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2022 국외 알앤비/소울 앨범 베스트 20
- rhythmer | 2022-12-28 | 2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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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머 필진이 선정한 '2022 국외 알앤비/소울 앨범 베스트 20’을 공개합니다. 아무쪼록 저희의 리스트가 한해를 정리하는 좋은 가이드가 되길 바랍니다.※2021년 12월 1일부터 2022년 11월 30일까지 발매된 앨범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20. Ogi - MonologuesReleased: 2022-05-05
신인 아티스트가 음악적 역량을 알리기 위해 취해야 할 전략은 어떤 것이 있을까. 앨범 내에서 다양한 장르를 차용해 구사할 수도 있고 전에 없던 날카로운 시도를 통해 귀를 사로잡을 수도 있다. 대개 무언가를 ‘더’해보는 식이다. 그러나 알앤비/소울 싱어송라이터 오기(Ogi)는 반대의 전략을 취한다. 담백함을 앞세워 그에게 집중하게 한다. 정확히는 자신의 보컬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법을 알고 있는 것 같다.데뷔 EP [Monologues]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오기의 보컬 퍼포먼스다. 앨범 전체적으로 악기 배치는 최소화하고 보컬 트랙을 쌓아 화음을 강조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떠한 악기 사운드 없이 아카펠라로 포문을 여는 “Let Me Go”부터 집중하게 되는 건 그의 목소리다. 뒤이어 “Envy”에서도 담백한 피아노 사운드로 시작하여 보컬 트랙이 쌓여 곡을 채운다.
분위기 반전을 꾀한 듯한 “Bitter”에서도 마찬가지다. 클랩 사운드와 둔중한 베이스 드럼 사운드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중독성을 부여하는 가운데 보컬을 강조한 구간이 심어졌다. 그렇게 곡을 듣는 맛이 살아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혼(horn)과도 조화롭게 어우러져 흥취를 한껏 돋운다. 그렇게 이 작품을 듣는 내내 그가 구사하는 보컬에 매료되고 만다.
19. Ari Lennox - age/sex/location
Released: 2022-09-09
애리 레녹스(Ari Lennox)의 목소리는 과거를 데려온다. 90년대와 00년대를 가로지르며 네오 소울을 구사하던 에리카 바두(Erikah Badu)의 보컬과 닮은 데가 있기 때문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애리 레녹스의 음악은 네오 소울로 기운다. 노랫말에서도 성적 욕망을 드러낸다. 단, 현대적인 소재인 데이팅 어플을 활용한다. 그래서 이 앨범의 음악이 새롭게 느껴진다. “POF”에서부터 “Hoodie”까지 90년대 향수가 짙은 음악 위에 레녹스의 보컬이 더해져 그 향수가 증폭된다.
그런데 “POF”는 캐나다의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 이름이다. 과거의 음악에 현대적인 소재를 놓고 오로지 자신만이 노래할 수 있는 음악으로 소화하는 것이다. 이 같은 재주는 다른 곡에서도 드러난다. 셜리 브라운(Shirley Brown)의 “Blessed Is the Woman (With a Man Like Mine)”를 샘플링한 “Pressure”에서다. 살랑거리는 무드에 애욕을 담아내는 모습이 원곡과 비슷하지만 보다 산뜻함을 강조하고 애리 레녹스만의 언어를 담아내 과거의 음악과 차별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누군가는 알앤비가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알앤비는 여전히 살아 있다. 앞으로도 살아 있을 것이다. 애리 레녹스 같은 아티스트가 존재하는 한 말이다.
18. Sault - 11
Released: 2022-11-01
솔트(Sault)는 현재 영국 블랙 뮤직 씬의 대표 프로듀서인 인플로(Inflo)가 주도하는 집단이다. 공식적으론 앨범 발표 외엔 별다른 활동이 없지만, 공격적인 신보 발매와 함께 잭 페나트(Jack Peñate), 클레오 솔(Cleo Sol), 키드 시스터(Kid Sister), 리틀 심즈(Little Simz), 마이클 키와누카(Michael Kiwanuka), 크로닉스(Chronixx) 등등, 쟁쟁한 아티스트가 다수 함께한다. 이토록 많은 인원이 솔트라는 이름으로 함께하는 것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올해 내놓은 여섯 장의 앨범, 특히 [11]을 들어보면 나름 추측할 수 있다.
