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인터뷰] 데프콘 - 돌아온 콘이 삼촌의 힙합 다이어리
- rhythmer | 2009-10-19 | 1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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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로 펌과 강렬한 것 같으면서도 푸근한 인상, 그리고 관중을 움직이는 열정적인 무대 매너와 진솔한 가사로 대표되는 데프콘(Defconn)이 돌아왔다. 그가 발표한 새 싱글 [Love Sugar]는 한동안 하이브리드에 집중했던 데프콘이 다시 힙합으로 눈을 돌린 음반이다. 분명히 대중적이지만, 최근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타이틀곡 “힙합유치원”, 멜로딕한 g-Funk 트랙 “Love Sugar”, 많은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던 “아버지”의 리믹스 버전 등, 2009년 뮤지션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예고하는 그의 첫 걸음이 이번 싱글에 담겨있다.
리드머(이하 ‘리’): 2년 만에 음악계로 복귀한 기분이 어떤가요?
데 프콘(이하 ‘데’): 이제는 새롭다는 기분 같은 건 없어요. 물론, 앨범 나오기 전에 잠 못 자는 건 마찬가지에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래도 ‘과연 이번엔 또 어떤 일들을 겪게 될 것인가.’에 대한 설렘과 두근거림은 아직 있어요. 음악 판에 돌아왔는데, 그 쪽 사정이 안 좋아졌잖아요. 지금도 계속 안 좋아지고 있으니 걱정도 되구요. 그리고 일단 가수로서 활동하게 되면 음악방송에도 나가야 될 텐데, 현재 활동하고 있는 가수들의 이름을 제가 모를까봐 공부 중이에요. (웃음) 요즘 다들 그룹이잖아요. 낯선 친구들도 많을 것 같고. ‘그 친구들은 나를 보고 뭐라고 할까?’, ‘나는 그 친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런 처세에 대해 많이 연구하고 있어요.
리: 그 험난하다는 연예계에서 꾸준히 활동한다는 것 참 힘든 일일텐데….
데: 최근 몇몇 매체와 인터뷰를 했는데, 기자분들이 다들 저보고 신기하고 대단하대요. 대박이라고 볼 수 있는 히트곡은 없는데 꾸준히 선방하고 있다 이거죠. 그게 제 장점인 것 같아요. 히트곡이 없다고 할지라도 내 나름대로 기념할 만한 노래들을 많이 만드니까 리스너들의 공감도 살 수 있었고 여태까지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생겼던 거죠. 제가 봐도 가끔씩은 신기해요. 사실 이 가요계가 워낙 험난한 데라 내세울 것이 없으면 사장되기 십상이거든요. 저와 같이 출발했던 가수들 중에서도 사라진 친구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 와중에서 일취월장은 아니더라도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고, 많은 사람이 좋게 봐주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하죠. 제가 봐도 제 낯짝이 두꺼운 것 같아요. (전원 웃음) 잘 되는 것 같진 않아도 꾸준하게 가니까. 결국엔 그게 승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리: 단시간에 인기를 얻는다 할지라도 또 그만큼 빠르게 추락하는 경우가 많죠.
데: 맞아요. 짧은 시간에 인기 얻어서 확 올라갔다가 훅 떨어지는 친구들을 많이 봤어요.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에 항상 반성하며 살아가게 되더라고요. 실패할지라도 그것도 하나의 경험이라고 생각하니까. 굉장히 좋은 쪽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처럼 조급해하지 않고 치열하게 생존해나가는 게 앞으로 인생에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주변 선배들도 말씀하곤 해요. 남희석 선배는 제 얼굴을 보더니 “넌 지금부터 5년 후에 잘된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분이 사람의 관상을 좀 볼 줄 알아요. 말하는 게 세상을 초월한 도인 같죠. 그런 얘기들을 들으니까 조급함을 자제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예전에는 ‘빨리 떠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여유가 좀 생겼죠.
리: 그래도 힙합 씬에서는 많은 히트곡을 남겼잖아요.
데: 에, 그렇죠. 힙합씬에서는 도장 많이 찍었죠. “Sex Drive”라던가…. (전원 웃음) 여태까지도 이 곡을 깰만한 노래는 나오지 않은 것 같아요.
