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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뷰] 힙합, 두 MC, 그리고 담배
    rhythmer | 2010-12-08 | 9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TV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이 사라졌다. 간혹 나오더라도 일본 모자이크 영상에 익숙한 우리에겐 영 어설프게 모자이크 된 모습으로 방송을 타고 있다. 이러다가 허본좌가 대통령이 되는 날엔 담배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담배’라는 이름의 어원은 토바코가 담방구가 되었고 그게 담배가 되었다는 설과 담배가 처음 수입되던 당시 배에서 내리자마자 다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가 많아서 "다음 배에 온다. 다음 배에 온다. 아놔 담배에 온다고!"해서 담배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진짜다. 어쨌든 예나 지금이나 담배는 많은 사람에게 인기 있는 기호 식품(?)인데, 그렇다면, 과연 뮤지션과 담배의 관계는 어떨까?

    10년 전 다운타운 DJ 출신인 음악 선배 한 분은 내게 "음악을 하는 놈들은 제정신이면 안 돼. 술이던 담배던 흠뻑 젖어보고 해야 제대로 된 음악이 나오지.”라며, 나름 담배 사랑을 늘어놓곤 했었는데, 최근 TV에 장기하가 나와서 "우울해지면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든다. 우울할 때 음악이 더 잘된다."라고 한 걸 보니 보편적인 제대로 된 몸 상태로는 좋은 음악이 나오지 않는다는 음악 선배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긴 한가보다.

    예전에 패닉의 이적을 대상으로 한 ‘몰래카메라’가 진행되었을 때 방송사에서는 이적이 만든 “달팽이”가 표절인 거 같다며 가수를 겁주기 시작했고, 이적은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담배를 한참 피우다가 이적이 말하길

    "이건 얘네가 베낀 거 같은데?"

    당시 이적에게 담배는 심리적 안정과 시간 벌이, 두뇌 회전을 하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되는 모습이었다. 흔히 담배를 신체적으로 백해무익하다고 하지만, 이적의 일화를 보면, 담배는 뮤지션에게 만큼은 멘탈(Mental)에 있어 굉장한 효과가 있는듯하다. 표절 추궁을 받을 때 안정의 효과가 있고 작사, 작곡을 하다 막힐 때 다시금 생각할 시간을 주기도 하며 너무 건전한 뮤지션에겐 음악적인 영감을 주기도 한다.

    담배는 힙합 뮤지션에게도 좋은 소재가 되고는 한다. 필자가 힙합음악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봤던 담배의 모습은 영화 [위험한 아이들] OST의 “Gangsta’s Paradise” 뮤직비디오에서였다. 의자에 앉아 있는 미쉘 파이퍼의 얼굴을 향해 코와 입으로 담배 연기를 뿜어가며 랩을 작렬하던 쿨리오의 모습…. 당시에는 그 장면이 참 멋지다고 느꼈는데, 요새 그런 뮤직비디오를 국내에서 제작한다면 여성부에서 한마디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니 국내 뮤지션들은 여러모로 창작의 고통이 뒤따르게 되었다.


    - 쿨리오가 미쉘 파이퍼에게 담배연기를 뿜으며 랩을 하자 결국 의자 던지고 나가버리는 미쉘 누나

    국내 힙합 씬에서도 뮤지션 사이에서 담배는 자주 언급되는 소재이다. 2007년에 출시된 소울맨 &마이노스는 [Coffee Calls For A Cigarette]라는 타이틀의 앨범을 발매하면서 담배 피우는 모습을 커버로 쓰기도 했으며, 앨범 곳곳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담배를 사용하기도 했다.

    소울맨 & 마이노스의 [Coffee Calls For A Cigarette] 중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애를 감췄지 밤거린/담배연기로 또 가득 찼고 머리가 어지럽고 싶어
    -출퇴근

    1/7 정도 남겨진 잔 속/먼지와 담배 연기가 뒤섞인/탁한 알코올을 단숨에 삼키는 넌
    -Sad Movie

    술 담배 음악 CD 몇 장은 내 턱수염을 길게도 만들었네
    -No One Ever

    짙은 새벽 room&rumour에 앉아/담배 한 모금 와인 한 잔을 청해
    -Room & Rumour

    내가 만든 단순한 문항 중에서만 고르지/but 오답일 가능성도 내가 check/대신에 담배를 꼬나 문채로 매일 밤새
    -U Never Know 