마치 70년대에 만들어진 숨겨진 펑크(Funk) 트랙을 발굴한 것 같은 "Together"부터 시원시원한 고음과 팔세토 보컬로 60~70년대 소울의 정수를 재현한 "Higher", 아프로비트를 전면에 내놓은 "Morning Sun"에 얼터너티브 알앤비를 지향하는 "Envious"까지 블랙 뮤직의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동시에 몽환적인 사이키델릭 록 트랙 "In the Air", 트립합을 시도한 "River", 긴 호흡에 다양한 장르를 버무린 "Glory" 등등, 틀에 얽매이지 않는 시도도 훌륭하다.
[11]은 솔트라는 이름 아래 다채로운 시도가 쏟아지는 순간이 다수 담겼다. 제약 없는 공간에서 폭포처럼 솟구치는 창작욕을 강렬히 분출했다.
17. Thee Sacred Souls - Thee Sacred Souls
Released: 2022-08-26
디 새크레드 소울즈(Thee Sacred Souls)에 대해 서술하기 전에 샤론 존스 앤 더 댑 킹즈(Sharon Jones & The Dap-Kings)를 먼저 언급해야 한다. 60-70년대 펑크(funk)와 소울 음악을 구사하던 밴드다. 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후반까지 말이다. 과거에 머물던 장르에 영감을 받아 새로운 음악을 제작하는 그들은 소울 부흥 운동가 같기도 했다. 그 중심엔 프로듀서 보스코 만(Bosco Mann)이 있었다.
디 새크레드 소울즈의 [Thee Sacred Souls]는 보스코 만이 프로듀싱한 앨범이다. 역시나 60-70년대 소울의 향이 짙게 깔려 있다. 느긋한 스윙 박자에 빈티지한 질감을 덧칠한다. 혼 사운드를 시작으로 “Can I Call You Rose?”라고 물어보며 포문을 여는 첫 곡부터 기타 사운드와 백업 코러스가 넘실대는 “Trade Of Hearts”, “Sorrow For Tomorrow”, 그리고 드럼, 기타, 코러스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Once You Know(Then You’ll Know)”, 비교적 신나는 무드의 “Love Comes Easy”까지 그들의 음악은 소울이 흥성하던 시대를 향한다.
그 어떤 비유도 없이 단순하고 담백하게 사랑을 말하는 노랫말과 팔세토 창법을 구사해 무중력을 부유하는 듯한 보컬도 앨범의 중추가 되는 요소다. 자칫 과거에 머무는 듯 보이지만, 그들은 단순히 과거의 음악을 재현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새로움을 싹 틔운다. 과거를 넘어 미래를 겨냥한다.
16. Fantastic Negrito - White Jesus Black Problems
Released: 2022-06-03
판타스틱 니그리토(Fantastic Negrito)의 음악은 여러모로 경계선에 있는 듯하다. 블루스를 토대로 하지만, 온전히 블루스로 묶기엔 포괄하는 장르의 폭이 매우 넓다. 블루스는 물론, 록, 소울, 가스펠, 컨트리 등등, 여러 장르가 들어오고 나가면서 하나의 결과물을 이룬다. 이 같은 특징은 새 앨범에서도 이어진다.
블루지하고 묵직한 기타 연주가 중심을 잡으면서도 오르간, 신스, 현악기, 코러스 사용이 늘어나 이전보다 블루스의 비중이 줄어든 듯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프로덕션이 경계선에 걸쳐있는 것처럼, 다루는 내용과 메시지도 여러 이야기를 포괄한다. 개인적인 일화와 사회, 정치적인 소재를 거리낌 없이 곡에 담아낸다. 이번엔 18세기 백인 계약하인과 흑인 노예 간의 사랑이라는, 실제 그의 조상이 겪었던 내용을 통해 사회의 차별, 혐오, 폭력을 묘사한다.
판타스틱 니그리토의 음악은 경계선에 위치한 만큼 거침없이 모든 구획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렇기에 독특한 결과를 도출한다. 이야기와 프로덕션까지 [White Jesus Black Problems]는 다시 한번 그만의 특징과 강점을 확인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15. John Legend - Legend
Released: 2022-09-09
2020년 발표한 [Bigger Love]에서 존 레전드는 사랑의 숭고한 가치를 노래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인류 보편적인 감정을 노래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일상의 원동력으로 치환한 것이다. 올해 발표한 [LEGEND]를 통해서도 그는 사랑을 탐미한다. 다만 사적이고 세부적이다. 주제에 걸맞게 여성 아티스트와의 적절한 협업이 눈에 띈다.
즈네 아이코(Jhené Aiko)의 목소리가 그윽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Splash”, 앰버 마크(Amber Mark)의 어둑하고 어슴푸레한 보컬이 조화를 이루는 “Fate”, 재즈민 설리번(Jazmine Sullivan)의 퍼포먼스가 몰아치는 “Love”, 랩소디(Rapsody)의 래핑이 얹혀서 완성도를 높인 “The Other Ones”까지 존 레전드의 음악에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또한, 다양한 감흥을 주는 프로덕션 덕분에 81분이라는 감상 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느껴진다.
