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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한국 힙합은 어떻게 극우의 언어를 입었나 : 리치 이기와 비와이
    rhythmer | 2026-06-22 | 62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 황두하

     
    2026년 한국 힙합에서 가장 큰 화두의 중심에 있었던 두 인물은 리치 이기(Rich Iggy)와 비와이(BewhY)다. 두 사례는 성격이 다르지만, 함께 놓고 보면 현재 한국 힙합의 한 흐름을 드러낸다. 일부 10·20대 남성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형성된 극우적 정서가 힙합의 언어와 퍼포먼스를 통해 증폭되는 장면이다. 물론 이것이 한국 힙합 전체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 한국 힙합을 이루는 여러 축 가운데, 온라인 남성 커뮤니티의 정서와 맞닿은 흐름이 이전보다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 흐름을 이해하려면 한국 힙합의 형성 경로를 먼저 볼 필요가 있다. 한국 힙합은 초창기 PC통신 동호회에서 출발해 힙합플레이야(HIPHOPPLAYA), 힙합엘이(HIPHOPLE) 같은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취향과 담론을 만들어왔다. 이 공간은 단순한 팬 커뮤니티가 아니라 래퍼와 리스너가 경계를 허물고 어우러지는 교류의 장이자, 취향과 평판이 빠르게 형성되는 담론의 장이었다. 버벌진트(Verbal Jint)가 IP 의혹과 그에 따른 비난을 [누명]이라는 앨범의 서사로 끌어들인 일, 손심바가 ‘110.12’ 다중계정 논란 이후 커리어가 사실상 중단된 일은 한국 힙합이 얼마나 오랫동안 인터넷 게시판 문화와 밀착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2010년대에 이르러 이 온라인 기반의 힙합 문화는 일리어네어(1LLIONAIRE)를 중심으로 한 머니 플렉스, 자기 증명,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라는 가치와 결합했다. 미국 힙합에서 흑인 래퍼의 성공은 단지 개인의 부가 아니라, 구조적 차별과 빈곤을 통과한 커뮤니티 전체의 상징적 승리로 읽힌다. 제이 콜(J. Cole)이 릴 펌프(Lil Pump)를 디스하는 "1985"에서도 젊은 흑인 래퍼가 돈을 버는 모습 자체는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 역시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한국으로 옮겨온 힙합에는 그 소수자성이 상당 부분 탈각됐다. 대신 ‘노력해서 이기고 돈을 벌라’는 능력주의적 메시지만 강하게 남았다. 그리고 이 서사는 <쇼미더머니>를 거치며 대중화됐다. 힙합은 더 이상 소수 취향의 음악이 아니라 젊은 남성들이 선망하는 성공의 언어가 됐고, 그 과정에서 온라인 남성 커뮤니티의 냉소, 혐오, 극우적 정서가 힙합의 말투와 퍼포먼스를 통해 직접적으로 표면화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리치 이기 : 밈이 된 혐오

    리치 이기의 경우는 이 변화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5월 23일 단독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이었는데, 날짜와 시간, 티켓 가격이 모두 ‘5·23’에 맞춰져 있었다. 5월 23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이다. 이후 과거 곡들에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조롱하는 가사와 미성년자·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삼거나 성범죄를 암시하는 표현이 드러났고, 이름의 ‘이기’ 역시 일베식 말투와 연결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결국 공연은 취소됐고 리치 이기는 사과문을 냈지만, 더콰이엇(The Quiett), 팔로알토(Paloalto), 딥플로우(Deepflow) 등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베테랑 래퍼들의 책임 문제까지 번지며 사건은 한국 힙합의 공적 이미지와 씬 내부의 책임 문제로 확장됐다.

    다만 리치 이기를 정치적 신념을 가진 래퍼로 보기는 어렵다. 그의 가사들은 정교한 정치적 주장이라기보다 고인 조롱, 여성 혐오, 미성년자 대상 성적 표현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식 금기 놀이에 가까웠다. 논란이 커지자 그는 이를 “유명세를 위한 것”이었다고 사과했다. 만약 그것이 확고한 정치적 신념이었다면 쉽게 철회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리치 이기의 커리어는 신념보다 밈에 기대어 세워졌고, 바로 그 때문에 밈이 사회적 책임과 충돌하는 순간 커리어 전반이 함께 흔들렸다.