리: 그런데 지난 몇 년 간은 힙합 씬에서 다소 멀어져 있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데: 예. 한동안 힙합 씬에 관심이 가질 않더라고요. 어차피 난 힙합 하는 놈인데, 잠깐 한눈을 판 거죠. 그렇다고 힙합을 버린 건 아니고, 오히려 다른 음악과 크로스오버를 하려고 나름대로 공부했던 거에요. 다양한 뮤지션을 만나면서 그들이 가진 음악적 장점을 쪽쪽 빨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전 이미 한 가지만 추구하던 시기를 지났어요. 지난 [Mr. Music] 앨범도 전형적인 힙합 음악만 보여줬던 것은 아니었죠. 여러 가지 시도를 많이 한 앨범이었기 때문에 힙합 씬보다는 다양한 씬에서 인정 받고 싶었어요. 발을 쏙 뺐다는 얘기가 아니라 눈을 45도 방향으로 돌리고 있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저의 그런 음악적 의도를 힙합 씬에서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눈치를 못 채는 것 같아 아쉬워요. 그렇기 때문에 나를 알아주는 시장에 눈을 돌렸던 거고요.
리: 그런데 이번 싱글에서는 g-Funk도 시도하는 등 다시 힙합음악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무래도 힙합뮤지션으로서 이전의 아쉬운 반응 때문이었을까요?
데: 음, 무엇보다 이 앨범을 만들게 된 자체가 힙합을 하는 사람으로서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제가 힙합 쪽에선 중간 계 형이잖아요. 큰형님은 아직 아니고. (이제 경력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큰형님이 아니냐고 하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제가 앨범을 준비하면서 뭘 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가요계 쪽을 보니까 힙합이 너무 빨리고 있는 거야. 현재 힙합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가요계에서 많이 빨아가요. 사람들이 힙합을 듣는 이유는 힙합이 가요와 다른 면이 있어서 듣는 건데, 다를 게 없다는 거죠. 요즘엔 피쳐링도 그렇잖아. 피쳐링이라는 게 기본적인 목적은 음악적으로 순수한 교류임에도 이제는 모두 전략적인 피쳐링, 상업적인 피쳐링이 된 거죠. 뮤지션 자체가 소모품이 된 것 같은 씁쓸함을 많이 느꼈어요.
리: 미국도 그렇잖아요.
데: 마찬가지죠. 현재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음악들이 팝에 많이 흡수가 됐잖아요. 예전에는 힙합과 팝의 구분이 있었거든. 우리나라도 이젠 아이돌 애들이 더티 사우스 힙합을 하고 있는 거죠. 사실 힙합 하는 사람으로서 최신 유행하는 힙합음악을 보여주면서 “힙합이란 이런 겁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요즘 트렌드하고 내 개념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거에요. 더티 사우스 음악을 만들어봤자 가요 듣던 사람들은 “뭐야, 가요랑 리듬이고 뭐고 다를 게 없잖아!”하는 마당이거든요. 그게 (힙합이 가요에) 빨렸다는 증거지.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가사나 랩은 둘째치고 음악적 스케일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 그러다 보니 향수병이 도지기 시작했죠. 마치 서울에 있으면서 고향의 친구들과 가족들이 생각나듯이. 그래서 예전에 듣던 음악들을 꺼내 듣기 시작했습니다. 90년대 절정을 이뤘던 워렌쥐(Warren G), 투팍(2Pac), 나스(Nas), 제이지(Jay-Z), 노토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 같은 뮤지션들 있잖아요. 그런 클래식을 꺼내 들으면서 불꽃이 튄 거죠. 가요계에 빨리지 않으려면 차별화를 두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연구를 했어요. 90년대 미국의 힙합 사운드와 2000년대 우리나라 힙합 사운드에는 정감이 있었거든요. 그런 모습을 지금 보여주면 사람들이 신선해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나름대로 머리 빠개지는 줄 알았죠. (웃음)
리: 예전의 러프(Ruff)함은 많이 약해진 것 같아 솔직히 아쉽기도 하지만, 일단 데프콘 씨는 시류에 잘 휩쓸리지는 않는 게 보기 좋습니다.
데: 저 나름대로는 제가 되게 앞서갔다고 생각해요. 한창 유행하는 일렉트로닉 음악하고 믹스도 제가 제일 빨리 했어요. 2집 [콘이 삼촌 다이어리]에서 시작했고. 저는 다른 음악과 믹스에 관심도 많고 적극적인 편이에요. 그랬었는데…
리: 빅뱅에 밀렸죠.
데: 그죠. (전원웃음) 빅뱅이 해버리더라….
리: 언더그라운드에서 메이저로 진출하는 힙합뮤지션이 종종 생겨난다는 건 분명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에요. 하지만, 음악적으로 보면 데프콘 씨가 말씀했듯이 오히려 아이돌이 최신 힙합음악을 구사하고 있고, 메이저에서 데뷔하는 힙합퍼들은 저 옛날 랩댄스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합니다.
