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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힙합 속 돈 자랑엔 쾌감 공식이 있다?
    Soulgang | 2018-08-31 | 16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글: 남성훈


    얼마 전 인디고 뮤직 소속 재키와이(Jvcki Wai)의 공연 영상 중 일부가 힙합 커뮤니티와 SNS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저작권료를 포함한 자신의 수입을 이야기하면서, 불특정 아르바이트생과 직장인의 월급을 비교대상으로 삼아 비하한 것이 화근이었다. 여기서 재키와이의 발언과 논란 자체를 왈가왈부하기는 어렵다. 명확한 인과관계에 따른 반응과 비난이라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영상은 극히 일부만 편집된 상태고, 영상 속 현장의 반응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번 해프닝은 흥미로운 화두를 만들어냈다. 이제 한국힙합에서도 흔해진 속칭 돈 자랑 랩이 쾌감을 전달했던 사회의 암묵적인 합의점과 역사적 배경을 이야기할 수 있는 구심점을 마련한 것이다. 돈을 포함한 물질적 부의 과시는 힙합음악의 역사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시작부터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슈거힐 갱(Sugarhill Gang) 1979년 발표한 최초의 히트 랩 레코드인 “Rapper’s Delight”에서 빅 뱅크 행크(Big Bank Hank)의 가사를 한번 보자.

     

    난 보디가드가 있고, 큰 차도 두 대 있어, 물론 싸구려는 아니지, 링컨컨티넨털과 선루프가 달린 캐딜락. 학교에서 온 다음에, 나는 수영장에 들어가, 사실 벽에 달려있지. 나는 컬러TV가 있어서 닉스 경기를 볼 수도 있어 / I got bodyguards, I got two big cars, that definitely ain't the whack, I got a Lincoln continental and a sunroof Cadillac, So after school, I take a dip in the pool, which is really on the wall, I got a color TV so I can see the Knicks play basketball

     

    내가 수표와 신용 카드, 허접한 놈이 평생 쓸 수 있는 것보다 많은 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봐. 하지만 나는 그 허접한 놈이나 러커 공원의 부랑자에게 단 한 푼도 줄 수 없어. 내가 다시 벌기 전까지 / Hear me talking 'bout checkbooks, credit cards, more money than a sucker could ever spend But I wouldn't give a sucker or a bum from the Rucker, not a dime 'til I made it again

     

    빅 뱅크 행크는 우선 자동차, 수영장, TV 등의 물질적 과시를 앞세우고 마치 감당하기 힘든 것처럼 돈 자랑을 이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이를 기반으로 거만함을 더한 공격적 태도까지 드러낸다. 놀랍게도 현재 힙합 가사에서 구현되는 부의 과시와 태도까지 모두 담겨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랩은 아니었지만, 재키와이의 발언도 단순하게 보면 이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아가 한국힙합 속의 돈 자랑 랩 대부분 역시 마찬가지로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전문가를 자처하는 몇몇 이들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미국힙합의 특징을 직결하여 한국힙합 속의 돈 자랑 랩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두 문화 속의 돈 자랑 랩 사이에는 인정해야 할 차이가 존재한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약자성이 깔려 있는지 여부다.



    재키와이
     


    아마도 많은 이의 생각과 다를 테지만, 전 세계 대중을 사로잡은 미국힙합의 기저엔 화자의 약자성이 짙게 깔려있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힙합과 한국힙합 사이를 가르는 핵심이다. 그것이 가사적인 쾌감을 훨씬 다층적으로 전달하는지, 반대로 한계를 두는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한국힙합은 후자에 가깝다. 아니, 만국공통어가 된 힙합에서 돈 자랑 랩을 하는데 왜 또 미국, 한국, 사회적 약자 운운이냐고? 일단 한번 그 맥락을 짚어보자.

     

    다양한 인종의 구성으로 셀 수 없는 인종차별이 존재하기에 인종차별에 더욱 민감한 미국 사회에서도 아프리카계 흑인은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할 수 밖에 없다. 노예로 끌려와 제도적으로 노골적인 차별과 억압에 시달리다 정착했기 때문이다. 굴욕의 역사 때문에 1950년대부터 기치를 올린 흑인민권운동의 핵심은 블랙 프라이드(Black Pride)’, 흑인으로서의 자존감 세우기라는 가치였다. 이러한 운동의 결과 흑인 역시 중산층에 진입할 수 있는 제도의 혜택을 어느 정도 받게 되고, 흑인 거주지역에서도 부의 축적이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흑인 거주지역에 마약(Crack)이 대거 유입되고, 범죄의 방조와 경제적 제재, 교육기회의 박탈이 다시 두드러지면서 흑인 사회는 허탈감에 빠졌었다. 그리고 바로 이 시기를 직접 겪으며 성장한 이들, 특히 젊은 남성이 절묘하게도 힙합음악 부흥의 선봉에 있었다는 점은 장르의 여러 성격을 결정해버렸다. 대중음악에서 전에 없던 범죄의 직접적인 묘사, 제도권과 공권력을 향한 불만이 랩으로 펼쳐졌고, 급속히 추락한 흑인 사회 안에서 더 낮아진 흑인 여성의 입지는 고스란히 여성비하적인 표현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당시 힙합의 특징들이 전국적인 흥행을 동반한 엄청난 파급력으로 이어진 것은 단지 소재와 음악 때문만이 아니었다. 화자나 다름 없는 흑인 청년이 지닌 사회적 약자성이 전달하는 사회전복적, 폭로적 성격과 명분, 그리고 대중의 호기심과 일탈욕구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덕이다. 대중은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명분과 약자성을 통해 음악적 희열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1980년대 후반, 백인 청년들이 그룹 N.W.A “Fuck Tha Police”에 열광했던 것도 그들이 해방구와 같던 힙합음악 외에는 그것을 외칠 명분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돈 자랑 랩역시 마찬가지다. 흑인 거주지역 전체가 경제적으로 추락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부의 과시는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우위를 점하는 방법이 됐고, 그들이 자란 환경에 일부 남겨져 있는 부의 흔적은 자연스레 랩 가사의 소재가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연히 과장법이 사용됐고, 힙합 특유의 화법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수 백 년간 억압 속에서 부와는 거리를 둘 수 밖에 없었던 집단이 어느 순간 미디어와 음악을 통해 오히려 과장 화법으로 부를 과시하는 모습은 결과적으로 파급력 있는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다.