    특히, 마이노스는 이 앨범 외에 자신의 솔로 앨범과 뉴올, 아티슨 비츠와 함께한 프로젝트 앨범에서도 담배를 자주 언급하곤 했는데, 이쯤 되면 한국담배인삼공사에서는 그를 CF 모델로 써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마이노스는 위기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의 담배 사랑에 버금가는 힙합 끽연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마이노스의 라이벌로 떠오른 인물은 다름 아닌 최근 [Lifes Like]를 발표하여 가능성을 보여준 재지팩트(Jazzyfact)의 빈지노다. 빈지노의 담배 사랑은 남다른 거 같다. 마이노스와 마찬가지로 앨범 곳곳에 담배를 이용한 가사가 나오고, 마지막 트랙의 제목은 그 자체로 담배다.

    재지팩트의 [Lifes Like] 중에서

    fuck that liquars! 술이 너무 싫어/술자리가면 나는 매일 길을 잃어/술을 권한 여자들은 내 일기를 읽고/say aha~! 내게 먹히는 건 cigar
    -A Tribe Called Jazzyfact

    내 구찌 지갑은 선물로 받은 게 전부고/돈을 아낀다며 친구들 담배를 꿔 펴
    -?!
     
    담배, 내 밥그릇을 비우면 보이는/여든은 물론 무덤으로 인도하는 poison girls, girls, girls
    -Addicted2 

    너는 가봐도 돼. 난 가방을 매/난 인사를 건네며 또 담배를 태웠고 너털웃음을 짓지
    -Friday Move (TGIF) 

    누군 시간을 kiling 누군 술을 들이키지/누군 헤어진 여자에게 또 다이얼 해대/누구는 일해 또 누군가는 그 사람에게 기대/또 누군가는 바람을 담배대신 피우네
    -각자의 새벽

    오늘따라 담배 연기는 묵직해/금방이라도 땅이 꺼질듯해/머리 안에 가득 짐을 짊어지네/내 꿈, 내 걱정, 내 겁과 담배 생각
    -Smoking Dreams

    빈지노의 가사 속에 쓰인 담배의 용도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돈 없는 자신을 대신하기도 하고 밥 먹고 나면 항상 곁에 있기도 하며 꼬신 여자를 떠나 보낼 때, 바람피우는 사람들을 언급할 때도 담배가 쓰이고 있다. ‘젊은 뮤지션이 무슨 고민이 이렇게도 많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담배 하나로도 여러 가지 형태의 가사를 풀어내는 빈지노의 역량을 보며 아직 젊은 그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기도 한다. 훗날 빈지노와 인사를 나눌 시간이 있다면, "담배 한 대 피실래예?"하고 인사라도 나누고 싶은 심정이다



    담배를 소재로 한 가사의 내용은 다르더라도 마이노스와 빈지노의 가사를 보면 이 둘의 담배 사랑은 무척이나 큰 것 같다. 이 둘은 각자 앨범에서 담배 이야기를 한 것에 만족을 못했는지 마이노스는 디제이 주스(DJ Juice)의 앨범에서 “Heavy Smoker”라는 곡으로 빈지노는 비다 로까(Vida Loca)의 싱글에서 “Smoke”라는 곡으로 담배를 소재가 아닌 주제로 다루기도 했다. 이쯤 되면 필자는 마이노스와 빈지노의 담배 관련 콜라보를 기대하게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폐 건강에 문제는 없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 둘 외에도 담배를 소재로 한 곡은 많이 있다. 쉽사리 지나칠 수 있는 담배를 소재로 한 곡을 찾아보는 것도 국내 힙합 청취에 있어 재미난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필자의 담배 관련 추천곡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 타다만 담배를 끄다
    최성수 - 누드가 있는 방
    ATAHUALPA YUPANQUI - POBRECITO MI CIGARRO (불쌍한 내 담배)

    *리드머의 새로운 필자 이경화님의 첫 번째 기사입니다. ^^




    기사작성 / RHYTHMER.NET 이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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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황소개구리 (2010-12-30 09:47:10, 119.71.79.**)
      2. 비다로까 "스모킹" 곡 정말 좋게들었는데..!
        "이경화님" 글 앞으로 기대기대^^
      1. Abrasax (2010-12-11 19:12:24, 117.17.132.**)
      2. 정말 재미있는 글이네요.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담배를 처음 펴봤습니다.
        담배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멘솔'담배라는 것에 관심이 있었지요.

