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2025 국외 랩/힙합 베스트 앨범 20
- rhythmer | 2025-12-27 | 6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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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머 필진이 선정한 '2025 국외 랩/힙합 앨범 베스트 20’을 공개합니다. 아무쪼록 저희의 리스트가 한해를 정리하는 좋은 가이드가 되길 바랍니다.※2024년 12월 1일부터 2025년 11월 30일까지 발매된 앨범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20. Backxwash - Only Dust Remains
Released: 2025-03-28
백워시(Backxwash)는 인터스트리얼 힙합(Industrial hip hop) 시장에서 가장 존재감 있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흑인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2020년 [God Has Nothing to Do with This Leave Him Out of It]부터 3장의 앨범을 통해 내면의 고통과 분노를 뿜어내는 기운은 압도적이었다. 3년 후 찾아온 [Only Dust Remains]는 삼부작 이후 치유를 통한 자유를 탐구한다.
자신을 예수에 의해 부활한 나사로(Lazarus)로 대입해 종교와 정체성을 결합한 제목을 지은 "Black Lazarus"에서부터 그 여정이 시작된다. 백워시는 많은 지점에서 죽음을 향한 괴이한 집착을 보여주지만, 반대로 삶을 향하게 하는 서사는 곡의 순서에 따라 차분하게 진행된다. 마지막 "Only Dust Remains"는 투쟁의 끝에서 먼지만 남은 허무주의의 끝에서 사랑을 보여주고 싶다고 속내를 밝힌다. 신경질적이었던 사운드 역시 좀 더 몽환적이고, 멜로딕하게 변화되었다. 여전히 쉽게 접근하기 힘든 앨범이지만, 그녀의 이전 앨범들을 섭렵했던 이라면 그 어떤 작품보다 크게 감동할 만한 작품이다.

19. Loyle Carner - hopefully!
Released: 2025-06-20
영국 출신의 래퍼 로일 카너(Loyle Carner)는 지난 3장의 정규 앨범을 통해 본인만의 음악 색깔을 고수해왔다. 그의 경력을 따라왔던 이들이라면 [hopefully!] 역시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Yesterday's Gone](2017)부터 로일 카너는 과시적이고 폭력적인 가사보다 자신과 그 주변, 기억들을 회고하는 것을 주로 써왔다. [hopefully!]는 더욱 이에 집중했다. 영국식 발음 특유의 거친 느낌과 상반되는 나긋한 톤으로 잔잔하게 뱉는 랩과 먹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비트가 합쳐져 그의 이야기에 자연스레 집중하게 된다.
“in my mind”와 “all I need”에서는 혼란스러운 자신의 상태와 이를 파편적인 기억에서 찾아보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런 기억들이 “lyin” 같은 곡에서 부모님에게까지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로일 카너는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strangers”, “hopefully”에서처럼 두려워하던 것들은 낯선 사람들과 낯선 것들이라고 고백하며 타인을 향한 두려움과 이를 이겨내려는 희망을 덤덤하게 말할 뿐이다. 서정적이면서도 단단한 그의 고백에서 큰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가사와 음악의 깊이 또한 만만치 않다. [hopefully!]를 듣고 나면,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다.

18. $uicideboy$ - Thy Kingdom Come
Released: 2025-08-01
수어사이드보이즈($uicideboy$)는 이모 래퍼들이 선보여온 우울증, 자기혐오, 약물 중독, 자살 충동 같은 어두운 주제의 극단을 보여주지만, 프로덕션은 남부 힙합, 특히 90년대 멤피스 랩의 유산을 이어받았다. 다섯 번째 정규 앨범 [Thy Kingdom Come]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번에도 바닥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허무주의와 자기파괴의 서사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번에도 멤피스 랩에 근간을 두었지만, 트랙별로 질감과 리듬의 방향성이 뚜렷하게 갈라졌다. 역설이 담긴 제목으로 앨범의 성격을 단번에 제시하는 첫 곡 "Count Your Blessings"부터 사운드의 온도차가 선명하다. 멤피스 랩 리바이벌에서 비롯한 습기와 저음은 여전하나 퐁크가 스치는 리듬부에 생성된 공간감이 전작보다 확연히 넓어졌다.
[Thy Kingdom Come]은 수어사이드보이즈의 커리어에서 가장 인상적이며 멤피스 랩의 창의적 재해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다만 그들의 앨범을 감상할 때면 매번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랩, 가사, 프로덕션이 어우러져서 자아내는 특유의 무드에 심취하다가도 육체적, 정서적 붕괴와 재구축을 반복하는 인간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음악으로서 즐긴다는 점이 모순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부분이 듀오의 음악을 돋보이게 하는 강점이니 가혹한 역설이 따로 없다. 체념과 냉소의 언어로 번역한 약 29분 동안의 기도가 귓속에 잔향처럼 남는다.