데: 정말 그렇죠. 예전에 선배들이 오버그라운드로 나갈 때 뒤에서 “저 형들 *발 돈독 올랐다. 음악이 저게 뭐야.” 이러던 친구들이 그런 노래를 하니 참 안타까워요. 어차피 여의도 권 진입하려고 꼬랑지 흔들면서 네 발로 달려갈 거 뻔히 보이는데, 왜 그런 자존심을 내세우느냐 이거지. 그런 것들 보면 착잡하죠. 그래도 사람이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요즘에 보면 뭔가 하나 물고가 터지면 거기로 계속 가는 거야. 짜증나는 거죠. 얄팍한 짓이거든. 저는 어떻게 보면 청개구리처럼 사는 것 같기도 해요. 사실 적당히 대중들의 기호에 맞는 곡 만들면 절반은 성공하거든요. 그런데 늘 반대로 가요.
리: 그 성공 코드를 이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죠?
데: 그죠. 그런데 남들 다하는 거 만들면 짜증나잖아요. 저는 1집 때부터 타이틀 곡이 음악스케일이라든지 여러 가지로 항상 달랐어요. 음악적으로는 대중적이었을지 몰라도 자조적인 내용, 해학이 담긴 풍자가 있는, 씁쓸하면서도 듣고 있으면 좋아지는 그런 스타일을 해왔어요. 그런데 요즘에 오버로 데뷔하는 친구들 보면 “(손 흔들면서)저예요~. 이제 여러분께 갑니다~.” 이러고 있죠. 예전엔 카리스마 있게 “납니다! 한번 가봅시다!” 이렇게 출발했었는데 말이에요.
리: 이번 타이틀곡 “힙합유치원”은 대중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인 한편으로 제목 자체에 ‘힙합’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또 새롭게 다가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곡에 대한 소개 좀 해주세요.
데: 그 곡을 만들게 된 계기는 영화 “벼랑 위의 포뇨” 때문이었어요. 제가 미야자키 하야오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 양반이 어른과 아이들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를 알고 있거든요. 그런 코드가 저와 맞은 거에요. 2000년대 초반, 대중들에게 힙합이 어필했던 요소를 가만히 살펴보니 씨비 매스(CB Mass)의 “CB Mass는 내 친구” 라던지 45rpm의 “즐거운 생활” 같이 기존 힙합의 고정관념을 깰수록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했죠. 그런 훌륭한 곡들이 있었지만, 요즘 힙합 뮤지션들은 현 가요 트렌드 만을 좇다 보니, 그런 맥이 끊겨버린 거에요. 그래서 그 끊어진 맥을 내가 짚어줘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가요팬들에게 힙합이 그래도 좀 다르다고 내세울 수 있는 곡을 만들고 싶었죠. 어른부터 아이까지 쉽게 들을 수 있는 곡이에요. 사실 아이들이 좋아하긴 하지만 곱씹어서 들어보면 어른에 대한 이야기에요. 애들이나 어른이나 요즘엔 좀 힘들잖아요. 그래서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을 겁니다.
리: 일단 타이틀곡 “힙합유치원”과 다음 트랙 “Love sugar”의 스타일이 굉장히 달라요.
데: 저는 음악적으로 철저하게 분리할 건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앞으로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거지만, 타이틀 곡만큼은 어쩔 수 없다고 보거든요. 타이틀 곡이란 대중들에게 보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바라보는 데프콘의 이미지에 부합되는 곡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수로서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은 곡이 타이틀 곡이거든요. 그건 자존심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내 노래를 알려주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고려했을 때, “힙합유치원”이 저의 캐릭터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주변에서도 그런 말씀을 많이 해주시고요. 특히, 뮤직비디오에 그런 면이 잘 나타나있죠. 데프콘의 음악적인 면은 다른 곡들에서 드러나는 거고요.
리: 그렇다면, “Love sugar”가 그 ‘음악적인 면’이 나타난 곡이겠군요.
데: 그렇죠. 국내에서도 g-Funk를 한다는 뮤지션은 가끔 있었지만, 사실 기억에 남을만한 결과물은 없었잖아요. 그래서 ‘내가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죠. 그리고 특히 요즘 힙합 리스너 중에는 어린이들이 많아요. 연령층이 낮아졌다는 거죠. 힙합의 수용 인구는 많아졌지만, 10년 이상 꾸준히 힙합을 듣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잖아요. 어딘가에 숨어있는지. 그래서 비록, ‘힙합 커뮤니티가 변했다.’고 개탄하면서 이전처럼 왕성하게 활동하지는 않지만, 자신들이 좋아했던 뮤지션에겐 꾸준히 지지를 보내는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리스너들을 위한 곡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요즘 애들은 g-Funk 잘 모르잖아요.
