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딥플로우의 "잘 어울려"와 발라드 랩 논란
- rhythmer | 2020-07-28 | 4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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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두하
힙합 음악과 관련한 해묵은 떡밥이 몇 개 있다. ‘커머셜 힙합’ 논란은 그중 하나다. 특히, 팝과의 접목을 꾀하거나 달콤한 사랑 이야기를 담는 등, 대중적인 접근으로 상업적 성과를 노린 랩송을 두고 일부 강경한 힙합 아티스트들이나 장르 팬들은 ‘진짜 힙합’이 아니라며 비난을 쏟아냈다.
잘생긴 외모와 여성들에게 어필하는 가사로 인기를 얻었던 엘엘 쿨 제이(LL Cool J)라든지 '90년대 후반에 데뷔한 커머셜 힙합의 대명사 잉 얭 트윈스(Ying Yang Twins) 같은 팀은 대표적인 비판 대상이었다. 1987년 발표되어 핫 알앤비/힙합 송즈(Hot R&B/Hip-Hop Songs) 차트 1위, 빌보드 핫 100(Billboard Hot 100) 차트에서 14위까지 오르며 대대적인 상업적 성과를 올린 엘엘 쿨 제이의 “I Need Love”는 그 시절 이른바 ‘정통 힙합’을 추구했던 순혈주의자 힙합 뮤지션들에게 주요 공격 대상이 된 곡이었다.이처럼 ‘커머셜 힙합’이 공격을 받았던 건 노골적으로 상업적 성과를 노렸고, 그 완성도가 조악한 것들이 왕왕 있었던 탓도 있다. 하지만 힙합이 상당히 남성 중심적인 음악이라는 이유가 가장 크다. 대부분이 남성이었던 랩퍼들은 음악에 마초적인 성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곤 했다. 또한, 거리의 삶과 갱스터 문화를 대표하고, 자신의 진실한 이야기를 음악에 풀어내야만 ‘진짜 힙합’이라고 인식했다. 그래서 그 의도가 순수하지 않은, ‘거짓된’ 것으로 보이는 음악들이 눈엣가시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라면 용인되지 않을- 여성이나 동성애자에 빗댄 욕설들로 커머셜 힙합을 비난하는 광경이 아주 흔한 것이었다.
노래하듯 랩을 하는(혹은 노래에 가까운 랩) 싱잉 랩에 대한 비판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90년대에만 해도 래퍼가 노래를 한다는 건 금기나 다름없었다. 아이스 큐브(Ice Cube)를 비롯한 일부 하드코어 래퍼들은 후렴구를 노래로 짜는 것조차 조롱하고 비난했다('Punk motherfuckers tryin to ban hip-hop, Fuck R&B and the runnin man' -Ice Cube 가사 중). 랩에 멜로디를 가미했음에도 비판을 피해간 건 이지-이(Eazy-E)의 지원 아래 갱스터 랩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져간 본 떡스 앤 하모니(Bone Thugs-N-Harmony) 정도가 유일했다.당시의 이러한 현상은 가장 상업적인 음악 장르가 된 지금의 힙합을 생각한다면 굉장히 낯설다. 힙합은 알앤비와 팝뿐만 아니라 일렉트로닉, 레게, 심지어 록 음악까지 끌어안으며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자타공인 랩 괴물 릴 웨인(Lil Wayne)을 위시로 하여 메이저의 여러 래퍼가 싱잉 랩을 시도하면서 싱잉 랩에 대한 비판도 힘을 잃어갔다. 싱잉 랩은 이제 음악적 형식미를 갖춘 보컬 형식의 하나로 크게 성행하고 있다. 힙합이 다루는 주제도 매우 다양해졌다. 사랑 노래를 한다고 해서 ‘힙합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것이다.
