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인터뷰] 용감한 형제 - 계획된 침묵 끝에 내딛는 첫 발걸음
- rhythmer | 2009-10-12 | 1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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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형제는 세련되고 독특한 스타일로 YG 사운드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으며, 손담비, 빅뱅, 브라운 아이드 걸스 등 많은 가수들의 히트곡을 주조해내며 짧은 시간 안에 스타 프로듀서로 등극했다. 그러나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이 있다. 첫 째는 음악팬들의 가시권 안에 들어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가 음악을 시작한 지는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는 점. 두 번째는 엄청난 힙합음악팬이라는 것. 그동안 축적된 노하우가 오늘날 브레이브 사운드를 있게 한 것이다. 이번에 그는 오랜 둥지였던 YG를 나와 브레이브 엔터테인먼트라는 새로운 둥지를 틀고 자신의 이름을 앞세운 첫 결과물 [Attitude]를 발표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뜨거운 관심과 논란이 동반됐다.
리드머: 처음 힙합에 빠지게 된 건 언제인가요? 음악을 시작하기 전 이력이 화려(?)했다고 알고 있어요.
용감한 형제(이하 ‘용형’): 원래 전 음악에 관심이 없던 친구였어요. 흔히 말하는 갱스터라 그러죠. 열일곱 살부터 스무 살 때 까지 싸움꾼이었어요. 그냥 노는 애 정도가 아니라, 그곳도 진짜 갔다 왔을 정도로 살벌하고 심각했어요. 그러다 스물한 살 초반 때, DJ하는 동생이 싸이프레스 힐(Cypress Hill)이라는 그룹의 음악을 들려줬는데, 음악이 되게 이상하더라구요. 되게 느리고,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동생한테 이게 뭐하는 음악이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 동생이 이건 싸이프레스 힐이라고 갱스터 랩 하는 그룹인데, 형이랑 비슷한 게 되게 많은 거 같다고 하는 거예요. 뭐가 비슷하냐고 물었더니, 형도 x나 갱스터잖아요. 이 친구들도 완전 갱스턴데, 형처럼 막 행패 부리고 다니는 게 아니고, 자기들 보호하기 위해서 총을 들고 다니고, 랩을 한다는 거예요. 근데 사회에 불만 있고, 진짜 화나고, 기분 나쁘고, 경찰이나 여러 사람들에 대해 열 받는 것들을 가사로 풀어서 랩을 하는데, 이런 친구들이 미국에 많다고 하는 거예요. 그럼 그거 해서 뭐가 남느냐고 물었더니, 돈도 많이 벌고, 스타로 되게 유명하고, 자기네 앞가림도 그걸로 다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 얘기를 듣고 나서 다시 음악을 들어봤는데, 이번에는 딱 꽂히더군요. (웃음)
리: 동질감 비슷한 게 느껴진거군요. (웃음)
용형: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 나도 이게 정말 하고 싶다. 이거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라고 처음으로 물어봤어요. 뭔가가 하고 싶어서 누군가를 잡고 물어본 게 처음이었어요. 그 때 들었던 노래가 다른 것도 많았는데, 특히, “Hand On The Pump”에 완전 맛이 갔어요. 그래서 다음날 바로 낙원 상가를 가서 어떻게 비트를 찍어야 되냐 물어보기 시작한 게 계기였죠. 근데 당시에 엄청 사기를 당했어요. 제가 아무 것도 모르는 걸 알고는 장난을 친 거죠. 말도 안 되는 아타리 컴퓨터 소개시켜주고, 케이크워크 프로그램 정품을 사오고, 악기가 없어 소리도 안 나는데 그것만 있으면 된다고 그러고, 샘플러도 없는데 샘플 CD만 잔뜩 사오고, 몇 백 만원 어치를 사왔죠. 일단 그렇게 갖고 왔는데, 소리가 안 나잖아요. 비트를 찍어야 되는데 소리가 안 나니 어떻게 찍겠어요. 결국, 신시사이저는 너무 비싸서 못 사고, 야마하 키보드를 하나 사와서, 그거를 가져다 꽂고 처음으로 비트를 찍으며 흉내 내기 시작 했던 거죠. 그게 얼마 안됐어요.
리: 그 전에는 음악에 큰 관심이 없었던 건가요?
용형: 그냥 우리 세대랑 똑같았죠. 노래방 다니고, 듀스 노래 듣고,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룰라 정도 듣고는 했죠.리: 지금의 용감한 형제가 되기까지 역사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형과 함께 활동하려 했었잖아요. 그래서 이름에도 ‘형제’가 들어간 거고....
용형: 처음에 장비들을 사왔는데, 따로 배운 것도 없고,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니까, 형한테 케이크워크 사용법 책을 주고는 한 번 읽어보라고 했어요. 그렇게 사용법 나온 걸 보면서, 키보드 연결하고 소리 나게 하는데 만도 3~4주가 걸렸어요. 그러다 형에게 “나 이거 하려는데 같이 할래?”라고 물었더니, 형도 하고 싶다더라구요. 우리 형은 원래 음악을 좀 듣고 있었어요, 제가 그렇게 뭔가를 같이 하자고 하니까 형도 정말 좋고, 신기했나 봐요. 이놈이 x나 꼴통이고, 무서워서 말도 못 걸 정도의 애였는데, 무언가에 빠졌다는 게 형으로서 좋았던 거죠.
리: 형님은 성격이 반대였나 봐요?
