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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뷰] 국경을 넘은 최면, 힙노시스 테라피(HYPNOSIS THERAPY)
    rhythmer | 2026-10-27 | 1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글: 황두하

     
    2026년, 한국의 전자음악 듀오 힙노시스 테라피(HYPNOSIS THERAPY)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6월 스페인의 프리마베라 사운드(Primavera Sound)에 출연한 데 이어 7월에는 덴마크의 로스킬데 페스티벌(Roskilde Festival) 무대에 올랐다. 독일의 퓨전 페스티벌(Fusion Festival), 네덜란드의 다운 더 래빗 홀(Down The Rabbit Hole)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는 지난 몇 년간 쌓아온 해외 활동의 결과다. 2023년 호주의 SXSW 시드니를 시작으로 2024년 미국 SXSW와 독일 리퍼반 페스티벌을 거쳤고, 2025년에는 체코의 컬러스 오브 오스트라바, 벨기에의 두르 페스티벌, 폴란드의 오프 페스티벌 등 유럽 여러 나라를 돌았다. 단발성 쇼케이스를 넘어 해외 대형 페스티벌의 정식 라인업에 연이어 합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각기 다른 나라와 음악적 취향을 가진 관객 앞에서 공연할 기회가 매년 늘어난 것은 이들의 음악이 특정 지역이나 장르의 관심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이들은 “저희가 스스로 생각했던 가능성의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는 거예요.”라며 감회를 전했다. 그동안 한국 안에서만 자신들의 가능성을 가늠했지만, 다른 나라의 관객들과 마주하며 더 큰 목표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대중적인 히트곡에 기대기보다 독창적인 음악과 라이브를 앞세워 거둔 성과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어떻게 세계적인 무대에 도달했을까?
     

     

     
    프로듀서 제이플로우(Jflow)와 래퍼 짱유(JJANGYOU)의 인연은 10여 년 전 부산의 힙합 크루 아발란체(Avalanche)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짱유는 프로듀서 돌이(DOL)와 일랍(ILLAP)을, 제이플로우는 브론(Bron)과 머니 메이커즈(Money Maker$)를 결성해 활동했다. 이후 2015년 프로듀서 에이뤠(ARwwae)와 함께 와비사비룸(Wavisabiroom)을 결성하며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췄다.

    와비사비룸은 당시 한국 힙합에서도 이질적인 음악을 들려준 팀이다. 에이뤠가 만든 음산하고 변칙적인 비트 위에서 짱유는 발음을 뭉개고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박자를 끊으며 랩을 펼쳤다. 제이플로우는 상대적으로 정돈된 플로우로 균형을 잡았다. 의미가 쉽게 잡히지 않는 단어와 문장을 이어 붙이는 가사는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정형화된 문법을 따르기보다 리듬을 비틀어 낯선 감각을 만드는 데 집중한 것이다. 익숙한 구성을 통해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기보다 예상치 못한 소리의 조합으로 청각을 자극했다. 두 래퍼 사이의 대비도 단순한 역할 분담에 그치지 않고 곡의 분위기를 계속 뒤흔드는 요소로 작용했다.