17. Little Simz - Lotus
Released: 2025-06-06
리틀 심즈(Lilttle simz)의 신보 소식은 항상 기대하게 된다.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오는 와중에 내는 앨범마다 평단의 주목을 받아온 그녀의 행보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Lotus]는 그의 오랜 파트너인 인플로(Inflo)와 금전 문제로 갈라선 뒤 처음으로 발표하는 작품이다. 이번에 택한 파트너는 프로듀서 마일스 제임스(Miles James)다. 그는 재즈와 소울, 펑크(Funk)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과하지 않은 사운드로 현란한 동시에 깔끔하게 전개되는 리틀 심즈의 랩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미세하게 가졌던 불안감을 단숨에 날려버리는 탁월한 프로덕션이다.
저음의 베이스와 거친 기타로 배신감을 토해내는 “Thief”는 서스펜스가 느껴지는 폭발적인 인트로다. “Young”에서는 밝고 자유로운 질감으로 분위기를 전환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Free”의 사랑과 평화에 대한 말들까지 이어진다. “Lion”에서 박자를 타는 감각이나 “Lotus”에서 보이는 파워풀한 래핑에서 고조되는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다. 와중에 종과 관련된 정체성, 돈, 폭력 등 여러 주제들을 언급하며 날선 시선을 유지한다. 한편, “Lonely”와 같은 곡에서는 [Grey Area]부터 보여주었던 자신의 피로와 고민을 드러내기도 한다. ‘I was lonely making an album till I realised I'm all I needed to get through’라는 가사는 여전히 힘든 시간 속에서도 창작으로 표현하려는 마음가짐이 드러난다. 어떤 음악가에겐 지난한 시간조차 훌륭한 작품이 된다. [Lotus]가 그렇다.

16. Arrested Development - Adult Contemporary Hip Hop
Released: 2025-07-04
1992년 [3 Years, 5 Months and 2 Days in the Life Of...]의 대성공 이후 2집 [Zingalamaduni]의 상업적 실패로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Arrested Development)가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지만, 리더 스피치(Speech)의 솔로 활동뿐 아니라 그룹의 앨범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특히 2021년 [For the FKN Love]로 그룹으로서 생명력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 그리고 4년 뒤 찾아온 [Adult Contemporary Hip Hop]은 그들의 첫 앨범 이후 가장 뛰어난 앨범일지도 모르겠다.
앨범은 2024년 사망한 트완 맥(Twan Mack)을 기리고 있는데, 생전 그가 명명한 'Adult Contemporary Hip Hop'을 타이틀로 사용했고, 오랜 협업 프로듀서인 콘피가(Configa)는 타이틀처럼 트렌드와 거리를 두고 유행도 타지 않을 소울풀한 비트를 선사한다. 그들은 언제나처럼 흑인 사회 외부를 향한 분노보다는 내부를 향한 성찰과 사랑을 중점에 둔다. "All I See Is Melanin"이나 "Flowers", "Family"와 같은 트랙은 초기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를 떠올리는 반가운 트랙이다. [Adult Contemporary Hip Hop]은 그들의 변치 않는 흑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아프리카 중심주의 유산에 대한 진심을 확인할 수 있는 앨범이다.

15. clipping. - Dead Channel Sky
Released: 2025-03-14
클리핑(clipping.)은 인더스트리얼 힙합에 대해서 논하자면 빠질 수 없는 그룹이다. 대표곡인 "Say the Name"을 들어보면 알 수 있듯, 빌드업과 믹싱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그들의 프로덕션은 최상급의 질을 보장한다. 이번 앨범에도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로 가득 차 있다. 악기 구성은 단출하지만, 전체적인 사운드는 무척 다채롭고 실험적이다. 비트가 끊기거나, 루프를 꼬아서 곡의 진행을 뒤집고 보컬 샘플을 다방면으로 활용해 귀를 사로잡는 "Dominator", 빠른 속도감의 곡으로 긴장감을 유지하는 "Change the Channel"도 마찬가지다. 앨범의 백미인 "Run It"은 폭발적인 사운드와 래핑이 두드러진다. 특히, 루프를 여러 차례 바꿔가며 랩이 불규칙적으로 등장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인터루드 역할의 짧은 러닝타임의 "Go", "Simple Degradation (Plucks 1-13)에서는 그룹의 뛰어난 프로듀싱 능력을 온전히 체감할 수 있다.
굉장히 거칠게 믹스된 "Code", "Dodger" 역시 인더스트리얼 힙합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곡들이다. 신시사이저의 소리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믹스되어 있거나 보컬이나 곡의 볼륨이 갑작스레 커지거나 작아지는 식으로 특유의 종잡을 수 없는 사운드가 제대로 표현됐다. 래핑도 공격적이고 폭발적이다. "Dodger"가 특히 그렇다. 정신없다고 느낄 정도의 강렬한 비트 위로 얹어진 빠른 템포의 랩은 단숨에 귀를 잡아끈다. 가사도 독특하다. 유명한 사이버펑크 소설 [Neuromancer]의 영향을 크게 받았은 "Code"를 비롯해 사이버펑크에 관한 깊은 탐구를 기반으로, 여러 장치를 곳곳에 심어놔 가사를 곱씹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Dead Channel Sky]는 클리핑이라는 이름에 걸려있는 기대를 충족시킨다. 얼핏 파편화되어 있는 것처럼 들리는 사운드를 일관되게 정돈한 프로덕션은 그룹만의 특별한 역량이 빛나는 지점이다. 실험적인 시도만을 내세우는 앨범은 많지만. 이 정도로 탄탄한 완성도를 가진 작품은 드물다.

