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드머
스크랩
  • [국내 인터뷰] 타블로 - 랩퍼 타블로, 지독한 몸살 뒤 돌아오다
    rhythmer | 2011-11-30 | 62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그룹 에픽 하이의 프론트맨으로서 인기 정상을 달리던 타블로는 한 여인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가 됐고, 30대가 되었으며, 지독한 몸살을 앓았다. 많은 대중은 사건의 진위여부에 집중했고, 많은 힙합팬은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되진 않을까 걱정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타블로는 솔로 앨범을 들고 다시 뮤지션으로 돌아왔다. 몸살이 끝나간다는 걸 알리는  ‘열꽃’이 피어났던 시기의 감정을 담은 소중한 가사와 음악을 가지고서…. 

    리드머(이하'리'): 우선 컴백을 축하합니다. 일련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예전보다 말씀이 간단해지고 차가워진 느낌이 나더군요. 스스로도 느끼세요?

    타블로(이하'타'): 말수는 조금 줄었어요. 그런데 차가워진 건 아니에요. 어쩌면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바라보니까 그런 느낌을 받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분명히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인데도 차갑게 들리거나, 슬프게 들리나 봐요. (웃음)

    리: 이번 솔로앨범을 내니 느낌이 어때요? 신인의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느낌? 아니면, 오랜만에 본업으로 돌아온 느낌?

    타: 본업으로 돌아온다는 생각이었는데 돌아와보니 너무 달라진 것 같아요. 제가 변한 건지 없는 동안 환경이 변한 건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다른 느낌이에요. 그래서 신인의 느낌이 더 강한 것 같아요. 뭘 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는데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그런 신인의 마음이에요.

    리: 다시 활동을 재개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음악 작업을 할 때, 앨범을 내고 난 직후, 각각 심경이 달랐을 것 같은데….

    타: 막상 작업할 때는 ‘내가 작업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은 없었어요. 작업은 버릇에 더 가까웠죠. 아기가 있으니까 가사를 어디에 적을 시간이 없었어요. 초반에는 정말, 시간과 환경이 뒷받침될 수 없는 상황이었죠. 계속 손이 바쁘니 앉아서 뭘 적어놓던지 컴퓨터를 켜는 것이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생각만 많이 했는데, 그 생각들이 버릇처럼 랩으로 변하게 되더라고요. 예전처럼 랩을 흥얼거리지는 않는데, 머릿속에서는 계속 랩을 하고 있으니, (그 상황이) 웃겼어요... 조금씩 공책에 적어놓을 여유가 생겼을 때는 이미 써놓은 것을 공책에 옮기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갔어요. 그러다 노래라 할 수 있을만한 작업물이 8곡 정도 되었을 때, 양현석 사장님에게 들려드렸죠. ‘노래라 할 수 있을만한’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다른 곡들도 많았었는데 음악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이상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고요.

    리: 이상한 것들이라면, 어떤….?

    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에도 모호한 그런 것들이었어요. (웃음)

    리: 그럼 그 8곡만을 들려드린 건가요?

    타: 처음에는 3곡만 들려드렸는데, 더 듣고 싶다고 하셔서, 조금 작업해놓은 것과 갖고 있는 것들을 합해서 8곡을 들려드렸어요. 그랬더니 좋다고, 앨범으로 만들어도 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YG와 앨범을 내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리: 계약을 그 8곡만으로 하게 된 거에요?

    타: 아뇨. 앨범 완성을 하고 계약했어요. 실감이 되기 시작할 때 완성이 된 거에요. 무슨 목표나 각오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앨범이 나왔는데…. 원래는 활동을 아예 안 하려고 했어요. 이번 앨범이 뭔가를 보여줄 만한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앨범 발매 이후 많은 분이 환영을 해주었고, 뒤늦게서야 인터뷰도 조금씩하고 무대도 몇 번 섰죠. 그런 식이라 컴백한 마음이 어떤지 물으신다면 새롭고 즐거운데, 음악은 나왔지만, 제가 아직 정식으로 컴백을 한 건지는 모르겠어요. 컴백했다고 이야기하기엔 너무 작은 걸음들이 이어지는 거라서….

