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인터뷰] 가리온 - 이해와 애정에서 비롯한 두 번째 달음질, 그 방대한 기록 pt.1
- rhythmer | 2010-11-06 | 42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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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기다리던 가리온이 돌아왔고, 은하계 어딘가에 묻혔을 걸로만 예상했던 두 번째 결과물 이 씬 한 가운데 떨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진정성있는 외침은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기만 했던 오늘날 한국힙합 씬을 시원하게 가로지르고 있다. 이번 인터뷰는 바로 이 판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바탕으로 MIC를 잡고 역사를 써내려 온, 그리고 한국힙합의 최전선에 있는 두 남자가 이 땅의 모든 힙합팬과 동료 뮤지션에게 보내는 사랑과 일갈에 대한 방대한 기록이다.리드머(이하 “리”): 가리온은 한국힙합의 아이콘임과 동시에 앨범으로 목 빠지게 만드는 악명 높은 팀이기도 해요. (전원웃음)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요?
나찰: 게으름을 피운 건 아니고요, 몇 가지 상황이 있었어요. 중간에 했던 뮤지컬도 영향을 끼쳤고요. 처음에는 음악작업을 병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혹독한 연습과 시간을 관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서 당시 1년 동안 거의 작업을 못했어요. 게다가 뮤지컬이 끝나는 동시에 허리디스크가 도지는 바람에 거의 4~5개월 가까이 작업을 못했고요. 그 외의 기간에는 작업에만 몰두했었는데,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버렸네요.
리: 조바심이 나지는 않았나요?
나찰: 내기 전까지는 안달이 났었죠. ‘하루라도 빨리 내야 되는데….’ 하면서…. 저희가 더 목말라 있었기 때문에 마스터링 끝나고 차에서 모니터링을 하는데 ‘잘 해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그동안 겪은 과정들이 스쳐가더라고요. 어쨌든 게으름 때문에 5년 10개월이나 걸린 건 아니라는 거에요.
리: 대부분의 추측은 메타 씨의 건강문제 때문에 미뤄진 게 아니냐는 반응이었어요.
메타: 그런 건 아니었어요. 개인적으로 지방 집에 내려가있었던 상황이 있긴 했지만, 그 외에는 나찰 이야기대로죠. 생각해보면, 저희는 운때라고 하나요? 그게 참 안 맞았어요. 처음 가리온 1집을 낼 때 알레스 뮤직에서 음반 자체에 많은 투자를 해줬었어요. 프로모션이나 마케팅적으로 도움보다도 우리가 원하는 음악적인 투자를 100% 다 해줬었죠. 그런데 앨범을 내고 한두 달 활동하다가 JU랑 헤어졌어요. 팀의 프로듀서이자 DJ가 없는 상황에서 뭘 더 할 수가 없더라고요. 팀 내의 문제라 회사에서도 뭐라 할 수 없는 문제였고. 자연스럽게 활동이 접혔어요. 그때가 이미 저는 30대 중반이 다 됐을 때였죠.
리: 상당히 허무했을 것 같아요. 가뜩이나 1집도 늦게 나온 거였는데….
메타: 그 일 있고 나서 신촌에 있는 친동생 두 명한테 얹혀살았어요. 열심히 살고 있는 동생들인데, 맏형이 ‘나 랩퍼야.’ 이러고 있으니 너무 미안한 거에요. 그래서 일을 찾기 시작했죠. 대신 어떤 일을 하든 음악과 관련한 영역을 벗어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98년 말부터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대학로에 ‘힙합스쿨’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비보이들도 데려오고, 디제이 렉스(DJ Wreckx)랑 디제이 네가(DJ NEGA)형도 같이 와서 가르치고…. 그곳에서 처음 나온 렉스의 1호 제자가 지금 노도(Nodo)로 활동하고 있는 디제이 프릭(DJ FREEK)이에요. 그리고 2호 제자가 디제이 스킵(DJ SKIP)이고요. (웃음)
리: 국내 힙합 디제이의 계보가 조금씩 밝혀지네요. (웃음)
메타: 여튼 2002년에 MP가 문을 닫고 나서도 저는 어떻게든 이 문화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어요. 당시 압구정의 ‘크레이지;라는 클럽 매니저를 맡아서 했는데, 5개월 만에 문을 닫기도 했고요. 근데 2004년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에요. 그 맘 때는 뮤지컬의 기회도 없었고, 지금 많은 랩퍼가 수혜를 받고 있는 실용음악계의 레슨도 없었기 때문에 ‘30대 중반에 노가다 판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 건가?’하고 생각할 정도였죠. 그런데 지금은 어엿한 치킨 집 사장이 된 오리지날 슈프림 팀의 임인교라는 친구가 당시 연세 세브란스 병원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어요.
리: 아, 그렇게 해서 저 유명한 메타 씨의 병원 주차 유도 알바 일화가 탄생하게 된 건가요?
