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인터뷰] 버벌진트 - 버벌진트와 떠나는 첫 번째 두근두근 레이싱
- rhythmer | 2009-10-26 | 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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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J, the king of flow. 드디어 6년 만에 버벌진트의 이름으로 앨범이 나왔다. 그동안 수많은 아티스트의 앨범에 참여하면서 프로듀서, 보컬, MC로서의 역량을 거침없이 쏟아내 왔지만, 그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앨범을 기대하는 리스너들은 성에 차지 않았다. 인터뷰마저 거의 전무하다 싶어 본의 아니게 신비감을 조성하기도 했던 그를 이번에 만나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당연히 커피를 마시며 진행할 줄 알고 있었던 기자들을 끌고 맥주를 마시며 약간의 알코올 인터뷰(?)를 진행한 버벌진트와 지금부터 두근두근 레이싱을 떠나보자.
리드머 (이하 '리') : 안녕하세요? 이렇게 리드머에서 처음 인터뷰를 하는데 소감이 어때요?
버벌진트 : 저에게 인터뷰 할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2-3년 전까지는 제가 피처링 결과물이 나왔을 때 잠시 떠들썩했다가 조용해지곤 했는데요, 점점 '또 피처링이냐, 앨범은 안내냐.'라는 식으로 약간 시들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인터뷰가 들어올 만한 타이밍이 어긋났던 것 같네요. 저는 항상 작은 작업을 하더라도 거기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기를 바랐는데 이번에 오랜만에 제 이름을 걸고 나온 음반과 함께 인터뷰를 하게 되어서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반갑습니다.
리 : 아무래도 피처링이나 싱글에 대한 이야기 만으로는 인터뷰를 이끌어 가기 힘드니까요. 이게 다 앨범을 빨리 발표하지 않아서 그래요. (웃음) 많은 분이 기다리고 있는데, 계속 안 나오니까 본의 아니게 신비감이 조성된 것 같기도 하네요. 리드머는 자주 들어오세요?
버벌진트 : 네. 죄송스럽게도 사이트의 역사는 잘 모르지만, 약 1년 반 전부터 자주 들어왔어요.
리 : 벌써 5년이 넘었어요. 하하. 여하튼 자주 오신다니 반갑네요.
버벌진트 : 제가 리드머에 자주 들어가는 계기가 되었던 칼럼, 뮤지션의 글, 그리고 매년 선정하는 리드머 어워드 등을 보면 진지한 면이 강한 것 같아요. 유저들이 참여해서 자유롭게 만들어 나가는 사이트가 있는가 하면, 리드머는 그와 동시에 오피니언이 존재하잖아요. 그래서 꼭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외국의 힙합사이트닷컴을 비롯한 여러 사이트가 있듯이 리뷰를 한다는 점도, 어떤 뮤지션에게 점수를 높게 주고 낮게 주는 것에 따라 좁은 한국 힙합 씬에서 사이가 안 좋아 질수도 있는데 이런 것을 겁내지 않는다는 면에서 영양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리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동안 015B 스쿼드 활동을 많이 했는데요, 활동이 끝나고 최근에는 어떻게 지냈나요?
버벌진트 : 최근 2월에서 4월 까지는 [Favorite] 앨범을 녹음하고 믹싱하는 것들에 매여서 살았어요. 현재는 자체 작업은 끝났는데, 음반이 나온 후의 계획이 완전히 세워져 있는 상태는 아니거든요. 이를테면, 뮤직비디오 촬영같은…. 회사랑 같이 만들어가고 있어요. 저도 제 의견이 배제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 음악적인 부분 외에 이슈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홍보 활동을 부각시켰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말한다든지, 포스터 문구에 이러이러한 사진이나 문구가 들어갔으면 좋겠다 하는 것들 말이에요.
리 : 회사에서는 그런 점을 잘 포용해주는 편인가요?
버벌진트 : 제가 이번 앨범을 제작하게 된 회사는 장호일 씨가 사장으로 계시거든요. 사람 대 사람간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저하고 상성이 맞느냐에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이 좌우되는 것 같은데, 굉장히 자유로운 편이에요. 일단, 호일이 형이 젊고 음악을 듣는 것도 젊게 들으려고 노력하거든요. 게다가 기본적으로는 제 음악에 관련된 건 제가 제일 잘 아니까, 음악에서 파생된 이미지라든지 여러 가지 스케줄에 있어서 누구를 동반할지 같은 사소한 문제까지 저에게 다 맡기시는 편이에요. 그 대신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고는 하지만요. (전원웃음)
리 : 어떻게 보면 참 이상적인 관계네요.
버벌진트 : 네. 그런 편이죠.
리 : 그럼 음반 작업을 하기 전에는 어떻게 지냈나요? 예전에 데프콘 씨와 인터뷰에 의하면 학교를 다니느라 되게 바빴고 하던데요.
