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2021 국외 랩/힙합 앨범 베스트 20
- rhythmer | 2021-12-28 | 1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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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머 필진이 선정한 '2021 국외 랩/힙합 앨범 베스트 20’을 공개합니다. 아무쪼록 저희의 리스트가 한해를 정리하는 좋은 가이드가 되길 바랍니다.※2020년 12월 1일부터 2021년 11월 30일까지 발매된 앨범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20. Polo G - Hall Of Fame
Released: 2021-06-1
오늘날 힙합 씬에서 폴로 쥐(Polo G)의 스탠스는 독특하다. 컨셔스 랩과 트랩 뮤직의 경계에 서 있다. 섞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두 계열의 힙합이 융합하여 차별화된 음악세계가 구축됐고, 여전히 귀에 밟히는 뻔한 트랩 포화 속에서 빛나는 영역이 되었다. 폴로 쥐의 세 번째 정규작 [Hall of Fame]은 그렇게 뚜렷이 구분되는 이른바 ‘컨셔스 트랩’으로 완성됐다. 물론 폴로 쥐가 구사하는 컨셔스 랩의 성향은 네이티브 텅(Native Tongue)으로 대변되는 ‘90년대의 그것과 다소 다르다. 2010년대 들어 다수의 미 음악 매체들이 표현의 순화 여부를 컨셔스 랩의 조건으로 들지 않으면서, 따지자면 재정의된 컨셔스 힙합의 예로 설명할 수 있겠다.
폴로 쥐는 [Hall of Fame]에서 작금의 트랩 뮤직, 혹은 드릴 뮤직 래퍼들과 확연하게 다른 랩을 구사한다. 대다수가 돈, 여성 편력, 폭력, 섹스 등을 이야기하는 것에 경도되었을 때 그는 미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사건을 끄집어내어 분노하고, 블랙 커뮤니티 내의 어두운 정서를 토로하는 데 집중한다. 인종차별 아래 공권력이 행하는 무자비한 폭력을 격앙된 무드로 비판하고, 범죄에 노출된 환경 속에서 죽어 나가는 이웃들을 보며 느낀 허망함과 두려움을 감정 풍부한 가사 속에 담아냈다. 부와 자기 과시 또한 주요 주제다. 히트 싱글 “Rapstar”는 제목부터 전형적인 래퍼들의 나르시시즘 송이다. 그러나 폴로 쥐의 브래거도시오(braggadocio) 속엔 단순하고 멍청한 표현대신 밀도 높은 은유와 비유가 자리했다. 올해 최고의 문제적 라인 ‘그들이 말하길 내가 투팍(2Pac)의 환생이래. 약한 벌스(verse)가 절대로 없다면서.’을 뱉었음에도 그가 굳건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19. Maxo Kream - Weight of the World
Released: 2021-10-18
[Weight Of The World]는 막소 크림(Maxo Kream)의 진가가 제대로 발휘된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소울풀한 보컬 샘플링이 더해진 느릿한 더티 사우스(Dirty South) 풍의 트랩 비트로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특유의 분위기가 조성됐다. 첫 번째 트랙 “Cripstian”은 대표적이다. 크립(Crip), 갱스터, 휴스턴 등, 본인의 배경을 차근차근 풀어가며 처음 그를 접한 이들에게 본인을 소개하는 듯하다. 더불어 거리에서 생을 마감한 동생과 자살한 사촌의 이야기를 통해 종교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크립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를 종교적 행위에 빗댄다. 고전 소울 샘플링과 트랩 비트가 어우러진 것처럼, 종교적 주제와 갱의 삶을 엮어낸 것이다.
그가 주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정공법이다. 치열하게 살았던 과거의 삶을 풀어내고, 위협적인 갱스터의 모습을 강조하며, 성공한 현재의 모습을 자축한다. 수없이 들어왔던 갱스터 랩의 클리셰지만, 사실적인 묘사와 극적인 연출이 녹아든 가사가 몰입하게 한다. 여기에 능숙한 랩 퍼포먼스와 소울풀한 비트가 더해져서 그만의 갱스터 랩이 완성됐다. 그리고 [Weight Of The World]에 이르러 막소의 음악은 완성형에 가까워졌다.
18. IDK - USEE4YOURSELF
Released: 2021-07-09
[USEE4YOURSELF]는 아이디케이(IDK)의 두 번째 정규 앨범이자 스토리상 전작 [Is He Real]의 속편이다. [Is He Real]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어린 시절 겪은 사랑 결핍에 초점을 맞추고, 이로 인한 여러 사건과 사유를 차례로 풀어낸다. 연인 관계, 신과 종교 등 아이디케이의 시선이 닿는 곳은 다양하다. 때론 과시적인 면모와 과격한 이성 관계를 드러내는가 하면 신의 존재에 물음을 던지거나 지금의 그를 만든 가정사를 꺼내 과거를 돌아보기도 한다. 결국 모든 결론은 사랑에 관한 내용으로 귀결되고, 앨범은 근간에 있는 죽은 어머니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마무리된다.
