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인터뷰] 김조한 - R&B 베테랑, 14년산 소울을 말하다
- rhythmer | 2009-10-26 | 4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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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R&B 음악 팬들을 만족시키는 뮤지션이 극히 드문 현실 속에서도 대중성과 음악성의 조화를 이룬 대표적인 뮤지션 김조한. 솔리드(Solid) 때부터로 치면, 그가 활동한 지 무려 1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 베테랑 뮤지션이 이번에 2년의 공백을 깨고 정규 다섯 번째 앨범 [Soul Family With Johan]을 들고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한창 공부와 씨름하던 나이에 봤던 그가 여전히 새로운 결과물을 발표하며, 한국 흑인음악 씬의 전방에서 활약하고 있다니…. 정말 감회가 새롭다. 한국 R&B 계의 큰형님과 인터뷰는 이렇게 깊은 감회에 젖은 상태로 시작됐다.
리드머(이 하 ‘리’): 우선 늦었지만, 새 앨범 발표를 축하드려요. 요즘 같은 음반시장의 상황 속에서 김조한 씨 같은 베테랑 뮤지션이 꾸준히 새로운 결과물을 발표해주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본인의 감회는 어떤지, 또, 앨범을 만들 때 어느 부분에 가장 주력을 했는지부터 묻고 싶네요.
김조한(이하 ‘김’): 일단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과 이렇게 만나게 되어 기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어요. 아무래도 많은 분은 어떤 프로듀서와 만났는지, 혹은 어떤 사운드를 담았을 지에 대한 관심이 많겠지만, 저는 그것보다 음악을 들을 때 해당 뮤지션의 전체적인 마인드가 어디에 있는지를 봐요. 저 역시 (앨범을 만든) 목적이 어디있는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팬들이 제가 만든 음악을 들었을 때, 실망할 때도 있고 더 좋아할 때도 있을 겁니다. 분명한 것은 제가 이전에는 너무 멀리 있었던 것 같다는 거고요.
리: 음, 멀리 있었다는 말씀에 꽤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만….
김: 네. 그동안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너무 컸던 것 같아요. 요번엔 보여주려고 만든 앨범이 아니에요.
리: 좀 더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기존의 스타일을 버리려고 노력했다는 가사도 봤는데요. 그토록 바꾸려고 한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 무엇보다 ‘김조한 음악이 어렵다’는 말이 되게 마음이 아팠어요. 10명 정도에게 제 음악을 들려주고 얘길 들어보면 어렵다는 얘기를 꼭 했거든요. 그동안 나름대로 칭찬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저는 평소에 다른 사람 입장을 많이 생각해봐요. 그래서 이번에도 많은 생각을 해봤죠. 예를 들어볼게요. 만약, 제가 목사님이였으면 설교를 하겠죠. “하느님은 이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세상에 왔습니다. 아멘.” 끝나고 물어보겠죠. “어땠어? 오늘 감동받았어?” 그럼 설교를 들은 사람이 대답합니다. “솔직히 좀 어려웠어요.”라고요. 여기서 “어려웠어요.”라는 말의 진짜 의미가 뭘까요? 결국, 마음 깊이 느끼지 못했다는 말이겠죠. 메시지를 못 받고, 은혜를 못 받은 거예요. 저는 정말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데 관객들은 어려워서 못 받아들였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목적이 실패한 거죠. 목사도 메신저고, 저도 음악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하는 메신저예요. 그런데 김조한의 음악이 어렵데요.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해보니깐 너무 슬펐어요. 왜냐면, 그동안 전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음악을 위해서라면 시간이나 몸을 아끼지 않고 밤새워 음악 만들고, 남들 돈 벌 때 저는 음악만 했어요. 그런데 주위에서 어렵다고 하니깐 ‘그럼 지금까지 내 메시지를 못 받은 거야? 내 안의 이 미칠 것 같은 심정을 하나도 못 느낀 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7년 동안 뭐했지?’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 음반은 많은 사람이 저와 제 음악을 좀 더 쉽게, 그리고 솔직하게 느낄 수 있게 하려고 했어요. 발라드 곡에서는 발라드로 절 느끼고 훵크(Funk)에서는 훵크 음악에서의 절 느낄 수 있게. 어떻게 해서든 가까워지고 싶었던 마음이 컸어요.
