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2019 국내 랩/힙합 앨범 베스트 10
- rhythmer | 2020-02-03 | 23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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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머 필진이 선정한 '2019 국내 랩/힙합 앨범 베스트 10’을 공개합니다. 아무쪼록 저희의 리스트가 한해를 정리하는 좋은 가이드가 되길 바랍니다.
※2018년 12월 1일부터 2019년 11월 30일까지 발매된 앨범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10. 담예 - Life’s A Loop
[Life’s A Loop]은 탄탄한 음악적 기반을 갖춘 신예의 반가운 데뷔작이다. 앨범의 제목부터 가사를 통해 견지하는 담예의 태도와 사용하는 어휘에선 불가 철학의 영향이 배어난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갈등과 번민을 늘어놓은 끝에, 마지막 트랙 “LIFE’S A LOOP”에 이르러 반복되는 고리를 끊고 뛰쳐나감으로써 해소하는 것이 앨범 서사의 골자다. 무엇보다 일품인 건 전곡 스스로 주조한 프로덕션이다. 힙합과 알앤비, 재즈와 펑크(Funk)를 넘나드는 프로덕션은 뻔한 트렌드를 답습하는 것을 지양하는 동시에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확연히 드러낸다. 펑크 리듬에 현대식 신시사이저 연주를 얹은 “TALENTED”나 기타 연주로 어쿠스틱한 기운을 두른 “DUSSA”, 과감한 변주로 완급을 잡는 “CMND+F”와 “BLESSED” 등등, 어느 하나 빠짐없이 견고하다. [LIFE’S A LOOP]는 여러모로 잘 만들어진 데뷔작이다. 첫 작품임에도 견고한 스타일을 구축했고, 음악가로서의 정체성 역시 농밀하게 담아냈다.
9. 다이나믹 듀오 - Off Duty
케이오디(K.O.D), 씨비매스(CB Mass)를 거쳐 다이나믹 듀오(Dynamic Duo)까지, 최자와 개코는 긴 역사만큼이나 완성도 있는 작품을 여러 장 발표했다. 그리고 스무 살 남짓이었던 청년들은 이제 40대에 들어섰다. 그간 열 장이 넘는 정규작을 발표했고, 한국힙합뿐만 아니라 한국대중음악 시장을 통틀어 손꼽히는 듀오로 자리 잡았다. 나이 앞자리가 다시 한번 바뀌었지만, 개코의 랩은 여전히 최고 레벨이다. 박자에 치열하게 따라붙으며 타이트하게 쏘아붙이는 “Desperado”나 “Livin’ the life”부터, 편안한 분위기에 감정을 풀어내는 “언제와”까지, 능숙한 완급조절을 통해 트랙을 이끈다. 최자 역시 여느 때보다 타이트한 퍼포먼스로 베테랑다운 면모를 선보인다. 예전처럼 사회의 이면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치열함은 옅어졌지만, 나이가 듦에 따라 보다 완숙한 내용을 뱉는 것이 느껴진다. 특히, 지난 20년의 세월을 되돌아보며 감사를 전하는 “그걸로 됐어”는 진한 여운을 남기는 좋은 마무리다. 근 몇 년간 발표한 둘의 결과물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앨범이기도 하다.
