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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토픽] 2010년대 한국 알앤비 앨범 베스트 10
    rhythmer | 2020-01-08 | 19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The 10 Best KOREAN R&B Albums

    of 2010s



    알앤비/소울은 2010
    년대에 들어와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장르다. '10년대 초반 프랭크 오션(Frank Ocean) 같은 대형 신예의 등장으로 PBR&B를 위시로 한 얼터너티브 알앤비가 성행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알앤비의 전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따라 흑인 아티스트 특유의 그루브와 기교, 그리고 가창력을 중시하던 보컬도 변화했다. 팝과의 경계가 희미해지거나 랩과 노래의 경계를 오가며 리듬감을 중시하는 창법이 대세가 되었다. 알앤비라는 장르의 개념 자체가 뒤바뀐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알앤비 씬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장르 구현을 위해 넘어야 했던 높은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이전보다 훨씬 많은 아티스트들이 쏟아져 나왔다. 더불어 '10년대 초반에 등장해 대중적인 스타가 된 자이언티(Zion.T), 크러쉬(Crush) 이후로 장르의 재현에 집착하던 기존 의 관습이 사라지고, 색깔 있는 사운드와 개성 넘치는 퍼포먼스로 승부를 보는 것이 당연해졌다.

     

    결과적으로 알앤비는 2010년대 한국대중음악계를 통틀어 양적, 질적으로 가장 크게 성장한 장르가 되었다. 현 시점에서 지난 10년을 마무리하고 다가올 10년을 맞이 하기 위해 201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알앤비 앨범 10장을 선정하여 소개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리스트에 올라간 앨범들이 대부분 아티스트의 첫 작품이라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10. 크러쉬 – Crush On You (2014)

     

    자이언티(Zion.T)뻔한 멜로디에 참여하여 이목을 끈 크러쉬가 이듬해 발표한 정규작 [Crush On You]는 그간 쌓인 기대감을 충족해주는 결과물이었다. 알앤비를 토대로 뉴 잭 스윙, 슬로우잼, PBR&B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브장르를 펼쳐놓는 와중에, 선 굵은 보컬이 중심을 잡는다. 다양한 면모를 보이려는 신예의 욕심과 견고한 기본기가 만나 긍정적인 시너지를 냈다. 어설프게 장르를 합치는 시도보단 각 서브장르의 특성을 완성도 있게 재현하는 데 집중한 점 역시 긍정적이다. 크러쉬는 [Crush On You]를 통해 보컬리스트뿐만 아니라, 프로듀서로서의 범상치 않은 역량도 함께 드러냈다. 등장 이래 계속 존재감 있는 활동을 보여준 크러쉬의 성공적인 출발점이다.

     

     

    9. 호림 - Metrocity (2018)

     

    PBR&B를 위시로 한 얼터너티브 알앤비와 트랩 사운드가 메인스트림 사운드를 장악한 2010년대 알앤비 씬에서 네오소울(Neo-Soul)을 들고 등장한 호림(Horim)은 그 존재 자체로 빛이 나는 아티스트다. 장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탄탄한 보컬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한 그의 음악은 단순히 따라하는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첫 정규 앨범 [Metrocity]에서 그는 네오소울을 근간으로 다채로운 사운드를 담아냈다.

    힙합, 재즈, 사이키델릭 등, 다양한 장르를 섞어내면서도 로파이(Lo-Fi)한 질감의 드럼과 독특한 신시사이저의 운용으로 의도한 무드를 제대로 구현해낸다. 여기에 겹겹이 쌓아올린 코러스로 풍성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다가도 리듬을 밀고 당기며 미니멀하게 진행하는 퍼포먼스는 일품이다. ‘지하철을 주제로 마치 랩퍼들의 그것처럼 후렴 없이 벌스를 쭉 읊는 짧은 러닝타임의 곡을 이어붙여서 구성의 묘를 살린 것 또한 탁월하다. 1990년대 후반 탄생한 네오소울이란 장르가 2010년대 한국의 호림을 만나 [Metrocity]라는 걸출한 작품이 탄생했다.

     

     

    8. 자이언티 - Red Light (2013)

     

    2010년대는 물론, 한국 알앤비 음악 역사에서 자이언티의 등장은 손에 꼽을 사건이다. 그는 몇 갈래로 고정되었던 알앤비 아티스트들과는 전혀 다른 고유한 감각으로 무장하고 등장했지만, 거의 모든 면에서 기존의 아티스트들을 압도했다. 2013년 발표한 데뷔앨범 [Red Light]는 그 본격적인 시작이자 집합체이다. 유일무이한 보컬 스타일은 단순히 기교를 부리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감탄을 자아내는 그루브감으로 박자를 타면서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다수의 프로듀서가 참여해 다양한 장르를 버무린 프로덕션은 자이언티가 완전히 통제한 이미지가 투영된 하나의 스타일로 마감됐다
    . 2010년대에는 세계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한 알앤비의 다양한 스타일을 제대로 소화한 아티스트가 많이 등장했다. 하지만 앨범을 통해 스스로를 고유한 아이콘으로 만들고, 새로운 기류를 만든 이는 소수였다. 자이언티는 단연 그 선두에 있고, [Red Light]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7. 소금 - Sobrightttttttt (2019)