특히 주목할만한 건 그가 보여준 프로듀서로서의 면모다. 그는 영 떡(Young Thug), 오프셋(Offset), 웨스트사이드건(Westside Gunn), 제이 일렉트로니카(Jay Electronica), 티페인(T-Pain), 슬릭 릭(Slick Rick)처럼 그야말로 다양한 면면을 객원으로 배치하고, 앨범 구성에 해가 되지 않도록 조율했다. 전반부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메인스트림 사운드부터 고전 소울, 펑크 샘플을 활용한 붐뱁 프로덕션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주조했음에도 앨범은 튀는 지점 없이 부드럽게 연결된다. 아이디케이는 [USEE4YOUTSELF]를 통해 래퍼, 프로듀서, 그리고 스토리텔러로서의 역량을 효과적으로 입증했다.
17. Flying Lotus - Yasuke
Released: 2021-04-30
힙합, 소울, 재즈, 일렉트로닉 등이 중첩된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의 음악은 이를 테면 장르의 모순 속에서 완성된다. [Yasuke]는 일본 전국시대 때 오다 노부나가의 휘하에 들었던 흑인 사무라이 ‘야스케’를 모티브 삼은 동명의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이다. 작품을 만든 르션 토마스(LeSean Thomas) 감독이 역사 속의 실제 인물과 허구를 결합하였듯이 플라잉 로터스는 최소 세 개 이상의 장르를 결합하여 독특한 판타지 시대극에 걸맞은 음악을 만들어냈다. 당대의 일본에서 이방인이었을 야스케에게 본인의 심경을 투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철저하게 인스트루멘탈 위주로 꾸려진 [Yasuke]는 탁월한 영화 스코어이자 재즈 퓨전, 익스페리멘탈 힙합, 네오 소울, 일렉트로닉 등이 어우러진 얼터너티브 앨범이다. 평균 1분 30여 초에 이르는 짧은 26개의 곡은 보통의 스코어가 그렇듯이 시퀀스를 표현하는 제목의 느낌을 구현하는 데에 충실하다. 앨범 내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비장한 무드를 풍기는 "Your Armour ", "The Eyes of Vengeance" 등은 대표적이다. 플라잉 로터스는 르자와 또 다른 방향에서 블랙뮤직을 자양분 삼아 훌륭한 스코어를 탄생시켰다. 애니메이션 [야스케]의 완성도가 어떻든, 플라잉 로터스가 연출한 [Yasuke]는 강렬하고 아름답다.
16. Pink Siifu - Gumbo'!
Released: 2021-08-03
작년에 발표된 핑크 시푸(Pink Siifu)의 [Negro]는 로파이(Lo-Fi)한 질감의 공격적인 사운드에 힙합, 재즈, 펑크(Punk)를 뒤섞었다. 정제하지 않은 듯한 사운드에 분노를 폭발시켜서 현실에 대한 반발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1년 만에 발표된 [Gumbo’!]는 전작만큼의 파격은 없지만, 전하는 임팩트만큼은 여전히 대단하다.
프로덕션은 전반적으로 [Negro]와 상이하다. 붐뱁, 재즈 랩 사운드, 트랩 비트를 두루 배치했다. 디제이 해리슨(DJ Harrison), 알케미스트(The Alchemist), 부처 브라운(Butcher Brown), 몬테 부커(Monte Booker), 울피(Wolfy) 등 다양한 스타일의 프로듀서가 대거 참여했지만, 빈티지하며 로파이(Lo-Fi)한 질감을 살린 사운드가 앨범 전체에 적용돼 트랙마다 통일성이 느껴진다. 가사도 달라졌다. 흑인으로서 자신의 일상이나 경험을 가져오기도 하며, 여러 순간적인 감정을 꺼내고, 선배 아티스트에 대한 존경을 드러낸다. 프로덕션과 내용이 변하면서 퍼포먼스도 다소 차분해졌으나, 거친 표현법과 날 것의 랩 스타일은 여전히 난해한 동시에 중독적이다. [Negro]에 이어 [Gumbo’!]도 강렬하고 개성 넘친다.