리: 개인적으로 참 반가웠습니다.
데: 이 곡을 위해 랩 스타일도 바꿨어요. 원래는 내뱉는 스타일이었는데, 이 곡에선 입에 쫙쫙 달라붙는 느낌을 내기 위해 노력했죠. 그때 그 시절의 낭만을 위해서. 물론, 제가 캘리포니아에서 여자를 픽업해서 뚜껑 열린 캐딜락을 타고 드라이브를 한 적은 없지만, 그런 면이 한국적인 정서로도 충분히 표현될 수 있다고 보거든요. 힙합뮤지션으로서 음악적 만족도는 “Love Sugar”가 더 높기 때문에 타이틀도 [Love sugar]로 정했고요.
리: 그렇게 공을 들인 “Love Sugar”가 KBS 심의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데: 아직 결과가 다 나온 건 아니고요. 일단 MBC는 통과했어요. 예전부터 MBC는 좀 관대한 면이 있었거든요. 사실, 가사를 의도하고 쓴 게 아니라 순수하게 쓴 것이었는데. 심의부 쪽에서는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만 놓고 평가하는 것 같아요. 기준도 모호하고. 이 곡은 방송에서 간지나게 불러줘야 하는 거거든요. 그런 그림까지 그리고 있었는데. 아무튼 KBS에선 심의가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준을 통일시키면 참 좋을 텐데 말이죠. 속상해요.
리: 그런 심의가 라디오 플레이까지 영향을 미치는 거죠? 혹시 가사를 수정할 생각은 없나요?
데: 없어요. 그냥 갑니다. (웃음) 심의 나는 데만 나가고. 어차피 심의를 생각하고 쓴 곡도 아니었고요. 이 곡이 희한한 게 뭐냐 하면, KBS와 불교방송만 심의가 안 났어요. 아이러니하죠. 그래도 요즘은 이런 변수도 즐겨요. 그래도 가사를 고쳐서 재심의 넣고 싶진 않아요. 단어의 고유한 어감이나 뜻을 계산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흐름을 깨트리고 싶지 않거든요.
리: 마지막 곡으로 “아버지”를 리믹스해서 수록한 이유는 그만큼 이 곡을 아낀다는 증거겠죠?
데: 그렇죠. 이 곡이 상업적으로 화제가 된 곡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곡이 발매되고 나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고맙단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미니홈피에도 많은 분이 와서 글을 달아주셨고요. 어떤 분은 ‘오늘 아빠랑 싸웠는데 이 노래 듣고 화해했어요.’라고 방명록에 썼더라구요. 연예인 친구들도 좋다고 말해줬고. 어떤 형은 술 먹고 새벽에 전화해서 “프콘아, 이 새끼야, 이 노래 듣고 열나게 울었다.” 이러고. (전원웃음)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주니까 이 노랠 만들기 잘한 것 같단 느낌도 들었죠. 그래서 원래 리믹스를 낼 계획이었는데 빨리 낸 거에요.
리: 혹시 다른 곡 리믹스 계획은 없나요? 개인적으로 “가족” 리믹스도 꼭 들어보고 싶습니다만.
데: 아, 정말 저도 해보고 싶어요. 제가 발표했던 곡 중에 이대로 묻히기엔 아까운 곡들을 리믹스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일단 상황을 고려해보려구요.
리: 얼마 전 발매 된 앨범 [One Nation]에서는 간만에 데프콘 만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어요.
데: 그 앨범에 수록된 “어느 비 정규직 노동자의 비애”는 제가 아껴두고 있었던 노래예요. 제 앨범에 수록하려고 했는데, 스나이퍼가 도와달라고 해서 넣게 되었죠. 가사를 들었을 때 너무 소설 티 나는 곡보다는 영화처럼 프레임을 나눠서 감동을 주는 곡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 곡에 그러한 구성이 나타나고 있죠. 내가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만든 노래는 아니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만들게 됐고. 정치적인 걸 떠나서 소외 받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리: 그런 게 힙합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거창한 사회비판은 아니더라도 이야기로 잔잔하게 풀어나가면서 리스너에게 힘을 주는 가사 말이죠.
데: 거창한 사회비판은 디지가 해야죠. (전원 웃음)
리: 디지 씨의 이번 [개] 앨범 들어봤어요?