메타: (웃음) 제가 일을 부탁하니 걱정하기에 “야, 돈벌이에 귀천이 어디 있어, 넣어줘.”라고 해서 일을 시작하게 됐죠. 당시에 일하던 제 모습을 본 분들이 많았던 거고요. 어쨌든 일을 하면서 한 달에 100만원 이상을 벌었는데, 평생 못 받아보던 금액이었던 데다가 삶이 음악 할 때보다는 윤택해지니까 묘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좋기도 했고. 나중에는 주임도 되고 월급도 올라갔거든요.
리: 힘든 생활 끝에 정기적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면, 안주하고 싶어지는 것이 대부분 사람의 심리죠. 다시 마음을 잡은 계기가 있었나요?
메타: 당시 지금의 정대표와 알레스 뮤직에서 나온 몇몇 분들이 타일 뮤직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준비가 끝났을 때 저에게 연락이 온 거죠. 연락을 받고 나서 다시 음악적으로 도전하고픈 의욕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일을 그만두고 계약을 했어요.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한번도 해본 적은 없는데, 저희는 뭔가 속 시원하게 터뜨려 본적이 없어요. 앨범을 내고 어디 가서 뭔가 해보고 싶어도 계속 변수가 생겼으니까요. 1집 때도 말씀했듯이 앨범은 나왔는데, 바로 JU랑 헤어지고 나서 뭘 해볼 기회도 없었고, 그렇게 한이 맺힌 상황에서 일을 한 곳도 병원이다 보니 부딪히는 사람들도 다 우울한 표정의 사람들이었고…. 저는 심지어 뺨도 맞아가면서 일을 했거든요. 그런 생활을 하다가 다시 기회가 왔으니까 다 때려죽일 각오로 임한 거에요. 그렇게 나온 게 바로 ‘무장투쟁’, [무투]였고요. (웃음) ‘나 이제 다시 왔어! 서러운 것들 몸에 다 박아 넣고 왔다고!’라는 마음으로 냈던 거죠.
리: 그리고 반응도 상당히 좋았죠.
메타: 네. 하지만, 음악적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겠다는 바람과 돈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시작했던 뮤지컬(‘랩퍼스 파라다이스’)이 발목을 잡았어요. 정말 1년 내내 생고생을 했어요. 얼마나 고생했었으면, 나찰도 다시 디스크가 도져서 4~5개월을 누워있었겠어요. 거의 쉬는 날 없이 매일 무대에 올라야 했거든요. 게다가 토요일은 무조건 2회씩 공연해야 했고….
나찰: 저는 중간에 쥬비(‘쥬비 트레인)가 안 나오기 시작해서 1주에 9회씩 했어요.
메타: 더블캐스팅인데 한 명이 문제 생기면 남은 한 명이 다해야 했거든요.
나찰: 그래 놓고도 돈은 못 받고…. (웃음)
리: 아니 아예 못 받았어요?
메타: 받기는 했지만, 많이 떼였어요. 나찰은 두 달치나 못 받았고, 저는 대표랑 욕하면서 대판 싸우기까지 했죠. 그 사건 때문에 [무투]로 탄력 받았던 것들이 많이 죽어버렸어요. 그래서 그 의지와 분위기를 다시 일으켜야 할 상황이었어요.
리: 이미 2집 작업을 병행하던 시기였죠?
메타: 네. 그런데 시점이 좀 모호했어요. 애초부터 앨범을 만들 때 트렌드를 좇을 생각은 없었어요. 근데 아시다시피 2000년을 넘긴 시점부터 사우스 음악이나 일렉트로니카 성향을 띤 음악들이 씬의 흐름으로 자리잡다 보니 90년대의 10년이라는 시간에 비해 2000년대의 10년이라는 시간은 변화의 폭이 굉장히 크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분위기가 있으니 저희도 언제까지 로커스(Rawkus) 같은 힙합만을 생각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저희는 JU가 있을 때도 그랬지만, 무조건 내가 죽건 비트가 죽건 하나를 잡고 끝까지 죽여야 하는 스타일이라 받아놓은 비트를 가지고 계속 작업했어요. 한편으로는 ‘왜 이런 곡이 지금 같은 시기에 나오는 거지?’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을 신경 써야 했고요. 이런 과정 속에서 온갖 고심을 하다 보니 시간을 잡아먹게 되었어요. 게다가 개인적인 상황 때문에 좀 떠나 있다 보니 6년이 순식간에 지나가더군요. 중요한 건 나찰 이야기처럼 한 번도 중간에 게으름을 피운 적이 없다는 거에요. 인터넷을 보니까 우리가 혹시 [문명]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던데, [문명]을 누가하는지 이 자리에서 밝혀줄게요. 문명하신 분은 킵루츠(Keeproots)에요! (전원웃음) 2주 전쯤에 찾아갔는데 얘가 곡은 안 쓰고 노트북을 보면서 ‘아, 이 자식들 핵폭탄을 투하해버릴까!’ 뭐, 이런 말을 하고 있길래 뭐하냐고 물었더니 ‘형, 이게 [문명]이라는 게임인데요~’ 이러면서 설명을 하는데, 이미 눈이 퀭하고, 다크 써클은 짙어져 있고…. (웃음) 각설하고 한편으로는 저희들이 효율적으로 달려오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게 저희가 멍청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보다는 벌어지는 상황들을 예측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네요.