15. Westside Gunn - Hitler Wears Hermes 8: Side B
Released: 2021-09-24
믹스테입 시리즈 [Hitler Wears Hermes]는 래퍼 웨스트사이드 건(Westside Gunn)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브랜드다. 8번째 시리즈의 반쪽 [Hitler Wears Hermes 8: Side B]는 그의 취향과 음악 스타일이 가장 잘 집약된 작품이다. 작년 생을 마감한 프로레슬링 선수 브로디 리(Brodie Lee)를 추모하는 첫 트랙 “Brodie Lee”부터 건의 취향이 드러난다. 이외에도 “Julia Lang”, “Celine Dion”, “Best Dressed Demons”, “99 Avirex” 등등, 화려한 명품과 패션, 그리고 마약 거래에 투신하는 거친 갱스터의 삶이 뒤섞인 세계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Side B'가 한 달 전에 발표된 또 다른 반쪽 [Hitler Wears Hermes 8: Sincerely Adolf]보다 더 주목받은 것은 완성도 덕분이다. 오랜 파트너인 대린저(Daringer), 컨덕터윌리엄스(ConductorWilliams)를 비롯해 매드립(Madlib), 제이 베르사체(Jay Versace), 카모플라쥬 몽크(Camoflauge Monk) 등이 참여한 붐뱁 프로덕션이 그 어느 때보다 세련되고 견고하다. 게스트의 참여도 인상적이다. 제이 일렉트로니카(Jay Electronica),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 투 체인즈(2 Chainz), 마크 호미(Marc-Hommy) 등은 각자의 기량을 최대로 끌어올린 벌스로 완성도에 일조했다. 특히, 그리젤다(Griselda) 멤버들과 함께한 “Hell on Earth, Pt. 2”는 그간 발표한 레이블 단체 곡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쾌감을 선사한다. [Hitler Wears Hermes 8: Side B]가 웨스트사이드 건의 최고작은 아니지만, 그가 어떤 래퍼인지 알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작품이다.
14. Benny The Butcher & Harry Fraud - The Plug I Met 2
Released: 2021-03-19
마피오소 랩(Mafioso Rap/*마피아 세계관과 요소를 바탕으로 전개하는 가사의 랩)의 새로운 부흥기를 이끈 래퍼 중 한 명, 베니 더 부쳐(Benny The Butcher)는 [스카페이스]를 전면에 내세워서 작품을 만들어냈다. 주인공 토니와 볼리비아 마약왕 소사가 함께 걷는 장면을 커버로 사용한 EP [The Plug I Met](2019)이다. '내가 만난 마약상'이란 독특한 컨셉트가 돋보인 앨범이었다. [The Plug I Met 2]는 그 속편이다. 커버 아트워크부터 다시 한번 토니와 소사의 만남 장면을 사용했다. 다만, 이번엔 뉴욕의 베테랑 프로듀서 해리 프로드(Harry Fraud)에게 전곡을 맡겼다.
전반적으로 은근한 자기과시와 극적으로 묘사한 마약상 이야기가 서사의 줄기를 이루지만, 정작 그가 하고 싶은 얘기는 랩 게임의 어두운 면을 자세히 알려주는 것이다.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하기보다 근사한 범죄 드라마를 통해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에서 베니의 남다른 면모가 느껴진다. 해리 프로드의 비트가 극적인 흐름을 형성하며 흘러가고, 베니 더 부쳐의 랩이 탄탄한 기승전결로 갱스터 서사를 완성한다. [The Plug I Met 2]는 깊은 역사를 지닌 마피오소 랩이 궁금한 이들에게 입문작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언더그라운드의 강자와 베테랑 프로듀서가 뭉쳐서 아주 우아한 범죄 랩 앨범을 탄생시켰다.
13. L'Orange & Namir Blade - Imaginary Everything
Released: 2021-05-07
나미르 블레이드(Namir Blade)는 아직 작품이 많지 않지만, 이미 범상치 않은 재능을 드러낸 바 있다. 멜로 뮤직 그룹(Mello Music Group)에 입단한 그는 [Aphelion's Traveling Circus]를 발매하며 공상과학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아프로 퓨처리즘(Afro Futureism)을 흥미롭게 연출했다. 이외에도 초현실주의, 너드 컬쳐 등 다양한 문화에 관심을 두고 고유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아티스트다.
