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드머
스크랩
  • [국내 인터뷰] 탐쓴 – 대구 힙합, 언더그라운드, ‘영원히 질리 읍데이’
    rhythmer | 2023-10-13 | 36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인터뷰, : 강일권

     

    한국 힙합 씬에서 미국 힙합처럼 로컬 래퍼란 정체성을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국토 면적, 인구수, 시장 규모, 문화적 기반 등의 요소를 고려하면 오히려 존재하는 게 아이러니할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래퍼 탐쓴(TOMSSON)의 행보는 남다르다. 그는 다른 많은 래퍼들과 달리 고향 대구에 기반을 두고 모든 활동을 이어 나간다.

     

    대구 사투리로 랩을 하고, 대구의 작업실에서 앨범을 만들며, 대구의 상징과 이야기를 담고, 대구 래퍼들과 공연을 연다. 그가 만든 음악 속엔 오로지 대구 래퍼의 힙합에서만 느낄 수 있는 미묘한 무드와 향이 있다. 그러니까 탐쓴은 로컬 래퍼란 판타지를 현실로 만든 굉장히 드문 사례다. 그는 확실히 대구 힙합을 대표한다.

     


     


    올여름 정말 더웠는데 대구는 엄청났겠어요.

     

    걷는 시간이 5분밖에 안 되는데 그냥 사우나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에요사우나에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못 나오는 느낌이랄까.

     

    확실히 서울이 좀 더 낫긴 한가요?

     

    플라시보일 수도 있는데요, 저는 좀 나은 것 같아요. 그래도 그늘에 들어가면 기분이 좀 덜 나쁜 느낌?

     

    대구의 악명 높은 여름 날씨가 탐쓴 씨의 음악에 영향을 끼친 부분이 있을까요? 나라, 혹은 지역의 날씨나 날씨에 따른 환경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이 다르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제 곡을 들어본 분들은 알겠지만, 더운 지방 사람 특유의 짜증 섞인 플로우가 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진짜 짜증 나서 그런 게 아니지만요. 

     

    그렇다면 대구 사투리뿐만 아니라 지역적인 특성도 플로우에 영향을 끼쳤다는 말씀이에요?

     

    그런데 우리도 사실 헷갈리거든요. 이제는 영화 사투리가 지방 사람들에게도 전염이 된 시대란 말이에요. 원래 쓰던 사투리에 영화 사투리가 섞이고 게다가 일베에서 다짜고짜 뒤에 ''만 갖다 붙이는 것까지 섞여서 많이 훼손됐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영향이) 솔직히 없다고는 하지 못할 것 같아요. 제 랩도 점점 사투리로 많이 변하는 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KOREAN CHEF II]에서도 ""처럼 노골적으로 사투리를 쓰지 않았지만, 조금씩 다 묻어 있고요. 우리 지역 사람들의 무의식적 말투인 것 같아요. 나는 화가 나지 않았어도 남이 들었을 땐 좀 짜증이 섞였다고 느낄 수 있는....

     

    흥미롭네요. 이전까지 한국에서 나온 사투리 랩은 대부분 해당 지역 출신 래퍼들이 아예 작정하고 뱉는 경우였는데, 탐쓴 씨는 이제 일부러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녹아든 상황이군요.

     

    . 전 사실 MC메타를 너무 좋아해서 사투리 랩을 시작했어요. 그분이 없었다면 전 시작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무까끼하이말씀인가요?

     

    맞아요. 중학생 때 들었는데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해보고 싶어서 해보니까 그게 너무 잘 맞는 거예요. 뭔가 내 말투에 더 가깝다는 생각도 들면서요. 지금은 의도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시작은 재밌어 보였고 동경해서 했는데, 의도적이었죠. 그런데 역전포차를 기점으로 제 플로우가 진짜 많이 변했어요. 뒤에 나온 모든 작품에 그 싱글 하나가 영향을 미치는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너무 좋아서요. 그렇다고 “’역전포차처럼 해야지가 아니라 저도 모르게 (사투리가) 들어가는 거죠.

     

    랩 면에서 'KOREAN CHEF’ I II의 가장 큰 차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 ‘(I)’에선 좀 그런 게 있었다고 생각해요. ‘스위치 온, 사투리 팍!’. 그런데 (II)’는 곳곳에 장치로 숨어 있어요. 그러니까 나는 사투리로 너희와의 차별점을 줄 거야.’란 느낌이 아니라 만들고 봤더니 생각보다 (사투리를) 많이 썼네?’인 거죠. 그리고 옛날에 이센스 인터뷰 중에 말하는 듯한 플로우가 극점이다.’란 내용이 있었어요. ‘이게 이센스가 말한 건가?’ 싶었어요.

     

    장기하 씨도 그런 비슷한 얘길 한 적 있어요. 래퍼는 아니지만, 실제로 말하듯이 랩을 하죠.

     

    그분도 (랩 할 때) 되게 매력있던데요.