    리: YG를 통한 앨범 발매 이야기가 오고 간 게 올해 중순쯤이었나요?

    타: 여름에서 가을 오기 전 쯤이니까 시기상으로 정말 얼마 안되었죠.

    리: 사실 타블로 씨와 YG의 계약은 상당히 흥미로웠어요. YG는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에 따라서 소속 뮤지션들의 음악색과 여러 스타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철저히 신경 쓰는 느낌이 강한데, 이번 앨범에서 YG의 향을 느낄 수 있는 건 태양 씨가 참여했다는 것이 전부거든요. YG와 계약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해 줄 수 있을까요? 어떤 식의 결합인지.

    타: 사장님이 제 음악을 좋게 평가해주셔서 함께 일하게 된 거니까, 제 색을 유지하게 된 것은 당연한 것 같아요. 특별히 어떤 약속이나 협의가 필요 없었어요.

    리: 기존 YG 프로덕션과 조합을 기대해도 될까요?

    타: 네. 저도 기대하고 있어요 (웃음). 확실하게 미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지만, 좋은 교류가 많을 것 같아요.

    리: 이번 앨범은 아무래도 가사에서 울림이 상당할 수밖에 없어요. 랩 스킬과 리릭시즘이 일정 수준이상 이른 경우에는 개인의 경험이 반영되는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더구나 많은 이가 타블로 씨의 상황이 흘러가는 걸 쭉 보기도 했고요. 스스로 평가하기엔 어때요?

    타: 제가 절실히 느끼게 된 것이 있는데, '음악'의 첫 기반은 뮤지션이 만들지만, 궁극적으로는 들려주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음악은 그냥 만든다고 음악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공감의 힘이 이루어주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과거에 제가 좋아했던 음악을 떠올려도 그 음악에 엄청나게 공감했기 때문에 의미가 큰 것 같아요. 잠시 유행했던 음악들도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당시 시대와 풍경이 노래와 결합된 감정으로 다가와요. 그래서 ‘어찌 보면, 음악은 듣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제 음악을 만들어주는 리스너 분들에게 고맙고, 앞으로 음악을 할 때는 이 깨달음을 잊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요. 여태 만들었던 음악들 가운데 큰 공감을 얻지 못했던 것들은 그런 생각들이 부족했었나 봐요.

    리: 사실 미국의 랩퍼들은 자신이 겪은 사건들을 굉장히 큰 소스로 이용하잖아요. 그게 좋은 일이건 안좋은 일이건 그걸 가지고 하나의 드라마를 기가 막히게 잘 만들어내죠. 그런 경험과 소스들이 힙합 뮤지션에겐 일종의 좋은 무기라고 생각하는데, 타블로 씨에게도 그렇지 않을까요?

    타: 전 싸우는 마음이 아니니까 '무기'라고 표현하기엔 좀 그렇고요 (웃음). 음악이 저에게는 치유의 힘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그저 받은 만큼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싶어요.

    리: 저희 리뷰에서도 나왔는데, 이번 앨범의 파트 1과 2는 각각 솔직하게 감정의 파편들을 나열해 놓거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놓는 것과 개인 감정 밖으로 나와 시선이 주위를 향하는 것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생각해요. 앞서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옮겨놨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파트 1과 파트 2의 가사를 쓴 시점이 개인적 감정이 변화하는 흐름과 어느 정도 맞물렸다고 봐도 되겠네요? 