리: 만약 서던 비트나 트렌디한 비트로 가리온의 새 앨범이 나왔다면, 좀 실망했을 것 같아요. (웃음) 두 분도 워낙 이전 힙합 비트들을 좋아하잖아요?
메타 & 나찰: 물론이죠! 우리는 아무래도 그런 스타일을 더 선호하는 편이에요.
리: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어요. ‘가리온’이라는 이름이 씬에서 갖는 의미는 더는 말로 할 필요가 없을 정도잖아요? EBS 공감 공연의 슬로건처럼 ‘한국힙합의 최전선’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아무래도 이러한 부분이 앨범을 완성하고 발표하기까지 과정에 영향을 많이 끼치는 건 아닐까 하는….
나찰: 저는 분명히 부담됐어요. 그동안 인터뷰할 때 질문을 많이 받았던 것 중 하나도 1세대, 큰형님 이야기였고…. 앨범을 만들면서도 그 생각을 하면서 곡 작업을 할 때가 있는데, 지금 와서 생각했을 때 그런 부담이 20~30퍼센트라면, 70퍼센트는 우리 스스로가 정해놓은 선까지 도달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에요. 예를 들어서 어떤 곡은 16마디를 쓰는데 3개월이 걸린 곡도 있거든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의식보다도 메타 형이 말씀한 것처럼 우리가 죽건 비트가 죽건 둘 중에 하나는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으니까요. 되려 외부적인 요인은 힘이 되었어요. 응원의 소리로 들리기도 했고요. 그만큼 자신과 싸움이 중요했죠.
리: 팬들의 기다림과 기대가 더해지다 보니 ‘광명 음악 밸리’때 공연한 “생명수”의 라이브영상에서 추출한 mp3가 온라인상에서 돌기도 했는데, 그때 심경은 어땠나요?
메타: 그만큼 워낙 신곡이 없던 팀이다 보니 그런 식으로라도 들어준 분들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고맙고 죄송했죠. 이제서야 앨범을 들고 나온 게 송구스럽기도 하고요. 저희 이번 앨범이 [Detox]랑 비교될 정도였으니….
나찰: 서조단 1집이랑도 비교되고. (전원웃음)
리: 저희도 계속 사이트를 오픈한다고 해놓고 연기되니까 ‘리톡스(Rhytox)’라고 불렸었습니다. (웃음) 이번 앨범이 원래는 2년 전에 완성이 다 됐었죠? 혹시 새로 작업한 곡들도 있는지?
메타: 가장 마지막으로 작업된 곡이라면, 타이틀 곡인 “산다는 게”라는 곡인데 그것도 2년 전에 작업이 완료된 곡이에요.
나찰: 디테일한 부분을 손보기 위해서 최근에 또 작업을 했죠.
메타: 후렴을 손보기 위해서 올해 5~6월쯤에 작업했어요. 그 곡 자체가 후렴구 때문에 굉장히 고생한 트랙이에요. 오히려 벌스(Verse)나 구성이나 편곡적인 것들은 금방 나왔는데.... 사실 이 곡이 마지막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건 회사 측하고 우리 모두 이번에는 이른바 ‘타이틀곡’이라는 걸 만들어보자고 했거든요.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고,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걸 쉽게 전달할만한 곡을 만들어보고 싶었죠. 이 곡을 제외한 다른 곡은 예전에 제가 그려놓은 그림과 방향에 맞게 짜여 있었거든요. 그래서 힙합이랑 관련 없는 쪽에서도 곡을 많이 받았는데, 아, 그렇다고 해서 가요 쪽에서 받은 건 아니고요. 그런데 아무래도 곡의 퀄리티를 떠나서 저희와 안 맞더라고요. 그때 생각난 게 제일 친하고 꼬맹이 때부터 봐왔던 근수, 킵루츠였어요. “너 이제 잘나가는 가요 작곡가됐지? 넌 이제 힙합 아니니까 한 곡 줘봐.” (전원웃음) 그래서 두 곡을 받았는데, 얘가 “Adios이후로 라티노가 되어가지고 하나는 라틴 리듬이 들어간 곡이었고, 그나마 대중적인 코드가 많이 들어간 다른 한 곡도 우울한 분위기의 곡이었어요. 그게 바로 “산다는 게”라는 곡이에요.