     

    사실 사투리 랩이란 표현이 아이러니하긴 해요. 미국 래퍼들은 각자의 지역 사투리로 뱉는 게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우리가 현지인이 아니다 보니 잘 구분하지 못할 뿐이죠. 물론 그들도 사투리를 거론하지만, 이걸 따로 사투리 랩이라고 하진 않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런 스타일이 나오게 되었다는 건 궁극적으로 좋은 방향이 아닌가 싶어요.

     

    다른 분들에게도 그렇게 느껴진다면 다행이고요.

     

    사투리로 랩을 하는 것에 관해 우려한 지점이 있었던 건가요?

     

    우려까지는 아니었어요. 그랬다면 이런 행보가 아니었겠죠. 예를 들어 정규도 이렇게 주구장창 내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전 늘 그 순간 느끼는 걸 기록하는 느낌으로 앨범을 만들거든요. 그때 그 감정, 그 단어, 그 말투는 그 순간에만 존재해요. 그 시기가 지나면 다시 재언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재언한다고 해도 대중이 짜치는 느낌을 받을 거라고 믿고요.

     

    말씀한 부분이 작품을 거듭하며 달라진 부분이겠군요.

     

    , [PULP FICTION](*: 탐쓴의 정규 데뷔작/2017) 때는 단어도 정제되어 있지 않고 근거 없는 욕도 많은데, 그 시기의 제 모습이란 말이에요. 그 모습을 잃는 게 아까워요. 그래서 제가 사투리로 랩을 하는데 불호가 있다해도 기꺼이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전 저에게 집중하거든요. 다만 그건 있죠.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아니라고 해서 내가 이걸 굽힐 생각은 없다.'. 이때까지 그래왔으니까요.

     

    전 탐쓴 씨가 사투리로 랩을 하면서 감흥이 남달라졌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감사하게도 최근엔 좋다는 분이 늘어났어요. 잘한다는 말을 많이 해줘요. 전 언제나 랩 잘한다 소리 이외의 독특한 말은 못 들었거든요.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는데, "얘는 뭔가 너무 옛날 느낌 나."란 소릴 되게 많이 들었어요. 특히 [PULP FICTION]이랑 [META FICTION] . 전 아티스트로서의 색깔을 많이 고민해왔어요.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사투리 랩에 대한) 불호가 강해지면 그만큼 진한 냄새가 배고 색깔을 지닌 아티스트로 변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 전환점이 된 곡으로 전 역전포차를 꼽습니다. 이 곡을 통해서 탐쓴 씨의 음악을 다시 듣게 됐거든요. 어떻게 생각해요? 실제로도 반응이 괜찮았나요?

     

    맞아요. 1 "포그바"라는 곡 이후로 뮤직비디오도 반응이 제일 좋았고 재밌다는 평가도 압도적이었어요. 메타 형이랑 같이 한 그 행위 자체도 엄청났죠. 대구 가요를 샘플링해서 여러 가지로 지역 사회에서도 이슈가 됐었고요. 그 한 곡이 정규 한 장급의 파급력이었다고 생각해요. 그정도로 컸어요. "역전포차" 전과 후로 나뉜다고 느낄 정도에요. 무엇보다 '픽션 시리즈'를 마무리 짓고 공허함이 남았던 상황에서 만든 곡이었거든요. 그 즈음에 루시드 비츠(Lucid Beats/*: 'KOREAN CHEF' 프로듀서)도 얻었고요. 굉장히 중요한 싱글이었죠.

     

    말씀한대로 프로덕션도 인상적이었어요. 옛가요를 샘플링해서.

     

    샘플 클리어도 처음 해봤어요.

     

    , 저작권이 남아있는 곡이었군요?

     

    , 그런데 작곡한 분이 돌아가셔서 아내분에게 손수 편지를 적었어요. 나이가 많으신데요, '저는 이런 아티스트이고, 이 곡이 너무 좋아서 힙합으로 다시 살리고 싶다, 그런데 돈은 많이 없다.'라고 솔직히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그냥 주시더라고요. 작사한 분에게도 허락을 받아야 했어요. 그분에게는 돈을 드렸고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허락을 꼭 받고 싶었어요. 이 곡이 원래 대구 노래를 재해석하는 '대구역 랩소디'라는 프로젝트에 유일하게 래퍼로 참여해서 만든 거예요. 그 과정에서 제가 공식 절차를 필수로 하자고 했죠. 피처링도 제가 섭외하겠다고 했고요. 판을 키운 거예요. 원저작권자를 찾아서 연락하고 샘플 클리어를 받기까지 6개월이나 걸렸어요. 메타형도 허락을 받아오면 참여하겠다고 했죠. 의미 때문에 하는 건데 권리를 인정받고 하자는 거였어요.

     

    한국 힙합 씬에서의 모범 사례네요. 여전히 샘플링과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람을 종종 보거든요. 아티스트든 대중이든. 특히 일부 아티스트는 본인의 저작물은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다른 이의 저작물은 소홀히 다루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루시드 비츠와 ‘KOREAN CHEF'를 만들 때에도 항상 얘기했어요. 우리가 샘플링을 할 때 항상 이런 부분을 인지하고 준비해야 한다고요. "역전포차"는 샘플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잖아요? 만약 허가를 받지 못하면 그냥 폐기하려 했어요. 원저작권자와 메타형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매번 언더그라운드 힙합이다, 음악이다 외치면서 그렇게 행동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요.