     

    더해서 실제로 힙합 아티스트들이 큰 돈을 벌게 되면서 가사가 주는 맥락성도 더욱 구체화됐다. 한국힙합에서는 2010년대 이후, 일리네어 레코드의 도끼(Dok2)에 의해 돈 자랑 랩이 빠르게 도입되었다. 그는 고가의 자동차와 명품을 내세워 랩스타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도입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은 천문학적인 부를 얻은 미국힙합 아티스트들의 종착지에 가까운 과시문법이 그대로 차용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계 역시 명확할 수 밖에 없다.

     

    힙합 마니아들 사이에서 꽤 자주 등장한 명분도자수성가로 번 돈은 멋진 것’, ‘힙합은 원래 솔직해야 멋진 것’,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것처럼 장르의 특성과 실상 별 상관없는 일반적 설명 수준에 그친다. 앞서 언급한 미국의 인종적, 역사적 맥락과는 그 깊이가 차이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힙합을 적극적으로 듣는 10대를 중심으론 호응을 이끌어냈지만, 결국, 그 이상의 범 대중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거나 대리만족의 쾌감으로 승화시키진 못했다. ‘요즘 힙합은 원래 그렇대정도에서 대부분 희석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J. Cole과 Lil pump 



    이쯤에서 미국의 신예 랩퍼들도 기존의 과시 작법을 한국보다 훨씬 더 일차원적으로 차용할 뿐이라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초창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적 배경과 화자의 맥락이 주는 쾌감을 고려하며 쓴 돈 자랑 랩은 아마도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그냥 미국힙합의 역사에만 깔려 있는 기본 조건과 같은 것이다. 최근 이것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좋은 예가 있었다. 바로 랩퍼 제이 콜(J. Cole) “1985 (Intro to "The Fall Off")”에 담긴 가사다.

     

    하지만 나는 흑인이 돈 버는 걸 보면 좋아, 그리고 넌 즐거워하고, 그건 존중해 / But I love to see a Black man get paid, and plus, you havin' fun and I respect that

     

    백인 아이들은 네가 막 나가는 게 좋을 거야, 왜냐하면 네가 흑인이니까 / These white kids love that you don't give a fuck 'Cause that's exactly what's expected when your skin black

     

    *필자 주: “1985"는 가사에서 적시하고 있지 않지만, 릴 펌프(Lil Pump)를 향한 곡으로 알려졌는데, 제이 콜이 라틴계인 그를 흑인(Black)으로 불렀다는 논란이 있기도 했다.

     

    제이 콜은 음악의 낮은 완성도와 유치한 돈 자랑 가사를 비꼬면서도, 약자성을 지닌 흑인 청년이기에 대중에게 주는 쾌감의 이면을 정확히 짚었고, 그걸로 대리만족의 명분을 얻는 백인 대중의 성향도 꼬집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동일한 힙합 문법과 음악적 성향을 지녔어도 오롯이 미국 힙합에서만 구현되며 추가적으로 스며드는 다층적 쾌감이 존재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 예다.

     

    노파심에 말하자면, 그렇다고 해서 한국힙합 씬에서 나름의 인상적인 지점을 만들고, 가사의 영역을 확장한 돈 자랑 랩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애초에 미국힙합 속 돈 자랑 랩의 이면이 주는 추가적인 쾌감을 한국힙합에서 차용하여 보여줄 땐 구현이 어렵다는 것을 이해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상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구나 이상의 모든 것이 부를 드러내어 자신을 우위에 놓으려는 랩퍼의 모순적인 약자성에서 출발하는데, 한국 사회에서 랩퍼의 이미지는 그것과 한참 거리가 있는 상태다. 따라서 재키와이가 상대적 약자를 향한 비하발언을 뱉었을 때 대중의 비난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 한국힙합의 돈 자랑 랩에 누락되어 있는 쾌감 공식, , 약자성이 역설적이게도 반대의 상황으로 선명하게 드러난 해프닝이기도 했다.

     

    힙합 장르의 멋, 특히 가사를 차용할 때 단순히 멋진 것을 한국어로 구현하는 것을 넘어 그 이면을 이해하고 환경에 맞게 적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같은 영민함이 잘 갖춰진다면, 한국의 돈 자랑 랩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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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ekasian (2019-04-10 00:14:49, 175.223.14.***)
      2. 우리나라도 별반 다를거없다고 생각하는데요. 88만원세대라는 말이 유행하기도했고 부의 불균형이 갈수록 심해지고있습니다. 그런의미에서 요즘 젊은이들의 약자성이 본토의 그것에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이해되는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1. i boy (2019-01-15 21:21:49, 221.146.54.**)
      2. 너무나도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예전에 읽었었는데 생각나서 다시 읽으러 왔습니다. 응원합니다.
      1. 휘바휘바 (2018-11-10 09:15:48, 59.21.130.**)
      2. 잘봤습니다^^ 생각과 철학이 얕으니 돈자랑질도 얕고 가볍게 느껴지네요. 한자로는 '천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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