14. Pink Siifu - BLACK'!ANTIQUE
Released: 2025-01-27
핑크 시푸(Pink Siifu)는 데뷔 이래로 꾸준히 힙합의 형식을 취하고 랩을 사용해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러나 프로덕션에선 점차 힙합을 해체하고 다른 장르를 덧붙여 실험적인 사운드를 구축한다. "Alive & Direct’!"를 들어보자. 힙합의 얼개를 분명 가졌지만, 동시에 개러지 록과 인더스트리얼 록을 비롯한 록의 파편과 IDM과 앰비언트를 위시한 일렉트로닉의 요소, 아방가르드 재즈의 흔적이 군데군데 선연하게 느껴진다. "SCREW4LIFE’! RIPJALEN’!"로 비롯되는 힙합 프로덕션의 형태를 상당수 유지한 곡에서도 귀를 찢는 듯한 베이스와 의도적인 노이즈, 불균형적인 믹싱 상태로 일관한다.
의도된 프로덕션은 일관되게 내뱉는 주제와도 당연히 연결된다. 흑인으로서의 연결고리와 자부심을 드러내는 동시에, 흑인이 겪는 불평등과 폭력, 이를 유발하는 미국 시스템과 자본, 공권력에 노골적인 불만과 불신을 쏟아낸다. 데뷔 이래로 꾸준히 직시한 해묵은 주제이자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악화되면서, 핑크 시푸의 랩은 더 날이 설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랩을 담은 프로덕션은 더욱더 거칠어지는 셈이다. 핑크 시푸의 음악이 어려워질수록, 형용할 수 없는 씁쓸함이 남는다.

13. Larry June, 2 Chainz & The Alchemist - Life Is Beautiful
Released: 2025-02-07
래리 준(Larry June)과 알케미스트(The Alchemist)는 2023년 합작 앨범 [The Great Escape]를 통해 ‘럭셔리 힙합’의 진수를 선보였다. 알케미스트의 세련된 비트 위로 값비싼 삶의 전경을 래리 준 특유의 여유로운 래핑으로 그려냈다. [Life Is Beautiful]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전작과의 확실한 차별점이 있다. 바로 투 체인즈(2 Chainz)다. 그는 상대적으로 더 에너지 있는 랩으로 균형을 맞추며 앨범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단순하지만 중독성 있는 후렴구로 긴장감을 자아내는 “Colossal”이나 느긋한 래리 준의 플로우를 이어받아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Life Is Beautiful”은 투 체인즈의 존재감이 빛을 발한 트랙들이다.
래리 준 역시 투 체인즈에 맞춰 전보다 더 기술적으로 화려한 랩을 선보이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Colossal”이나 “Generation”, “Epiphany” 등은 대표적이다. 특히, “Epiphany”에서 선보인 빠른 랩은 래리 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알케미스트도 기존의 스타일에서 살짝 벗어나 조금 더 느리고 어두운 분위기의 비트로 전과는 다른 판을 깔아줬다. 래리 준은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힙합 씬 안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영역을 구축해왔다. 앨범의 내용은 항상 똑같다. 그 안에 익숙한 알케미스트와 낯선 투 체인즈를 초빙해 새로운 맛을 선보였다. 래리 준 같은 음악은 래리 준에게서 들을 수밖에 없다.