일렉트로닉한 사운드로 조각한 보사노바 스타일의 “Guy Like You”, 리드미컬한 밴드 사운드에 바이올린이 적절히 가미되어 흥을 돋우는 “Strawberry Blush”, 기타를 메인으로 잔잔한 사운드를 구축한 “Wonder Woman” 등 다채로운 스타일이 포진했다. 존 레전드의 강점인 피아노가 주가 되는 “I Don’t Love You Like I Used To”과 “Home”은 이전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탁월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믿지 않지만, 존 레전드의 음악 앞에선 기꺼이 속아 넘어가고 싶다.
14. Cory Henry - Operation Funk
Released: 2022-06-16
싱어송라이터이자 키보드, 오르간 연주자인 코리 헨리(Cory Henry)는 미국대중음악 계에서 꽤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디디(Diddy), 퀸시 존스(Quicy Jones), 더 루츠(The Roots), 보이즈 투 맨(Boys II Man) 등, 베테랑 아티스트들의 투어를 함께 하며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재즈 밴드 스나키 퍼피(Snarky Puppy)에 몸을 담기도 했다. 이후 재즈와 알앤비, 펑크(Funk)를 오가며 솔로 앨범을 꾸준히 발표했고, 재즈민 설리번(Jazmine Sullivan), 칸예 웨스트(Kanye West), 이매진 드래곤(Imagine Dragons) 등,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와 협업해왔다.
[Operation Funk]는 오랜 시간 축적된 코리 헨리의 음악적 역량이 빛을 발한 작품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앨범을 관통하는 사운드는 ‘펑크’다. 기타, 신시사이저, 오르간, 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복고풍의 펑크 사운드가 처음부터 끝까지 쉴 새 없이 몸을 흔들게 만든다. 간주 구간에서 일렉트로닉 기타와 오르간이 서로 경쟁하듯 상승하며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는 “Something New”, 후주에 내달리는 기타 연주가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The Fool”, 레트로한 질감의 신스와 보컬이 대화하듯 맞물리는 “Holy Ghost” 등, 곡마다 역동적인 안기가 더해져 혼을 쏙 빼놓는다.
업 템포 펑크 넘버 “Hurt My Brain”의 후주에서 기타, 드럼, 코러스, 애드리브가 어지럽게 맞물리며 상승하다가 템포가 느려지는 연주 트랙 “Good Times”로 이어지는 후반부는 앨범의 백미다. 중반부부터 등장하는 피아노와 스산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코러스가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급작스레 마무리 짓는 구성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열정적인 사랑과 순수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노랫말도 복고적인 사운드와 잘 어울린다. 2022년 가장 흥겨운 펑크 앨범을 찾는다면 코리 헨리의 [Operation Funk]가 딱이다.
13. Pip Millet - When Everything Is Better, I'll Let You Know
Released: 2022-10-21
맨체스터 출신의 핍 밀렛(Pip Millett)은 이번 [When Everything Is Better, I'll Let You Know]로 사랑과 이별에 초점을 맞춘다. 겉보기에 밀렛의 노랫말은 단순히 사랑에 안달 난 사람이 겪는 끝과 시작의 과정처럼 들린다. 하지만 가식은 배제한 듯 적나라한 감정 묘사가 무언가 여느 노래와 다르게 느껴진다. 동시에 상대방은 고려하지 않은 듯 온전히 자기중심적인 묘사가 일관된 덕에 종결까지 화자에 대한 몰입감이 유지된다.
진진한 노랫말만큼 프로덕션의 선택도 흥미롭다. 화려한 프로듀서 진에 맞게 알앤비와 소울, 힙합 소울로 다채롭게 일군다. 진한 밀렛의 목소리에 풍부한 코러스가 인상적인 "Heal", 베이스를 강조하여 미니멀하면서도 차분한 무드를 자아내는 "Happy No More", 퍼커션을 비롯한 다채로운 악기 활용이 넉넉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Smoking", 재지한 보컬 샘플링과 트럼펫 소스의 활용이 빈티지한 질감을 극대화하는 "All Good" 등이 그렇다.
새로운 목소리로부터 느낄 수 있는 감흥은 물론이고, 솔직한 이야기와 잘 짜인 프로덕션이 앨범을 감싼다. 그의 첫 정규작이 평범한 알앤비처럼 들리지 않는 건 여러 강점이 산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의 알앤비 씬에 또 한 명이 강렬히 이름을 남겼다.