    여기서 이 사태를 ‘검열’의 문제로 보는 것은 부정확하다. 리치 이기의 음원은 이미 발표됐고, 논란의 핵심은 음원의 사전 차단이나 삭제가 아니라 그 표현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공연 기획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표현의 자유가 있다면, 그 표현을 비판할 자유 역시 있다. 만약 리치 이기가 그 비판이 부당하다고 믿었다면 그는 사과가 아니라 논쟁을 택했어야 한다.

    힙합 역사에서도 논란이 곧 검열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1990년대 투 라이브 크루(2 Live Crew)는 외설 논란에 맞섰고, 2000년대 초반 에미넴(Eminem) 역시 각종 비판 속에서도 자신의 표현 방식을 쉽게 철회하지 않았다. 에미넴이 훗날 사과하거나 후회를 표한 경우는 대체로 특정 소수자에 대한 모욕적 표현이 타인에게 준 상처를 인정한 경우에 가까웠다. 리치 이기는 금지당한 것이 아니라 비판받았고, 그 비판 앞에서 자신의 표현이 신념이 아니라 유명세를 위한 조롱이었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비와이 : 신념과 상징의 접속

    비와이는 리치 이기와는 다른 경우다. 리치 이기가 인터넷 극우 밈을 자극의 재료로 삼았다면, 비와이는 극우 담론권에서 유통되는 부정선거 음모론, 반공주의, 이승만 표상 등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을 자신의 음악 안으로 끌어들였다. <쇼미더머니12> 세미파이널에서 권오선의 "W.I.N." 피처링 중 나온 ‘싹 다 까 보면 놀라겠지, 그 급은 마치 선구안 위’라는 가사가 ‘선관위’를 연상시킨다는 해석을 낳은 것은 상당히 정치적인 장면이었다.

    이후 5월 29일 공개된 정규 3집 [POP IS CRYIN’]에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육성 샘플링과 ‘공산주의’를 직접 언급한 가사가 포함되며 다시 화제가 됐다. 비와이는 해당 가사 일부가 음원 사이트에서 빠진 것에 대해 “자체 검열이 아니라 단어를 강조하기 위해 스스로 삭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앨범 발매 공연 관련 영상에서 관객들이 ‘재선거’, ‘이재명 사형’, ‘멸공’ 등의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 온라인에 공유되며 논란이 이어졌다.

    다만 [POP IS CRYIN’] 전체를 정치적 선전물처럼 읽는 것은 오독에 가깝다. 이 앨범에서 정치적 표현들은 단순한 정치 랩이라기보다, 상실과 재건, 가족과 생존이라는 개인 서사 안에서 작동하는 장치에 가깝다. 이 앨범은 정치적 구호만으로 구성된 작품이 아니라, 오랜 공백 이후 비와이가 쌓아온 랩 퍼포먼스와 서사적 강점을 밀도 있게 밀어붙인 결과물이다.

    비와이의 커리어 초기에 전면에 놓였던 것도 우파 정치가 아니라 한국 개신교적 신념이었다. 이 신념은 그의 음악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축으로 작동해왔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가 보수 우파적 가치와 강하게 접속해온 맥락을 고려하면, 그의 최근 행보를 완전히 돌발적인 변화로만 보기는 어렵다. 특히 한국 개신교와 결합한 뉴라이트 역사관은 인터넷을 통해 청년 세대 일부에게 선명한 이분법을 제공해왔다.

    그것은 복잡한 현실을 ‘진실과 거짓’, ‘자유와 공산주의’, ‘애국과 반국가’의 구도로 단순화하며, 이분법적 쾌감과 심리적 보상, 반발심과 위기의식을 동시에 자극한다. 비와이의 최근 행보가 눈에 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음악이 극우나 대안우파에 관한 깊은 담론을 담고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몇몇 상징과 단어, 샘플만으로 강한 반응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인터넷 극우 정서의 작동 방식과 닮아 있다. 복잡한 논의는 생략되고, 선명한 편 가르기와 상징의 쾌감이 먼저 도착한다.