     


    "
    역전포차"가 나오고 메타 씨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이 인터뷰에서 처음 말하는 건데요, "역전포차"는 메타형을 위한 곡이었어요. 그러니까 메타형이 이룬 업적이 너무나 대단한데 대구에서 랩 한다고 말하고 대구 출신인 래퍼 아무도 그걸 기리지 않는 게 팬으로서 좀 안타까웠어요. 전 한국 힙합 키드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메타형의 "무까끼하이" 투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메타형을 너무 부담스럽게 하기보다 제가 주연을 맡은 거죠. 메타형을 신 스틸러 조연으로 넣고요. 그리고 바이럴로 메타형 부분을 1분컷으로 공개했는데, 대박이 난 거예요. 페이스북에서 조회수가 30만 가까이 나왔거든요. 메타형도 되게 흐뭇해 했어요.

     

    확실히 그 곡으로 동료 아티스트에게도 탐쓴 씨의 존재를 더 각인한 것 같아요. 이후에 다른 아티스트와의 작업이 부쩍 늘어난 느낌이었어요.

     

    네 맞아요. 뮤비를 본 사람이 많더라고요.

     

    한국 힙합 씬에도 기술적으로 뛰어난 래퍼가 많아진 상황에서 리스너나 시장의 가시권에 들어오기 위해선 확실한 색깔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대구 사투리로 짠 랩이 탐쓴 씨의 좋은 무기가 된 듯하네요.

     

    진짜 전후가 있는 것 같아요. 사투리가 많이 들어가지 않은 곡에서조차 그래요. 제 스탠스도 변했고요.  

     

    또 하나의 무기가 있죠. 정규 앨범들. 이렇게 꾸준히 만들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뭔가요?

     

    "역전 포차" 가사랑 비슷한 것 같아요. 약간 절치부심의 심정 아닐까요? 이걸 내서 안 되면 다음 걸 하자는 주의에요. 제가 다른 래퍼랑 차별화되는 힙합일 수 있는 이유를 저만의 방식으로 계속 증명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앨범을 만들어서 내는 게 맞더라고요. 그 하나가 다예요. 이렇게 간단하니까 낼 수 있는 것 같고요. 만약 이해관계가 너무 많이 들어가 버리면 안 하는 게 맞아요. 저도 미래를 생각해서 대학까지 나오는 선택을 했고, 돈에 대한 생각도 있어요. 그런데 앨범을 낼 때는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요. 약간 영화 감독 간지로 '이런 작품을 만들고 싶어.'라는 맘이 생기면 만드는 거예요.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요. GTA 하면 막 한 탕 할 때마다 팀원 모으잖아요? 항상 그런 느낌으로 해요. 탁탁탁 완성해서 낸 다음 해산하고.

     

    영화를 좋아해서 그런지 앨범마다 컨셉이 딱 잡혀 있더라고요. 영화 레퍼런스도 많이 엿보이고요. ‘KOREAN CHEF’ 시리즈도 그런데, 전반적으로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요?

     

    일단은 요리사라는 직업이 래퍼랑 잘 맞다고 생각했고요. [아메리칸 셰프]란 영화 때문이에요. 그 당시 '셰프'라는 말에 꽂혔었어요. 영화 내용도 저랑 되게 비슷했고요. 중간까지는 똑같거든요. 콧바람 좀 불던 주방장이 평론가 말 한마디 때문에 상처를 받아서 다 엎어버리고 결국 푸드 트럭부터 장사를 시작하는 내용인데, 그렇게 다시 시작할 때 마음이 얼마나 홀가분했을까 싶더라고요. 가진 걸 다 잃었으니까. 옆에는 아들밖에 없고요.

     

    그걸 비관적으로 볼 수도 있었을 텐데요.

     

    저는 너무 부러웠어요. 그때의 제 상황을 떠올려 보면요. 인디펜던트 아티스트로서 3부작을 냈는데, 자랑스럽지만, 취해 있을 정도는 아니었어요.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오히려 쓴 게 많았죠. 그런데 어쨌든 그 작업이 음악으로만 입에 풀칠을 하게 해줬어요. 따로 알바를 하지 않은지 진짜 오래됐거든요. 근데 마음이 복잡했어요. 그때 영화를 보고 그런 맘을 털어냈죠. 나도 저런 간지로 다시 해봐야겠다. 그래서 "시작의 장소"로 돌아간 거예요. 묵묵하게 처음 [PULP FICTION] 때의 자세로 다시 요리를 시작하겠다는 거였죠. 좀 더 나다워진 것 같아요. 사투리 랩도 그렇고, 가사에서의 여유도 그렇고요. 시리즈는 이제 완결됐고 다음엔 또 달라질 거예요.