용형: 네, 완전히 반대였어요. 매일 방에서 술이나 까고 그러던 놈이 어느 날 갑자기 자기한테 음악적으로 질문을 하고, 악기를 막 준비하고 그러니까, 형도 그래 나도 한 번 같이 해보자 했던 거죠. 그리고 한 일주일 쯤 지나서, 어느 날 형이 자기가 만든 거라면서 딱 틀어주는데, 딱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더라구요. 솔직히 지금 생각하면, ‘쿵딱 쿵쿵딱’하고 어택 하나 없이 그냥 말도 안 되는 비트였는데 말이죠. 아무것도 아닌데, 당시엔 막 죽인다고…. (웃음) 90bpm 정도 되는 비트였는데, 제가 어떻게 했냐고 빨리 가르쳐달라고 그랬더니 형이 가르쳐준다고 기다려 보라고 하고는, 피아노 롤을 딱 열어서는 이게 드럼이라고 보여줬어요. 이게 ‘쿵쿵쿵’ 소리고, 이게 ‘탁탁탁’ 소리다. 당시엔 킥, 스네어도 몰랐어요. 그리고는 그것만 찍기 시작했죠. 하루 종일 20시간 가까이 계속 찍고 들어봤어요. 할 줄 모르니까 다른 악기들을 얹지는 못하고.... 근데 2~3주 후에 형이 군대를 가버려서 제가 혼자 앉아서 이것저것 다 만져보기 시작했어요.
리: 혼자 책을 보면서 연습한 거군요.
용형: 아, 저는 매뉴얼 같은 것 보는 걸 별로 안 좋아하고,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걸 좋아해서 그냥 직접 다뤄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컴퓨터도 뻑 내보고, 낙원상가 들고 가서 또 갖고 오고… 그렇게 해서 드럼을 처음 찍고, 베이스도 넣어보고, 그 다음엔 코드도 모르지만, 외국 음악에서 들어본 대로 이상한 리드 소리 같은 것도 넣어봤죠. 녹음도 오디오에 그냥 마이크 꽂고 반주 틀어 놓고 테이프에 같이 들어가게 만들어서 하고 있는데, DJ 동생 한 명이 명함 하나를 받아서 가져왔더라구요. 그래서 나도 한 번 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정성스럽게 만든 데모 테이프를 갖고 가서, 갱스터 랩으로 일단 오디션을 봤죠. 그 때가 음악을 시작한지 4개월 정도 되었을 땐데, 당시에 현대 방송에서 주최한 대회에서 싱어송라이터로 뽑혀서 금상도 받았어요. 작사, 작곡에 랩하고 춤도 춰서 1등을 했던 거죠. 혼자 비트를 찍고, 당시엔 라임도 잘 몰라서 그냥 되는대로 좋은 내용을 쓰면 되겠구나싶어서 흉내를 냈던 건데, 막 매니저 분들도 저한테 프로냐고 묻는데, 되게 신기했어요. 짧은 기간에 집중을 해서 이뤄낸 성과였기 때문에, ‘어, 나한테 진짜 이게 소질이 있나보다.’ 했죠. 그러다가 기획사에 들어가서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까 좀 그렇더라구요. 그냥 그런 회사인거 같고, 더군다나 전 그냥 가수가 되고픈 게 아니고, 진짜 미국에서 힙합 하는 친구들처럼 되고 싶었거든요. 이렇게 춤추고 그러는 게 싫어서, 난 이제 흉내를 내는 정도니까 서두르지 말자 마음먹고 회사를 나왔죠. 그리고 다시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어요. 라임과 플로우도 알게 되고, 그 당시가 22살 정도 되었을 때죠.
리: 시작을 한 건 늦었는데, 하고 나서는 상당히 빨리 익혔네요. 원래 그렇게 하나에 꽂히면 미치도록 빠져드는 스타일이었나요?
용형: 아뇨. 그 전에는 이것처럼 꽂혀본 게 없었어요. 이 바닥에 10년 가까이 있으면서, 한 번도 이 열정이 꺾여본 적이 없고, 절대 다른 일을 해보자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어요. 성공하기 전엔 분명 힘들었을 것 아니에요. 누구나 다 배고프고. 근데 죽어도 딴 일을 안했어요. 다른 일 하며 음악을 하면 취미 밖에 안 될 거 아니에요. 전 내 인생을 올인 하겠다는 생각에 한 번도 딴 마음을 품어본 적이 없어요.리: 그러면 용감한 형제는 형제로 시작했는데, 형이 군대를 일찍 가서 혼자 활동을 시작한 거네요.
용형: 용감한 형제라는 이름이 처음에 나왔던 게 아니에요. 형이랑 같이 하기로 했는데, 군대를 갔잖아요. 근데 제가 비트를 만든 게 잘 됐잖아요. 그래서 곡 작업을 해야겠다 해서 만든 비트를 형 면회를 갈 때마다 들려줬어요. 그러면 형이 글재주가 좋아서 거기에 맞춰 가사를 써서 보내주고, 제가 파트를 나눠서 랩을 하며 데모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홍대 쪽에 쌍둥이 형들이 있었는데, 당시에 제가 비스티 보이스(Beastie Boys)에 꽂혀 있었거든요. 그 쌍둥이 형들이 한 명은 베이스, 한 명은 디제잉, 우리 형은 기타, 나는 랩을 하면 재미있겠다 생각해서, 형이 군대 가 있는 동안 계속 그렇게 팀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형이 제대해서 모든 걸 얘기했더니 깜짝 놀라는 거예요. 제 열정이 이 정도일 줄 몰랐던 데다가, 정말 많은 걸 해놨으니까. 결국, 팀이 안 되고 깨지긴 했지만, 당시 같이 작업하면서 실력도 많이 늘었죠. 그렇게 계속 곡을 만들다가 이왕 할 거면 진짜 시원하게 해야 되니 제일 센 데로 가자고 해서 YG로 가게 된 거예요. 곡 작업은 어차피 제가 하니까 형은 옆에서 가사를 쓰고 랩 연습을 하라고 한 다음에 작은 방 하나 얻어서 6개월 동안 곡을 만든 다음에 8~9곡을 추려서 보냈어요. 그 때 1번 트랙 제목이 “어느 형제”였는데, 되게 사고치고 다니는 형제가 일으키는 해프닝을 음악으로 표현한 거였어요. 그 곡 맨 마지막 가사 중에 ‘이 용감한 형제는’ 이라는 멘트를 보이스 피치다운 시켜서 날리는 게 있었어요. 그걸 듣는데 용감한 형제라는 말이 맘에 들더라구요.