리: 김조한 씨의 음악이 어렵다는 것 중에 음악 스타일도 있지만, 그보다는 보컬을 따라 하기가 어려워서 그런 건 아닐까요?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노래방에서 부르기 쉬운 곡들이 히트를 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웃음)
김: 아, 그것도 어느 정도 요인이 된다고 봐요. 우리나라는 약간 미국하고 다른 게, 그 쪽은 가사를 몰라도 느낌이 좋으면 떠요. 우리나라는 노래방에서 꼭 불려야 되고, 내용이 이래야 되고…. 느낌만으로 음악이 뜨기는 힘든 것 같아요. 그게 참 슬픈 현실이에요. 전 느낌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게는 못 불러요. 물론, 미국음악이 다 맞는다는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제가 좋아하는 알앤비 음악 중엔 무슨 말이지 모르는 가사도 꽤 많아요. 미국에서 살긴 했지만, 가사를 보지 않으면 못 알아듣는 내용이 많으니까요.
리: 앨범을 만드는 도중에 여러 일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야기 좀 부탁드릴게요.
김: 해프닝이 되게 많았어요. 8월 달에는 저희 어머님께서 돌아가셨고…. 우리 엄마가 제 음악을 참 좋아했어요. 솔리드 때부터 활동하는 모습을 다 보셨고. 그런데 정말 잘 되었을 때 제가 나와서 계약이 좀 잘못되고 사무실도 안 좋은 데를 만나서 어머님이 되게 슬퍼하셨죠. 언젠간 다시 잘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가 잘 된 걸 못보고 돌아가셨어요. 또, 차사고도 났고요. 진짜 죽을 뻔 했어요.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순간 제가 정말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생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해야겠다는 생각도 새삼 들고요. 그래서 나를 다시 검토해봤어요. 제가 잘하고 있는 것과 못하고 있는 것. 전 사람은 바보가 되어야지 인정할 건 인정하고 그 안에서 진실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진실을 만나기 위해서 제가 지금까지 거쳐 온 음악세계를 역으로 거슬러 가봤죠. 그러면서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김조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데 제가 앞으로 다음 음악세계를 이어가려면 처음의 심정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신인이었을 때,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70시간씩 일을 한 적이 있어요. 일을 하던 곳에 스테레오가 있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테잎을 틀어놓고 일하면서 노래를 했어요. 그렇게 신인 때는 공연장에 1명만 있어도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마인드였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제 공연에 70%만 왔다고 하면, ‘왜 30%가 안 왔는지, 왜 꽉 차지 않았는지’에 신경을 쓰게 됐죠. 예전엔 1명만 와도 행복할 것 같았는데 말이에요. 제가 뮤지션이 아닌 연예인이 되어있었던 거예요. 이런 건 아니다 싶었죠. 그래서 다 버렸어요. 다 버리고 솔직한 나를 찾으려고요.
리: 음, 마지막 말씀이 찡하네요. 그럼 이번 앨범은 만족스러운가요?
김: 만족하지만, 퍼펙트하지는 않아요. 만족하는 이유가 인간적인 나를 느낄 수 있다는 그 자체 하나예요. 문제점도 있어요. 글씨도 막 틀리고 그랬거든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제가 한 거니깐 만족해요.
리: 지금까지 한 번도 100% 만족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나요?
김: 네. 없었어요.
리: 앞으로는 어떨 것 같은가요?