나미르는 뛰어난 프로듀서지만, 이번 작품에선 파트너를 기용했다. 레이블의 동료이자 굴지의 프로듀서 엘 오렌지(L’Orange)다. 엘 오렌지는 붐뱁 비트를 바탕으로 기타, 혼 등 여러 악기 소스를 다층적으로 쌓아 올려 폭 넓은 사운드 스케이프를 만들어낸다. 어느 한 곡 빠짐없이 완성도가 빼어나다. 여기에 따라붙는 나미르의 랩 역시 탁월하다. 특유의 차진 톤으로 비트에 끈적하게 달라붙다가도, 멜로딕한 퍼포먼스를 섞어 직선적인 진행을 피한다. 견고하고 뻔하지 않은 붐뱁 사운드, 뛰어난 랩과 범상치 않은 사유를 고루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12. Fire In Little Africa - Fire In Little Africa
Released: 2021-05-28
70명에 육박하는 오클라호마주 출신의 아티스트가 파이어 인 리틀 아프리카(Fire In Little Africa)로 뭉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씬의 융성이다. 미국의 중남부에 위치한 오클라호마는 다른 주와 달리 힙합 씬이 성장하지 못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오클라호마 씬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더욱더 많은 아티스트가 이름을 날릴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 두 번째는 지역의 쓰라린 역사와 관련 있다. 오클라호마 대표 도시인 털사(Tulsa)는 1921년에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폭행했다는 주장이 퍼지면서, 인종 대학살이 일어났던 곳이다. 백인들에 의해 철저히 외면받은 사건은 1997년이 되어서야 진상 규명이 시작됐지만, 미국인에게도 현재까지 낯선 사건이다. 이들이 프로젝트명을 '작은 아프리카 내 화재'로 선택한 것은 한순간에 불타버린 그린우드의 지워진 역사를 되찾고, 블랙 월 스트리트의 유산을 아로새기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아티스트들은 털사와 오클라호마를 다양하게 표현한다. “Descendants”에서는 투쟁을 강조하여 비극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P.O.D.”를 ‘통해서는 암울한 현실 속 고장에 대한 애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부당한 역사에 대한 의문을 딕 롤랜드의 눈을 통해 제시한 “City of Dreams”도 있다. 몇몇 아티스트를 제외하고는 장르 팬조차도 낯선 이름이 상당수이지만, 준수한 퍼포먼스가 앨범을 채운다. 프로덕션 또한 다채롭다. 참여한 아티스트와 트랙 수가 방대하다 보니 자연스레 여러 스타일을 포괄한다. 트랩이나 붐뱁은 물론이고 재즈, 힙합 소울, 네오 소울, 가스펠을 조화롭게 녹여냈다. 힙합은 최초 유흥을 위해 탄생했던 장르다. 하지만 시대와 상황이 변하고 향유하는 방식도 달라지면서 그 어느 장르보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다. 파이어 인 리틀 아프리카는 음악을 통해 백인 중심의 역사가 지운 참극을 재조명하며 ‘그린우드의 월 스트리트’를 재건하고자 한다. 털사의 과거에 빛이 드리우는 지금, [Fire In Little Africa]의 무게감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11. Blu - The Color Blu(e)
Released: 2021-09-24
로스앤젤러스 출신의 블루(blu)는 2000년대 중반에 등장한 이후 꾸준히 양질의 결과물을 내놓고 있는 래퍼이자 프로듀서다. 2021년에도 서플러스(Sirplus)와의 합작 EP [For Sale]을 6월에 발표하고, 11월에 솔로 앨범인 [The Color Blu(e)]를 발표했다. 지금껏 블루는 대부분의 앨범을 합작 형식으로 만들어왔기 때문에 온전한 솔로작인 [The Color Blu(e)]가 각별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그의 이름을 전 트랙에 심으며 가장 개인적인 앨범임을 표방했다. 내용물 역시 이제는 베테랑 대열에 선 블루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만족스럽다.
다양한 주제을 담은 곡들이 'Blu(e)'라는 테두리에 묶이면서 정제한 가사가 주는 감흥은 놀랍다. 자신의 삶에서 사회로 시야를 넓히고 힙합 음악과 본인에게 다시 집중해가는 전개가 자연스럽다. 가사 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따스한 시선 덕분이다. 그렇다고 마냥 편안한 앨범은 아니다. "You Ain't Never Been Blu(e)"로 트럼프 시대를 지나면서 불거진 사회문제를 날카롭게 다루고, "We Are Darker Than Blu(e)"로 미국 내 흑인으로서의 자존감을 이야기하는 지점이나, 최근 사망한 인물들을 추모하는 마지막 트랙은 상당히 묵직하게 다가온다. 비틀즈(The Beatles),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 비비킹(B.B King) 등의 명곡을 샘플링하며 곡의 주제와 본격적으로 연결한 재지한 무드의 프로덕션도 컨셉 앨범을 듣는 재미를 배가한다.
10. Injury Reserve - By the Time I Get to Phoenix
Released: 2021-09-15
비슷비슷한 '싱잉 랩, 이모 랩, 트랩’이 씬의 헤게모니를 쥔 가운데서도 익스페리멘탈 힙합(Experimental Hip Hop)의 명맥은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져왔다. 두 명의 래퍼 리치 위드 어 티(Ritchie With a T)와 스테파 제이 그록스(Stepa J. Groggs), 프로듀서 파커 코리(Parker Corey)로 구성된 인저리 리저브(Injury Reserve)는 올해 이 계열에서 단연 돋보인 그룹이다. 이들은 두 번째 정규 앨범 [By the Time I Get to Phoenix]에서 전보다 더욱 난해한 구성과 해체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심지어 몇몇 곡들은 힙합은 물론, 어떤 장르로도 카테고리화하기 어려울만큼 심하게 분열되어 있다.