12. Freddie Gibbs & The Alchemist - Alfredo 2
Released: 2025-07-25
[Alfredo 2]엔 알케미스트(The Alchemist)와 프레디 깁스(Freddie Gibbs) 두 사람이 잘하는 것이 근사하게 담겼다. 초반에 배치된 "Lemon Pepper Steppers"를 들어보자. [Alfredo](2020)에서도 들려줬던 두 사람의 장점, 그리고 프로듀서-래퍼 조합의 시너지가 굉장하다. 영상 매체를 중심으로 한 샘플링, 느와르 무비를 연상케 하는 둔탁하고 어두운 알케미스트 특유의 비트, 느린 BPM에 잘게 쪼개진 리듬에 맞게 인장과도 같은 프레디 깁스의 플로우로 과시를 드러낸다. 특히 빈티지한 사운드와 더욱더 대비되는 깁스의 탁월한 발성과 선명한 전달력은 매번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두 번째 앨범이 첫 번째와 완전히 같진 않다. [Alfredo]에선 [대부, The Godfather](1972)를 레퍼런스 삼아 이탈리아 마피아의 컨셉을 자신의 현실에 녹였다면, 이번엔 단편 영상에서도 보여줬듯이 야쿠자가 주된 테마로 설정됐다. 곡 사이마다 등장하는 스킷(Skit)엔 드라마 또는 다른 영상 매체에서 가져온 샘플을 넣고, 일본을 연상케 하는 단어와 이야기를 함께 풀어냈다. 물론 단순히 느낌을 주는 역할로서 존재할 뿐, 실제 야쿠자의 삶을 나열하거나 묘사하진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잘하는 미국 갱스터의 삶에 일본 문화 또는 야쿠자의 삶을 겹쳐 놓는다. 상상 가득한 이야기를 풀어놓기보단, 진정성 있고 현실적인 랩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명료한 이야기에 여전히 깊게 뿌리 내린 랩은 변함없이 강력하게 작동한다. 음절과 비정형적으로 끊는 특유의 플레이는 건조한 알케미스트의 비트와 맞물려 리듬감을 짙게 만들고, 마디마다 때려 붇는 라임이 만나 폭발적인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듯 시원하게 들린다. 동시에 랩의 빠르기와 관계없이 선명한 발음과 딜리버리는 언제나 들어도 경탄스럽다. 프레디 깁스가 그 많은 프로듀서와 함께 해봤어도, 알케미스트가 쉴 새 없이 앨범을 내놓더라도, 두 사람은 또다시 서로를 찾아 다시 한번 '알프레도'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선택에 대한 이유는, [Alfredo 2]를 듣는다면 모두가 쉽게 이해할 것이라 단언한다.

11. Danny Brown - Stardust
Released: 2025-11-07
대니 브라운(Danny Brown)이 2023년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해 재활 시설에 약 8개월간 머무를 동안 가장 즐겨들었던 것은 100 겍스(100 gecs)의 음악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하이퍼 팝(Hyper Pop), 글리치 팝(Glitch Pop), 디지코어(Digicore) 등으로 대표되는 음악들에 빠져들었다. [Stardust]는 그 결과물이다. 프로스트 칠드런(Frost Children), 제인 리무버(Jane Remover), 8485 같은 하이퍼 팝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 사이에서 대니는 날 것의 에너지가 넘치는 랩을 선보이며 주도권을 놓지 않고 앨범을 이끌어 나간다. 기타 스트로크로 시작해 악기들이 쌓이며 상승하는 첫 번째 곡 “Book Of Daniel”을 지나면 “Green Light”까지 장르의 강렬한 기세가 휘몰아친다. 빠른 템포의 리듬 파트와 여러 질감의 신시사이저가 시종일관 어지럽게 울려 퍼지며 정신을 쏙 빼놓는다.
하이라이트는 “The End”다. 약 9분에 달하는 긴 재생 시간 동안 알코올 중독에 빠졌던 시기에 느낀 감정과 재활 후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과정을 세심한 표현으로 풀어낸다. 이전처럼 기괴한 아이디어로 감탄을 자아내는 부분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대신 그 자리를 음악에 대한 새로운 열정과 섬세한 감정으로 채웠다. 대니는 인생의 가장 어두운 터널 끝에서 새로운 빛을 발견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Stardust]다. 마지막 곡인 “All4u”에서 자신을 지지해 주는 이들을 위해 음악을 계속하겠다고 한 다짐은 앨범의 존재로 지켜졌다.