    그렇다고 비와이의 커리어를 지금의 정치적 이슈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는 <쇼미더머니5>에서 엄청난 화제성을 얻으며 우승했고, 이후에도 꾸준히 앨범 단위의 작업물을 발표하며 자신의 디스코그라피를 쌓아왔다. [POP IS CRYIN’] 역시 단발성 논란이 아니라, 오랜 커리어와 개인 서사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일정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래서 비와이의 사례는 더 복잡하다. 그는 리치 이기처럼 밈 하나에 기대어 무너진 사례가 아니라, 이미 구축된 음악적 서사 위에 한국 개신교와 우파 정치, 젊은 남성 힙합 소비층의 정서가 겹쳐진 경우다.

     

     

     

    한국 힙합의 특수한 정치적 장면

    이 점에서 한국 힙합의 현재 장면은 조금 특수하게 보인다. 세계적으로 힙합이 우파적 신념과 결합하는 경우는 오히려 예외에 가깝다. 힙합은 미국에서 흑인·소수자 문화로 출발했고, 각국에서도 국가권력과 검열, 빈곤과 부패를 향해 발화하는 언어로 쓰여왔다. 이란의 투마즈 살레히(Toomaj Salehi)는 정부 비판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고, 튀니지의 엘 제너럴(El Général)은 벤 알리 정권을 비판한 "Rais Lebled"로 체포됐다. 중국의 인쓰(In3), 위구르 래퍼 야샤르 쇼흐렛(Yashar Shohret)의 사례도 비슷한 맥락에서 거론된다.

    물론 위와 같은 사례를 한국의 상황과 곧장 등치할 수는 없다. 이들은 훨씬 더 직접적인 국가 폭력과 검열 속에서 음악을 해온 사례에 가깝다. 다만 이런 예시들은 힙합이 여러 지역에서 권력에 저항하는 언어로 쓰여왔다는 점을 환기한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 힙합의 현재 상황은 눈에 띈다. 한국 사회가 지금 같은 방식의 국가 폭력이나 검열 아래 놓여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힙합이 역사적으로 권위주의와 억압에 맞서는 언어로도 작동해왔다는 점을 떠올리면, 한국에서는 일부 힙합이 오히려 과거 군부정권과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역사적 흐름을 부정하거나 조롱하는 감각과 접속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게 다가온다. 반공주의, 부정선거 음모론, 인터넷 극우 밈과 결합한 ‘우파 힙합’ 혹은 ‘극우 힙합’처럼 보이는 흐름은 바로 그 지점에서 한국적 특수성을 갖는다.