나찰: 한가지 확실한 건 근수가 우리 이미지를 생각하고 만든 곡이긴 해요.
메타: 그러니까 우리가 우울하다는 이야기지. (웃음) 사실 처음에는 그 곡을 퇴짜 놨었어요. 그 뒤에 1년 만에 다시 그 곡을 찾아 들었는데, 다시 들어보니 못마땅한 느낌이 그때보다는 덜하더라고요. 마침 나찰도 곡이 맘에 드다고 해서 작업을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진행됐어요. 그런데 작업하는 과정에서 후렴이 계속 맘에 안 드는 거에요. 서너 번이나 훅을 바꿨는데도요. 처음에는 디즈원이 노래를 했다가 까이고, 화영이 했다가 까이고, 결국엔 제가 하게 되었어요. (웃음)
나찰: 정확히 따지자면, 원래 있던 훅을 더 노트(The Note) 상민이가 했다가 그거 아니라고 해서 까이고, 우리가 한다고 했다가 근수한테 까이고, 디즈원이 했다가…. 정말 많이 바뀐 거에요. 후렴구만 5명이나 해본 셈이죠. 딥한 부분과 대중적인 부분의 경계선을 찾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리: 전문 보컬리스트들의 후렴을 제치고 채택됐네요? (웃음)
메타: 그것도 까일 뻔했다가 천만다행으로 인강이라는 친구가 소개해준 CCM쪽의 실력 있는 보컬 선미라는 여자분을 만나서 완성하게 되었어요. 알고 보니 샛별이랑 친구더라고요.
나찰: 원래 선미 보컬이 올라간 다음에도 엎을까 했었어요.
메타: 그 정도로 이 곡에 꽂혀있던 거에요.
리: 앨범의 전체적인 컨셉트에도 상당히 신경 쓴 게 느껴지는데, 직접 설명 좀 해주세요.
메타: 2집의 컨셉트를 잡은 건 정말 옛날이었어요. 1집을 내고 언젠가 파워 플라워(Power Flower)하고 합주 준비를 할 때 처음으로 나찰한테 트랙리스트 이야기를 했었어요. 여기에는 몇 가지 제 개인적인 이야기도 담겨있는데, 여하튼 구성적으로 봤을 때 2집의 트랙리스트는 역순이에요. “다만, 가리온”부터 “그리고, 은하에 기도를”까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형태로 되어있죠. 그리고 중간중간 주요장면에 대한 것들만 곡으로 끼워 넣고, 또 그 사이사이에는 그것과 관련된 가리온 자체의 이야기를 담은 거에요. 그러니 “다만, 가리온”은 제가 만든 스토리와 실제 우리들의 이야기의 마지막 지점이 되는 거죠. 우리는 ‘다만! 가리온 일뿐이다.’라는 거에요. 인트로이긴 하지만, 사실상 아웃트로가 되는 거고요. 아웃트로 직전의 이야기는 “약속의 장소”에요. 이야기가 연결되는 것을 순서대로 이어보자면, ‘약속의 장소 - 복마전 - 본전치기 – 술 푼 사슴 - 그 날 이후 – 생명수 – 그리고, 은하에 기도를’이 되겠네요. 가사를 마지막 곡부터 거꾸로 읽어보신다면 감지되는 부분이 있을 거에요.
리: 혹시 리드머 리뷰 보셨나요? 남성훈 필자가 방금 말씀한 컨셉트와 앨범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짚어냈는데…. (웃음)
메타: 오, 그 이야기를 쓴 건가요? 와우, 대박인데! (웃음)
나찰: 전 봤어요. 감동이었어요.
리: 이번 앨범에서 한 이야기들이 두 분만의 이야기에서 그치는 건 아니잖아요? 한국힙합 전체에 대한 시각이 담겨있다고 보는데요.
메타: 맞아요. 우리가 한국힙합을 대표하는 팀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전부를 대표하는 건 아니잖아요. 리드머도 대표하고, 소울 컴퍼니의 키비도 대표하고, 최근에 오픈한 덥 사운즈의 인강이나 딥플로우나 데드피, 그리고 마일드 비츠 같은 한국힙합을 대표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잖아요. 예전에는 대표한다는 데에서 뿌듯함을 느꼈어요. 제가 처음 힙합음악에 빠져들었을 때는 대한민국도 멋진 랩퍼와 디제이, 프로듀서와 태거, 비보이들이 나올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거든요. 그리고 순수 우리말로 된 힙합음악으로 외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중요한 건 온라인상으로 힙합 붐이 일고 판이 커지다가 이제는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씬이 없어진 느낌이에요. 물론, 표면상 없어졌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때가 좋았으니까 옛날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그 당시의 무언가를 놓고 왔다는 느낌이에요. 당시에는 말 그대로 문화가 좋았었고 그 자체를 느꼈기 때문에 제대로 하는 사람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그런 사람들이 나오질 않으니까 우리가 직접 나와서 하게 된 거였거든요. 그리고 우리가 하려면, 누구한테 욕먹을 레벨이면 안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첫 번째 타깃으로 잡았던 게 일본힙합이었어요.
