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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토픽] 2025 국내 랩/힙합 베스트 앨범 10
    rhythmer | 2025-12-29 | 1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리드머 필진이 선정한 '2025 국내 랩/힙합 앨범 베스트 10’을 공개합니다. 아무쪼록 저희의 리스트가 한해를 정리하는 좋은 가이드가 되길 바랍니다.

     

    2024 12 1일부터 2025 11 30일까지 발매된 앨범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10. 에이프 오브롱 - Ape Has Escaped

    Released: 2025-03-26

     

    신인 힙합 프로듀서 에이프 오브롱(Ape Oblong)의 데뷔 EP [Ape Has Escaped]는 기대치 못했던 만족감을 안겨준다. 음산한 건반 멜로디에 날카로운 전자음이 섞여 파열할 듯한 첫 곡 "Cage"부터 마지막 "Freedom"까지, 프로듀서가 주체인 앨범의 가치를 새삼 짜릿하게 드러낸다. 기분 나쁜 긴장감과 웅장함이 엉켜가며, 미지의 세상에 던져진 혼란을 그려내는 듯한 사운드는 마치 제리 골드스미스(Jerry Goldsmith)의 [혹성탈출] 영화음악을 향한 새 시대의 헌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트의 견고함과 독특함 덕분에 의도했을 아이디어에 오롯이 집중하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트랙의 제목을 쭉 이어가다 보면, 에이프 오브롱이 구성했을 서사를 미리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케이(EK), 오도마(O'Domar)를 비롯해 다섯 명의 래퍼가 이를 구체화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랩이 꽤 효과적인 것은, 앨범의 치밀한 컨셉에서 다소 벗어나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에이프 오브롱이 주제어만 던져주고 각자의 이야기를 뱉은 듯한 랩은 [Ape Has Escaped]의 장르 색을 뚜렷하게 한다. 특히 후반 오도마와 로한(Rohann)이 참여한 "Vision"과 "Freedom"은 개인에 사회로 이어지는 통찰력을 잘 담아내며, 앨범을 중량감 있게 마무리한다. 고유한 무드와 컨셉으로 주목도를 높인 후, 충분히 즐길만한 랩/힙합 앨범으로 마감했다는 것이 신선하다. [Ape Has Escaped]는 완성미 있는 장르 음악을 찾아 듣는 이들이 경험해 볼 가치가 있는 흥미로운 앨범이다.


     

    9. 모도, 앰비드 잭 - RUSHHOUR

    Released: 2024-12-28

     

    [RUSHHOUR]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심야버스를 올라타 사람들에게 치이고, 숏폼으로 대표되는 자극에 중독된 일상에서 남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아간다. 현대인이라면 인지하고 있음에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모도(MODO)와 앰비드 잭(Ambid Jack)은 커리어를 막 시작한 래퍼라는 특수한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두 사람은 상반된 톤으로 랩을 한다. 얇게 찌르는 듯한 모도와 허스키한 톤으로 거칠게 내뱉는 앰비드 잭은 묘한 균형을 이룬다. “N26”부터 “RUSHHOUR”까지 이어지는 전반부는 그야말로 정신없이 지나가 혼을 쏙 빼놓는다. 많은 단어를 뱉으면서도 한 마디에도 라임을 빼곡히 채워 넣고, 뛰어난 전달력으로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

    프로덕션도 마찬가지다. 빠르게 내달리며 두 사람의 랩과 보조를 맞춘다. 특히, 전반부에서는 특이한 소스와 일반적이지 않은 리듬 파트의 구성으로 듣는 맛을 더했다. 모도와 앰비드 잭은 특정한 소재로 자신들의 비루한 상황을 세련되게 드러내고, 이것이 사회 전체의 현상으로 이어지게 해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 지점에서 두 사람의 음악적 야심을 느낄 수 있다. 작가주의적 관점을 고수하면서 음악적인 질도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RUSHHOUR]를 듣고 나면, 두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8. 히피쿤다 - Tundra

    Released: 2025-08-31

     