김: 사실, 1집은 그때 당시에 저에게 완벽했어요.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고요. 혼자 녹음실에서 두 달간 살았었어요. 세션맨하고 저하고 둘이서만 만든 음반인데다가 발음이 아주 안 좋고, 컴퓨터도 없이 테잎으로 했어요. 컴퓨터를 안 쓰고 그냥 불렀으니깐, 음이 다 떨어지기도 하고…. 그런데 그때 그 추억들이 정말 좋아요. 정말 솔직했었으니까요. 지금도 솔직하게 노래하고 싶은데 많이 약아졌어요. (웃음)
리: 5집을 작업하면서 싱어로서, 프로듀서로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김: 저는 각각 입장마다 달라요. 처음에는 전 작곡가 김조한이에요. 감정이 있는 사람이죠. 그 상태에서 곡을 씁니다. 그럼 프로듀서 김조한이 와서 상황을 봐요. 사무실에서 세션들과 얘기를 한다든지. 곡을 골라내죠. “이거는 별로야. 이건 좋겠다.”하면서. 그렇게 선곡이 끝나면 다음날 싱어 김조한은 또 아무것도 모른 채 노래를 해요. 아무도 없이 저 혼자 해요. 디렉팅도 못 보게. 느낌이 나와야하기 때문에요. 외모도 다 달라요. 되게 웃기죠? 제가 음반이 나올 때하고 작업할 때 모습이 달라요. (웃음) 지금은 제가 아티스트예요. 음반을 내서 보여주는 입장이기 때문에요.
리: 역할분담이 확실히 되네요? 놀랍고 흥미롭습니다. (웃음)
김: 예를 들어 제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데 푸른 바다 하나를 그려달라는 주문이 들어오면 전 주문을 한 사람에게 더는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말라고 할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푸른 바다를 그리는 거죠. 다만, 다 그린 후 보여줬을 때 그 사람이 “전 부산의 바다를 원했는데 이건 다른 바다네요.”라고 한다면, “부산? OK"하고 다시 그려줘요. 전 음악을 만들 때나 노래를 부를 때도 그렇게 해요. 그래서 전 항상 First Draft(*자신의 느낌대로 부른 원래 버전)가 있어요. 앨범에 수록되지 않은 버전의…. 물론, First Draft 그대로 수록된 곡들도 있고요.
리: 흠. 그렇다면, 이번 앨범에서 첫 녹음 그대로 수록된 곡은 어떤 곡인가요?
김: 아, 그건 얘기할 수 없어요. (웃음) 그건 듣는 사람들이 느껴야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잘 들어보시면 느낌이 다른 곡들이 있을 거예요.
리: 다시 한 번 잘 귀 기울여 들어봐야겠네요. 하하. 아무래도 프로듀서로서 역할이 가장 어려울까요?
김: 음, 다 나름대로 어려운 점이 있지만, 프로듀싱에서는 어려운 음악을 쉽게 들리게 하는 게 참 힘들어요. ‘어떻게 해야 쉽게 받아들일까?’를 고민하고 곡을 만들어내면 사람들이 그래요. “훨씬 쉬워졌네요.”라고. 그러면 전 속으로 그러죠. ‘너 불러봐, 이게 더 어려워’ (웃음)
리: 하하. 지금 말씀한 부분은 이번 앨범에서 보컬의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일 것 같네요. 애드립을 자제하고 상당히 편안하게 불렀다는 느낌이 강해요.
김: 네. 맞아요. 그래서 이번 음반에 “애드립이 더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 느낌에 충실하고 쓸데없는 애드립은 안 넣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서 “말해줘” 같은 경우는 포인트가 마지막 부분에 있는데 그래서 타이틀이 될 수 없었어요. 곡은 5분인데 방송에서 원하는 건 2분이니까요.
리: 그 “말해줘”라는 곡의 가사를 타이거 JK 씨가 썼잖아요? 이전에 [Wonderful(더 카마엘)]이라는 게임음악도 함께 작업을 했었는데 특별히 JK 씨와 잘 맞는 부분이 있나요?