앨범은 2020년 6월, 스테파 제이 그록스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후 남겨진 두 멤버의 무력감과 슬픔 속에서 완성됐다. 수록곡 곳곳에서 혼란과 충돌, 그리고 아스라이 깔린 슬픈 기운이 느껴지는 건 이 같은 배경 때문일 것이다. 전통적인 방식의 래핑을 들을 수 있는 구간이 매우 적고, 때때로 보컬 자체가 소리의 집합을 위한 소스 정도로 사용되었지만, 그룹은 필요한 순간에 관철하려는 주제만큼은 확실하게 각인하다. 무능한 정부, 기후위기, 팬데믹 등등. 여기에 글리치 합(Glitch Hop)이 지배적인 프로덕션과 뒤틀리고 건조한 랩이 어우러지며 강렬한 순간이 만들어진다. 슈게이징 사운드가 가미된 프로덕션, 그리고 노래에 가까운 보컬이 융합하여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앨범 말미의 곡 “Knees”가 남기는 여운도 상당하다. Stepa J. Groggs가 부디 편히 잠들길 바라며….
9. Skyzoo - All the Brilliant Things
Released: 2021-06-11
이번에 스카이주(Skyzoo)가 선택한 타이틀은 ‘눈부신 모든 것들(All the Brilliant Things)’이다. 그는 도시에서 살면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부조리나 다양한 상황을 중점으로 다룬다. 대표적인 예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다. 도시가 발전하고 변화하면서 자리를 지키던 것들은 하나둘씩 교외로 밀려나기 시작한다. 그 역시 교외화를 몸소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당시에 느꼈던 감정과 기억을 나열하며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한다. 물론 ‘눈부신 것들’이 표면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스카이주는 앨범 내내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펼치지만, 그 기저에는 당연하게도 뉴욕에 대한 애정이 깔렸다. 현실과 고향에 대한 관심, 그리고 걱정을 듬뿍 담아온 전작들과 유사한 지점이다.
앨범 전반에 걸쳐 트랙을 가득 채운 라임은 유독 명징하게 배치되어 귀를 잡아끈다. 랩에서 얻을 수 있는 쾌감을 프로덕션이 곱절로 극대화한다. 90년대 붐뱁에 기반한 빈티지하면서도 소울풀한 비트가 일관되게 이어지며, 다채롭게 활용된 사운드 소스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곡을 끌어온 샘플링 작법을 특히 주목할만하다. 많은 사람이 스카이주를 수식하는 단어 중 하나는 '과소평가'다. 뛰어난 실력과 양질의 앨범에도 그에 걸맞은 지지와 명성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음악 역사 속에는 재능과 수작을 보유했음에도 성공하지 못한 아티스트가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All the Brilliant Things]를 듣다 보면 여전히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아쉽다. 그만큼 인상적이다.
8. Genesis Owusu - Smiling With No Teeth
Released: 2021-03-05
호주 출신의 뮤지션 제네시스 오우수(Genesis Owusu)의 첫 번째 정규작 [Smiling With No Teeth]은 장르를 가로지르는 과감한 시도가 돋보인다. 수록곡들은 각기 다른 장르와 스타일을 지녔다. 여러 장르가 결합과 해체를 반복하며 위험한 기운을 내뿜다가도 어느새 차분히 정돈된 사운드를 들려주기도 한다. 두터운 신시사이저 라인을 운용해 일렉트로닉 레이브 뮤직(Rave Music)을 표방한 “On the Move!”, 빈티지한 질감의 디스코-펑크 트랙 “The Other Black Dog”, 날카로운 기계음이 난입되고 일렉트로닉과 고전 소울 사운드가 어우러진 “Centrefold”, 퓨쳐 펑크(Future Funk)의 기운이 느껴지는 “Don’t Need You” 등등, 초반부 트랙들의 면면만 봐도 그가 추구하는 음악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 수 있다.
오우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을 ‘2020년 호주에서 래퍼가 된 프린스(Prince)’로 표현했다. [Smiling With No Teeth]를 들어보면, 이 같은 정의가 뜻하는 바를 오롯이 체감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은 멀게는 프린스, 가깝게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나 차일디쉬 갬비노가 떠오를 정도로 광활한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더불어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날 흑인들이 겪고 있는 사회 문제 - 인종차별과 그로 인한 정신 질환 - 를 가감없이 녹여낸 내러티브가 강한 울림을 준다. 탈 장르의 시대, 과감한 실험 정신과 작가적 역량을 갖춘 괴물 같은 신예 아티스트의 등장이다.
