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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토픽] 영국힙합을 알기 위해 꼭 들어봐야 할 앨범 10 (2)
    rhythmer | 2017-09-27 | 9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 지준규

     

    -1부에서 이어집니다.


     

    Tinchy Stryder - Star In The Hood (2007)

     

    2002년 결성된 롤 딥(Roll Deep)은 영국힙합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그룹이다. 그라임(Grime)의 대부 와일리(Wiley)를 비롯하여 디지 래스컬(Dizzee Rascal), 스켑타(Skepta), 트림(Trim) 등의 걸출한 랩 스타들이 그룹을 거쳤고, “The Avenue” “Good Times” 같은 히트 싱들 또한 그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데뷔 초부터 매력적인 보이스와 풍부한 표현력으로 주목받았던 틴치 스트라이더(Tinchy Stryder) 역시 롤 딥이 배출한 주요 뮤지션 중 하나이며, 그의 빼어난 재능은 첫 정규작 [Star In The Hood]에서부터 고스란히 발휘되었다.

     

    틴치 스트라이더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단연 폭넓은 사운드 스펙트럼이다. 그의 래핑은 거칠게 휘몰아치는 전형적인 그라임이나 빠른 박자의 댄서블한 비트는 물론, 다소 난해하고 복잡한 일렉트로닉 사운드까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어우러지며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이는 전적으로 탄력적인 보컬 운용에 기인한다. 특유의 하이 톤을 주제나 정서에 맞게 자유자재로 변형하며, 모든 트랙에 개성과 색채를 불어넣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수록곡 대부분은 위트 넘치는 라임들로 가득 차 있는데, 생생한 노랫말로 본인의 지난 과거를 반추하며 색다른 감흥을 자아내는 “Follow”는 단연 압권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o8q4K7gpfzk (“Follow”)


     

    Speech Debelle - Speech Therapy (2009)

     

    여러 쟁쟁한 후보를 재치고 2009년 머큐리 상(Mercury Prize/필자 주: 매년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발매된 앨범 중 최고의 작품에 주는 상)의 주인공이 된 이는 놀랍게도 여성 래퍼 스피치 데벨(Speech Debelle)이었다. 그녀는 데뷔작 [Speech Therapy]를 통해 독창적인 음악 색깔을 유감없이 드러냈고, 이는 하나의 고정된 스타일로는 결코 규정할 수 없을 만큼 기발하고 매력적이었다. 루츠 마뉴바(Roots Manuva)의 오랜 파트너 웨인 베넷(Wayne Bennett)의 주도 아래 완성된 프로덕션은 앨범 내내 팽팽함을 유지하고 강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재지한 레이드-(Laid-Back) 비트 위에 매끈한 멜로디의 신시사이저와 현악 연주, 그리고 각종 효과음까지 다채롭게 버무려진 독특한 사운드는 고전적인 멋과 진보적인 감각이 동시에 발휘되어 단번에 귀를 잡아끈다. 스피치 데벨의 통통 튀는 플로우 역시 그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몰입도를 높이는데, 재기발랄한 후렴구가 인상적인 “The Key”나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감성을 자극하는 “Spinnin'” 등의 트랙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진지함과 유쾌함을 두루 갖춘 본작은 보편적인 힙합과는 또 다른 감흥을 선사하며, 많은 이에게 창조적 영감이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98iyEf5a7E (“The Key”)


     

    Giggs - Let Em Ave It (2010)

     

    긱스(Giggs)의 두 번째 정규작 [Let Em Ave It]은 영국 갱스터 랩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데 기여한 작품 중 하나이다. 거리에서의 삶과 경험을 적나라한 언어로 여과 없이 그려낸 가사는 깊은 공감을 자아냈고, 그 안에 담긴 진정성 있는 메시지 역시 듣는 이에게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비록, 독창적인 비유나 정교하게 다듬어진 라임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읊조리듯 내뱉는 중저음의 플로우가 몰입도와 긴장감을 높였으며, 종종 등장하는 장난스러운 농담은 마초적인 긱스의 목소리와 묘한 대비를 이뤄 극적인 희열을 배가시켰다.