김: 잘 하자나요. (웃음) 그리고 제가 원래 힙합 마니아에요. 아시죠? 제 차 안에도 오디오 시스템을 다해놨고 차 안에 있는 CD도 전부 힙합이에요. 좀 더 튜닝하고 싶은데 요즘 제가 듣는 노래가 우리나라 시스템에서 나와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안했어요. 그래도 우퍼까지 다 해놨어요.
리: 막 로우라이딩(Low Riding)하면서 다니시는 거 아니에요? (전원웃음)
김: 아, 원래 미국에서 있을 때 로우라이더 차도 있었어요. 15인치 림(Rim)을 단. 그리고 저도 힙합음악을 하고 싶은데 제가 인정을 안 하는 사람하고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요. 솔직히.
리: 어떤 부분을 특히 보나요?
김: 랩을 잘하든지, 노래를 잘하든지, 가사를 잘 쓰든지요. 인정안하면 일을 못해요. 친구는 할 수 있어요. 실제로 일을 되게 못하는 친구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그냥 친구하자”고 했죠. 걔는 섭섭했을 거예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왜냐면, 전 사람들하고 한 약속이 있으니까요. 김조한의 음악은 어느 정도 완성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혹시 그 곡(“Wonderful 더 카마엘”) 들어보셨어요? 타샤랑도 같이 부른.
리: 예. 들어봤죠.
김: 괜찮지 않았어요? 작업을 저희 녹음실에서 했는데요. 정말 좋았어요. 랩 메이킹을 할 때도 되게 자연스럽게 했고요. 잠깐 힘들었던 건 시간이 많이 없어서 몸으로 때웠다는 거죠. 제가 원래 잘 안치는 데 기타까지 치면서 부르고요. 그래도 노래 잘 나왔잖아요. 잘하는 친구들이니깐. “난 이 친구 랑이라면 무조건 해. 부탁하면 해” 이런 정도에요. 그래서 ‘말해줘’란 노래를 구상했을 때, 이건 타이거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부탁을 했어요. 전화를 해서 부탁들 했더니 금방 해주더라고요. 타이거란 사람은 확실히 스트릿 포잇(Street Poet)이에요. 다이나믹 듀오도 그렇고요. 빅뱅도 잘 했어요. 많은 분이 아이돌이라서 편견이 있는데 잘 해요. 그렇게 마음에 맞는 사람이 있어요. 한 번 봐도 맘이 통해요. 제 이번 앨범 타이틀이 [Soul Family With Johan]이잖아요? 서로 마음이 통하는 모든 이가 다 소울 패밀리인 거예요. 양동근 씨도 한 번도 일을 같이 한 적은 없는데 방송국에서 마주치면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피쳐링 한 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딱 나요. 리쌍도 그렇고요. “전화해. 필요하면 내가 할께” 그랬어요. 잘하는 사람이라면 다 하고 싶어요. 만약, 노래를 잘하는 가수라면 같은 부분을 불러야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는데 힙합은 역할구분이 되니까 좋죠. 무엇보다 제가 힙합을 정말 좋아하고 래퍼들과 작업하면, 제가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또 제가 받을 수 있는 것이 있으니 더 좋은 거고요.
리: 김조한 씨가 힙합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솔리드로 나왔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하. 래퍼들과 콜라보가 주는 가장 큰 감흥이 궁금한데요?
김: 일단 래퍼가 작업할 때는 제가 할 게 없어요. 그냥 거기서 맥주를 마셔도 되요. (작업 자체를) 즐기는 거예요. 즐기면서 배우기도 하고. 저하고는 다른 분야니까요. 전 래퍼가 아니기 때문에 랩에 대해서는 꼼꼼하지 못하거든요.
리: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앨범의 타이틀에 등장한 ‘소울 패밀리’의 좀 더 구체적인 개념을 듣고 싶습니다.