진 : 2003년 말에 제대를 하고나서 학점이 거의 바닥이었어요. 그런데 복학하고 나니까 학교 수업들이 너무 재밌는 게 많은 거예요. 음악과 관련된 수업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흥미를 느꼈죠. 그래서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이상 여기 있는 교수님들이 제공하는 수업을 작품처럼 느끼고 소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점을 올리는 데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애착을 갖고 열심히 들었던 수업도 있었고, 2년 정도 그렇게 학교를 꽤 열심히 다녔어요. 그때의 인상이 아마 데프콘 형한테는 “넌 어떻게 매일 시험이고 수업이냐.”라고 느껴진 것 같아요. 그 이외에는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전 음악을 만드는 사람인 버벌진트이기도 하지만, 음악에 인생을 100% 거는 김진태는 아니니까요. 삶을 균형 있게 굴려가려고 여행도 다니고 사람도 많이 만났어요.
리 : 버벌진트라는 이름이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오르내리기 시작한 이후에 정규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오래 걸렸잖아요.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건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아요.
버벌진트 : 2004, 5년에는 솔직히 제 앨범을 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별로 안됐어요. 제가 다른 뮤지션들과 교류하는 폭이 넓어지는 시기였고, 그 사람들하고 합작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합작을 했을 때 기존에는 안 보여줬던 다른 측면이 드러날 수 있는 기회들을 즐기면서 작업을 했거든요. 그렇게 창작욕이 충족되었던 것 같아요. 내 앨범을 굳이 발표하지 않더라도 현도형님의 'Living Legend'를 통해 이런 것도 보여줬고, '나랑 사귀자'를 통해 저도 잘 몰랐던 제 부분들을 꺼낼 수 있었고, '동창회'같은 곡도 만들었고. 일단은 제 앨범을 만들 만큼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별로 없었어요. 학교를 제외하고 나면 데프콘 앨범에 되게 많은 부분을 쏟기도 했으니까요. 아마 데프콘 형이 요새 활동을 쉬엄쉬엄하는 게 저에게는 앨범을 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준건지도 몰라요. (웃음) 또 하나는, 2007년에 7자가 들어가잖아요. 제가 숫자에 대한 징크스나 미신 같은 것을 믿는 편이에요. 그래서 7자가 들어가는 시기에 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웃음)
리 : 스스로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있으니까, 꼭 내 이름을 건 작품을 내야겠다는 조급함 없이 여유를 갖고 있었던 것 같네요.
버벌진트 : 네. 버벌진트라는 뮤지션의 존재를 꾸려 나가는 것에 있어서, 두 가지 측면을 말씀드릴게요. 일단, 제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만들었던 버벌진트가 있어요. 부모님에게 있어서는 아들이고, 여자 친구에게는 남자친구이고, 선생님한테는 제자이고, 예술적인 표현을 하고 싶어 하는 저의 일부분이 있을 때 그게 버벌진트라는 이름으로 표출이 되죠. 저는 그게 충족이 되는데 굳이 더 힘을 써서 오버를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음악을 듣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솔로 앨범이라는 게 나와야 이 사람의 모습을 정식으로 드러내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되게 많잖아요. 그분들( 기다리시는 팬 분들)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게 두 번째 측면이에요. 그래도 제일 기본적인건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잖아요. 그 다음에는 저를 기다려왔고 응원해줬던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그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고 싶어서 나오는 책임감. 그 두 가지의 무게가 왔다 갔다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이쪽으로(책임감) 더 기운 상태인 것 같고요.
리 : 두 가지 의미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적 욕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과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의 음악적 욕심일 수도 있고, 음악적으로 뭔가를 낼 때 제대로 해야겠다는 욕심일 수도 있고요.
버벌진트 : 바꿔 말하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뮤지션 중에 비요크(Björk)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거든요. '네가 다른 사람을 위해 음악을 하면 그건 진짜 쓰레기 같은 음악이 나올 수밖에 없고, 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서 만족해야 가장 좋은 음악이 나온다.' 어렸을 때 그 글을 잡지에서 봤는데 아직도 가슴 속 깊이 박혀있어요. 내 이름을 달고 나오는 게 지금 이정도면 만족스럽겠다고 느끼는 시점을 찾은 것 같기도 해요.
리 : 비요크가 아주 멋진 말을 남겼네요. (웃음) 그럼 이제부터 [Favorite EP]를 시작으로 그동안 모아두었던 내공을 내뿜으려고 준비 중인 건가요?
버벌진트 : 네, 그렇죠. 결과물들은 정말 많이 준비가 되어 있거든요. 이번 것을 넘어서 그 이후에도….