12. SABRI - Actually, I Can.
Released: 2022-11-11
종종 자신이 영향받은 흔적을 강하게 남기는 아티스트가 있다. 사브리(SABRI)의 [Actually, I Can.]을 듣다보면 그 흔적이 깊게 남아있다고 느껴진다. 허스키한 음색에 파워풀한 고음과 깊고 진한 중저음이 어우러져 중후하고 진하게 멜로디를 꾸린다. 음악적으론 힙합 소울, 네오 소울, 재즈, 전통적인 알앤비를 폭넓게 아우른다.
그래서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활동한 다수의 알앤비/소울 아티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Too Perfect To Be Loved"에선 메리 제이 블라이즈(Mary J. Blige)를 생각나게 하며, "Something I Know"를 들을 땐 마할리아 잭슨(Mahalia Jackson)이 떠오른다. 그러나 카피와는 거리가 멀다. 각 프로덕션에 어울리는 뛰어난 퍼포먼스가 일품이다.
가사는 진솔한 이별 이야기로 채워졌다. 끝난 사랑에 대한 슬픔과 미련("Wish the Love Never Died", "Lost In You", "Falling Off You"), 한탄과 후회("Broken Promises", "Ready")를 드러내며 일관된 감정선을 유지한다. 삶에서 겪은 사랑과 이별의 과정을 솔직하게 풀어낸 점이 시원시원한 가창과 만나 몰입감과 설득력을 전한다. 이렇게 사브리가 남긴 흔적은 [Actually, I Can.]을 통해 우리에게도 강렬한 흔적을 남긴다.
11. Amber Mark - Three Dimensions Deep
Released: 2022-01-28
앰버 마크(Amber Mark)의 첫 정규작인 [Three Dimensions Deep]에서 가장 큰 원동력이 되는 것은 보컬이다. 90년대 알앤비 아티스트부터 70년대 소울 보컬까지 떠올리게 한다. 허스키한 목소리는 단단하고 힘 있는 중저음과 어우러지면서 한층 매력적으로 들린다. 가성을 사용하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 “Turnin’ Pages"와 유려한 테크닉으로 곡을 꾸린 “Most Men"은 그의 장점이 도드라지는 대표적인 트랙이다.
프로덕션도 주목할만하다. 기본적인 토대는 얼터너티브 알앤비이지만, 단순히 하나로 정의하기엔 부족할 정도로 여러 특징이 혼재되었다. 앨범명인 'Three Dimensions Deep'에 걸맞게 트랙 구성과 사운드가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노랫말을 풀어낸 방식도 즐겁다. 여느 알앤비 곡처럼 사랑에 대한 기쁨과 슬픔을 드러내기도 하지만(“Softly", “Most Men", “Bliss"), 이야기의 중추를 이루는 것은 삶과 자아에 대한 고찰이다. 살면서 그가 고민하고 느낀 흔적을 흩뿌려진 별처럼 하나둘 드러낸다.
앰버 마크는 “Foreign Things"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맞이했을 때의 떨림과 설렘을 표현했다. [Three Dimensions Deep]을 여러 번 듣다 보면, 그가 삶에서 느꼈던 감정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새로운 아티스트의 주목할만한 시작을 마주치게 된 이 순간처럼, 그도 낯선 것에 만족했던 것은 아닐까.
10. Greentea Peng - GREENZONE 108
Released: 2022-09-09
영국의 알앤비 싱어송라이터 그린티 팽(Greentea Peng)은 자신의 음악을 ‘사이키델릭 알앤비’라고 정의했다. 알앤비, 소울을 바탕으로 사이키델릭, 힙합, 일렉트로닉, 펑크, 재즈, 레게 등등, 다양한 장르가 결합하고 해체하기를 반복하고, 노래와 랩, 스포큰 워드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보컬을 낮게 읊조린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최면에 빠지는 것만 같다. 믹스테입 [GREENZONE 108]은 전보다 다채로워진 팽의 ‘사이키델릭 알앤비’를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특유의 퍼포먼스는 더욱 역동적으로 변모했다. “Feint”에서는 랩에 가깝게 들릴 정도로 건조해졌다가도 “Your Mind” 같은 곡에서는 풍성한 코러스와 멜로디의 결을 살린 보컬로 여운을 남긴다. 더불어 트랙마다 뚜렷한 특징이 살아있어 끝까지 집중력이 흐려지지 않는다. 간결한 혼 연주로 거리를 거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Stuck In The Middle”, 레게 덥 사운드를 적극 차용해 긴장감을 가득 불어넣은 “Three Eyes Open”, 묵직한 붐뱁 리듬 위로 랩처럼 보컬을 읊는 “Bun Tough” 등, 사운드가 끊임없이 유기적으로 변화해 듣는 재미가 극대화됐다.
