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2019 국내 알앤비/소울 앨범 베스트 10
- rhythmer | 2020-02-03 | 9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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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머 필진이 선정한 '2019 국내 알앤비/소울 앨범 베스트 10’을 공개합니다. 아무쪼록 저희의 리스트가 한해를 정리하는 좋은 가이드가 되길 바랍니다.※2018년 12월 1일부터 2019년 11월 31일까지 발매된 앨범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10. 여전희 – Paradise신예 알앤비 싱어송라이터 여전희는 오늘날 흔해진 얼터너티브 알앤비를 주무기로 한다. 그러나 첫 EP [Paradise]에 담긴 그의 음악은 절대 흔하지 않다. 과장되고 일그러진 신시사이저와 오토튠, 디스토션 등, 각종 효과를 먹인 보컬이 어우러진 곡들은 긴장감을 자아낼뿐만 아니라 공격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불편하다. 그럼에도 묘하게 빠져들게 한다. 앨범을 듣고 있으면,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것만 같다. 연인 사이의 뒤틀린 관계를 추상적인 표현으로 묘사한 가사 또한 그의 음악을 완성하는 요소다. 한 가지 색깔로 쭉 밀고 나가 EP라는 형식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구성도 인상적이다. 뛰어난 알앤비 아티스트가 연이어 등장한 2010년대, [Paradise]는 그 끝자락에 탄생한 또 한 장의 개성 강한 수작이다.
9. 소마 - Seiren
소마의 첫 정규앨범인 [SEIREN]은 그간 그가 선보였던 스타일과 거기서 비롯된 매력을 포괄하는 집합체 같은 작품이다. 명확하게 서브 장르명이 즉시 떠오르는 다채로운 프로덕션에도 불구하고 전혀 산만하지 않은 감상을 가능케 하는 것은 소마의 보컬 덕이다. 각 트랙마다 고유한 매력과 안정감이 돋보인다. 앨범의 내러티브도 흥미롭다. 자신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독수리의 몸을 가진 여성 ‘세이렌(Seiren)’으로 설정하고, 여성으로서 겪은 고충들을 직접적으로 열거하는 동시에 극복을 다룬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이를 통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소마는 여태까지 보여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본작에 집약시켰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본인만의 색깔을 확실히 하는 계기가 됐다.
8. 콜드 - Love, Part
듀오 오프온오프(offonoff) 출신의 알앤비 싱어송라이터 콜드(Colde)의 두 번째 EP [Love, Part 1]은 전체적으로 팝적인 터치가 늘어나면서 사운드가 보다 정돈되었다. 신시사이저를 주로 활용했던 전작과 달리 전체적으로 리얼 악기를 운용하여 따뜻한 분위기를 불어넣은 것이 주효했다. 여기에 더욱 또렷해진 멜로디 어레인지와 능숙하게 곡을 소화해내는 보컬이 어우러져 끝까지 유려하게 흘러간다. 특히, 본작은 커리어의 전환점을 알리는 앨범으로서 매우 적절하다. 기존의 색깔을 버리지 않는 선에서 대중친화적인 요소를 절묘하게 섞어냈고, 팀을 떠나 솔로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기는 데에 성공했다. 더불어 “와르르♥” 같은 임팩트 강한 트랙을 만들 능력이 충분하다는 것도 증명했다. 다음 챕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결정적 한 방이다.
7. 백예린 – Our love is great백예린과 그의 음악 파트너 구름은 전작 [FRANK]에 이어, 또다시 주목할만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이전보다 장르적인 색채가 옅어진 프로덕션은 몽롱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백예린의 청량한 목소리와 좋은 합을 이룬다. 변화는 보컬에서 역시 드러난다. 목소리에 힘을 주고 리듬감을 부각했던 전과 비교해 한층 차분하고 유려하게 전개된다. 비단 연애감정뿐 아니라 다양한 심상을 통해 구축된 가사에선 백예린이 가진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비범한 재능을 엿볼 수 있다. 더욱 맞는 옷을 입은 듯, 본인의 장점을 더욱 부각하는 데 성공한 결과물이다.
6. 저드 – Too Many Egos
2019년 1월, 대뜸 등장한 신예 저드(Jerd)의 데뷔 EP [Too Many Egos]는 기분 좋은 발견이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앨범은 일상의 조각을 모은 소품집 같은 형식으로 진행된다. 언뜻 힙합과 알앤비의 경계선에 있는 듯한 프로덕션엔 재즈나 어반 뮤직 등 여러 장르에서 영향받은 흔적이 녹아있다. 오늘날 싱잉과 랩을 오가는 퍼포먼스는 그다지 특별한 요소라 할 수 없지만, 이를 능숙하게 해내는 저드의 역량은 충분히 감탄할만하다. 일상의 요소들을 꾸밈없이 나열하며, 점차 주제에 맞게 확장해나가는 가사 역시 감상에 재미를 더한다. 여기에 스스로 앨범 단위의 결과물을 프로듀싱할 수 있는 실력까지 갖췄으니, 여러모로 범상치 않은 신예의 등장이다.
