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2018 국외 알앤비/소울 앨범 베스트 20
- rhythmer | 2019-01-16 | 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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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머 필진이 선정한 '2018 국외 알앤비/소울 앨범 베스트 20’을 공개합니다. 아무쪼록 저희의 리스트가 한해를 정리하는 좋은 가이드가 되길 바랍니다.※2017년 12월 1일부터 2018년 11월 30일까지 발매된 앨범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20. Chloe X Halle - The Kids Are Alright
Released: 2018-03-23
Lable: Parkwood, Columbia
오늘날 아마추어나 무명의 싱어가 유튜브에 노래하는 영상을 올려서 이목을 끄는 건 흔한 경우다. 하지만 그것을 인상깊게 본 사람들 중 하나가 비욘세(Beyonce)라면 얘긴 달라진다. 자매 듀오 클로이 앤 할리(Chloe X Halle)는 2013년에 올린 'Pretty Hurts' 커버 영상이 원곡자인 비욘세의 눈도장을 받아 그녀의 레이블(파크우드 엔터테인먼트)과 계약까지 했다. EP와 믹스테입을 각각 한 장씩 발표한 끝에 드디어 나온 자매의 정규 데뷔작 [The Kids Are Alright]은 비욘세의 촉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걸 증명한다.
기존에 발표한 EP와 믹스테입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클로이가 동생 할리를 비롯해 다양한 프로듀서들과 함께 이끈 프로덕션은 더욱 견고해졌다. 전작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프리카 리듬을 사용해 토속적인 느낌을 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들의 본래 음악과 매우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앨범에는 다양한 주제의 노래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모여있지만, 모두 10대의 관점을 담은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10대 소녀로서의 주체성을 당당하게 노래하는 “The Kids Are Alright”, “Grown”, “Hi Lo”가 이어지는 초반부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런가 하면, “Baptize (Interlude)”에서는 종교적인 의식조차 본인들을 바꿀 수 없다는 강경한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The Kids Are Alright]은 10대의 이야기를 완숙한 음악에 담아낸 자매의 성공적인 정규작이다. 무엇보다 다양한 소스를 사용하고 구성적 묘미를 더한 다채로운 사운드로 비슷한 계열의 아티스트들과 차별화된다.
19. Stimulator Jones - Exotic Words and Masterful Treasures
Released: 2018-04-27
Lable: Stones Throw
스톤스 스로우(Stones Throw) 소속이란 점에서부터 눈치 챈 이도 있겠지만, 스티뮬레이터 존스(Stimulator Jones)의 음악은 메이저 트렌드를 따르는 것엔 관심 없다. 그는 로파이(lo-fi)하고 예스러운 사운드, 그리고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의 서정적이면서도 관능적인 무드에 집중한다. 큰 범주에서 보자면, ‘레트로 소울 리바이벌’ 안에 넣을 수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힙합에 영향받은 리듬 파트를 부각한 점이라든지, 보컬 구성과 멜로디 라인을 구축하는 지점에선 동류의 흐름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Exotic Words and Masterful Treasures]에 담긴 음악을 신선하다고 하긴 어렵다. 이 역시 넓게는 (백인) 인디 소울 아티스트, 좁게는 스톤스 스로우표 알앤비/소울 안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진부하게 다가오지 않고, 탁월한 감흥을 안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흡사 하나의 대곡처럼 유유히 이어지는 것은 본작의 또 다른 미덕이다. 만약 극적인 진행이나 다채로운 구성의 앨범 형식을 선호하는 이들이라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매곡이 하나의 무드를 공유하며 전개되는 작품에 열광하는 이들에게 [Exotic Words and Masterful Treasures]는 더할 나위 없이 기분 좋은 선물이다. 넘실거리는 그루브와 매력적으로 반복되는 멜로디, 그리고 앨범이 품은 기운에 제대로 녹아든 보컬이 어우러져 황홀함을 안긴다.
18. Dounia - The Avant-garden
Released: 2018-11-28
Lable: DOUNIA, EMPIRE
싱어송라이터 두니아(Dounia)는 뮤지션 외에도 모델, 사회운동가, 소셜미디어 스타로 통한다. 그래서 애초에 그가 유명해진 계기는 음악이 아니었다.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와 작년 워싱턴에서 개최된 ‘여성들의 행진’(Women’s March)'처럼 인종적, 성적, 정치적 차원의 굵직한 운동뿐 아니라, 고정적인 미(美)적 관념에 반기를 드는 일명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ity)'를 설파하며 주목받았다. 그가 두 번째로 내놓은 공식 발표작 [The Avant-Garden]은 두니아의 정체성의, 정체성에 의한, 그리고 정체성을 위한 앨범이다.