    [Tundra]의 첫 곡 “파수꾼”에서 히피쿤다(Hippie Kunda)는 자신을 ‘이 황무지를 지키는 당당히 지키는 몇 안 되는 파수꾼’으로 상정한다. 이는 현 한국힙합 씬의 상황과 겹쳐지면서 거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앨범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씬, 가정, 사회 등 크고 작은 집단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추구해 나가며 겪은 부침들을 가감 없이 풀어낸다. 이야기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은 랩이다. 히피쿤다는 라임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속도를 조절하며 리듬감을 자아내며 시종일관 랩에 집중하게 만든다. 단어마다 꾹 눌러 뱉는 발음과 탄탄한 발성 덕분에 자연스레 줄거리를 따라갈 수 있다.

    오드플립(ODDFLIP)이 전곡을 책임진 프로덕션은 히피쿤다의 랩을 적절히 뒷받침한다.곡 간의 분위기가 매우 다른데, 주제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이질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Tundra]를 통해 히피쿤다는 ‘삶에 던져진 여성 래퍼’라는 특수한 상황을 개인의 입장에서 구체적인 어휘로 풀어내 자신만의 서사를 완성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춘 랩과 견실한 완성도의 프로덕션은 그의 독기에 힘을 싣는다. 그의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7. 식케이 & 릴 모쉬핏 - K-FLIP

    Released: 2025-01-08

     

    [K-Flip]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샘플링이다. 앨범의 제목처럼 릴 모쉬핏(Lil Moshpit)은 모든 곡에 한국 음악을 샘플링했다. 오케이션(Okasian)의 “Lalala”, 더 콰이엇(The Quiett)의 “2 Chainz & Rollies” 같은 힙합곡은 물론, 실리카겔(Silica Gel), 김사월, 칵스(THE KOXX) 등등, 다양한 장르의 곡을 차용했다. 마지막 곡 “Public Enemy”는 단연 앨범의 백미다. 칵스의 “zeitgeist”에서 따온 전자 기타 리프에 속도감 있는 808드럼과 베이스를 얹어 강렬한 레이지 비트를 완성했다. 원곡 자체가 워낙 에너지가 넘치고 중독성이 있어서 레이지에도 이질감 없이 잘 묻어난다. 식케이(Sik-K)의 랩도 인상적이다.

    식케이의 존재감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곡은 단연 “Lalala (Snitch Club)”이다. 샘플링 원곡을 차용한 가사로 시작해 특정 인물을 향한 비방으로 꽉 채운 벌스가 흥미를 불러일으켜 단숨에 집중하게 한다. 하고자 하는 말이 정확하고 구체적인 덕분에 랩도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국내에서도 꽤 많은 아티스트가 레이지 장르를 시도해 왔다. 식케이와 릴 모쉬핏도 이전 작품들을 통해 레이지를 선보였다. 하지만 [K-Flip]은 다르다. 여러 장르의 로컬 음악을 접목한 참신한 시도가 음악적 완성도로 이어졌다. 메인스트림 사운드의 로컬라이징에 대한 두 사람만의 해석이 담긴 독창성이 빛난다.


     

    6. 플랫샵 - toast recipe

    Released: 2025-10-02

     

    2021년 EP [Khundi Panda Vs Damye Vs Viann Vs Noogi]로 등장한 밴드 플랫샵(Flapshop)은 굉장히 익숙하면서도 신선했다. 4년 만에 발표한 정규 1집 [Toast Recipe]도 비슷하다. 그래서 더 반갑다. 네 명이 뭉쳐 만든 결과물은 굳이 찾자면 담예(Damye)의 음악과 닮아있지만, 플랫샵 고유의 맛이 충분히 살아있다. 펑크(Funk)와 알앤비, 힙합, 디스코, 일렉트로닉, 보사노바 등의 장르 요소를 팝적인 터치로 능수능란하게 버무린 프로덕션이 부담스럽지 않다.