     

    2010년대에 들어와 얼터너티브 알앤비는 주류 사운드로 자리매김했다. 더이상얼터너티브라는 명칭이 무색해질 정도가 된 셈이다. 정형화된 사운드가 쏟아져 나오며개성을 중시하던 장르의 미덕이 희석된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발표된 소금(Sogumm)의 첫 정규앨범 [Sobrightttttttt]은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새로운 면을 제시했다. 곡의 프로듀싱을 책임진 윈진(wnjn)은 일렉트로닉, 엠비언트(Ambient) 사운드를 바탕으로 축축한 질감의 신시사이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독특한 소스들을 난입시켜서 고유한 무드를 완성했다.

    그리고 소금의 독보적인 보컬이 완성도에 방점을 찍는다. 때론 천진난만하다가도 건조하며, 주술 같아지는 그의 보컬은 듣는 동시에 매료되고, 들을수록 갈구하게 한다. 사랑에 빠진 소녀의 마음을 단편적인 감정으로 나누어 담은 가사 또한 흥미롭다. 점층적으로 쌓인 감정이 폭발하는 마지막 곡 “Smile”까지 이어지는 몰입도가 상당하다. [Sobrightttttttt]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색깔을 가진 얼터너티브 알앤비 앨범이다.

     

     

    6. 지바노프 - so fed up (2016)

     

    2010년대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알앤비 아티스트가 많이 등장했다. 지바노프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예상치 못한 신예였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놀란 그의 첫 EP [so fed up]은 당시 끊임 없는 자기 복제로 어느 정도 식상함과 피곤함이 쌓여가던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매력을 끌어올린 결과물이다.

    겹겹이 쌓인 침전하는 무드의 몽환적인 사운드와 이를 극대화하는 멜로디 라인, 그리고 지바노프의 미성이 잘 어우러져 시종일관 굉장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1993년생인 지바노프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녹여낸 가사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청춘이 지닌 꿈과 불안감을 잘 표현해냈다. 그 정수인삼선동 사거리 2010년대 가장 중요한 알앤비 노래 중 하나다. 지바노프와 본작은 2010년대 한국 블랙뮤직계 최고의 발견 중 하나다.

     

     

    5. 나얼 - Principle of My Soul (2012)

     

    쉬이 범접할 수 없는 탁월한 보컬 퍼포먼스, 정교한 사운드 구성, 장르 매니악, 이상은 한국대중음악계에서 나얼이 독보적인 위치로 올라설 수 있는 주요 동력이었다. 특히, 대중과 마니아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알앤비 음악의 큰 틀 안에서도 각 세부 장르의 특성을 끄집어내어 높은 완성도로 구현해냈기 때문이다. 이는 나얼의 첫 앨범 [Principle of My Soul]의 장점이기도 하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Brown Eyed Soul)에서 보였던 음악의 연장이라도 봐도 무관한 솔로 앨범 [Principle of My Soul]에서 그는 대중적인 팝 발라드부터 필리 소울(Philly Soul), 가스펠, 어덜트 컨템포러리 등등, 각종 장르를 섬세하면서도 풍성한 사운드와 편곡으로 녹여냈다. 대중의 보편적 감성을 사로잡으면서도 장르적 성취까지 갖춘, 나얼이라는 이름이기에 기대할 수 있고, 나얼이기에 만들 수 있는, 바로 그런 작품이다.

     

     

    4. 히피는집시였다 - 나무 (2017)

     

    그룹 와비사비룸에서 랩을 선보였던 제이플로우(J-Flow)는 제이통(J-Tong)의 정규 2 [이정훈]에서 인스트루멘탈 트랙을 통해 프로듀싱 실력을 선보인 바 있다. 얼터너티브 알앤비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독특한 소스와 악기 운용으로 마치 명상 음악 같은 무드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 그가 보컬 셉(Sep)과 팀을 이룬 히피는집시였다의 첫 정규앨범 [나무]는 이러한 음악의 연장선에서 개성 넘치는 사운드로 무장한 작품이다. 특유의 소스 운용과 한영혼용 없는 가사, 그리고 장르적 감흥이 살아있으면서도 동양적인 정서가 느껴지는 멜로디가 어우러져 매우 진한 감흥을 선사한다.