    타: 만드는 마음에선 나눠지지 않았어요. 하나의 흐름으로 만든 거니까요. 근데 나누기로 결정을 했을 땐 시기적으로도 나누어지고, 감정선이나 정서로 조금은 나누어지더라고요. 근데 파트1과 파트2로 나눈 이유가 그런 의도라기보다는 10곡이 워낙 다 무겁다 보니 듣는 분들이 한꺼번에 듣기 좀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들어도 한 번에 소화하기엔 너무 답답해서, 반을 소화한 후에 이어 들을 수가 있게 나눈 셈이죠. 감정의 경계선은 없었어요. 예를 들어, "출처"라는 곡을 만들었던 감성이 “집”을 만들 때도 분명 있었을 테니까요.

    리: 10곡 외에도 곡이 많았나요?

    타: 많았는데 스스로 느끼기에 형편없는 곡도 많았어요. 제가 느끼기에도 그렇게 형편없는데 남이 들어도 그렇게 느낄 거에요. (웃음)

    리: 곡을 만든 창작자 입장에선 별로라고 하는 곡들 중에 막상 들어보면, 좋은 곡도 많던데….

    타: ‘노래가 왜 이러냐~ 노래 맞나?’ 싶을 정도로 듣기 싫고 희한한 것들이 많았어요. 소리만 잔뜩 나온다고 할까요. 스스로 걸러냈죠. 한번은 너무 뜬금없는 감정의 곡이 나오더라고요. 이유 없이 밝은 노래가 나온 적이 있어요. 제가 만들었다고 하면 다들 안 믿을 정도로 귀엽고 밝은 노래가 나왔었죠. (웃음)

    리: 흥미롭네요. 갑자기 그런 감성의 곡이 나오다니. (웃음)

    타: 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음악을 만들면서 혼란이 왔던 것 같기도 하고, 아기를 키우다 보니 차 안에서 동요를 굉장히 많이 듣거든요. ‘뽀로로’도 보고. (전원웃음) 그래서 그런 건지... 밝은 노래들이 안 써지는 시기였는데.

    리: 말씀한대로 굉장히 우울한 분위기의 곡이 많고, 이번에도 건반과 신스 사운드가 프로덕션에서 핵심적인 키로 느껴져요. 아무래도 멜로디에 중점을 두기 때문인가요?

    타: 그런 것도 있겠지만, 집에서 대부분의 작곡을 했는데, 제 집에는 업라이트 피아노 한대 밖에 없어요. 마지막으로 에픽 하이 앨범을 냈던 당시 얀키(Yankie)의 녹음실에 악기를 전부 다 갖다 놨었는데 그걸 집에 가져올 겨를도 없었고, 보관할 공간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가사와 멜로디에 반주를 입힐 때, 처음엔 피아노 하나로만 작업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컴퓨터를 켜서 신시사이저, 시퀀싱 작업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제 머릿속에 그 노래들의 가장 익숙한 모습이 피아노 반주 위에 흥얼거렸던 대로였어요. 그래서 트랙으로 큰 변화를 주려면 리믹스를 해야 하는 기분이어서 어색하더라고요. 이런 이유도 있고, 무엇보다 저는 원래 풍부한 트랙 메이킹을 잘 못해요. 그런 쪽에 능력을 갖고 있지 않나 봐요.

    리: 원래 취향이 심플한 쪽을 지향하는 편인가 봐요?

    타: 취향인지 능력의 한계인지는 정말 모르겠어요. 그런데 트랙이나 사운드만 듣고 ‘우와~’ 할 정도의 곡을 만드는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미니멀하고 텅텅 비어있는 쪽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믹싱할 때도 소스를 계속 빼요. 믹스가 완성이 되었을 때 조차 빼고 다시 믹스를 하는 경우도 많아요. 복잡한 것마저 멋지게 표현하는 프로듀서들의 능력이 저에게는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귀찮아서 그러거나 더 열심히 할 의사가 없어서는 아니에요. (웃음)