리: 그래서 용감한 형제라는 이름을 정하고 YG에 데모를 보낸 거군요.
용형: 그렇죠. 한글로 용감한 형제라고 CD 앞에 써놓고, ‘Fuck You'를 날리는 손 그림을 딱 그려놓고, 전화번호만 뒤에 달랑 적어서 YG에 데모를 던진 거죠.
리: 진짜 용감했네요. (전원웃음)
용형: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전화가 왔어요. 대체 뭐하는 놈들이냐, 돌아이 자식들 같다고 양사장님이 너무 궁금해 한다, 음악도 되게 골 때리고 완전 신선한데다가, 자기소개 하나 없고, 사진도 없는데 음악이 재미있고 퀄리티도 괜찮다면서요. 기분이 좋더라구요. 그런데 사진을 보내 달라 그러기에, “외모 보고 뽑고 그러는 거면, 그냥 안 할래요.”하고 끊었어요. 전 진짜 음악으로 인정받아서 하고 싶었으니까요. 근데 다시 전화가 왔어요. 외모를 보려는 게 아니고 그냥 어떤 사람들인지는 알아야 될 거 아니냐, 양사장님이 궁금해 하니 그냥 아무렇게나 찍어라 그러기에 공원 앞에서 가볍게 찍은 걸 보냈어요. 그리고 현석이형한테 직접 전화가 왔죠. 만나자고. 다음 날 가서 바로 계약했구요.
리: 직접 만난 양현석 씨는 뭐라고 하던가요?용형: 조pd도 있고, DJ DOC도 있지만, 내가 너네처럼 가사가 센 녀석들은 처음 봤다, 진짜 네가 쓴 거냐, 곡도 재미있고, 될 거 같다, 빨리 진행하자 그랬죠. 그렇게 2002년 10월 쯤, YG 밥을 처음 먹게 됐어요. 시간이 되게 빨리 갔죠. 거기서 계약을 하고, 가수 준비를 했어요.
리: 처음에는 직접 힙합 듀오로 활동하려 하다가 프로듀서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용형: 앨범을 준비하면서 하나 걸림돌이 있었는데, 바로 가사 문제였어요. 가사가 재미있고 좋은데 대중들이 듣기에 거북스러운 건 컨트롤을 해야 했거든요. 그래서 수정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근데 음악적으로 사람 욕심이라는 게 있잖아요. 이 정도면 수정할 만큼 한 거 같은데 또 고쳐야 될 부분이 생기고, 현석이형 하고 상의하다 보면 이게 또 걸리고, 그걸 거의 2년 동안 한 거예요. 가사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싶었는데, 수정을 계속 하다 보니 그런 느낌이 사라지더라구요.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수정을 마쳤는데, 그땐 이미 2년이 지나있었죠. 그러니까 이제 그 음악들이 흐름에서 동떨어진 음악이 된 거예요. 당시 미국에서는 클럽튠이 막 인기를 끌기 시작했거든요. 회사에서도 “2년이 지나서 (지금 음악으로 나가기에는) 이제 좀 힘들 것 같은데”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나서, 잠수를 타버렸어요.
리: 얼마동안이나요?
용형: 한 6개월 정도 잠수 타다가 음악을 쫙 만들어 가지고 돌아왔어요. 그때는 악기도 싸구려 JV-1010 모듈 하나 밖에 없었어요. 생활이 너무 쪼들려서 방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고, 갖고 있던 악기도 팔아야 했거든요. 왜냐면, 저 악기를 써야 되는데, 이 악기 밖에 없으면 저 악기 소리를 못 내니까, 이 악기를 팔아서 저 악기를 다시 사고... 그렇게 JV-1010만으로 만들어서 가져간 음악이 “눈물 씻고 화장하고”였어요. 그런 음악이 당시 가요계에서는 되게 센세이션 했거든요. 전화도 안 받고 잠수 타다가 갑자기 나타나가지고 “눈물 씻고 화장하고”, “Party” 같은 트랙을 만들어 가서, “형, 이거 들어보세요. 여기다 우리가 할래요.” 하고는 딱 틀어줬죠. 그러니까 현석이형이 듣고는 눈이 이만해 진거예요. “이거 진짜 네가 만든 거 맞느냐? 거짓말하지 말고 자식아.”라고 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형이 “이거 정말 센세이션 하다면서, 미안하지만, 이거 너희가 안 하면 안 되겠니? 너희 꿈이 있는 건 아는데, 내가 볼 때 넌 프로듀서로서 재질이 더 많은 거 같다.”고 하더라구요.
리: 그 말을 듣고 섭섭하지는 않았어요?
용형: 희한하게도 그 말을 듣고 속상하거나 섭섭하지가 않았어요. 당시 프로듀서의 매력을 알아가던 시기였기 때문에, 정말 흔쾌히 그러자고 했어요. 그래서 그 곡이 렉시(Lexy)에게 가게 됐던 거죠. 전 프로듀서로 빠지게 됐구요. 제 형도 그거에 대해서 본인은 미련이 없다고 하면서 자기는 엔지니어나 다른 쪽으로 공부할거라고, 나중에 또 같이 할 수 있으면 하자고 얘기해서 저만 완전히 전향한 거죠.
