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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인터뷰] 서사무엘 – 현재진화형, 워너비에서 독자적인 아티스트로
    rhythmer | 2016-06-22 | 24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인터뷰, : 이진석, 황두하

    사진: 스톤쉽, 리드머

     


    이전까지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서사무엘은 작년에 첫 번째 정규 앨범 [Frameworks]로 커리어를 반전시켰다. 뛰어난 완성도를 통해 장르 팬과 평단의 주목을 끌었으며, ‘13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알앤비&소울 음반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후, 7개월만에 또다시 두 번째 정규 앨범 [EGO EXPAND(100%)]를 들고 돌아왔다. 앨범 단위의 결과물을 통해 커리어를 이어가는 행보는 그 자체로도 인상적이지만, 이는 음악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전보다 단단해진 상태로, 확장된 자아를 지니고 돌아온 그와 만났다.

     

    : 본명이 원래 서동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예명의 뜻이 궁금해요.

     

    : 원래 서동현이 맞는데, 서사무엘로 개명했어요.

     

    : , 그럼 지금은 본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셈이네요

     

    : . (웃음) 서동현의 뜻을 풀어보면 동쪽의 솥뚜껑인데, 사실 좋은 뜻이 아니거든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이랑 너무 맞지 않은 이름인 것 같아서, 모가 되든 도가 되든 개명을 하고 싶었어요. 성경을 보면, 사무엘 자체가 직접적으로 어떤 정치나 그런 것에 관여하지 않으면서 뒤에서 모든 걸 컨트롤 하는 의미로 나오거든요. 이런 점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다 진리가 되고, 모든 사람이 경건하게 받아들이니까요. 그 포지션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경건하게 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내 말을 진중하게 들어줬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가 있죠.

     

    : 처음에 조금 놀랐습니다. 오전에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한 아티스트는 최초라서요. 대부분 오후 늦은 시간대에 활동하는 편이던데. (웃음)

     

    : 정말이요? 뿌듯하네요. (웃음) 아침이 너무 상쾌하고 좋아요. 저는 늦게 일어나고, 밤 늦게까지 깨어 있는 생활보단 조금 정상적인 사이클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아침에 산책하는 거 좋아하고요. 술을 안 마시는 게 큰 것 같아요. 그런데 이틀 전에 제가 막걸리에 전을 처음 먹어봤어요. 괜찮더라고요. (웃음)

     

    : 원래 빅딜 레코즈(Bigdeal Records)에서 랩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잖아요? 목소리 톤이 마치 다른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달라졌습니다.

     

    : 이제는 기름을 칠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제 목소리를 쓰는 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지금이 초석 같은 느낌이에요. 방향성을 제대로 잡은 거죠. 보통 랩퍼들이 톤을 잡는데 몇 년씩 걸린다고 하잖아요? 저도 제 스타일을 잡는데 몇 년이 걸린 거에요.

     

    : 보컬로 중심을 옮기게 된 계기가 있나요?

     

    : 계기는 따로 없어요. 자연스럽게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된 거죠. 제가 원래 딕션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면 잘 들릴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여러 시도를 해봤어요. 빠르지 않게, 천천히 해보기도 하다가 이번에는 멜로디를 얹어 보자. 이런 식으로 바뀌게 된 거죠. 사실 제가 하는 게 애매해요. 랩도 아니고, 보컬도 아니고. (웃음)

     

    : 그게 오히려 매력이 된 것 같습니다. (웃음) 앨범 얘길 해보죠. 이번 앨범도 그렇고, 전작에서도 전곡의 프로덕션을 직접 맡았잖아요. 평소 작업 방식이 어떤 편이에요?

     

    : 저는 작업할 때 일기 쓰듯이 가사를 먼저 써요. 이후에 이 부분은 후렴으로 써야겠다 하는 식으로 구분을 하죠. 그리고 마음대로 불러 보다가, 거기에 맞는 비트를 만들어요.

     

    : 비트를 나중에 만드는군요,

     

    : 그렇죠. 나체의 인간에게 어울리는 옷을 맞춰주는 느낌이랄까요.

     

    : 작업 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인 것 같아요.

     

    : 사실 지금은 많이 늦췄어요. 원래는 하루 평균 2~3곡씩 완곡을 했는데, 너무 소모적이더라고요. 실력이 늘지는 않고. 그러다 보니, 좀 더 완성도 있는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시간을 잡고, 세션도 최대한 다양하게 해보고요. 이번 앨범 같은 경우에는 편곡이 각각 70~80차까지 나왔던 곡들이에요. 그중 베스트 옵션이라 생각하는 곡들만 골라서 앨범에 넣게 된 거죠.

     

    : 곡들을 들어 보면, 샘플 사용보단 시퀀싱으로 작업하는 편인 듯해요.