그를 대변하는 요소들, 이를테면 이민 2세대 출신, 아랍인, 여자, 그리고 그가 가진 관습에 반(反)하는 사상이나 호전적인 언행 등을 표명하고 복음하며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신의 비주류적이고 전위적인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사랑한다는 것이 앨범의 본 주제다. 일차원적이면서도 위트 있는 자기과시 라인으로 모든 트랙을 뒤덮고, 본인을 중심에 놓은 채 주변에 그와 관계되는 모든 것들, 예컨대 다른 여성과의 신경전이나 남자를 상대로 펼치는 심리싸움 등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고 우위를 점한다. 여기에 무신경한 듯 속삭이는 창법을 통해 각 트랙에 관능적인 느낌을 불어넣었다. 프로덕션적으론 빈틈없고 말끔한 컨템포러리 알앤비 앨범이다. 첫 EP [Intro To](2017)에서 이따금 느껴졌던 어눌함은 없다. 그 대신 유려한 진행으로 여백을 채우면서 완숙미를 더했다. 전작의 매력으로 거론할만한 소박하면서 담백한 멜로디 라인은 더욱 빛을 발했고, 한층 성숙해진 프로덕션도 눈에 띈다.
17. Georgia Anne Muldrow – Overload
Released: 2018-10-26
Lable: Brainfeeder
독특한 개성을 바탕으로 탄탄한 커리어를 구축해온 소울 뮤지션 조지아 앤 멀드로우(Georgia Anne Muldrow)는 음악적으로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간 여러 장의 솔로 앨범과 듀오 프로젝트, 다른 자아인 요티(Jyoti)를 내세운 앨범을 발표하는 등, 2006년부터 총 20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다방면으로 재능을 뽐냈다. 2015년에는 멜로 뮤직 그룹(Mello Music Group)을 통해 노래가 아닌 랩으로 가득 채운 힙합 앨범 [A Thoughtiverse Unmarred]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 멀드로우는 새로운 둥지인 브레인피더(Brainfeeder)에서 또 한 번 음악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Overload]는 그 어느 때보다 트렌드를 적극 차용한 팝적인 터치가 돋보이는 앨범이다. 이를 위해 멀드로우는 지이지(G-Easy), 닙시 허슬(Nipsey Hussle) 등과 주로 작업했던 프로듀서 퓨처리스틱스(The Futuristiks)와 함께 프로덕션을 꾸렸다. 전형적인 트랩 기반의 팝 알앤비 트랙 “Overload”는 이러한 변화를 대표하는 트랙이다. 이 위로 멀드로우는 전에 없이 타이트한 보컬 어레인지로 귀를 사로잡는다. 그런가 하면 “There Are The Things I Really Like About You”에서는 뉴올리언스 풍의 빅 밴드 재즈 사운드를 차용하고, “Bobbie’s Ditte”에서는 리듬 파트의 극적인 변주를 통해 전위적인 알앤비의 진수를 선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그의 음악을 완성하는 요소라고 할만한 시적인 가사와 자유로운 멜로디가 더해져 멀드로우만의 트렌디한 알앤비가 완성됐다. 누구보다 탄탄한 커리어를 가졌지만, 멀드로우는 이에 안주하지 않고 여전히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중이다.
16. Leon Bridges - Good Things
Released: 2018-05-04
Lable: Columbia
2015년에 발표한 데뷔작 [Coming Home]을 통해 탁월한 '레트로 소울 리바이벌'을 들려준 리온 브릿지스(Leon Bridges)는 두 번째 앨범 [Good Thing]에서 또 다른 면모를 보인다. 핵심 키워드는 ‘변화’와 ‘확장’이라 할만하다. 여전히 옛 서던 소울이 그의 상징처럼 깔려있지만, ‘레트로 소울 리바이벌’에서 ‘90년대 알앤비/소울에 이르기까지 범주가 넓어졌다. 그만큼 음악적으로 다채로워졌다. 라디오 친화적인 곡도 늘어났다. 특히, 들을수록 감탄하게 되는 브릿지스의 소울 가득한 보컬과 최근 메이저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로맨틱한 가사가 적잖은 여운을 남긴다.