더불어 힙합 내에서도 여성과 LGBTQ 커뮤니티 등등, 다양한 소수자들을 대표하는 움직임들이 생겨났다. 예전처럼 여성과 동성애자에 빗댄 욕설을 함부로 사용했다가는 역풍을 맞게 된다. 최근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를 동성애자 비하 용어를 사용하며 디스한 에미넴(Eminem)이 큰 비난에 직면하고, 곧바로 후회한다는 인터뷰를 한 것은 이러한 세태를 반영한다. 이별 때문에 슬퍼도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남자라서, 갱스터라서 노래로 대신 운다고 했던 제이지(Jay-Z)가 자신의 과오와 나약한 모습을 인정하고 어머니의 커밍아웃 스토리까지 담은 앨범 [4:44]을 발표한 건, 힙합 씬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러나 힙합 씬에서 아티스트 각자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음악 스타일이나 아티스트를 공격하는 것은 현재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자신이 부조리하다고 느끼는 것을 가감 없이 이야기하는 건 힙합이라는 장르가 가진 고유한 특성이다. 그래서 기존의 잘못된 사회 시스템에 저항하고 비판하거나, 특정인의 실명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비난하기도 한다. 장르 팬들은 이러한 공격에 대해서 공감하고 열광하거나, 때로는 반발한다. ‘디스’가 힙합만의 문화는 아니지만, 유독 힙합 음악에서 ‘디스’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도 이러한 장르적 특성 때문이다.2000년대 중후반, 제이지는 “Death of Auto-Tune”이라는 곡을 통해 오토튠을 사용하는 싱잉 랩 열풍 현상을 꼬집었다. 최근에는 에미넴이나 에이샙 라키(A$AP Rocky)가 릴 우지 버트(Lil Uzi Vert), 릴 야티(Lil Yachty) 등등, 젊은 랩퍼들의 등장으로 유행하게 된 멈블 랩(Mumble Rap)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들이 특정 스타일과 아티스트를 공격한 이유는 ‘실력이 뒤처진다.’는 것이었다. 이후 ‘릴’의 이름을 가진 랩퍼들은 아직까지 인기를 얻고 있지만, 더는 멈블 랩 스타일을 전면적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이처럼 멋이 없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이나 아티스트를 공격하고, 종래에는 이것들이 사라지게까지 만드는 현상은 힙합 씬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 힙합 씬에서도 아티스트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고, 외면 받게 된 장르가 있다. 바로 ‘발라드 랩’이다. 발라드 랩은 초기 메이저 레이블의 기획자들이 랩 음악을 받아들이면서, 기존 가요의 발라드 작법에 비트와 랩 벌스를 얹어 만든 상업적인 기획의 산물이다. 목적은 오로지 하나, 돈이다. MC몽이나 커리어 후기의 김진표, 프리스타일(Freestyle) 등은 이러한 발라드 랩의 시초격인 뮤지션들이다. 발라드 랩은 우리가 알고 있는 힙합의 장르적 감흥을 전혀 주지 못했을뿐더러, 랩의 기술적 완성도 또한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에 많은 장르 뮤지션들의 공격 대상이 됐다.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많은 이가 인식하는 것과 달리 발라드(Ballad)는 장르가 아니다. 따지자면, 주제(주로 연인과의 사랑 이야기)에 따른 스타일상의 분류다. 대부분 서정적이고 느린 템포의 곡조가 수반된다. 그러므로 발라드는 알앤비, 팝, 포크, 일렉트로닉, 심지어 힙합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발라드가 하나의 장르로 통용되고 있다. 1990년대 가요계에 발라드를 프로덕션적으로 잘못 해석하며 표방한 메이저 가수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이러한 인식이 굳어진 탓이다. 특히, 노래방과 음주·가무 문화가 팽배한 한국에서 손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발라드는 소위 말하는 ‘먹히는’ 장르가 됐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발라드 랩이 어떠한 의도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 대중에게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가요 발라드 성향의 곡에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랩’을 얹어 만들어낸 것이 바로 발라드 랩인 것이다. 이처럼 발라드 랩은 힙합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가요 기획자들의 손에 의해 태어난 기이한 장르이고, 이에 힙합 뮤지션들이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단순히 특정 음악 스타일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다. 장르에 대한 몰이해로 점철된, 음악의 완성도보다는 이익이 앞선 왜곡된 가요 시장에 대한 저항 의식의 발로였던 것이다. 그래서 발라드 랩에 대한 거부감을 단순히 ‘상업적 음악’이나 ‘사랑 노래’에 대한 비판 정도로 축소해선 곤란하다.