     

    : 샘플링을 하고 싶었는데, 너무 잘 하는 분들이 많아요. (웃음) 제가 그 분들을 이기겠다는 생각보단, 언젠가 그 분들과 같이 하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못하는 부분에 대해선 욕심을 내지 않으려고요. 옛날엔 다 해야 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내려 놨어요.

     

    : 앨범 커버가 독특합니다. 진화를 거친 끝에, 마지막은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으로 마무리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앨범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듯한데, 어떻게 구상하게 된 건가요?

     

    : 사실 저는 그냥 이거에 대한 뭉뚱그린 그림만 있었어요. 그런데 일러스트레이터 중에 샘바이펜(Sambypen)이라는 분이 있어요. 저는 이런 의미를 내포했으면 좋겠다 싶은 부분만 전달했고, 진화론에 관한 건 그 분의 아이디어에요.

     

    : 커버도 그렇고, 머리 색도 마찬가지고, 파란색이 매우 부각됐어요. “그릴 수 있어에도 색에 관련된 표현이 많고요. 의도한 바가 있어요?

     

    : 의도는 아니고,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파란색의 느낌을 고수해야겠다고 느꼈어요. 제가 “Kafka”를 작업할 때부터 자아성찰을 시작했어요. 저한텐 여러 가지가 너무 폭풍처럼 지나가는 시기였거든요.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너무 힘들어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사람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안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좋은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건데, 뒤죽박죽이긴 해도 돌아보면 좋은 것만 남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참 파란만장한 시절이었지 하면서요. 그러면서 파란 색으로 하면 기분 전환이 될 것 같았어요. 어떻게 보면 좀 이상한 극복 방식이긴 하지만, 저한텐 파란색이 기분 전환의 도구였어요. 딱히 특별한 의도를 갖고 있거나 그런 건 아니었고, 그냥 기분 전환이었던 거죠.

     

    : “그릴 수 있어에서 아우디 이야기나 다른 부분에서도 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들어간 것 같아요.

     

    : 그건 그냥 개인적인 물욕에 대해 이야기한 거에요. (전원 웃음) 그런 것 같아요. 저는 만약 지금 아우디를 살 수 있어도, 안 살 것 같아요. 항상 뭔가 엄청나게 결핍된 지점이 있어야 의욕이 나잖아요. 만약 정말 손에 쥐게 되면 얼마나 허무할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저한테 버킷 리스트 비슷한 게 있어요. 원하는 걸 적어놓고, 하나씩 살 때마다 체크하면서 지워가는데, 그럴 때마다 되게 허무하더라고요. 이게 사실 사치품도 아니고, 정말 소소한 것들이에요. 예를 들면 주문 제작해서 만드는 칼이나 그런 것들이요. 그러면서 '원하는 것들은 머리에서 그릴 때 제일 예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빨간색 아우디는 언젠가 살 거예요. (전원 웃음)

    : 앨범 제목이 [Ego Expand(100%)]이고, 과거의 자신을 죽이고, 새로운 자아를 찾아 확장하는 여정을 찾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잖아요. 이런 것들이 전작의 내용과 엮여서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실제로 이 이후에 생활이나 작업 환경 면에서 바뀐 게 있나요?

     

    : 하나도 없어요. (웃음) 전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팔자는 변하지 않는구나 싶었죠. (전원웃음) 변한 게 있다면, 이제는 좀 더 즐기기 위해 이걸 하게 된 것 같아요. 다른 거 안 보고. 정말 편해졌어요. ‘굳이 부담 가질 필요가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가 작정하고 열심히 만들어서 괜찮은 걸 뽑을 거야 라고 했을 때보다, 1집처럼 그냥 하고 싶은 거 생각 안 하고 했을 때가 더 좋은 앨범을 얻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마음을 좀 편하게 가져도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죠.



     


    : 얘길 나누다 보니 꼭 음악을 시작해야겠다 마음먹은 계기가 궁금해지네요.

     

    : 너무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어릴 적 일본에 살고 있을 때, 다섯 살 땐가? 전자 피아노를 선물 받았었어요. 그런데 피아노 치는 법은 모르고, 거기에 녹음된 것들 있잖아요? 그걸 틀어놓고 그냥 치는 시늉만 했었죠. 그러다 보니 정말로 치고 싶어지고, 정말 치기 시작한 거죠. 이후로, 중학교 때 아버지를 따라서 캐나다에 갔다가 고등학생 때 한국에 오니까 교과과정을 따라 갈 수가 없는 거에요. 일단 대학을 가긴 해야겠는데 대학에 갈 도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자퇴를 했죠. (웃음)