    두 번째 EP [물질보다정신] (2015)에서는 세 멤버의 개성이 한층 자연스럽게 맞물렸다. “분장”, “나그참파”, “밥말리” 등에서 비틀린 리듬과 자유로운 랩이 강한 인상을 남겼고, 이듬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힙합 음반과 노래 부문 후보에 올랐다. 이후 [VIBE] (2017)에서도 자신들의 색깔을 이어갔다. 이들은 그저 남다른 음악을 한다는 선언에 머물지 않았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리듬을 다루는 두 래퍼와 독특한 감각의 프로듀서가 실제로 이전에 없던 조합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들은 과거를 돌아보며 “사실 저희는 한국에서도 아웃사이더 같은 행보를 이어왔어요.”라고 말했다. 기존 힙합 신에 속하기보다 그 틀을 넘어 새로운 음악을 제시하려 했다는 태도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각자의 활동은 그런 지향을 더 구체화하는 시간이었다. 제이플로우는 보컬리스트 셉(Sep)과 함께한 히피는 집시였다(Hippy Was Gipsy)에서 프로듀서로서 두각을 드러냈다. 얼터너티브 알앤비를 바탕으로 몽롱한 비트, 여백을 살린 구성, 한국적인 정서를 결합했다. 전자음과 어쿠스틱 악기를 절제해 배치한 사운드는 때로 토속적인 분위기를 풍겼고, 셉의 처연한 보컬과 어우러져 독자적인 세계를 완성했다. 첫 정규앨범 [나무] (2017)는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 음반상과 한국 힙합 어워즈 올해의 알앤비 앨범상을 받았다. [언어] (2018)에서는 멜로디와 악기 편성의 폭을 넓혔다. “비”의 리드미컬한 드럼과 휘파람, “우리에겐”의 기타와 현악기, 색소폰이 맞물리는 구성은 그의 세밀한 연출 감각을 보여준다. [빈손] (2018), [불] (2019)에서도 고유한 색을 발전시켰다. 정교하게 소리를 쌓거나 비워내는 능력은 이후 훨씬 거친 전자음악을 다룰 때도 바탕이 됐다.

    짱유는 솔로 활동으로 래퍼이자 퍼포머의 개성을 다졌다. 첫 정규앨범 [장유석] (2016)에서는 프로덕션까지 직접 맡아 불규칙한 플로우, 거친 발성, 기묘한 비트가 뒤얽힌 음악을 선보였다. 제이플로우가 프로듀싱한 [KOKI7] (2018)에서는 몽환적인 사운드와 멜로디를 늘리고, 성장 과정과 가족사를 풀어내며 보다 내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2019년 “쇼미더머니 8” 출연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고, [파도] (2020)에서는 여러 프로듀서와 협업하며 변화를 시도했다. 특유의 본능적인 랩과 무대 장악력은 이후 라이브의 핵심 자산이 됐다. 동시에 솔로 작업을 거치며 단순히 기괴한 화법에만 의존하지 않고, 멜로디와 감정 표현을 아우를 수 있는 래퍼로 변화했다. 제이플로우가 사운드의 영역을 확장했다면 짱유는 목소리의 표현력을 넓힌 셈이다.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교류했다. 짱유는 히피는 집시였다의 “온도”에 참여했고, 제이플로우는 [KOKI7]의 프로덕션을 책임졌다. 이렇게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이들이 2022년 힙노시스 테라피로 다시 만났다. 와비사비룸의 실험성, 제이플로우의 프로듀싱 역량, 짱유의 폭발적인 퍼포먼스가 새로운 방향으로 결합한 것이다.

     

     

     
    이번에는 전자음악이 중심이다. 테크노와 하우스, 브레이크비트, 정글을 오가는 강렬한 비트와 베이스 위에서 짱유의 랩은 또 하나의 리듬 악기처럼 기능한다. 긴 이야기보다 짧은 구절과 독특한 발성을 반복하며 에너지를 키운다. 제이플로우도 히피는 집시였다에서 여백과 미묘한 감정을 살렸다면, 여기서는 일그러진 전자음과 묵직한 저음으로 청각적 자극을 극대화한다. 장르가 달라져도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는 여전하다. 랩을 전자음악 위에 단순히 얹는 대신 두 요소가 서로의 리듬을 밀어 올리는 구조다. 짱유가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낼 때는 비트가 랩을 몰아붙이고, 짧은 후렴을 반복할 때는 목소리 자체가 리듬 패턴의 일부가 된다. 힙합에 기반을 둔 두 음악가가 댄스플로어를 향한 음악으로 자연스럽게 진화한 결과다.

