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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뷰] Bill Withers, 엄청나게 소울풀하고 놀라울 만큼 사교적인
    rhythmer | 2020-04-14 | 7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글: 강일권


    "Ain't No Sunshine"
    에서 빌 위더스(Bill Withers)의 보컬은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자세를 추스르기도 전에 기습적으로 파고든다. 이내 그 순간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이든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굉장한 흡입력이다. 느긋하지만 힘 있게 걷는 보컬의 반보쯤 뒤에서 베이스와 기타가 보폭을 맞춰가고, 때를 기다리던 드럼과 스트링이 슬며시 동행에 합류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모든 연주가 숨죽이고 위더스와 드럼만의 밀담이 이어지더니 다시금 모두가 어우러져 합을 맞춘 뒤 일몰한다. 그의 음악이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앗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2분 남짓이었다. 위더스가 '62년 영화 [데이즈 오브 와인 앤 로지즈, Days of Wine and Roses]에서 영감을 얻어 쓴 "Ain't No Sunshine"은 그에게 첫 번째 골드(Gold) 레코드와 그래미상을 안겼다.

     

    위더스의 음악 속에 녹아있는 저 밑바닥으로부터의 울림과 감성은 그를 미국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중 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의 보컬은 엄청나게 소울풀한 동시에 놀라울 만큼 사교적이다. 이처럼 친근하면서도 정교하고 세련된 위더스의 음악이 지닌 이원성은 (그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한적한 시골에서의 어린 시절과 성인이 되어서 겪은 도회지에서의 삶으로부터 비롯했다.


    빌 위더스는 미국 버지니아주의 서쪽에 위치한 작은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광부였던 아버지는 그가 열세 살 때 세상을 떠났다. 어린 나이였지만, 위더스는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어머니를 돕기 시작했다. 이후 17살이 되던 해에는 해군에 입대하여 9년 동안이나 복무한다. 그는 이 기간에도 작곡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965년 전역하고 2년 뒤, 위더스는 레이블과의 계약을 꿈꾸며 로스앤젤레스로 옮겨온다. 생계는 록히드 항공사에서 전일제로 일하며 해결했다. 보잉 747기의 화장실 의자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틈틈이 데모 테이프를 만드는데 주력했다. 당시 그의 시급은 3,50달러였고, 데모 테이프 제작에 2,500달러가 들어갔다. 하지만 위더스의 음악에 흥미를 보이는 레이블은 한군데도 없었다.



     


    그렇게 맞이한 1970년대, 드디어 기회가 찾아온다. 당시 유력 레이블이었던 석세스 레코드(Sussex Records) CEO 클라렌스 아반트(Clarence Avant)가 위더스의 음악을 맘에 들어 한 것이다. 곧 계약이 성사됐다. 뿐만 아니라 그의 데뷔앨범을 프로듀스 할 인물로 부커 티 존스(Booker-T. Jones)가 내정된다. 두 아티스트는 1971, 역사에 남을 작품 [Just As I Am]을 탄생시켰다. 흙냄새 짙은 보컬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은 위더스의 음악은 평단, 대중, 미디어를 사로잡았고, 이는 싱글 히트와 그래미 어워드 수상으로 이어졌다. "Ain't No Sunshine", "Grandma's Hands" 등의 명곡이 바로 이 앨범에 수록됐다.

     

    곧 위더스는 드러머 제임스 갯선(James Gadson), 기타리스트 버노스 블랙몬(Bernoce Blackmon), 키보디스트 레이 잭슨(Ray Jackson), 베이시스트 멜빈 던랩(Melvin Dunlap) 등을 영입하여 밴드를 결성하고 세계 투어에 나선다. 그리고 투어 중간의 짧은 휴식기간을 통해 두 번째 앨범인 [Still Bill](72)을 내놓았다. "Lean On Me", "Use Me" 등의 명곡을 품은 작품이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73년엔 라이브 앨범 [Live At Carnegie Hall]이 발매된다. 위더스가 이제껏 살아오는 동안 가장 흥분되고 짜릿한 순간 중 하나였다고 얘기한 비 오는 날 밤의 카네기홀 공연을 담은 작품이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견해를 노래한 "I Can’t Write Left Handed"와 곡 전반에 온기 가득한 "Friend Of Mine" 등을 포함하여 더욱 가치 있는 앨범이었다.