리: 당시 일본힙합 씬은 우리보다 앞서 있었죠?
메타: 네. [MP HIPHOP 초超 앨범을 내고 나서 대만이랑 홍콩에 나갔을 때만해도 벌써 그곳 팬들의 반응이 뭔가 달랐어요. 홍콩의 최고 MC라 불리는 MC 양(MC YAN)이라던지 디제이 톰(DJ TOM) 등은 한국어 랩에 대해 높게 평가해줬어요. 단순히 예의상 했던 말이 아니라 그 느낌에 대해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이야기했었기 때문에 거짓말하는 건 아니었어요. 근데 일본은 이미 우리와 10년 이상 차이가 느껴질 만큼 엄청 잘했어요. 디제이 씬도 차이가 있었고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일본은 따라잡자는 생각이 있었고, 저희 외에도 각자의 포지션이 있는 힙합퍼들이라면 그렇게 하고 있는 줄 알았죠. 근데 막상 저희부터가 앨범을 많이 낸 것도 아니고 6년 동안 음반을 발표하지 않은데다가 점점 바뀌는 것들에 사람들이 너무 민감하게 움직이니까 자기가 처음에 하던 것들을 부정하거나 그때의 것이 무가치하게 돼버리더군요. 무슨 말씀이냐면, 만약 예전의 제 곡들을 들으면서 ‘어휴, 뭐야, 어떻게 이때는 이런 랩을 했을까?!” 이럴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것도 전부 MC 메타의 것이라는 거죠. 그걸 자꾸 부정하게 되면, 문화가 없어지는 거에요. 개성을 지키라는 이야기보다는 적어도 시작점에 대한 것들을 품고 가야 하는데, 예전 흔적들이 없어지니까 아쉬운 거죠. 그러다 보니 리스너들이 봤을 때도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거고요. 싱글이 나올 쯤에 가리온 2집은 변화보다는 진화라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했던 적이 있어요.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한국힙합 씬의 방향이었고요. 사실 몇 년 전과 비교하면, 요즘은 오버그라운드에서 나오는 음악 중에 힙합 요소를 가진 곡이 많고, 아이돌 그룹의 음악을 들어봐도 흑인음악이 베이스인 게 많잖아요? 그런데 막상 언더그라운드는 어떻느냐는 거죠. 지금도 충분히 다양성을 갖추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봤을 땐 조금 모호해요.
리: 오히려 언더그라운드에서 나오는 음악들이 힙합의 감흥과 특성을 잃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메타: 유치하게 이야기하면, 예전에는 할 말 못할 말 다할 수 있는 게 언더니까 가능하지 않냐는 말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 언더그라운드의 가사나 음악스타일을 봤을 땐, 메이저보다 더 트렌디하잖아요. 물론, 그 자체를 욕하자는 게 아니에요. 미국 언더그라운드도 똑같으니까요. 정이 있으면 반이 있고, 음이 있으면 양이 있듯이, 당연히 어떠한 하나만이 있는 게 아니라 그에 대응하거나 대안이 되는 것들이 샘솟듯 터져야 하는 공간인데, 새로 나오는 친구들도 롤 모델로 삼는 건 오버그라운드 씬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이란 말이에요. 저희도 사실 할말은 없어요. 농담 삼아서 하는 이야기지만, 만약 저희가 딥한 먹통 슈퍼 울트라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해도 되게 잘돼서 S-CLASS를 몰고 다니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죠. (전원웃음) 이번 2집을 내면서도 이제는 우리의 발목을 잡았던 온갖 것들을 헤치고 뜯어냈으니까 다리가 가벼워진 건데 음악작업적인 측면이건 움직이는 면에서 거침없이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제대로 된 힙합음악을 우리가 듣고 싶어서 직접 음악을 시작하게 된 거였으니까요.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로 갈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JU랑 할 때도 그랬고 체질적으로 어찌되었든 끝장을 봐야 한다는 거에요. 멍청하다 싶을 정도로 이 자세에는 변함이 없죠. 내가 사랑했던 것, 나를 빠져들게 한 것이 인생을 바꾼 건데, 그걸로 끝까지 가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어요. 우리가 리더이니 우리를 따르라는 말이 아니에요. 단지 가리온이 제시하는 하나의 방향일 뿐이에요.
나찰: ‘초심을 잃지 말아라.’라는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니라 적어도 정체성에 대한 생각은 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많은 랩퍼가 이야기하는 ‘진짜를 지켜야 한다. 거짓을 말하지 말자.’ 이런 것조차도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는 것 같아요. 정말 웃긴 상황은 거의 모든 인터뷰나 기사에서 가리온을 표현하는 수식어가 ‘한국어로 랩을 하는’이라는 겁니다. 정말 아이러니하죠. 왜냐면,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까 우리를 믿고 따랐던 동생들이나 같이했던 사람들도 변해있더라고요.