    리: “출처”는 직접 가사를 이용한 스크래칭 리릭 훅이 인상적이었어요. 투컷 씨가 제대 후에 작업한 거죠? 이런 스타일에 최적화된 투컷 씨. (웃음)

    타: 최적화죠. (웃음) 전 항상 곡에 어울리는 분과 작업하게 되요. 제 주변에 뛰어난 디제이들은 많아요. 독특한 것을 잘하는 디제이 프리즈(DJ Friz)도 작업할 때 매일 함께 있었기 때문에 "밀물"에서는 프리즈가 스크래치를 했고, 예전에 "출처"같은 곡을 했을 땐 언제나 투컷이 스크래치를 했기 때문에 정말 정식이만 떠오르더라고요.

    리: 앞으로도 이러한 스타일을 꾸준히 한두 곡씩은 담아낼 예정이에요?

    타: 그 곡은 가사를 먼저 쓰고 그 가사가 얹혀질 트랙은 그 이후에 만들었어요. 가사만 아무 비트 없이 공책에 썼기 때문에 가사를 가장 표현하기 좋을 트랙을 고민하다가 이른바 말하는 일반적인 '힙합' 느낌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런 가사가 또 나오면 어울리게 하겠죠.

    리: 앨범의 대부분 곡의 가사가 와 닿지만, 특히, “밑바닥에서”라는 곡의 ‘이 좁은 방의 낮은 천장이 하늘이란 게 내가 너의 우산이자 비란 게’ 라인은 정말 깊이 와 닿더군요. 이게 타블로 씨의 상황이기도 하지만, 다른 많은 사람의 일반적인 상황에도 대입이 가능하니까….

    타: 제 시점에서는 가장의 노래지만, 자기 자신이 밑바닥에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공감을 얻었을 거라 생각해요. 제가 가사를 쓰면서 떠오른 그림 중에 하나는, 남자와 여자가 연애를 하는데 남자의 인생 상황이 매우 안 좋아요. 그래서 연인에게 ‘미안해, 왜 하필 지금 나를 만났니…?’ 라고 물어보는, ‘내가 앞으로 잘 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노력은 해보겠다.’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었어요.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있거든요.

    리: 저 역시 그런 경험이 있어서 몹시 공감되네요. 끝이 안 좋았죠. (전원웃음)

    타: 이런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꼭 가장의 이야기만은 아니에요. '우산이자 비란 게'라는 부분은, 제가 가사 1절은 한참 전에 써놨었고, 2절은 쓰다 막혀서 마지막 몇 마디를 못썼던 상태였거든요. 그러다 갑자기 녹음을 하고 싶었던 거에요. 그래서 2절 녹음을 하다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쓴 구절인데 그 가사를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이 의외이기도 해요. 금방 나왔던 구절이라 되려 제 마음에서 그대로 나온 가사라는 생각도 드네요.

    리: 동명의 뮤지컬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저도 검색하다가 알았는데, 분위기는 다르지만, 뮤지컬 [밑바닥에서]도 말 그대로 밑바닥 삶을 사는 사람들의 심경을 담은 거라 혹시 모티프가 됐나 싶었어요. 

    타: 몰랐어요. 재미있는 게, "밀물"이라는 곡도 원래는 ‘밀물’이 아니었고 몇 개의 제목을 거쳤어요. "인어의 성인식"이라는 제목으로 하려고 한번 검색을 해봤더니 웹툰같은 게 있나 보더라고요. (전원웃음).

    리: 또 원래 제목이 바뀌었던 곡이 있나요?

    타: "유통기한"은 원래 "ART"였고 "집"도 원래 "히키코모리"였어요. 거의 다 제목이 바뀌었어요. 심지어 막판엔 곡 제목을 정할 수 없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좀 정해달라고 해서 정한 것도 있고요. 스스로 제목을 정하기 어렵더라고요. 예전엔 다른 사람의 곡도 제가 참여하면 제목 욕심을 냈는데, 이제는 제가 만든 곡도 제목을 짓기가 힘들더라고요. "밑바닥에서"라는 곡은 에픽하이 1집 가사 중에 '나는 이 세상의 밑바닥이 아닌 밑받침'이라는 가사가 있었잖아요. 뒤돌아보니 그때는 제가 얼마나 당돌하고 자신만만했으면 그런 표현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이번 가사를 쓸 때 밑받침이 아니라 밑바닥이 된 거라는 생각도 했죠.

