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2025 국외 알앤비/소울 베스트 앨범 20
- rhythmer | 2025-12-26 | 7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

리드머 필진이 선정한 '2025 국외 알앤비/소울 앨범 베스트 20’을 공개합니다. 아무쪼록 저희의 리스트가 한해를 정리하는 좋은 가이드가 되길 바랍니다.※2024년 12월 1일부터 2025년 11월 30일까지 발매된 앨범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20. Joy Crookes - JupinerReleased: 2025-09-19
조이 크룩스(Joy Crookes)의 데뷔 앨범 [Skin](2021)은 그해 발표된 알앤비 앨범 중에서 가장 빼어난 완성도의 작품이었다. 혼혈과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삶과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탄탄한 보컬과 유려한 사운드에 담아냈다. 두 번째 정규 앨범 [Juniper]에서는 더 당당해진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백인 기준의 미에 대해 가졌던 열등감을 솔직히 토로하는 “Carmen”, ‘날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라는 격언을 본인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I Know You’d Kill”, 유쾌한 홀로서기를 노래하는 “Somebody To You” 등, 전과 다른 확신이 목소리에 묻어나온다.알앤비와 레트로 소울을 기반으로 한 프로덕션은 전작의 기조를 이어간다. “I Know You’d Kill”이나 “First Last Dance” 같은 빠른 템포의 곡도 앨범의 흐름 안에 자연스레 녹아든다. 농밀하고 풍성한 중저음의 보컬은 더욱 성숙해졌다. 특히, “House With A Pool”이나 “Paris”처럼 느린 곡에서 보컬의 매력이 극대화된다. [Juniper]를 듣고 있으면 껍질을 깨고 군중 속으로 당차게 걸어가는 여성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인 사람이 써내려갈 수 있는 멋진 후일담이다.

19. Celeste - Woman Of Faces
Released: 2025-11-14
셀레스트(Celeste)는 [Not Your Muse](2021)를 통해 레트로 소울을 필두로 진득한 퍼포먼스와 보컬 테크닉을 들려줬다. "Ideal Woman"과 "Some Goodbyes Come With Hellos"와 같이 미니멀하고 느린 곡과 함께 "Stop The Flame"을 비롯해 빠르고 풍성한 사운드로도 앨범을 꾸렸다. 4년 만에 새로 내놓은 [Woman Of Faces]는 양상이 다르다. "Could Be Machine"을 제외하곤 차분하고 단출한 구성을 일관되게 취한다. 앨범명과 동명인 "Woman Of Faces"가 대표적이다. 복합적인 감정과 역할에서 겪는 혼란을 다루며 다른 수많은 여성을 향해 지지하고 응원한다. 실제로 한 인터뷰에서 이별과 우울증을 겪으며 힘들었던 시기를 작업을 통해 극복했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그때의 우울한 감정과 상태가 직간접적으로 드러난다.
다소 어두운 가사가 주를 이루면서, 프로덕션과 퍼포먼스도 유사한 톤을 이룬다. 최소한의 악기를 사용하거나 오케스트레이션을 적극 활용해 침잠하는 분위기를 형성하며, 느린 비트에 어울리는 농밀한 가창이 함께 한다. 특유의 허스키한 가창이 떨림음과 만나면서 마치 울부짖는 듯한 소리로 들린다. 앨범을 시작하는 "On With The Show"에서 쏟아내는 고음은, 셀레스트가 여태 겪었던 시간이 얼마나 고되었는지를 간접적으로 인지하고 몰입하도록 돕는다. 셀레스트는 [Woman Of Faces]를 동력으로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묵묵히 아티스트로서 다시 걸어간다.

18. Felix Ames - Cruel, Cruel World
Released: 2025-06-06
데프 잼(Def Jam Recordings)의 신예 필릭스 에임스(Felix Ames)는 데뷔작 [Jena](2023)을 통해 네오 소울의 틀에서 흥미로운 작품을 들려주었다. 2년 만에 새로 내놓은 [Cruel, Cruel World]에선 짧아진 곡 수와 러닝타임에도 한층 깊어진 소리로 또 한 번 주목하게 만든다. 칼빈 발렌타인(Calvin Valentine)이 주도하는 프로덕션은 일관된 톤을 유지하며 에임스가 소리를 발휘할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 앨범 내내 차분한 비트로 결을 유지하고, 신스와 이펙터, 다양한 소스를 활용해 풍성한 사운드를 만든다. 펑키한 신스가 느린 비트에도 리드미컬하게 공간을 뒤흔드는 "Magic", 호전적인 기타를 필두로 네오 소울의 특징을 명확하게 들려주는 "What's Don't You Remember"가 대표적인 예다.
프로덕션을 한층 아름답게 만드는 것엔 에임스의 힘이 크다. 고음과 저음 사이를 유려히 넘나들고, 음을 빠르고 느리게 조절하며 곡에 어울리는 최적의 소리를 가꾼다. "Give It To The Earth"에서 여운 남는 가사와 함께 경탄하게 되는 퍼포먼스를 들어보자. 더불어 모든 곡이 뇌리에 박힐 정도로 명료한 멜로디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주목할 또 하나의 이유다. 정말 잔인할 정도로 훌륭한 앨범이다.