    물론 이것이 한국 힙합의 전부는 아니다. 지금도 한국 힙합 안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한다. 다만 2026년의 몇몇 장면은, 그 다양한 흐름 사이에서 젊은 남성 커뮤니티의 정치적 감각과 힙합이 만나는 축이 더 이상 주변적인 현상만은 아니라는 점을 드러낸다. 더 눈여겨볼 점은 이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민감한 극우적 발언이 충분한 맥락이나 논의를 거치기보다, 금기 파괴와 파격적 가사라는 힙합의 장르적 매력 안에서 소비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블랙넛(Black Nut)의 가사들이 오랫동안 여성 혐오와 성적 모욕 논란을 낳았음에도, 동시에 ‘선을 넘는 래퍼’, ‘남들이 못 하는 말을 하는 래퍼’라는 식의 쾌감으로 받아들여졌던 장면은 이를 보여주는 선례다. 한국 힙합에서 논쟁적 표현은 종종 담론의 내용보다 먼저 태도와 자극으로 소비된다. 이것이 일시적 유행으로 끝날지, 혹은 한국 힙합의 한 세대적 표식으로 남을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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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힢핲 (2026-07-03 15:28:04, 211.235.74.***)
      2. suyoung님 댓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는데 글의 흐름도 이상하고 비문 투성이네.
      1. suyoungbeamr (2026-07-01 21:18:03, 117.111.149.*)
      2. 감싸는척 하면서 아티스트 마저 우매함이 느껴지게 돌려까는 화법은 뭔가요 ?
        감정적으로 억압받는 세대인 동시에 외면받는, 시대적 환경에서의 저항의식은
        무조건 빼먹죠?
        예술계든 언론 메체든 아무도 10대-20대 남성의 삶을 들여다보는데에는 관심이 거의 없습니다. 있긴 합니다만. 일종의 루저 프레임을 구축하면서 교묘히 성별간의 차이를 강조하는척 감정을 죽이는 식으로 쓰이죠. 이어져 본질적으로 지금 한국사회에 굳혀진 성별관입니다. 이와 맞물려서 생긴 저항의식의 배경. 한국의 노동 시스템, 교육 제도 가족관 경쟁(peer,age) 등 설명하기엔 힙합 칼럼이기도 하고 너무 길어지니 생략하겠다만 솔직하게
        이 모든 배경을 다 수용하지 못해서, 작성자 본인 스스로도 당연한 감정에 대한 부분이 평론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대중사회에 잠식당해서 어쩌면 이런 견해를 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 감상은 참담합니다.
        태어나자 마자 겪는 의무적인 낙인부터... 현재 많은 젊은이들은 그런 환경에 노출되어 10대인 학생때부터 약한 자아와, 자존감 문제를 겪고 있지만, 그걸 회복해주는 사회적인 장치가 너어무 부실합니다. 없는거나 마찬가지에요
        그러니까 남성들 중심으로 음지에서 시대저항 적인 움직임이 촉진되는 겁니다 자존감을 버리고 주체가 없이 억눌려왔던 감정만 표출하고 책임과 감정이 결여된 악순환이 되고 극우화가 되는것도 이런 바탕을 가지고 있어요 .
        참 안타까워요. 글쓴이분도. 그래도 글로써 사회적 명망을 가지신 분이신데 사회적인 시선을 왈가왈부 할만큼 깊지도 않고 객관적이지 않은 문체에요.. 좀더 주변을 사랑으로 받아드릴려고 노력을 하고 이념이 담기지 않은 책을 읽으면서 견을 키우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글쓴 분에게 드리는 사랑입니다.
        마지막으로 선민의식에 투영된 시민감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진 말아주세요 타자에게 외면한 만큼의 압박과 화살은 전부 사회에게 퍼지고 본인이 말한 목구멍으로 돌아옵니다. 자아실현에 집중한 삶의 자세로 직업적 소명의식을 가져주세요
        복잡한 현실을 '극우화' 로 구도로 단순화하며, 이분법적 쾌감과 심리적 보상, 반발심과 위기의식을 동시에 자극을 유도하시는 본인이 지칭한 타자들과 별반 다름없는 글쓴이님!!!
      1. dodee (2026-06-30 12:44:05, 211.234.206.***)
      2. 앨범에 대한 음악적 리뷰와 뮤지션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태도와 파급력을 다룬 칼럼을 따로 분리한 리드머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었다고 생각해요. 비와의의 경우 앨범 자체를 잘 만들었고, 마니아들이 열광할 요소를 잘 녹여낸 앨범이라 리뷰 내용에도 어느 정도 공감했습니다.

        힙합의 저항성에 대한 내용에 불만인 분들이 꽤 보이는데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이 칼럼이 힙합의 전체가 저항과 인권을 다뤄야 한다는 글이 전혀 아니잖아요. 당연히 힙합으로 파티, 돈, 범죄, 마약, 저항, 인권, 자유 등 다양한 걸 다룰 수 있는 거고요. 그걸 억압하는 국가적 규제라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멋대로 가사에 자신의 모든 걸 배설하고 합법적으로 발매까지 합니다. 하지만 음모론, 가짜뉴스, 인권침해, 성희롱, 범죄 묘사 등 문제가 될 내용과 표현이기에 책임을 요구하는 개인과 단체의 목소리를 자유에 대한 억압이라고 한다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예술이라는 도구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 불공정과 불평등에 대해 다뤄왔거든요. 쉽게 말해 인간 누구든 억압받지 않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기 위한 역할을 해온 게 예술이었고요. 그런 주제만 다뤄야 된다는 게 아니라 넓게 봤을 때 인간을 더 자유롭고 순수하고 정직하고 서로 해치지 않고 존중하도록 만드는 게 예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는 거죠. 반대로 국가, 기업, 이념, 권력, 계층 시스템을 노래하고 지키자는 내용이 예술이 되면 만듦새부터 예술적인 요소가 줄어듭니다. 획일화되고 창의성이 줄어들게 되는데 그런 걸 보고 듣느니 군가나 교가를 부르고 듣는 게 낫죠. 물론 그런 걸 듣고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 거고 당연히 존중해야 될 테고요.