그러나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쇼미더머니]의 인기로 힙합이 대중적인 장르가 되었고, 몇몇 랩퍼들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인지도를 얻고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했다. 소수의 랩퍼는 본인의 음악적 색깔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메이저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몇몇 랩퍼들은 힙합 씬 전체가 저항하던, 힙합 씬 밖에서 기형적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발라드 랩에 적극적으로 올라타 ‘메이저 시장’에 진출했다. 산이(San-E), 버벌진트(Verbal Jint), 그리고 [쇼미더머니2]에 출연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던 매드 클라운(Mad Clown) 등은 대표적이다. 이들은 “한여름 밤의 꿀”이나 “착해빠졌어”와 같은 곡으로 음원 차트를 장악하며 승승장구했다. 이 혼종 장르에 힙합 씬에서 나름 실력을 인정받던 이들이 뛰어들면서 장르 전체를 왜곡하는 효과까지 낳았다.이에 일부 래퍼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본인들이 멋없다고 생각했던, 왜곡된 시스템이 낳은 ‘발라드 랩’에 동료 뮤지션들이 적극 올라탄 것은 당시로서 충격적 사건이었다. 딥플로우(Deepflow), 비프리(B-free), 빈지노(Beenzino) 등등, 힙합 씬에서 착실하게 커리어를 쌓아오며 이름을 알리던 뮤지션들은 이에 일침을 가했다. 특히, 딥플로우가 2015년에 발표한 세 번째 정규앨범 [양화]의 리드 싱글 “잘 어울려”는 ‘발라드 랩 열풍’을 디스한 대표적인 트랙이다. 딥플로우는 이 곡에서 발라드 랩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인 산이, 매드클라운, 긱스(Geeks), 배치기 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조롱했다. 타격감 강한 붐뱁 사운드와 적재적소에 라임을 꽂는 차진 랩 퍼포먼스가 곡의 내용에 설득력을 더했다.
딥플로우의 일갈에 당시 많은 힙합 아티스트들과 장르 팬들은 공감했다. 이후 산이는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이 힙합 뮤지션이라는 것을 어필했지만,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최근에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발라드 랩 트랙들을 가득 담은 EP [Look! What Happened To Love?!]를 발표했으나 대중과 장르 팬 모두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매드 클라운은 새로운 자아를 통해 과거의 이미지를 지워갔다. 맞디스곡을 발표하는 등 가장 직접적으로 반응했던 긱스는 이후 솔로 활동에 집중했다. 특히, 릴 보이(Lil Boi)는 [쇼미더머니4]에 출연하고, 테이크 원(Take One)과 레이블을 만드는 등, 다시 힙합 씬에 편입되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딥플로우의 “잘 어울려”는 발라드 랩이 해체되는데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가요 기획자들도 더는 발라드 랩이 먹히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에도 “띵”, “돈 Call Me”, “아마두”처럼 철저히 상업적인 기획 아래 탄생한 트랙들이 존재하지만, 완성도와는 별개로 그 주체와 음악적인 스타일 면에서 발라드 랩과는 다른 성질의 것들이다. 대중에게 ‘먹히는 힙합 음악’에 대한 개념이 달라지게 된 것이다.그런데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20년, 발라드 랩과 “잘 어울려”에 관한 새로운 논란이 떠올랐다. 딥플로우와 레이블 VMC의 노선에 관한 논란에서 파생된 것이다. 딥플로우는 [양화]를 발표했던 당시,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를 비판하는 등 왜곡된 시스템에 대한 거부감을 적극적으로 내비쳤다. 앨범을 발표했을 당시, 힙합엘이(HipHop LE)와 진행했던 인터뷰를 살펴보면 그가 정확히 어떤 지점에서 [쇼미더머니]를 비판했는지 알 수 있다.