17. anaiis - Devotion & the Black Divine
Released: 2025-09-26
아나이스(anaiis)는 세네갈-프랑스인으로 태어나 더블린, 다카르 등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살았고, 런던에 정착해 음악을 시작했다. 복합적인 문화적 배경처럼, 그의 음악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Devotion & the Black Divine]에는 프로듀서 조쉬 그랜트(Josh Grant)와 함께 소울을 기반으로 알앤비, 컨트리, 엠비언트, 일렉트로닉 등의 요소를 끼얹어 만든 차분한 동시에 역동적인 음악이 담겼다. 현악기로 고요히 진행 되는 “In Real Time”에 이어 무겁게 떨어지는 드럼과 상승하는 악기들이 만나 난장을 이루는 “Call Me (A) (B)”가 이어지는 등, 극적인 진행으로 귀를 잡아끈다. 소울을 재해석한 “My World (Beyond)”나 “Green Juice”처럼 정석적인 진행의 곡들도 완성도가 뛰어나다.
앨범은 마음이 부서진 인물이 마치 자연과 같은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 치유받는 과정을 다룬다. “”Love and Devotion [Ja’tovia Gary’s Interlude]”에서 내레이션으로 나오는 사랑은 단순히 감정이 아닌 행동이라는 인식은 [Devotion & the Black Divine]의 근간을 이루는 주제다. 2025년 새로우면서도 낯설지 않은 알앤비 앨범을 찾는다면 아나이스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16. Terrace Martin & Kenyon Dixon - Come As You Are
Released: 2025-06-20
테레스 마틴(Terrace Martin)은 최근 몇 년 동안 자신의 음악을 받쳐줄 동료로서 알앤비/소울 보컬과 자주 작업했다. 그 일련의 흐름에서 성사된 케년 딕슨(Kenyon Dixon)과의 합작 [Come As You Are]는, 단발성이라면 무척 아쉬울 정도로 끝내주는 작품이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테레스 마틴은 너무나 능숙하게 장르를 연결하고 융합해 버린다. 70년대 소울을 떠올리게 하는 구성에 재즈의 터치를 섞는가 하면, 힙합의 작법에 가스펠을 더하고, 알앤비의 틀에서 근사한 사운드를 구현하기도 한다. 프로듀서로서, 연주자로서 장르와 악기에 대한 높은 이해도 덕에 군더더기 없는 사운드를 뽑아냈다.
딕슨의 퍼포먼스도 훌륭하다. 프로덕션에 맞게 톤과 테크닉을 시시각각 변화시켜 곡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특히 말하듯이 자연스레 호흡을 내뱉고 소리를 다듬는 가창은 좋은 멜로디와 만나 편하게 듣도록 만드는 힘이 된다. 그중 소울풀한 가창이 근사한 “Only Real Ones Survive”와 브라스와 함께 몽롱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See You Later”는 별다른 고음 없이도 곡을 압도하는 딕슨의 역량을 느낄 수 있는 예다. 두 사람의 다음 작품이 시급하다.

15. Rochelle Jordan - Through The Wall
Released: 2025-09-26
2020년 발표한 7년 만의 앨범 [Play With the Changes](2021)를 기점으로, 로첼 조던(Rochelle Jordan)의 음악적 노선은 일렉트로 소울로 뒤바뀌었다. 이번에 발매된 [Through The Wall]도 그렇다. 데뷔 이래로 조던과 함께 작업하는 클러쉬(KLSH)를 필두로 머신드럼(Machinedrum)과 지미 에드거(Jimmy Edgar)가 프로듀서로서 참여했으며, 몇 차례 새로 호흡을 맞췄던 케이트라나다(KAYTRANADA)도 힘을 보태 근사한 댄스 플로우를 주조했다. 건반 멜로디 라인이 근사한 소울풀 하우스 "Sum", 테크 하우스의 전형성을 따르는 "Doing It Too", 브레이크비트와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특징을 결합한 "Bite The Bait"이 대표적이다.
일렉트로닉의 많은 스타일이 앨범 곳곳에 존재하지만, 오히려 앨범을 들어보면 한 곡처럼 느껴질 정도로 일관된 톤을 유지한다. 클러쉬의 일부 지분과 함께 조던의 퍼포먼스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제는 완벽에 가까운 리듬감과 소리의 완급 조절은 전작과 함께 새 앨범에서도 굉장하다. 특히나 "TTW"와 "I'm Your Muse"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소리가 앙상한 지점에 악기처럼 소리를 쌓고, 목소리를 통해 반복성을 제거하는 퍼포먼스가 발군이다. [Play With the Changes]가 조던이 잘하는 것을 찾은 작품이라면, [Through The Wall]은 한층 무르익은 성취를 수확한 결과인 셈이다.