     

    이제 대구 힙합 얘길 해볼까요? 지금의 탐쓴 씨를 대변하는 중요한 키워드죠. 처음부터 대구 힙합을 대표할 거야!’는 아니었죠?

     

    절대 아니었죠.

     

    그럼 상황이 어떻게 흘러온 거예요? 래퍼들의 출신은 각각 다르지만, 거의 모두가 서울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잖아요. 아예 대구를 기반으로 삼은 탐쓴 씨는 드문 경우예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KTX 역할이 컸죠. KTX를 타고 다니니까 해볼 만한 거예요. 처음엔 서울에 갔다가 실패한 사례들을 많이 봤음에도 올라가고 싶었어요. 그때가 대학생이었거든요? 그래서 졸업은 하고 가자는 생각에 왔다 갔다 하다 보니 그냥 대구에서 자주 왕복하는 게 돈을 더 아끼고 앨범도 빨리 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도 대구가 딱이었고요. 작업실비도 싸니까. 전 힙합이 돈이 된다고 생각하며 시작한 세대가 아니거든요.

     

    대략 시작이 언제였나요?

     

    20071월이었어요. 소울 컴퍼니 키드였고요. 전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이용해서 랩을 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어요. 굳이 (서울로) 올라가서 일부러 고생하기 싫었어요. 고생은 군대에서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걸 또 경험해야 할 만큼 지능이 낮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냥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며 한 거죠. 어차피 음악을 하는 데 어머니, 아버지가 지원을 해주진 않았으니까요. 

     

    반대는 없었어요?

     

    너무 싫어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딜을 걸었죠. 돈 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 터치하지 말아 달라. 물론 어머니, 아버지가 교육적으론 엄청 신경 쓰셨죠. 그래서 제가 대학에 갔을 때 엄청 좋아하셨고요. 그런 환경이 조성되다 보니까 대구에서 나가지 않게 된 거예요. 그래도 기회가 되면 서울에 한 번 가보자는 맘은 있었어요. 그런데 인터넷 잘 되고, 스마트폰이 있으니 떨어져 있어도 소통하면서 앨범을 작업할 수 있고, 믹스, 마스터링만 왔다 갔다 하며 만들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된 거예요. 사실 최근까지도 마지막으로 고민했는데, 그냥 대구에 있기로 했어요. 마음이 확실해졌어요. 

     

    완전히 마음을 굳혔군요.

     

    서울보다는 대구의 광경에 더 어울리는 사람인 것 같아요. 거기서 저라는 아티스트의 매력도 나온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여기에서 이미 제가 기획한 시리즈 공연도 하고있고, 행사, 교육 등등, 맡고 있는 게 많아요. 제가 로컬 래퍼란 소릴 많이 했는데, 그런 활동을 지금 많이 하고 있거든요. 이제 꽃을 피우려는 중인데, 그걸 져버리고 올라오긴 싫었어요.

     

    제가 인상적인 지점이 바로 그거예요. 단지 대구에 살면서 음악을 하니까 대구 래퍼가 아니라 그곳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한다는 것. 몇 가지 얘기 좀 해주세요.

     

    일단 코로나가 엄청나게 이슈였잖아요? 그때 지켜야 할 10가지 수칙을 랩으로 만들었는데, 그 캠페인송이 동대구역에서 1년 동안 나왔어요. 3개국어인가 4개국어로. 래퍼들은 이런 작업을 싫어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전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대구시에서 컨택이 온 거고, 필요해서 만들어 달라고 한 거니까요. 그리고 대구에 있는 K2 공군 부대에서 장병들 생활 향상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래퍼가 필요하다고 해서 갔어요. 문화 생활을 원해서 신청한 장병들을 대상으로 랩 작사법을 알려주고, 힙합에 관해 얘기하면서 놀고. 경북으로 넘어가서는 이번에 조금 이슈가 된 보람할매연극단활동을 했어요.

     

    보람할매연극단은 기사와 SNS로 소식을 봤는데, 흥미롭더라고요. 어떤 역할을 한 거예요?

     

    할머니들에게 작사법, 라임, 플로우를 알려드리면서 같이 작사를 했어요. 어떤 개념인지를 최대한 반복 수업으로 알려드렸죠. 2년째 해왔어요. 또 이센스의 고향 경산에 있는 아동복지센터에서 돈 내고 랩을 들을 여력이 되지 않는 친구들을 만나서 제 곡을 들려주고 이야기도 나눴어요. 정말 래퍼가 되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꼭 그렇게 유명하거나 스타가 되지 않아도 랩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줬죠. 지금도 음악은 하고 싶은데 서울까지 랩을 배우러 가지 못하는 친구들 대상으로 영남대 부설에서 특강을 하고 있어요.



     


    공연 기획도 하죠?