5. 드레스&소금 - Not My Fault
소금은 2019년 한국 알앤비 역사에 기록될 가치가 충분한 두 장의 앨범을 연이어 발표했다. 솔로작 [Sobrightttttttt]과 프로듀서 드레스(Dress)와의 합작앨범 [Not my fault]이 그것이다. 두 앨범 중 [Not my fault]에서 조금 더 소금의 마력에 가까운 보컬을 만끽할 수 있다. 다수의 피처링 아티스트가 있음에도 말이다. 독보적인 보컬이 자아내는 매력은 각 곡마다 다르면서도 앨범 전체를 지나며 강력한 감흥과 여운을 선사한다. 프로듀서 드레스의 활약 역시 합작앨범의 가치를 드높인다. 뛰어난 얼터너티브 알앤비 프로덕션을 기반으로 음울하게 빠져드는 무드부터 대중적인 접근까지 빼어나다. 대척점에 있는 곡들을 이질감 없이 녹여낸 부분 또한, 그의 역량을 체감할 수 있는 지점이다. 2019년 가장 짜릿한 충격을 준 앨범이다.
4. 수민 - OO DA DA
첫 번째 정규 앨범 [Your Home] 이후, 아티스트 수민은 또 다른 방식의 결과물로 놀라움을 안겼다. [OO DA DA]에서 그는 기존 케이팝의 형식에 실험적인 소스 운용과 변화무쌍한 변주를 가미하여 전혀 새로운 네오 케이팝(Neo K-Pop)을 탄생시켰다. 수민 특유의 가사적인 장점도 여전하다. 고양이의 성격을 사람에 이입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공간을 우주선에 비유하는 등, 소소한 상상에 살을 붙여 완성된 이야기가 감상에 색다른 재미를 더한다. 서로 다른 결의 음악을 앨범 단위로 일체감 있게 엮어낸 솜씨도 훌륭하다. 수민은 장르 씬 뿐만 아니라, 한국대중음악 역사에 유의미한 발자취를 남기는 중이다.
HONORABLE MENTION (가나다 순)
지바노프 - GOOD THING.
프롬올투휴먼 – Resistance
프레드 - 너의 가림막
형선 - DAMDI
후디 - Departure
3. 히피는집시였다 - 불
듀오의 네 번째 정규앨범 [불]은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팀의 색깔을 지키는 선에서 다양한 시도를 통해 변화를 준 것이다. 보컬에 딜레이, 디스토션 등의 효과를 걸거나 일렉 기타, 색소폰 등등, 각종 악기를 활용해 극적인 연출을 가미했다. 덕분에 차분하게 흘러가는 와중에도 지루하지 않게 끝까지 몰입할 수 있다. 히피는집시였다는 데뷔 후 꾸준하게 결과물을 발표하며 존재감을 키워왔다. 첫 EP [섬](2016)부터 지향하는 바가 확실했던 이들은 새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변주를 주며 한계를 조금씩 넘어왔다. [불]은 이러한 시도의 과정이 성공적으로 구현된 작품이다. 이미 그 자체로 장르가 된 이들의 음악이 과연 어디까지 확장될지 궁금해진다.
2. 서사무엘 - The Misfit
서사무엘의 세 번째 정규앨범 [The Misfit]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프로덕션의 변화다. 신시사이저를 비롯한 디지털 가공된 악기의 사용을 최대한 배제하고, 리얼 밴드 사운드로 채운 프로덕션은 시종일관 넘실거리는 리듬이 이어지며, 황홀한 감흥을 선사한다. 팔세토까지 무리 없이 소화하는 한편, 장기인 랩과 노래를 오가는 창법에서도 더욱 여유가 느껴진다. 많은 양의 단어를 쏟아내다가도 어느새 멜로디에 여백을 두어 리듬을 밀고 당기는 솜씨는 일정 경지에 올랐다. 서사무엘은 본작을 통해 본인만의 영역을 보다 깊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전과는 다른 재료를 썼음에도 오히려 그만의 색깔이 더욱 짙어졌다. 그만큼 추구하는 바가 확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첫 정규앨범부터 지금까지, 그야말로 거를 타선이 없는 그의 커리어는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1. 소금 - Sobrightttttttt
얼터너터브 알앤비가 장르의 전형이 된 이 시대에 [Sobrightttttttt]는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새로운 면을 제시한 작품이다. 전곡의 프로듀싱을 책임진 윈진(wnjn)은 일렉트로닉, 엠비언트(Ambient) 사운드를 바탕으로 축축한 질감의 신시사이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독특한 소스들을 난입시켜서 고유한 무드를 완성했다. 전체적으로 차분하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그 기저에 꿈틀대는 역동성이 느껴진다. 특유의 어눌한 톤으로 옆에서 말하듯 속삭이는 보컬은 먹먹한 사운드와 맞물려 넘실거리는 그루브를 만들어낸다. 마치 되는대로 지껄이는 것처럼 동물적으로 흘러가는 퍼포먼스가 황홀한 감흥을 선사한다. 특히, 천진난만한 가사에서 뿜어 나오는 따뜻함과 차가운 기운의 프로덕션이 충돌하여 만들어내는 미묘한 매력은 [Sobrightttttttt]를 완성하는 요소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발매된 그 어떤 얼터너티브 알앤비 앨범들과도 결이 다르다. 소금은 본작을 통해 그간의 행보가 단순히 운이 아니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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