14. KeiyaA - hooke's law
Released: 2025-10-31
키야(KeiyaA)는 자체 발매한 데뷔작 [Forever, Ya Girl](2020)으로 화제를 일으켰던 아티스트다. 다소 거친 사운드 사이로 비정형적인 구성과 일렉트로닉을 기반으로 한 사운드 조립이 독특한 질감을 일으켜 그해 흥미로운 작품 중 하나였다. 그리고 5년 만에 새로 내놓은 [hooke's law]는 긴 공백만큼 한층 더 진해진 색채를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이펙터와 소스, 신스를 활용해 목소리를 비롯한 트랙을 변형하며, 프리 재즈의 접근법과 힙합의 스타일을 차용하고,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문법을 적극 수용해 장르적으로 어느 하나로 쉽게 분류하기 어려운 프로덕션을 완성했다.
특히 어두운 분위기와 함께 소리의 형태를 뒤트는 방식은 키야의 보컬과도 매우 잘 어울린다. 그의 퍼포먼스는 엄청난 고음도, 뛰어난 테크닉도, 독특한 음색도 없다. 오히려 일반적인 알앤비/소울 보컬의 접근이 곡과 어울리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기 때문에, 앞에 내세우지 않고 다른 소스와 함께 하나의 악기처럼 사용한다. 마치 안개처럼 어느새 앨범 전체에 넓게 스며든 목소리는 그 어느 보컬보다 적합하게 이야기를 펼친다. 키야는 한층 더 독보적인 색채로 다시 한번 잊을 뻔한 자신의 이름을 널리 각인시켰다.

13. Nourished by Time - The Passionate Ones
Released: 2025-08-22
너리시드 바이 타임(Nourished by Time)은 2023년 첫 정규 앨범 [Erotic Probiotic 2]를 통해 본인만의 음악 세계를 개척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1990년대 풍의 알앤비를 바탕으로 로우파이(Lo-fi)한 질감의 팝, 포스트 펑크, 힙합, 사이키델릭을 고루 섞은 그의 음악은 그야말로 과거의 독창적인 재현이었다. 두 번째 정규 앨범 [The Passionate Ones]에서도 같은 기조가 이어진다. “Max Potential”, “9 2 5”, “Tossed Away” 등은 그가 추구하는 방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들이다. 아련함을 자아내는 신시사이저로 시작해 로우파이한 소스들과 악기가 더해지며 사운드가 확장된다. 여기에 따스한 보컬이 얹어지며 자연스레 향수를 자극한다.
앨범의 제목처럼, 그 안에는 그야말로 ‘열정적인’ 사랑을 추종하는 남자의 마음이 가득 차있다. 사랑을 종교(“Cult Interlude”)나 일상(“9 2 5”)에 비유하며 자신을 미쳤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의문을 품는다.(“Crazy People”) 사랑에 빠지는 것은 전쟁과 같지만, 결국 사랑이 이길 것이라고 말하는 현실적이면서도 순수한 인식(“When The War Is Over”)은 너리시드가 사랑을 대하는 태도다. [The Passionate Ones]은 사랑 그 자체를 향한 열렬한 찬가다.

