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리뷰] 남수림 - Drive Me To The Moon
- rhythmer | 2012-08-03 | 3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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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남수림
Album: Drive Me To The Moon
Released: 2012-07-25
Rating:
Reviewer: 이병주
오버클래스 크루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여성 랩퍼 리미가 남수림으로 랩퍼명을 바꾸고 새 앨범을 발표했다. 리미로 활동하던 시절의 그녀는 분명히 우리나라 최고의 여성 랩퍼 기대주였다. 몇 차례 발표한 믹스테입과 피쳐링 활동으로 인지도를 서서히 얻어갔으며, 오버클래스의 [Collage 2]에 수록되었던 “I'm Hot”을 통해 강렬하게 씬에 정식 데뷔했다. 성비의 불균형이 심한 힙합 씬에서 단지 여성이라는 점을 이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탄탄한 라임과 리듬감을 살려낸 플로우를 내세웠던 그녀는 여느 남성 랩퍼들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실력을 갖추기도 했다. 데뷔 자체를 메이저에서 하며, 대중의 사랑과 관심 안에서 성장하는 와중에 자신을 증명했던 윤미래의 경우와는 다르게 언더그라운드 씬 안에서 나타난 출중한 실력의 첫 여성 랩퍼였던 그녀를 향한 장르 팬들의 관심과 기대 역시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국내 힙합 씬에서 여성 랩퍼로서 많은 일을 이뤄갈 것으로 보였던 그녀의 커리어는 안타깝게도 몇 가지 일로 주춤하게 되고 말았다. 첫째로는 그녀의 정규 데뷔 앨범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점, 둘째로는 디스와 이어지는 고소 해프닝으로 말미암은 이미지 실추, 셋째로는 그녀의 커리어에서 어떤 식으로도 긍정적인 역할을 해낼 수 없었던 “리미와 감자” 멤버로의 활동이다. 데뷔 앨범에서 그녀는 전반에 걸쳐 일정 수준 이상의 랩을 들려줬지만, 좋은 곡과 좋은 앨범을 완성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면이 보였다. ‘림교’를 얘기하며 거친 가사도 망설임 없이 사용하던 강렬한 캐릭터는 앨범에서 잘 살아났지만, 보도자료의 내용처럼 ‘단 한 장의 정규 앨범 없이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의 슈퍼스타가 된’ 그녀에게 슈퍼스타의 그것이 주는 만큼의 감흥을 채우지 못한 정규 앨범의 아쉬움은 그녀 앞에 물음표를 붙였다. 그 이후 벌어진 그녀를 둘러싼 해프닝은 그녀에게서 남성보다 더 강하고 멋지게 보였던 특유의 캐릭터마저 희석했다. 언급했던 “리미와 감자”로서의 활동은 위의 두 가지 측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도 했다.결국, 얼마간의 공백 이후 남수림으로 나선 그녀는 모든 면에서 변화했다. 거친 표현과 강렬한 캐릭터는 사라지고 대신 또래 여성의 모습과 감성이 새롭게 자리했다. 또한, 앨범에서 그녀는 기존의 힙합이란 장르적 테두리를 벗어났다. 장르 팬으로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그녀가 더는 예전과 같은 음악을 하지 않기로 했고 어느 쪽으로든 변한다고 했을 때 지금의 방향은 가장 좋은 쪽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그녀를 포함해 여성 랩퍼들은 전통적인 힙합 장르 안에서 소비되는 남성적인 포인트를 빌려 역으로 자신의 성별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고, 남성적인 언어로 남성적인 내용을 표현하고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가 이번 앨범에서 그러한 틀을 벗어났다는 점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노래하고(“내 인생은 코미디”), 특정 남성 뮤지션을 향한 자신의 연정을 드러내고(“사랑해요 폴”), 신사 같은 멋진 남성이 좋다는 고백과 함께(“30대남 40대남”) 다른 여성에게 남자 문제와 고민에 대한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그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이러한 것이 다소 뻔한 사랑 얘기를 다루는 아이돌 그룹 내의 랩퍼 역을 맡는 이에 의해 일부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앨범 전체를 통해 여성의 언어가 담긴 많은 양의 랩으로 다루어진 건 이번 앨범이 처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내면으로 들어가 개인적인 시선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충분히 의미 있는 지점이다. 특히 박지윤을 보컬리스트로 초청했던 선택이 주효한 “Drive Me To The Moon”은 비록 대중성은 부족해도 인디 씬 안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자리 잡아 가기에 꽤 적절한 작업물이다.