    무엇보다 넷의 시너지가 강하면서 동시에 각자의 역할이 앨범 내내 분명히 구분되는 것도 흥미롭다. 비슷한 바이브를 느낄 수 있는 다른 팀과 플랫샵을 확실히 차별화하는 이는 쿤디판다다. 최고 수준의 랩을 적재적소에 뱉으며 곡에 활력을 준다. 실없는 농담 같은 재치 있는 유머와 일상적인 보편의 감정을 건드리며 묘한 감동을 주는 가사도 귀를 잡아끈다. 편하고 질리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지만, 노골적인 친대중적 접근과는 거리가 먼 고유함과 완성미를 지닌 플랫샵의 다음 앨범도 듣고 싶다.


     

    5. 재림 & 선진 - GMBT

    Released: 2025-03-03

     

    힙합 프로듀서 선진(Sun Gin)과 재림이 의기투합한 [GMBT]는 흥미롭게 즐길만한 요소가 가득하다. 재림은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래퍼로서 자신의 우월함을 뻔뻔하고 공격적인 어조로 전시한다. 무엇보다 시비조에 가까운 가사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것은 그것과 배치되지 않는 탁월한 랩 실력이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재림은 주제를 극도로 단순화하고, 대부분 한 문장 안에서 승부를 본다. 이로써 랩 자체를 듣는 재미를 배가하는 데 성공한다.

    승부수는 첫인상과 달리 유머러스한 가사가 주는 의외성, 그리고 마치 짧게 유영하다 멈추는 것이 이어지는 듯한 그루브다. 느릿하지만 절묘하게 속도감을 만드는, 변칙적인 박자 감각 덕에 선진의 비트와 밀고 당기기를 하는 듯한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선진의 프로덕션은 재림의 랩이 돋보이게 잘 지원하면서, 그 자체로도 발군이다. 선진은 붐뱁과 드럼리스(Drumless) 힙합 사이에서 절묘히 감상에 젖을 무드를 채워나간다. 빈티지한 먹먹함을 잔뜩 담은 루프 위로 청량한 악기 사운드가 겹치고, 피치를 올리는 등 왜곡된 보컬 샘플로 이를 감싸면 찾아오는 뭉클함이 [GMBT]의 핵심이다. 감성적 가사로 채운 "옥산"과 "라일락"이 더욱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단연 비트의 힘이다.

    길지 않은 22분에 무려 11곡을 채운 앨범의 구조도 효과적이다. 재림의 랩 스타일 때문에 심심해질 법한 타이밍에 분위기를 환기하듯 다음 곡으로 넘어가며, 짧지만 풍성한 경험을 제공한다. [GMBT]는 랩/힙합 장르만의 신선한 재미와 완성미를 갖춘, 주목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한국 힙합 언더그라운드 앨범이다.


     

    4. 루시갱 - Home Sweet Home

    Released: 2025-03-29

     

    루시 갱(Luci Gang)의 [Home Sweet Home]은 오롯이 힙합 앨범으로서 명확한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Who's That?"부터 의도는 명확하다. 콘트라베이스와 브라스 소스를 사용해 재즈 랩의 전형적인 맛을 끌어냈으며, 그 위로 유려한 플로우를 얹어 포문을 힘차게 열었다. "Take It Slow"에선 건반 루프의 변형을 통한 프로덕션에 숨도 쉬지 않는 듯 빠르게 랩을 쏟아내고, "쿵쿵쿵"을 통해선 의성어를 활용해 귀엽고도 중독적인 후렴구를 자아냈다. "Good Kid, G-City"에선 쥐펑크(G-Funk)의 영향권에 있는 비트와 능수능란한 랩이 즐겁다.

    이 외에도 붐뱁과 트랩을 바탕으로 여러 시대와 스타일을 넘나든다. 13곡 중에서 유사한 곡이 무엇인지 쉽게 꼽을 수 없을 정도로, 프로덕션을 다채롭게 꾸렸다. 루시 갱이 프로듀서로서 단독으로 이끌었던 [Lucifer's Therapy](2021)에선 유사한 톤과 사운드로 앨범을 채웠다면, 신작에선 럭키 밴도(Lucky Bando)와 다수 합을 맞춘 점이 다르다. 9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로 전작과는 훨씬 풍성한 질감의 앨범을 꾸렸다. 물론 프로덕션이 자칫 난잡하고 통일성 없이 느껴질 만도 하다만, 오히려 들으면 들을수록 물 흐르듯 모든 곡이 하나처럼 유려하게 들린다. 주인공인 루시 갱의 역할이 한몫했다. 13곡에 30분이 넘는 분량에 비트가 끊임없이 변모하는 점에 맞춰, 플로우를 능수능란하게 뒤바꿔 일정한 완성도의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쿵쿵쿵", "Plan A Only", "님아", "Home Sweet Home"에선 랩과 보컬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리듬감을 유지한다.

