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인터뷰] 저드(jerd) - 왜냐하면 나는 나를 모르고
- rhythmer | 2021-12-15 | 32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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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글: 김효진
두려움은 어디서부터 기인하는가. ‘알 수 없음’에서다.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는 선택들, 그 선택이 초래할 알 수 없는 결과들. 그렇게 알 수 없는 것들이 쌓인 세상. 그 두려움의 기원은 ‘나’, 자신이다. ‘나’의 선택, ‘내’가 초래할 결과, 그렇게 구축할 ‘나’의 세계. 모든 두려움 속에 숨 쉬는 ‘나’라는 존재는 도통 어떤 사람인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세상 속으로 나아가기 전, 두려움을 끌어안은 채 사유하고 생각을 잇는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저드(jerd)의 음악에는 이 같은 사유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TOO MANY EGOS]에 이어 새로 발표한 [A.M.P.]에서도 그는 두려움을 노래한다. 그러나 ‘나’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전보다 깊은 곳의 생각을 기어 올린다. 자칫 어둠 속에 파묻힌 것 같아 보이지만 그는 눈앞의 문턱을 건너 빛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확실히 사유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결국에는 삶을 계속하기 위한 행위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생각했다.
리드머(이하 ‘리’): 새 앨범 발매 축하해요. 제목이 약자군요?저드(이하 ‘저’): ‘All my persona’라는 제목을 줄인 거예요. 말 그대로 ‘나’라는 사람의 내면을 꺼내 보는 앨범이에요. 전체적으로는 24시간 동안 진행되는 이야기고, 구체적으로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 생각을 서서히 비워 나가는 과정입니다.
리: 어떤 생각을 비워내고 싶었어요?
저: 제가 주로 생각하는 게 거의 ‘나는 왜 이러지?’랑 ‘내가 어떤 음악을 어떻게 잘해야 할까?’ 등인데요, 이번에는 꿈에 대한 생각을 썼어요. 불확실한 꿈들이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 같은. “Knock Knock”에서 팔로알토(Paloalto) 오빠가 관련된 가사를 적나라하게 썼어요. ‘이 간절함은 어떤 걸까 / 인정욕구 명예 아님 경쟁심 (중략) 그 선택은 오답인가 정말’ 이런 식으로요. 그런 생각들을 최대한 비워내는 과정이에요.
리: 말씀한 팔로알토의 참여 비중이 높은 편이에요. 두 분의 앨범 구상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 올해 초에 팔로 오빠 작업실에서 가이드를 들려주고 같이 앨범 만들어 보자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 뒤로 오빠한테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그걸 토대로 전체적인 내용을 정한 다음 세부적인 스토리를 쌓아 올렸어요.
리: 개인적인 이야기를 잘 아는 분이라 작업 과정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저: 처음에 트랙은 어느 정도 있던 상태였어요. 거기에 가사를 붙이고 더 듣기 좋게 수정도 해보고, 프로덕션 면에서도 같이 최종 편곡이나 수정을 하는 식으로 진행했죠. 그런데 제가… 가사가 안 나와서 거의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는 작사에 집중한다고 쉬었던 거 같거든요. 그걸 다 기다려 줘서 감사했고… (웃음) 그래도 덕분에 그런 스토리가 나올 수 있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그 시간이 온전히 저 혼자서 가사를 구상하는 데에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거든요.
리: 그 구상하는 시간에는 무얼 했어요?
저: 그림을 그렸어요. 이런 내용을 써야겠다, 하면서 그 내용에 맞는 그림을 싹 그려놓고 거기서 비주얼적으로 생각을 했죠. 이 집은 뭔가 어두워야 할 거 같다, 이러면서요.
리: 그게 뮤직비디오에 표현이 되었던 거네요.
저: 제가 구상한 것과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건 “실크로드”예요. “실크로드”를 처음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을 때 떠올린 이미지가 ‘수없이 많은 가로수, 끝이 없는 길’이었거든요. 제가 떠올린 그림과 꼭 닮은 장소를 찾아서 뮤직비디오를 찍었어요.
리: 어쩐지 뮤직비디오에 그림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직접 다 그린 거예요?
