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리뷰] 리코 - The Slow Tape
- rhythmer | 2015-01-29 | 12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
Artist: 리코(Rico)
Album: The Slow Tape
Released: 2015-01-14
Rating:
Reviewer: 오이
육체적인 사랑을 노래하는 알앤비는 흔하지만, 그중에서도 슬로우잼(Slow Jam)은 음악 자체가 기술적인 과정보다는 사랑, 혹은 섹스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나 그 디테일한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에 대한 비중이 큰 장르다. 그 에 자칫 잘못했다가는 그저 속물적인 저급한 음악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수월하게 느껴지면서도 은근히 까다로우며, 몇 가지 고려되어야 할 키워드를 끼워맞춘다면야 사실 슬로우잼 자체는 그다지 새롭거나 난해하지 않고 굉장히 단순한 편이다. 그래서 사랑의 감정이나 섹스어필로 인한 특유의 느릿한 그루브와 직설화법이 속물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나 그런 뻔한 이유가 바로 슬로우잼을 존재케 하는 최고의 가치다.
일련의 싱글과 공개곡을 통해 캐릭터를 구축해오던 리코(Rico)는 이번 정규 데뷔작 [The Slow Tape]에서 이러한 슬로우잼 스타일을 전면에 내세운 채 솔직한 자기 욕망의 단편을 담아냈다. 무엇보다 그동안 꾸준히 일궈왔던 스타일을 고스란히 담아냄과 동시에 좀 더 세련되고, 노골적이고, 로맨틱하게 표현했으며, 기술적인 면에서도 탁월함을 자랑한다.처음부터 끝까지 사랑과 섹스를 컨셉트로 한 특유의 느릿하고 나른한 슬로우잼 사운드가 한 장을 꽉 채우고 있으며, 다이내믹하고 기교 섞인 멜로디는 어려운 듯하면서도 의외로 친근한 느낌이 있어 접근성도 좋다. 또한, 이처럼 한결같은 스타일의 곡들을 지루함 없이 이끌어 가는 부분에서 장르에 대한 리코의 상당한 애정과 탐구정신을 유추할 수 있다. 그의 확고한 스타일이 결합된 결과물인 본작의 음악들은 확실히 그간 들어왔던 이 계열 음악들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춰져 있다.
특히, 의도적인 멜로디 없이 짧은 마디를 반복해서 이어가는 듯한 “Special"은 느긋하게 사운드를 만들어내며, 국내에서 쉽게 듣기 어려웠던 음악을 선사한다. 서서히 시작하여 도달해 가는 방식이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고 부드럽게 흘러가며 제대로 된 알앤비 무드를 완성했다. 여기에 꽉 찬 사운드 안에서 적당히 완급조절을 한 리코의 보컬이 돋보이는 "Til The Sun Comes Up"은 앨범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무드를 조성하고, 이와 비슷한 연장선에서 듣게 되는 "Take It Off"는 앨범에서 가장 폭넓은 층으로부터 인기를 노려볼 만큼 커머셜한 멜로디와 진행의 곡으로 세련된 사운드, 보컬, 멜로디의 조화가 일품이다. 섬세하고 은밀한 사운드 위로 보컬에 힘을 실어 지루함을 없앤 ”Do It All Night"부터 PBR&B 색채가 가미된 “남김없이”까지 순도가 확실한 곡들은 거스르면 안 될 규칙을 지키는 것처럼 일정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The Slow Tape]엔 다채로운 템포의 곡이 있지도, 그렇다고 해서 격정적인 멜로디가 있지도 않지만, 세심하게 연출한 사운드와 그에 따라 욕심 없이 짠 멜로디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훌륭한 알앤비 앨범으로 탄생했다. 그리고 그 음악적 중심에 뮤지션 본인이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깊다. 리코는 확실하게 정립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장르 자체를 순수하게 표현하며, 테입을 플레이한 이후로 단 한 순간도 놓칠 수 없게 만들었다. [The Slow Tape]은 뮤지션의 재능과 욕구가 조화를 이룬 좋은 본보기의 앨범이다.
12
-