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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뷰] Nipsey Hussle을 향한 특별한 추모 열기
    rhythmer | 2019-04-13 | 9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 이진석

     

    힙합 역사 속에서 많은 래퍼가 이른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건강상의 이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총기 폭력 탓이었다. 그들의 죽음 뒤엔 언제나 팬, 동료, 미디어의 추모가 이어진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갱단 및 폭력과 긴밀하게 엮인 힙합 아티스트들에 대한 비판도 뒤따라왔다. 지난 331일에도 또 한 명의 재능 있는 래퍼가 무자비한 총격 아래 세상을 떠났다.

     

    LA 출신의 유력 인디 힙합 아티스트였던 닙시 허슬(Nipsey Hussle). 그는 본인이 운영하는 옷가게에서 나오다가 두 괴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젊은 랩스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많은 유명인사가 추모하는 메시지를 던졌다. 으레 이어지던 광경이다. 그런데 좀 더 들여다보면, 다른 아티스트를 기리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 랩스타를 넘어 지역사회의 아이콘을 잃은 듯한 분위기다.

     

    많은 팬과 LA의 주민들은 허슬이 총격을 당한 의류 매장 앞에 촛불을 켜고 모여 그의 업적을 기리는 동시에 갱 문화의 폭력성과 위험을 규탄했다. LA 시장 에릭 가르세티(Eric Garcetti)는 트위터를 통해우리 마음은 닙시 허슬과 이 비극으로 인해 고통받는 모두와 함께할 것(Our hearts are with the loved ones of Nipsey Hussle and everyone touched by this awful tragedy)”이라는 글을 게시했다. 또한, 미국 하원 의원 캐런 배스(Karen Bass) 역시 닙시 허슬의 업적을 의회 기록에 공식적으로 등재할 거라 밝혔다.



     


    이처럼 국회의원들까지 나선 이례적인 추모열기에는 다 그만한 배경이 있다(그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으로부터도 추모 편지를 받은 사람이다.). 허슬이 사회운동가로서의 면모 또한 출중했기 때문이다. 닙시 허슬이 태어난 LA 시내 남부는 저소득층 흑인 거주지이자 블러드(Bloods)와 크립스(Crips)를 비롯한 여러 갱단의 주 활동 무대이기도 하다. 그 역시 과거 크립스의 멤버로 활동한 바 있다. 그러나 뮤지션으로서 성공을 거둔 후에는 피폐해진 지역사회를 되살리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건 부동산 개발을 통해 지역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가 총격을 당한 더 마라톤 클로싱(The Marathon Clothing) 매장 역시 이 활동의 일환이다. 위험한 빈민가로 인식된 지역에 흑인 소유의 사업체와 주민들을 고용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블랙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커다란 상권을 만드는 것이다. 사실 이 사업은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했다. 닙시는 지난 2, 포브스 지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도시의 블랙 커뮤니티 지도자들과 협업하여 이 계획을 미국 전역으로 확장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교육 분야에 힘을 쏟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사우스 LA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의 모든 학생들에게 새 신발을 선물하고, 농구장과 운동장을 새로 단장하기 위한 성금을 기부했다. 동시에 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의 교육 기관인 벡터90(Vector90)에 투자하기도 했다. 목표는 각 분야에서 충분히 지원받지 못하는 흑인 청년들을 위한 협업 공간을 열어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과 연결점을 만드는 것. 이 프로그램 역시 LA를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었다.

     

    물론, 닙시 허슬은 음악적으로도 대단한 성과를 남긴 아티스트다. 2005년 첫 믹스테입(Mixtape)을 발표한 이래로 무려 12장의 믹스테입을 공개하며 인디펜던트 아티스트로서의 활로를 개척했다. 특히, 지난 2013년 작 [Crenshaw] 발표 당시 선보인 획기적인 판매 방식은 많은 아티스트와 미디어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후, 커리어의 첫 장을 마무리하듯 발매한 첫 번째 정규 앨범 [Victory Lap] 역시 오래도록 기억될 작품이다. 하지만 음악적 업적 이상으로 사람들이 회자하는 건 닙시가 생전에 보여준 지역사회에 대한 헌신이다.



     


    사실 성공한 힙합 아티스트가 지역사회에 수익 일부를 환원하는 건 익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는 많은 래퍼들에게 성공을 향한 동기가 되기도 한다. 일례로 챈스 더 랩퍼(Chance The Rapper)는 시카고(Chicago)의 젊은 청년들을 지원하는 시민활동단체 소셜 워크스(Social Works)를 공동 설립했고, 지역사회를 위해 수백만 달러를 기부했다. 릴 웨인(Lil Wayne)은 그가 태어난 뉴올리언스(New Orleans)의 아이들을 위해 스케이트보드 공원을 만들었고, 닥터 드레(Dr. Dre) [Compton: A Soundtrack by Dr. Dre] 발매 당시 앨범 판매 수익금 전체를 컴튼(Compton)의 아동 커뮤니티 센터 건립을 위해 기부했다. 이렇듯, 자수성가한 랩스타가 되어 자신을 길러준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많은 래퍼들에게 성공을 향한 동기가 되곤 한다.

     

    닙시 허슬이 좀 더 특별한 건 그저 번 돈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넘어 외부의 도움 없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총격으로 사망한 다음 날에도, LA 경찰국과 함께 총기 폭력 근절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그의 사망이 더욱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다.

     

    라디오 채널과 메이저 레이블의 지원 없이 인디펜던트 아티스트로 자수성가하고 범상치 않은 사업가 기질을 보유했던 닙시 허슬. 그는 이 같은 사업 수완을 오로지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쏟아 부었으며,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홈타운 히어로(Hometown Hero)라 할만하다. 닙시 허슬이 보여준 음악적인 재능과 커뮤니티를 향한 헌신은 팬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아티스트들에게도 오래도록 귀감이 될 것이다.

     

    정말 그의 생이 이런 식으로 마감되어선 안 됐다.

     

    세상의 모든 총기 폭력을 규탄하고,

    다시 한 번 그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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