저: “Phone Phobia” 부분에 나오는 그림들이나 “Squash” 부분에 나오는 그림들, ‘집’에 있는 그림들은 제가 다 그린 거예요.
리: 뮤직비디오에 앨범 전곡이 담겨서 마치 단편 영화 같았습니다. “생각을 비워내는 24시간의 과정”이라는 설명과 부합하는 영상이었어요. 앨범 전곡을 이어서 뮤직비디오를 만든 이유가 궁금해요.
저: 앨범에 쓴 가사 전부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 속에 담긴 내용이나 감정들을 잘 표현해서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뮤직비디오 감독님이랑 개인적으로 친해서 제가 만든 가이드가 있을 때마다 들려주곤 해요. 정규 앨범 발매가 결정된 뒤에도 가이드를 꾸준히 들려줬죠. “뮤직비디오 같이 만들어요!” 하고 말은 안 했지만, 가이드를 같이 들으면서 이 곡은 이렇게 영상을 찍으면 좋을 것 같고, 이 곡은 이런 식으로 만들면 좋겠다, 하며 서로 망상을 하다가 전곡을 다 찍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결론이 난 거예요. 감독님이 제 음악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신뢰도 있었고요.
리: 뮤직비디오에서 ‘Jerd’s world’ 그림을 보면, ‘Jerd’s Room’은 아무런 건축물이 없는 대신 복잡한 형태로 길이 나 있고 'City'는 화려한 건물이 즐비하지만 길은 단순해요. 그 길이 생각회로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맞아요. 생각회로예요. 방에서 복잡한 생각을 가득 끌어안고 밖을 두려워하다가 그래도 조금의 용기를 갖고 한 발짝 내디딘 뒤, 도시의 예쁜 것들을 보면서 생각을 단순하게 비워내는 거예요. 그러고는 다시 복잡한 길이 있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앨범에 담긴 이야기를 표현한 그림인 거예요.
리: 앨범과 뮤직비디오가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네요.
저: 네. 제 음악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만든 서사에 집중하고자 한 영상이기도 하고요. 원래는 뮤직비디오든 영상이든 그 속에 담긴 제 모습을 보는 걸 싫어해요. 그런데 이번엔 다 볼 수 있겠더라고요.
리: 이번에 머리도 빨간색으로 염색하고, SNS 프로필 사진도 빨간색, 뮤직비디오에도 붉은빛의 오브제가 굉장히 많이 등장합니다.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저: 캐릭터성이에요. 이번 앨범이 가진 이야기가 확고하다 보니까 제가 비주얼적으로 예쁘거나 멋있게 보일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뮤직비디오 착장도 편안하게 간 거거든요. 대신 머리를 빨간색으로 해서 눈에 띄는 캐릭터성을 부여하고 싶었어요.
리: 원래 빨간색을 좋아해요?
저: 안 좋아하는데… (웃음) 제가 생각했을 때 ‘이번 앨범은 빨간색이다!’ 싶어서 그렇게 결정했어요.
리: 앨범 이름을 ‘나의 모든 페르소나(All My Persona)’라고 했지만, 제가 감상하기에는 여러 개의 페르소나가 병렬적으로 배치된 게 아니라 겹겹이 쌓여 하나를 이루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 겹 중에서 지금을 가장 잘 나타내는 곡은 어떤 곡이에요?저: “실크로드”인 것 같아요. 두려움을 이기고 밖에 나왔다고 노래하지만 비트가 전환되면서 가사의 분위기가 바뀌어요. 두려워서 집에 가고 싶다고. 그런데 제가 ‘여기엔 나 같은 애들이 많아서 도망칠 수 없다’라고 썼거든요. 주변에 저처럼 두려움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해서요. 그래서 “실크로드” 위에서 집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용기 내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거예요. 그 모습이 저 같아요.
리: 어떤 대상이 두려워요?
저: 미래요. 미래가 가장 두려웠던 거 같아요.
리: 이번 앨범은 전체가 타이틀 곡인 점도 눈에 띄었어요.
저: 1번부터 끝까지 들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했어요. 그리고 전 이상하게 타이틀 곡을 왜 정해야 하는지 모르겠거든요. 타이틀 곡을 하나 정해서 발표하면 타이틀 곡만 듣고 끝나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말씀드렸다시피 이건 하나의 이야기니까요. 저를 처음 접한 분이 전곡이 타이틀인 걸 보고 1번 트랙을 들어본 뒤에 마음에 들면 2번 트랙도 듣고, 3번 트랙도 들어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도 담겨있습니다.