영적 세계에 대한 믿음과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을 담은 주제 의식은 여전하다. 기계화된 문명을 거부하고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는 아티스트로서의 자신감을 드러내는 마지막 트랙 “Top Stepper”는 대표적. 신시사이저와 노이즈 소스, 일렉트로닉 기타가 회오리치는 후렴구의 변주는 듣는 이를 팽의 세계로 빨아들이는 듯하다. 음악은 때로 우리를 뻔한 현실에서 분리해 전혀 다른 세계로 데려다 놓는다. [GREENZONE 108]이 그렇다. 팽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기분 좋은 최면에 빠지게 될 것이다.
9. Tank and the bangas - Red Balloon
Released: 2022-05-13
재즈가 태동한 뉴올리언스의 음악은 풍성함으로 정의할 수 있다. 힘찬 브라스 사운드가 거리 곳곳에서 튀어 나오고 채도 높은 색깔들이 자리하며 시민들의 열기가 감도는 도시. 탱크 앤 더 방가스(Tank And The Bangas)는 뉴올리언스에 기반을 둔 4인조 밴드다. 그들이 구사하는 음악 또한 뉴올리언스의 모습과 닮았다. 빈틈 없이 채워져 한껏 들뜨게 한다.
[Red Balloon]에서도 마찬가지다. 펑크, 재즈, 힙합, 알앤비를 자유로이 유영한다. ‘우리는 당신을 웃게 만들고 싶다(We want to make you smile)’라고 말하는 “Intro”의 안내에 따라 “Mr. Bluebell”에 도착하면 기다렸다는 듯 캐치한 재즈 곡이 흐른다. 타리오나의 보컬 퍼포먼스가 잘 어우러지는 펑키한 디스코 밥 스타일 곡 “No ID”와 “Why Try”, 뉴올리언스의 카페 ‘Cafe du monde’에서 홀로 하루를 보내는 즐거움을 노래한 소울 곡 “Cafe Du Monde”, 제이콥 콜리어(Jacob Collier)의 참여로 한층 더 깊은 사운드가 완성된 “Where Do We All Go”까지 가볍게 미소를 짓게 만든다.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가볍지 않다. 들뜨는 음악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핸드폰은 지옥으로 가는 문이다’라며 ‘둔감해지는 것이 새로운 흐름’(“Mr. Bluebell”)이라 노래하고, 지구 온난화에 대해서도 언급한다(“Oak Tree”). “Where Do We All Go”에서는 사후 세계를 언급하며 자기 성찰적인 말을 담는다. 이러한 소재들은 음악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든다. 그들의 음악이 찰나의 즐거움만으로 쉽게 소모되지 않는 이유다.
8. Ravyn Lenae - Hypnos
Released: 2022-05-20
시카고 블랙뮤직 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라빈 르네(Ravyn Leane)의 이름을 한 번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는 2015년 첫 EP [Moon Shoes]를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했고, 믹 젠킨스(Mick Jenkins), 노네임(Noname), 스자(Sza) 등과 작업하며 이름을 알려왔다. 그의 음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얼터너티브 알앤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일렉트로닉 장르가 적극적으로 차용된다.
첫 정규 앨범 [Hypnos]에서도 라빈 르네 특유의 음악 세계를 마음껏 음미할 수 있다. 앨범 타이틀처럼 시종일관 일렁대는 신시사이저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기에 가늘게 울려퍼지는 팔셰토 창법의 보컬이 얹어져 앨범 타이틀처럼 꿈결을 거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히프노스(Hypnos)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잠의 신으로, ‘최면을 걸다’는 뜻을 가진 ‘Hypnotize’의 어원이다. 여러 질감의 신시사이저를 중첩해 미래지향적인 사운드를 자아내는 “Venom”과 부드러운 신스와 상승, 하강하는 독특한 소스로 잠에 드는 순간을 묘사한 “Lullabye”는 앨범의 색깔을 대표하는 곡들이다.
[HYPNOS]의 또다른 매력은 간결하면서도 중독적인 멜로디 라인이다. 스티브 레이시(Steve Lacy)가 참여한 로맨틱한 알앤비 넘버 “Skin Tight”, 카이트라나다(KAYTRANADA)가 주조한 특유의 하우스 리듬이 흥을 돋우는 “Xtasy” 등, 한 번 들으면 따라부르게 되는 멜로디 라인이 죽 이어진다. ‘연인’이라고 정의내리지 않는 미묘한 관계를 묘사하는 시적인 가사도 앨범에 빠져들게 만드는 또다른 요소다. 앨범을 끝까지 듣고 나면, 기분 좋은 꿈에 흠뻑 취하게 될 것이다.