리: 그때부터 용감한 형제는 1인 체제로 바뀐 거군요.
용형: 네. 그때 현석이 형이 “이제 강동철로 이름을 올려야 되잖아?” 하는데, 제가 그냥 용감한 형제로 가겟다고 했어요. 용감한 형제로 앨범을 내고 싶었고, 나름대로 힘들게 해왔던 거기 때문에 이 이름을 버릴 수는 없었거든요.
리: 문제가 됐다는 초기적 곡들이 어느 정도였는지 궁금하네요. (웃음)
용형: 가사가 되게 셌어요. 사회에 대해서 불만 있는 걸 다 얘기했어요. (리: 워낙 경험들도 많으니까) 네. 뭐 저희는 기사를 보고 쓰는 게 아니고, 실제로 경험하고 느끼는 걸 썼으니까요. 그게 진실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요. 그래서 음악을 시작했던 거고. 예를 들어, 연예인들 중에 “쟤는 왜 나와서 저 짓거리를 하는지 x같다” 라고 생각하면 그걸 가사에 다 썼어요. 현석이형 얘기로는 DOC 씨 형들도 게임이 안 될 정도로 세다고 했으니까요. (웃음) 중요한 건 대중들도 듣게 하기 위해 재미를 줬었어요. 어렵거나 막 욕설만 들어간 게 아니고, 지금 왕비호 식으로 재밌게 쓴 가사들이었어요. 대중들도 듣고 신날 수 있는 센세이션한 음악이었죠. 그 당시 타이틀이 “Dear Baby”였는데, 당시 제가 고소영 씨를 되게 좋아했거든요. 그 좋아하는 마음을 스토리텔링 식으로 내가 왜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됐고, 이 사람을 위해 어떻게 할 거고, 어떻게 만나고 싶다는 걸 썼는데, 그 때 YG 직원들 30명 정도가 듣고 다 뒤집어졌어요. 가사에 나오는 말들이 회사 안에서 유행어가 될 정도였죠.
리: 그때 만들었던 곡들은 보관하고 있나요?
용형: 네. 갖고 있어요. 제가 이번 싱글을 낼 때, 그런 스타일을 한 번 넣어볼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일단 지금은 프로듀서로서 입지가 구축되어 있는 상태라서…. 그래도 꼭 한 번 들려드리겠다는 마음은 먹고 있어요. 이제 앞으로 나오는 음악들은 더욱 힙합적으로 갈 거예요. 이번은 일단 첫 싱글이라서 발판으로 삼는 음반이기 때문에 좀 실험적으로 하고 싶은 음악들을 넣었고, 이제 앞으로는 제가 원래 좋아하는 스타일의 힙합 음악들을 많이 넣으려고 해요.
리: 음악 공부를 전문적으로 했던 건 아닌데, 작업을 할 때 주로 그 진행 방식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떠오른 테마 멜로디에 비트를 붙이는 방식인지, 혹은 다른 방식인지....
용형: 음. 지금도 저는 코드를 몰라요. 뭐, 코드 모르는 게 자랑은 아닌데, 솔직히 별로 알고 싶지 않아요. 왜냐면, 코드에 맞게 다 짜인 방식대로 가는 건 재미가 없는 것 같아서, 제가 들어서 귀에 맞는 코드를 그냥 찾아나가요. 그러다가 제가 원하는 스타일의 코드를 네 마디 루프로 만들어 넣거든요. 저는 아직도 케이크워크를 써요.리: 우와, 추억의 툴을 아직도요? 기존에 발표된 곡들이 다 케이크워크를 통해 나온 곡들이군요.
용형: 네. 장비는 야마하 모티프 신시사이저 한 대를 놓고 쓰는데, 사운드 공부하고, 소리 만드는 걸 되게 좋아해요. 전 음악을 만들 때 일단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가사나 아이템이 나오면 핸드폰이나 그런데다 녹음을 해요. 그런걸 아직도 하고 있어요. 좋은 가사가 나오면 핸드폰에 메모도 하고. 그런 특별한 게 없을 때는, 거의 일단 그냥 백지상태에서 비트부터 찍고, 악기 반주부터 만들어 나가죠. 그 이후에 멜로디를 올리고 랩을 쓰면서 하나의 곡을 만들어 가요. 녹음된 걸 바탕으로 코드를 잡아 가는 경우도 있고, 먼저 아무거나 하고 싶은걸 하고 그 위에 나머지를 얹는 경우도 있죠.
리: 그 모티프 61건반 하나로 작업하는 걸(“마지막 인사”, “미쳤어”, “어쩌다” 등등) 여전히 고집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용형: 특별한 이유라기보다는 빅뱅 비롯한 히트곡들도 다 모티프만 쓰다보니까…. 진짜 그건 제가 홍보 많이 했어요. (웃음) 저 때문에 산 사람이 정말 많아요. 근데 그걸 너무 오래 쓰다 보니까, 소스에 한계가 오더라구요. 소리를 만져도 이제는 변할 게 없어요. 어택을 돌리고, 릴리스를 잡고, 다 돌려도 소리가 안변해요. 그래서 이번에 미코(MiKo)란 악기를 새로 샀어요. 지금 물 건너 오고 있죠. (웃음) 팀발랜드(Timbaland) 에디션이라 해서 팀발랜드가 쓰는 악기인데, 테디(Teddy)도 지금 쓰고 있어요. 그 미코 시리즈에서 최신으로 나온 게 있거든요. 천 몇 백 만원 하고, 우리나라에는 아직 이걸 쓰는 프로듀서가 없는데 제가 갖고 와서 쓰려구요. 아마 다음 주에 그 악기가 오면, 앞으로 나올 음악들이 또 조금 달라질 거예요. 힙합 리스너들이 좋아하는 사운드가 더 나올 것 같아요.