    리: 앨범에 보컬 피처링이 많은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

    타: 보컬 피처링이 많은 이유는 초반에 음악을 만들 때 별다른 이유 없이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에, 저를 위한 음악을 만드는 거란 생각을 못했어요. 제 이름 타블로가 들어가는 음악을 만든다는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유통기한"도 가이드 곡이고 다른 누군가가 불러줬으면 좋겠다 싶어서 만든 거였거든요. 이런 식으로 제가 주인공이 아닌 음반을 만들고 싶었어요. 예전 토이나 015B 음반처럼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은 제가하는데, 배우들은 제가 아닌 그런 앨범이요. 그러다가 결국, 제 앨범이 되면서 쿠엔틴 타란티노 꼴이 된 거죠. 자기영화에 자기가 계속 출연하는. (웃음)

    리: 특히, 이소라 씨, 나얼 씨와 작업이 인상적이었어요.

    타: 이소라 선배님과 나얼 형은... 제가 정말 존경하는 목소리들이라서, 저 분들이 내 가사와 멜로디를 불러주면 얼마나 영광일까... 이런 일종의 소원성취였던 것 같기도 해요. "고마운 숨" 같은 경우는 제 주변의 고마운 친구들이 곡의 내용이었기 때문에 태규와 얀키가 참여했는데, 제가 힘들 때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두 사람이라 의미가 컸어요.

    리: 힘든 일을 겪고 나면, 진짜 내 사람과 아닌 사람을 알게 된다고 하잖아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는데….

    타: 명단을 공개해라 뭐 이런 건가요? (전원웃음)

    리: 음, 그랬으면 좋겠지만, (웃음) 그런 건 아니고요, 타블로 씨는 어떻던가요?

    타: 물론, 저도 느꼈죠. 근데, 2002년에 한국에 아예 들어와서 음악을 시작했을 때 알게 된 친구들이 지금도 그대로에요. 그 사이에 인연 속에 들어왔다 나간 사람들은 많겠지만, 기본적으로 저를 둘러싼 사람들은 지금까지 쭉 함께하고 있어요. 에픽 하이 멤버들은 물론이고 다이나믹 듀오, 얀키, 톱밥 형, 제 엔지니어 임승현 씨, 디제이 프리즈 같은 친구들은 역시나 친구들이더라고요.

    리: 내가 힘들다고 했을 때 함께 있어주고 위로해주는 그런 친구?

    타: 내가 힘들다고 말할 필요가 없는.... (리: 캬~) 그 친구들하고 같이 있을 때는 많이 웃었던 것 같아요.

    리: 앨범의 후반부는 비교적 밝은 분위기로 흐르는데, “유통기한”을 마지막에 배치했더군요. 인생은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특별히 있어요?

    타: 영화에서는 확실한 끝이 있기 때문에 해피엔딩이 가능하겠지만, 인생에 있어서는 행복이 한 곳에 머물지 않는, 움직이는 것이니까요. 행복을 손에 쥐게 되었을 때는 정말 기쁘고 좋은데 동시에 ‘이것을 잃게 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뒤따르잖아요. 잃게 되고, 또 다시 찾아야 하고. 그에 대해서 저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요. 한 번의 해피엔딩을 잊지 못해서 평생 불행한 사람보다, 불행 속에 있어도 또 다른 행복이 올 것을 바라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리: 일전에도 결혼한 뮤지션 분들을 만나서 얘길 나눠보면, 결혼도 결혼이지만, 2세가 태어나는 것이 뮤지션, 특히, 힙합 뮤지션에겐 큰 전환점이 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음악적 방향성이나 가사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타블로 씨는 어때요?