        담배가 당기는 글이군요 ㅋㅋ
      1. 과일풍경 (2010-12-09 22:57:00, 122.40.87.**)
      2. 신선한 소재의 재미있는 기사네요 앞으로도 다양한 주제를 다뤄주세요
      1. 사도 (2010-12-09 16:20:30, 173.60.166.***)
      2. 전 담배를 피진 않지만 제게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면 담배피는거에 별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 세금으로 학교 공짜로 다니고 있거든요 :)
      1. 뻥카라인 (2010-12-09 16:20:24, 203.230.217.***)
      2. 아 담배 땡기네요~ ㅋㅋ 글 잘봤습니다!!!!
      1. s.a.s (2010-12-09 14:46:20, 175.113.194.***)
      2. 글 재밌게 봤습니다.

        담배 지금 참고 있는데 미치겠네요 ㅜㅜ

        결혼만 아니면 아주 평생 피우고 싶은데.. 크흑
      1. 이지 (2010-12-09 13:45:02, 222.103.52.***)
      2. 어 익숙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호... 축하드립니다.

        P'Skool - 19th Step 에서도 빈지노는 담배에 대한 언급을 살짝하죠.
      1. 김도현 (2010-12-09 13:10:04, 210.204.173.**)
      2. 헉! 그 경화씨인가요? 오오!!! 놀랍습니다!! 축하해요!! ^^
      1. 조성호 (2010-12-09 12:54:28, 115.21.61.***)
      2. 이 글 때문에 다시 보고싶어진 짐 자무쉬의 커피와 담배(2003) 그리고 그 영화의 스코어.
        글 잘 보았습니다. ㅎ
      1. thief (2010-12-09 12:27:14, 220.125.115.***)
      2. 필자님 성함이 제 기억이 맞다면 힙플에서 뮤지션 이야기를 가끔씩 쓰시던 그 분 아닌가 싶군요. 여기서 필진으로 보게 되다니 괜시리 반갑네요 하하
      1. 끌리는대로 (2010-12-09 12:03:32, 175.124.138.***)
      2. 입에 담배 한번 안대본 저이지만 이런 글을 보면 한번씩은 흡연의 욕구가 일어나긴 하네요 ㅋㅋㅋ 재밌는 글 잘봤습니다.
      1. euronymous (2010-12-09 10:47:55, 122.153.105.**)
      2. 글 참 재밌네요.

        담배 관련 노래는 역시 이 곡을 빼놓을 수 없지요. 명곡!

        http://www.youtube.com/watch?v=5voKnfFrtXA
      1. 온정약국 (2010-12-09 10:21:43, 211.234.225.*)
      2. 케이티앤지는 마이노스를 모델로, 필자를 에이전트로 고용해야....
      1. 독버섯전성시대 (2010-12-09 09:40:30, 122.46.96.***)
      2. 담배 끊은지 이제 4년이 넘었네요.

        리드머 게시판에 담배를 끊겠다고 글남기고


        그달에 있었던 정모때 술자리에서도 그냥 술만 마시고







        아직도 요즘 가끔 생각납니다.

        특히 자장면 먹고 난후....




        하루에 말보로 레드만 두값씩 피던 골초였는데



        어떻게 끊었는지 제가 봐도 참 신기하네요.
      1. 김도현 (2010-12-09 09:21:53, 210.204.173.**)
      2. 'Smoke'에서의 Beenzino는
        랩퍼의 말빨로 청자를 설득하는 역할의 정점을 찍은 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진솔함과 재치로 듣는 내내 재밌었고, 잠깐이나마 담배가 다시 생각났던 곡. ㅎㅎ
      1. Vizualiza (2010-12-09 05:37:26, 222.97.130.***)
      2. 월화스목금 I smoke that shit
      1. Popeye (2010-12-09 04:26:21, 180.180.213.***)
      2. 전 고3이지만 솔직히 술은 해도 담배는 안합니다. 중2때 궁금해서 딱 한번 해봤는데 현기증에 구토까지....운좋게도 체질에 안맞나봐요..친구들이 그럼 넌 술을 남보다 두배하라고 하더군요 ㅋㅋ
      1. CloudPark (2010-12-08 23:02:19, 180.67.43.**)
      2. 진정한 피쳐 글이네요 ㅋ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어쨌거나 여러분
        특히 고등학생 리드머 유저 여러분
        담배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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