7. CZARFACE & MF Doom - Super What?
Released: 2021-05-07
차르페이스(Czarface)는 듀오 세븐엘 앤 에소테릭((7L & Esoteric)과 우탱클랜(Wu-tang Clan)의 멤버 인스펙타 덱(Inspectah Deck)이 함께하는 프로젝트다. 2013년 결성 이후 왕성하게 결과물을 발표하고 있는 몇 안 되는 힙합 그룹이기도 하다. 그들은 코믹북 레퍼런스를 적극적으로 차용한 콘텐츠와 아트워크로 힙합과 코믹북 마니아들을 자극하며 독보적인 영역을 차지했다. [Super What?]은 마블 코믹스의 닥터둠을 연상시키는 마스크를 항상 착용하는 엠에프둠(MF Doom)과의 두 번째 합작이다. 2020년 10월 엠에프둠이 사망했기 때문에 2018년의 첫 합작 [Czarface Meets Metalface]의 미공개 트랙 모음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컸지만, 2020년 4월 이미 작업이 완료된 프로젝트임을 에소테릭이 밝혔다.
[Super What?]은 차르페이스와 엠에프둠의 강점인 철저한 기획력에 기반한 만족스러운 힙합 앨범이다. 프로덕션 팀 차르-키(The Czar-Keys)가 전담한 붐뱁 비트는 고전 범죄 누아르 영화를 연상시키는 사운드와 빈티지하고 둔탁한 질감의 드럼 루프가 어우러지며 몰입감을 높인다. 미국의 대중문화를 흡수하고 재창조해내는 코믹스와 힙합 음악의 접점에 가장 어울리는 프로덕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믹스는 물론 컬트 영화와 현실 속 문화 코드를 따와 구성한 가사도 발견의 재미가 있다. 첫 트랙에서 직접 코믹스 출판사를 운영하는 디엠씨(DMC)가 참여한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고, 예상하기 힘든 라이밍을 구사하는 엠에프둠의 참여가 차르페이스의 물릴법한 음악을 다시금 신선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엠에프둠의 어떤 사후 결과물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Super What?]은 그 컨셉 덕분에 마치 차르페이스가 엠에프둠이라는 슈퍼빌런(Supervillain)을 부활 시켜 데려온 듯한 묘한 끝 맛을 남긴다.
6. Lloyd Banks - The Course of the Inevitable
Released: 2021-06-04
지유닛(G-Unit)의 멤버로 이름을 날렸던 로이드 뱅스(Lloyd Banks)는 2010년에 발표한 [H.F.M. 2]의 상업적 실패와 지유닛의 몰락 이후 씬을 떠난 것처럼 보였다. 간간이 믹스테입을 발표했지만, 반응은 미미했다. 뛰어난 리리시스트(Lyricist)로 인정받았기에 아쉬움은 커졌지만, 10년 이상 흐른 시점에서 그의 화려한 컴백을 기대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2021년 4월 짧은 티져를 공개하고 6월 정규앨범이자 그의 첫 인디펜던트 앨범인 [The Course of the Inevitable]가 깜짝 발표된다. 그의 오랜 팬은 물론 힙합 마니아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한 앨범이다. 우선 그간의 메이저 배급 앨범에서 보였던 커머셜한 트랙과 하드코어 힙합 간의 균형은 찾아볼 수 없다.
로이드 뱅스는 그동안 쌓인 한이라도 풀려는 듯 무려 70분에 달하는 분량에 단 한 번의 늘어짐 없이 하드코어 랩을 쏟아낸다. 금방이라도 불이 붙을듯한 건조한 붐뱀 비트가 뒤를 받쳤다. 가장 놀라운 점은 전혀 녹슬지 않고 더욱 농익은 랩 실력이다. 이번 앨범을 불과 몇 주에 걸쳐 만들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마치 칩거하며 내공을 쌓았다가 등장한 것 같은 느낌이다. 뻔하지 않은 단어들로 촘촘하게 심은 라이밍을 특유의 거친 목소리로 속도감 있게 이어가는 랩이 전혀 지루함 없이 앨범을 꽉 채운다. 이 시대의 갱스터 랩을 이끄는 프레디 깁스(Freddie Gibbs), 베니 더 부처(Benny the Butcher)와 같은 피쳐링 진도 앨범의 성격에 잘 부합한다. 별다른 컨셉이나 화려한 치장 없이 견고한 랩 하나에 온전히 집중해 하드코어한 힙합의 정수를 즐길 수 있는 보기 드문 앨범이다.