하나의 큰 테마를 기반 삼아 통일된 스타일과 구성의 작품으로 주목받고 성공한 이가 바로 다음작에서 방향을 선회하다가 어중간한 지점에 머무르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러나 리온 브릿지스는 [Good Thing]을 통해 무난히 목표한 지점에 다다른다. 변화와 확장을 향해 나아가되 무리하지 않고 절충을 시도한 덕이다. 이를테면, 그는 굳이 최신 트렌드까지 껴안으려 하지 않았다. 이는 브릿지스의 주된 관심사와 음악적으로 주력하는 바가 오늘날의 메인스트림 알앤비 동향과 다소 떨어져 있는 것도 이유겠지만, 싱글보다는 앨범을 중요시하는 성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만큼 전반적인 곡의 흐름과 사운드에서의 통일감에 신경 쓴 흔적이 엿보인다. 스타일은 다양해졌으나 산만하지 않고, 전보다 아우르는 시대 또한 넓어졌으나 사운드의 이질감이 전혀 없다. 수많은 전설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칭송받는 샘 쿡(Sam Cooke)에 비견되며, ‘60년대 리듬 앤 블루스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젊은 소울 뮤지션으로 주목받은 리온 브릿지스. 본작을 통해 세계관을 넓힌 것은 물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15. Louise Col – Time
Released: 2018-09-21
Lable: Brainfeeder
일렉트로닉 펑크(Funk) 밴드 노워(KNOWER)의 멤버 루이스 콜(Louis Cole)은 세 번째 솔로작 [Time]을 통해 자신의 철학이 담긴 신스 팝 사운드를 다채롭게 늘어 놓았다. 세련미 있으면서 통통 튀는 본작의 최대 매력은 콜의 넘쳐 흐르는 재기가 주체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 느껴진다. 선 굵고 더 정통에 가까운 펑크 사운드를 지향했던 그룹 때의 작품들과는 달리, 댄스 팝과 펑크 팝의 영향을 받은 산뜻한 멜로디가 귀를 간지럽히고, 간단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후렴과 요상한 노랫말이 웃음을 자아낸다.
본 앨범의 사운드적 구성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신스와 퍼커션을 앞세운 펑키한 업 템포 뱅어와 미디엄템포의 발라드 넘버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Weird Part of the Night”과 경쾌한 “When You’re Ugly”가 전자라면, “Everytime”과 “After the Load is Blown”이 후자를 대표한다. 콜은 이 상반된 두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때론 이를 재즈와 소울 샘플을 이음새 삼아 한 트랙에 녹여냈다. 샘플을 잘게 쪼개고 감각적으로 나열해 그루브를 살리는 방식은 그가 브레인피더(Brainfeeder)의 일원임을 증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해당 레이블의 간판 뮤지션 썬더캣(Thundercat)의 영향력이 지대한 트랙 “Tunnels in the Air”와 콜의 대담한 곡 진행 능력을 엿볼 수 있는 “Phone", 그리고 재즈 거장 브래드 멜다우(Brad Mehldau)의 피아노 독주가 아드레날린을 분출하며 달리는 “Real Life”는 앨범의 하이라이트를 차지한다.
14. Sir – November
Released: 2018-01-18
Lable: Top Dawg
썰(SiR)의 음악은 근래 유행하는 얼터너티브 알앤비 사운드를 근간으로 몽환적이고 멜랑꼴리하면서도 세련됐다. 아울러 `90년대 웨스트코스트 힙합과 네오소울(Neo-Soul) 등, 그가 자라면서 영향받은 음악이 자연스레 녹아든 사운드가 비슷한 계열의 아티스트들과 차별화된다. 랩과 노래, 그리고 내레이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오묘한 느낌을 자아내다가도 어느샌가 명징하게 멜로디를 살려내는 보컬 또한 큰 무기이다. 첫 정규앨범 [November]는 그동안 구축된 썰의 음악 스타일을 보다 탄탄한 구성에 담아 정제한 작품이다. 특히, 프로덕션적인 면에서 그렇다. 삭손(Saxon), 라스칼(Rascal), 마인드디자인(MNDSGN), 디제이 칼릴(DJ Khalil) 등을 비롯해 상당히 다양한 프로듀서 진이 참여했음에도 특별히 튀는 구간 없이 매끄러운 흐름이 돋보인다.
앨범의 타이틀인 ‘11월’은 썰이 TDE와 계약했던 직후의 시점을 의미한다(*필자 주: 썰은 TDE와 2016년 10월에 계약했다.). 따라서 스킷에서의 비행은 그가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한 후 성공을 향해 가는 여정을 비유하는 것이다. 그 사이에 본래 만나던 연인과 잦은 다툼을 하게 되고 결국 이별을 겪는 과정을 담았다. 다소 평범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디테일한 표현과 치밀한 구성으로 듣는 재미를 살려냈다. “Something Foreign”이나 “D’Evils” 같은 트랙에서는 갱스터를 표방하는 이들이 가득한 씬에서 자신만의 태도를 지키겠다는 남다른 각오를 비추기도 한다. 2018년에도 TDE에서 내놓는 결과물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도는 높았다. 썰의 [November]는 그 시작을 장식했다.
