (Michael B. Jordan)과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조던과 쿠글러의 출세작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Fruitvale Station], 상업 영화였던 [크리드, Creed]를 연달아 함께했다. 특히, [크리드]는 808 드럼을 비롯해 힙합에서 흔히 쓰이는 가상 악기들을 활용하고, 다양한 믹싱 테크닉을 적용한 음악이 인상적이었다. 힙합 비트의 느낌을 살려서 만든 개성 있는 영화음악이었다.
괴란손의 이번 프로젝트는 [블랙 팬서, Black Panther]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Captain America: Civil War]에서 처음 등장한 흑인 히어로 블랙 팬서가 주인공이다. 역시 쿠글러가 연출을 맡고, 조던은 악역으로 출연한다. 괴란손은 코믹콘에서 만난 청중들에게 작업 중인 사운드트랙의 일부를 들려주고 작업 과정을 설명했다.
[블랙 팬서]의 무대는 가상의 아프리카 국가 와칸다다. 중앙 아프리카 어딘가에 숨겨진 나라로, 극중 가장 희귀한 금속인 비브라늄의 주산지다. 아프리카 고유 문화와 고도로 발달한 기술 문명이 조화를 이룬 곳이기도 하다. 이에 괴란손은 힙합을 넘어 그 뿌리인 아프리카의 색을 살린 음악에 도전해야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아프리카 고유의 악기를 적극 활용하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세네갈에서 한 달 동안 현지 음악을 수집했다.그는 남아공의 한 도서관에서 아프리카 여러 부족의 음악을 모아둔 방대한 자료를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악기들로부터 영감을 얻었고, 녹음 파일을 잔뜩 들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현재 괴란손은 해당 자료를 바탕으로 퍼커션과 리드미컬한 타악기를 적극 활용한 음악을 작업 중이다. 그는 “아프리카에는 1,000개가 넘는 언어가 있고, 각각 고유한 악기와 음악이 있다.”라면서 다양한 아프리카 음악을 조합해 와칸다의 스타일을 창조하는 작업이 흥미롭다고 이야기했다.
코믹콘 현장에서는 일부 트랙을 들을 수 있었다. 그중엔 아프리카에서 녹음해온 타악기 소리도 있었고, 아직 작업 중인 사운드트랙의 초기 버전(45초 정도)도 있었다. 현장을 취재한 ‘웨어투왓치(WhereToWatch)’는 ‘괴란손의 이야기에 청중들이 특히 흥분했다.’라고 전했고, ‘사이언스픽션(Science Fiction)’의 기사는 ‘아프리카에서 녹음해온 토속적인 타악기 소리가 영화 음악에 영감을 줄 것’이라고 전했다.
힙합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괴란손 특유의 작법 역시 [블랙 팬서]에서 쓰일 것으로 보인다. 괴란손은 간담회 자리에서 영화의 예고편을 상영했다. 예고편 음악도 물론, 괴란손이 작업했다. 1분 52초 분량의 예고편 중 초반 1분 동안은 다양한 효과음과 타악기 소리가 드문드문 나온다. 1분 1초 부분부터 본격적인 음악이 나오는데, 런 더 주얼스(Run The Jewels)의 히트곡 “Legend Has It”이다. 영화의 주요 장면이 지나갈 때 ‘Step into the spotlight, woo!’라는 후렴이 반복적으로 재생된다. 직선적이면서도 그루브가 살아있는 런 더 주얼스의 음악은 빠른 템포로 전개되는 예고편과 잘 어울린다.
그런데 잘 들어보면, 초반에 나오는 효과음 중에서도 꽤 여러 개를 “Legend Has It”에서 따 왔다. 폭포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잠깐 흘러나오는 효과음, 블랙 팬서가 전용 비행기를 타고 날아갈 때 짧게 지나가는 변조된 목소리, 침입자들이 와칸다의 정글에 막 들어섰을 때 나오는 불길한 함성 소리가 모두 “Legend Has It”에서 따온 샘플이다. 샘플링의 방법론을 예고편 음악에 활용한 셈이다.괴란손은 노래 하나를 그대로 삽입하는 것이 아니라, 원곡을 마음대로 분해해서 다시 조립하는 비트 메이커의 작법 그대로 예고편 음악을 만들었다. 처음 들었을 땐 각 소리의 출처를 파악하기 힘들지만, 예고편을 다 보고 나면 초반에 나온 소리들의 출처를 비로소 알 수 있다. 괴란손은 “Legend Has It” 하나로 삽입곡을 2개 쓴 것 같은 효과도 냈다. 킬러 마이크(Killer Mike)가 랩을 하는 세 번째 벌스만 차임벨 소리가 강조된 브레이크 비트가 깔리는데, 이 비트를 따서 예고편 마지막 부분에 활용했다.