     

    하지만 바로 이듬해, 연이은 앨범의 성공과 공연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희비가 엇갈리는 시기가 찾아온다. 통산 세 번째 정규작인 [+Justment]의 성공과 함께 소속 레이블인 석세스 레코드와의 소송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위더스는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에타 제임스(Etta James), 비비 킹(BB King) 등등,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콘서트를 열었으며, 음악 작업을 이어갔다. 결국, 1년여의 법적 공방 끝에 위더스는 석세스 레코드와 결별했다. 그리고 새롭게 손잡은 곳이 컬럼비아 레코드(Columbia Records)였다.



     


    곧이어 네 번째 앨범 [Making Music, Making Friends]가 나왔다. “Make Love To Your Mind”, (많은 재즈 아티스트가 커버한) “Hello Like Before”, 영화와 사운드트랙으로도 유명한 “Looking For Mr. Goodbar” 등의 명곡이 수록됐다. 하지만 상업적인 성과는 예전만 못했다. 후에 나온 [Naked & Warm](1976)도 마찬가지였다. 로스앤젤레스에 대한 시각을 소울풀한 음악에 실어낸 “City Of Angel” 같은 곡이 수록됐지만, 명성에 비하면 차트 성적은 높지 않았다.

     

    차트 성적 면에서 하강 곡선을 그리던 그의 커리어는 1977년 작 [Menagerie]에서 약간 반등한다. 싱글 “Lovely Day”의 히트가 주효했다. 컬럼비아 레코드와의 계약 이후, 처음으로 맛본 히트다운 히트였다. 하지만 이듬해에 새 앨범 [Bout' Love]를 발표한 위더스는 한동안 솔로 앨범 작업을 중단하고 다른 아티스트와의 프로젝트에 주력했다. 이때 나온 작품이 바로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Grover Washington, Jr.)와 함께한 “Just The Two Of Us”.

     

    뛰어난 멜로디 라인은 물론, 두 거장 아티스트의 합작으로 화제를 모은 이 곡은 1981년에 열린 그래미 어워드에서 4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위더스는 커리어 사상 두 번째로 최고의 알앤비 노래(Best R&B Song of Year)’를 수상했다. 무려 10년만이었다. 흥미롭게도 명곡을 탄생시킨 위더스와 워싱턴은 서로 친분이 전혀 없었다. 워싱턴이 앨범 [Inner City Blues](1972)에서 위더스의 "Ain't No Sunshine"을 커버했고, 그래서 위더스가 워싱턴에게 호감을 갖고는 있었지만, 둘은 “Just The Two Of Us”를 녹음하던 날 처음 만났다. 이후로도 워싱턴이 1999년 심장마비로 사망하기까지 특별한 교류는 없었던 걸로 알려진다.



     


    “Just The Two Of Us”
    외에도 위더스는 여러 아티스트와의 합작을 이어갔다. 대표적으로 조 샘플(Joe Sample)이 소속된 4인조 그룹 크루세이더즈(The Crusaders)“Soul Shadows”, 랄프 맥도날드(Ralph MacDonald)와는 “In The Name Of Love” 등의 곡을 발표했다. 위더스는 후에 소울 트레인(Soul Train)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2015년엔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의 마지막 정규 앨범은 1985년에 나온 [Watching You Watching Me]였다.

     

    그동안 마이클 볼튼, 아레사 프랭클린, 바브라 스트라이젠드, 마이클 잭슨, 다이아나 로스, 조 카커 등등, 다양한 장르의 스타들이 빌 위더스의 음악을 커버했으며,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힙합 아티스트가 그의 곡을 샘플링하고 있다. 그의 음악만큼 여러 장르에서 회자된 경우도 드물다. 위더스는 인간의 가치를 환기할 수 있게 하는 가사와 친숙하고 유려한 멜로디의 음악을 선사해주었다. 미국의 한 평론가는 빌 위더스만큼 음악 속에서 삶의 단면을 잘 표현해낼 수 있는 이는 없다.”라고 했을 정도다.

     

    그런 소울 음악의 거장이 지난 330, 향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심장 관련 합병증이었다. 본인이 이해하고 느끼는 모든 것에 관해 곡을 쓰고 노래한다던 빌 위더스의 음악은 국적과 세대를 초월하여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진심으로 그를 추모하고, 그가 남긴 위대한 음악 유산에 경의를 표한다.


     

    Rest In Peace, Bill Withers

    1938.07.04 – 202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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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hsoul (2020-04-30 15:40:45, 1.252.33.***)
      2. 최근 소식을 몰랐다가 마지막 문장에서 놀랬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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