리 : 지금 두 번째 EP가 나왔는데,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EP앨범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잖아요. 어떤 이들은 정규 앨범을 내기 전에 일단 완성된 곡들을 모아서 내는 앨범 정도로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런 국내에서 두 번째 EP를 발매한다는 게 어쩌면 과하게 신중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버벌진트 : 한국에서 EP라는 게 언제부터 나오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잘 기억을 못하는데요. 글쎄요. 데프콘 형이랑 저랑 2001년에 둘이 나란히 EP라는 이름으로 앨범이 나왔잖아요. 저는 그 이전은 신경을 안 써서 기억을 못하겠는데, 그 이후에 언더그라운드 힙합이라는 바닥에서 EP를 내는 분들이 진짜 많았던 것 같아요. 일단 저는 기본적으로 재정적이든, 자기 역량에 있어서든 아직 준비가 반밖에 되어있지 않아서 반쪽짜리 앨범으로 나오는 EP를 낸 적이 없었고, 지금도 그런 EP가 아니에요. 트랙 수는 13개지만, 보너스 트랙을 제외하고 나면 7곡으로 요약이 될 거예요. 저는 이게 지금 7곡으로 나와야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대로 발표를 한 것입니다. 이 곡들을 다른 정규앨범에 다시 포함시킬 생각도 없어요. [Favorite EP]는 [Favorite EP]로서 이만큼의 규모로 된 작품이에요. 미니앨범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안 그래도 말씀하신 것처럼 EP라는 말을 붙였을 때 제가 준비운동을 또 하는 거라고 오해할까봐 걱정을 많이 해서 앨범 자체에는 EP라는 명칭을 넣지 않았어요. 라디오헤드(Radiohead)든 오아시스(Oasis)든 유명한 대형 밴드들이 10곡이 넘는 꽉 찬 정규앨범들 사이사이에 내는 EP들이 1.5집, 2.5집의 의미를 갖는 건 아니거든요. 또 다른 소품집이에요. EP는 그 EP 나름대로의 곡과 이미지를 갖고 있고, 그 정도 규모의 야심을 갖고 있는 거예요. 아티스트로서 저는 여러분이 그렇게 받아들이셨으면 좋겠어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그동안 작업했던 것들을 더는 안 내놓고 못 기다리겠어서 7곡만 빨리 모아서 먼저 내보자는 게 아니라 그 7곡이 서로 기승전결을 가지고 하나의 앨범으로 끝나는 거예요. [Favorite EP]로 완성된 하나의 유기적인 작품인 거죠. 그래서 저는 솔직히 비정규 작이라는 말도 그리 달갑지가 않아요.
리 : 혹시 이번 앨범이 7곡인 것도 숫자의 영향이 있는 건가요?
버벌진트 : 13트랙에서 마지막 4곡은 인스트루멘탈을 수록한 거고 '다 같이 춤을 춰'라는 곡과 '컬투쇼'는 보너스 개념이거든요. 2곡을 빼면 7곡이 맞죠? 약간 미신적인 것도 플러스 작용을 한 게 없지는 않죠. 고민을 많이 했어요. 13이라는 숫자는 또 불길하다고 많이 생각하거든요.
리 : 제 생각에는 미발표 곡들이나, 컨셉이 안 맞아서 누락됐던 곡, 그동안 피쳐링했던 곡들을 모아서 EP로 발매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버벌진트 : 음…. 미국 같은 경우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요즘에 다시 믹스테입이라는게 붐을 이루고 있거든요. 그건 주인공이 되는 뮤지션이 자기가 캐릭터를 의도해서 조직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DJ가 자기의 컨셉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어요.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국에서도 만약 그런 문화가 활성화되어 있었다면 버벌진트의 피쳐링한 작업을 모아서 만든 믹스시디 같은 게 이미 저한테 허락을 안 받고서라도 나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리 : 그러면 한 DJ가 버벌진트 씨를 컨셉으로 믹스테입을 내겠다고 해서, 미발표 트랙이나 모아둔 리믹스를 제공해줄 수 있느냐고 했을 때 기꺼이 제공할 생각이 있는 건가요? 외국에서는 사실 그런 경우가 많잖아요.버벌진트 : 그렇죠. 일단 생각이 있어요. 만약, 그 DJ가 돈을 받고 그걸 팔 거라면 저도 이익에 대한 정당한 비율을 주장할 수 있겠죠? 그런데 무엇보다도 저한테 허락을 구하거나 부탁을 하지 않았더라도 어떤 흐름을 갖고 제 변천사를 엮어서 낸다고 하면 저는 오히려 기쁠 것 같아요. 돈 받고 팔아도 별 상관 안 할 것 같고요. 그 곡들이 수록된 앨범을 냈던 제작사에서는 자기들이 권한을 갖고 있는 음원들이니까 시비를 걸 수도 있겠지만….