리: 프로덕션 면에서 기타 사운드를 굉장히 잘 배치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영향받은 음악이 있을까요?
저: 이번 앨범만 보고 꼽아보자면 어려울 것 같아요. 최대한 많은 장르를 넣어보려고 했거든요. 세부적인 요소들은 조금씩 통일감 있게 구성하려고 해서 그런 인상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오드 퓨처(Odd Future),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나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같은 힙합, 알앤비도 좋아하고, 아이즐리 브라더스(The Isley Brothers), 프린스(Prince)가 구사한 소울 뮤직들도 선호해요. 나띵 벗 띠브스(Nothing But Thieves)처럼 사이키델릭한 록 사운드도 듣고요. 제가 들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에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어요. 표현해보고 싶은 것들을 최대한 다 표현하려고 했어요.
리: 그럼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은 뭐예요?
저: 말씀드린 것처럼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듣는 편이라 뭘 많이 듣는다 꼽기가 조금 어려운데… 그래도 꼽아보자면 테임 임팔라(Tame Impala)처럼 신스 계열의 일렉트로닉 밴드도 자주 듣고, 브록 햄튼(Brockhampton)도 정말 많이 들어요. 사실 브록 햄튼을 진짜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폰케이스도 직접 만들어서 끼고 다녀요. (저드는 직접 만든 폰케이스를 보여주었다.)
리: 앨범 작업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 있다면요?
저: 가사요. 저는 앨범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이 없는데, 제 앨범을 듣는 사람은 그게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시간이 소중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앨범을 다 듣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가사 쓸 때도 어떻게 하면 듣는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을까 고민했던 거 같아요. 제 가사를 읽고 듣는 사람들이 무언가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리: 다른 음악을 들을 때도 가사를 중요하게 살펴보는 편이에요?
저: 네. 국내 음악 들을 때는 가사를 주로 보는 편이에요. 저는 음악이 하나의 에세이라고 봐요. 어릴 적 소울 컴퍼니(Soul Company)나 팔로 오빠의 가사를 듣고 읽으면서 위로 받고 인생을 배웠거든요. 제 음악을 들으시는 분들도 같은 경험, 같은 마음을 느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제가 그분들의 음악을 듣고 스스로를 정의해보는 시간을 가졌던 것처럼요.
리: 그래서 앨범을 제작할 때 기승전결을 중요시하는군요.
저: 전 앨범이 한 편의 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승전결을 따지는 거 같아요. 물론 개별 트랙을 강조하면서 채워지는 앨범도 있잖아요. 이번엔 기승전결을 중시하며 앨범을 만들었지만, 나중엔 후자 같은 앨범을 만들어 볼까 싶기도 해요.
리: 참여 진의 특색있는 퍼포먼스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서사무엘, 던말릭의 참여는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어요?
저: 저는 개인 곡에 피처링을 못 넣는 편이에요. 부탁하는 것도 일이잖아요. (웃음) 곡을 만들면서 여기에 누가 잘 어울릴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탁을 해도 그게 성사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니까요. 제가 그런 걸 두려워하거든요. “Phone Phobia”은 원래 래퍼가 참여해주면 좋지 않을까 했던 곡인데, 아무래도 통통 튀고 귀여운 트랙이다 보니 싱잉을 추가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더라고요. 그런데 서사무엘 님이 둘 다 잘하잖아요. 그래서 부탁을 했는데 흔쾌히 수락해줬어요. “Horizon”은 원래 팔로 오빠랑 같이 써보면 어떨까 싶었는데… 팔로 오빠가 이 트랙은 던말릭 님에게 더 어울릴 거 같다고 추천해줘서 성사됐고요.