7. The Weeknd - Dawn FM
Released: 2022-01-07
위켄드(The Weeknd)의 [Dawn FM]에서 핵심은 탁출한 프로덕션이다. 위켄드는 최초 프랭크 오션(Frank Ocean), 미겔(Miguel) 등과 함께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선구자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한 단어로 묶기엔 무리가 있을 정도로 세 아티스트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위켄드는 일렉트로닉과 복고에 초점을 두고 꾸준히 변화했다. 이번 프로덕션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Oneohtrix Point Never, 이하 OPN)의 참여다. 그는 맥스 마틴과 함께 앨범을 지휘하여 전체적인 사운드와 방향성을 이끌었다.
금속성이 느껴지는 과장되고 거친 신스, 건조한 비트가 자연스럽게 황폐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여러 이펙트로 몽환적인 요소가 삽입되어 풍성한 사운드가 완성됐다. 프로덕션과 함께 퍼포먼스도 준수하다. 전작보다 훨씬 풍성하게 중저음을 활용하며, 고음에서도 사운드에 걸맞은 파워풀하고도 단단한 소리를 내뱉는다.
[Dawn FM]에는 위켄드가 또 다른 방향에서 발전한 성과가 알차게 담겼다. 뛰어난 프로듀서를 끌어들였고, 탁월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훨씬 영리해졌다. 음악적으로 꾸준히 시도하고 변모하면서 충만한 야심을 납득하도록 했다. 그만큼 위켄드의 음악은 더욱 견고해졌다.
6. Samm Henshaw - Untidy Soul
Released: 2022-02-03
샘 헨쇼(Samm Henshaw)의 커리어는 느직하다. 2022년이 되어서야 정규 데뷔작 [Untidy Soul]을 발표했다. 첫 EP 발표 시기를 기준으로 가늠해보면 꽤 늦은 편이다. 그러나 오래 잉태된 고민이 밀도 있게 깃들었다. [Untidy Soul]의 화자는 사랑에 기대는 방식으로 고민을 발화한다. 사랑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으며(“Grow”), 사랑하는 사람이 바라는 것을 해주고 싶다고 소망(“Loved By You”)하기도 한다. 그렇게 변하지 않을 사랑을 약속하기도(“Won’t Change”),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그리기도(“Take Time”) 한다.
‘Untidy Soul’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해볼 수 있다. 하나는 앞서 서술된 어지러이 산재한 그의 마음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장르를 자유로이 유영하는 앨범의 음악이다. 실제 브라스 소리가 감흥을 살리는 소울 음악과 블루지한 재즈를 담은 곡, 90년대 힙합 스타일을 살린 곡 등등, 알앤비/소울을 기반으로 다채로운 음악을 품었다. 여러 장르가 섞여 정돈되지 않은 것 같아도 공통점은 명확히 존재한다. 가스펠이다. 그는 목사인 아버지 덕분에 교회를 다녔고 그곳에서 처음 음악을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에선 가스펠 성가대를 연상시키는 요소가 두드러진다. 성가대 합창처럼 코러스가 구현됐다.
그가 만들고 노래하는 음악에는 어떤 강요도 서려 있지 않다. 종교를 가져야 한다거나 연인, 혹은 사랑하는 상대를 꼭 만들어야 한다거나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앨범을 듣다 보면 자연스레 바라게 된다. ‘내’가 ‘나’와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수 있기를, 조금 늦은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는 쪽으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기를, 그런 용기가 생기기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일기장에 연필을 꾹꾹 눌러 적듯이 말이다.
5. Phony Ppl - Euphonyus
Released: 2022-11-18
포니 피플(Phony Ppl)의 발자취는 성큼성큼이지만, 뚜렷하다. 아홉 명으로 시작했다가 여섯 명만 남아 발표한 [Yesterday’s Tomorrow]에서는 그룹이 추구하는 음악의 방식을 보여주었고, 다섯 명의 멤버로 재정비한 뒤의 [Mō'zā-ik]에서는 각자의 역할을 뚜렷하게 인지한 듯 합을 맞추었다. 프로덕션 면에서도 향하고자 하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뎠다. 멤버들이 품은 음악 세계를 포개고 조립하면서 유기적으로 새로운 사운드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공통으로 공유하는 지점은 있다. 포니 피플의 음악 속에는 특유의 생기와 활력이 깃들어 있다.