리 : 이 인터뷰를 보고 국내 DJ 분들이 그런 작업물을 내길 기대해 봅니다. 재밌을 것 같아요. (웃음) 그럼 여기서 옛날로 돌아가 보죠. 버벌진트 씨는 SNP에서 활동했었잖아요. SNP출신 뮤지션들은 한국어 라임의 체계를 바꾼 것으로 유명해요. 한 단계 진일보 시켰다고나 할까요. 특히 버벌진트 씨는 그 중심에 있었던 아티스트였고요. 본인은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버벌진트 : 그 부분에 대해서 제가 직접 사후적인 평가를 내린다던지 어떤 의의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하기가 좀 그래요. (웃음) 저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임과 동시에 팬이고 듣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다른 사람들의 음악을 듣고 비교하고 평가해보기도 하죠. 그 당시에는 분명히 우리가 진짜 재미있고 새로운 것을 하고 있으면 많은 사람이 영향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걸 다른 뮤지션들이 드러내서 말을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제가 그 이후로 나온 랩이 들어간 음반들을 듣다 보면 이건 분명히 SNP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이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SNP에 있던 사람들도 사고방식이 조금씩 달랐고, 하나의 SNP가 거대하게 불변하는 단일한 세력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SNP가 아닌 다른 쪽에서도 저희만큼 새롭고 재미있는 방식을 생각하셨던 분들이 분명히 있던 것 같아요. 저는 뒤늦게 그런 분들을 알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독보적이라고 말하기는 무리지만, 영향을 주고받던 초창기에 저희가 좀 더 고민하고 시도했다는 점에 대해서 굳이 겸손을 떨고 싶지는 않아요.
리 : 'Show & Prove', 'Sex Drive' Single , 'Modern Rhymes EP'를 거치면서, 추구했던 방향이나 스타일 면에서 터닝포인트가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떤가요?
버벌진트 : 제가 사춘기 때 즐겨 들었던 음악도 그렇고, 제 음악적인 영향은 완전 잡동사니에요. Show & Prove에 들어가서 'Sex Drive' Single을 낼 때 제 머리 속을 지배했던 생각은 한국힙합 곡들의 정서가 하나의 색깔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Sex Drive’ Single을 낼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라임에서 기술적인 것을 신경 쓰는 것 보다는 작가로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싶었어요. 나이가 되게 어렸지만, 이미 그런 건방진 생각을 했던 것 같네요. (웃음) 전 힙합을 하든 뭘 하든 젊은 사람들이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이 있어야 음악이 제대로 멋있게 나온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 멋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다 그랬던 사람들이구요. 어떤 젊은 소설가가 소설을 냈다고 했을 때 평단 혹은 문단이나 독자들에게 주목을 받는 것처럼 싱어송라이터로서 음악도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고 그래야 멋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야 뮤지션이 딴따라가 아닌 문화의 생산자 중 하나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Sex Drive'의 가사도 그렇고 'Big Pie'도 그렇고, 'To all the hiphop kids'는 맹렬하기도 했죠. 동아리에서 스쿨밴드를 하는듯한 기분이 아니라 작가가 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는걸 보여주고 싶었고, 그런 사람들이 저를 보고 많이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서로 영향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때는 그런 생각이 더 많았었어요. [Modern Rhymes EP] 때는 이게 찰리 채플린의 영화 ’Modern Times'를 패러디한 건데, 제목이 말하듯이 라임 쓰는 것에 집중을 많이 했었어요. 모두 한국말로 verse 1, 2, 3까지 빽빽하게 채웠던 곡들이에요. 랩스타일도 그 당시로서 제가 생각하기에는 다채롭게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당시 미국에서 랩 하는 사람들은 진짜 스타일이 다양했잖아요? 라이밍하는 스타일도 다양하고, 목소리 톤을 내는 거나 리듬을 타는 거나 그런 스타일들을 약간 줏대 없이 다양하게 따라해 보고 싶었어요. 이 자리에서 처음 말씀드리지만, 'What you write 4'는 탈립콸리(Talib Kweli)를 즐겨 들으면서 나왔던 거예요. 약간 방정맞다싶게 하면서 단어를 우겨넣는 스타일이랄까. 'History in the making'은 제가 커먼(Common)을 되게 좋아해서 나왔던 거였고요. 지금 하면 물론 더 잘 따라하겠죠. 그때는 아무튼 그런 생각이었어요. 아, 그리고 'Drama'같은 경우는 맙딥(Mobb Deep)을 마음속에 두고 했던 거예요. (웃음)
리 : 일종의 오마쥬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버벌진트 : 네.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가사를 쓰는 방식, 라임을 배치하는 방식. 랩을 하는 방식에 있어서 이런 것들을 많이 신경 썼던 시기인 것 같아요. 그때는 곡을 다 MPC 2000XL로 만들었어요. 모두 저작권을 지불할 필요가 없는 샘플링이었죠.