김: 원래 ‘소울 패밀리’는 5년 전 만들어진 팬클럽 이름이에요.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같이 즐기는 식구라고 생각해요. 소울 패밀리는 오픈되어 있어요. 다른 사람도 올 수 있죠. 그리고 전 의리를 되게 중요하게 생각해요. 음악에서 의리요. 예를 들면, 영화 킬 빌에서 주인공이 더 강해져도 한 번 스승은 영원히 스승으로 여기잖아요? 내가 영향 받은 사람이라면, 내가 더 잘하게 되어도 그는 영원한 제 스승인 거예요. 제임스 브라운이 있었기에 마이클 잭슨이 있듯이 말이에요. 그런데 가끔 보면, 이걸 인정 안하는 사람도 있어요. 자기가 다 만든 거라고 하면서요. 옛날 뮤지션이 없었으면, 지금의 뮤지션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대신 그 사람들을 만났을 때 짝퉁이 아닌 제 것을 드릴 수 있어야죠. 저 스티비 원더 만났을 때 그랬어요. “형님 제 음악 한 번 들어 보세요”라고요. 제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제 음악을 정말 들려주고 싶다고….
리: 아, 스티비 원더 옹을 만났을 때 느낌이 어땠어요?
김: 컴퓨터에 대해 관심이 되게 많은 사람이 빌 게이츠를 만났을 때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게다가 단순히 인기가 있어서 만난 게 아니고, 소울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만날 수 있었다는 게 정말 좋았죠.
리: 원래 언론에 보도되기로는 하모니카 반주로 참여할 예정이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요, 왜 무산이 된 건가요?
김: 아, 거기까진 아니고요. 제가 부탁을 하려고 했었죠. 그런데 스케줄이 서로 좀 안 맞았어요. 그런데 참 말이 안 됐던 게 김조한이 스티비 원더 회사에 “다음 주까지 하모니카 연주 해 주실래요?”라고 했다는 데 이건 정말 뭐라 해야 할지…. (웃음) 이렇게는 말 못하죠. 만약 아무리 오래 알았어도 “혹시 제 음반에 연주 좀 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는 정도겠죠. 그래서 솔직하게 제가 친하다고 말은 못해요. 그냥 매니지먼트를 통해서 만났는데 정말 좋은 에너지를 받고 왔어요. 이런 소식이 와전이 됐네요. 기자에게는 만난 사진만 보여줬을 뿐이에요. 하지만, 정말로 스티비 원더와 친해졌으면 좋겠어요. (웃음)
리: 조한 씨 앨범은 들려드렸나요?
김: 아, 매니지먼트를 통해서 드리긴 했는데 들어봤을지는 모르겠어요.
리: 스티비 원더 외에도 영향을 받은 분들이 누군지 궁금한데요?
김: 음, 마빈 게이, 제임스 브라운, 커티스 메이필드, 레이 챨스, 샤카 칸, 빌리 할리데이 등등 위대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이 사람들이 한국에 온다면 제가 레드카펫을 가지고 찾아가고 싶어요. 그런데 요즘은 위대한 사람이 많이 없어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자기가 만든 것처럼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니깐 (요즘엔) 소울이 별로 없어요.
리: 혹시 해외 진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나요? 수록곡 중 “This Broken Heart of Mine”이 어느 정도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만든 곡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김: 나름대로 계획은 있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일단 다른 곡의 데모가 가긴 했어요. 회사 측에서 조심스럽게 진행하고는 있는데 문제는 미국에서 음악 활동을 하려면 요즘 미국 마켓에 맞혀서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어요. 저는 좀 다른 곳에 있고 미국에서 제가 그런 음악을 해봤자 안 뜰 것 같아요. 뷔욕(Bjork) 아시죠? 그 사람의 음악은 그냥 뷔욕 음악이잖아요. 저도 알앤비 음악을 하는 것 보다 김조한 음악을 하고 싶을 뿐이에요. 말씀하신 “This Broken Heart of Mine”은 80년대 프린스 식 음악 같기도 하면서, 소울 음악인데요, 그냥 한 번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김조한의 음악을.