    첫 앨범 [HYPNOSIS THERAPY] (2022)에서 시작된 시도는[ PSILOCYBIN] (2023), [RAW SURVIVAL] (2024)을 거치며 발전했다. “JONGNO”에서 정글의 빠른 리듬을 서울이라는 공간과 연결하고, “SEOUL HOUSE”에서는 지역적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해외 전자음악의 문법을 활용하되 한국어의 억양과 익숙한 풍경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latency에서는 테크노 자체에 더 집중하며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이들의 강력한 무기는 라이브다. 제이플로우의 비트에 맞춰 짱유가 무대를 휘젓고 관객의 반응을 끌어낸다. 힙합 공연의 거친 에너지와 레이브의 집단적인 해방감이 만나는 순간이다. 반복되는 리듬과 압도적인 저음, 거침없는 퍼포먼스는 언어를 몰라도 직관적으로 즐길 수 있다. 음반의 실험이 공연에서는 몸으로 느끼는 즐거움으로 바뀌는 셈이다. 한 곡의 세부 구성이나 가사를 모르는 사람도 반복되는 저음과 변화하는 속도에 반응할 수 있다. 짱유의 동작과 제이플로우의 소리는 따로 움직이지 않고 관객의 반응에 맞춰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라이브 현장의 즉각적인 교감이 이들의 해외 활동을 떠받치는 힘이다.

    그 경험에 대해 이들은 “음악이 가진 언어를 초월하는 힘이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고,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마치 하나의 공동체처럼 뛰어노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 꿈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힙합과 전자음악, 펑크를 가로지르는 이들의 공연이 다양한 성격의 해외 페스티벌에서 호응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어는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음악적 개성을 이루는 요소다. 관객에게 먼저 전달되는 건 가사의 세부적인 의미보다 사운드와 퍼포먼스의 힘이다.

     

     

     
    자체적인 공연 문화도 구축해왔다. 힙노시스 테라피는 머시룸 하우스(Mushroom House)라는 이름으로 파티와 공연을 기획하며 다양한 서브컬처와 만나는 장을 열었다. 2026년 9월에는 세종문화회관 싱크넥스트(Sync Next)에 참여해 이를 극장 공연으로 확장했다. 소규모 클럽에서 쌓아온 활동이 국내 주요 공연장과 세계적인 페스티벌로 뻗어나간 모습이다. 이들에게 공연은 이미 완성된 음반을 소개하는 자리만이 아니다. 관객과 함께 음악을 경험하고 비슷한 취향의 아티스트를 연결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그렇게 구축한 현장은 또 다른 창작과 공연으로 이어진다.

    앞으로의 움직임도 이어진다. 이미 2027년 유럽 투어가 하나둘 정해지고 있고, 하드웨어를 활용한 테크노 라이브와 새로운 음악 작업에도 시간을 쏟고 있다. 이들은 “저희는 어떤 장르나 형식에도 갇히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힙합과 전자음악에서 출발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음악을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에는 아직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멋진 음악과 아티스트들이 정말 많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자신들뿐 아니라 다른 한국 음악가들을 해외에 소개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힙노시스 테라피의 성취가 눈길을 끄는 것은 단순히 해외 페스티벌에 출연해서가 아니다. 대중적인 히트곡이나 해외 시장에 맞춘 음악적 변신 대신, 오랜 시간 가다듬은 개성을 강렬한 공연으로 구현했다. 부산의 크루에서 와비사비룸을 거쳐 각자의 활동으로 역량을 쌓고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자기 방식으로 음악의 경계를 넓혀왔다. 해외 쇼케이스와 투어를 통해 현지 관객 및 관계자와 접점을 쌓은 과정도 중요하다. 한국 언더그라운드에서 출발한 음악이 어떻게 더 큰 세계와 만날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다.

    이들의 시선은 다음 세대로도 향한다. “저희가 걸어온 길이 또 다른 음악가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되고, 함께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들의 음악을 지키면서도 세계 곳곳의 관객과 만나온 이들의 말이기에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들이 열어놓은 길이 앞으로 어떤 새로운 음악과 만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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