10. Aminé - 13 Months Of Sunshine
Released: 2025-05-16
‘13 Months of Sunshine’은 과거 열석 달의 달력을 썼었던 에티오피아의 슬로건이다. 에티오피아 이민 2세대인 아미네(Aminé)는 이를 자신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의 제목으로 내세웠다. 첫 곡 “New Flower!”에서 그는 성공을 위해 애써왔던 과정을 정원을 가꾸는 일에 비유한다. 이는 아미네의 아버지가 에티오피아에서 살았을 때 할아버지와 함께 해왔던 일로, 세대에 걸쳐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텼던 지난한 세월을 꿰뚫는 키워드가 된다.
아미네는 두 번째 정규앨범인 [LIMBO]까지는 트랩, 팝 랩 등 주류 힙합 사운드를 주로 차용해 왔다. 그러나 이번엔 신스팝, 하우스, 아프로비츠 등등, 댄서블한 사운드로 앨범을 가득 채웠다. 달라진 사운드는 낮은 톤으로 툭툭 내뱉으며 차근차근 라임을 쌓아나가는 랩과 매우 잘 어우러진다. “New Flower!”, “Vacay”, “Arc de Triomphe” 같은 곡들은 아미네 랩의 매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곡들이다.
흥미로운 건, 밝고 에너지 넘치는 프로덕션과 때로는 침울하기까지 한 이야기가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쾌락 뒤에 찾아오는 허무함에 대해 토로하는 “Sage Time”, 계속되는 문제를 자기혐오로 일축하는 “I Think It’s You” 등은 앨범의 기조를 대표한다.[13 Months Of Sunshine]은 흥겨운 동시에 진중한 양가적인 매력을 품었다. 무심한 듯 툭툭 내뱉는 아미네의 랩은 이 사이의 감정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담백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9. MIKE - Showbiz!
Released: 2025-01-31
마이크(MIKE)는 앱스트랙 힙합(Abstract Hip Hop)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는 래퍼다. [May God Bless Your Hustle](2017)을 시작으로, 걸출한 작품들을 줄지어 발표하며 입지를 굳혀 왔다. [Showbiz!]도 마찬가지로 앱스트랙 힙합의 기조를 이어가는 작품이다.
재즈와 드럼리스를 차용한 사운드는 스타일이 점점 굳어져 전만큼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는 상황에서 마이크가 선택한 돌파구는 올드 팝 샘플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베스 로렌스(Beth Lawrence)의 "La Costa"를 샘플링한 "Water Down"과 보이스 소스를 차용한 "You're the Only One Watching"은 대표적. 여기에 강박에 가까운 수준으로 치밀하게 설계한 구성은 곡 사이의 구분이 어렵게 만들었다. 특히, "Bear Trap"에서의 비트 스위칭과 초반부의 흐름("Watered down", "Man in the mirror", "Artist of the Century")은 경이로울 정도다. 긴 시간 우울증을 겪은 자신의 이야기를 탄탄한 서사로 풀어낸 것도 인상적이다.
[Showbiz!]는 수준 높은 프로덕션과 곱씹어볼 만한 가사들로 듣는 내내 몰입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약 10년간 활동해 오며 어느새 베테랑이 된 음악적 역량이 응축된 작품이라 할만하다. 마이크의 최고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앱스트랙 힙합이라는 영역을 대표하는 래퍼로서의 저력이 여실히 드러났다.

8. Saba & No I.D. - From The Private Collection of Saba and No I.D.
Released: 2025-03-18
사바(Saba)와 노아이디(No I.D.)의 만남은 예상치 못했지만, 결과물은 기대 이상이다. [From the Private Collection of Saba and No I.D.]에서 노아이디는 사바가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최선의 판을 깔아줬고, 사바는 이에 부응하는 활약을 보여준다.
샘플링과 다양한 악기 연주를 더해 재즈 랩(Jazz Rap)의 가장 현대화된 모습을 들려주는 프로덕션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즐길 만하다. 자넷 잭슨(Janet Jackson)의 "I Got Lonely"에서 브라스 파트를 샘플링한 "Breakdown"이나 중독적인 베이스라인으로 도입부터 단숨에 집중하게 만드는 "Crash", "Acts 1.5" 같은 곡에서는 단출한 구성으로도 흡입력을 자아내는 노아이디의 베테랑다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사바의 랩 역시 인상적이다. 느릿느릿하게 플로우를 이어가며 그루브를 자아내는 "Woes of The World"나 변주되는 비트에 딱 들어맞게 플로우를 전환하는 노련함이 돋보이는 "Westside Bound Pt. 4"는 대표적.
사바는 여러 가지 주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룬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과정을 헤어스타일의 변화로 비유한 "Head.rap", 물질적 성공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것을 갈망하는 "How to Impress God" 등은 사바의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을 엿볼 수 있는 곡이다.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아티스트의 만남은 언제나 새롭다. 그 만남이 비범한 결과물로 이어졌을 때는 짜릿하다. [From the Private Collection of Saba and No I.D.]는 오랜만에 짜릿한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7. Dave - The Boy Who Played The Harp
Released: 2025-10-24
데이브(Dave)는 아직 20대지만, 이미 영국 힙합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래퍼다. 그는 [Psychodrama]와 [We're All Alone in This Together]라는 굵직한 정규앨범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절묘하게 주변과 연결하는 놀라운 가사적 성취를 이뤘다. 전작에서 데이브는 성공 이후 달라진 시선과 감정,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을 했었다. 그리고 [The Boy Who Played The Harp]에서 데이브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타이틀에서부터 성경 속 인물인 다윗(David)을 모티브로 삼았음을 숨기지 않는다. '소년'이라는 순수한 본연의 모습과, '종교'라는 절대가치 아래에 있기 때문에, 데이브의 자기성찰적 가사는 [The Boy Who Played The Harp]에서 더욱 신성한 기운을 내고, 위로와 치유라는 목적에 더 닿아있다. '하나님 아버지, 절 용서하소서' 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175 Months"와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Selfish" 등 존재와 역할에 대한 탐구가 이어진다. 개인적 경험을 통해 여성인권에 대해 다루는 "Fairchild"와 마지막 "The Boy Who Played the Harp"를 통해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좀 더 깊은 사유를 하게끔 하는 앨범의 구조는 감탄을 자아낸다.
파고들수록 놀라운 치밀한 가사의 전개는 데이브를 영국 힙합의 범주를 넘어 현재 가장 뛰어난 리리시스트(Lyricist)로 꼽는데 충분하다. 자극적이지 않고, 전체적으로 웅장하면서 지속되는 절제미가 긴장감을 주는 프로덕션도 수준급이다. 그 자체로도 뛰어난 앨범이지만, 그의 지난 정규앨범 두 장과 이어 감상하면 마치 삼부작의 마무리로 느껴져 더욱 감흥이 크다.