12. Kyle Dion - Soular
Released: 2025-05-30
정규 못지않은 EP [If My Jeans Could Talk](2024)으로 만족스러운 완성도를 들려줬던 카일 디온(Kyle Dion)은 이번엔 [Soular]로 아티스트로서 물오른 감각을 여실히 증명한다. 카랑카랑한 기타 리프를 앞세워 개러지 록의 특징을 과감히 활용한 "Look Like That", 리드미컬한 비트와 보컬 샘플의 변형이 흥미로운 "No Gravity", 끈적한 악기 소스와 거친 노이즈로 리듬감을 극대화한 "Male Gaze", 팝의 문법을 따르는 듯한 전개와 캐치한 멜로디가 쾌감을 주는 "don't blow the candles out" 등등 네오 소울의 특징을 따르면서도 과감하게 장르를 넘나드는 문법으로 프로덕션을 한층 풍성하게 만들었다.
확장된 프로덕션과 함께 카일 디온의 퍼포먼스도 더욱더 굉장해졌다. "Suga On The Rim"부터가 그렇다. 빠르지 않은 곡에 잘게 리듬을 쪼개는 퍼커션과 기타 정도를 제외하곤 굉장히 단출한 구성임에도 여러 겹으로 화음을 쌓아올린 코러스와 음 하나하나를 밀고 당기며 리듬감을 끌어올리는 섬세한 디온의 보컬은 신기할 정도다. 기타와 짝을 이루는 "Puppy Eyes"에선 마치 기타와 듀엣을 이루듯 폭발적인 팔세토 보컬이 짜릿할 정도며, 알앤비 발라드 "Burn Out"에선 차분한 곡에서도 탁월한 테크닉을 확인할 수 있다. 카일 디온은 10년이 넘은 활동 기간 중 가장 뜨거운 창작욕을 과시하며 작년에 이어 연달아 자신의 이름을 빛낸다. [Soular]가 바로 그 증거다.

11. Blood Orange - Essex Honey
Released: 2025-08-29
블러드 오렌지(Blood Orange)는 일렉트로닉과 알앤비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확고한 영역을 구축해온 아티스트다. 약 6년 만에 발표하는 다섯 번째 정규 앨범 [Essex Honey]는 완숙해진 블러드 오렌지의 음악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 차분하게 시작해 내달리는 듯한 리듬 파트와 공간감을 자아내는 허밍과 관악기가 교차하는 첫 곡 “Look At You”는 앨범의 사운드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 같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가운데, “Somewhere In Between”, “Vivid Light”, “The Train (King’s Cross)”처럼 리듬감이 두드러진 곡을 통해 장르의 색을 강하게 내보인다.
그는 30대의 끝자락에서 지나간 청춘과 인연에 대한 강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토로한다. “Countryside”, “Life”, “The Train (King’s Cross)” 같은 곡에서는 떠날 수밖에 없는 자의 깊은 회환이 느껴진다. 케롤라인 폴라첵(Caroline Polachek), 무스타파(Mustafa), 로드(Lorde) 등, 나름 이름 있는 아티스트들의 목소리가 마치 지난 시절의 인물들처럼 익명화되어 스쳐 지나가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제는 떠나야 한다’고 다짐하는 마지막 곡 “I Can Go”에 이르면 후련한 감정이 느껴진다. [Essex Honey]는 음악가가 인생의 한 챕터를 마무리 짓는 가장 근사한 방식이다.

10. Sudan Archives - The BPM
Released: 2025-10-17
걸작 [Natural Brown Prom Queen](2022) 이후 오랜만에 수단 아카이브스(Sudan Archives)가 돌아왔다. 전작은 블랙 뮤직의 기틀에 아프리칸 뮤직, 포크, 일렉트로닉을 접목해 독특한 프로덕션을 구축했다. [The BPM]은 앨범명과 커버에서도 예상할 수 있듯이, 일렉트로닉을 주축으로 삼아 또 한 번 개성 강한 사운드를 완성했다. 소울풀 하우스의 "A Bug's Life"부터 그렇다. 잘게 비트를 쪼개는 하이햇 소스와 함께 봉고와 같은 타악기를 엇박자에 뒤섞어 리듬을 극대화하며, 보컬 샘플을 반복하여 하우스의 맛을 끌어올렸다.
"David & Goliath"에선 정글과 트랩을 절묘하게 연결한 선택이 흥미로우며, "A Computer Love"는 피씨 뮤직(PC Music)의 많은 아티스트가 쉬이 떠오르고, "Noire"에선 수준 높은 하드 테크노 프로덕션에 들을 때마다 놀랍다. 그중 아프로 하우스를 담은 "Come And Find You"가 굉장하다. 전작에서도 영리하게 앨범에 녹인 아프리카 음악의 리듬을 살리는 비트와 바이올린을 적극 활용하며, 기괴한 듯 몽환적인 가창으로 묘한 매력을 분출한다.
분명히 [The BPM]은 일렉트로닉이 주된 앨범이다. 그러나 여느 일렉트로닉 앨범보단 블랙 뮤직 프로덕션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다. 또한 보컬 트랙을 변형시킨 곡들을 제외한, 아카이브스의 가창이 그대로 담긴 곡에선 여전히 알앤비 보컬로서의 정체성도 강하게 유지한다. 다루는 방식에선 분명히 큰 차이를 들려주더라도, 장르를 교차하는 수단 아카이브스의 개성만큼은 이번에도 변함없다.