    : (웃음) 지금은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으니, 그때의 선택이 잘 된 거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 그랬으면 좋겠어요. 저는 사실, 예나 지금이나 너무 변한 게 없어요. 달라진 거라곤 그때보다 마음이 좀 더 편해졌다는 정도밖에 없어서, 오히려 걱정이 돼요. 언제까지 이렇게 살지? 뭐 이런 느낌. (웃음) 너무 속이 편하고 천성이 게을러서요. 그래도 음악을 할 땐 게으르지 않은데, 나머지 면에선 그렇지 않으니까 이렇게 살다간 평생 변하는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 조금 옛날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사실, 1집 이전에는 주목도가 높지 않았잖아요? 당시의 이야기들이 듣고 싶어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 아무 생각 없었어요. (웃음) 그때야말로 생각 없음의 절정이었던 것 같아요. 요즘, 저한테 데모를 보내주는 분들이 되게 많아요. 그분들 중에, 자기 이야기를 너무 순수하게 써내는 10대 초·중반의 친구가 있어요. 오늘 학교는 어땠고, 이런 이야기들. 이런 것들이 너무 좋았던 게, 제가 들어본 일본 믹스테잎 중에 실제 초등학생이 녹음한 게 있었거든요. 몇 교시에 뭘 했는데 무슨 선생이 이런 말을 했다. 이런 랩을 되게 멋있게 하는데, 정말 들을만한 거예요. 만약 제가 그때 그 나이였으면 못했을 거예요. 그냥 남들을 쫓아가기만 바빴거든요. 당시의 반응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고요. 사이먼 도미닉(Simon Dominic)형이 한창 떴을 때, '쌈디 워너비'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실제로 카피캣이었고요. 지금 들어보면 너무 카피캣이었던 것 같아요. 그 스타일이 제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그게 좋아서 따라 해보고 싶다는 생각과 제 스타일을 갖고 싶다는 생각 사이에서 갈등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제 것이 뭔지도 몰랐고요. 어떤 스타일이냐가 문제가 아니고, 여러 음악이나 주제, 플로우를 접하고 너무 쉽게 물들어서 많이 따라 하는 워너비들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그저 운 좋게 빅딜이란 타이틀이 있었을 뿐이죠.

     

    : 당시 빅딜 오디션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가요?

     

    : 그냥 해보고 싶어서요. (웃음) 맨날 혼자서만 랩하고, 같이 하는 사람이 아예 없었으니까요. 사실, 힙합플레이야(Hiphopplaya)라는 사이트도 모르고 있다가, 그 당시에 알게 됐어요. 한국힙합을 처음 접한 것도 유튜브(YouTube)를 통해서였고요. 라임이랑 플로우가 뭔지도 몰라서, 빅딜에 들어가서 처음 배웠어요. (웃음)

     

    : 사실 지금의 음악 스타일을 보면, 당시 빅딜의 이미지와 갭이 큰 것 같아요.

     

    : 그게 너무 좋아요. 저는 그 집단을 거쳤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좋아요. 왜냐하면, 제가 봐도 지금의 저와는 너무 노선이 다르거든요. 그때의 제 모습을 생각하면, 내가 이렇게 많이 변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이 정도로 가변적이라면, 또 시간이 지났을 때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싶어요. 그만큼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뜻이니까요.

     

    : 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 빅딜이 해체했잖아요. 심경이 어땠어요?

    : 엄청 아쉬웠죠. 그 전부터 저는 멘탈이 상당히 깨져있는 상태였어요. 빅딜에 들어간 이후로, 내가 생각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싶은 벽에 너무 많이 부딪쳤거든요. 이런 게 랩이구나 싶은 것부터 시작해서, 저는 나스(Nas)가 죽은 사람인 줄 알고 있었어요. (웃음)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알면 알수록 '나는 랩퍼의 그릇이 아닌가 보다.' 싶었죠. 형들한테도 얘기를 했었어요. 저 이젠 정말 못하겠다고요. 그렇게 한발 먼저 나와 학교를 열심히 다니면서 연주자의 꿈을 키우자 다짐했는데, 그게 안되더라고요.

     

    : 그 이후로 짧게 활동을 이어가다가, 2013년까지 공백이 있었잖아요. 그동안은 뭐했어요?

     

    : 군대 갔다 왔어요. (전원 웃음) 사실 실수로 갔다 온 거예요. 당시엔 별로 갈 생각이 없었는데, 신청해 놓고 바꾸기 귀찮기도 해서 그냥 가게 됐죠. 그런데, 너무 즐거웠어요. 의외로 굉장히 잘 맞더라고요. 군대에서 성격도 많이 바뀌었고요. 그 전엔 거의 인간과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삐뚤어져 있었는데, 처음엔 되게 억지로 바꿨죠. , 바꿔 줬고요. (웃음) 처음엔 스스로 가식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지 알겠다고 느낀 게 올해에요. (웃음) 사실 어릴 때 깨우쳤어야 하는 부분인데, 저는 어릴 때 친구가 없었거든요. 지금도 좀 마찬가지에요. 그런 의사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사회성의 문제가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고쳐졌죠.