     

    맞아요. 1년에 한두 번씩 대구의 신예 래퍼를 모아서 랩 다이브(RAP DIVE)란 공연을 해요. 이 친구들이 무대 경험이 없어요. 요새는 [쇼미더머니] 지원 영상으로 데뷔하거든요. 무대가 아니라 1분짜리 지원 영상으로. 대구에 힙합 트레인외에는 힙합 공연이 없다는 게 안타깝잖아요. 제가 또 마이노스(Minos) 키드라 민호 형을 보고, 화나 형을 보고 내가 해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인디053(*: 독립문화, 지역문화, 청년문화, 생활문화의 진흥 및 성장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다양한 문화사업을 진행하는 단체) 측에 하고 싶으니 지원 좀 해달라고 무대뽀로 얘기했어요. 그런데 돈이 부족하다길래 제가 무료로 호스트 MC 맡고 애들도 다 모으겠다고 했죠.

     

    현 상황은 어때요?

     

    이제는 약간의 페이도 나올 정도로 컸어요. 계속하려고요. 그리고 주민들과 만나서 같이 랩 하고 곡도 만들어요. 정식으로 발표하는 곡은 아니지만요. 또 아리랑을 랩 버전으로 개사하는 작업도 하고요. 대회에서 밀양 아리랑을 랩 버전으로 불러서 최우수상도 받았거든요. 밀양도 대구랑 관련된 지역이잖아요. 우리 경상도의 아리랑을 랩 버전으로 발전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이런 게 로컬 래퍼로서 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되게 자부심을 갖고 임하죠. 뭔가 지방에서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하려고 해요.

     

    제가 알던 것보다 많은 활동을 하고 있네요. 그렇다면 대구에 힙합 씬이 실재한다고 봐요? ‘랩 다이브공연 얘길 할 때 대구의 신예 래퍼가 대상이란 말씀을 했는데요.

     

    사실 공연이 있는 거지 씬은 없죠.

     

    그럼 음악을 하려는 이는 좀 있는 편이예요?

     

    그런 것 같아요. 제 레슨생만 해도 그러니까요. 다만 제대로 활동을 하려면 다 서울로 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스월비(Swervy). 너무 훌륭하잖아요. 그런데 이전에 대구에서는 본 적이 없어요. ‘딱 보고 대구는 자기 그릇이 아니다.’ 싶었던 것 같아요. 근데 진짜 스월비 멋있어요.

     

    듣고 보니 예전뿐만 아니라 지금도 대구에서 실력 있는 래퍼가 많이 나오네요.

     

    제 입으로 이런 말하기 좀 그렇지만, 정신 제대로 박힌 사람들은 다 서울로 가는 것 같아요. (웃음)

     

    그럼 본인은 정신이 제대로 박히지 않은 사람인가요?

     

    저는 약간 언제부터 우리가 이 음악을 할 때 정신 제대로 박히고 이해타산적으로 움직였냐.’의 마지막 낭만 아닐까요? 좀 징그럽지만 그것 말고는 절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어요. 그냥 이곳이 제일 편해요. 여기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제 랩을 들어본 사람은 야 뜰라고 랩 하는 놈 아니다.’라는 걸 느낄 거예요. 전 화나를 좋아해서 화나처럼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지 여러분이 좋아할 것 같은 음악을 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이것도 제가 여기 남아있는 배경 중 한몫을 해요. 물론 빈지노처럼 자기가 하고싶은 걸 했는데 대중의 니즈와도 맞아떨어지는 괴물이 있지만, 저는 또 저만의 음악이 있는 거니까요.

     

    빈지노 얘기가 나온 김에 묻겠습니다. ‘NOWITZKI VS 저금통’?!

     

    아 이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같은 건데요, [NOWITZKI]. 마치 제갈량이 우리 팀 한 명도 안 다치고, 기후도 이용하고 뭐도 이용하고 뭐도 이용하며 다 작살내는 느낌이에요. 심지어 과거의 전투에 썼던 전법까지 가져와서 몰래 숨긴 다음 새로운 걸 개발하는 천재가 만든 앨범 같은데, [저금통]은 여포 같아요. 그냥 혼자 창 하나 들고 들어가요. 내 팀이 죽든 말든 모르겠고 자기가 초토화시켜요. 근데 재미있는 건 둘 모두 각각의 전장에서 다 죽인 건 똑같아요. 방식이 다를 뿐이죠. 그래서 리드머에서 [저금통]4점 받은 게 [NOWITZKI]4.5점 받은 것보다 어려운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이 정도 됐으면 매너리즘에 관한 날카로운 시선이 들어올 수도 있을 텐데 그걸 또 랩으로 피해 갔잖아요.

     

    흥미로운 답변이었습니다. 다시 탐쓴 씨 얘기로 돌아오죠. ‘대구 힙합의 기수라든지 대구 힙합을 대표한다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때요? 마냥 부담스러운가요, 아니면 받아들여지나요.

     

    원래는 그런 말을 되게 싫어했어요. 그런데 MC메타 형이나 마이노스 형이 대표로 인정해주는 발언을 했을 때부터 받아들였어요. “그냥 네가 거기 남아서 그걸 하고 있고, 작업하는 것 자체가 대표란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거다.”. “후일담이란 곡에서도 언급했는데요, 이걸 메타와 마이노스가 말했잖아요. 끝났죠. 더 이상 다른 사람에 의한 증명은 필요 없었어요. 다만 그 말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제가 로컬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어요. 솔직히 어떤 분들에겐 짜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게 현대판 언더그라운드라고 생각하거든요. 눈에 띄지 않더라도 실질적으로 뭔가 돈 버는 행위를 하는 것. 옛날 언더그라운드와는 달라요. 음악으로 먹고사는 것.