    타: 일단 전 남편이 된 것과 아빠가 된 것, 30대가 된 것과 힘든 일을 겪은 것을 분리해서 생각하기가 힘들어요. 따로따로 겪어도 큰 변화가 일어날만한 일들인데, 동시다발로 겪다 보니까 무엇 때문에 제 성격의 변화가 생긴 건지는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종합적으로 봤을 때는 매우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다 조금씩은 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리: 앨범 타이틀이기도 한 ‘열꽃’은 의학적으로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없어진다고 하더군요. 블로 씨도 타이틀처럼 시간이 약이라고 생각해요?

    타: 네. 그런 것 같아요.

    리: 이 인상적인 타이틀이 나오게 된 게 부인인 강혜정 씨의 역할이 컸다고 하던데….

    타: 우선 [삐뽀삐뽀 119]라는 책이 있어요. 모든 엄마들과 아빠들의 바이블인데….

    리: 참고하겠습니다. (전원웃음)

    타: 아기를 키우면 무조건 한 권쯤은 있어야 해요. 책에 보면 열꽃 유형도 사진 별로 있거든요. 어쨌든 열꽃이 피면 열이 끝나간다는 거더라고요. 혜정이가 그런 이야기를 제게 해주었는데 매우 인상적이어서 제목으로 정했어요. 아이가 열꽃이 핀 걸 보고 처음에 전 정말 놀랐어요. 얼마나 아프면 온몸에 그런 게 날까 하고 겁을 먹었는데. 혜정이가 열꽃이 피면 몸살이 거의 끝나가는 거라고 안심해도 된다고 했을 때, 제가 지난 시간 느끼고 있던 모든 것을 한 단어로 표현한 느낌을 받았어요. 평생 살면서 열꽃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본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이 열꽃이라는 단어가 저를 발견한 것 같았어요.

    리: 가사를 가만히 들어보면, 여러 군데에서 뮤지션으로서 잊혀지는 두려움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해요. 스스로 그런 부분에 초연해지는 날은 언제쯤 올 것 같아요?

    타: 이미 온 것 같아요. 버려질 수도 있고 잊혀질 수도 있는 게 이 직업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일이잖아요.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삶을 살든, 나이가 들면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잖아요.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 때문에 숨막히는 삶을 살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거니까요.

    리: 맞는 말씀입니다. 참, 최근 미 힙합 트렌드는 살펴봤어요?

    타: 그럼요. 계속 듣긴 했죠.

    리: 멜랑꼴리한 사운드가 상당한 추세에요. 흥미로운 건 타블로 씨의 프로덕션이 옛날부터 굉장히 멜랑꼴리했다는 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트렌드를 상당히 앞서간 셈이에요. (웃음)

    타: (웃음) 트렌드를 앞서갔던 건 아닌 것 같고요, 오히려 전 트렌드를 잘 따라가지도 못해요. 뭘 만들어도 멜랑꼴리하게 나오는 것뿐이에요. 다양하게 잘 만드는 사람들이 정말 뛰어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제가 다양한 것을 잘 못해요. 딱 제가 할 수 있는 좁은 스펙트럼 안에서 최선을 해보려고 하죠. 예전에는 그나마 다양하게 했던 것 같은데, 당시에 제가 표현에 능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양한 것들이 조금은 아쉽게라도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표현하려는 것들이 뚜렷해져서 인지, 기술적으로는 되려 스케일이 좁아지는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음악을 만들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부분은 고민해봐야겠죠.

    리: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 있겠지만, 좁아졌다고 하는 부분이 되려 장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저것 조금씩 건드려보고 다양한 스타일을 한다고 하는 뮤지션보다 기본적인 틀 안에서 꾸준히 움직이는 게 더 어렵고 멋진 행보라고 생각하거든요.