    PBR&B
    를 바탕으로 하지만, 마치 민요처럼 토속적이고 한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은 이 덕분이다. 삶과 사랑에 대한 철학이 담긴 표현으로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가사는 마지막까지 강한 여운을 남긴다. 미국 메이저 알앤비 씬의 영향을 자기만의 것으로 소화해내아시안 얼터너티브를 완성한 히피는집시였다의 [나무] 2010년대 한국 알앤비 씬의 쾌거 중 하나다.

     

     

    HONORABLE MENTION (연도 순 나열)


     

    리코 - The Slow Tape (2015)

     



    보니
    - LOVE (2015)




    박재범 - Everything you Wanted (2016)


     

    라드 뮤지엄 - Scene (2017)


     

    나얼 - Sound Doctrine (2018)

     

     

    3. 진보 – Afterwork (2010)

     

    사실 이전에도 앨범을 발매한 바 있지만, 2000’년대 진보(Jinbo)의 이미지는 피처링 전문 아티스트에 가까웠다. 이런 그의 이미지는 첫 정규작, [Afterwork] 발매와 함께 바뀌게 된다. 보컬과 차분히 박자를 밟는 래핑 역시 매력적이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건 프로덕션이다. 짧게 컷팅한 루프와 보이스 샘플, 때로는 드럼의 질감까지, 곳곳에서 제이딜라(J Dilla)로 대표되는 디트로이트 사운드의 영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여기에 로파이(Lo-FI)한 질감과 소스 구성을 얹어, 높은 완성도로 구현하는 동시에 통일감 있는 무드를 주조했다.

    여느 작품처럼 본인의 퍼포먼스를 빼곡히 채우는 대신, 각 곡에 맞게 적절히 배치한 점 역시 눈에 띈다. 프로덕션의 매력을 한층 끌어올리는 선택이다. 가사도 인상적이다. 스물일곱이란 나이에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과 느꼈던 감정들을 더없이 세련된 형태로 풀어냈다. 영민한 프로듀서로서 앨범 전체를 만들고 조율해가는 그는 이렇게 트랙마다 좋은 보컬이자 적절한 래퍼로서도 활약하며, 피처링 하나 없이 멋진 앨범을 완성해냈다.

     

     

    2. 서사무엘 - Ego Expand (100%) (2016)

     

    한국 블랙뮤직 씬에서 서사무엘만큼 단숨에 커리어를 반전시킨 인물도 드물다. 최초 랩을 주무기로 했을 땐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보컬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알앤비/소울 음악을 바탕으로 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기분 좋은 놀라움을 안긴 첫 정규작 [Framework]가 그 결과의 산물이었다. 이는 겨우 7개월만에 발표한 두 번째 정규작 [Ego Expand 100%]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소울, 디스코, 펑크, 붐뱁, 일렉트로닉 등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면서도 고유한 스타일로 소화해내 일정한 톤을 유지한다.

    특별히 튀는 구간 없이 고른 완성도를 보여주며 종종 번뜩이는 감각이 귀를 자극하는 프로덕션에서 그의 음악적 기량이 한층 발전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 랩과 보컬을 자연스레 오가며 리듬을 밀고 당기는 독창적인 스타일의 퍼포먼스가 물 만난 듯 넘실거린다. 또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아티스트로서 확장된 자아를 선언하는 내러티브는 본작의 탁월한 음악적 완성도와 어우러져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의 커리어를 따라온 이들이라면 넉살과 함께한 마지막 곡 “Ego Expand (100%)”에서 짜릿한 소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 수민 - Your Home (2018)

     

    알앤비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 수민(Sumin) 2016년 네오소울을 기반으로 한 탄탄한 완성도의 EP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그의 등장은 그해의 발견이라 할만했다. 2년 후 발표된 첫 정규앨범 [Your Home]은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은 것을 넘어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를 보였다. 한국 알앤비가 이제껏 도달하지 못했던 곳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뷔 EP와 전혀 다른 음악으로 앨범을 가득 채웠다는 점이 더욱 큰 감흥을 선사했다.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적극 가미하고 힙합, PBR&B, 엠비언트(Ambient), 퓨쳐 바운스(Future Bounce) 등등, 다양한 하위 장르를 껴안은 사운드는 우주를 떠돌듯 황홀한 감흥을 선사한다.

    여기에 단순하지만, 센스 넘치는 탄탄한 멜로디 어레인지와 사랑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감정을 직설적이면서도 허를 찌르는 표현으로 담아낸 가사가 더해져 수민만의 알앤비를 완성했다. 작곡으로 참여했던 경력 덕분인지, 아이돌로 대표되는 케이팝(K-POP)과 얼터너티브 알앤비 사이를 절묘하게 가로지르는 사운드에서 가요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까지 제시하는 듯하다. 음악적인 완성도는 물론, 의미 면에서의 무게감까지, [Your Home]은 의심할 여지없는 2010년대 최고의 알앤비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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