    가사에서도 주목할 요소가 상당수 있다. 특히, 다채로운 레퍼런스와 함께 단어 사용이 돋보인다. 예능, 드라마, 정치, 음식 등등, 여러 분야에서 끌어와 내용을 풍성하게 했다. 또한 '공공공', '펑펑', '떵떵'과 같이 첩어를 풍성히 활용해 말맛을 높이는 선택도 주효했다. 맘에 드는 상대방에 대한 발칙한 상상이 담긴 "쿵쿵쿵"은 의성어를 통해 중의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센스가 무척 영리한 순간이다. 집 밖의 시간에 대한 생생한 내용의 "Home Sweet Home", "아리랑"의 가사를 활용해 상대방에 대한 마음을 영리하게 표출한 "님아", 에어포스원을 통해 젊음과 낭만의 이미지를 그린 "Airforce 1"은 소재 자체는 독특하거나 특별하지 않더라도,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즐비해 반복해서 듣게 만드는 곡이다. [Home Sweet Home]은 프로듀서로서, 래퍼로서, 그리고 힙합 앨범으로서 본질적인 덕목을 충실히 이행하는 작품이다. 앨범명처럼 아늑한 자신의 영역에서 빼어난 랩을 들려주며 수많은 래퍼 사이에 자신을 각인시켰다. 루시 갱의 다음 앨범이 몹시 기다려진다.


     

    3. 에피 - pullup to busan 4 morE hypEr summEr it's gonna bE a fuckin moviE

    Released: 2025-08-01

     

    레이지(Rage), 하이퍼팝(Hyperpop) 등의 장르가 유행하면서, 국내에서도 이를 시도하는 아티스트가 늘어났다. 에피(Effie)도 그중 하나다. 그는 올해 초 발표한 EP [E]를 통해 주목을 받았다. 약 5개월만에 발표한 새로운 EP [pullup to busan 4 morE hypEr summEr it's gonna bE a fuckin moviE]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파티튠에 가까운 댄서블한 곡들로 구성되어있다. 에피도 전작과 달리 랩에 가까워진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덕분에 개성이 살아났다. 드럼과 각종 소스가 어지럽게 울리며 사운드가 고조되는 가운데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뒤집어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첫 곡 “More Hyper”에서부터 에피의 존재감이 확연히 드러난다.

    전형성을 벗어난 진행, 특유의 애드리브 활용, 그리고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연출을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쉴 틈 없이 몰아친다. 음가를 천천히 올렸다 내리며 자연스레 빠져들게 만드는 “2025기침”의 후렴구와 되는 대로 내뱉는 것 같은 날 것의 감성이 살아있는 “Can I Sip 담배”의 벌스는 대표적이다. 프로듀서 킴제이(Kimj)는 이번에도 세련된 프로덕션로 앨범의 뼈대를 세웠다. 서정성은 배제하고 어지럽게 울리는 신시사이저와 드럼, 고의로 믹싱을 안 한 것처럼 스피커를 찢고 나오는 베이스 라인이 어우러져 시종일관 몸을 흔들게 만든다.