6. Mckinley Dixon - Magic, Alive!
Released: 2025-06-06
맥킨리 딕슨(McKinley Dixon)의 [Beloved! Paradise! Jazz!?](2023)는 놀라운 작품이었다.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 데 라 소울(De La Soul)과 같은 거장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름과 동시에 재즈 힙합이 여전히 세련된 방식으로 선보여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Magic, Alive!]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토대는 역시나 재즈와 힙합이지만 앨범 전반에 걸쳐 펑크, 랩 메탈, 가스펠 등 여러 장르들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Crooked Stick”와 “Recitatif”에서 보이는 랩 메탈의 파워풀한 전개는 대표적. 감미롭고 경쾌한 피아노 선율로 진행되는 “Run, Run, Run Pt. II”와 후반부 관악기의 하모니로 전개되는 “Listen Gentle”도 인상적이다. 마치 재즈 바의 라이브 세션을 통째로 가져다 놓은 듯한 풍성한 사운드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를 묶어주는 핵심은 드럼이다. 귀에 익은 일반적인 리듬과는 달리 랩을 하는 도중에도 리듬이 바뀌며 거침없이 필인이 들어온다. 덕분에 혼잡해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랩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감각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의 또 다른 장점은 스토리텔링이다. 시적인 비유들로 이루어진 가사들은 라이브 세션과 함께 마치 뮤지컬처럼 이어진다. 그는 “All the Loved Ones (What Would We Do???)”에서 죽은 이들과 그 폭력이 비롯된 세계를 언급하며 그 모든 삶을 언급하는 데에 딜레마에 빠진다. 앨범 전반에 걸쳐 꾸준히 언급한 ‘Magic’의 비밀은 “Magic, Alive!”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To live forever’s to tell the stories of who light up your eyes (영원히 산다는 것은, 네 눈을 반짝이게 한 이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라는 깨달음을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친다. 그래서 그가 부리는 마법에는 사람의 숨이 가득 담겨있다. 이 놀라운 순간들을 포착한 [Magic, Alive!]를 경험하고 나면, 맥킨리의 음악 세계가 또 한 번 넓어졌음을 납득할 수 밖에 없다.

5. Earl Sweatshirt - Live Laugh Love
Released: 2025-08-22
[Some Rap Songs](2018)는 얼 스웻셔츠(Earl Sweatshirt)의 가장 개인적인 일면이 담긴 작품이었다. 평생 떨어져 살았던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느낀 격한 슬픔은 듣는 이의 마음까지 뒤흔들 정도로 강렬했다. 약 7년이 지나 [Live Laugh Love]에 그는 다시 한번 삶의 단편을 기록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났다. 친구들과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마음 맞는 동료들과 음악을 만든다. 다시는 없을 것 같던 행복 속에서 약간의 불안함과 감사함을 저울질하며 균형을 맞춰 나간다.
음악은 얼이 그동안 보여준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짧게 커팅된 소스들로 만든 중독적인 비트들을 로우파이(Lo-fi)한 질감으로 마감했다. 다만 전보다 명료한 라인의 악기와 소스들로 따뜻하고 밝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INFATUATION”, “Gamma (need the <3)”, “CRISCO”, “exhaust” 등은 앨범 전반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곡들이다. 얼의 랩 역시 일정 경지에 오른 듯한 실력을 보여준다. 웅잔한 비트 위로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는 “Static”이나 약 2분 30초의 러닝타임 동안 쉴 새 없이 랩을 내뱉는 “CRISCO” 등은 얼의 실력을 체감할 수 있는 곡들이다.
“Live”는 그가 현재 느끼는 감정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곡이다. 삶을 원하지 않았던(‘I remember when I ain’t want it’) 그가 가족을 이룬 것에 대한 기쁨(‘I’m glad to be home’)을 온전히 느끼게 된 것이다. [Live Laugh Love]은 긍정적인 삶의 메시지와 뛰어난 음악 덕에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따라왔던 이들이라면 조금 더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삶을 뒤흔든 슬픔을 딛고 올라서서, 다시 한번 살아가며 웃고 사랑하는 얼이 여기에 있다.