        한국에서의 힙합이 우파적 신념과 결합하는 현상이 전 세계 평균 기준으로 볼 땐 예외에 가깝다는 진단은 억측이 아니라고 봐요. 한국힙합은 부정할 수 없이 1020~30 남성들이 주 수요층이고 뮤지션들이 음악을 통해 드러내는 정서와 가사 표현들 또한 수요층이 공감할 수 있고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음악으로 변모해왔거든요. 많이 버는 돈, 많이 쓰는 돈, 보통의 삶에 대한 무시, 가난에 대한 멸시, 여성비하적 자기과시, 중고딩들이 좋아할 뜬금포 섹드립과 고인비하 등 온라인에서 자주 언급되고 밀어주는 아티스트들에게 쉽게 찾을 수 있는 포인트들이죠. 돈을 벌어야 되고 아티스트 본인도 그 문화에 동의하니 그런 표현들을 쓰는 거겠죠.

        저는 한국힙합이 의무적으로 인권을 얘기하고 진중해야 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힙합이 대단하고 특별해서가 아니라 힙합 역시 허약하고 별거 없는 표현 틀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의 정서와 욕망이 그대로 투영돼버릴 수밖에 없는 표현의 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힙합이 멋지고 안 멋지고의 문제도 아니죠. 그냥 누군가들이 할 말이 있는데 힙합으로 하는 것일 뿐. 걍 개인들의 표현일 뿐인 걸 너무 신격화할 이유가 없는 거죠.

        한국이 6.25전쟁을 겪었던 국가인데 '멸공' 자체를 부정하는 국민은 없어요. 대한민국에 살면서 누가 멍청하게 남침을 이해하고 그들의 독재와 공산주의를 선호하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2026년이고 북한은 이제 한국과 별개의 국가라고 선을 긋는 지경에 와있어요. 게다가 정작 북한과 전쟁을 일으키려고 국민들 몰래 도발을 한 건 자칭 애국자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애국보수 대통령 윤석열이었거든요. 정직하게도 증거까지 다 남겨놔서 외환죄가 입증된 상황이고요. 심지어 쪽팔리게도 북한이 그 도발들을 다 참고 무시해버려서 전쟁이 안 나버렸죠. 80년대였다면 도끼 만행 사건처럼 최소 유혈사태가 벌어졌을 텐데 걔네들도 이제 지킬 게 있던 거죠.

        김건희가 선출 공무원도 아닌 주제에 뒤에서 어떤 식으로 국정에 관여했고 갑질을 했는지, 얼마나 많은 돈을 받아먹고 군림을 하려고 했는지 증거를 다 보고 혐의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힙합 아티스트들을 포함해 많은 예술가들이 그런 부분을 비판하고 조롱하지 않는 게 대한민국의 오늘입니다. 예술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조차 강한 지도자, 갑과 을의 명확한 경계, 계층 사다리의 붕괴, 가난한 자들은 게으를 거라는 신념, 내가 번 돈을 모두 훔쳐갈 도둑놈들이라는 의심을 자엽스럽게 하는 게 오늘날 대한민국 젊은 세대들의 시대정신인 거고요.