     

    : 그러면 전역 후에 처음 발매한 앨범이 [Welcome To My Zone]이 되는 거군요.

     

    : . 제가 혼자서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시도해 본 앨범이에요. 혼자 다 해봤다는 게 저에겐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핑계 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나는 이래서 못해, 저래서 못해. 그런데 사실, 머리를 쓰지 않고 몸만 굴리면 못할 게 없잖아요? 어떻게 해서든지. (웃음)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을 다 때려 박고, 뮤직비디오도 직접 이걸 어떻게 하는 거지? 하면서, 하나씩 눌러보면서 완성한 거거든요. 찍는 것만 친구가 도와줬고요. 좋은 작품을 만들자가 아니라, 혼자 얼마나 할 수 있나 보자 싶어서 만든 앨범이에요.

     

    : 그런 경로를 거쳐 만든 최근 앨범에 대한 얘기로 돌아오겠습니다. 1집에서 “G  O  Y  O”, 이번 앨범의 “Y”처럼, 주변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하는 가사가 많은 것 같아요. '우린 모두 똑같이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계속 던지는 것 같고요.

     

    : 요즘 주변을 보면, 그냥 서로 우열을 가리기 바쁜 느낌이잖아요? 거기에서 오는 환멸감이 있었어요. 누가 잘났냐, 우리가 짱이네 하는데, 사실 까보면 환경만 조금 다른 것뿐, 다 똑같이 열심히 살고 있는데. 그런 말을 함으로써 누군가를 바보로 만드는 게 싫더라고요. 전 다들 똑같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주눅드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저도 그 사람들 중 하나였고요. 앞으로도 그런 얘기는 많이 할 것 같아요. 주눅 들 필요가 없거든요. '난 너희랑 다르지.' 뭐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상, 계속 할 거에요.

     

    : “Sandwich”에서도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다는 식의 가사가 인상적이었어요. 정인 씨의 목소리와도 굉장히 잘 어울렸고요. 어떻게 작업하게 된 건가요?

     

    : 사전을 뒤지다가 '샌드위치 증후군'이라는 정신병에 대해 알게 됐어요. 그게 저랑 너무 맞아떨어지는 거예요. 당시엔 모든 게 불편했고, 한동안 폐쇄적으로 지냈던 적이 있어요. 그렇다면, 이걸 매력 있는 방법으로 깨뜨려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지금 느끼는 바에 대해 가사를 썼어요. 녹음을 다 하고 나서, 정인 누나한테 회사를 통해서 보내게 됐죠. 그런데 정말 해줘서 너무 감사했어요. 목소리가 잘 어울리는 건, 제 목소리가 개성이 없어서 그래요. (웃음) 백지 같은 목소리니까, 그 위에 색깔을 칠하게 된 느낌이죠.

     

    : 이건 좀 사소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지난 앨범에서 “G  O  Y  O “나 이번 앨범의 “B  L  U  E”, “S W I R L” 등등, 여백을 준 제목 표기가 눈에 띄어요. 의미가 있는 거예요?

     

    : 그거 필요해요. “G  O  Y  O”는 무조건 스페이스를 두 번씩 띄어야 하고요, (웃음) “S W I R L”은 하나씩만 띄우면 돼요. “B  L  U  E”는 두 번씩 눌러야 돼요. 이게 되게 중요해요. 4글자짜리 단어들은 붙여놓으면 읽기가 불편하더라고요. 예를 들면, A부터 Z까지를 한번에 붙여 놓으면 읽기 힘들잖아요? 그런데 이걸 조금씩 띄어놓으면 점점 읽기 쉬워져요. 저는 이걸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순간이 두 칸씩 띄었을 때라고 생각해요. “S W I R L”의 경우에는 글자 수가 4개를 넘어가기 때문에 하나씩 띄었을 때가 가장 안정적이고요. 네 글자일 경우에는 두 번씩 띄우는 게 자간이 제일 잘 맞아떨어져요. 미관상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DO:OM”도 그렇고요.

     

    : 사소한 게 아니라 매우 중요한 질문이었네요. (웃음) “DO:OM”, 마치 시간을 표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 두 시 오분. (: 정말로요?) 아뇨. (전원 웃음)



     


    : 이번 작품과 전작 사이의 차이 중 가장 먼저 눈에 띈 게 여러 게스트를 초빙한 부분이었어요.