여성의 시선으로 완성된 랩음악이라는 점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더라도 아쉬운 점은 존재한다. 특히 어쿠스틱 밴드 구성을 기반으로 구성한 프로덕션은 아무래도 가사를 중심으로 드러나는 그녀의 새로운 캐릭터와 느낌을 살려주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짧은 앨범 안에서도 프로덕션은 각기 성격이 다른데, 레게를 적극 차용한 트랙이나 몽환적인 트랙 중 어느 것 하나를 중심으로 잡아 전체를 구성했더라면 그녀의 새로운 음악이 좀 더 선명하게 다가왔을 수 있다. 그리고 주제나 가사를 통한 표현 방식을 떠나서 그녀의 랩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지만- 이전의 힙합 트랙에서 보였던 것보다 라임의 구성이 다소 물러진 느낌이 든다. 그녀의 랩은 좀 더 빠른 템포로 타이트하게 짜였을 때 더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란 측면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다. 다섯 곡만이 수록된 미니앨범을 통해 앞으로 커리어의 방향에 관해 함부로 논하기에는 조심스럽지만, 이번 앨범을 완성하며 가졌던 그녀의 고민이 계속 발전적인 방향으로 무르익게 되고 아쉬운 점이 보완된다면, 힙합 마니아들이 품었던 기대마저도 결국은 채워줄 수 있을 그녀만의 음악이 나타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어쩌면 우리는 ‘진짜 여성 랩퍼’의 탄생과 커리어 관리에 실패한 왕년의 유망주 사이의 갈림길에 선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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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hythmer (2012-08-07 02:15:57, 110.5.187.**)
- La Strada/네 맞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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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 (2012-08-05 16:44:07, 211.244.150.**)
- 기사 잘 보았습니다. '진짜 여성 랩퍼'라는 표현이 가슴을 뛰게 하는군요. 앞으로 더욱 기대하게 될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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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cks (2012-08-05 01:11:51, 115.23.240.***)
- 저는 정말 좋게 들었습니다. 그는 널 사랑하지 않아 같은 곡은 정말 가사가 지금 20대 여성들에게 크게 어필할만한... 리미의 곡은 웬만하면 진부하지 않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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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Strada (2012-08-03 18:07:33, 121.88.212.***)
- 반으로 잘린 R은 이전의 +와 같은 의미인가요?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바뀌어 있는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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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랩의진수 (2012-08-03 15:09:57, 173.70.202.**)
- 리미와감자 활동 커리어가 좋지 않았다고 써주셨는데 솔직히 그건 아닌듯. 홍콩반점, 라이터 등등 꽤 어필됬던 신박한 곡들이었음. 그리고 리미의 노래와 리미와감자의 노래들이 은근히 뭐랄까 좀 피시방에서 줄담배 피면서 서든어택하는 여자들이나, 아프리카에서 방송하는 BJ 들에게 잘 먹히는, 그런 코드와 감성이 있음 (나쁜 의미가 절대 아님) 뭐랄까 좀 글로 표현하기 힘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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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랩의진수 (2012-08-03 15:02:36, 173.70.202.**)
- 리뷰 잘 읽었습니다. 이번 새 앨범은 아직 재대로 들어보지 못해서 그것에 대한 리플은 남기지 못하지만, 리미 팬으로써 살짝 덧붙이고 싶은 내용은 (굳이 쉴드 칠려는게 아니라 그냥 쓰는 글임), 리미의 메시아 정규 앨범이 한장의 앨범으로써의 기준에서 보면 많이 딸렸던 완성도와 구성이었던게 사실이지만, 그전에 있었던 리미의 뭐랄까 직설적이고 화끈한 캐릭터에서 벗어난 또 다른 감성을 보여준 곡들도 있었죠. 예를 들자면 시발이오, 끝내러 가는 길, 내가 못생겨서 싫었던 거니 등등 솔직한 이야기를 토대로 여성분들에게 공감을 일으킬수 있는 그런 감성을 보여줬고, 대중적으로 큰 반응이 있었던건 절대 아니었지만 한국힙합을 굳이 듣지않는 마이너들에게도 나름 먹혔던 반응으로 기억됨. 저는 그걸 캐치했기에 사실 이번 앨범스러운 느낌으로 (아직 재대로 들어보지 못했지만) 리미가 작업을 할꺼라 예상했음. 아무튼 재능 쩌는 리미님 승승장구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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