13. Marsha Ambrosius – Nyla
Released: 2018-09-30
Lable: Human Resources, eOne Music
우아한 가운데 힘이 느껴지고 고혹적인 보컬의 소유자 마샤 앰브로시어스(Marsha Ambrosius). 그녀는 플로트리(Floetry) 시절부터 마치 주술과도 같은 힘을 지닌 보컬을 통해 가슴 깊은 곳을 건드려왔다. 세 번째 솔로 앨범 [Nyla]에서도 그렇다. 느릿한 호흡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무게가 느껴지는 앰브로시어스의 보컬을 듣고 있으면, 어느새 이공간 속으로 빨려들고 마는 느낌이다. 2016년에 태어난 첫 번째 아이, 나일라(Nyla)를 제목으로 내세운 본작에서 그녀는 한동안 쌓인 억압된 기운과 잊고 싶은 기억들을 버리고, 나일라의 눈을 통해 모든 것을 새로이 경험하려는 의지를 내비친다. 베테랑 소울 싱어송라이터이자 위대한 존재, 어머니로서의 첫 걸음 뒤엔 예의 그렇듯이 탄탄한 프로덕션이 있다.
수록곡의 성향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다소 다르다. 전반부가 플로트리 때의 고요하지만, 강한 아우라의 네오 소울과 ‘90년대 알앤비의 감흥으로 완성됐다면, 후반부는 피아노 연주가 주도하는 고급스러운 팝 소울의 향취가 강하다. 곡의 구성이나 흐름, 그리고 사운드의 질감 등등, 모든 면에서 차이가 있는 스타일이지만, 전혀 이질감 없이 이어진다. [Nyla]의 강점 중 하나다. 앰브로시어스는 또한, 탁월한 작사가이기도 하다. 플로트리 때나 지금이나 그녀의 가사는 한편의 시나 다름없다. 그녀는 언제나 겉으로 드러난 소재 이면에 여러 의미를 담고자 해왔고, 이는 새 앨범에서도 확실하게 빛난다. 일례로 연인을 향한 사랑을 노래하며 후드(Hood)의 현실과 그 안에 속한 흑인 여성의 불안한 심리까지 녹인 "Old Times"의 가사를 보라. 전작 [Friends & Lovers]로부터 4년이 흘렀다. 그리고 앰브로시어스는 기다린 시간을 보상해주었다. 늘 그랬듯이.
12. Anderson.Paak – Oxnard
Released: 2018-11-16
Lable: Aftermath, OBE
펑크(Funk), 힙합, 알앤비가 조화로이 어우러지고, 리듬이 넘실거리는 프로덕션, 그리고 랩과 노래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보컬이 만나 완성된 앤더슨 팩(Anderson. Paak)의 음악은 여느 아티스트와 확실히 차별화됐다. 애프터매스 (Aftermath)와의 계약, 닥터 드레(Dr. Dre)의 프로듀싱이라는 높은 기대감 속에서 마침내 발표된 세 번째 정규 앨범 [Oxnard]는 웨스트코스트 힙합에 대한 팩 나름의 오마주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만큼 전보다 힙합의 비중이 늘어났고, 보컬 역시 노래보다 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치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xploitation) 영화의 OST 같은 첫 곡 “Chase”를 지나면, 피펑크(P-Funk)와 힙합이 결합된 비트 위로 낮게 랩을 읊조리는 “Headlow”가 이어진다. 이외에도 “Who R U?”, “6 Summers”, “Saviers Road”, “Mansa Musa” 등등, 대부분의 곡에서 차진 랩을 선보이며, 래핑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역량을 갖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루브 넘치는 보컬이 주도하는 알앤비 트랙들의 감흥도 여전하다. 드레는 앨범에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기운을 불어넣었고 이것이 팩의 기존 음악 스타일과 만나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이를 통해 팩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또 한 번 넓혔다. 보컬, 랩, 그리고 드럼까지,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아티스트 팩은 본인의 영역을 성공적으로 넓히는 중이다.
11. MihTy(Jeremih & Ty Dolla $ign) – Mihty
Released: 2018-10-26
Lable: Def Jam, Atlantic
메인스트림 알앤비를 이끌고 있는 두 아티스트 제레마이(Jeremih)와 타이 달라 사인(Ty Dolla Sign)이 합심한 정규 1집 [Mihty]는 2018년에 나온 여러 합작 앨범 중 가장 눈에 띄고 과소평가됐다. 어느덧 약 10년차에 접어든 두 보컬리스트는 과거 서로의 솔로작(‘Beach House 3’, ‘Late Nights’)에서 선보인 시너지를 고스란히 재현한다. 약 60여 개의 데모 트랙을 추려서 완성한지 약 1년 만에 발표된 본작의 매력은 두 아티스트의 고르고 조화로운 활약, 그리고 히트메이카(Hitmaka)가 제공한 비트다.