리: 매우 동감합니다. 사실 이번 앨범은 공개된 트랙리스트만으로도 가슴 벅차게 만들었어요. 모두 한글로만 되어 있었으니까요. 그만큼 가리온의 앨범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어 랩의 참맛’을 느끼기 위함이기도 해요. 안타까운 건, 말씀했듯이 10년이 넘는 한국힙합 역사 속에서 아직도 ‘한국어 랩’이라는 표현을 강조해서 써야 한다는 사실인데, 전 솔직히 한국힙합의 완성을 마무리하는 건 한국어 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이 당연한 생각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꼰대 마인드”내지는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 되어버렸단 말이죠.
나찰: 진짜 재미있는 건 오히려 외국에서 더 인정을 받아요. 일본에서든 미국에서든 외국의 뮤지션들이 한국말로 된 랩을 인정해준단 말이에요. 외국 뮤지션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들을 우리 안에서는 왜 그렇게 한글로만 랩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니…. 안타깝죠.
리: 이제는 리스너들도 자연스럽게 플로우를 이어가는데 있어 영어를 섞어 써도 무관하다는 인식이 많이 자리잡힌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어느 나라건 모국어 랩은 기본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실제로 일본을 제외하면, 영어가 제2의 외국어가 아닌 이상 영어를 섞어 쓰는 곳이 거의 없어요. 그리고 PC 통신 시절 오프라인 모임에서 삼삼오오 모여 랩할 때를 생각해보면, 당시 랩에 영어를 섞어 쓰는 건 반칙이었잖아요? (전원웃음) 아니면, 힙합을 듣던 초기적 흑인 랩퍼들이 멋있게 보여서 따라 해보고픈 마음에 하거나….
메타: 그게 다 문화가 없어서 그래요. 예전에는 듣고 싶은 소리를 찾고 싶어도 방법이 없고 어려웠는데, 요즘은 정말 많잖아요. 말 그대로 소리의 거리에요. (웃음) 소리는 많은데 실체는 없어요.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들을 수 있는 공간도 별로 없고, 클럽도 전부 춤추고 DJ들이 음악을 트는 곳으로만 변했고, 지금의 스트리트는 인터넷 온라인이 되어버렸잖아요.
리: 평소 이런 랩적인 부분에 대해 후배 뮤지션들과도 이야기를 하는 편인가요?
나찰: 저는 많이 하는 편이에요. 왜냐면, 사람들이 세대를 자꾸 나누더라고요. 우리를 1세대라고 하면서 2세대, 3세대까지 십 몇 년 만에 그렇게 생겼더라고요. 제 생각을 그 친구들에게 주입시키려는 건 아니고, 적어도 그 친구들을 존중하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서 거꾸로 배우는 것도 많아요. 가장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건 마이노스와 키비 같은 친구들하고 하는데, 그 친구들도 우리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아직까지는 분명히 살아있구나! 좀 더 힘을 실을 수 있겠구나!’ 싶으면서도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게 안타까워요. 지금 하는 이야기들에 대해 확실한 대안이 있으면 좋겠는데, 사실 그렇지가 않잖아요.
리: 감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가리온의 공백이 조금만 더 줄었더라도, 그리고 초기 뮤지션들이 조금만 더 활발히 활동을 이어갔더라도 어느 정도 명맥은 이어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부분이 아쉬운 것도 사실이고요.
메타: 죄송합니다. (웃음) 이제 나왔으니 거침없이 달려야죠.
리: 그래서 진심으로 기쁩니다. (웃음) 곡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가 볼게요. 앨범의 하이라이트로 꼽는 곡 중 하나가 바로 “판게아”라는 곡인데요, “약속의 장소”의 또 다른 은유로 느껴졌습니다. 어떤 곡인가요?