데: 아니요, 아직…. 어떤가요?
리: 욕이 아주… 화끈합니다.
데: 역시…. 빨리 들어봐야겠네요. (웃음)
리: 참, 버벌진트 씨와 관계는 여전한가요?
데: 음…. 사실 진태(버벌진트의 본명) 얼굴 못 본지가 2년이 다 되가요.
리: 진짜로요?!
데: 네. 장난 아니죠? 싸워서 그런 건 아니고, 살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진태가 갈 길이 있고 제가 갈 길이 있는데다가 서로 워낙 바쁘게 살다 보니까…. 이제 우리가 음악적으로 뭉치는 것은 사실상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요. 훗날을 기약할 수는 있겠죠. 어쨌든 관계가 소원해진 건 사실입니다.
리: 아, 정말 상상 못했던 일이네요. 두 분이 서로 연락을 안 하고 지내던 사이 버벌진트 씨가 힙합 씬에 많은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데: 그러게요. 일으켰더라고. 얘는 음악만 해도 인정을 받을 놈인데, 자기 음악 인생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을 인물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실망을 좀 하긴 했어요. 그렇지만, 그러한 행동들이 한 크루를 이끄는 리더로서, 또, 언더그라운드에서도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주고 싶어서 보이는 나름대로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 친구한테 음악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러한 고마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에요. 제가 예전에 진태에게 너무 적을 만들지 말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왜냐하면, 일전에도 오해를 불러일으켜서 형들과 심각한 상황까지 간 걸 제가 두 번이나 막아준 적이 있거든요. 그러면서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말고 음악적으로 충실 하라고 했었어요. 그런데 이제 더는 제가 진태에게 뭐라고 할 수 없는 입장이니까. 프라이드를 가지고 자기 음악 열심히 하고 있고, 나이도 서른인데 제가 옆에서 계속 잔소리 할 순 없잖아요. 차라리 내가 신경을 안 쓰는 게 낫지 않겠나 싶어요. 그런데 진태도 저에게 연락 안 하는 걸 보면, 나에게 뭔가 서운한 게 있나 싶기도 하고. (웃음) 저와 진태는 예전부터 서로 간섭하는 입장이 아닌, 정말 친구 같은 관계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서로 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튼 뮤지션으로서 진태는 정말 훌륭한 친구라 더 많은 관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보다 훨씬 더 잘되어야죠. 사실 진태와 음악활동 할 때 제가 진태의 시간을 많이 빼앗았어요. 그런 면이 진태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당분간 저희의 음악적 콜라보는 없을 겁니다. 음악적 노선이 일단 전혀 다르고요. 그렇다고 저희 둘이 등을 돌린 건 절대 아니에요.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리: 소울라이프의 결과물을 기대하던 분들도 많을 텐데, 정말 안타까운 소식인 것 같네요.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뭉칠 날이 오리라 믿을게요. 이 자리를 빌어서 진태 씨에게 전하실 말씀이라도….
데: 음, 저희가 아무리 최근에 연락을 안 하고 지냈다지만, 그래도 예전부터 쌓인 정은 변함없어요. 앞서도 말씀했듯이 음악적으로 정말 뛰어난 친구구요. 뭐, 앞으로 혹시라도 진태에게 난감한 일이 생기면 한 번쯤은 더 막아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각자 갈 길은 다르지만, 계속 응원해줄 거고요.
리: 화제를 바꿔보죠. 가요계뿐만 아니라 힙합계에서도 ‘데프콘’이라는 캐릭터는 상당히 독특한 것 같아요.
데: 사람들이 저를 보고 ‘독고다이’라고 그래요. 제가 생각해도 전 독고다이가 맞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도 김두한보단 시라소니가 더 좋았어. 음악계에 저 같은 독고다이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다들 너무 집단 체제로만 움직이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뮤지션 스스로가 독고다이라는 건 결국 자신감이 있다는 소리거든요. 그 자신감은 음악으로 표현하면 되는 거고요. 그런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느 크루에 속해있고 누구는 내 동생이고 누구는 내 형님이다.’, 물론, 그게 어떤 면에선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땐, 글쎄요. 자랑할 만한 건 아니죠. 내 실력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게 우선이거든.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그런 집단에 속해있지 않는다면 주목 받기 힘들다는 거죠. 무브먼트(Movement) 멤버들 제가 정말 좋아하고 다들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미디어에서는 힙합이라고 하면, 일단 무브먼트 밖에 못 본다는 거예요. 무브먼트 외에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잘할 수 있는 친구들 정말 많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그런데 미디어에서 기준은 무브먼트에요. 씁쓸하죠. 그네들도 끼리끼리 노는 건 절대 아니거든요. 그런데 미디어가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거에요.
