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다시 드리워지는 검열의 그림자
- rhythmer | 2026-07-20 | 21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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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준영
지난 6일, 김현 의원 등 10인이 발의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음악계에서 엄청난 논란이다. 골자는 이렇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성평등가족부의 사후 심의 제도를 통한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 작업까지의 시간 및 과정 사이에 유해 매체가 확산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결정 기관장 포함 관계 중앙행정기관장이 '청소년에게 명백하고 중대한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유해 음악의 확산을 인지했을 때', 유통 정지 및 제한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이번 개정법률안이 나오게 된 문제 인식과 원인은 꽤 일리가 있다. 현행은 2025년 2월 기준으로 모니터링 인원이 4명에 불과했으며, 유해하다고 판단된 음원만 월 1회 회의를 통해 공식 지정 및 결정 후 고시되고, 그 시점부터 유통 및 확산에 제재할 수 있다. 쏟아지는 음원 수에 비해 모니터링 인원이 매우 적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되지 못하는 경우가 꾸준히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정된 이후는 이미 유해매체물이 충분히 소비 및 확산한 이후라는 것이다. 더구나 AI를 활용한 제작 및 유통에 따른 발매물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는 물론이고 숏폼 콘텐츠를 비롯한 음원 소비 채널이 늘어난 상황에서 대중이 유해매체물을 소비하는 기회 및 수가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개정안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이다. 발매 전후로 유해하다고 판단되는 매체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원천적으로 정지 또는 제한하여 아티스트 입장에선 결과물을 내놓을 기회 자체를 결과적으로 박탈하는 셈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대한민국헌법 제21조 1항 "모든 국민은 언론ㆍ출판의 자유와 집회ㆍ결사의 자유를 가진다."와 2항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와 상반될 여지가 있다.
대한민국의 20세기는 어쩌면 사전검열로 얼룩진 시기였다. 광무신문지법(1907)과 출판법(1909)을 근거로 일제강점기 내내 사전검열이 제도화 및 강화돼, 당시 수많은 단행본과 출판물이 검열, 금지됐고 많은 언론 매체가 정간(停刊) 또는 폐간(廢刊)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해방 이후로는 박정희-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진 시기의 사전검열이 가장 심각했다. 유신체제에선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 자체가 부정당했으며 긴급조치로 검열과 보도통제를 강화해 대중문화를 탄압했다. 전두환 신군부에서는 언론 통폐합 및 보도지침을 통해 자유를 완전히 박탈했다. 그 이외에도 수많은 매체물이 사전검열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적으로 핍박 받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중 음반만 보더라도, 사전검열의 역사는 꽤 최근까지도 이어진 셈이다. 일제강점기 당시에 유지되던 사전심의가 1967년도에 "음반에 관한 법률"로 법제화되면서 음악인의 표현의 자유는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유신체제로 이어진 70년대엔 사전심의가 강화되고 '건전가요'가 의무화되면서 많은 아티스트와 곡이 핍박받았다. 신중현과 이장희, 정미조, 김민기, 양희은, 남진 등 당시 활동했던 많은 아티스트의 곡이 국가 안보, 저속함, 사회 분위기 안정과 같은 이유로 금지되었다.
송창식의 대표곡인 "왜 불러"는 시위에서 사용됐다는 이유로 금지당한 적 있으며,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가사내용 불신감 조장, 창법 저속'이라는 이유로, 한대수의 "물 좀 주소!"는 물고문이 연상된다며 금지곡이 됐다. 80년대에도 검열과 제한은 이어졌다. 5·18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곡이기도 한 "임을 위한 행진곡",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처럼 2026년에선 전혀 문제 되지 않는 곡들이 국가에 의해 통제되었다. 창작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의 사전검열 제도에 반발하여, 많은 민중가요 음악가는 카세트테이프를 통한 비합법 음반을 발매 및 유통하는 방식으로 저항했다. 김민기의 노래굿 [공장의 불빛](1978)으로 시작된 방식은 이후 80년대 민중가요를 단단하게 만든 도화선이었다.