메타: 이 곡은 스토리의 연장이 아니라 “영순위”와 함께 실질적인 이야기를 넣은 거에요. “그날 이후”와 “술푼사슴”에서 위로 올라가고 “본전치기”로 가는 단계가 순수에서 오염되어가는 단계라고 볼 수 있어요. 오염된다는 것이 악이 되거나 더럽혀진다기보다는 어쩔 수없이 세상의 현실에 물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보고 그 사이에 껴있는 “판게아”라는 곡을 통해 점잖게 꾸짖는 거죠. 반면에 “영순위”는 ‘너 이리 와봐! 임마!’ 이런 느낌이죠. (웃음) 한마디로 “영순위”로 먼저 싸대기를 날리고 ‘앉아봐!’ 한 다음에 ‘형이 말하려는 게 이거야.’라는 느낌이 “판게아”에요. 옛날 초대륙의 이미지를 가져왔는데, 은유적인 것들을 파고들 때 느껴지는 것도 있겠지만, 단어가 가진 1차적인 느낌을 가지고 이미지를 그려내는 곡인 거에요. 나찰이 그런 측면에서 잘 만들어냈죠. 피타입(P-Type)은 원래 스타일자체가 모호한 것보다는 정확히 집어내는 스타일이라 아예 음악이야기까지 정확히 뱉어낸 거고요. 저희가 이번에 가사집을 안 넣고 온라인으로도 가사를 공개하지 않았던 것은 조금 더 우리 소리에 집중해달라는 의도였어요. 아마 가사가 잘 들리게 되면 내용이 분명히 더 와 닿을 거에요. 여하튼 이 두 곡은 씬에 있는 사람, 같이 음악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세게 ‘한번 생각해보시오.’라고 말하는 곡이에요.
리: 그럼 “판게아”는 피타입 씨의 힙합 논란이 있기 전에 작업했던 건가요?
나찰: 네. 그 전에 작업한 거에요. 2006년 10월쯤이었으니까.
메타: 곡 자체의 최종편곡은 2007년쯤 했고요. 최근 저희 앨범을 들어본 피타입이 다시 의욕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리: 앞서 언급한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 트랙인 “영순위”에서는 피처링한 넋업샨의 활약도 대단했어요. 생각해보니 이번이 넋업샨과 첫 작업인 것 같은데?
메타: 그 곡은 원래 피처링하기로 한 사람이 타이거 JK였어요. 작업도 진행 중이었고요, 그런데 앨범이 지연되면서 좀 꼬였죠. 엄청 고생한 곡이기도 한데….
나찰: 벌스 완성하는 데만 2~3개월 걸렸어요.
메타: 왜냐면 곡이 너무 셌어요. 킵루츠가 말하길 자기가 컨트롤 할 수 없는 괴물을 하나 만들었는데 말 그대로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거에요. 그걸 저희가 조련해보라고 하더군요. 우리는 그런걸 좋아하니까 “그래? 어떤 자식이야!”하면서 곡을 들어봤는데, ‘만만한 놈이 아니구나.’싶더라고요. 처음부터 고민하면서 가사를 썼는데, 계속 맘에 안 들었어요. 이건 어떻게든 때려 잡아 죽여야겠다 싶었고.
리: 그럼 딜리버리 면에서도 처음과 바뀐 게 있나요?
메타: 일단 원래 나찰 가사는 지금 가사가 아니었어요. 나찰이 먼저 가사가 나와서 녹음을 하고 그걸 JK한테 보내줬는데, 반응이 심각했어요. 나찰이 그 때 너무 분노 모드로 가사를 썼기 때문에…. 나중에 들어보니 JK는 나찰이 자기를 싫어하는 줄 알았대요. (웃음) 어쨌든 그 가사를 듣고 JK도 기합이 잔뜩 든 스타일로 멋있게 잘해서 보내줬죠. 저도 맘에 들어서 제 벌스를 녹음하고 마무리를 짓겠다고 생각했는데 문제가 있었어요. 제 벌스를 녹음한 다음에 편곡단계를 한번 더 거치고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는데 JK가 연락두절이 된 거에요. 계속 연락이 안 되다가 몇 개월이 지나버린 거에요. 처음에 아카펠라가 아닌 모니터링용으로 AR만 받은 상태여서 작업을 할 수가 없었죠. 저희는 심각해졌죠. 그렇게 속을 태우고 있다가 연락이 닿았는데, JK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미국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당장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 안 된다고 해서 저희가 그럼 아카펠라하고 소스만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JK의 랩이 레코딩된 데이터가 들어있는 하드디스크가 고장 나서 그걸 공장에 넣어놓고 복구를 시키려고 했지만, 결국, 살리지를 못했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JK가 드렁큰 타이거 1집 때부터 가지고 있던 아카펠라 소스를 백업 받아놓은 하드디스크였어요. 그쪽도 비상사태였던 거에요. 그렇게 망연자실하게 있다가 또 시간이 흘렀죠. 저희 둘만의 벌스로 트랙을 끝내기에는 너무 아쉬웠고…. 결국, 고심 끝에 나찰이 추천했던 랩퍼가 넋업샨이었어요. 옛날부터 제가 좋아했던 동생이기도 해서 솔직하게 사정을 얘기하고 참여를 요청했죠. 고맙게도 흔쾌히 참여해주었고, 정말 멋진 벌스를 선사했어요.
리: 안 그래도 예상했던 타이거 JK 씨의 참여가 없어서 의아했는데, 그런 비화가 있었군요. 어쨌든 JK 씨의 참여가 불발된 건 아쉽지만, 넋업샨 씨의 벌스와 랩핑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아요. 저도 참 좋게 들었고요. 주연급 활약이었다고 생각해요. (웃음) 나찰 씨는 특별히 넋업샨 씨를 추천했던 이유가?