리: 여하튼 많은 팬이 김조한 씨의 해외 시장 진출을 희망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할 거예요.
김: 네. 하지만, 처음부터는 잘 안 될 거예요. 그래도 미국에서 오래 살았고 차별을 많이 당해봤기 때문에 한번 도전해보고는 싶어요. 전 교포들이 얼마나 어렵게 지금까지 왔는지 알고 있거든요. 그 사람들한테 힘이 되고 싶어요. 윌리암 헝(William Hung)이라는 사람 아시죠? 그 사람 때문에 또 동양인들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졌었어요. 뭐, 자기는 잘 됐죠.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선 제대로 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어린 나이가 아니기 때문에 어덜트 컨템포러리 마켓을 생각하고 있어요.
리: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수록곡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볼게요. “바보 같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하고 넘어가고 싶어서요. 추억의 가요를 인용했다는 점이 참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윤상 씨의 곡을…. “이별의 그늘”은 저도 학창시절에 정말 좋아했던 곡이었거든요. 하하.
김: 전 요즘엔 음악 자체가 쉐어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좋은 음악이 있으면, 나눌 수 있는 행복이 있어야 해요. 요즘 애들은 옛날 것을 모를 수도 있으니 소개 할 수 있어야 하고요. 저는 소개를 하면서 얘길 해요. 이건 제가 정말 좋아했던 노래라고. 윤상 형님에게 들려줬는데 “와우!”하시더라고요. (웃음) 물론, 원곡을 만든 분이니까 좋았을 수도 있고, 반대로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겠지만요. 일단, 리메이크나 샘플링이 옛날 냄새가 나잖아요. 그 옛날 느낌을 살리면서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대신 좋게 안 만들면 의미가 없어요. 특히, 윤상 형은 제가 정말 좋아하고, 음악도 정말 좋기 때문에 이 노래도 멋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만들었는데 반응이 “에이, 옛날께 더 좋아.”라고 한다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원곡도 좋고 이것도 좋아.” 이래야죠. (웃음)
리: 그 곡 덕분에 옛 추억에 잠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웃음) 앞서 김조한 음악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알앤비 음악 말고도 시도할 계획이 있는 건가요?
김: 음, 저는 솔로 앨범 외에도 프로젝트를 많이 하고 싶어요. 요즘 생각하는 게 하나 있는데, 일렉트로니카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어요. 소울 하우스 프로젝트. 공연을 위주로 해서 DJ하고 저하고 라이브 악기를 들고 클럽 한 번씩 싹 돌고. 전 분명 흑인음악을 사랑하지만, 그냥 음악을 좋아하는 거니까 그런 걸 다 보여 줄 수 있다면 시도해보고 싶거든요. 그렇다고 갑자기 김조한 정규 음반이 전부 댄스 음악이 된다는 게 아니고요, 하나의 테마를 가진 프로젝트 음반을 해보고 싶다는 말씀이에요. 그리고 힙합 프로젝트도 하고 싶어요. 벌써 머릿속으로는 서베이 해놨어요. 얘기도 해놨고요. 계획만 짜면 되요. 무언가 새로운 걸 하고 싶어요. 어쿠스틱 프로젝트도 하나 하고 싶고….
리: 어쿠스틱 프로젝트라고 하니 생각나는데요, 예전에 방송에서 윤도현 씨랑 함께 즉석에서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김: 아, 네. 그냥 그렇게 노래 부르고 연주하는 게 좋아요. 제가 요즘 많이 바뀌었어요. 그냥 잘 못해도 하고 싶어요. 그래서 매일 방송 스케줄이 있어서 갈 때 기타를 들고 나가요. 그리고는 매니저가 “형님 어떤 곡 하실 거예요?”라고 물어보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러죠. 어떤 곡을 부를지 말을 안 해줘요. (웃음) 그때그때 느낌이 오는 곡들을 그냥 불러요. 그게 음악이 아닌가 싶어요.