리: 용감한 형제의 곡들은 대중적인 곡들에서도 둔탁한 드럼 질감이 드러나는 경우가 상당한데요. 미국의 힙합 프로듀서들을 보면 드럼 사운드만으로 본인의 색깔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용감한 형제의 경우 리듬부를 짜며 드럼 소리를 연출하고 하는 데 특별한 지향점이나 고집하는 부분이 있는지요.
용형: 확실히 뭐가 있냐면, 일반 다른 작곡가들이랑 얘기를 해보면 달라요. 제가 작곡가들을 일부러 잘 안 만나거든요. 마인드 자체가 틀려서. 다른 작곡가들은 멜로디가 중요하고, 드럼은 아무거나 넣어서 비트만 치면 된다는데, 전 그런 걸 들으면 짜증나고 x신 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왜냐면, 이런 댄스나 힙합 비트는 드럼이 생명이에요. 리듬이 생명이라구요. 단순한 루프를 돌려서 코드 얹어 놓는 건 어느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예요. 힙합 비트를 찍을 수 있는 건, 나만의 독창성과 나만의 사운드가 있어야 되는데, 그게 없으면 한마디로 그냥 대중가요죠. 물론, 저도 대중가요를 하고 있지만…. 전 퍼커션도 복잡하게 넣으려하고, 리듬부에 공을 많이 들여요. 킥, 스네어, 하이햇…. 그렇게 해서 줘도, 제작자들이나 이런 사람들은 “아, 이거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편하게 가죠.” 이러거든요. (웃음) 어쩔 수 없어요. 그게 한국음악 시장의 한계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해주는데, 하면서도 일단은 킥, 스네어 질감은 좋게 주려고 해요. 왜냐하면, 저는 멜로디 잘 뽑았단 말 보다, 사운드를 잘 뽑았단 말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얘 소스 되게 특이하다.”는 말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걸 많이 연구해요.
리: 그 연구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을까요?
용형: 일단 댄스곡이나 힙합 비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작 뒤에 있는 백그라운드거든요. 그 반주가, 사운드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음악이 구리거나 촌스러워 질수도 있죠. 대중들은 잘 몰라요 그걸. 대중들은 그냥 좋은 멜로디가 좋지만, 전 그건 대중들을 위한 게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하는 거라 생각해요. 제가 프로듀서란 이름을 쓸 수 있으려면 책임이 있어야 되거든요. 되게 무게 있는 말이니까요. 사운드부터 모든 걸 프로적으로 봐야하기 때문이죠. 제가 만든 댄스곡은 서로 비슷하다는 의견들이 많은데, 솔직히 알앤비나 서던 풍의 음악들 들어보면, 제가 공 들인 게 티가 많이 나요. 근데 그런 것들이 타이틀이 안 되고, 그냥 앨범에 서브로 깔리니까 사람들이 들어볼 기회가 없어서…. 우리나라는 원래 타이틀곡만 듣잖아요. 다른 수록곡은 거의 안 들어요. 그 곡들을 들어보시면, 제가 비트를 만들 때 정말 소스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걸 느낄 수 있으실 거예요.
리: 초반에 YG에서 활동 하다가, 독립을 했잖아요. 그 계기가 뭔가요?용형: 음, 제 젊은 음악 인생에, YG란 단어는 빠질 수 가 없어요. 자꾸 다른 기자 분들도 물어보고 그러는데 얘기를 안 하려고 해도, 제 젊은 인생 절반 이상을 YG에서 보냈으니까요. 20대 다보내고 이제 31살인데…. 거기서 기쁜 일도 있었지만, 정말 힘든 일이 많았거든요. 2~3년 음악하다 잘 돼서 나갔다는 둥, 돈 벌어서 나갔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돈 번 것도 없고, 거기서 진짜 음악이 좋아서 했던 건데, 너무 힘들었고…. 그래서 새로운 일을 나와서 찾아보고 싶었어요.
리: 한 지인의 얘기로는 프로듀서나 작곡가는 소속사에 속해 있는 것 보다, 어느 정도 커리어가 쌓이면 독립해서 활동 하는 게 더 좋다고 하더라구요.
용형: 저는 원래, 이리저리 일도 많았고, 말 못할 사정도 많았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면, 현석이형이랑 평생 가려고 그랬어요. 제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한, 그 형을 위해서 몸 바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리: 그런 우여곡절 끝에 이번 드디어 용감한 형제의 이름을 건 첫 결과물이 나왔는데, 정규가 아니고 싱글이라 조금 아쉬워요. 계획이 바뀐 건가요?
용형: 저는 대중들한테 실망하지 말라는 얘기를 이 앨범을 통해 던진 거거든요. 분명 사람들이 실망을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정규로 나오거나 더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데, 실망은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은 거예요. 용감한 형제 타이틀을 달고 나온 첫 발판이거든요. 이걸 그냥 무작정 던졌겠어요? 한 달이나 두 달 있다 또 나와요. 그때도 앨범이 아니고, 디지털 싱글로 2~3개씩 나올 거예요. 그리고 연말에 정규가 나올 거예요. 그렇게 계획을 잡고 있어요. 이번 싱글을 CD에 담은 건, 일단 저의 첫 스타트이니 부담 갖지 말고 들어보시라는 것이고, 이제 두 번째부터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과 하고 싶었던 것들이 되게 많이 들어갈 거예요. 대중들이나 친구들에게 서서히 들으면서 저에 대해 알아가라는 거예요. 처음부터 모든 걸 다 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웃음)
리: 이번 싱글에서는 기존에 발표한 곡보다 기승전결 구조가 보다 선명히 드러나요. 타이틀곡 “Invisible”도 그렇구요.