     

    : 한을 풀어보고 싶었어요. 어떤 말이냐 하면, 전 항상 합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합작을 하는 순간이 문제가 아니라, 하고 나서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하지 하는 두려움 때문에 못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이런 걸 생각하지 않고 평소 대화했을 때 어떤 교집합을 느끼는 사람들을 데려왔어요. 정인 누나는 제외하고요. (웃음)

     

    : 말씀한 트랙 “DO:OM”의 경우, 기리보이의 “LO:OP”과 연결되는 구성이죠?

     

    : 작업하기 전에 기리보이와 만났을 때, 이런 얘기를 했어요. 요즘 작업에 대해서. 원래 “DO:OM”의 제목은 조현이었어요. 조현증이라는 병명에서 따와서요. 다른 인격체를 만들어서 나와 대화하는 내용의 곡을 만들고 있다 얘기했죠. 때마침 기리보이도 비슷한 곡을 구상하고 있었고요. 그러면 내가 네 곡에 피처링을 하고, 내 곡도 리믹스처럼 만들어서 수록하면 좋겠다고 했죠. 그 두 트랙은 어떤 걸 먼저 들어도 깔끔하게 이어지는 곡이에요.

     

    : 가운데에 들어간 콜론(:)도 미관상의 의미인가요?

     

    : , 같은 맥락이에요. “DOOM”을 발음할 때의 어감 자체가 너무 두움(?) 한 거에요. 이 어감이 주는 뉘앙스를 줄이는 방법을 찾다가 생각하게 됐어요. 이 느낌을 중화시키고 싶었어요.

     

    : 넉살 씨와 함께한 마지막 곡 “Ego Expand”에선 서로의 성공을 자축하는 느낌이 인상적이었어요.

     

    : 이 곡은 넉살 형과 함께 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어요. 그 형은 항상 제 멘탈을 케어해주는 사람이에요. 제가 감정 기복이 굉장히 심하거든요. 몇 시간 간격으로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우울했다가, 기분이 좋아졌다가 할 정도로요. 그럴 때마다 그 형이 '너 좀 문제가 있다.' 하면서 끊임없이 케어해주고, 맨날 전화해서 괜찮은지 물어봐 줘요. 그래서 제 자아가 확장되고 인간적으로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 때 이 형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더라고요. 사실 딱히 자축은 아니에요. 넉살 형한테도 그런 의도로 가사를 써 달라고 한 건 아니고요. 제가 제시한 방향은전 이번 앨범을 작업할 때 굉장히 화가 나 있었어요. 지금까지 너무 쫄려서 있던 게 너무 억울한 거예요. 그래서 넉살 형한테도 그런 곡을 써 달라고 부탁했어요. 형이나 나나 비슷하지 않았냐고. 그런 거에 대해서 화를 내달라고 그랬지, 축하해 달라고 한 적은 없거든요. (전원 웃음) 그런데 들어보니까 좋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이대로 하자. 그래도, 너무 착하게 썼어요. (웃음)

     

    : [Frameworks] 이후로, 7개월이라는 굉장히 짧은 주기로 2집을 바로 발표했어요. 텍사스 여행 중 얻은 영감을 정리한 거라고 들었는데,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줄 수 있나요?

     

    : 원래 제가 7개월은 아니고, 여섯 달 동안 미니 앨범을 준비했었어요. 그러던 중 3월에 텍사스에 갔는데 거기서 멘탈이 깨졌죠. 거기에서 버스킹 하는 분들이나 노숙자 분들한테 굉장한 충격을 받고 왔거든요. 실제로 거기서 살 때는 몰랐는데, 음악 하는 사람인데 노숙자라는 두 가지가 맞닥뜨리면서 나오는 시너지가 엄청나더라고요. 난 음악 좋아. 하지만 바라는 건 없어. 이런 마인드요. 이게 진정으로 음악을 대하는 자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늘 전제를 두고 음악을 하고 있었거든요. 이걸 통해서 어떤 결과를 얻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분명 없잖아 있으니까요. 이런 결과에 연연하느라 하고 싶은 걸 못했었구나 싶었어요. 그런 걸 다 갖다 버리고, 그냥 속 편하게 음악하고 싶다는 생각. 그래서, “그릴 수 있어.”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한 달 만에 완성한 곡들이에요.

     

    : 그럼그릴 수 있어만 미니 앨범에 수록될 예정이었던 거예요?

     

    : 그렇죠. 그 곡 같은 경우도 원래는 자메즈(Ja Mezz)형 피처링도 없었고, 지금과는 많이 달랐어요. 원래는 훨씬 미니멀했고요. 지금은 바꾸고 난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화를 많이 냈어요.

     

    : “Ready or Not”의 경우, 노숙자에 관련한 얘기를 직접적으로 담고 있는 거죠?