히트메이카는 마이타이(MihTy)의 성향과 목소리가 빛날 수 있는 최적의 사운드를 조합했다. 과거 알앤비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알 켈리(R. Kelly)와 드루 힐(Dru Hill) 샘플을 비롯해 트랩 드럼과 웨스트 코스트 사운드의 정취가 묻어난 키보드 멜로디, 그리고 나른한 트로피컬 사운드까지, 곡이 분위기를 다진 후 청자를 끌어당기고 나면, 나머지는 두 선수의 몫이다. 깨끗한 음색과 깔끔한 고음을 내세운 제레마이와 뛰어난 감정 표현력으로 정평이 난 타이 달라 사인이 합을 주고받는다. 둘의 조합이 가장 잘 두드러진 곡은 전통적인 알앤비 넘버 “Perfect Timing”이다. 이외에 주목해야 할 트랙은 제레마이가 주도한 인트로 트랙 “The Light”과 타이 달라 사인의 끈적거리는 후렴이 백미인 “FYT”, 그리고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의 참여가 돋보이는 “Surrounded”이다.
10. The Suffers - Everything Here
Released: 2018-7-13
Lable: Shanachie Ent. Corp.
휴스턴(Houston)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소울 밴드 서퍼즈(The Suffers)는 자신들의 음악을 걸프 코스트 소울(Gulf Coast Soul)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흑인, 백인, 맥시칸, 케이즌(Cajun) 등, 멤버들의 다양한 인종적 배경에서 기인한다. 자라온 환경이 다양한 만큼 듣고 자란 음악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었고(블루스, 소울, 컨트리, 케러비안 뮤직, 힙합 등등), 이것들이 한데 섞여 서퍼즈의 음악을 완성한 것이다. 2016년에 발표한 셀프 타이틀 데뷔작을 통해 밴드만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빅밴드 포맷을 적극 활용한 사운드와 넘실거리는 리듬, 그리고 리드 보컬 캠 프랭클린(Kam Franklin)의 시원시원한 보컬이 어우러져 그들의 매력을 한껏 발산했다.
2년 만에 발표한 두 번째 정규앨범 [Everything Here]에선 밴드의 기량이 한층 더 발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전히 몸을 들썩이게 하는 사운드를 들려주는 한편, 때로는 보다 진중해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피아노 연주와 킥 드럼만으로 단출하게 진행되는 소울 발라드 “After the Storm”이나 캠의 묵직한 보이스와 후반부에 치고 나오는 코러스가 벅찬 감동을 이끌어내는 블루스 트랙 “Won’t Be Here Tomorrow”는 대표적이다. 삶과 사랑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가사는 음악적 완성도가 뒷받침된 덕에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얼터너티브 알앤비가 주류가 된 상황에서 본작과 서퍼즈는 그 자체로 특별하다.
9. Meshell Ndegeochello – Ventriloquism
Released: 2018-3-16
Lable: Naïve
베테랑 미셸 엔데게오첼로(Meshell Ndegeocello)는 데뷔 이래 단 한번도 우릴 실망시킨 적 없다. 그만큼 그의 커리어는 양질의 결과물로 채워졌다. 특히, 지금처럼 얼터너티브 알앤비가 성행하기 훨씬 이전부터 블랙뮤직을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를 섞어 부드러운 동시에 강렬한 소울 음악을 선보였다. 엔데게오첼로가 구축한 영역은 실로 탄탄하다. 열두 번째 정규작이자 커버 앨범인 [Ventriloquism] 역시 그의 천재적인 역량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역작이다.
본작은 그만의 스타일로 재탄생시킨 1980~90년대를 풍미한 알앤비, 팝 트랙들로 이루어졌다. 원곡의 매력을 살려내면서도 특유의 장르 크로스오버를 통해 새롭고 세련된 맛을 부여했다. 아련하게 울려퍼지는 일렉 기타로 록 사운드까지 껴안은 “Waterfalls”, “Funny How Time Flies(When You’re Having Fun)”나 하모니카 연주로 목가적인 분위기를 자아낸 컨트리 풍의 “Tender Love” 등, 황홀한 음악적 희열을 선사하는 곡들로 가득하다. 그런가 하면, “Sensitivity”에서는 남성 화자의 시선에서 쓰인 원곡의 가사를 그대로 불러 색다른 느낌을 선사하기도 한다. [Ventriloquism]은 아티스트의 음악적인 역량과 방향성에 따라 커버도 신곡 이상의 감흥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그야말로 탁월한 커버의 교과서와도 같은 작품이다.
8. Nao – Saturn
Released: 2018-10-26
Lable: RCA, Little Tokyo, Sony
싱어송라이터 나오(Nao)는 자신의 음악을 ‘윙키 펑크(Wonky Funk)’라고 정의했다. ‘웡키 펑크’는 넘실대는 신시사이저를 위시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기반으로 펑크, 알앤비, 피비알앤비(PBR&B) 등등, 블랙뮤직의 하위 장르를 적극적으로 접목한 프로덕션이 특징이다. 웡키 펑크의 진수를 담아낸 첫 번째 정규앨범 [For All We Know]는 시종일관 들썩거리는 리듬과 가녀리지만 때로는 강하게 리듬을 밟아나가는 보컬이 만나 블랙뮤직의 또다른 일면을 볼 수 있게 만든 수작이었다.