    타: (여러 가지를) 할 줄 아는데 안 하는 것과 할 줄 몰라서 한두 가지 밖에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후자라고 생각해요.

    리: 너무 조심스럽게 말씀하는 것 아니에요? (웃음)

    타: 아니에요. 저는 진심이에요. 후자인데 되려 저에게는 고마운 일이죠. 다양한 것을 해서 주목이 분산되는 것보다는 제가 할 줄 아는 것이 몇 안되지만,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더 편해요. 그리고 전 여전히 제 음악이 '힙합'인지는 모르겠어요. 분명히 랩을 사랑하고 랩은 하고 있지만, 제가 제 음악을 '힙합!'이라고 외칠 수 있을 정도로 힙합적인 프로듀싱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비쥬얼도 힙합이 아니고…. (웃음) 때론 음악을 만들 때 발라드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작업에 임하는 것 같아요. (웃음) 발라드는 악기 구성이나 편곡이 비교적으로 형식적인 만큼, 가사와 멜로디로 차별화가 되잖아요. 그렇게 가사와 멜로디를 더 신경 쓰는 것도 있고, 스펙트럼이 좁은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리: 그런 의미에서 힙합인지는 잘 모르겠다?

    타: 힙합을 정말 좋아하는데 제가 좋아하는 힙합을 직접 만들지는 못하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엠에프 둠(MF Doom)과 매드립(Madlib)을 굉장히 좋아해요. 근데 그들 같은 음악을 만들지는 못하겠거든요. 그건 저에게 없는 능력이에요. ‘난 힙합다운 힙합을 잘 만들 수는 없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죠. YG에 와서 더 그런 것을 느껴요. 옆 작업실이 테디 형이라 자주 같이 음악 듣고 이야기를 나누거든요. 힙합이라 할 수 있는 곡들을 테디 형이 정말 잘 만드는 거죠. 그래서 더, ‘나는 힙합을 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

    리: 타블로 씨가 YG와 계약을 맺었다고 했을 때 많은 힙합팬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게 테디 씨의 프로덕션과 타블로 씨의 랩이 만나는 거였어요. 둘의 조합 기대해도 될까요?

    타: 팬 분들보다 제가 더 기대를 많이 하고 있어요. (웃음) 저는 제 음악도 만들지만, 다른 분들과 교류하는 것을 예전부터 좋아했어요. 되려 합작을 해서 제가 얻을게 많지, 제 색을 잃을 걱정은 안 하거든요. 그래서 테디 형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과 작업을 해보고 싶고 기대가 되요.

    리: 외부 뮤지션과 작업을 할 때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면요?

    타: 제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할 수 있는 분과 작업하기를 원해요. 그게 1순위고요. 함께 작업하는 이유가 음악이 우선일 때는 하고 싶죠. 트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 하는 작업은 정말 싫어요.

    리: 한때 언더그라운드 쪽에서 많은 부탁을 받았을 것 같은데….

    타: 네. 저보다 다른 목소리가 얹히는 것이 곡을 위해서는 훨씬 더 좋겠다는 것을 저도 느끼고, 같이 작업하는 사람도 느끼는 것 같은데, '이름'을 위해서 합작을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거든요. 저도 피처링을 할 때 이름을 보기보단 그 사람의 정서나 색깔을 보고 결정하니까요.

    리: 오는 2013년이 에픽 하이 데뷔 10주년 맞죠?

    타: 네. 맞아요.

    리: [Epilogue] 발매 당시 잠시 재충전의 시기를 갖다가 2013년 데뷔 10주년 때 에픽 하이로 돌아오겠다고 했었는데, 아직 유효한가요?