     

    혹시 앨범 작업에 대한 조언이나 지원도 해주나요?

     

    . 대구에서 앨범 내는 걸 힘들어하는 친구들의 제작도 도와주고 있어요. 비트 찾아주고, 컨셉도 바꿔주고, 매니지먼트도 도와주고요.

     

    그렇게 해서 나온 사례가

     

    완전 대구 래퍼인 힐오(Heal-O)라는 친구가 있는데, 트레이너를 하거든요. 그런데 이센스 랩을 따라하려는 느낌이 너무 강한 거예요. 그래서 그 때를 좀 빼주고, 아예 새로운 컨셉도 잡아줬죠. 그 친구가 의뢰를 한 거예요. 제 녹음실에서 녹음도 하고요. 레슨비 정도만 받고 제가 다 해주거든요. 디렉팅도 해주고. 나름대로 돈을 받고 하는 거라 사명감이 있긴 하지만, 거의 봉사활동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그 이상으로 해주니까요. 솔직히 제가 씬을 만들 그릇인지는 모르겠어요. 진짜 모르겠어요. 근데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대구 힙합 씬은 없어도 대구에 저는 있을 거예요.

     

    더 신뢰가 갑니다. 이 업계에서 오래 있으면서 제일 믿지 못하게 된 사람 중 하나가한국 힙합을 위해같은 대의를 내세우는 부류거든요. 그런 사람 대부분은 본인에게만 이득되는 활동을 자꾸 대의로 포장하더라고요. 어느 한 사람의 능력이나 의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방금 한 말씀이 더 와닿네요.

     

    만약에 저 덕분에 대구 힙합 씬이 살아난다면 너무 영광이죠. 그런데 그런 결과를 노리고 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죠. 왜냐하면, 저도 터전이 있었으니까 이렇게 날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저 같은 애가 나온 게 형들이 닦아놓은 길 때문인데, 계승을 하면 좋잖아요.

     

    저는 아티스트가 본인을 우선 생각하면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후에 좋은 결과들이 이어져서 모인다면, 씬의 기반이 형성될 수도 있는 거지, 누구 하나가 말로만 내세워서 이루어질 순 없죠.

     

    맞아요. 저는 결국 즐겁지 않으면 안 할 거예요. 그게 위로가 돼요. 전 항상 다음에 작업할 앨범이 중요한 사람이거든요.  

     

    이번에 솜씨 완전판도 그렇고 리믹스 버전들을 보면, 여러 래퍼가 참여했어요. 참여 진 섭외와 구성에 관한 이야길 듣고 싶어요.

     

    일단은 후보들이 여럿 있었는데, 다행히 두 명만 안 되고 다 됐어요. 기준은 제 취향으로 랩을 잘하는 사람들이었고요. 그러니까 내 주방에 초대를 하려면 제가 생각하는 맛있는 랩을 하는 사람이어야 하는 거죠. 단지 그게 다였어요.

     

    전부 친분이 있었던 건 아니죠?

     

    전혀 아니에요. 일례로 맥대디, 도넛맨 아예 몰랐어요. 이번 계기로 팔로우도 하고 알게 된 거지. 의뢰를 해서 작업한 거예요. 라임어택 형은 알게 된 계기가 재미있어요. 제가 서울에서 콘서트를 열었는데 우연히 왔어요. 그날 게스트가 딥플로우와 가리온이었는데, 이 형들을 보기위해 불한당 멤버가 다 왔어요. 성천님도 뒤풀이 자리에 오고. 깜짝 놀랐어요. 빌어먹을좌를 실제로 보다니…. (웃음) 아무튼 그때 라임어택 형도 온 거예요. 제 라이브도 봤고요. 그날 제가 인사했죠. 그런데 라임어택 형이 집 가는 버스에서 [KOREAN CHEF]를 다 듣고 마이노스 형에게 얘 가사 되게 잘 쓰네.”라고 칭찬을 했대요. 민호 형이 야 이거 형래(라임어택) 이런 얘기 잘 안 하는데 니 음반 좋다더라.”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영광이라고 하고 번호도 교환했는데, 같이 할 것 있으면 연락달라고 해서 솜씨도 하게 됐어요.

     

    인맥을 앨범으로 계속 만들어간 거네요.

     

    저는 정말 단 한 명도 그렇지 않은 인맥이 없어요. 지방러인 거 아시잖아요. 그래서 참 감사하죠. 저에겐 어릴 적 영웅들과 컬래버를 한 거니까. 그런데 맥대디와 도넛맨은 그 사람들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더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하고요. 도넛맨의 [R A I N B O W]도 샀을 만큼 좋아했거든요. 맥대디는 말할 것도 없고요. 스킬이 워낙 탁월하잖아요. 이들과 OG가 섞였을 때 솜씨가 뛰어난 것에는 올드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잘 버무려지는 것.