그의 두 번째 정규작 [Saturn]은 블랙뮤직, 특히, 알앤비의 비중이 훨씬 더 늘어난 작품이다. 첫 트랙인 슬로우잼 넘버 “Another Lifetime”은 달라진 앨범의 색깔을 대변하는 트랙. 이어져 나오는 미디엄템포 알앤비 트랙 “Make It Out Alive”에서는 캐치한 멜로디 라인으로 단번에 귀를 사로잡는다. “If You Ever”나 “Drive and Disconnect”에서는 댄스홀을 차용하기도 하는 한편, “Gabriel”, “Love Supreme”, “Yellow of The Sun”과 같은 웡키 펑크 트랙들도 여전하다. 인상적인 건, 개성 강한 보컬과 데뷔 때부터 함께한 프로듀서 그레이즈(GRADES) 특유의 신스 운용 덕분에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느껴지며, 나오가 지금까지 보여준 음악과도 이질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본작을 통해 나오는 음악적 외연을 성공적으로 확장했다.
7. serpentwithfeel – soilReleased: 2018-06-08
Lable: Secretly Canadian
서펀트윗피트(serpentwithfeet)의 정규 1집은 처음부터 청자를 감정적으로 압도한다. 이후, 동일한 밀도로 가슴 한 켠을 꾹 누른 채 페이스 변화 없이 끝까지 밀고 나간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프로덕션, 가사까지 전부 감정 과잉이며, 괴상한 광기로 뒤덮였다. 사랑에 막 빠졌거나 육체적인 욕망을 나타낼 때, 혹은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방식을 그려낼 때도 그렇지만, 사랑이 떠나갔음을 인정하며 본인의 성 정체성을 자책하는 순간에도 그는 한결같이 애정에 목말라 있고 사랑을 갈구한다.
전위적이고 실험성 다분한 프로덕션은 그가 앨범 내내 보이는 집착을 표현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겹겹이 쌓아 올린 음울한 신스 멜로디와 오르간 및 콰이어 샘플같은 가스펠 사운드를 필두로 이국적인 악기와 전자음을 적재적소에 섞어내며 독특하면서도 스산한 풍경을 조성했다. 그 덕분에 이성의 끈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어 언제라도 툭 끊어질 것만 같은 긴장감, 불안정함 같은 감정이 앨범 전체에 베었다. 더불어, 그의 독특한 음색과 가녀린 비브라토 창법 역시 위태로운 긴장감을 더한다. “mourning song”에서 “cherubim”으로 달리는 앨범의 중반 구간은 사랑에 굶주린 사람이 내지르는 비명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일깨워준다
6. 6lack - East Atlanta Love Letter
Released: 2018-09-14
Lable: LoveRenaissance, Interscope
암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어두운 무드의 프로덕션과 나른하게 읊조리며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랩-싱잉 스타일의 보컬, 그리고 독특한 비주얼이 어우러진 블랙(6lack)의 음악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신인들 사이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타이트하면서도 명징하게 귀에 전달되는 멜로디라인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장르의 몽환적인 무드를 강조하다 보니 멜로디라인이 흐려져 귀에 남지 않는 다른 아티스트들의 것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지점이었다. 약 2년 만에 발표한 두 번째 정규앨범 [East Atlanta Love Letter]에서도 이러한 강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랩과 노래의 경계가 완전히 사라진듯한 보컬은 본작에 이르러 완성형에 가까워졌다. 여백을 두어 멜로디의 결을 살리다가도 어느새 타이트하게 흘려가며 시종일관 귀를 사로잡는다.
여전히 침잠된 분위기의 프로덕션은 전작보다 일렉트로닉적인 색채가 강화됐다. 감정선을 따라 결이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일정한 톤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개성 강한 보컬 역시 이러한 톤을 유지하는 데에 일조했다. 구체적이고 섬세한 묘사로 무장한 가사 역시 흥미롭다. ‘생활밀착형’이라고 부를 수 있을 본인의 심리와 주변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해내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성공 이후 불안해진 연인 관계와 방황, 그리고 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 앨범의 내러티브가 식상하지 않게 다가온다. 블랙은 [East Atlanta Love Letter]를 통해 비슷한 계열의 다른 아티스트들보다 한 걸음 앞서 나가게 되었다. 그는 이름만큼이나 색깔이 진한 아티스트가 되어가고 있다.