5. Mach-Hommy - Pray For Haiti
Released: 2021-05-21
아이티계 미국인 래퍼 마크 호미(Mach-Hommy)는 여러모로 베일에 쌓인 인물이다. 얼굴과 나이, 본명을 모두 감추고 활동하는 그에 관해 알려진 것은 심볼과도 같은 아이티 반다나와 출신지, 그리고 탁월한 음악 정도다. 그는 가사에 저작권을 걸어 인터넷상에 업로드하는 걸 막는가 하면, 스트리밍을 제한하고, 음원 판매와 소량의 피지컬만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하는 등, 폐쇄적인 판매 전략을 고수했다. 이런 까다로운 판매전략에도 불구하고 그가 언더그라운드의 강자로 자리한 건 견고한 랩 실력과 선보인 작품의 완성도 덕분이다.
일련의 불화로 그리젤다(Griselda)와 결별했다가 수년 만에 웨스트사이드건(Westside Gunn)과 손잡고 발매한 [Pray For Haiti]는 그야말로 그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웨스트사이드건의 조율 아래 완성된 프로덕션은 그리젤다의 주요 작품들의 공식을 따르는 동시에 보다 탁월한 완성도로 구현되었다. 특히 드럼 파트를 최소한으로 억누르고 소울, 재즈 음악에서 가져온 샘플 소스를 한껏 강조한 점이 눈에 띈다. 그 위를 뛰노는 마크 호미의 플로우는 차분하면서도 유연하다. 건조한 톤으로 박자를 밀고 당기는 유려한 랩은 비트를 가리지 않고 힘을 발휘한다. 간간이 등장하는 웨스트사이드건의 랩 역시 찌르는 듯 강렬한 톤으로 방점을 찍으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Pray For Haiti]는 올해 그리젤다 사단에서 나온 작품 중에서도 특출한 성과를 이룬 작품이다.
4. Little Simz - Sometimes I Might Be Introvert
Released: 2021-09-03
리틀 심즈(Little Simz)의 장점은 이야기의 범위가 넓고 다양하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사건과 문제를 깊고 냉담하게 다루면서도, 개인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생동감 넘치게 풀어낸다. 더불어 이 두 가지를 절묘하게 엮는 방식에 능하다. [GREY Area]에서 적극적으로 드러낸 개인적 일화는 이번 앨범에서 풍부하고도 다채로운 동시에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더욱더 깊게 들이민다. 단순히 개인적 소재를 늘린 것에서 나아가, 예리한 통찰력을 통해 현실에 뿌리내린 불평등을 직시하는 방법을 취한다.
전작보다 강렬해진 노랫말은 절정의 퍼포먼스와 만나며 시너지를 낸다. 정교하게 짜인 라임이 화려한 플로우를 타고 바늘처럼 날카롭게 꽂힌다. 영국 특유의 악센트가 더해지면서 청각적인 타격감은 배가되고, 곡과 내용에 따라 유연하게 이루어진 완급 조절이 인상적이다. 프로덕션 역시 근사하다. 심즈의 매 앨범을 책임져온 인플로(Inflo)가 전곡 프로듀싱을 담당했다. 지난 작이 여러 소스를 활용하면서도 미니멀한 구성을 취한 점이 특징이었다면, 이번엔 정반대로 풍성한 구성이 엿보인다. 그래서 앨범을 듣고 나면 마치 한 편의 뮤지컬을 감상한 느낌이 든다. 심즈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번 앨범을 ‘현재까지 최고의 작품(My best work to date)’이라 표현했다. 단순히 여느 아티스트에게서 볼 수 있는 자부심으로 치부하기엔 꽉 찬 완성도가 앨범을 지탱한다. 이제 리틀 심즈의 최고작은 [Sometimes I Might Be Introvert]다.
3. Common - A Beautiful Revolution, Pt. 2
Released: 2021-09-10
[A Beautiful Revolution, Pt. 2]는 앨범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작년에 발매된 [A Beautiful Revolution, Pt. 1]의 후속작이다. 동일하게 ‘아름다운 혁명’을 타이틀로 내걸었지만, 방향성은 조금 다르다. 두 번째 파트는 ‘혁명’보다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췄다. 긍정과 희망의 정서가 앨범을 차지했으며, 그 사이로 특유의 수려한 표현과 직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비판적이며 냉철한 시각이 이야기의 무게감을 더한다. 노랫말과 함께 커먼의 랩 퍼포먼스는 이번에도 경탄스럽다. 소리를 내뱉을 때마다 풍성하게 쏟아지는 라임이 귀에 쏙쏙 박힌다. 동시에 유려하고도 쫄깃한 플로우가 듣는 맛을 더한다. 앨범에 설득력을 더하는 것은 프로덕션이다. 카리엠 리긴스(Karriem Riggins)는 힙합과 재즈를 결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펑크(Funk), 아프로비트(Afrobeat), 록, 블루스 등도 끌어들였다. 장르적 양분이 다양하게 섞여서 한층 풍성한 사운드의 결과물이 주조됐다.