8. XXX - Second Language
본작은 XXX(엑스엑스엑스)가 2018년 말에 발표한 첫 정규 앨범 [Language]와 짝을 이루는 앨범이다. 그만큼 XXX의 음악적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결은 조금 다르다. 귀를 찌르듯 날카로웠던 신시사이저는 본작에 들어서 한결 가벼운 질감으로 마감되었다. 반면, 자신의 내면이 아닌 외부로 시선을 돌린 심야의 랩은 더욱더 날카로워졌다. 기형적인 힙합 씬과 한국 가요계를 노골적인 언어로 공격하며 통쾌함을 안긴다. “우아” 같은 트랙에서는 전형적인 일렉트로닉 팝 사운드를 차용한 비트 위에 김심야의 공격적인 랩이 얹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Second Language]는 XXX 음악의 긍정적인 변주라 할만한 작품이다. 힘을 뺀 프로덕션과 더욱 공격적으로 변한 랩이 만나 전에 없던 바이브를 자아낸다. 프로덕션의 변화가 그들의 냉소적인 태도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것임에도 이것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한국힙합 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그들의 매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7. 사이먼 도미닉 - 화기엄금
[화기엄금]은 기존에 사이먼 도미닉(Simon Dominc)의 작품이 가지고 있던 약점을 상당 부분 극복한 작품이다. 첫 트랙부터 그는 전작에서의 다소 어정쩡한 싱잉, 혹은 멈블 랩 대신 낮은 톤의 속도감 있는 랩을 선보인다. 이후에도 타이트하게 채운 벌스가 연달아 이어지며,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 인상적인 순간을 여러 번 만들어낸다. 성공과 이에 대한 과시로 채워진 콘텐츠는 그간 미디어를 통해 내비쳤던 특유의 뻔뻔하고 익살스러운 캐릭터와 합쳐져 앨범의 정서를 지탱한다. 데뷔 이래 일관되게 이어진 그의 성격과 캐릭터가 비로소 음악을 통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가장 조명이 필요한 건 프로덕션이다. 전작에서 신인 프로듀서 디크로(Dichro)가 주된 무드를 이끌어갔던 것과 달리, 이번엔 구스범스(GooseBumps)가 전곡을 담당했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구스범스 특유의 질감을 유지하면서도 AOMG가 그간 보여준 트렌디한 방향으로 이질감 없이 녹아들었다. 그가 발표했던 앨범을 통틀어 강박에서 벗어나 가장 편안하게 작업한 듯한 인상도 든다. [화기엄금]은 그의 결과물 중 가장 즐겁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6. 오르내림 - Cyber Lover
오르내림(OLNL)의 두 번째 정규앨범 [Cyber Lover]는 그의 스타일이 완성형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착 가라앉은 톤으로 일관하는 탄탄한 프로덕션과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기술의 발달과 함께 달라진 요즘 시대의 사랑 방식을 이야기하는 가사가 매우 조화롭게 어우러져 다 듣고 나면 마음에 진한 여운을 남긴다. 퍼포먼스 또한 더욱 발전했다. 보컬에 무게를 두면서도 능숙하게 랩으로 전환하여 분위기를 환기한다. [Cyber Lover]는 오르내림만의 방식으로 완성한 현 세대의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다. 그만큼 앨범에 담긴 이야기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이 공감할만한 포인트를 적잖이 내포하고 있다. 그는 퓨쳐 베이스의 유행이 사그라진 시점임에도 노선을 바꾸지 않았고, 본인의 색깔을 더욱 진하게 만들었다.
5. 창모 - Boyhood
현재 한국힙합 시장에서 가장 잘나가는 아티스트인 창모의 무기는 바로 설득력이다. 그가 소도시 덕소 출신을 강조하면서 펼치는 성공기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일상적이면서 과감한 표현력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여기에 중독적인 멜로디까지 더해지면 마치 직접 이야기를 듣는 듯한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Boyhood]는 이러한 창모의 매력이 제대로 발휘된 집합체다. 지금껏 그가 말하던 주제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더욱 손에 잡힐듯한 표현과 전개로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감상을 제공하고, 장르적 접근에 충실하면서도 가요 감성을 가미한 프로덕션은 단연 돋보인다. 트렌디한 힙합에 기반을 두었지만, 그 와중에 고유한 매력을 치열하게 추구하는 창모의 음악을 만끽할 수 있는 인상적인 앨범이다.
4. 최엘비 – 오리엔테이션
크루 섹시 스트리트(Sexy Street)와 우주비행(wybh) 소속의 신예 최엘비(Choi LB)는 그간 동료들보다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약 1년 반 만에 발표한 첫 정규앨범 [오리엔테이션]은 이러한 인식에 변화를 줄만 하다. 가장 인상적인 건 눈에 띄게 발전한 랩 퍼포먼스다. 시원시원한 발성과 유려해진 플로우로 앨범 내내 귀에 쏙쏙 박혀 들어온다. 앨범의 주제 또한 흥미롭다. ‘오리엔테이션’이라는 제목처럼 최엘비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이자 사회초년생으로서 겪는 감정을 풋풋하면서도 진지한 가사로 풀어낸다. 특히, 특정한 사건들을 상당히 구체적인 어휘로 묘사한 덕분에 공감을 끌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최엘비는 존재감을 선명히 아로새기는 데에 성공했다. 그뿐만 아니라 음악적 성취에서도 크루의 다른 동료들보다 한발 앞서가게 되었다. 이는 꾸준히 발전을 거듭해 완성형에 가까워진 랩과 뚜렷한 주제 의식이 돋보이는 개성 있는 가사, 그리고 영리하게 앨범을 구성한 기획력까지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결과다.