5. The Internet - Hive Mind
Released: 2018-07-20
Lable: Columbia
한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해오던 멤버들이 오랜만에 뭉쳐서 새 정규앨범 [Hive Mind]를 발표했다. 그동안 멤버 각자가 솔로 앨범을 통해 확장했던 음악적 색깔을 한데 모은 결과물이라고 할만하다. 밴드의 귀환을 알리는 첫 트랙 “Come Together”는 대표적이다. 두꺼운 베이스라인이 주도하는 프로덕션 위로 스티브와 시드의 목소리가 하나로 포개져 조화를 이룬다. 시드의 보컬이 전면에 나섰던 전작과는 사뭇 다르다. 스티브가 메인 보컬로 나서고 시드가 코러스로 빠진 경쾌한 펑크(Funk) 트랙 “Roll (Burbank Funk)”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전작과 달리 피처링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허전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시드의 서사가 주가 되었던 전작과 달리 성 정체성을 굳이 강조하지 않는 가사 또한 본작의 미덕이다. 앨범에는 연인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사건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모여있는데, 그 사이에 시드의 이야기 또한 자연스레 녹아있다. 아울러 멤버들의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모두의 인격이 합쳐진 어떠한 가상의 인물이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것 또한 흥미로운 점이다. [Hive Mind]는 밴드의 확장된 음악적 색깔이 성공적으로 응축된 작품이다. 이 재능 많은 밴드는 멤버들의 역량만으로 앨범에 다채로운 목소리를 더할 수 있는 음악 집단으로 진화했다. 이들이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인터넷은 여전히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다.
4. Phony PPL - moza-ik
Released: 2018-10-19
Lable: 300 Entertainment
뉴욕 브루클린 출신의 밴드 포니 피플(Phony Ppl)은 네오 소울을 바탕으로 펑크(Funk), 힙합 등의 장르를 결합하여 꿈결같이 나른하면서도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그루브의 음악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두 번째 정규작 [mō'zā-ik]에선 더욱 넓어진 밴드의 음악 세계를 느낄 수 있다. 사운드적으론 보사노바, 재즈, 사이키델릭, 힙합 등, 전보다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 있다. 특기할만한 건, 이처럼 여러 장르를 다루면서도 밴드만의 색깔이 도드라진다는 점이다. 밴드라는 포맷의 강점을 적극 활용한 것 또한 눈에 띈다. 여전히 엘비의 퍼포먼스가 앨범을 주도하지만, 사이사이에 공백을 두고 연주를 채워 넣어 풍미를 더 했다. “somethinG about your love” 중간에 나오는 기타 솔로나 “Cookie Crumble”의 후주는 대표적.
사랑의 다양한 면을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재기발랄하게 표현하는 가사 또한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런가 하면, “The Colours”에서는 ‘색깔’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생의 다면적인 성질을 고찰하기도 하고, “on everythinG iii love”에서는 처연한 톤으로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과 그로 인해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한다. [mō'zā-ik]는 첫 앨범 이후 오랜 기다림을 충족시키고도 남을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다. 밴드는 개성을 지키는 가운데, 음악적인 스펙트럼을 성공적으로 확장했다. 그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나 주제적으로 전에 없던 깊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포니피플의 색이 더욱 짙어졌다.
3. Blood Orange - Negro Swan
Released: 2018-08-24
Lable: Domino
전위파 아티스트 데브 하인스(Dev Hynes)는 블러드 오렌지(Blood Orange)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수년간 놀라운 음악적 성취를 이루었다. Negro Swan]은 그가 블러드 오렌지로서 발표하는 네 번째 정규작이다. 전작들처럼 알앤비, 일렉트로닉, 힙합, 펑크(Funk), 뉴웨이브, 신스팝 등등,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가운데 블랙뮤직의 비중이 늘어났다. 더불어 전체적으로 신시사이저보다 어쿠스틱 기타를 비롯한 리얼 악기를 더 많이 사용하여 따스한 분위기를 강조했다. 이로 인해 앨범 전반적으로 차분해진 인상이다. 더불어 멜로디 라인이 더욱 쉽고 명징해지면서 보다 가볍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아예 다른 장르의 게스트를 초빙해 그들의 음악적 색깔을 흡수한 점 또한 눈에 띈다.
앨범에 담긴 내용도 달라졌다. 그 어느 때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첫 트랙인 “Orlando”를 통해 학창시절 인종차별과 따돌림을 당한 경험을 공유한다. 이후 그로 인해 생겨난 트라우마와 혼란, 분노 등의 감정을 순서 없이 토로하고, 결국 본인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극복해낸다.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그동안 잘 이야기되지 않았던 흑인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다룸으로써 모두의 경험이 되도록 만들었다. [Negro Swan]은 데브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또 한 번 성공적으로 확장한 결과물이다. 블랙뮤직과 문화에 대한 애정을 본인의 경험과 섞어서 잘 담아냈고, 덕분에 전에 없던 새로운 결의 작품이 탄생했다. ‘전위파 아티스트’라는 수식어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결과물이다.