4. Billy Woods - Golliwog
Released: 2025-05-09
빌리 우즈(billy woods)의 [Golliwog]은 미국 사회를 비롯한 현시대에 만연한 공포를 직시하는 앨범이다. 마치 부두술 인형처럼, 여전히 인종차별의 아이콘인 골리웍을 연상할 정도로 폭력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실을 은유와 직유로 표현하는 "A Doll Fulla Pins", 지독한 가난의 사슬과 마약, 폭력, 범죄를 피할 수 없는 커뮤니티를 직시하는 "BLK Xmas"가 대표적이다. 빌리 우즈는 이전부터 진부하지 않은 은유와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펼치면서도, 한편으론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사색가로서의 면모를 강하게 드러내 왔다. 이번 역시 그렇다. 오랫동안 곪고 썩은 문제들을 어느 하나에 국한하지 않고 꺼내며 현실을 개탄한다. 혼탁하고 공포스러운 세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문학적인 표현과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여럿 사용하면서도, 꽉 찬 라임을 구사한다. 톤과 플로우는 프로덕션에 맞게 변화하고, 발음의 강약 또한 음절 단위로 극대화한다.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노랫말에 어울리게 프로덕션도 어둡게 이어진다. 컨덕터 윌리엄스(Conductor Williams), 알케미스트(The Alchemist), 케니 세갈(Kenny Segal) 등등, 다양한 프로듀서가 참여했음에도 일관된 호러 코어 스타일로 앨범을 이루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닌, 명확한 우즈의 의도인 셈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어떠한 공포 영화보다도 잔인하고 비관적이며 끔찍하기 때문에, 공포를 조성하는 사운드가 아이러니하게도 구슬프게 들리기도 한다. "Waterproof Mascara", "Counterclockwise", "Corinthians" 등등, 밝은 기조는 모두 거세하고 빈티지한 질감과 적재적소로 등장시킨 다양한 샘플이 내내 이어진다. 굉장한 몰입감을 느끼도록 설정된 장치가 완벽하게 동작하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다.
[Golliwog]은 어쩌면 그 옛날 탄생해 현재까지 생명력을 유지한 골리웍이, 또 다른 골리웍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걱정과 불안에서 나온 결과물인 셈이다. 그리고 트럼프의 극단적인 정책, 이민자와 다인종에 대한 차별, 팔레스타인 학살로 점철되는 현실이 맞닿으면서, 우즈의 이야기는 더욱더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영역으로 확장된다. 폭력과 혐오가 난무하는 2025년에, 빌리 우즈는 그 어떤 앨범보다도 중요하고 필요한 작품을 완성했다.

3. De La Soul - Cabin In The Sky
Released: 2025-11-21
[Cabin In The Sky]는 2023년 멤버 트루고이 더 도브(Trugoy the Dove)가 사망한 후 데 라 소울(De La Soul)이 처음으로 발표한 앨범이다. 앨범은 참여진들 가운데 트루고이의 부재를 확인하는 인트로 “Cabin”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어지는 “YUHDONTSTOP”에서는 포스누오스(Posdnuos)가 공격적인 랩을 뱉으며 그룹의 건재함을 알린다. “Good Health”, “The Package”, “Patty Cake”처럼 트루고이의 사후 벌스가 수록된 곡도 있지만, 대부분 포스누오스가 혼자 곡을 이끌어간다.
포스누오스는 느리지만 착실하게 리듬을 밝으며 그루브를 만드는 랩으로 곡을 채운다. 특히, “Run It Back!!”에서의 랩은 그야말로 일정 경지에 오른 것 같은 청각적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킬러 마이크(Killer Mike), 나스(Nas), 큐팁(Q-Tip), 블랙 쏘웃(Black Thought), 커먼(Common), 슬릭 릭(Slick Rick) 등 배테랑들이 대거 참여해 앨범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중심을 잡는 것은 데 라 소울이다. 중독적인 베이스라인이 이끌어가는 “Sunny Storm”, 소울풀한 기운이 가득한 “Day In The Sun (Gettin’ wit U)”와 “Different World”, 스크래치를 리듬 파트로 활용한 “The Silent Of The Truth” 같은 곡들에서 그룹만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앨범에는 “Just How It Is (Sometimes)”, “Cruel Summers Bring FIRE LIFE!!”처럼 연인과의 소동을 다룬 가벼운 주제에서부터 인생의 진실과 태도 등 진중한 곡들도 섞여있다. 우리의 일상과 맞닿은 친근한 소재들을 성숙한 관점에서 풀어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트루고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동시에 그가 남긴 유산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Cabin In The Sky”까지 들으면,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태도에 자연스레 감화된다. 바로 이어지는 마지막 곡이자 트루고이의 솔로곡 “Don’t Push Me”는 앨범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다. [Cabin In The Sky]는 음악이 생사를 넘어 우리를 연결시켜준다는 강렬한 체험 그 자체다.