9. Amaarae - BLACK STAR
Released: 2025-08-08
아마레(Amaarae)는 아프로비츠(Afrobeats)를 기반으로 하는 아티스트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음악적 성취를 보여줬다. 2023년에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앨범 [Fountain Baby]는 아프로비츠에 알앤비, 팝 사운드를 결합한 관능적이고 댄서블한 음악으로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BLACK STAR]에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적극 껴안아 더욱 공격적이고 직관적인 사운드를 선보인다.
날카로운 신시사이저가 곡을 주도하는 “Stuck Up”, 묵직한 베이스로 매캐한 클럽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StarKilla”와 “S.M.O.”, 빠른 템포로 하우스와 아프로비츠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Fineshyt”은 [BLACK STAR]의 기조를 대표하는 곡들이다. “Kiss Me Thru The Phone pt 2”나 “She Is My Drug”에서처럼 과거의 곡을 끌고와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한 센스도 인상적이다.
아마레는 가나 출신의 성공한 흑인 여성으로서 자신의 욕구에 대해 당당하다. 거침없는 태도로 쾌락과 성을 탐구하고, 부와 명성을 과시한다. “ms60”에 카리스마 넘치는 내레이션을 더한 나오미 켐벨(Naomi Campbell)은 한 시대를 풍미한 흑인 여성 모델로 앨범의 기치를 상징하는 존재다. 그야말로 [BLACK STAR]라는 제목 그 자체와 같은 앨범이다.

8. The Psycodelics - Please Keep off the Grass
Released: 2022-05-20
아티스트의 유명세와 음악의 완성도는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특히 신예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올해는 사이키델릭스(The Psycodelics)가 예다. 미국에서도 별다른 인지도가 없어 어느 음악 매체에서도 팀의 이름을 찾을 수는 없을 정도다. 그러나 데뷔 앨범 [Please Keep off the Grass]를 듣고 나면, 이런 상황이 도저히 쉽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밴드는 펑크(Funk)와 소울을 기반으로 알앤비, 재즈, 블루스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사운드를 완성한다. "Sun & Moon (Mansa Musa)"이 대표적이다. 디스토션 걸린 베이스가 포문을 여는 이 곡에선 펑키한 기타와 건반이 주도하며, 중반부에 들어서 곡이 변주되며 블루지한 기타 솔로와 함께 소울풀한 구성이 펼쳐진다. 빠르고 난이도 있는 전개에도 찰나의 흐트러짐 없이 빈틈없이 곡을 일구는 저력이 굉장하다. 폭발적인 연주는 "Ladybug"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묵직하게 그루브를 만드는 드럼과 함께 숨 가쁘게 달리는 곡에도 여러 악기가 마치 하나처럼 합을 이루는 쾌감이 엄청나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보컬이다. 베이스의 웨스콧(Cameron ‘Caminator’ Wescott)과 드럼의 빙(Sean Bing)이 함께 하는 가창은 악기 연주자인 동시에 뛰어난 보컬리스트임을 증명한다. 중독적인 멜로디의 "Ooh I Wanna"를 비롯해 앨범의 전체에서 서로 화음을 이룬다. "So Sweet"에선 감미롭고 유려히 노래하다가도, "Fallen"에선 내달리는 BPM에 맞게 진성과 가성을 오가며 소울풀한 가창을 들려준다. 첫 앨범부터 이토록 완벽한 결과물을 내놓은 밴드의 다음이 무척 기다려진다.

7. Daniel Caesar - Son Of Spergy
Released: 2025-10-24
다니엘 시저(Daniel Caesar)의 가장 큰 매력은 서정적이고 따뜻한 목소리다.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듣는 이를 포근히 감싸주는 힘이 있다. [Son Of Spergy]은 다니엘의 매력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컨트리와 가스펠을 적극 끌어안으며 진중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보컬이 사운드를 풍성하게 만든다. “Call On Me”처럼 상대적으로 활기찬 곡도 있지만, 대체로 침잠된 분위기를 이어간다.
프로덕셕은 앨범의 주제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소원했던 아버지와의 화해를 통해 지난 삶의 죄와 고난에서 구원 받는다. 성경의 구절들을 앨범 곳곳에서 차용하며 이 과정을 기독교적으로 해석했다. “Root of all Evil”, “Touching God”, “Sins Of The Father”는 종교적인 관점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곡들이다.
“Have A Baby (With Me)”, “Who Knows”, “Emily’s Song” 같은 곡은 다니엘의 무르익은 멜로디 어레인지 능력을 체감할 수 있는 곡들이다. 샘파(Sampha), 본 이베어(Bon Iver), 블러드 오렌지(Blood Orange) 등의 참여는 차분하게 진행되는 앨범을 적절히 환기해주는 역할을 한다. [Son Of Spergy]는 다니엘 시저라는 아티스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답’ 같은 앨범이다.