     

    : 실제로 그 곡은 원래 “6th라 해서, '6번가'라는 뜻의 제목이었어요. 근데 너무 직설적인 것 같아서, 구린 것 같아 바꿨죠. 그 분을 지나가자 마자, 바로 메모장을 켜서 쓴 가사에요. 모든 게 그런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반성을 하고, 그 자기반성을 통해서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계속 생각하는 거죠.

     

    : 뮤직비디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강승원 감독의 스파클 사인(Sparkle Sign)팀이 맡았는데, 어떻게 함께하게 된 건가요?

     

    : 똘배형이 연결해줬어요. 너무 감사한 게, 저 때문에 안 하던 것들을 많이 해줬어요. 감독님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제 뮤직비디오를 보면 아실 거예요. 저는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서 이런 걸 해줬다 하고 딱 짚을 순 없는데, 그냥 봤을 때도 되게 새로운 것들을 많이 해줬어요. 비디오아트 같은 경우도 며칠 밤을 새우면서 일일이 다 작업해 준 거고요. 너무 감사하고, 정말 멋진 뮤직비디오가 나왔어요.

     

    : 앨범의 사운드적인 면에서 레퍼런스가 느껴지는 부분이 거의 없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

    : 진짜 레퍼런스가 없어요. 1집에서는 이런 식으로 소리가 나왔으면 좋겠다 하는 정도는 있었는데, 2집은 정말 아예 없어요. 일기장에 소리를 입혀놓은 느낌이라, 믹스할 때도 그냥 최대한 제 목소리랑 가사 잘 들리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별다른 기교 없이 그대로 갔으면 해서요. 최대한 미니멀하게 간 것 같아요. 평소에 항상 더 어려운 걸 해야지 라는 생각이 있었다면 이번엔 무조건 쉬운 쪽으로 해야지 라는 방향으로요..

     

    : 최근에 따로 영향 받은 인물이나 뮤지션은 있나요?

     

    : 너무 많은데. (웃음) 음악에서 받는다기보단, 그 사람들이 어떤 것을 바라봤을 때, 풀어내는 방식에서 영향받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서, 질 스캇(Jill Scott)은 정말 최고인 것 같아요. 전 그 사람의 전집을 갖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루 종일 틀어놔도 듣고 있을 수 있어요.

     

    : 서로 100% 맞아떨어지지 않는 이상 합작을 하지 않는 주의로 알고 있는데, 이런 기준을 만족하는 뮤지션은 누가 있을까요?

     

    : 요즘은 사실 연주자 위주로 찾고 있어요. 김오키형도 너무 좋고, 저랑 밴드 형식으로 함께할 수 있는 분들이 있으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사실 지금도 있지만, 그 분들이 너무 바빠서요. 지금 도와주는 분들이 드러머 형을 제외하고는 다 윈디 시티(Windy City)의 멤버들이에요. 그렇다 보니까, 아무래도 계속 부담 주는 것 같고 도움만 받기 미안하죠. 정말 같이 하고 싶지만, 한편으론 짐을 덜어주고 싶어서요. 정말 바라는 게 하나도 없이 도와주는 거거든요. 그런 점이 너무 감사한데, 동시에 너무 미안해요. 합당한 대가를 빨리 지불하고 싶어요. (웃음)

     

    : 현재 레이블 크래프트 앤 준(Craft and Jun)에 소속되어 있잖아요? 방금 말한 윈디시티를 비롯해서 굉장히 다양한 색깔의 뮤지션들이 포진해 있는데, 어떻게 합류하게 된 건가요?

     

    : 백준이 형이랑 원래 알고 지내다가 제의를 받았어요.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모든 걸 갖추고 있는 회사이지만, 회사 같지가 않거든요. 그냥 옆집에 놀러 간 것 같고, 너무 자유롭고요. 터치를 거의 안 해요. 음악을 할 때는 제가 가끔 산으로 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만 한 번씩 잡아주는 정도죠.

     

    : 매니지먼트 쪽은 스톤쉽(Stoneship)에서 맡고 있죠?

     

    : 맞아요. 그런데, 그 부분은 제가 알지 못하는 게 많더라고요. 그래서 나가서는 그냥 크래프트 앤 준의 서사무엘이라고 소개해요. (웃음)

     

    : 게릴라즈 크루에도 여전히 소속되어 있나요?

     

    : 아뇨.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은 아니라고 확실히 하고 다니는 게, 불화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지향성이 다른 사람들끼리 친분은 유지할 수 있지만, 억지로 뭔가를 하려 하면 비끗대는 게 생기더라고요. 가급적이면 앞으로도 어떤 크루에 소속될 일은 없을 것 같아요. 혼자 있는 게 편해요.

