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뷰] KBS 블랙리스트 파문과 힙합 캅 논란, 그 불편한 진실
- rhythmer | 2011-02-14 | 12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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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개그우먼 김미화에 이어 가수 윤도현과 관련하여 또다시 ‘블랙리스트’ 논란에 휩싸였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번 논란은 방송 예정이었던 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섭외한 윤도현을 사측이 ‘내레이터로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고, 특히 시사프로그램에서 내레이션을 맡은 적이 없어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갑작스레 교체하면서 불거졌는데, 누가 봐도 속이 빤히 보이는 이 촌극을 보면서 문득 오버랩된 것이 있으니 바로 미국 경찰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힙합 뮤지션 블랙리스트’다.미국에는 이른바 ‘힙합 캅(Hip Hop Cop)’이라는 게 있다. 아니, 있다고 한다. 뉴욕 경찰청과 마이애미 경찰청을 중심으로 존재한다는 힙합 캅은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힙합 뮤지션들을 집중감시 및 검거하는 집단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꾸 ‘카더라 통신’체를 쓰는 것에서 짐작하셨겠지만, ‘KBS 블랙리스트’와 마찬가지로 힙합 캅 역시 그 실체의 유무는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힙합 캅의 존재가 처음으로 언론화된 건 전 뉴욕 경찰관 데릭 파커(Derrick Parker)에 의해서다. 그는 지난 2007년, MTV와 인터뷰에서 자신이 힙합 캅 부서를 창설할 당시 원년 멤버라고 밝히며, 이 비밀부서의 존재를 인정했고, 이후, 투팍(2Pac), 노토리어스 비아이쥐(Notorious B.I.G), 잼 마스터 제이(Jam Master Jay) 등 의문의 죽음을 당한 힙합 전설들과 힙합 캅 사이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 책 [Notorious C.O.P.]을 집필 및 발간하기도 했다. 파커에 따르면, 90년대 중반 미국 사회 전반에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킨 희대의 라이벌 투팍과 노토리어스 비아이쥐의 사망 사건을 기점으로 미국의 경찰은 힙합 뮤지션들의 행동을 이전보다 더욱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는데, 이후, 98년부터 힙합 캅이라는 비밀부서로 확장되었다고 한다. 여전히 미국의 정부와 경찰 측은 이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직접 체포를 당해봤던 유명 힙합 스타들의 언론을 통한 고발이 이어지면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아프로-아메리칸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힙합 형제들은 오래전부터 상당히 거친 삶을 살아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음악의 주제로 쓰이는 마리화나와 총기가 실제로 그들의 필수품이었고, 그에 따른 사건•사고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힙합 캅은 그들만의 블랙리스트를 공유하면서 명단에 있는 뮤지션들의 집은 물론, 그들의 동선을 하루도 빠짐없이 감시한다고 한다. 그러다가 주로 차량을 불시에 검문하여 마리화나와 불법 총기들을 발견하게 되면, 현장에서 연행해가는 게 그들의 일반적인 수법이다. 과거 몇 번씩이나 구속, 혹은 검문을 당했던 피프티 센트(50 Cent)나 디디(Diddy) 등이 바로 이러한 부당한 수색과 검거에 대한 불만과 문제점을 강력하게 토로한 대표적인 힙합 거물들이다. 또한, 지난 2006년 10월에는 SUV에서 장전된 총이 발견되는 바람에 체포되어 수감 생활을 한 맙 딥(Mobb Deep)의 프로디지(Prodigy)도 자신이 검거된 배경에는 힙합 캅이 있었다고 밝힌 바 있으며, 비교적 최근인 2010년에도 딥셋(Dipset)의 쥬엘즈 산타나(Juelz Santana)가 마리화나와 총기로 체포되었을 때 이와 같은 문제점을 토로한 바 있다.
사진: Prodigy(좌), Juelz Santana(우)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럼 애초에 그런 물건을 안 가지고 다니면 될 게 아니냐?’라고. 그렇다. 옳은 소리이고 분명히 법에 저촉되는 물품들을 가지고 다니는 건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이건 그렇게 간단하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상황에 대입시켜보자. 차를 몰다가 신호위반에 걸렸을 때 딱지를 떼기 위해 신분을 확인하긴 해도 운전자가 수배자이거나 어떠한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되지 않는 이상 차량의 내부까지 수색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단지 힙합 뮤지션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은 아주 미미한 위반에도, 때로는 아무런 이유 없이 온몸까지 샅샅이 수색당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힙합 뮤지션들이 말하는 명백한 인권 유린이요, 여전히 남아있는 인종차별의 잔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최근까지도 불거지고 있는 미국의 힙합 캅 논란은 그 구체적인 상황만 다를 뿐이지 특정인에 대한 선입관을 근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번 KBS 블랙리스트 논란과 똑 닮아있다. 게다가 그 존재 유무에 대한 심증은 확실한데, 물증이 없다는 것까지도…. 생각해보시라. 평소 현 정부가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회 참여적 활동을 많이 했다는 점과 지난 정권의 사람이라는 터무니없는 선입관 때문에 방송 내레이터에서 일방적으로 섭외 취소를 당한 윤도현이나, 그 어떤 뮤지션들보다 열과 성의를 다해 미국 정부에 엿을 날린다는 점과 흑인들은 대부분 범죄자라는 선입관 때문에 수시로 부당한 검문을 당하면서 활동에까지 제약받는 힙합 뮤지션들이 서로 다를 게 무엇인가? 양쪽 다 공권력이 대중문화의 깊은 곳까지 침투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부끄럽고 끔찍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아, 물론, 아직은 ‘카더라 통신(하지만, 매우 신빙성 있는)’이지만 말이다.
여담으로 미국의 힙합 뮤지션들은 힙합 캅을 일컬어 ‘더러운 쥐새끼들’이라고 표현한다. 그것도 언론 매체에서 거침없이 말이다. 그걸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 그나마 그들은 대놓고 시원하게 욕이라도 할 수 있지…….
※본 칼럼은 국민일보-쿠키뉴스에 기고한 칼럼을 일부 수정하여 게재하는 바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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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식 (2013-01-22 15:43:54, 121.173.199.**)
- 좋은글 정말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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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환희 (2011-02-16 22:57:45, 180.65.192.**)
- 잘 읽었습니당 ..ㅎ
좋은글 감사합니다 .. 개비에스는 어디 안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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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직쿤 (2011-02-16 16:34:23, 220.122.244.***)
-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단편영화 구상하신다는 소개글에
더 눈이 가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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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eak2 Boi (2011-02-15 13:44:24, 1.241.30.**)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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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남쌩 (2011-02-15 01:21:31, 68.46.2.***)
- 그나마 걔들은 대놓고 시원하게 욕이라도 할 수 있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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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cks (2011-02-14 17:17:28, 124.216.213.**)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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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랩의진수 (2011-02-14 10:14:43, 68.193.77.***)
-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문장 펀치라인이네요 퍽유 케비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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