리 : 아, 공개샘플을 사용한건가요?
버벌진트 : 공개 샘플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 원작자가 들어도 이게 자기 곡인지 전혀 생각을 할 수 없는 모자이크식 샘플을 했거든요. 여기저기서 몇 분의 몇의 확률로 따왔죠. 그런 식으로 샘플링을 하는데 재미를 들렸어요. 그 후에 군대를 갔죠. 군대를 가면서부터 힙합, 랩, 라임에 집중하던 것에서 관심이 약간 벗어났고 다양한 스타일을 추구한 것 같아요. 그때부터 피처링 작업했던 것들을 보면 노래도 했고 뮤지션으로서 다채로움을 습득하려고 노력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물론, 그 와중에도 'Do what I do' 같이 힙합에 지극히 충실한 곡들도 있었지만요. 여러 스타일을 시도하다가 재미있는 게 나온 것 같아서 공개하는 것들에 흥분했던 시기였어요. 그런 게 점점 이어지면서 데프콘의 1, 2집에 들어간 곡들도 나오게 되었죠. 더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할 수 있는 작곡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졌던 것 같아요. 그게 지금의 [Favorite EP]에 와서까지 이어지는 것 같네요.
리 : 말씀이 나와서 이야기인데, 데프콘 씨하고는 어떠한 계기가 되어서 그렇게 찰떡궁합으로 계속 함께하게 된 건가요?
버벌진트 : 저희가 서로 음악적인 스타일이나 여러 가지 관점에 있어서 항상 동의하는 건 아니거든요. 사실 어떻게 보면 스타일이 되게 달라요. 제가 보는 어떤 미세한 부분을 데프콘 형은 못 볼 때도 있어요. 서로 눈에 필터가 다르다고나 할까요? 받아들이는 감수성이 다르다고도 할 수 있고요. 근데 데프콘 형이 머릿속으로 그리는 무언가를 제가 잘 모를 때도 있어요. 그게 보완이 되는 것 같은데 흔한 얘기지만, 서로 다른 점이 오히려 플러스가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나온 것도 같고. 그런 것들에 제가 만족을 했으니까 계속 같이 하는 거겠죠. 한마디로 작업에 임하는 태도, 즉, 근면성, 성실성에 있어서 제가 과거에 실망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이름을 거론하기 힘들지만…. 그분들도 물론 항상 변화하고, 어떤 상황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게으르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저랑 같이 뭘 하기로 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았거든요. 그게 체질상의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일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느냐, 성실하게 임하느냐의 차이였던 것 같은데 데프콘 형은 제가 그런 실망들을 하던 순간순간에 항상 100% 정직한 모습과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그런 점이 저한테는 큰 신뢰를 만들게 되었죠.
리 : 그렇군요. 그럼 노래를 병행한 건 언제부터였나요?
버벌진트 : 버벌진트라는 이름을 만들고 나서 공개적으로 노래를 한건 '나랑 사귀자'가 처음이었어요. 중학교,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밴드를 하면 보통 노래하는 애들이 리더를 하잖아요. (웃음) 저는 거기서 주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했었어요. 솔직히 노래하는 게 저한테는 전혀 낯설지가 않고 랩하고 그리 다르다고 생각도 안 해요. 따지고 보면 랩보다 노래를 먼저 한 것이기도 하고요.
리 : 그런 사실이 있었군요. 밴드라면, 락 밴드를 했던 건가요?
버벌진트 : 네, 락 밴드였죠. 노래가 재미있다고 항상 느껴왔었고 거기서 즐거움을 찾았었는데 랩이라는 형식에 집중하면서 한동안 버벌진트라는 이름으로 랩만 하다가 결국엔 어쩔 수 없이 다시 노래를 하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아웃캐스트(OutKast)도 그렇고 넵튠즈(Neptunes)같은 스타일도 그렇고, 씨-로(Cee-Lo)나 로린힐(Laulyn Hill) 등, 랩을 하고 노래를 하는 재능이라는 건 사실 뿌리로 가면 하나인거 같아요. "랩도 하는데 노래도 하네"가 아니라 결국엔 하나의 재능과 열정에서 나오는 것 같다는 말이죠. 저도 두개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아요.
리 : 스눕독(Snoop Dogg)도 빼놓을 수 없고요. 하하.
버벌진트 : 네, 스눕독도 노래하죠. (웃음)
리 : 잠깐 재밌는 이야기를 하자면, 데프콘 씨 앨범에서 버벌진트 씨 노래를 처음 들은 분들 중에는 ‘피쳐링이 분명히 버벌진트라고 되어있는데 도대체 버벌진트는 어느 부분에서 나오는 거냐‘라고 했던 분들도 있었어요. (전원웃음) 그럼 앞으로 프로듀서, MC, 보컬로서 어느 한쪽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닌 균형적으로 작업을 할 예정인가요?