이처럼 아프리카 음악과 힙합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블랙 팬서]는 독특한 음악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사실 마블 영화를 비롯한 요즘 블록버스터의 사운드트랙은 너무 천편일률적이라며 비판 받는 중이다. 마블의 영화 음악이 비판 받는 중요한 이유는 템프 뮤직(Temp Music), 즉 임시 음악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템프 뮤직은 아직 사운드트랙이 나오기 전 영상 편집에 도움을 받기 위해 임시로 영상에 붙여 보는 음악을 말한다. 기존 음악 중 해당 장면과 어울릴 법한 음악을 임시로 얹었다가, 사운드트랙이 완성되면 새 음악으로 갈아 입히는 식이다.
그런데 최근 블록버스터 영화의 음악 감독들은 ‘깔려 있는 템프 뮤직이 괜찮으니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이미 존재하는 음악을 비슷하게 흉내 내면서, 주 선율이나 악기만 조금 비틀어서 다른 음악으로 만드는 것이다. 블록버스터 영화의 음악은 다른 블록버스터를 베낀다. 이 과정이 반복되는 탓에 여러 영화의 음악은 점점 비슷해지고, 개성이 없어진다. 지나치게 정형화된 영화 제작 과정이 음악가의 창의성을 제한하고, 결국 재미없는 양산형 음악만 남긴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대니 엘프만(Danny Elfman), 알렉상드르 데스플라(Alexandre Desplat), 마이클 대나(Mychael Danna) 등, 유명 음악 감독들은 ‘할리우드 리포터’가 주최한 대담에서 템프 음악에 너무 의존하는 관행을 비판한 바 있다. 특히, 엘프만은 “템프 음악은 내 존재를 위협하는 골칫거리”라고 잘라 말했다.
그런 가운데, 개성 없는 음악을 지적 받아온 마블 영화들은 최근 오리지널 스코어가 아니라 삽입곡을 통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전략을 선보였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Guardians of the Galaxy] 시리즈는 추억의 올드 팝을 대거 삽입하여 영화를 서정적으로 만들었다. 삽입곡을 모은 OST 앨범이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하기도 했다. 최근 개봉한 [스파이더맨: 홈커밍, Spider-Man: Homecoming]은 풋풋한 고등학생 주인공과 어울리는 라몬즈(Ramones), 데미 로바토(Demi Lovato), MGMT 등의 음악을 영화 본편과 예고편에 활용했다.
[블랙 팬서]는 기존 마블 영화와 다른 독특한 리듬과 악기 구성을 통해 영화에 어울리는 음악이 기대된다. 괴란손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쿠글러와 함께 작업하며 발언권을 많이 확보한 상태다. 영화의 초기 아이디어부터 공유하며, 적극적으로 음악을 구상할 뿐만 아니라 영화 편집에도 관여하는 핵심 스태프다. 템프 뮤직에 덜 휘둘릴 것으로 기대할 만한 상황이다. 괴란손은 “쿠글러가 평범한 스코어를 쓰지 않기 때문에 더 힘들지만, 그만큼 내가 마음대로 놀 수 있는 공간이 많다.”라고 말한 바 있다.한편, [블랙 팬서]는 쿠글러, 조던, 괴란손만 뭉친 것이 아니다. 힙합과 블랙 문화에 일가견이 있는 스태프들이 드림팀을 이뤘다. 국내 힙합영화제에서도 상영했던 [도프, Dope]의 촬영 감독 레이첼 모리슨(Rachel Morrison)도 합류했다. 모리슨은 마블 최초의 여성 촬영감독이기도 하다. [문라이트, Moonlight]와 [마일스, Miles], 그리고 비욘세(Beyonce)의 비주얼 앨범 [Lemonade]를 작업한 프로덕션 디자이너 한나 비츨러(Hannah Beachler)도 참여한다. 모리슨과 비츨러는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를 함께 작업하며 이미 호흡을 맞춘 바 있다. 힙합과 아프리카가 마블의 영화음악에 미칠 영향이 어느 정도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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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로윈1031 (2017-08-24 16:46:03, 182.225.134.**)
- 복싱영화에서 탁월한 음악영화로도 변주하더니 이번엔 블랙블록버스터?!로 확장되는 걸까요? ㅋㅋ 기대됩니다. 아티스트들이나 작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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