    [pullup to busan 4 morE hypEr summEr it's gonna bE a fuckin moviE]는 매우 강렬한 작품이다. 6곡, 약 13분의 짧은 분량 안에서 휘몰아치는 사운드는 머리가 인식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도록 한다. 형식의 경계를 허물고 음악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흘러가는 랩은 에피라는 음악가의 개성을 돋보이게 했다. 반년도 채 안 된 시점에서 완성도 있는 앨범을 또다시 발표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앨범을 들으면, 그가 왜 단시간에 주목받게 됐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 바이스 벌사 - ANIMAL FKRY

    Released: 2025-06-13

     

    [ANIMAL FKRY]는 비장한 사운드로 복귀를 알리는 첫 트랙 "Back In The Game"부터 쉽게 떨치기 힘든 쾌감을 동반한다. 바이스벌사(viceversa)의 길다면 긴 공백기가 만든 서사 덕분이기도 하고, 몰아치듯 달려드는 특유의 랩이 여전히 유효한 것을 확인하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는 앨범 전체에 걸쳐 아마도 공백기를 포함해 그간의 경험과 감정을 쏟아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바이스벌사는 그런 평범하다면 평범한 주제를 굉장히 극적으로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앨범 전체에 걸쳐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동물, 야생으로 치환한 장치는 단순하지만 효과적이다. 자칫 유치해 보이기 쉬운 아이디어도, 기술적으로 날것의 느낌을 극대화하는 그의 랩과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여전히 거칠고 하드코어한 단어들이 난무하는 가사로 꽉 채워져 있지만, 그가 만든 세계관 속에서 내면에 쌓인 분노를 해소하는 과정에 가깝게 다가온다. 바이스벌사의 랩 기술 자체에 집중해도 손색이 없는 앨범이다. 산만하게 내지르다가도 뛰어난 박자감과 리듬감으로 빠르게 균형을 맞춰 이어가는 모습은, 앨범에서 여러 번 감탄을 자아낸다. 저스티(Justy)가 모든 트랙에 참여한 프로덕션도 꽤 감각적이면서 견고하다.

    [ANIMAL FKRY]는 바이스벌사의 재능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그가 좋은 앨범을 만드는 역량을 지닌 아티스트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물론 그를 익히 알고 있던 이가 아니더라도, 장르 음악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한국 힙합 앨범이다.

     



    1. 비프리 - Free The Mane 3 “Free The Mane VS B-Free”

    Released: 2025-10-03

     

    [Free The Mane 3 "Free The Mane VS B-Free"]는 시리즈 최고작이면서, 그 자체로도 단연 흥미로운 힙합 앨범이다. "FTM3 Intro"에서 "네르갈"까지 이어지는 초반부터 비트만으로 압도적 몰입감을 선사한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악기와 멜로디를 쌓아 단순한 루프(Loop)를 듣는 듯한 흥겨움을 주지만, 그 사이에 지속적으로 신선한 사운드와 장르 요소들을 계속 찾게 되는 감각적 비트의 완성미는 놀라운 수준이다. 이후 다양한 스타일의 구현에도 프로듀서로서의 고유함과 장악력이 느껴진다.

    그간 시리즈의 약점으로 여겨진 가사와 래핑도 완성미를 높였다. 다행인 점은 시리즈의 기조를 해치지 않고 유지했다는 점이다. 최승로를 암살하기 위해 과거로 향했다가 과거에 갇히고, 비프리를 만나 대결한다는 즉흥적이고 반서사적인 콘셉트는 사실 앨범의 감상에 별반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Free The Mane 3 "Free The Mane VS B-Free"]는 그간 비프리가 보여준 행복한 삶을 위한 각자의 태도, 이를 둘러싼 제도권을 향한 분노가 주제의식으로 비교적 명확하게 담겨있고, 일상성이 주는 애환도 잘 살렸다. 그의 천부적이라 할 수 있는 박자 감각도 전혀 녹슬지 않고 랩을 듣는 재미를 채워준다.

    [Free The Mane 3 "Free The Mane VS B-Free"] 이후 시리즈가 계속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Free The Mane 3 "Free The Mane VS B-Free"]가 [Free The Beast] 이후 계속된 아쉬움을 상쇄시켜 주는 멋진 작품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비프리가 보여줬던 음악적 재능이 뻔하지 않은 모양으로 잘 발현됐다는 점은 그의 다음 음악적 행보를 더 기대하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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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수린무관탈출기원 (2025-12-29 18:37:32, 106.101.203.**)
      2. 나도 야마단이지만 프더메3>케이플립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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