버벌진트 : 기본적으로 신경 자체를 별로 안 써요. 왜냐하면 저는 악상이 떠오를 때 다 섞여서 와요. 이 곡의 코드와 멜로디와 가사가 한꺼번에 떠오르거든요. 결국에는 하나의 버벌진트로 그냥 뭉뚱그려지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노래를 좀 덜하고 랩을 많이 해야지’라는 식으로 그 비중을 일부러 조절하는 일은 제작사에서 시키지 않는 한 별로 없을 것 같아요. 그냥 마음가는대로 하는 거죠.
리 : 그런 버벌진트 씨만의 과정을 지나 새로운 결과물이 나왔어요. [Modern Rhymes EP]를 작업할 때와 [Favorite EP]를 작업할 때의 환경이나 마음가짐이 달랐을 것 같은데요?
버벌진트 : 네. 음악을 훨씬 직감적으로 만드는 시대로 들어온 것 같아요. 카시오 키보드 하나 가지고서 거기 들어있는 프리셋으로 드럼을 찍고, 건반을 찍기도 해요. 한 3-4년 전부터 남부 힙합이 그런 흐름으로 급부상하게 된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마음에서 나오는 음악을 제대로 만들면 그 사람이 음악을 만드는데 장비나 시간을 얼마나 들였든 간에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음악이 되고, 많이 팔릴 수도 있고,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많이 봤어요. 넵튠즈가 등장해서 보여줬던 사운드 만드는 방식도 처음에는 정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힙합 프로듀서들에게는 태만에서 비롯된 날라리 같은 식으로 보였을 거예요. 신디사이저에 들어있는 프리셋을 그냥 때려서 'Grinding'이라는 노래를 만들고…. 그게 엄청나게 신선하고 중독적이었잖아요. 그 사람의 인터뷰를 보면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서 되게 직관적이에요. 어떤 악기를 하나 갖고서 놀다가 여기 들어있는 소리가 그냥 마음에 들었고, 그 것 때문에 곡이 하나 탄생을 해요. 그리고 그런 것들이 수백만 장씩 팔려나가요. 그런 식으로 시대의 흐름도 바뀌어왔고, 청중들도 그런 걸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흘러온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죠. 술을 왕창 먹고 집에 들어왔는데 갑자기 떠올라서 키보드를 ‘뚱땅뚱땅’ 거리며 만든 곡이 있으면, 다음날 일어나서 술 마시고 한거니까 안 된다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제 직관에서 나왔기 때문에 좋은 음악일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음악을 만드는데 있어서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아요.
리 : 확실히 타이틀인 'Favorite'이라는 곡에서 그런 느낌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어떠한 방법에 묶여있었던 것에서 벗어나 편하게 표현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버벌진트 : 'Favorite'이라는 곡의 시작은요. 처음에 길을 가다가 자미로콰이(Jamiroquai)의 노래가 어디에선가 나왔어요. 그때 약간 애시드한, 자미로콰이 같은 느낌을 상상하고 그냥 흥얼흥얼거리면서 출발했어요. 그걸 곡으로 만들게 되었죠. 과거 5년 전의 저였다면 그런 결과물이 나오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리 : 그렇군요. 아, 그나저나 예전에 리드머 뉴스에서 프리뷰로 그 곡을 공개했었잖아요? 그런데 너무 짧아서 적잖이 당황했었습니다. (웃음) 왜 그렇게 짧게 공개했었나요?
버벌진트 : 감질이 들게 하고 싶었어요. 곡을 들었을 때 "이건 좀 상큼한건가 보네?" 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던 티저 같은 거죠.
리 : 프리뷰를 이렇게 짧게 올리게 되면 더 기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쉽게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반응 사이에서 실제로 곡이 공개 되었을 때 달라지는 반응을 기대하는 건가요?
버벌진트 : 네, 사실 그런 걸 즐기는 편이에요. (웃음) 이건 제가 누구의 머리 위에 있다는 개념이 절대 아니라, 사람들의 기대가 깨지거나 아닌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좋았다는 반응을 보는 게 정말 흥미롭거든요.
리 : 자신의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들의 특권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웃음) 솔직히 프리뷰 30초 부분만 들었을 때는 많이 실망했었습니다. (웃음) 게임음악 같기도 했고요. 그런데 막상 전체를 들어보니 그렇지 않더군요. 게다가 랩이 아니고 보컬이 들어가면서 곡의 분위기가 더 좋아진 느낌이었어요.
버벌진트 : 아, 그러셨군요. (웃음) 저 역시 다른 사람들의 창작물을 듣고 그런 경험이 있어요.
리 : 뮤직비디오 촬영 계획도 있다고 들었는데, 'Favorite'으로 촬영하나요?