2. Janelle Monae - Dirty Computer
Released: 2018-04-27
Lable: Wondaland, Bad Boy
자넬 모네(Janelle Monáe)는 이제 뮤지션을 넘어 시대 정신을 대표하는 엔터테이너이자 운동가로 거듭났다. 전작으로부터 약 5년 만에 발표한 신작 [Dirty Computer] 역시 이러한 활동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훨씬 더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겼다. 이번에도 그녀는 메트로폴리스라는 가상 공간을 앨범의 배경으로 내세우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신디가 아닌 새로운 여자 안드로이드 ‘제인 57821(Jane 57821)’이 주인공이다. 제인은 신디보다 더욱 자넬 모네 본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킨 것은 본작의 주제와도 관련이 깊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넬 모네의 커밍아웃 과정을 담았기 때문이다. 앨범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Dirty Computer’는 제인 본인을 가리키는 말로써 이성을 사랑하도록 프로그램된 ‘정상’적인 컴퓨터가 아닌 범성애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컴퓨터를 의미한다. 컴퓨터의 저장 단위인 ‘바이트(Byte)’를 이용한 말장난이 인상적인 “Take a Byte”는 이러한 내러티브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트랙이다.
프로덕션적으론 이번에도 사이키델릭 소울과 여러 장르를 섞은 지점이 돋보인다. 전작보다 한층 대중친화적으로 변모한 점도 눈에 띈다.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와 함께하며 최근 유행하는 댄스홀을 차용한 “I Got That Juice”와 808드럼이 주도하는 팝 알앤비 트랙 “I Like That”은 대표적. 프로덕션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모네의 뛰어난 역량을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다. 자넬 모네는 독특한 세계관과 탄탄한 음악으로 전에 없던 ‘커밍아웃 서사’를 지닌 앨범을 탄생시켰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제인’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비슷한 경험을 지닌 모두의 이야기가 되도록 만들었다. 페미니즘의 물결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때에 본작은 그 물결에 거대한 파도를 더하는 작품이라 할만하다.
1. Kali Uchis - Isolation
Released: 2018-04-06
Lable: Rinse, Virgin
칼리 우치스(Kali Uchis)는 확실히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를 떠오르게 한다. 외적으로 풍기는 분위기도 그렇지만, 음악에서의 아우라가 비슷하다. 실제로 그녀는 에이미의 곡을 커버한 바 있으며, 데뷔 초부터 많은 이가 ‘포스트 에이미 와인하우스’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해왔다. 예상보다 오랜 공백 끝에 마침내 발표한 정규 데뷔작 [Isolation]은 정말 훌륭하다. 썬더캣(Thundercat), 배드배드낫굿(BadBadNotGood), 사운웨이브(Sounwave), 디제이 다히(DJ Dahi), 고릴라즈(Gorillaz), 스티브 레이시(Steve Lacy) 등에 이르는 프로덕션 진부터 압도적이다. 단지 메인스트림에서 잘나가는 몸값 비싼 프로듀서가 아니라 각자의 음악세계가 확실한 능력자들만 모였다. 그들과 우치스의 협업으로 나온 음악은 기대대로 감탄을 자아낸다. 알앤비, 네오 소울, 힙합 소울, 펑크(Funk)뿐만 아니라 보사 노바, 사이키델릭 팝, 레게통 등등, 각각 뿌리가 다른 여러 장르가 거대한 공동체를 이루며 어우러졌다.
특히,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그녀의 보컬은 정말 매혹적이다. 청아하게 공간을 부유하다가도 습기를 가득 머금은 채 눅눅하고 퇴폐적인 이공간으로 잡아끈다. 서사적으로도 빛난다. 콜롬비아 내전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부모를 둔 우치스는 어릴 때부터 양국을 오가며 살았다. 이후,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집을 나와 차에서 노숙도 불사하며 돈을 모았다. 본작엔 이 같은 과거와 그 속에서 깨닫고 느낀 것들, 그리고 이를 통해 견지하게 된 시선이 고스란히 담겼다. 17세였던 당시에 쓴 가사로 완성한 마지막 곡 "Killer"가 남기는 여운은 그래서 더욱 깊다. 앨범 크레딧을 꽉 채운 화려한 이름들 사이에서도 칼리 우치스는 단연 돋보이는 주연이다. EP였던 전작 [Por Vida]로부터 흐른 시간만큼 그녀의 역량 또한 진화했다. 이제 그녀를 ‘포스트 에이미 와인하우스’라 부르는 건 애매해졌다. 머지않아 다른 신예 아티스트에게 ‘포스트 칼리 우치스’란 표현을 써야할 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끝내주는 작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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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uba (2019-02-05 18:43:15, 1.246.33.**)
- 7번에 제목 serpentwithfeel 오타있어요. 마지막에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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