6. Dreamer Isioma - StarX Lover
Released: 2025-04-04
[StarX Lover]의 주된 정서는 분노와 혼란이다. 관계의 불안정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를 섹스, 자기혐오, 마약 등의 충동으로 회피하며 파멸에 다가간다. 전작과 달리 록의 영향이 크게 늘어난 것은 단순한 장르 탐구가 아니다. 드리머 이시오마(Dreamer Isioma)가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하드 록의 요소가 결합된 사운드 위로 울부짖 듯이 노래하는 “Did You Ever Care”, “Dead End”나 충동적인 하룻밤의 일화를 일기처럼 써내려간 “Born 2 Live”은 그의 심리를 가장 잘 표현한 곡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록의 색깔은 옅어지고 일렉트로닉, 알앤비, 소울 사운드가 부각된다. 동시에 그의 감정도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한다. 808 드럼이 주도하는 “I Am Going Through Hell (Bittersweet)”부터 몽환적인 질감의 신시사이저를 강조한 “Why Must Everyone Die”, “No Good”까지 새로운 사랑을 만나 경계하면서도 조금씩 편해지는 과정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드리머 이시오마는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StarX Lover]로 구현했다. 앨범을 다 듣고 나면, 그의 머릿속에서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어지러워 진다. 그만큼 강렬하다. 2025년 알앤비의 가장 파격적인 모습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작품이다.

5. Mariah the Scientist - HEART SOLD SEPARATELY
Released: 2025-08-22
머라이어 더 사이언티스트(Mariah the Scientist)의 새 작품 [Hearts Sold Separately]에는 진실되고 강인한 사랑을 외치는 이야기가 담겼다. 앨범 커버에도 담긴 장난감 병정처럼 굉장히 하찮고 나약해 보이는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가득하다. 칼리 우치스(Kali Uchis)와 함께한 “Is It a Crime”의 가사를 들어보자.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라며, 자신의 사랑을 멸시하고 뒤흔드는 것들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감미로운 멜로디로 대비되게 담았다.
앨범 내내 솔직한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사랑을 향한 변함없는 자신의 태도를 역설한다. 표면적으로 봤을 땐 장르의 가장 보편적이고 평범한 주제인 사랑을 다루는 것 같지만, 머라이어의 실제 연인이 영 떡(Young Thug)이라는 점을 생각한 순간부터 이야기는 꽤 흥미롭게 들린다. 이중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헌신의 마음과 결심을 담은 “Burning Blue”, “All I Want + In Pursuit”에선 실제 머라이어의 감정을 나름 유추해 볼 수 있다.
물론 이야기의 맥락이 없더라도 [Hearts Sold Separately]는 훌륭한 앨범이다. 나인틴에이티파이브(Nineteen85)가 주도하는 프로덕션은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틀에서 곡을 다채롭게 꾸렸다. 특히 빈티지한 드럼 소스와 공간을 풍부하게 울리는 신스의 사용을 통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더불어 선명한 멜로디를 주조하는 보컬은 적당한 톤과 무게로 소리를 앞으로 뻗는 가창과 맞아떨어지며 편안하게 여러 번 듣도록 만든다. 굳센 마음처럼 탄탄한 작품이다.