용형: 프로듀서 앨범임에도 지금 반응이 되게 뜨거워요. 저도 깜짝 놀랐는데, 댓글이 막 600개 달리고 이러거든요. 사람들이 제 얘기를 많이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많이 읽었던 얘기가, “Invisible”을 들어봤는데 후크(Hook)송 같다는 얘기를 해요. 후크송이란 말이 왜 나왔는지 잘 모르겠어요. 기자들이 만들어 낸 얘긴데…. 힙합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가사에서 중점이 되는 포인트 부분들을 8마디 훅에다가 넣는 게 당연했고, 그 훅이 없단 건 음악을 듣지 말라는 거거든요. 그걸 대중가요에다 접목하다보니 그렇게 된 거구요. 이번에는 록적인 요소를 넣고, 드럼이나 기타 사운드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렇게 만든 음악이 “Invisible”이구요.
리: “Brave Sound”와 “Invisible”은 가사가 의미심장합니다. 곡을 들은 많은 힙합팬은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을 때 느낀 불합리함에 대한 분노와 회의가 담긴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용형: “Invisible”은 그냥 제가 썼던 곡들 가사로 쓴 건데, 담고 싶은 메시지는 물론 있었겠죠. 그건 듣는 분들이 알아서 해석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인트로나 “Brave Sound”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데요, ‘한강이 보이는…, 죽음의 문턱가지 가봤어’ 이런 건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 진솔하게 쓴 가사에요. 그것도 개인이 알아서 판단하길 바라는 거예요. 거기엔 거짓이 없어요. 가사를 1분 만에 쫙 쓴 다음에 라임 정리나 그런 게 며칠이 걸렸죠. 근데 기사에는 1분 만에 썼다고만 나가니까 “저 새끼 대충 거저로 해먹은거 아니냐." 그러는데, 너무 진솔하다보니까 그런 거죠. 힙합 뮤지션들은 자기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쓰잖아요. YG에 대한 디스라는 분도 계신데, 그것 역시 알아서 판단해주세요.
리: 이번에 “Brave Sound”에서는 랩을 직접 했는데, 앞으로 나온 결과물에서는 랩이 좀 더 많아지는 건가요?
용형: 네, 그럴 것 같아요. 재미있게 하려구요. ‘우리나라에 어떻게 이런 프로듀서가 나왔지’ 라는 말을 꼭 듣고 싶어요. 국외 시장도 열심히 해서 나가고 싶고요. 제 꿈이 일단 유명한 아티스트가 제 노래를 불러 주는 거거든요. 크레딧에 ‘Brave Sound'를 올리고 싶어요. 그걸 이루기 위해 쉴 수 없을 것 같아요. 진짜 음악으로, ‘한국에 정말 훌륭한 프로듀서가 나왔구나.’ 라는 얘기가 듣고 싶어요.
리: 저희도 참 진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용형: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리: 최근 국내외적으로 오토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데,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요? 이번 싱글에서도 활용했는데.
용형: 오토튠을 제가 작년에 되게 많이 썼죠. 일반 대중이나 작곡가들은 몰랐는데, 힙합하는 친구들하고 저희가 선봉이 돼서 하다 보니까 대중 작곡가들도 따라하고 그러는데…. 저는 그래요, 뭐든지 유행이 있고 멋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음악에 센스 있고 멋있는 거 할 줄 아는 애가 쓸 수 있는 거고, 대중가요에 개나 소나 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선글라스 같은 것도 좋은 선글라스가 나왔지만, 옷이건 신발이건 뭐든지 맞춰서 쓸 수 있는 친구가 써야지, 말도 안 되는 아줌마가 그런 거 쓰면 안어울리거든요. 근데 우리나라 가요계가 쏠림 현상이 일어나다보니까, 아줌마들도 그런 선글라스를 쓰고 하이힐을 신었다는 거죠. 그러다보니까 보는 사람들은 눈을 찌푸리고 안 좋게 보는 거죠. 그러니까 멋을 아는 친구들이 쓰는 좋은 방법이에요. 트렌디한 음악에 쓰는 스타일이고, 그거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나쁘게 볼 필요가 없어요. 절대. 앞으로 다른 게 나오게 되면 또 접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리: 이번에 참여한 래퍼들은 평소에 친분이 있거나 눈 여겨 보던 분들인가요?
용형: 제가 좋아하는 친구들이에요. 마부스(Maboos), 레드락(Red-Roc)…. 베이식(Basick)은 얘기만 듣다가, 하는 걸 들어봤는데 톤이 정말 좋아서…. 솔직히 오버그라운드 친구만 부를 수도 있었는데, 이런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의 만남을 하고 싶었어요.
리: 포미닛 현아 씨의 참여가 색달랐습니다. (웃음)
용형: 아,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건 현아는 음원 잘되게 하려고 쓴 게 아니라, 실력이 좋아서 쓴 거라는 점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현아가 다른 대중음악에서 랩 할 때와 제 음악에서 랩 할 때가 되게 달라요. 왜 그렇게 다르냐면, 걘 되게 실력 있고, 안에 피가 끓고 있는 친군데, 그걸 끌어올 수 있는 프로듀서가 부족해서에요. 그 전에 에이제이(AJ) 앨범을 프로듀싱할 때 현아가 피쳐링 했었는데, 톤이 예술이고, 정말 시키는 대로 잘하더라구요. 그래서 이번에 같이 한건데, 전 되게 만족했어요.