리: 1번 트랙은 예전에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렸던 “Swimmmmm”을 샘플링한 곡입니다. 특별한 의도가 있었나요?저: 제 시점에서는 앨범 속 이야기가 인디펜던트에서 하이라이트로 영입되고서의 마음을 담은 거거든요. 가사에는 직접적으로 쓰지 않았지만. “12345” 가사 중에 ‘엉망이 되어버린 발걸음 / 새 옷을 입은 낯설음 / 말도 안 되는 상상들 하고선’이라는 부분이 있어요. 여기서 ‘엉망이 되어버린 발걸음’은 제가 혼자 활동했을 때를 뜻하고 ‘새 옷을 입은 낯설음’은 하이라이트의 서포트를 받는 지금을 뜻해요.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는 게 그때의 제가 상상한 미래 같은 거예요. 그 뒤에 바로 “Knock Knock”을 배치한 것도 “Swimmmmm”을 부르던 과거의 모습과 팔로 오빠의 지지를 받는 지금의 모습을 교차해 보여주고 싶어서였어요. 이런 걸 제가 직접적으로 표현하기엔 부끄러워서 그렇게 한 번 써봤습니다. 하이라이트 들어오기 전부터 제 음악을 좋아한 팬들은 이번 앨범을 저의 시점에서 들었을 거라고 믿어요.
리: 청자에게 가이드를 제시하기보다는 해석을 자유롭게 맡기는 편 같아요. 그래서 앨범 소개도 굉장히 간결하게 쓰고요.
저: 그거는… 앨범 소개를 길게 쓰는 게 부끄러워서 그런 거긴 해요. (웃음) 앨범을 다양하게 해석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제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든 건 맞지만 듣는 사람은 다르게 생각하고 해석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지점을 좋아해요. 그래서 제 앨범이 가진 주제는 명확하게 존재하는 게 맞지만, 그 안의 세부적인 내용은 사람마다 해석하기 나름이에요.
리: [TOO MANY EGOS]에 수록된 “Untitled”도 그런 곡 중 하나죠. 재미있게 들은 곡입니다. 타인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고요. 그 가사는 어떤 마음으로 썼어요?
저: 어릴 때는 어른이라는 존재가 대단해 보이잖아요? ‘어른이 되면 이런 모습이 되어 있겠지?’ 하는 바람 같은 것도 품고 있고요. 뭔가를 잘 하고 있겠다든지, 잘 살고 있겠다든지요. 그런데 지금의 저는 그때의 제가 생각했던 모습이 전혀 아니라서요. 미안한 마음이 있었어요.
리: 뜬금없지만 저는 ‘네 빨간 머플러’라는 구절에 꽂혔어요. 저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빨간 목도리를 하고 다녔거든요. 가사를 읽으면서 역시 빨간 목도리는 ‘국룰’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고…
저: 제가 딱 ‘국룰’이죠, 하려고 했어요. (웃음)
리: 저드(jerd)라는 활동명이 ‘nerd’와 본명인 정소연을 합친 이름이라고 들었습니다. ‘nerd’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요.
저: ‘nerd’가 뭔가에 빠진 사람을 뜻하잖아요. 한 가지에 깊이 빠져있는 게 멋있다고 생각해요. 정말 무언가에 몰두한 상태인 거잖아요.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하면서 지었어요. 일종의 다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 원래 이름이 ‘Y O N’이었죠?
저: 네. 그 이름이 개인적으로는 좀 귀여워 보여요. 그런 뉘앙스를 갖고 싶지는 않았어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이름을 갖고 싶었거든요.
리: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뭐였어요?
저: 악기는 어릴 때 피아노 학원 다닌 게 시작이에요. 노래를 불러 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초등학교 때인데요. 어느 날 음악 시간에 다 같이 노래를 부르는데 순간적으로 ‘내가 목소리가 큰가?’ 싶은 거예요. 그래서 바로 헤드셋을 사서 골드웨이브라는 프로그램에 목소리를 녹음하고 믹스하기 시작했어요. 당시엔 음악을 취미로 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시간이 지나고 욕심이 생기면서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처음엔 힙합이 좋아서 랩을 하고 싶었는데 당시에 랩으로 대학교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요. 그럼 일단 노래를 먼저 해봐야겠다 싶었죠. 그렇게 실용음악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거예요.
리: 그런데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것으로 알아요. 고등학교 졸업 전에 현역으로 활동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거예요?