“미디어 자체에 대해 거부감이 있다고 하기에는 제가 좋아하는 래퍼들이 다 커머셜 래퍼였어요. 그래서 꼭 그런 건 아닌데, 우리나라에서는 워낙 그 부분이 편향되어 있으니까요. [쇼미더머니]에 다 몰려있고, CJ가 다 기득권을 갖고 있잖아요. 힙합이라는 장르 음악, 문화를 한 기업이 갖고 있다는 게 정말 구린 거잖아요. CJ도 아닌, CJ에 속한 일개 회사원들이 우리나라 힙합 씬을 쥐락펴락하고 MC들의 커리어를 망가뜨리고 하는 게 저는 너무나도 혐오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 2015년 힙합엘이 인터뷰 중
그러나 이후의 행보는 이와 정확히 배치되는 것들이었다. VMC 소속의 랩퍼 넉살은 [쇼미더머니6]에 참가자로 출연했고, [쇼미더머니777]에는 딥플로우와 넉살이 프로듀서로 함께 출연했다. 더불어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얼굴을 비추며 레이블의 덩치를 키워왔다. 미디어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가 내뱉었던 말들을 생각한다면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는 행보였다. 결국, [양화]의 감흥은 예전과 같지 않아졌다. 딥플로우의 이러한 행보에 일부 아티스트들도 실망감을 내비쳤다. 던 말릭(Don Malik)과 저스디스(JUSTHIS)는 대표적이다. 두 래퍼는 딥플로우를 비롯한 레이블 전체를 디스하며 이들의 바뀐 노선을 비난했다. 특히, 저스디스가 힙합플레이야(HIPHOPPLAYA)가 기획한 [UV Cypher Ep.3]에 출연해 뱉은 ‘근데 섹스 어필은 안 되고 힙합은 대세니 / 돈을 벌구 싶어? 노선 바꾼 뱀새끼들 / 인정만 해도 지나쳤던 게 J-This지’라는 구절은 장르 팬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고, 지금까지도 딥플로우와 VMC를 놀리는 밈(Meme)이 되었다.
딥플로우는 장르 팬들의 놀림이 지속되자 공격적인 반응을 보였고, 몇몇 팬들과 SNS를 통해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장르 팬들은 딥플로우에게 다양한 의문을 던졌는데, 이 중에서 흥미로운 건, 바로 “잘 어울려”와 관련된 의문이었다. “잘 어울려”에서 발라드 랩을 비난했으면서, 최근 싱잉 랩을 시도한 “아마두”처럼 상업적인 기획의 트랙을 발표한 것은 결국 같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는 발라드 랩과 “아마두”에서의 싱잉 랩을 동일 선상에 둔 공격이었다.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발라드 랩에 대한 거부감은 비단 ‘상업적 음악’이라는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싱잉 랩으로 대표되는 대중적인 접근이 들어간 커머셜 힙합과 발라드 랩에 대한 비판의 포인트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빈지노가 “연결고리”에서 뱉은 ‘이름있는 아이돌의 후렴에다 랩 하는 아이디언 대체 누구 건데?’라는 라인이 발라드 랩의 폐해를 더 정확히 꼬집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발라드 랩에 대한 비판은 변종 장르에 대한 배척이기도 하지만, 한국 가요 시스템에 대한 저항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더불어 싱잉 랩은 장르 음악 내에서 대중적인 접근을 고민하여 방법을 찾은 사례이기 때문에 발라드 랩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미국의 예와 비교해봐도, 남성성을 강조하며 커머셜 힙합을 비판했던 것과는 성질이 다르다. 앞서 언급한 “Death of Auto-Tune”처럼 싱잉 랩에 대한 비판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이 또한 실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유행만을 좇으며 쉬운 접근만을 찾는 커머셜 힙합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성질이 다르다.
“아마두”도 음악적인 완성도가 낮으며, 상업적인 성과를 노린 의도가 엿보인다. 장르 음악으로서의 감흥을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판할 여지도 충분하다. 하지만 발라드 랩이 비판 받는 지점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래서 “아마두”와 딥플로우가 저격했던 발라드 랩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같은 상업적 기획이라고 해도 그 뿌리에서부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잘 어울려”의 발라드 랩 비판이 지금에 와서 모순점이 생긴 건, 딥플로우가 [쇼미더머니]에 출연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 역시 발라드 랩의 인기에 올라탔던 랩퍼들처럼 왜곡된 시스템에 동참하여 ‘메이저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으니까.오늘날 힙합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상업적인 장르가 됐다. ‘커머셜 힙합’에 대한 논쟁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힙합은 여전히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에 저항하고, 가감 없이 할 말을 하는 장르적 특성을 지녔다. 그렇기 때문에 발라드 랩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잘 어울려”는 래퍼들이 적극적으로 부정하던 변종 장르인 발라드 랩에 힙합 아티스트가 자아를 분리하면서까지 편승하여 수익모델로 만들어가던 상황이 오자 태클을 건 곡이었다. 힙합 씬 대부분이 침묵하던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나와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잘 어울려”가 발라드 랩을 사라지게 만든 유일한 이유는 아니지만, 한국 힙합이 왜곡된 시스템에 맞서 그것을 해체시킨 몇 없는 순간을 기록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곡인 건 분명하다. 딥플로우의 현재 행보가 만들어낸 모순과는 별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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