2. J.I.D - God Does Like Ugly
Released: 2025-08-08
제이아이디(JID)는 제이콜(J.Cole)이 이끄는 드림빌 레코즈(Dreamville Records)에서 상업적, 음악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오고 있는 래퍼다. [God Does Like Ugly]는 약 3년 만에 발표하는 네 번째 정규 앨범이다. 제이아이디는 판매 실적으로만 음악가를 재단하는 풍토를 비판하며 자신이 정당하게 지금의 위치에 올랐음을 공표한다. 종교적 은유와 대중문화 레퍼런스가 뒤섞인 가사, 단어를 빼곡히 채워넣워 기술적 쾌감을 끌어올린 랩에서 그의 실력이 한층 더 물이 올랐다는 것이 느껴진다. 첫 트랙에서 끌어 올린 기세는 마이애미 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Sk8”까지 쭉 이어지며 그야말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여준다.
그는 흑인 사회 내의 폭력이 엔터테인먼트화되는 것을 거부하고, 실제로 흑인 사회 내에 존재하는 폭력의 악순환과 고통에 대해 토로한다. ‘I don't give a fuck about no industry beef / Ain't nobody give a fuck when Tay was dead in the street’(“Community”)라는 가사는 그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불안함을 받아들이고, 커리어 초반을 훑어보며 소회를 푸는 마지막 곡 “For Keeps”까지 이르면 묘한 해방감이 들면서 잔잔한 여운이 남는다. 첫 곡부터 서사를 착실히 쌓아온 덕분에 현재 제이아이디의 위상 및 탄탄한 앨범의 완성도와 겹쳐지며 자연스레 감화된다.
[God Does Like Ugly]는 제이아이디의 성장담이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상처와 불안감을 안고 살아왔지만, 스스로의 불완전함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한층 더 단단한 자신으로 성장했다. 역동적이고 완성도 높은 프로덕션과 절정에 이른 최상급의 래핑은 서사를 탄탄히 뒷받침한다. 그는 완성도 있는 앨범을 연속으로 발표하며 단순히 랩을 잘하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음악가라는 것을 증명해 왔다. 그리고 [God Does Like Ugly]에 이르러 음악적 역량이 만개했다.

1. Clipse - Let God Sort Em OutReleased: 2025-07-11
무려 16년 만에 클립스(Clipse)가 돌아오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하필 솔로 활동도, 다른 이름도 아닌 클립스였을까? 이제는 과거에 두고 잊었던 이름을 다시 꺼내 의아한 감정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Let God Sort Em Out]을 듣고 나면, 그 의문은 말끔히 사라지게 된다. 푸샤 티(Pusha T)와 맬리스(Malice), 두 사람이 데뷔 이래로 꾸준히 잘하는 가사적인 탁월성과 옹골진 퍼포먼스가 여전히 굉장하다. 주제에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지독할 정도로 생생한 묘사와 사회와 문화 전반의 지식을 활용한 풍부한 컨텐츠를 통해 코크 랩(Coke Rap)의 수준을 끌어올린다.
“M.T.B.T.T.F.”만 들어도 쉽게 알 수 있다. 빈티지한 붐뱁 비트에 음습한 느낌을 전달하는 루프를 필두로 위험하고 급박하게 진행되는 거래 상황을 풀어낸다. 많은 단어와 비유를 사용하면서도 들이붓는 라임과 굉장한 박자 감각은 여전히 발군이다. 소재와 주제에 있어선 첫 곡을 제외하곤 사실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일말의 지루함이 없는 것엔 래퍼로서 압도적인 듀오의 퍼포먼스 때문이다. 현장감 넘치는 단어와 유려한 플로우, 곡에 따라 영리하게 조절하는 톤이 작품 내내 이어진다.
앨범의 또 다른 주역은 바로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다. 단독으로 전곡 프로듀싱을 담당한 퍼렐은 특유의 리드미컬한 비트와 폭발적인 베이스, 풍부하게 사운드를 증폭시키는 신스를 앞세워 두 사람이 랩을 할 최적의 프로덕션을 선사한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가 참여한 “P.O.V”가 예다. 건반 사운드를 여러 겹을 덧씌워 몽환적이고도 기괴한 느낌을 자아내며, 둔탁하게 공간을 울리는 비트의 질감도 적절하다. 특히 맬리스가 랩을 시작하는 후반부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변주를 주어 한층 더 몰입하게 하는 의도까지 영리하다. 추억 속에 남겨질 뻔한 이름은 2025년이 되어 새롭게 충만한 생명력을 얻어, 또 한 번 팀으로서 대단한 성취를 이룩했다. [Let God Sort Em Out]이 바로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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