HONORABLE MENTION (가나다순)
먼치즈 - You Had To Be There
비앙 - The Baker
비와이 - The Movie Star
언에듀케이티드 키드 - Hoodstar
이현준 - Mainstream
3. 퓨처리스틱 스웨버 - BFOTY
2000년대 초 탄생한 힙합의 대표적인 서브장르 트랩뮤직은 2010년대 전 세계 음악 시장의 프로덕션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지만, 오히려 미국 밖에서는 힙합 음악으로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위험한 라이프스타일을 그린 가사가 매력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오히려 뻔뻔하게 차용한 너드(Nerd) 컨셉트로 돌파하는 재미난 흐름도 생겨났다. 퓨처리스틱스웨버 역시 그 갈래 중 하나다. 그리고 이를 가장 잘한다. 퓨처리스틱 스웨버는 한국힙합을 향한 조롱과 풍자까지 담아내면서 [BFOTY]를 현재의 한국힙합 씬에서 가장 하드코어하고 가장 감수성 풍부한 앨범으로 만들어냈다. 한국힙합의 기믹과 컨셉트를 바탕으로 행한 실험같은 앨범이다. 그리고 그 실험은 완벽에 가까운 성공을 거두었다.
2. 이센스 - 이방인
[이방인]의 주제는 명확하고 단순하다. [The Anecdote]의 청년이 상경 후(혹은 출소 후) 서울 생활과 힙합 씬에서 부대끼며 느낀 세상과의 부정교합이 그것이다. 음악만 잘하면 성공할 줄 알았던 청년은 기대와 다른 현실 속에서 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냉철한 시선을 가진 30대로 성장했다. 그리고 두 번째 시작을 애매하지만, 고집 있게 던져놓는다. 전작으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티스트 이센스는 여전하다. 돈에 대한 절실함을 끊임없이 드러내면서도 대중적인 흥행 코드를 일절 배제한 채 자신의 음악을 밀어붙였던 것처럼, [이방인]에서도 본인만의 이야기로 시대를 가로지른다. 무엇이 정상이라고 규정할 수도 없는 기형적인 사회와 씬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스스로 맞다고 믿는 것을 고집스레 추구해나간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이방인]으로 규정했다. 씬의 한가운데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그만이 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자기고백이다.
1. 씨잼 - 킁
[킁]은 2019년에 발매된 힙합 앨범 중에서 가장 반전 있는 결과물이다. 씨잼(C Jamm)은 전작에서 보여준 특유의 쏘는 듯한 랩 스타일 대신 독특한 발성과 오토튠을 먹인 랩-싱잉으로 앨범을 가득 채웠는데, 결과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다. 가사의 수준도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다. 자기가치의 충돌이라는 주제는 뛰어난 박자감각과 완급조절이 조화를 이룬 퍼포먼스를 만나 빛을 발하고, 씨잼이라는 인물이 지닌 구체성은 거기에 진한 페이소스를 덧씌운다. 이를 받치는 제이 키드먼(Jay Kidman)의 프로덕션 역시 일품이다. 건반, 기타를 메인으로 구성한 멜로디 라인은 전형적인 장르적 구성과는 떨어져 있는데, 힙합의 범주가 한층 더 넓어진 상황에서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미국 메인스트림 힙합 씬에서 랩 싱잉과 이모 랩의 폭발적인 인기로 인해 이를 그대로 차용하거나 영향받은 결과물이 국내에도 적잖이 쏟아졌다. 그중에서 [킁]의 완성도는 단연 압도적이다. 2019년 가장 흥분된 음악적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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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termath (2020-04-17 22:34:35, 124.54.94.***)
- 로스 ep는 리뷰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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