리: 원래 현아 씨가 힙합음악이나 랩에 관심이 많나 봐요?용형: 네. 참 잘하는 친구에요.
리: 이전에 작업했던 곡들 중에서 대중들의 반응과는 별개로 본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곡이 있나요? 새로운 작법을 시도했다든지, 음악관에 변화가 있었다든지요.
용형: 음악관이 바뀌게 됐다고 할 수 있는 건, 렉시의 “하늘위로”에요. 렉시와 인연이 되게 많아요. “눈물 씻고 화장하고”를 타이틀로 작업했고, 다음에 “하늘위로”를 했는데, 그 전에는 완전 힙합비트를 많이 만들었죠. BPM 넘나들어봐야 105정도에 좀 빠르면 108, 110 정도? 근데, “하늘위로”에서 130을 딱 보여주면서 약간 일렉트로닉하고 트렌디한 사운드에 힙합을 접목했는데, 국내에선 되게 신선하고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구요. 심지어 YG에서도 그 사운드를 이해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만들고 현석이형을 들려줬는데, 눈이 이만해지면서 커졌으니까요. 그 음악 나오면서 약간 국내 음악이 바뀌었어요. 전 여지까지 일렉트로니카를 한 적이 없어요. 지금도 힙합음악을 하고 있고요. 힙합인데, 대중들이 접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좀 더 빠르게 가고, 신나는 댄스 느낌의 힙합을 하고 있는 거죠. “하늘위로”를 작업하면서 그렇게 음악관이 바뀌었어요. 힙합도 꼭 이제 틀에 갇힌 것만 하는 게 아니라, 이거랑 저거랑 섞어도 되고, 록이나 알앤비랑 섞어도 되고, 재밌는 게 많이 나온 거 같아요.
리: 소속사 안에서 작업을 하던 때와 본인의 프로덕션을 갖고 작업을 하는 지금은 분명히 많은 차이가 있을 텐데요, 어때요?
용형: 일단은 여기 와서 브레이브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를 설립했는데, 지하에 스튜디오가 있고, 3층에 또 연습실과 작업실이 있어요.
리: 프로듀서만 총 12명이 있는 거죠?
용형: 이제 12명이 넘어요. 다른 가족들까지 하면 20명 정도구요. 1년 4개월 만에 이뤄냈는데, 제 저작권이고 뭐고 벌어 놓은 거 다 회사에 박아서 만들어 놓은 거거든요. 투자 받고 하는 것도 아니고, 제 힘으로 다 하는 거예요. 나와서 음악을 하면서 느낀 건데, 솔직히 음악만 앉아서 하는 게 편할 때가 있어요. 가끔은 아무것도 신경 안 쓰고…. 근데 이젠 우리 프로듀서들도 있고, 우리 가수들도 있는데, 그런 걸 다 신경 쓰고, 회사도 운영해야 하니까요. 신경 쓸 게 많아졌죠. 그래도 나름 재미있어요. 우리 식구들이 생긴다는 거에 보람도 느끼고.
리: 브레이브 사운드 소속 프로듀서들은 다 이름이 독특하더군요. ‘별들의 전쟁’, ‘코끼리 왕국’ 등등. (웃음)
용형: 제가 다 지어준 거예요. 별들의 전쟁은 이번 제 싱글에 참여 했고요. 코끼리 왕국이란 친구는 “그녀를 뺏겠습니다”가 수록되었던 크라운제이 2집의 총 프로듀싱을 다 한 친구에요. 그 친구가 옛날에 YG 때부터 제 제자였어요. YG에 있을 때부터 제가 용돈도 주고는 했던 친군데, 계속 함께하고 있죠. 그 친구들이 되게 열심히 하는 거 보면 기분이 좋아요.
리: 그 많은 프로듀서들을 거느리려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용형: 제가 또 우리 회사에 있는 친구들에겐 노하우를 다 전수해줘요. 왜냐하면, 제가 언제까지 프로듀서 계에서 잘나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머리가 안돌아가거나 하면 1~2년 안에 안 될 수도 있는 거고... 그래서 미리 준비는 하고 있어요. 곡이 안 나오면 전 깨끗이 후배들이 잘 되게끔 키워줄 거예요. 용감한 형제 같은 아티스트가 또 나와야 되거든요. 나중에 제가 제작 지원하면서 이 친구들을 서포트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거고, 뒤에 빠져서 저 같은 프로듀서를 또 만들어내려고 회사를 차린 거예요.
리: 브레이브 사운드에서 나오는 건 이제 100% 흑인음악 기반인가요?
용형: 네. 근데 일단은 ‘또라이박’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걔는 진짜 돌아이에요. 클럽 음악도 하고, 대중적인 곡도 하고, 발라드도 할 줄 알고, 다 할 줄 아는 만능 재주꾼이죠. 그 친구가 좋아하는 걸 막고 싶지는 않아요. 그 친구가 만든 걸 들어보면 어떤 건 비트가 힙합이고, 어떤 건 또 말도 안 되는 발라드거든요. 근데 그냥 자기 재주니까요. 물론, 브레이브 사운드하면 흑인음악이 기본이 되고, 댄스 음악이라도 흑인음악 소스가 들어가고, 힙합을 기본으로 둘 거예요. 타이틀곡은 어쩔 수 없이 “별이 빛나는 밤에”, “토요일 밤에”와 같은 댄스곡을 주지만, 서브 곡들은 정말 힙합음악을 많이 넣었거든요. 근데 대중들은 그걸 안 들으니까 아쉽죠. 가요계 현실이 그래요. 그런 세련된 힙합 음악을 만들어도 제작자가 안 받아들여요, 일단 회사에서 잘 돼야 하니까요. 그래서 제 앨범을 만든 거고, 저희 프로듀서들 앨범을 만들어 줄 거고, 그렇게 저희 회사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려구요.