리: 음. 멋지네요. 매니저 분은 난감하겠지만요. (웃음) 참, 솔리드(Solid)의 재결합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들도 많아요. 이번에 솔타운 프로젝트에서 김조한 씨만 빠져서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재결합 계획은 없는 건가요?
김: 아, 아직 구체적인 말씀을 드릴 순 없지만, 꼭 돌아올 거예요. 솔리드는 저와 이준, 정재윤에게 정말 소중해요. 솔타운 때도 저에게 전화가 와서 도와달라고 했지만, 거절했던 이유가 우리 셋만의 솔리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어요. 이준, 정재윤과는 여전히 잘 지내는 형제와도 같은 사이이고 우리 모두 다시 뭉칠 생각이 있기 때문에 조만간 그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리: 그날이 언제가 되던 진심으로 기대하겠습니다. 김조한 씨는 국내에서 R&B/Soul 싱어로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뮤지션이에요. 자부심도 있을 것이고 그만큼 부담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떤가요?
김: 음… 일단 제가 잘 해야 되는데, 얼마나 세련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김조한은 어린 애가 아니니까요. 그래도 요즘 유행하는 음악은 거의 다 이해하고 좋아해요. 그렇다보니 저도 많이 바뀌어요. 창법도 많이 바뀌었고요. 예전엔 많이 라이트 했다면, 지금은 하드하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저는 무엇보다 제 음악은 그냥 제 음악으로 들었으면 좋겠어요. 이게 부담스러운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면, 그냥 음악은 0으로 들었으면 좋겠어요. 이미 김조한은 R&B 음악을 많이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일정한 기준점을 두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전 무조건 한 장르만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리: 아무래도 많은 분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분명 있긴 있어요. 그만큼 김조한 씨가 R&B 음악을 잘 구사했다는 말이 되는 거고요.
김: 쇼케이스를 했는데 말이 많더군요. Playa Hater가 정말 많은 것 같아요. 글씨만 보고 그냥 판단하고, 한 번 느껴 볼 생각은 안하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Bye"해주고 내 음악 꾸밈없이 보여주면서 그냥 가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틀을 안 잡아요. 틀이 생기면 새로운 걸 못 배우니까요. 공장이 되는 거예요. 제 음반은 매번 사운드나 스타일이 완전 다 달라요. 왜 그랬을까요? 틀이 다 달라서 그래요. 틀을 만들어 놓고 하면 되게 쉬워요. 그런데 그렇게 하기 싫잖아요. 음악은 그렇게 해야 돼요. 방송은 틀이잖아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대본에. 거기서 그나마 애드립 하나 틀어줘요. 그것도 집에서 연습을 해놔요. 개인기 같은 거. 미안하지만, 전 그런 거 못해요. 애드립은 애드립이지, 연습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해요. 저도 분위기가 좋으면 그런 거 자신 있어요. 그냥 잘 맞는 때가 있어요. 그 땐 저도 감당을 못해요. (웃음) 하지만, 집에선 안 되고 공연장에서만 가능해요. 에너지를 받기 때문에요.
리: 마지막으로 팬과 흑인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김: 옛날에는 어떻게 곡을 만들까 생각을 했다면, 지금은 어떤 포인트 하나만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옛날이 더 인기가 많았지만, 이번 음반이 저한테는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앨범이에요. 어머님 문제도 있고 인생의 한이 담겨있거든요. 옛날에 사랑하고 이별했을 때 아팠던 그 느낌, 지금은 생각이 안 나지만, 잠자다가 갑자기 생각 날 때, 그리고 죽고 싶었을 때, 꿈에서 그걸 느꼈을 때, 너무 슬퍼요. 바로 깨요. 그것들이 나의 힘이 됐어요. 그래서 이 음반이 저와 비슷한 심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번 앨범은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챕터예요. 그만큼 저에게 정말 소중한 앨범이죠. 한번 밖에 못 봤는데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게 5집이에요.
기사작성 / 강일권, 황순욱 사진: 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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