리: 현 상황에 대한 색다른 접근이네요. 그 때문에 무브먼트와 관련해서는 오해도 많이 생겼었죠.
데: 네. 사실 타이거 JK 형은 언더그라운드 래퍼들과 끊임없이 교류를 해요. 훌륭한 행동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 같은 독고다이들이 미디어의 그런 점을 깨 주어야 해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 있으면 그 다른 면을 보여주고. 제가 마스터플랜에 있었을 때도 독고다이였어요. 남한테 좌지우지되지 않았다고. 그런 친구들이 많아야 돼. 잘나가는 선배 라인에 타면 잘 나갈 수 있죠. 그러기 위해 그 사람에게 아부를 떨 것인가, 실력으로 인정 받을 것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해요. 저는 사실 처음에 디스로 주목 받았잖아요. 지금 생각하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됐을 텐데….’하고 후회하곤 해요. 왜냐하면, 이 바닥이 좁거든요. 누군가를 디스하게 되면,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거죠. 제일 희한한 게 뭐냐 하면, 힙합하는 애들은 불리하면 “씨발, 이런 게 원래 힙합이야.’이런다는 거에요. 힙합이니까 상관없단 말을 많이 하는데, 그거 다 별로거든요. 믹스테입 돈 받고 파는 것도 전 아니라고 봐요. ‘(믹스테입 파는 것도)힙합이니까.’라고 하는데, 그거 큰일 날 소리죠. 한국이라서 어쩌고 저쩌고…. 그럴 거면 미국 가야죠. 미국에서 영어로 씨부렁거려야지 왜 한국에서 음악을 합니까.서로를 존중해 주는 마음이 필요한데, 독고다이의 기본 정신이 그거에요. 남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것.
리: 근래 디스전이 참 많이 터졌어요. 말씀 나온 김에 디스에 대한 생각을 더 들어보고 싶네요.
데: 힙합 씬에서 디스는 최고의 홍보수단이죠. 디스만한 게 없어요. 그런데 디스할거면 노래만 딱 올리지 말고 미국 같이 하라 이거야. (전원 웃음) 막 총 쏘고 이러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직접 대면해서 디스할 용기가 없는 이상 비겁하게 디스하는 건 결국 제살 깎아먹는 짓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생각해보세요. 막말로 만약에 어떤 듣보잡이 디제이 독(DJ DOC)을 디스했다고 칩시다. 계속 언더그라운드에 남아있고 모습을 안보이면 모르겠는데, 그 친구가 여의도 권에 진입해서(편집자주: 메이저에 진출해서) 가요 프로그램에 나오게 됐다면, 디스당한 사람이 대기실 안 찾아가겠어요? 그게 한국식이에요. 어쩔 수 없어요.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날 욕하면 뚜껑 열리지. 그렇기 때문에 그럴 시간에 차라리 본인의 것을 더 만들어서 청자들을 기쁘게 해주는 게 더 나아요. ‘3분 카레’같이 들어줄 만 하지만, 간단한 노래보다는 깊게 남을 수 있는 결과물을 많이 만들어서 보여 주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에요.
리: 그만큼 데프콘 씨가 처음 음악을 시작하던 때와 현재의 힙합 씬은 정말 많이 변한 것도 사실이에요.
데: 사실, 전 어디까지를 ‘후배’라고 봐야 할 지도 모르겠어요. 클럽 마스터플랜이 있었을 때, 클럽이 신인의 등용문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선배와 후배 간의 정을 쌓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거든요. 돈마니 형부터 시작해서 당시 마스터플랜을 운영했던 사람들은 정말 존경 받아야 돼요. 지금 마스터플랜이 저희가 빠져나가고 힙합이 레이블의 메인이 아니라고 해서 듣보잡 취급하면 절대 안됩니다. 마스터플랜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는 엄청난 거예요. 그래서인지 선후배간 만남의 장과 등용문의 역할을 하는 그런 공연장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선배 입장에서도 그런 클럽이 있으면 찾아가서 정말 잘하는 후배들을 육성해서 기쁘게 해주고 싶은 건 당연한 거거든요. 그런데 현 상황에서는 일일이 찾아 다녀야 하니 힘든 거죠. 마스터플랜이 지금까지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리: 앞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후배로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했는데, 구체적으로 말씀 좀 해주세요.