        제대로 달고 있는 현장 사진들이 있음에도 태극기 뱃지가 돌아가 거꾸로 된 걸 비판하면 애국자로 올려치기를 받을 수 있는 게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이에요. 부정선거는 한국의 투표 시스템상 불가능한 일이라 혐의점이 없다는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선관위의 부실관리를 어떻게든 끼워넣어서 교묘하게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게 올림픽공원 시위의 본질인데도 그런 건 절대 비판하지 않죠. 진짜 코미디는 국가 단위의 공정해야 될 선거를 실제로 조작하고 부정선거를 저질러 유죄를 받은 건 이승만이라는 거예요. 가짜뉴스가 아니라 진짜뉴스.

        2030 세대, 혹은 청년 남성들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위협적인 권력이 뭔지는 알겠는데 정말 비상식적으로, 갑질 마인드로, 경제를 방관하고 전쟁의 위험까지도 불사하려고 했던 폭력적이고 무책임했던 지도자와 그를 지키려는 무리들이 그들에게 어떤 대상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장애인, 노인, 여성, 소수자, 학생들에 대한 지원을 끊고 세금으로 대통령실을 초호화 호텔식으로 불법 개조한 이들이 그들에게는 든든한, 하나님이 선택한, 북한과 중국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줄, 기업과 부자와 갑의 독식 시스템을 유지해줄 자비로운 왕처럼 여겨졌던 걸까요?

        비와이는 이미 영향력이 있는 뮤지션이죠. 그리고 리치이기의 경우 1020, 혹은 30세대의 정서와 정치적 밈 소비 현상을 잘 보여주는 적절한 포지션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란은 두 뮤지션 모두에게 일어났지만 비와이는 영리하고 안전하게 단어를 사용했고, 리치이기는 리스크를 너무 고려하지 않았기에 희비가 교차한 거라고 보고요. 아직 20대고 30대인 두 래퍼의 음악들에 현재 2030 남성들이 평균적으로 더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더 위협으로 느끼는 이념과 인물,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가사에 담는 건 자연스러운 거라고 봅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그 세대들이니까요.
      1. 이름이무얼까 (2026-06-26 10:10:13, 210.206.39.***)
      2. 여러분은 지금까지 보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극우라고 폄하하는 칼럼리스트의 평론을 읽으신겁니다
      1. jksep13 (2026-06-25 18:43:54, 183.101.248.***)
      2. 반공이 극우면 공산주의 찬양은 뭐임?
        공산주의 체제로 수십 수백만명을 죽이면서 대한민국을 괴멸시키려들었고
        그 체제를 벗어나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를 대한민국에 들여와서
        그 체제 이념하나로 이만큼 성장한 나라에서 반공을 외치는게 극우임?
      1. ㅇㅇ (2026-06-25 08:27:23, 140.248.29.*)
      2. 칼럼에서 가장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은 힙합의 저항성을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힙합이 권력과 검열, 빈곤과 부패에 저항하는 언어였다는 점을 강조한 뒤, 한국 힙합이 극우적 정서와 결합한 현재의 모습은 그 전통에서 벗어난 특수한 현상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런데 이 분석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습니다. 지금 10·30대 남성은 무엇을 ‘권력’으로 인식하는가에 대한 검토입니다.

        현재 청년 남성에게 오늘날의 권력은 과거 군부정권이 아니라 정치권, 거대 언론, 문화 권력, 온라인 여론, 그리고 표현을 규제하려는 국가와 제도입니다. 이들이 느끼는 보수화 역시 단순히 극우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기보다, 자신들이 경험하는 억압과 배제에 대한 반발이라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들의 정치적 표현에 동의하느냐와 별개로, 적어도 그들 스스로는 기존의 지배적 담론에 맞선다고 인식합니다.

        또한 글에서는 한국 힙합에서 소수자성이 탈각됐다고 말하지만, 1030남성은 오히려 자신들이 정치적·문화적으로 소외되고 있다고 인식합니다. 그 인식이 타당한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그 감각 자체를 분석하지 않은 채 ‘극우 정서’만으로 설명하면 현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 아닐까요.

        흑인 커뮤니티가 사회적 역사적 요인으로 문화를 형성할수 있었듯이, 이대남으로 호칭되는 이 세대에 대해서도 사회적 역사적 요인이 존재합니다.