나찰: 일단 이 곡은 너무 어린 친구들이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79년생 이하로는 안될 것 같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꼽아보니 남아있는 친구들이 얼마 없더라고요. 넋업샨, 피타입… 그런데 피타입은 한 곡을 이미 작업했고 스킬도 스킬이지만, 어떤 포스나 노련미가 나올 수 있는 MC는 넋업샨 밖에 없다는 생각에 메타 형한테 추천했는데, 넋이 정말 잘해줘서 놀랐죠.
메타: 영쥐엠 디스곡이라는 말이 나오긴 했지만. (웃음)
리: 아무래도 제목 때문에 더 그런 오해가 생긴 것 같아요.
나찰: 근데 가사내용도 얼추 맞아떨어지긴 해요. (웃음) 하지만, 그건 디스 사건 이전인 2007년 말에 작업한 곡이에요.
메타: 컨셉트 자체가 특정대상을 놓고 까는 게 아니고 씬 전반에 대한 이야기에요.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지 특정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우리 씬에 사랑과 평화가 필요하지 공포와 죽음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좀 더 커지고 쳐내야 할 가지나 걷어내야 할 거품들이 생기면 무서운 형들이 나와야 할지도 모르겠지만요. (웃음)
리: 이후에 JK 씨를 만나서 곡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나요?
메타: 이번에 라카가 내한했을 때 JK를 만났는데, 그 몇 년 사이에 미래랑 결혼도 하고 조단이도 나오고 하는 여러 큰 일을 겪었기 때문에 저희도 그런 사정을 다 이해하고, 제가 JK한테 이러이러해서 너와의 트랙이 안 된 거다라고 이야기했어요. 하지만, 우리 모두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죠. 서로 알고 지낸 지는 오래됐지만, 본격적인 교류를 하면서 알면 알수록 인간적인 매력도 많이 느꼈었으니까요.
리: 가리온과 타이거 JK가 만난다면, 정말 뜨거운 결과물이 나올 것 같습니다. 빠른 시일 안에 꼭 작업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네요.
메타: 어차피 2집은 나왔고, 앞으로 기회를 더 가질 수 있겠죠.
pt.2에서 바로 이어집니다.
*인터뷰 내용이 길어 파트를 두 개로 나누어 게재하오니 양해 바랍니다. ^^
인터뷰. 글 / 강일권, 박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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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권우 (2011-05-10 01:36:20, 121.64.249.***)
- 좋은 글 감사합니다^^ JK일화가 특히 재미있네요(당사자분들은 그렇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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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효원 (2010-11-09 20:54:43, 220.70.83.***)
- 존경합니다. 형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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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석 (2010-11-09 20:31:19, 125.185.2.**)
- 오호라... 저렇게 해석하는거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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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호 (2010-11-08 17:40:02, 115.21.61.***)
- 가리온을 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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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one (2010-11-07 17:22:05, 125.176.32.***)
- 이런 분들이 진짜 아직까지 있다는 사실이 너무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가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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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랩퍼엔 (2010-11-07 00:03:27, 112.153.162.**)
- 형님들의 신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느껴지는 인터뷰 잘 들었습니다.
동영상에서 진필아, 성천아 돌아와 그러시는 말에 살짝 감동 ㅠㅠ
피타입 판게아 정말 멋진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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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다심 (2010-11-06 23:58:46, 118.216.38.**)
- 오호! 간만에 내용이 정말 알찬 인터뷰였어요!
파트투 기대하겠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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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교 (2010-11-06 22:43:39, 59.9.145.**)
- 아아. 너무 좋을 것 같은데 음원이 너무 안풀려서 이건 고문이나 마찬가지네요. 회사랑 빨리 조율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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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ustomer (2010-11-06 21:34:15, 218.152.69.***)
- 위에 밝힌 JK와의 작업 불발은 정말 아쉽네요.
영순위는 넋업샨이 멋지게 발라주긴 했지만 JK역시 어울릴듯했던 옷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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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h! nuts (2010-11-06 21:09:08, 121.135.199.***)
- 파트투로 나뉠정도면 얼마나 인터뷰를 한건가요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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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릭튜드 (2010-11-06 19:39:30, 175.114.24.**)
- 내용 알차네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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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rome (2010-11-06 18:52:39, 112.169.84.***)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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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수 (2010-11-06 17:20:01, 222.103.52.***)
- 아 너무 좋습니다 가리온 클클 처음부터 다 정독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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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ked Boi (2010-11-06 14:05:14, 125.189.49.***)
- 여러 궁굼증이 풀리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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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동영 (2010-11-06 13:57:33, 117.53.217.***)
- 트랙 해석을 저런 순서로 해야하는거 였군요...
2부에서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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