     


    앨범을 들으면서 다른 언더그라운드 래퍼들과 다르게 느껴진 건 주류 시스템에 대한 분노가 적다는 거예요. 대부분은 분출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저에겐 그런 서사가 신예나 언더그라운드 래퍼의 앨범을 듣는 재미 중 하나인데요, 탐쓴 씨는 좀 묘해요. 분노가 많이 표출되진 않지만, 그렇다고 애써 여유로움을 내비치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 두 가지가 묘하게 섞인 느낌이랄까. 그래서 [KOREAN CHEF] 시리즈를 구상할 때 담고자 했던 부분을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12가 다른 느낌이에요.

     

    맞아요. 1은 이런 거예요. “역전 포차에서 절치부심한 제가 마음의 여유라는 게 좀 생겼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불은 타요. 그래서 조금 더 완숙해진 모습으로 [PULP FICTION] 때로 되돌아가는 건데, 그것이 저에겐 나아가는 거였어요. ‘시작의 장소로 가는 게 결국 약속의 장소였거든요. 제가 그렇게 해석한 거죠. 그래서 결국 나의 나아감은 ‘back to the basic’인 거예요. 내 옛날 모습을 하나씩 찾아가는 여정이라 짜임새를 굉장히 신경 썼어요. 과거 회상과 메시지를 담는 가운데 후반부에 가서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약간 풀어주려는 노력도 했고요. 제가 다다랐을 땐 그런 감정이었거든요. 2에서는 그 정리가 끝나고 퇴근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하고싶은 곡들로 가득 채웠어요. 그러니까 1에서 원래의 모습을 찾은 제가 좀 더 여유로워진 모습으로 제 얘기를 풀어낸 느낌? 근데 좀 샐러드적이에요. 기승전결이 아니고 마음대로 외전도 넣어버리고.

     

    그렇네요. 1에서는 코스를 딱 정해서 끌어갔잖아요.

     

    . 사실 곡이 이렇게 늘어날지 몰랐어요. 사족이라고 생각해서 뺐던 얘기들을 시원하게 한 느낌인데, 그래서 디저트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해요.

     

    디저트까지 왔으니 ‘KOREAN CHEF’ 프로젝트는 종료하겠네요.

     

    그래서 원래 가제가메인저트이기도 했어요. 디저트이긴 한데, 나름 독립 개체로서의 이유가 있어서요. 그런데 그냥 2로 한 거죠. 막 그렇게 의미 부여를 하고싶은 앨범은 아니었어요. 12는 감정이 연결되어 있지만, 느슨함 정도의 차이인 것 같아요. 돌아가야 했기에 조금 더 뭔가 확실한 그림이었다면, 돌아왔기에 조금 더 여유를 즐기는 제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가리온의 약속의 장소를 오마주한 시작의 장소란 곡을 발표한 바 있어요. 가리온이 직접 피처링까지 했죠. 항상 궁금했습니다. 탐쓴 씨가 생각한 시작의 장소는 어떤 모습일지.

     

    저는 결국에 가장 값진 게 뭐냐고 했을 때 이걸 시작할 때 느낀 설렘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없으면 이걸 하는 이유가 없어질 거고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초심 같은 얘기로 퉁치고 싶지 않아요.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 눈이 번쩍이는 그 순간 있잖아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는 그 소중한 순간. 그 순간의 느낌을 좇고 추구하면 자동으로 초심과 저의 정체성을 지켜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가리온이 말한 유토피아는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내 마음이 처음과 같다면 말이죠. 메타 형 가사처럼 시작과 끝은 항상 같은 출발점이래요. 끝으로 왔더니 또 처음으로 출발하는 것 아닌가요? 전 그렇게 생각했어요. 멀리서 찾을 필요 없었구나, 그냥 내 마음이 문제였구나.

     

    마치 불가의 마음을 듣는 듯해요.

     

    다들 표현이 다르지, 저랑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 같던데요. 내 마음이 처음과 같다면, 그게 약속의 장소 아닐까요? 천국일 것 같은데요. 여전히 욕심나는 것이 있고, 현실적 여건 때문에 돈이 좀 더 필요할 수도 있지만…, 최민식 배우도 인터뷰에서 그랬거든요. 초심이라는 놈을 머리채까지 잡아서 끝까지 끌고 가겠다고. 대배우가 그렇게 얘기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신선한 답이었습니다. 약속의 장소를 시스템이나 외부에서 찾는 게 아니라 본인의 마음 속에서 찾는다는 점이요. 그러니까 이미 도착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 [KOREAN CHEF]를 통해서 도착했어요. 그래서 이젠 그게 뭔지 알았기 때문에 가리온이 던진 화두는 각자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중한 걸 잊고 살지 말자는 느낌도 있고, 이 곡을 듣는 모든 사람이 자기 삶에서의 시작의 장소가 있을 거잖아요. 가리온이 말한 것이 단지 힙합 씬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었을 거예요. 곡을 작업할 때 형들도 재미있었는지 메타 형이 아이디어도 내주고 그랬어요. “약속의 장소의 후속작으로도 인정해줬고요.