        결국 이 칼럼은 현재 청년 남성들이 무엇을 권력으로 인식하고 왜 그런 정치적 감각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이 부족해 보입니다. 칼럼의 제목도 “어떻게 되었나”이지만, 정작 그 이유에 대해선 깊게 생각하지 않고 현상에만 집중한 글입니다. 그 부분이 빠진 상태에서는 한국 힙합의 변화를 충분히 설명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1. 리드머좌빨친북 (2026-06-24 19:27:38, 182.220.112.***)
      2. "오세훈이 당선됐다"
      1. ㅁㄴㅇㅈㅇㅁㅇ (2026-06-24 17:57:02, 110.12.126.***)
      2. ★★☆☆☆

        이 칼럼은 2026년 현재 한국 힙합 씬의 가장 뜨거운 화두를 정면으로 다루며, 온라인 커뮤니티의 정서가 아티스트의 언어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려는 야심 찬 시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상에 접근하는 칼럼니스트로서의 장르사적 통찰과 대상 텍스트를 다루는 최소한의 균형 감각은 분명히 갖추고 있는 글이다.

        특히 한국 힙합이 미국 힙합의 소수자성을 탈각한 채, 라는 거대한 필터를 거치며 오직 '능력주의적 성공 서사'로만 기형적으로 비대해졌다는 전반부의 진단은 매우 탁월하다.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가 국힙 씬의 문법을 지배해 온 과정을 장르사적으로 맥락화한 부분 역시 정밀하다. 더불어 비와이(BewhY)의 [POP IS CRYIN’]을 두고 "정치적 선전물처럼 읽는 것은 오독"이라 선을 그으며, 그것이 아티스트 개인의 종교적 신념 및 오랜 커리어의 퍼포먼스와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음을 인정한 대목에서는 비평가로서의 미덕이 읽힌다. 일시적인 인터넷 밈에 기댄 리치 이기의 사례와 비와이라는 견고한 디스코그래피의 무게감을 혼동하지 않고 분리해 낸 점 역시 준수하다.

        그러나 이 칼럼이 지닌 결정적인 패착은, 그 준수한 분석의 빌드업 끝에 도달한 최종 결론이 지나치게 거칠고 자극적인 프레임에 갇혀버렸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엄연히 주류 이데올로기로 작동해 온 '반공주의'와 공과 과가 엄연히 공존하는 역사적 인물인 '이승만 표상'을 향한 사유를, 아무런 여과 없이 단숨에 '극우(Extreme Right)' 혹은 '대안우파'라는 자극적인 틀에 집어넣은 것은 명백한 과잉이다. 특정 남성 커뮤니티의 냉소적이고 배설적인 인터넷 밈과, 국가 수립의 기저에 놓인 전통적인 보수·반공 가치를 동일 선상에서 결부하는 순간, 전반부에서 공들여 쌓아 올린 장르사적 맥락은 힘을 잃고 단순한 정치적 낙인찍기로 격하된다.

        게다가 후반부에 등장하는 제3세계 래퍼들의 목숨을 건 '국가 권력에 대한 저항' 서사를 끌고 와 한국의 상황과 대치시키는 연출은 비평적 설득력보다는 진영 논리에 기반한 훈계의 인상을 짙게 풍긴다. 비와이가 보여준 텍스트의 복잡성을 본문에서 인정해 놓고도, 결론에 이르러서는 결국 '젊은 남성 커뮤니티의 극우적 정서'라는 거대한 단일 프레임으로 모든 것을 수렴시키려 한 고집이 아쉽다. 장르의 변화를 포착해 내는 날카로운 서두에 비해, 정치적 강박 탓에 닫히는 문이 너무도 협소해졌다.
      1. ㅁㄴㅇㅈㅇㅁㅇ (2026-06-24 05:05:44, 110.12.126.***)
      2. 부정선거까지는 그렇다 칩시다

        반공주의, '공산주의를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사상이나 움직임'이
        언제부터 '극우 담론권' 의 영역이었나요?

        극우 되기 참 쉽군요.
      1. T (2026-06-23 10:53:25, 175.208.144.*)
      2. 공감합니다.
      1. 야호 (2026-06-22 23:53:57, 119.197.65.***)
      2. "오세훈이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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