이번에도 음악 세계를 확장하며 강점을 전면에 내세운다. 80년대와 90년대 펑크(funk)를 토대로 삼고, 그 위에서 마음껏 새로움을 탐험한다. 경쾌한 리듬에 기타 라인이 전체적으로 배치되어 흥을 돋우고 적절한 때에 틈입하는 베이스 리프가 특징적인 “Dialtone.”, 도입부에선 신시사이저, 기타, 베이스가 개별로 존재하다가 진행될수록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Nowhere But Up”이 대표적이다. 새로움과 고유함이 탁월하게 맞물려 쾌감을 선사한다.
포니 피플은 고유한 분위기를 구축하는 그룹이다. 소울, 펑크, 재즈, 힙합, 일렉트로닉 등등 다채로운 장르를 오가고, 멤버 수에 변동이 있으며, 매번 다른 아티스트가 참여해도 포니 피플의 음악이 자아내는 분위기와 감흥의 결은 일치한다. [Euphonyus]에서도 그렇다. 새로움을 탐험하면서도 그들만의 특색과 강점은 그대로다. 심지어 전보다 더 좋은 합을 만들어 냈다. 포니 피플이 [Euphonyus]를 통해 새로이 내디딘 발자취 또한 뚜렷하게 기억될 것이다.
4. Steve Lacy - Gemini Rights
Released: 2022-07-15
밴드 디 인터넷(The Internet)의 스티브 레이시(Steve Lacy)는 이전에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음악 어플 ‘개러지밴드(GarageBand)’를 활용하여 음악을 만들어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약 3년 만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 [Gemini Rights]에서는 최초로 라이브 세션을 동원해 프로덕션을 꾸렸다. 실험적인 면은 덜해졌지만, 덕분에 사운드가 더욱 다채로워졌고, 청량감이 느껴진다.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전과는 또 다른 색깔의 완성도 높은 음악을 만들어냈다.
이번에도 그가 전곡을 책임진 프로덕션은 알앤비, 펑크(Funk), 재즈, 보사노바, 힙합, 가스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신시사이저가 사용되어 꿈결을 거니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더불어 곡마다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세심한 편곡 덕에 끝까지 집중력이 유지된다. 특히 “Bad Habit”은 중반부에서 연주가 소강되고 보컬만 나오다가 비트박스, 드럼, 기타 연주가 어우러지는 변주를 통해 다른 무드가 이어지며 짜릿한 쾌감과 여운을 남긴다. 상이한 요소를 엮어 하나의 완성된 곡으로 만드는 스티브의 역량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스티브의 음악은 [Ego Death](2015) 이후 인터넷의 음악과 닮아있지만, 차이도 선명하다(*주: 스티브는 2015년부터 인터넷에 합류했다.). 빈티지한 질감의 악기가 활용되어 로파이(Lo-Fi)한 무드가 부각되었고, 음악적으로 1970년대부터 1980년대를 풍미한 펑크 음악과 맞닿아있다. 무엇보다 완성도가 뛰어나다. [Gemini Rights]를 통해 스티브의 이름은 디 인터넷의 기타리스트가 아닌, 한 명의 아티스트로 더 많은 사람에게 각인될 것이다.
3. Yaya Bey - Remember Your North Star
Released: 2022-06-17
브루클린 출신의 야야 베이(Yaya Bey)는 자신의 영역을 다양하게 구축해온 아티스트다. 시를 쓰기도 했고 미술 큐레이터로 활동한 이력이 있으며, 교사로 일한 적도 있다. 다채로운 재능을 뒷받침 하듯 2016년에는 [The Many Alter - Egos of Tril'eta Brown]을 책과 함께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2021년에 발표한 [The Things I Can’t Take With Me]를 통해 음악적 재능을 입증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어떠한 형태로든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서인지 음악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다.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 -딸로 살아가는 것, 엄마가 된다는 것- 에 관하여 적극적으로 발화한다. 특히 흑인 여성으로서의 삶이란 어떠한가를 밀도 있게 다룬다. 그만큼 야야 베이는 좋은 ‘스토리텔러’다. 그러나 [Remember Your North Star]는 그가 이야기 뿐만 아니라 이를 음악으로 풀어내는 능력 또한 훌륭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작품이다.