     

    : 처음에는 뉴 챔프(New Champ) 씨의 제안으로 함께하게 된 거죠?

     

    : 그렇죠.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처음 얘기를 했었어요. 넉살이라는 애가 있다 하면서. (전원웃음) 우리는 너무 다르기 때문에 모였을 때 굉장한 시너지를 발휘할 거야! 라고 했는데, 너무 다른 건 맞지만, 시너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사실 챔프형이 저희를 먹여 살리듯이 했어요. 본인 행사 들어오면 우리한테 다 뿌리고, 돈 들어오면 우리 다 나눠주고요. 하지만 결과적으론, 지향점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 거기에서 넉살 씨도 처음 만나게 된 거군요.

     

    : 당시엔 넉살 형도 많이 어렸어요. (웃음) 스물 다섯? 여섯? 그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전역하기 전, 휴가를 나왔을 때였거든요.

     

    : 최근엔 그 넉살 씨가 진행하는 힙플라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느낌이 어땠어요?

    : 감회가 엄청 새로웠죠. 힙합플레이야라 하면 국내 힙합퍼들에 대한 정보의 바다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전부터 활동하던 분들을 거쳐서 이 로고를 뒤에 두고 라디오를 찍는다고 하니까 너무 새롭고, 부담이 됐어요. 근데 녹화를 들어가기 전에, 누가 뇌를 끄고 하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넉살 형이랑 던밀스(Don Mills) 형이 잘 해줘서 무사히 마무리됐죠.



     


    : (웃음) 작년 힙합플레이야 인터뷰에서도 남다른 기쁨이 느껴졌어요.

     

    : 꿈 같았어요. 신기했죠. 힙합 웹진들을 보면 사이트 별로 아우라가 다르잖아요? 이런 말씀 드려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웃음) 어떤 거냐 하면, 리드머는 백과사전이에요. 힙합엘이(HiphopLE)는 전문서적 같은 느낌이고요. 힙합플레이야는 잡지 같은 느낌? 각 사이트마다 특성이 있으니까, 그게 겹치지 않아서 매력적인 것 같아요. 들어갈 때마다 볼 수 있는 게 다르니까요. 어떻게 보면, 어린 나이에 볼 수 있는 것 중 가장 접근성이 좋은 건 힙합플레이야였어요. 사무실에 가보니까 좋더라고요. 부러웠어요. 이렇게 좋은 사무실이 있다니. (웃음)

     

    : 라디오를 보면서 든 생각인데, 넉살 씨처럼 예전부터 함께 했던 사람들과 다 함께 잘 되고 있는 건 기분 좋은 일일 것 같아요.

     

    : 너무 좋죠. 근데 이런 생각이 있어요. 더 잘됐으면 좋겠다.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를 쟁취하겠다는 욕심이 사라지는 편이라서, 큰 꿈은 없어요. 그냥 빵집 차리고 싶어요. (웃음) 넉살 형이랑은 반 농담으로 하던 소리인데, 저는 완전 진지해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요. 형이랑 같이 하게 되면 무조건 마흔이 넘어서 하게 될 것 같은데, 저 혼자 한다면 그것보다 일찍 할 거예요.

     

    : 음악 외에, 요리에도 굉장히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 맞아요. 지금으로서는 음악 다음이 빵이에요. 앞으로도 빵은 제 톱 랭킹에 있을 거예요. (웃음) 요리랑 빵. 요리할 때는 핸드폰도 꺼 놓거든요. 다만 빵은, 제 자격이 갖추어 졌을 때 하려고요. (리드머: 자격증 같은?) 자격증보다는, 빵을 대하는 자세요. 사실 제가 요리를 좋아해서 많이 하지만,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 보니 이 맛이 맞는 건지 잘 몰라요. 그런데 빵의 경우는 맛에 대한 제 가치관이 정립된 다음에 도전하고 싶어요. 그래서 마스터 셰프에도 한 번 나가보고 싶고요. 만약 100위 안에 들 수 있다면, 내 요리가 어느 정도 보편적인 맛의 기준에 부합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 테니까요.

     

    : 한국 힙합 씬은 평소 살피는 편이에요?

     

    : 사실 잘 몰라요. 옛날부터도 몰랐고요. 예전부터 누가 대세라더라 같은 소식은 형들을 통해서만 들었어요. , 장르를 가리는 편이 아니라 뭘 듣든 그냥 즐거워요. 사람들이 깊이가 있네 없네 하는 거보단 틀었을 때 듣기 편한 걸 좋아해요. 게시판 반응도 보지 않는 편인데, 보게 되면 멘탈이 깨질 것 같아서요. (웃음) 옛날에 빅딜 때 싸이월드 방명록에 '랩 때려 쳐라.', '죽어라.' 이런 반응들이 많이 있었거든요. (: 참 씁쓸하네요.) 심할 땐 하루 100개씩도 달렸어요. 다른 건 몰라도 '죽어라' 까지 가니깐 사람 멘탈에 금이 가더라고요.