버벌진트 : 네. 아직 들어가지는 않았는데 'Favorite'으로 찍을 거예요. 한 열흘 정도는 더 걸릴 것 같아요. 앨범 발매보다 늦게 완성되겠네요.
리 : 직접 출연도 하는 건가요?
버벌진트 : 개인적으로는 출연을 되게 회피하는 입장이에요. (웃음)
리 : '그녀에게 전화 오게 하는 방법' (015B "Lucky 7") 에서도 출연했잖아요.
버벌진트 : 그건 제가 할 말이 있는데, '그녀에게 전화 오게 하는 방법'에서 제가 좀 하기 싫었던 방식으로 하게 되었어요. 저는 솔직히 제가 그렇게 얼굴을 들이대는 뮤직비디오를 봤던 사람이 저를 평소에 알아보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거든요. 약간은 제가 그런 소심함이 있어서, 뮤지션 버벌진트와 실생활의 김진태라는 사람을 분리하고 싶은 게 있어요. 좀 가릴 수 있으면 가리고 힐끔힐끔 긴가민가하게 나올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리 : 이번 EP말고 정식 LP 앨범도 발표할 계획으로 알고 있는데요, 언더그라운드를 대상으로 하거나 그냥 힙합 앨범을 생각하고 있는 건가요, 아니면 [Favorite EP]와 같이 전체적인 장르를 다룰 예정인가요?
버벌진트 : 제가 힙합 팬들이 좋아할만한 빡센 힙합 트랙을 만드는 것을 즐기지 않는 것도 아니니까 다 아우르게 될 것 같아요. 궁극적으로 저는 길 가던 아저씨나 힙합을 안 듣던 사람이 들어도 그 감성과 떨림으로 좋아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그렇다고 한국에서 현재 잘 팔리는 대중음악의 색깔을 따라간다는 말은 아니에요. 힙합 팬들이 좋아할만한 부분들이 배제되거나 외면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리 : 결론적으로는 버벌진트 씨가 좋아하는 음악이 지금 그 방향이겠죠?
버벌진트 : [Favorite EP]가 있으면 그 스펙트럼에도 어느 정도 담겨있다고 생각을 해요. 제가 오랜만에 제 이름으로 되는 앨범을 내는 거니까 세월이 또 흐르면서 다음 앨범을 낼 때 더 능숙하게 할 수 있는 면들이 분명히 있겠죠. 그렇지만, 본질적으로 [Favorite EP]에서 보여줬듯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방식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리 : 정규 LP나 [Favorite EP]나 앞으로 해나갈 음악이 비슷한 성격이나 비슷한 포지션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일전에 리드머에서 데프콘 씨 인터뷰를 했을 때 버벌진트 씨의 앨범은 아마 메인스트림과 언더그라운드의 중간지점에 놓이는 앨범이 될 거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버벌진트 : 그때그때 제 마음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전 이정도의 선을 되게 좋아하고 만족스러워요. 결과물 자체로 볼 때, 한국 가요시장에서 잘 나가는 코드에 굴복했다고도 생각 안하고, 그렇다고 해서 청중들이 들었을 때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을 음악도 아닐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정도 선을 지킬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게 말은 쉽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러니 다음 앨범에서는 그렇게 아이디어가 안 나올 수도 있죠. (웃음)
리 : 그런데 이런 경우 버벌진트 씨의 의도와는 달리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히 어중간한 위치의 앨범이 될 수도 있어요. 실제로 힙합을 듣던 사람과 그냥 다른 장르를 듣던 사람들 모두를 만족시키겠다는 모토를 가진 앨범 중에 주목을 못 받은 경우가 많고요. 버벌진트 씨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로서는 그동안 해왔던 활동에 비해 어느 한쪽에라도 확실히 먹히는 음악을 했으면 하는 입장일수 있잖아요? 이를테면, ‘노자’라든지 ‘To all the hiphop kids’와 같은 곡에서 강한 인상을 받은 분들이 있고 015B와 작업했던 모습만을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테니까요. 그 사이의 괴리감을 조율하고자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버벌진트 : 물론 저도 우려가 되죠. ‘To all the hiphop kids’를 좋아하고 ‘Do what I do’를 통해서 저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이번 앨범에 그런 식의 쾌감을 주는 곡이 있다고 느낄 수도 있고 없다고 느낄 수도 있고 실망을 할 수도 있죠. 버벌진트가 가진 한 캐릭터의 모습을 기대하는 분들이 ‘왜 그런 부분이 빠져있는지’라고 생각하실 부분을 제가 너무 편하게 여기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실생활에서도 A라는 사람이 있는데 학원에 가서는 조용한 사람이고, 집에서는 깡패일수도 있고, 학교 가서는 매일 맞고 다닐 수도 있잖아요. 어떤 측면에 있어서 다르게 보이는데 A라는 사람의 360도를 다 감상할 수 있는 눈을 일부러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봤던 게 전부라고 확신을 하고 있다가 그렇지 않은 모습을 봐서 실망하고 낯설어하고 당황하지 않을 마음의 준비는 항상 되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약간 불교철학적인 이야기일 수 있는데, 전 어떤 사람을 봤을 때 첫인상도 중요하지만 제가 보고 있는 면이 아닌 다른 뒷면이라는 게 언제든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음악을 들으시는 분들도 오히려 자기가 모르는 부분을 발견했을 때 그 발견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을까봐 걱정이 되긴 해요.