데: 검증 안된 친구들도 많잖아요. MC는 ‘Move the Crowd’에요. 관중을 움직이지 못하는 MC는 MC가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존경하는 뮤지션들도 다 그래요. 스튜디오 결과물을 듣고 괜찮아서 라이브 클립을 봤는데 사람이 많으니까 모니터 스피커만 쳐다보고 있고. 손가락만 까딱까딱 거리고. 그건 힙합라이브가 아니고 *밥 라이브잖아요. 과연 그런 사람들까지도 후배로 봐주어야 하는가 라는 거죠. 클럽 마스터플랜이 있던 시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오디션을 보면서 한발씩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어요. 오버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 사이에 교류도 이루어지고. 그 시절 리스너들이 공연장을 더 찾아주고 사랑해주었어야 했는데 그게 많이 안됐죠. 물론 새벽, 두 세시에 클럽 무대에서 잠깐 공연하는 친구들도 힘들긴 하겠죠. 공연장이야 많지만, 그게 다르잖아요. 어떤 날은 록 공연했다가 어떤 날은 댄스, 어떤 날은 힙합하고. EQ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달라지거든요. 엔지니어들이 천재가 아닌 이상 그걸 다 못 잡아요. 힙합 전용 라이브 공간이 하나만이라도 이어져 왔다면, 선배 입장에서도 후배 입장에서도 편하지. 그게 너무 아쉬워요. 앨범을 내면 소비해줄 수 있는 층은 예전에 비해 많이 늘어났어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도 그 점은 고마워해야 해요. 일반사람들보다 열심히 사잖아요. 더 나아가서 공연을 통해 그런 사람들을 충족시켜줄 수 있게 만들어야죠. 그래야 서로 발전할 수 있는 거고요. 하늘이 형이 빨리 돈 벌어서 하나 만들어야 할 텐데. (전원 웃음)
리: 저희도 간절히 원합니다. (웃음) 이제 음악계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독자적인 레이블도 시작했으니 후배를 발굴하는 건 데프콘 씨에게도 기대할 수 있는 건가요?
데: 어느 새부터 그런 질문을 많이 받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아직은 계획이 없어요. 물론, 매의 눈을 가진 독고다이 후배를 발견한다면 흔쾌히 같이 일하고 싶죠. 하지만, 지금 괜찮은 애들은 다 누군가가 데려갔어요. (웃음) 예전에, 제가 조 브라운(Joe Brown)을 굉장히 좋아해서 같이 일해보자고 한 적이 있어요. 지기펠라즈(Jiggy Fellaz) 1집 나왔을 때, “I Want You Back” 듣고 정말 좋아서 당시 진행하던 라디오 PD한테 이거 틀어달라고 조르고 그랬어요. 노래에 대한 설명도 막 하고. 아무튼 조 브라운이 탐나서 전화를 한 적이 있어요. “큰 성공은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지고 싶다면 형이랑 같이 일해보는 것 어떠냐” 라고 했더니, “형님, 조금만 더 일찍 말씀해주시지 그랬어요. 저 지금 마스터플랜과 얘기 중이거든요.” 그러더라고요. 어쩔 수 없었죠, 뭐. 마스터플랜하고 얘기 중이라는 소리 듣고는 “어, 그렇구나.” 이러고 말았죠. 그래서 하나 놓쳤네. (전원웃음) 어쨌건 언제든 좋은 후배 만 있다면, 같이 일할 의향이 있어요. 전 그런 마음이 있어요. 어떤 노래가 정말 좋다면, 제가 방송계에 어느 정도 몸담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알리고 싶거든요. 좋은 음악은 많은 사람과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사실 제가 방송을 열심히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좋은 음악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거든요.
리: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거에요.
데: 어떤 사람들은 그래요. ‘데프콘 쟤 너무 웃기려고만 하는 거 아니냐.’라고…. 그런데 그건 절 모르고 하는 소리에요. 저는 마스터플랜에 있던 시절에도 유일하게 방송을 했었거든요. 물론, 수파사이즈(Supasize)가 있긴 했지만, 두각을 나타내는 건 저였고. (전원 웃음) 저는 스스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해요. 당시 마스터플랜이란 회사는 엔터테인먼트 쪽으론 노하우가 전혀 없었어요. 왜냐, 그럴 일은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순수하게 음악에만 서포트를 해주는 회사였죠. 그런데 데프콘이 어쩌다 보니 여러 가지를 하게 된 거죠. 어떤 사람들은 저와 타블로의 노선을 비교합니다. 하지만, 타블로 같은 친구와는 길이 달라요. 왜냐하면, 나는 PR 잘하는 전문 매니저가 붙었던 것도 아니고 하나부터 열까지 발로 뛰었거든요. 그래서 회사에서도 인정 받았죠. 사람들이 나 때문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보람 있더라고요. 그게 굉장히 힘든 일이거든요. 방송국 가면 정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있고 다들 실력이 장난이 아니에요. 그야말로 전쟁터거든요. 그런 와중에 꾸준하게 하나 하나씩 갔다는 걸 그 쪽에서 굉장히 고무적으로 생각하더라고요. 돈마니형과 서로 되게 뿌듯해해요. 이렇게 저는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통해 이뤄나갔기 때문에 누구와 비교를 한다는 건 아니라고 봐요.