이후 6월 민주화 항쟁을 거치며 가요 금지곡 해금 지침에 따라 국내 금지곡 상당수가 해금되었으나, 여전히 일부 금지곡은 존재했고 사전검열 제도 또한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몇 가지 큰 사건으로 인해 사전검열이 철폐되었다. 1990년에 정태춘이 [아! 대한민국...]을, 1993년엔 정태춘과 박은옥이 [92년 장마, 종로에서] 발매하면서 기자회견을 통해 검열 거부 선언 및 비합법적인 유통 및 판매를 선언해 전면적으로 사전심의 제도에 대립각을 세웠다. 이중 [92년 장마, 종로에서]의 비합법 음반 발매 및 유통 혐의로 정태춘은 불구속기소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법원에 신청하였다.
정태춘이 기소와 재판이라는 기나긴 싸움을 이어가는 와중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詩代遺憾)"(1995)이 사전심의 불가 판정을 받으며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가사 수정 요청을 받은 점도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당시 서태지는 가사 수정 대신 연주곡으로 수록하는 방식으로 항의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가요 사전심의제 철폐 여론이 들끓게 된 계기가 됐다. 결국 96년에 헌법 제21조(언론·출판의 자유)와 제22조(예술의 자유)를 근거로 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헌법재판소 1996. 10. 31. 선고 94헌가6 전원재판부)으로 사전검열 제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렇다.
다시 김현 의원의 개정법률안으로 돌아가자.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위헌적인 성격을 갖는 행정적인 사전검열의 부활을 의미하는 셈이다. 유통에 제한을 둘 뿐만 아니라 관련된 법률안에 발매자에게 통지, 의견 제출, 이의신청과 같은 내용이 누락되기 때문에 사전검열에 준하는 수준으로 볼 수밖에 없다. 비록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지체 없이 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신청하여야 한다"라는 내용을 통해 발매자의 적법절차상 방어권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역시 선제 조치가 진행된 시점에서 이미 피해를 입는 발매자의 권리를 보장하긴 어려워 보인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에서 자행된 문화 통제가 21세기에도 또 다시 법적인 근거를 갖고 악용될 여지가 생기는 점도 부정하긴 어려워 보인다.

여기서 미국의 사례를 확인해 보자. 수정헌법 제1조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헌법적 핵심 가치로 강력히 보장해온 나라인 만큼 미국엔 실질적으로 대중음악의 수위를 규제하고, 음반 판매 및 유통을 제한/규제하는 연방법이 없다. 그나마 존재하는 심의란, 미국 레코드 산업 협회(The Recording Industry Association of America, RIAA)에서 진행하는 'PA(Parental Advisory)' 마크 부착이다. 물론 이 또한 단순히 '권고'의 개념일 뿐이며 누구도 음원 발매를 제재하지 못한다. 차라리 유해매체물을 구분하고자 한다면, 기존 모니터링 및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 프로세스를 개선하든가, 혹은 정부 또는 관련 기관과 긴밀히 협력하여 미국과 같이 'PA' 마크와 같은 부착을 앨범 발매하기 전에 권고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맞아 보인다.
위에서 언급한 94헌가6의 판결문에는 "언론 출판에 대하여 사전검열이 허용될 경우에는 국민의 예술활동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침해하여 정신생활에 미치는 위험이 클 뿐만 아니라 행정기관이 집권자에게 불리한 내용의 표현을 사전에 억제함으로써 이른바 관제의견이나 지배자에게 무해한 여론만이 허용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헌법이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근거를 두고 있을 정도로 사전검열은 사회 전체의 이익 측면에서 매우 부당한 행위라 볼 수 있다. 청소년유해매체물로 분류될 수많은 곡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확산하는 상황은 장기적으론 한국 사회에 또 다른 문제점을 낳을 원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기에 문제의식이 잘못됐다고 하긴 어렵다만, 이를 창작자의 자유를 제한하기보단, 유해매체물에 관한 담론이 형성되고, 궁극적으로는 자정 작용을 갖춘 사회가 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김현 의원은 7월 20일, "음원 유통사에 대한 규제가 창작자에 대한 제한으로 이어지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며 "법안의 실효성을 높이고 부작용을 해소할 방안을 다시 검토하기 위해 철회를 결정했다"라고 밝혔다. 비록 철회했지만 창작자의 자유를 흔드는 입법이 시도됐다는 사실 자체는 남는다. 한동안 예의주시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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