리: 멋진 계획이네요. 정말. 용감한 형제처럼 전업 뮤지션으로서 성공적으로 활동하기 위한 팁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참 우스운 표현이긴 하지만, 이해를 편하게 하기 위해 전업 뮤지션이라는 표현을 쓰는 점 양해 바랄게요. 음악만해서 먹고 살기는 힘드니까, 메이저 기획사에 가려는 꿈은 있는데, 본인의 스타일을 타협 없이 갔으면 하는 분들도 많은데요.용형: 전 그건 멍청한 생각이라고 봐요. 왜냐하면 자기 꿈을 이루는 가장 좋은 기반이 될 수도 있는 게, 자기 고집을 잠깐 버리는 거거든요. 그 고집을 계속 가지고 간다고 해서 세상이 날 알아주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자기 고집이 있고 그만큼 힙합 음악 만들 수 있는 자신감이 있으면, 다른 음악해서 오버그라운드 올라와서 자기 음악을 나중에 보여줄 수도 있는 거예요. 자신감이 있으니까 고집을 갖는 거 아니에요. 자신 있는 음악은 언제 해도 자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오버그라운드에 맞는 음악으로 어느 정도 타협해서 자기 음악을 거기에 맞게끔 만들고, 타이 곡이 아닌 서브 곡에 자신만의 음악을 넣던지 해도 자기 색깔을 보여줄 수 있거든요. 젊은 프로듀서나 힙합을 꿈꾸는 어린 친구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게, 항상 배고픈 힙합만 합합이 아니란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 시대는 갔다는 거죠. 배고프면서 음악을 해야지만,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있단 건 절대 아니에요. 좋은 환경에, 좋은 악기에, 좋은 음악 듣고 이러는 게 더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거예요. 제가 10년 된 선배로서 얘기하는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면 만들어질수록 음악은 더 좋아져요. 확실해요 그건.
리: 가요시장에서 뽕스럽지 않은 흑인음악으로 승부했을 때 앞으로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보세요? 제로?
용형: 아니요. 제로까지는 아니에요. 사운드 부분은 이제 대중들도 많이 귀가 좋아졌어요. 근데 일단 아직까지 뽕끼 멜로디를 좋아해서 그런데, 제가 보기엔 조금 조금씩 시도하다보면 될 것 같아요. 지금 국내 힙합 시장이 죽었는데,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힙합 음악이 되게 트렌디하고 빠른 패션 아이콘이거든요. 미국에서 보면 진짜 잘되는 음악들이 다 힙합이잖아요. 지금 미국의 힙합음악은 힙합이 아니고 팝 시장이 되고 있어요. 우리나라 힙합 시장이 잘 안 되는 이유가 그 팝시장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힙합을 하는 친구들은 가장 트렌디하고 빨라야 해요. 가장 멋쟁이여야 하고. 근데 그런 게 별로 없어요. 옛날에 3~4년 전만해도 힙합 하는 친구들은 x나 멋있었는데, 지금은 힙합하는 사람들은 거지, 찌질이, 엔비가서 노는 애들…이란 마인드가 박힌 거예요. 대중들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건 저도 정말 화나요. 제가 볼 땐 가장 트렌디한 스타일의 좋은 음악을 한다면, 앞으로 힙합 시장에 더 활기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요.
리: 외국 진출 음반 작업은 어느 정도 진행되었나요?
용형: 일단 그것도, 작년부터 지금까지 되게 공을 들이고 있어요. 최대한 빨리 한국 팬들한테 성과를 보여주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어요. 언제라고 딱 말은 못하는데, 빠른 시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리: 앨범 형태로 나오는 건가요?
용형: 아뇨. 곡을 주는 형식으로요. 유명한 아티스트들한테 주는 거죠. 진짜 센 아티스트들에게 주고 싶어요. 열심히 하고 있어요. 기대해주세요.
리: 마지막으로 더 하고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용형: 전 이 얘기를 하고 싶어요. ‘음악을 선입견 가지고 분석하지 말자. 음악은 그냥 음악이다. 그냥 음악을 듣고 즐겼으면 좋겠다.’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어요. 분석하는 순간 음악은 음악이 아닌 거예요.
기사작성 / RHYTHMER.NET 강일권, 이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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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석근 (2009-10-24 19:34:23, 210.20.104.***)
- 일단 흡입력있는 인터뷰에 감사드리고 수고하셨습니다
프로듀서판 강백호 같네요
대개 프로듀서들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는지 계기가 궁금했는데
인터뷰보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용감한형제의 성공은 진짜
대단하다고 보네요
그냥 이뤄진것도 아니고
독창성과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고요
한국 갱스터 소위 양아치에서 CEO까지의 성공담은
재밌고 배울점이 많네요
그냥 가요판에서 주구장창 같은 댄스만
돌려찍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그부분도 이해하게 됐습니다
용감한형제의 사우스적인 면을 좋아해서
다 음원사서 들어봤는데 인터뷰에서도 그렇듯
서브곡들 괜찮은곡 진짜 많습니다
그게 미국메이져 사우스 나 메인에 있는
뮤지션들이 받아서 불렀다면 더 좋았을것을 하고 느낀적이 많고요
아무튼 최근나온 싱글은 제가 리드머에 예전에
적으바와 같이 실망이 컸는데
뭐 기대감도 그만큼 있었으니깐요
아뭍느 다음 앨범 꼭 기대하고
리드머 인터뷰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