리: 데프콘 씨가 따로 독립한다고 하니 돈마니 씨가 많이 섭섭했을 것 같은데….
데: 아니에요. 독립할 때 형이 먼저 제의를 했어요. 굉장히 많이 챙겨줬구요.
리: 방송을 통해 번 돈은 주로 어디에 사용하는 편이에요?
데: 악기 사는데 많이 사용해요. 방안에 잔뜩 쌓인 악기를 보면서 ‘씨* 역시 나의 기본은 음악이야.’라고 마음을 다지죠. 힙합 리스너들이 제가 하는 것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라올 수 있게끔 열심히 노력하려구요. 지금도 준비하고 있는 게 많아요. 6월 달에 싱글을 낼 예정인데, 그건 가요에 완전 가까운 곡이 될 거에요. 90년대 조규찬 씨 음악 같이 화성을 바탕으로 한 곡도 만들어보고 싶고. 가을엔 재즈힙합도 해보고 싶고….
리: 정말 많네요. (웃음) 그런데 계획대로라면 당분간 정규앨범을 기대하긴 힘들겠네요.
데: 앞으로 싱글을 몇 번 더 낼 예정이에요. 물론, 퀄리티에 신경을 써서 말이죠. 전 디지털 싱글이라고 중요도를 낮게 두진 않거든요. 이번 싱글에도 자금이 꽤 들어갔어요. 활동을 해야 하니까 막 만들지 않죠. 준비도 철저히 하고요. 계획은 잡고 있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일단 6월 발매 예정으로 작업중인 싱글은 청취용 수준으로 소소하게 나올 예정이고 가을쯤에 나올 재즈 힙합에 좀 더 무게가 가지 않을까 싶네요.
리: 오늘 정말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네요.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데: 힙합 뮤지션들이 이제 뭔가 한방을 보여줄 때가 온 것 같아요. 무조건 슈퍼스타를 바라기보단 뭔가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겠고요. 이대로 가기에는 가요 쪽에서 너무 빨아가니까요. 일반 사람들이 느낄 수 없는 힙합의 독특한 희열을 만들기 위해서 뮤지션들이 연구를 많이 해야 해요. 이제 라임으로 떡칠 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제가 들었을 땐 라임도 죽이고 정말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라디오PD가 와서, ‘얜 도대체 왜 잘해? 왜 사람들이 잘한다고 하는 거야?’ 이런 질문을 정말 수도 없이 많이 받아봤어요. 그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없다는 거거든요. 그 라디오 PD도 짬밥이 되고 얼마나 많은 음반을 들었겠어요. 그래도 ‘라임이 어떻고….’ 등등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니 이젠 정말로 대중가요에서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는 작업물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힙합 뮤지션 스스로도 정화 작용을 해야 하고. 한동안 힙합음악도 빠른 음악이 대세 아니었습니까. 빠른 음악 하면 행사가 10~20% 더 붙는 건 사실입니다. BPM 빨라지면 사람들이 신나 하거든. 노래가 어지간히 거지같지 않으면 좋아해요. 그런데 얄팍하잖아요. 적당히 해야죠. BPM 100 미만으로 가도 그루브한 거 뽑을 수준이 되야 합니다. 다양한 연구들을 해서 자기 걸 찾아야 해요. 또 스스로 자기 컨트롤을 할 줄 아는 능력도 길러야 하고요. 리스너 분들도 이런 의식 있는 뮤지션이 있다면 온 마음을 다해서 사랑해주셨으면 해요. 저도 앞으로 그런 모습을 보여드릴 거고요. 아무쪼록 저 같은 독고다이를 많이 찾아주시고, 많이 응원해주세요. 참, 그리고 내가 보기에 리드머도 독고다이야. 뭔가 크게 상업적인 성공은 없는 것 같은데, 고퀄리티로 꾸준히 가잖아요. 그래서 내가 리드머를 더 좋아한다니까. (전원웃음)
인터뷰.글: 강일권, 민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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