     

    : 지금은 오히려 편하게 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지금은 할 수 있겠죠? 근데 저한테 네거티브한 영향을 굳이 찾아서 볼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 그럼 힙합 사이트는 종종 들어가는 편인지?

     

    : 하루 한 번씩 들어가요. 평소 습관처럼 들어가는 게 힙합엘이랑 리드머에요. 그리고 네이버 블로그도요. 보통 요리 레시피 보러 들어가죠. (웃음) 리드머의 취지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게, 유저의 자유도가 상당히 제한되는 사이트잖아요? 그게 너무 마음에 드는 것 같아요. 우리는 쓴다, 너희는 읽어라. 이런 느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자율성이 없다는 결핍에서 오는 완벽함이요. 저는 'GTA'도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저는 '디아블로2'를 좋아해요. 어제도 한 시간 동안 팔라딘 키우고. (전원웃음)

     

    : 아직 시간이 많이 남긴 했지만, 서울 소울 페스티벌(Seoul Soul Festival) 라인업인데 준비는 잘하고 있어요?

     

    : . 잘 할 수 있어요. (웃음) 근데 무엇보다 해외 라인업들의 공연이 보고 싶어요. 사실 제 공연은 안 궁금하고요. (전원웃음)

     

    : 라이브를 보면, (Rock)적인 편곡도 자주 하는 것 같더군요.

     

    : 더 하고 싶어요. 원래 꿈이 메탈 보컬이에요. (웃음)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예전에 변호사라는 꿈을 가지기 전엔 항상 메탈 보컬이 되고 싶었어요. 너무 멋있는 밴드가 많아요. 그리고 갭이 클수록 더 멋있는 것 같아요. 음악은 되게 평범한데, 라이브로 보면 다이나믹이 저렇게 살아있는 음악이었구나 하는 거 있잖아요? 사실 저는 장르를 잘 몰라요. 많은 분이 음반 리뷰를 남겨 줬는데, 신스 팝이다 뭐다 하는 글이 많잖아요? 그러면 '호평 감사합니다. 근데 신스 팝이 뭐에요?' 해요. (전원 웃음) 그런 거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하다 보니 그냥 듣고 싶은 소리를 내는 것 같아요. 사실 무시도 많이 당하죠. , 여기서 이렇게 치면 안 된다고요. 난 이렇게 치는 게 듣기 좋은데. (웃음)

     

    : 다음 앨범에 대한 계획이 궁금해요.

     

    : 구상은 다 해놨는데, 작업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그거에 대한 건 풀지 않고 있어요. 사장님한테도 안 풀었어요. (웃음) 완성되기 전까진 안 들려줄 거라고 얘기해놨고요. 1년 정도 보고 있는데, 작업이 너무 번거롭게 이뤄질 것 같아서 잘 모르겠어요.

     

    : 요즘은 싱글이나 단편적인 작업물로 이슈를 모으려는 움직임이 많은데, 정규 앨범으로 계속 승부를 보려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 저는 임팩트 있는 내용을 못 써요. 그 분들은 그런 장점이 있으니까 잘 활용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능력이 있었다면 했겠죠. 그런데 저는 소위 킬링 트랙이라 불리는 걸 쓸 수 있는 능력이 안 돼요. 그런 욕심을 애초에 버리고, 책을 쓰는 느낌으로 작업하는 편이에요. 싱글도 한 번씩 꽂히면 하죠. “Kafka”처럼 앨범으로 풀어내긴 애매한 테마가 생기기도 하거든요. 그럴 땐 재미 삼아 해요.

     

    : 평소 사회적인 이슈에는 관심을 두는 편인가요?

     

    : 관심을 갖고 싶은데, 어떻게 가져야 할지 모르겠어서 눈 닫고, 귀 닫고 사는 스타일이에요. 요즘 끔찍한 소식이 많은데, 그런 것들을 들으면 제가 정신을 놔요. (웃음) 너무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잖아요.

     

    : “DO:OM”이나 “Y”, “G  O  Y  O” 등의 곡을 통해 계속해서 응원의 말을 보내고 있는데요. 음악을 시작하려 하거나, 각자 꿈을 꾸고 있는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해요.

     

    : 해 줄 수 있는 그릇이 아닌 것 같아요. 전 아직 너무 부족하니까요. 그냥 재미있게, 행복하세요? (웃음) 저도 행복하고 싶어요.

     

    : 끝으로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 땡스 투 같은 건 앨범에 다 있고, 앨범 많이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도와준 분들에게 빨리 보답하고 싶거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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