리 : 장기적으로는 버벌진트 씨가 포지셔닝을 다각화하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보컬을 좋아하는 사람, 랩을 좋아하는 사람 등 여러 취향의 청자를 아우르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버벌진트 : 그런 욕심을 눌러 놓을 수는 없는 거겠죠.
리 : 프로듀서로서도 계속 나아가고 싶은 생각인거죠?
버벌진트 : 네. 최근에 맥시멈 크루 같은 경우는 제가 고스트 라이팅을 다 해줬어요. 그런데 이게 제 가사 쓰듯이 몇 곡 더 썼다는 이야기와는 다르거든요. 맥시멈 크루는 랩을 처음 하는 친구들이고, 거의 없다 싶은 스킬에 맞춰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 굳이 랩이 빡셀 필요는 없으니 비보이로서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는 스타일을 내려고 했죠. 어떤 대상이 있을 때 그 사람한테 어울리는 모습으로 제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카드 중에 하나를 꺼내서 어울리게 할 수 있는 그런 프로듀서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맥시멈 크루도 제 자신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은데 지금으로서는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노력을 많이 할 거예요.
리 : 정규 앨범은 올해 나올 예정인가요?
버벌진트 : 일단 올 해를 계획으로 하고 있습니다. [Favorite EP]를 듣고 많이 관심 있게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번 EP는 짜투리 곡들을 모아서 낸 앨범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의 가치에 귀를 기울여주셨으면 좋겠어요. 여정의 한 지점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고요.
리 : 그럼 이번 앨범이 나오기 까지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던 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버벌진트 : 이번 EP를 듣고 ‘왜 이런 곡은 빠져있을까’ 하면서 실망을 하실 분들도 있을 것 같고 이전에는 디스곡이나 하던 애라 싫어했는데 이번에 들어보니 좋다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저에게는 기존에 제가 원해서든 원치 않았든 만들어져온 저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해나가는 과정의 일부분인 것 같아요. 독설적인 가사를 썼던 랩퍼 버벌진트에서 다채로운 음악을 하는 버벌진트로 바뀌어 나가는 과정이니까요. 그걸 좋게 봐주시고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리 : 중요한건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하는 거니까요.
버벌진트 : 네, 물론 저는 제 마음대로 할 거예요. 이제 마지막 코멘트가 되는 건가요? 제가 이번에 비솝 형의 앨범을 많은 부분 맡아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거든요. 진짜 소수의 분들만 비솝 형을 기억하고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필자 주 : STG의 B-Shop과는 다른 인물이다.) 이것도 저로서는 또 한번의 도전인데 어떻게 둘이 성공적으로 상호작용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비트 부분을 많이 담당하기로 계획이 잡혀있어요. 비솝 형이 워낙에 전형적인 랩퍼랑은 진짜 거리가 멀거든요. 랩하는 스타일이나 가사의 내용이 힙합적인 태도랑은 동떨어져 있는데 그런 부분에 제가 맞춰서 얼마나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지 도전해 볼 생각이에요. 올해에는 작업물이 정말 많이 나올 것 같아요. 다이나믹 듀오 3집에서 이미 3곡에 참여했고, 과거에 교류하지 않았던 사람들과 작업하는 기회가 계속 있을 것 같아요. 리오 케이코아 랑은 최근에 작업을 하나 했거든요. 이전에는 인사도 제대로 나눠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에요. (웃음) 조만간에 공개가 될 걸로 알고 있어요.
리 : 여러 아티스트와 작업을 통한 정말 멋진 작업물들 기대하겠습니다.
버벌진트 : 네, 감사합니다.
리 : 마지막으로 다음 단어들을 보고 바로 떠오르는 생각을 간단히 표현하거나 둘 중 하나를 골라주세요.
1. 음악 - 도 (道)
2. Rakim or J.Dilla - J.Dilla
3. 서울대 - 밤을 새는 기술을 습득하는 곳
4. 누나 - 장진영
5. 타임머신이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순간 - 고등학교 시절 더 곱상했을 때 여자들과 좀 많이 친하게 지냈으면 재밌었을 것 같다.
기사작성 / 강일권, 연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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