    타: 그랬었나요? (웃음) 10주년에 당연히 뭘 하고 싶어요. 저희에게도 큰 의미죠. 한 그룹이 1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하기는 참 어려운 일인데.... 근데 아직 셋이서 뭘 만들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기대해달라고 할 자격은 없는 것 같아요.

    리: 그래도 시간은 남아있으니 기대를 걸 수밖에 없겠네요. (웃음)

    타: 응원해주세요. (웃음) 근데 정말 제가 딱 2013년에 돌아오겠다고 했나요?

    리: 네. 당시 에픽 하이에게 음악적인 휴식이 필요하다고 했었어요.

    타: 아… 그래서 제가 엄청난 휴식을 취하게 되었군요. (전원웃음)
     
    리: 앞으로 계획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타: 미친듯이 음악을 만들어야죠. 저에게는 정말 고마운 일이니까. 열심히 살겠습니다! 제 음악에 귀 기울여주시는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타블로가 주관적으로 봤을 때 참 인간성 좋은 랩퍼 TOP5 (무순위) - 에픽 하이 멤버 제외

    얀키 - 얀키는 관대해요.

    최자 - 최자는 쾌활해요.

    개코 - 개코는 아빠에요. (그냥 아빠라서)

    테디 – 테디 형은 멋있어요.

    칸예웨스트(Kanye West) - (만나 본적은 없지만) 알고 보면 착할 것 같아요.




    인터뷰. 글 / 강일권, 박배건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모든 리드머 콘텐츠는 사전동의 없이 영리적으로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62

    스크랩하기

    • Share this article
    • Twitter Facebook
    • Comments
      1. 와지드 (2011-12-30 20:49:51, 210.57.253.***)
      2. 타블로 엠에프 둠하고 매들립 좋아한다고? ㅋㅋ 오 급호감
      1. 보리 (2011-12-24 17:41:32, 121.162.18.***)
      2. 앞으로 작업물 기대되는군요 잘 읽고 갑니다
      1. Gerome (2011-12-09 12:07:39, 183.96.26.***)
      2. 잘 읽었습니다!
      1. ㅇㅇ (2011-12-04 11:20:35, 124.51.228.*)
      2. 정말 인터뷰 분위기 좋네여 힙플보다 편안하고 훈훈하고
      1. Raaaam (2011-12-01 18:33:43, 218.209.126.***)
      2. ㅋㅋㅋ 마지막 개그네요 칸옠ㅋ
      1. spacebug (2011-12-01 16:06:23, 117.123.244.***)
      2. 잘 봤습니다. 인터뷰보니 생각보다 많이 괜찮으신거 같해서 안심이네요. 미래 작업물도 기대되게 많듭니다.

        마지막에 "타블로가 주관적으로 봤을 때 참 인간성 좋은 랩퍼 TOP5"ㅋㅋㅋ 웬지 귀엽네요.
      1. whatsup (2011-12-01 11:10:33, 121.88.150.***)
      2. 다시 볼수있어서 기쁩니다
      1. 김도현 (2011-12-01 02:52:41, 180.66.18.***)
      2. 인터뷰 분위기나 내용이 정말 좋네요
      1. 신숭털 (2011-12-01 00:53:21, 122.32.69.**)
      2. 아..좋다 인터뷰 ㅎ
      1. 조성호 (2011-11-30 23:52:19, 218.233.48.**)
      2. 잘 읽었습니다.
      1. doh! nuts (2011-11-30 23:32:18, 222.108.252.*)
      2. 다른 인터뷰들에서 느낄수 없었던 따뜻함이 느껴지네요. 다른 언론사 인터뷰를 보면 굉장히 차갑게 느껴졌는데... 이제 훌훌털고 비상할수 있기를 바래요.
      1. 하채균 (2011-11-30 23:32:07, 121.145.155.**)
      2. 잘 읽었습니다!

        비교하긴 뭣하지만 힙플 인터뷰에 비해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지네요..

        앞으로의 행보가 여러모로 기대됩니다.
    « PREV LIST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