다채로운 장르가 차용되어 듣는 재미가 크다. 레게 리듬을 살린 “meet me in brooklyn”을 지나 흥을 돋우는 댄스홀 장르의 “pour up”, 편안한 재즈 리듬으로 전개되다가 마무리에 반전 재미가 있는 “reprise”까지 부족함 없다.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보컬도 큰 강점으로 작용한다. 야야 베이의 보컬은 거칠지만 담백하고 흡입력 있다. 작품 내내 귀를 사로잡는다. 그의 목소리가 가장 빛을 발한 곡은 피아노 사운드로 미니멀하게 축조된 “rolling stoner”다. 이처럼 자신이 품은 이야기를 독보적인 보컬과 음악으로 오롯이 표현할 줄 아는 아티스트는 흔치 않다.
2. Sudan Archives - Natural Brown Prom Queen
Released: 2022-09-09
수단 아카이브스(Sudan Archives)의 음악은 독특하다. 주특기인 바이올린 연주를 바탕으로 아프리칸 전통 음악, 아이리시 포크, 일렉트로닉, 1990년대 풍의 블랙뮤직 사운드가 뒤섞인 음악을 들려준다. 두 번째 정규 앨범 [Natural Brown Prom Queen]는 장르를 가로지르는 그의 전위적인 음악 세계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바이올린 외에도 다양한 악기를 적극 활용하여 더욱 다채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독특한 소스가 운용되어 일렉트로닉의 기운이 느껴지다가 후렴구에서 바이올린이 난입하여 분위기가 고조되고, 후반부에서는 아프리카 전통 리듬이 차용되는 등, 다이내믹한 변주로 집중도를 확 올리는 첫 트랙 “Home Maker”는 앨범의 음악색을 대변한다.
대부분 한 트랙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변주로 쉴 틈 없이 내달리며 광활한 사운드 스케이프를 펼친다. 수단은 집을 떠나 음악산업계에서 겪었던 부침과 갈등을 두서없이 풀어놓는다. 최초 고향을 등지며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고향을 부정하지 않고(‘난 이제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다시는 내 불행을 신시내티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을 거야 / Now I’m back In Cali, Cali. I'll never blame my bad luck on nasty Nati.’) 한층 더 성장해 길을 떠나는 모습에서 묘한 감동이 느껴진다.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 애썼던 수단의 오랜 방황은 [Natural Black Prom Queen]에 이르러 결실을 맺었다. 바이올린과 여러 악기를 자유롭게 운용하며 장르를 교차하는 독특한 사운드는 오롯이 그만의 것이다. 개성 강한 사운드와 고유의 내러티브는 수단 아카이브스라는 아티스트의 존재에 강한 설득력을 부여했다. 2022년 가장 짜릿하고 강렬한 음악적 경험이다.
1. Beyoncé - Renaissance
Released: 2022-07-29
2010년대 걸작 중 하나인 [Lemonade](2016) 이후, 무려 6년만에 내놓은 [Renaissance]은 전체적인 부분에서 여러모로 기존과 상이하다. 가장 큰 차이는 프로덕션이다. 선공개된 "Break My Soul"에서부터 라파엘 사딕(Raphael Saadiq)과 나일 로저스(Nile Rodgers)가 만나 70년대 펑크(Funk)를 완벽하게 재현한 "Cuff It", 댄스홀을 품은 프로덕션과 파워풀한 랩을 담아낸 "Heated", 일렉트로 하우스의 특징을 팝에 녹여낸 "Alien Superstar" 등등, 댄서블한 트랙이 곳곳에 배치되어 일관되게 흥을 유지한다.
비욘세는 한 인터뷰를 통해 감염에 대한 공포와 격리되는 삶에서 벗어난, 자유롭고 안전한 공간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감정에 좀 더 진솔하고 분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며, 이전보다 상이한 결과물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래서 해방과 쾌락, 만족을 외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전작보다 다루는 소재가 다소 가벼워졌다고 느끼기 쉽지만, 댄서블한 프로덕션과 장르적 특성이 개인적이고 솔직한 감정과 어우러져 감흥을 저해하진 않는다.
[Lemonade]에선 개인사를 풀면서도 흑인 인권 문제를 전면에 드러내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다. [Renaissance]에서도 몇몇 곡에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풀어냈으나, 주제가 품는 대상은 훨씬 넓어졌다. "Alien Superstar"와 "Church Girl"이 대표적이다. 슈퍼스타로서 자신감을 드러내면서도, 세상 모든 존재가 유일무이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긍정한다. 동시에 성경의 구절을 활용하여 자신과 수많은 이에게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오랜만에 내놓은 정규작에 걸맞게 [Renaissance]는 많이 달라졌다. 프로덕션에선 기존과 상이한 시도가 무척 늘어났고, 메시지도 전작보다 넓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경탄하게 하는 퍼포먼스와 비욘세가 주는 가치만큼은 변함없다. 새 걸작을 꺼낸 슈퍼스타가 왕좌를 굳건히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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