4. Jenevieve - Chrysails
Released: 2025-08-08
제네비브(Jenevieve)는 시대를 포용하는 것에 능한 아티스트다. 데뷔작 [Division](2021)에서도 들려줬듯이, 얼터너티브 알앤비를 주축으로 하되, 70~90년대의 질감을 듬뿍 흡수해 개성을 표출한다. [Crysalis] 역시 전체적인 방식은 유사하다. 알앤비를 주축으로 하면서도, 과거와 맞닿은 듯한 사운드를 강하게 표현한다. "Head Over Heels"가 대표적이다. 로파이한 질감의 붐뱁 비트와 자연스레 몸을 맡기게 하는 그루브한 베이스, 도회적인 이미지를 쉽게 연상시키는 신스, 시대적 정취를 품은 다양한 소스까지. 많은 요소가 힙합 소울, 얼터너티브 알앤비, 시티팝이 융합되며 독특한 곡이 완성됐다.
"Damage Control"에선 명료한 멜로디와 코러스 활용이 끝내주며, "Hvn High"에선 70~80년대 디스코 넘버를 가져온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Partycrasher"에선 신스팝과 일렉트로 펑크의 요소를 듬뿍 자신만의 색채로 덧칠했다. 이번 앨범 역시 일라이저 가버(Elijah Gabor)의 역할이 주요해 보인다. 전작에 이어서 시대와 장르를 유려히 넘나들며 앨범을 주도한다. 빈티지한 질감에 유사한 템포를 일관되게 구성해, 다채로운 프로덕션에도 마치 하나로 꿰어낸 듯한 느낌을 유발한다. 차분한 팝 발라드 "Enter The Void"와 끈적한 그루브를 형성하는 "Nocturne"이 이질감 없이 엮이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제네비브의 퍼포먼스는 이번에도 인상적이다. 느린 박자의 곡부터 리드미컬한 프로덕션까지, 다양한 스타일에서도 천부적인 리듬감을 일관되게 드러낸다. 동시에 새벽에 안개처럼 차분하고 부드럽게 가창을 선보이면서도, 군데군데 힘 있는 소리로 완급을 주는 테크닉도 훌륭하다. "Beam Me Up"만 듣더라도 쉬이 느낄 수 있다. 자유자재로 음을 밀고 당기며 곡의 템포를 살리고, 중저음과 고음을 풍부하게 사용해 앨범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수준 높은 프로덕션과 준수한 퍼포먼스, 선명하고 강력한 멜로디 등등, [Crysalis]를 이루는 많은 점이 무척 근사하다. 첫 시작부터 굉장한 가능성을 들려주었던 제네비브는 어느새 아름다운 날갯짓에 모두를 '홀딱 빠지게' 만드는 완숙한 아티스트가 되었다.

3. The Weeknd - Hurry Up Tomorrow
Released: 2025-01-31
3년 만에 발매된 위켄드(The Weeknd)의 [Hurry up Tomorrow]는 인터뷰를 통해 꾸준히 연작임을 드러냈던 것처럼, 실제로도 [After Hours](2020)와 [Dawn FM](2022)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처럼 들린다. "Open Hearts"만 들어도 그렇다. "Gasoline"과 "Take My Breath"로 굉장한 결과물을 만들었던 맥스 마틴(Max Martin)과 오스카 홀터(Oscar Holter)가 다시 한번 참여했다. 일렉트로 하우스의 특징을 품어, 금속성이 묻어나는 거칠고 공격적인 사운드와 더불어 굉장한 속도감을 연출했다. 특정 장르나 스타일에 구애받지 않고, 영리한 샘플링에 다양한 질감의 신스를 얹은 프로덕션이 만족스럽게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와 오지볼타(Ojivolta), 토미 파커(Tommy Parker), 피터 리 존슨(Peter Lee Johnson) 등등, 내로라하는 유명 프로듀서를 대거 기용했다. 물론 핵심은 마이크 딘(MIKE DEAN)이다. 그중 앨범 내 가장 강력한 곡인 "São Paulo"에서 마이크 딘의 진가가 발휘된다. 펑크 카리오카(Funk Carioca *주: 마이애미 베이스와 아프로비트, 삼바, 일렉트로, 갱스터 랩 등을 혼합해 브라질 특유의 정서와 스타일을 담은 장르)를 토대로 긴 호흡에 호전적인 신스와 일렉트로 하우스를 결합해 폭발적인 사운드를 축조했다. 더불어 펑크 카리오카의 대표적인 스타인 아니타(Anitta)를 참여시킨 점도 영리하다. 외설스럽고 강렬한 가사와 힘 있는 가창으로 장르의 향취를 끌어올렸다.
[Hurry Up Tomorrow]를 더욱더 훌륭하게 만드는 것은 가사다. 위켄드로서 마지막 작품이라는 소식에, [Dawn FM]에서 일관되게 제시했던 음울한 분위기가 맥락이 되어, 신보에 색다른 재미를 부여한다. 앨범의 시작인 "Wake Me Up"이 그렇다. 이별, 상실, 사후 세계와 연관된 단어를 끊임없이 꺼내며 죽어가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활동명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단순히 미사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위켄드라는 페르소나의 사망이자 생명의 종결처럼 이야기를 꿰어 나간다. 앨범 내외로 (가상의) 죽음이라는 맥락이 형성되면서, 단순히 이별과 상실처럼 보이는 평범한 노래가 새롭게 읽힐 여지가 늘어났다. 위켄드는 자신의 음악적 야심을 굉장한 프로듀서진과 걸출한 사운드를 구축했고, 외부적인 요인을 동력 삼아 영리하게 서사를 완성했다. 그 어느 때보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레퀴엠이다.