저: 재수까지는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대학 입시에 매달리는 시간이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바로 음악을 만들고 활동을 결심했죠. 부모님에게도 선언했어요. 스물다섯 이전까지 아무것도 못 하면 정말 평범하게 살겠다고요. 다행히 지금까지 이렇게 살고 있네요.
리: 무엇보다 ‘나’ 대한 사색을 자주 하시는 듯합니다. 지금까지 말한 대로 생각도 많은 편이고요. 생각을 따로 적어두는 곳이 있어요?
저: 딱히 없어요. 그냥 머릿속에서 생각에 생각을 죽 잇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면 마지막엔 비워져요.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불안감을 시작으로 혼자 어지러워하다가도 마지막 결론은 결국 ‘그냥 마음을 내려놓자’가 되더라고요. 제가 항상 그렇게 같은 패턴으로 생각을 하다 보니까 그 패턴 자체가 앨범의 주제로 된 거 같아요.
리: 그런 이야기를 주로 나누는 친구가 있나요?
저: 아무에게도 안 하는 편이에요. 친구들 사이에서도 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애’거든요.
리: 지금까지 스스로 정의한 ‘jerd’, 혹은 ‘정소연’이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저: 음… 저도 저를 모르겠어요. 그게 정말 결론이더라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매사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에요. 어떤 날은 ‘할 수 있어!’ 하면서 기운을 돋우더라도 금세 한숨 쉬면서 자신이 없어지죠. 그래서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내뱉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리: 요즘은 주로 어떤 생각을 해요?
저: 조금 쉬고 싶어요. 그 쉬는 게 일을 쉰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웃음) 생각을 멈추고 싶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제가 막상 휴식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다음 앨범은 어떤 거 만들지?’ 이런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리: 저도 생각을 진짜 많이 하는 편인데, 멈추려고 해도 “생각을 멈추는 게 뭐지?” 싶을 때가 많아요.
저: 맞아요. 저도 몸이 가만히 있어도 생각이 자연스레 드는 편이라 그냥 생각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요.
리: 음악적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는 편인가요?저: 저한테서 많이 받는 거 같아요. 이렇게 얘기하고 집에 가서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웃음) 그런데 그런 기분을 곡으로 쓸 수도 있는 거고요. 저는 음악을 만들기 시작할 때 레퍼런스 트랙이 없어요. 레퍼런스를 정해도 어차피 제 마음대로 만들더라고요. 코드만 써놓고 상상한 무드를 쌓아서 주제를 생각하는 식으로 작업하는 편이에요.
리: 그럼 책이나 영화 같은…
저: 아쉽게도 제가 그런 데에 취미가 없습니다. 저 정말 재미없게 살아요. (웃음) 누워서 생각하고, 생각해요.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생각이 끊이지 않는 편이라서요. 새벽에는 축구 보고요. 나머지는 또 누워있거나 작업하거나 둘 중 하나예요.
리: 축구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어요. 본인이 생각하는 축구의 매력은 뭐예요?
저: 셀레브레이션이 재밌어요. 저는 축구 선수들이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이 좋더라고요. 골 넣어서 좋으면 누구보다 행복해하고 경기가 잘 안 풀리면 안 풀리는 대로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잖아요. 그런 게 너무 멋있는 거 같아요. 되게 솔직한 거니까.
리: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어요?
저: 아무래도 제가 발표했던 음악들이 다 개인적인 이야기라서 다음번에는 다른 관점에서도 가사를 풀어내 보고 싶어요. 요즘 생각한 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쓰고 싶다, 아니면 나만의 스타일로 발라드 앨범을 만들어 볼까, 같은 것들이에요. 제가 이전에 했던 것과는 다른 주제로 얘기해 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요. 당장 하겠다는 건 아니고요. (웃음) 지금은 일단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리: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자유롭게 해주세요.
저: 제 앨범을 듣고 싶은 분들은 뮤직비디오를 보고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가사를 쓰면서 생각한 건데, 이번 앨범은 듣는 사람에 따라 정말 가볍게 들을 수도 있고 무겁게 들을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A.M.P.]를 온전히 이해하고 깊게 듣고 싶다면, 뮤직비디오를 본 후에 전곡 감상을 추천합니다. 물론 일상적인 얘기이기 때문에 가볍게 들어봐주셔도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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