[A Beautiful Revolution, Pt. 2]는 메시지, 퍼포먼스, 프로덕션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췄다. 앨범 자체의 완성도만으로도 흥분하게 하지만, 전작과 함께 치밀한 구성을 이룬 성취도 대단하다. 무엇보다 30년이란 세월에도 여전히 근사한 신작을 발표하는 저력을 다른 아티스트에게선 쉽게 느낄 수 없기에 더욱 짜릿하다.
2. Tyler, the Creator - Call Me If You Get Lost
Released: 2021-06-25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는 여섯 번째 정규 앨범 [CALL ME IF YOU GET LOST]에서 디제이 드라마를 소환했다.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와 SNS를 통해 밝힌 것처럼 그는 이번에 다시 ‘랩’으로 돌아갔다. 전작 [IGOR](2019)에서 랩을 감초처럼 활용했던 것과 다르다. 디지털 가공한 보컬이 주도하는 “SWEET / I THOUGHT YOU WANTED TO DANCE”를 제외하면 모든 곡에서 랩을 죽 뱉어낸다. 드라마는 랩 사이에 계속해서 샷 아웃(Shout out)을 외치며 분위기를 달군다. 오로지 랩만으로 꽉 채워냈던 그 시절 믹스테입 감성을 드라마의 목소리를 더해 재현한 것이다.
그는 순식간에 집중하게 만드는 낮은 톤과 유려하고 다채로운 플로우로 앨범의 취지에 맞게 경지에 오른 퍼포먼스를 펼친다. 그런 의미에서 앨범은 랩 음악에 대한 타일러만의 헌사다. 그는 청소년 때 즐겨들었던 믹스테입 시절의 향수를 그 중심에 있었던 드라마와 함께 재현해냈다. 무엇보다 이미 음악 세계를 확고하게 갖춘 타일러이기에 앨범의 곡들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커다란 감흥을 안긴다. 여러 장르와 샘플링 소스를 해체하고 재조합해 개성 강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솜씨가 이제는 완성형에 가까워졌다. 커리어 초기의 작품들이 습작처럼 보일 정도다. 과거의 유산이 2021년의 타일러를 만나 [CALL ME IF YOU GET LOST]라는 걸작으로 탄생했다.
1. Dave - We're All Alone In This Together
Released: 2021-07-23
런던 출신의 래퍼 데이브(Dave)는 2019년 정규 데뷔작 [Psychodrama]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젊은 예술가의 세상을 향한 진중한 시선을 심리 상담 컨셉에 녹여 비평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2집 [We're All Alone In This Together]에서도 그는 자신의 위치와 정체성을 기반으로 진지하게 사회의 부조리를 건드린다. 나이지리아 이민자 가정 출신에 아버지는 추방됐고, 형제들은 범죄와 연루된 성장사는 그의 가사에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무게감을 더한다.
첫 앨범 성공 이후 그는 엄청난 명성과 부를 얻었지만, 영국은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에 크게 실패하며, 사회의 혼란 가중됐다. 첫 트랙의 시작에서 자신의 성공은 추락하는 비행기의 일등석에 앉은 것과 같다고 고백하는 입장은 더욱 비장하다. 이런 상황에서 데이브는 포용력을 더했다. 어려운 시기의 세상에서 살아가며 외로움을 겪는 이들에게 위안을 전하려는 메시지를 앨범의 제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교조적인 앨범은 전혀 아니다.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며 사회의 다양한 이슈와 빈민가의 실상을 그 어떤 예술작품보다 적나라하게 전달한다. 공포감이 느껴질 정도다. 동시에 자신의 여성 편력과 부의 과시를 굉장히 짜릿하게 그려내는데, 그의 불우한 배경을 더 선명하게 하는 장치로 쓰이기도 한다. 장르적 쾌감 가득한 뛰어난 랩 가사, 이를 돋보이게 하는 퍼포먼스와 프로덕션의 만듦새가 감탄을 자아낸다. 2021년 가장 뛰어난 랩/힙합 앨범으로 치켜세워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이 미국이 아닌 영국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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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pegmafia (2021-12-29 20:15:21, 211.230.255.***)
- Jpegmafia LP! 어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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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mokepurpp (2021-12-29 00:09:26, 58.29.36.***)
- Whole Lotta Red에 관한 리뷰도 보고싶네요 R 점수가 굉장히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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