2. Kali Uchis - Sincerely,
Released: 2025-05-09
칼리 우치스(Kali Uchis)는 2018년부터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며 작품마다 뛰어난 완성도로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받아왔다. 신선한 시도를 하거나 크게 스타일을 바꾸지 않고 자신의 색깔을 고수하며 이룬 성취다. 다섯 번째 정규 앨범 [Sincerely,]도 [Red Moon In Venus](2022), [Orquídeas](2023)에 이어 칼리 표 알앤비의 정수가 담긴 작품이다. 게스트를 기용하거나 상대적으로 빠른 템포의 곡들도 수록했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에는 전반적으로 차분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칼리의 목소리만으로 오롯이 채웠다. 가만히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그가 펼쳐놓은 제 3의 세계로 이동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Sugar, Honey, Love!”, “All I Can Say”, “Daggers!”, “Angels All Around Me…”, “Sunshine & Rain” 등등, 유려하게 흘러가는 와중에 멜로디의 결이 살아있는 중독적인 후렴구가 뇌리에 남는다. “It’s Just Us”, “Fall Apart,”처럼 상대적으로 리드미컬한 곡들도 앨범의 전체적인 구성에서 긴장감을 자아내는 역할을 한다. 칼리의 보컬은 그 자체로 따뜻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감정의 흐름을 잡아준다. 그중에서도 두 파트로 이루어진 “Lose My Cool”은 그의 양가적인 매력이 동시에 드러난다.
칼리는 출산 후 깨닫게 된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해서 노래한다. 수많은 풍파 속에서도(“Daggers!”, “Sunshine & Rain”) 변하지 않고 가족을 지키겠다는 다짐은 현실적인 동시에 낭만적이다. 사랑하기에 모든 아픔이 가치 있었다는 깨달음을 아이에게 고백하는 마지막 트랙 “ILYSMIH”에 이르면 거대한 감동이 밀려온다. 여태 수많은 형태의 사랑을 노래했지만, 가족과 자식을 향한 마음은 가득 채워지다 못해 벅차오를 정도다. [Sincerely,]는 그 제목처럼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서 꺼낸 칼리의 진심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1. Dijon - Baby
Released: 2025-08-15
[Baby]는 디존(Dijon)의 첫 정규앨범 [Absolutely](2021)과 직접적으로 이어진다. 전작에서 연인과 결혼까지 이르는 과정을 사랑에 대한 낭만과 열정을 담아 풀어냈다. [Baby]의 첫 곡 “Baby!”에서는 가정을 이룬 후 처음 태어난 아이를 마주하는 기쁨을 아주 격하게 토해낸다. 어떠한 순간에도 자신을 무조건 지지해 주는 아내에게 감사하는 “Fire!”까지 이어지는 앨범의 전반부는 가족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을 말 그대로 ‘분출’한다.
비선형적인 리듬 진행, 필터 등 각종 효과로 디지털 가공한 보컬, 로우파이(Lo-fi)한 질감으로 마감한 사운드는 환희로 주체하지 못하는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다. “Another Baby!”의 인트로에 디제이 퀵(DJ Quik)의 “Do I Love Her?”를 인용한 것처럼 샘플링을 활용하거나 목소리의 잔향을 샘플링해 곡 전반에 깔아놓는 등 소스들을 적극 활용하고 사이키델릭의 기운을 껴안은 프로덕션은 매우 독창적이다. 흥미로운 건, 멜로디 라인 자체는 굉장히 정석적으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스들을 충돌시키고, 여러 질감을 덧칠해 감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감정이 과해질 때쯤 아내가 그를 중재하는 “(Referee)” 이후로 이야기는 무거워진다. 기쁨의 이면에 찾아오는 고통의 순간들은 그의 이야기를 더 입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Baby]는 그야말로 전위적이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스들을 충돌시키고, 여러 질감을 덧칠해 감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거대한 경험이다. 디존의 아이 이름이 ‘Baby’인 것처럼, [Baby]라는 작품 역시 생명의 탄생과 닮았다. 전에 없다고 느낄 만큼 새롭고 완성도 높은 음악을 듣는 경험은 그야말로 경이롭다. 이 앨범을 듣고 나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2025년 대중음악 계를 통틀어 가장 짜릿한 앨범 중 하나다.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