     

    다양한 음악 재료를 적절하게 녹여낸 앨범의 프로덕션 또한 수준급의 완성도를 보였다. 풍성한 리듬의 드럼 비트 위로 각종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결합되는 식의 작법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다채로운 질감의 효과음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상투적이고 진부한 전개를 영리하게 탈피했다. 특히, 세차게 몰아붙이는 신시사이저와 공격적인 베이스 라인의 강한 시너지가 돋보이는 트랙 “Look What The Cat Dragged In”은 긱스의 야성미를 극대화하며, 앨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IUL10qOeR8 (“Look What The Cat Dragged In”)


     

    The Four Owls - Nature's Greatest Mystery (2011)

     

    그라임의 파괴력은 2000년대 후반까지도 여전히 유지되지만, 그 방향이 점차 과도한 상업주의로 흐르고 비슷한 느낌의 곡들이 양산되면서 염증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났다. 이는 자연스럽게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뛰어난 기량을 가졌음에도 그라임의 거대한 그림자 속에 묻혀 빛을 보지 못했던 몇몇 래퍼들이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독립 레이블 하이 포커스(High Focus)의 수장 플립트릭스(Fliptrix)를 중심으로 4명이 뭉친 더 포 아울스(The Four Owls) 역시 그 중 하나다. 뚜렷한 정체성과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음악 영역을 구축해온 그들은 2011년 그룹의 개성이 잘 묻어난 첫 정규 앨범 [Nature's Greatest Mystery]을 발매하며 대중과 평단의 이목을 동시에 집중시켰다.

     

    기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그룹만의 음악적 색깔을 찾는 일에 큰 비중을 두면서도 참신하고 진중한 메시지를 담는 것 또한 소홀히 하지 않은 이들의 기조는 그 어느 때보다 묵직한 울림을 준다. 데뷔 때부터 세련된 라임과 간결한 언어를 활용한 워드플레이에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던 플립트릭스는 어김없이 진가를 증명하고, 버브 티(Verb T)를 비롯한 나머지 동료들 역시 각자 근사한 퍼포먼스를 펼친다. 프로덕션을 담당한 리프 독(Leaf Dog)의 탁월한 감각도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 힘을 잃지 않는데, 세밀한 드럼 배치와 적절한 샘플 선별을 통해 타이트한 사운드를 주조하는 그의 능력은 연신 감탄을 부른다. 특히, 일반적인 붐뱁 비트에 색다른 음악 소스들을 가미해 독특한 무드를 조성해낸 “Original”이나 “Three Hits To The Dome” 같은 트랙은 본작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메인스트림 시장에서도 적잖은 성취를 거둔 이 앨범은 영국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의 성장을 촉진하고 활력을 도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xfE8KxAKJk (“Three Hits To The Dome”)


     

    DELS - Petals Have Fallen (2014)

     

    창의적인 발상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랩 뮤지션들의 자유분방한 사운드 실험은 얼터너티브 힙합(Alternative Hip Hop)이라는 이름 아래 활발하게 이어져왔다. 영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델스(Dels) 역시 그 대표적인 아티스트이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나는 장르 따위에 연연하지 않아, 단지 내가 원하는 사운드를 풀어놓을 뿐이라며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던 그는 2011년 내놓은 첫 작품 [Gob]을 통해 독특한 상상력과 음악 세계를 여과 없이 선보여영국힙합의 미래라는 극찬을 받았다. 몇 년 뒤 발매한 두 번째 정규작 [Petals Have Fallen] 역시 한층 농익은 델스의 음악적 감각을 여실히 증명하며 힙합 팬들을 매료시켰다.

     

    본작의 핵심은 단연 신선한 프로덕션이다. 전작의 사운드를 전담했던 크웨스(Kwes)를 비롯하여 블루 메이(Blue May), 보노보(Bonobo) 등의 정상급 프로듀서들이 함께 힘을 보탰다. 그렇게 완성한 혁신적인 사운드에선 안정적인 리듬이나 음정, 또는 규칙적인 구조에 결코 의존하지 않는 자유로움은 물론, 세련미까지도 물씬 풍긴다. 즉흥적이고 변화무쌍한 비트들 틈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는 델스의 유려한 래핑 또한 인상적이다. 탁월한 스토리텔링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Fall Apart”, 영리하게 완급 조절된 플로우가 상당한 희열을 주는 “Pack Of Wolves” 풍부한 비유와 기발한 표현으로 가득 찬 “RGB” 등은 보다 성숙해진 델스의 면모를 보여주는 곡들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kJDk9DG7TaU (“Pack Of Wolves”)

     

    이상 미국힙합과는 또 다른 방향에서 길을 찾아온 영국힙합을 알기 위해 꼭 들어봐야 할 걸작들을 2회에 걸쳐 살펴보았다. 물론, 여기 소개한 작품들 외에도 흥미롭고 탄탄한 결과물은 더 있다. 그럼에도 이 10장의 앨범은 영국힙합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디딘 여러분에게 유용한 가이드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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