     

    앞으로도 이렇게 혼자 쭉 해나갈 생각이에요? 앨범 위주로?

     

    . 그 수밖엔 없죠. 그리고 어디 들어가는 건 늦은 것 같고요. 차라리 개인 사업자를 내지….

     

    지금은 아티스트의 커리어에서 앨범이 중심은 아니다.’라고 여기는 이가 많은 시대입니다. 그런 가운데 앨범으로 커리어를 이어가는 래퍼로서 이제 막 음악을 시작한, 혹은 시작하려 하는 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요?

     

    해야 하니까 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어요. 대한민국에서 힙합일 수 있는 이유가 그게 전부인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엔 무언의 압박과 그에 따른 부담감이 많잖아요. 근데 이걸 이겨낸 사람들이 결국엔 힙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분야든. 이 말 외에는 해줄 게 없어요. 전 정말 이게(앨범을 만드는 것) 제일 좋아요. 지금 인터뷰를 하는 이 시점에도 1031일에 또 앨범이 나와요. [MOVIE THEORY]. [GAME THEORY] 후속작으로 8곡짜리 EP에요. 이번에도 제이에이(JA) 올 프로듀싱이고요.

     

    [MOVIE THEORY]에 관한 정보를 좀 더 말씀해줄 수 있나요?

     

    공포영화를 오마주한 앨범이에요. 어릴 적부터 즐겨 본 영화들을 모티브로 삼았어요. 복잡하지 않고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전체적인 무드를 잡았고요. 평소 탐쓴이 보여주지 않았던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정말 끊임없이 앨범을 만드네요.

     

    내년에 나올 또 다른 EP도 만들어 놨어요. 그 다음에 정규까지는 좀 걸릴 것 같아요. 스포라서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아주 대단한 분과 앨범을 만들 것 같아요. 그분이 먼저 디렉팅을 해주겠다고 해서요. 나중에 공식적으로 밝히겠습니다. 이런 계획을 짜는 현재가 너무 행복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하고싶은 걸 좀 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빈지노와 이센스가 역시 끝판왕은 앨범이라는 걸 다시 한번 증명했잖아요.

     

    전 탐쓴 씨의 곡 중에 머릿속에 제일 맴도는 가사가 영원히 질리 읍데이’(“”)에요. 되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오거든요. 특히 대구의 언어로 뱉은 거라 더욱 상징적이고요. 현재의 커리어와 스탠스를 대변하는 라인이 아닐까 싶어요.  

     

    그 곡에 대한 얘기를 짧게 좀 드리자면 그냥 너무 재밌게 만들었어요. 랩을 처음 시작할 때의 모습이 참 많이 떠올랐거든요. 그래서 제목이 이예요. ‘Zero’로 돌아간 느낌이라서. 그리고 영혼의 도 되고요. 그런데 지금 와서 그 곡의 역할이 많이 바뀌었어요. 말씀한 것처럼 제 말과 사상에 확신을 주는 곡이 된 거예요. 그 곡의 힘이 저에겐 어마어마한 것 같아요.  

     

    라이브 영상도 봤는데, 곡의 힘이 느껴지더라고요. 호응도 좋고.

     

    , 사람들이 되게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그래서 참 고마운 곡이에요. ‘이카다 망하면 어쩔 수 없다, 뭐 그게 내 팔자지.’라는 제 스탠스의 집약체인 곡. 그러니까 이 곡이 있는 한 저는 구려질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영원히 질리 읍데이인 거죠. 만들 때는 너무 신났었는데. (웃음)

     

    추후 잡힌 공연 계획이 있나요?

     

    올해 말에 개인적으로 기획한 대구 힙합공연을 할 예정이에요. 대구에서 랩 무대를 볼 수 있는 공연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소소하게라도 열어보려 합니다. 로컬 씬에 꾸준함이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닿길 바라요.

     

    기대하겠습니다. 끝으로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자유롭게 해주세요.

     

    뭔가 문턱 하나만 넘기면 제가 여러분한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 문턱을 넘기는 과정을 좀 더 많은 분이 지켜봐 줬으면 좋겠어요. 그럼 제가 힘을 얻을 것 같아요. ! 그리고 [KOREAN CHEF II]의 피지컬 음반이 나와 현재 인스타를 통해 판매 중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https://www.instagram.com/bluealdorain/

     


     

    탐쓴이 가장 좋아하는 래퍼 5(한국/무순위)

     

    1. 화나

    2. 일리닛

    3. 가리온

     

    이 셋은 언제나 제 마음 속에 있던 래퍼예요. 그래서 무조건 들어갑니다.”

     

    4. 마이노스

    5. 이센스

     

    다른 두 자리는 바뀔 수도 있는데, 현재로선 이 둘을 뽑을게요. 이 사람들의 앨범을 정말 닳도록 들었어요. 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죠.”

    36

    스크랩하기

    • Share this article
    • Twitter Facebook
    • Comments
    « PREV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